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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09 손끝으로 문장읽기 2주차 - 「철길」, 「종노」
손끝으로 문장읽기 2주차 - 「철길」, 「종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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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첫 주, 어느덧 겨울이라 느껴질 만큼 부쩍 추워진 가을날, 황석영 작가님의 「철길」, 과 「종노」를 읽어내려갔다.
두 작품 모두 처음 접하는 작품이었는데 앞서 「돼지꿈」이나 「몰개월의 새」와 마찬가지로 70년대 사회 소시민의 모습을 잘 형상화 해내고 있다.
1976년 발표된 「철길」의 경우 군인계급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대대장을 살해한 죄로 사령부로 호송되는 죄수는 이미 결혼해 부인과 아내를 둔 평범한 가장이다. 대대장을 쏘아버리게 된 자세한 이유는 작품 내에서 발견하기 힘들지만, 인질극을 벌이며 병장에게 남은 총탄을 헤아리게 하는 과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내, 애새끼, 휴가증, 고향편지, 부쳐온 떡, 아까 지나간 기차’ 등은 군인으로서가 아닌 정을 지닌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요소이다. 즉 그를 호송하는 하사나 병장과 마찬가지로 인간적 유대를 갈망하는 개인이다. ‘철조망, 군번, 계급장, 영창, 중령의 속옷’ 등은 신체의 훼손을 전제로 하는 죽음정치적 속성을 지닌 ‘군인’으로서의 역할을 떠오르게 한다. 병장이 상급자를 죽인 이유에 대해 묻자 ‘돈짝만한 계급장을 쐈는데 ……그게 사람이잖아.’라는 답변을 한 것도 이와 유사한 맥락으에서 이해된다. 즉 죄수는 죽음정치적 속성을 지닌 군인이라는 신분과 군대조직에 환멸감을 느꼈으며, 이에 그를 둘러싼 군대조직이라는 현실적 환경에 대한 분노와 회의를 표출한 것이다.
인상적인 점은 죄수와 그를 호송하던 말년 병장 간의 유대관계이다. 두 사람 모두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군인신분이며 ‘집에 돌아가고 싶은’ 공통적인 소망을 지녀왔다. 즉 죄수와 병장과 같은 인물은 명령에 복종하거나 비판의식을 상실한 인물들이 아니다.
(박진만, 「1970년대 황석영 중단편 소설 연구 : 주요인물의 전형을 중심으로」,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38쪽-40쪽 참조.)
즉 군인계급이 지니고 있는 죽음정치적 속성에 대한 환멸과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 군대라는 조직이 모습을 숨긴 채 은밀한 영역에서 인간의 내면과 욕망을 지배하는 비가시적 미시권력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렇듯 군인계급의 규율화된 권력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전망은 ‘개개인과의 유대 관계’와 ‘존재론적 고민’을 통해 획득될 수 있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품이다.
먼 곳에서 디젤 기관차의 경적 소리가 짧게 한 번 그리고 길게 들려왔다.
“들리냐? 기차가 들어오구 있어.”
죄수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쪽문을 조금 더 열고 어둠 속을 내다보았다.
“신호등에 불이 켜졌다.”
“결국은 잡힌다.”
“저 기차를 우선 타구 봐야겠군.”
“집에 갈 테냐?”
“가는 데까지 간다.”
병장이 말했다.
“나두…… 집에는 가구 싶다.”
- 「철길」, P93-94.
“잠깐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기차 소리를 듣구 애들 생각을 했어. 언제나……놓치기만 했다.”
이윽고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의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탁가닥 탁 탁가닥 타, 하면서 선로의 연결 부분에 걸리는 바퀴 소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죄수는 벽에 기대앉아 그 소리가 아주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다시 빗소리만이 창고의 지붕을 두드리고 있었다.
- 「철길」, P95-96.
「종노」의 경우 70년대 산업화가 한창 진행중임에도 불구하고, 백암이라는 한 농촌마을에서 웃전 노릇을 하며 소작을 주고, 거처를 마련해 주어 ‘훗집’에 살게 하며 필요 시 마다 소작인들을 불러 일을 시키는 조그마한 농촌마을 소시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소작인들은 조선시대에 소작인들이 지주에게 으레 그러했던 것처럼 타조법(打租法)으로 지대를 낼 뿐만 아니라 ‘서방님, 아씨, 나리……’로 주인집 사람들을 호칭하는 등 마치 종, 노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동이 노인의 차남 규호와, 서씨의 장남은 이러한 현실의 모순을 이해하고 비판하며 백암을 떠나는 인물로 등장한다. 자본과 토지의 부재로 인해 주인집을 마치 상전처럼 모시는 것을 오랜 관행처럼 여겨 온 동이 노인은 장남 규철이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아파트를 짓기 위해 훗집을 허물고 훗집에 거주하는 소작인 절반 이사을 내칠 것이라 예고하는 주인집에 결정에 항의를 표하는 서씨의 장남에게 발길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규철을 말리며 이 순간 차남 규호가 집을 나가며 했던 ‘죽을 때까지 남의 종살이나 해 처먹어라!’ 라는 마지막 말을 상기한다.
즉 「종노」는 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며 산업화가 가속되던 그 시대의 한가운데에서도 현실의 부조리에 저항하지 못하고 스스로 종과 노비와 같은 위치로 자처할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애환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나아가 삶의 ‘주체’로서 자리한다는 의미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닌다.
“웃집 사람들 여전하죠?”
서씨는 다시 말을 잃고 우물쭈물했고, 아들이 말했다.
“내일이 추석이라구 어머니가 일 도우러 가셨으니, 아무 때나 툭하면 하인으로 데려다 부려먹는 거지. 뭐 달라진 게 있겠습니까.”
“그 집이 여기선 상전인데 어떡하겠냐.”
“지금이 어느 세상이라구 서방님, 아씨, 나리…….”
“땅이 없는 탓이다.”
서씨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 나서 그대로 일 년 만에 보는 자식 앞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애, 그래두 여기선 느이 동생들이 배 곯은 적은 없다. 고구마로 끼니를 때울 적두 있지만 대처보다야 한결 낫지. 아직은 시골이 어수룩하더라. 나두 열 마지기 농사여. 요새느느 정말 사추리에서 찬 바람이 나도록 일을 한단다.”
아들은 도시살이에 간만 부풀었는지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그까짓 열 마지기에 지대는 얼마나 바치구요?”
역시 서씨는 담배만 피우는데 아들이 말했다.
“반반이죠? 도둑놈들 같으니…… 아무리 빈손이라지만 농구에 비료에 영농비 몽땅 들이고 식구들 노임까지 들여서 지어놓으면 손가락에 흙덩이 한번 대어보지 않은 놈들이 가져가잖아요. 그러니 다시 말짱 헛것이지요.”
“반타작은 옛날부터 원래 법이 그렇다는 걸 모르니.”
“어느 옛날요…….”
“왜정 때…… 아니 그전에두 그랬다더라. 얘, 땅 가진 사람들두 속이 썩을 게다. 뭐 남는 게 없겠더라.”
“그건 가진 놈들 사정이구요. 반반이 대체 뭐예요. 제 앞가림두 못하면서 남의 걱정을 해요. 참 답답해서.”
- 「종노」, P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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