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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8 [과제4]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4주차
[과제4]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4주차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스포주의 ( 이 글은 소설의 반전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4주차에는 ‘5장- 1937년 9월 29일, 상하이, 케세이 호텔’ 과 ‘6장- 1937년 10월 20일, 상하이, 케세이 호텔’ 부분 까지, 총 두 개의 챕터를 읽었다. 여러 의미에서 지난 주차에 느꼈던 더딘 전개에 비해 이번 두 장을 읽으며 사건이 확연히 진전되었으며, 두 개의 챕터, 그 여정을 지나오는 동안 놀라운 조우와 반전이 가득했다.
특히 부모님이 감금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예 천’의 집 맞은편 건물)를 마침내 알아내, 부모님을 구출하러 가기 위한 길에서 군인이 된 아키라와의 만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년 시절의 크리스토퍼와 아키라가 성인이 되었고, 그들은 그들이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좋은 세상’으로 기억하고 추억한다. ‘눈부신 시절’이었으며, 그들이 유일한 ‘고향’이었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웃을 수 있는.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세계 자체가 ‘긍정적인 곳’으로 인식되는 그런 시절. ‘친구/도모다치/Friend’와 함께 아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세계. 그렇기에 크리스토퍼와 아키라의 진실되고 순수한 우정은 아름답게 여겨진다. 바로 그 때문에 크리스토퍼 또한 아키라가 일본군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초탈할 수 있는 것이리라.
크리스토퍼가 아키라에게 새삼 상기시켰듯이 사실 ‘완벽한’ 세상이라는 건 없으며,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한, 아이들을 동심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부모님들의 노력 때문에 유년 시절의 세상이 그러한 곳으로 추억될 수 있는 것이다.
“좀 이상한 얘기 해 줄게, 아키라. 너한테는 이런 얘길 할 수 있지. 영국에서 살던 그 모든 세월 동안, 나는 그곳을 고향처럼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상하이 공동조계, 내 고향은 영원히 그곳이야.”
“하지만 지금 공동조계는 …….” 아키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여 있어. 내일 아니면 모레 …….” 그러면서 그는 작별이라는 뜻으로 허공에 한 손을 흔들어보았다.
“네 말뜻 알아. 우리가 어렸을 때 그곳은 우리에게 아주 견고해보였지. 하지만 지금은 네가 말한 대로야. 그곳이 우리 고향이야. 하나뿐인 우리의 고향.”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60쪽.
“이것 봐, 소용없어. 그냥 한 단어만 알려 줘. ‘친구’라는 뜻의 단어 말이야. 오늘 밤 그 이상은 배울 수가 없을 것 같아.”
“도모다치.” 하고 그가 말했다. “도-모-다-치.”나는 그 단어를 몇 번 반복하면서 스스로 꽤 정확하게 발음했다고 생각했으나 그가 어둠 속에서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예전에 곧잘 그랬던 것처럼 둘이 함께 도저히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우리는 꼬박 일 분 동안 그렇게 웃었으며 그런 다음 나는 갑자기 곯아떨어진 것 같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67쪽.
“어린 소년이었을 때 꿈을 꾸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계셨지. 난 어린 소년이고.”
“그런데 기억나, 아키라? 우리가 곧잘 하던 그 놀이들 말이야. 우리 정원의 그 작은 언덕에서 하던 놀이 말이야. 기억나, 아키라?”
“그래, 기억나.”
“참 좋은 추억이야.”
“그래. 아주 좋은 추억이지.”
“눈부신 시절이었어. 물론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눈부신 시절이었는지 몰랐지. 아마 아이들은 그걸 모를거야.”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68쪽.
“그 애한테 말해 줘. 내가 조국을 위해 죽었다고. 엄마 말씀 잘 들으라고. 지켜 주라고. 그리고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적당한 영어 단어를 찾느라 애쓰는 한편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소곤거림에 가까웠다.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말이야.”
그가 벽을 매끄럽게 다듬는 미장이처럼 손으로 허공을 다듬듯 움직이면서 다시 한 번 그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눈으로 의아한 듯 자기 손이 움직이는 모습을 응시했다.
“그래.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해 줘.”
“어렸을 때 우리는 좋은 세상에 살았어.”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우리가 지금까지 우연히 마주친 이 아이들은 어떤가. 그들이 세상의 실제 모습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그토록 일찍 알게 되다니 정말 끔찍해.”
“내 아들은 다섯 살이야. 일본에 있어. 그 애는 아무것도 몰라. 그 애는 세상이 좋은 곳인 줄 알고 있어. 친절한 사람. 장난감. 엄마와 아빠가 있는 그런 곳 말이야.”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69쪽.
“내 아들이 세상이 좋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그는 고통 때문이거나 적절한 영어가 떠오르지 않아서거나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말을 멈췄다. 그가 일본어로 무슨 말인가를 하다가 영어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애와 함께 있고 싶어. 그 애를 돕고 싶어. 그 애가 세상의 실상을 알게 될 때 말이야.”
“이것 봐, 넌 정말 바보같아. 그건 지나치게 침울한 얘기잖아. 넌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해 줄게.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 세상이 얼마나 좋아보였는가 하는 얘기 말이야. 어떤 점에서는 말도 안 돼. 그저 어른들이 우리에게 그런 생각을 주입시킨 것뿐이야. 어린 시절을 지나치게 그리워해서는 안 돼.”
“그……리워 한다고…….” 아키라는 마치 그것이 자신이 찾으려 애썼던 말이었던 것처럼 되뇌었다. 그런 다음 그는 일본어로 무슨 단어인가를 말했는데 아마 ‘그립다’의 일본어일 것이다. “그립다라. 그립다는 건 좋은 일이야. 아주 중요한 일이지.”
“정말 그럴까, 친구?”
“중요한 일이야. 아주 중요해. 그리워한다는 것 말이야. 그리워하면 기억하게 되거든. 우리가 어른이 되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라라는 걸 말이야. 우리는 그 기억을 가지고 좋은 세상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거지. 아주 중요하지. 조금 전 나는 꿈을 꾸었어. 꿈속에서 나는 어린아이였어. 엄마 아빠가 내 곁에 계셨지. 우리 집 안에.”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70-371쪽.
그러나 아키라에게 이러한 말을 건넬 당시 크리스토퍼로서는 자신이 바로 아직 그런 세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노란 뱀’과의 만남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의 절정이자 앞선 의문들이 해소됨과 동시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는 지점. 설마 하는 마음을 다소간 지니고 있었지만, ‘노란 뱀’은 바로 유년 시절 크리스토퍼가 믿고 따르던, 그렇지만 그를 배신한(배신했다고 여긴) ‘필립 삼촌’이었다. 그리고 그와의 조우, 대화를 통해 크리스토퍼가 믿어왔던 세계는 파괴된다. 아편 무역의 수익금 문제로 고용주에게 맞서 제거되었다고 믿었던 아버지는 사실 정부(情婦)와 함께 떠난 것이었으며, 어머니는 아편 무역의 권력자이자 군벌인 ‘왕 쿠’에 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그의 첩 생활을 하고 있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크리스토퍼는 비로소 듣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재력, 그의 삶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모친이 첩 생활을 하는 대신 거래조건으로 제시한 왕 쿠의 지원 때문이었으며, 사실 필립 삼촌은 배신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유년시절이 끝난다는 건 바로 이러한 의미가 아닐까. 세계를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던 마치 ‘환상’과 같은 보호막이 사라진다는 것. 이 보호막이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이지만 ‘통과의례’로서, 이 과정을 거쳐야 현실을 똑바로 대응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신의 행동양식을 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가 프리벳가에 만들어 둔 보호마법이 해리가 열일곱 살이 되는 순간 풀려버리고, 그가 헤드위그를 상실하는 것도,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선의 세계에서 벗어나 알을 깨고 태어난 ‘압락사스’의 의미, 선악이 공존하는 세계의 의미를 수용해나가는 것도 모두 같은 의미이다. 이런 지점에서 바로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었다. 비록 추리소설의 형태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의 과거와 자연스럽게 얽혀있는 ‘성장소설’. 아키라는 1930년대 후반, 일본군으로서 전쟁에 나아가면서 이미 세상의 잔혹함을 온몸으로 깨달았기에 더욱 간절히 유년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편 크리스토퍼는 이제야 막 사건의 실체, ‘진실’. 그 끔찍함을 깨닫게 되어 유년기를 벗어난 어른으로의 성장 과정으로 여정을 떠난 것이며, 그가 깨닫게 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말부에 나타날 그의 ‘선택’만이 남았다. 부디 그가 후회 없는 선택을 통해 그가 꿈꾸는 ‘좋은 세상’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진실로 바란다.
나는 이미 귀를 막고 있었으나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만해요! 어째서 나를 이렇게 고문하는 거죠?”
“어째서냐고?” 이제 그의 음성은 성난 기미를 띠었다.
“어째서냐고? 그건 네가 진실을 알기를 바라기 때문이지! 이 모든 세월동안 너는 나를 비열한 인간이라고 여겨 왔어. 아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세상이 너한테 하는 짓이야. 내가 진심에서 이런 짓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할 생각이었어. 나 나름의 방식으로 한때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적도 있지. 그런데 지금 내 꼴을 보거라. 너는 나를 경멸하고 있잖아. 너는 그동안 내내 나를 경멸해 왔어. 퍼핀, 내 아들처럼 여겨왔던 바로 네가. 그리고 지금도 나를 경멸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 실상을 알겠니? 너로 하여금 영국에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고? 네가 어떻게 유명한 탐정이 될 수 있었을까? 탐정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겠니? 도둑 맞은 보석, 유산 때문에 피살된 귀족 나부랭이들. 너는 맞서 싸울 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 어머니는 네가 영원히 그 마술 같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결국 그런 세상은 산산조각 나게 마련이다. 네게 있어서 그 세상이 그토록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건 기적이야. 자, 퍼핀. 내가 너에게 기회를 주마. 자.”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13-414쪽.
“어린 시절은 지금 보면 아득히 먼 옛날처럼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러면서 대령이 차 밖을 가리켜 보였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요. 일본에 궁녀이면서 시인인 사람이 있었는데, 오래 전 어린 시절이 얼마나 슬픈가에 관한 시를 썼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이 우리가 자랐던 이국의 땅과 같은 것이라고 했지요.”
“글쎄요, 대령님. 제게는 어린 시절이 낯선 이국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많은 점에서 저는 지금까지 어린 시절 속에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막 어린 시절을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지요.”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89-390쪽.
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0) | 2017.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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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5]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5주차 (0) | 2017.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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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2]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2주차 (0) | 2017.11.24 |
[과제1]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1주차 (0) | 2017.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