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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23 『다행히 졸업』中 김아정, 「환한 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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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창비 『다행히 졸업』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소책자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다행히 졸업』
김아정, 「환한 밤」
‘그 순간, 혀 밑에 숨어 있던 나방 한 마리가 포르르 날갯짓을 하며 뛰쳐나왔다. 나방이 날개를 파닥이며 차 안을 이리저리 헤집어 댔다. 놀란 엄마가 차창을 재빨리 내렸다. 나방이 운전석 창문 너머로 훨훨 날아올랐다. 갓길 옆에 서 있는 가로등에 마침 불이 반짝 들어왔다. 주변이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나방이 가로등 불빛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더없이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그렇게 환한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환한 밤」, 29쪽.)
9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연령의 작가들이 모여 자신의 학창시절을 르포문학에 가깝게재구해 낸 단편소설집 『다행히 졸업』중 2010년대의 학창시절을 그려낸 김아정 작가의 「환한 밤」을 먼저 접했다. 2010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로서는 단편집에 실린 아홉 편의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이 나의 학창시절과 가장 가깝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떠한 향수를 지니고 글줄을 읽어 내려갔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서울에서 할머니 댁인 강원도의 시골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고등학생인 주인공 ‘나’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열일곱 살 여고생들이 으레 그렇듯 이 작품의 ‘나’ 또한 청소년기에 갑작스럽게 생긴 가정형편의 변화로, 내면에 여러 생각과 고민을 품고 있으며 자신을 둘러싼 친구관계와 가족관계에 있어 내면을 드러내고 개방하는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난은 숨겨야 하는 대상이다. 제때 요금을 내지 못해 정지된 휴대폰, 물려 입은 교복, 판잣집에 거주하는 것. 주인공에게 이러한 모든 상황은 낯설고 숨겨야만 하는 ‘부끄러운’ 일들로 여겨진다. 주인공에게 이러한 이들이 부끄러이 여겨지는 것은 그러한 처지에 대한 환멸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것은 동급생들에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진다면 공동체에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가정보다도 학교에서 또래집단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학생들에게 있어 어떤 무리에, 친구들과의 관계에 소속/편입되지 못한다는 것은 곧 배제/배척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재희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왜 자꾸 거짓말하는데?’라는 재희의 말에 재희와 그 친구들을 피해 다니고 급식을 혼자 먹는 것은 ‘나’의 기저에 자리한 그런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엄마의 ‘급식 혼자 먹니?’라는 엄마의 말에 놀라며 엄마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의문을 지니고 초조해 하는 ‘나’의 모습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어머니에게까지 자신이 제대로 무리 속에 편입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불안을 전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자신의 있는 그대로가 수용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염려이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 제대로 대화를 해오지 않은 엄마의 모습에 이어 질문을 할 때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나’에게 있어 엄마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여기는 단서가 된다.
그러한 복잡한 마음을 품고 가출을 하게 되어 찾아간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야간의 학교이다. 야간의 학교를 기점으로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는 변화된다. 어둠으로 가득 찬 학교에서 ‘나’는 ‘영지’라는 친구와 함께 매점에서 외상을 하는 등 그 밤을 함께 보내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른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그 무언가를 공유하게 된다. ‘나’와 영지에게 있어 그 무언가란 나를 이해 할 수 있는 이들이 아무도 없는 어떠한 공간에서 벗어나 나를 이해하고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와의 관계 또한 전환된다. 학교에서 밤을 보내는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라는 어머니의 진심을 들으며 엄마와의 관계의 틈에 잘자리 했던 불안 또한 해소된다. 그 순간 본고의 서두에서 제시한 것처럼, 나방은 더없이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그렇게 환한 밤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작품 초반 무리 속에서 떨어져 나온 나방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며 묻어난 잿빛 ‘비늘가루’와는 확연히 대조적이다. 청소도구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나방은 다시 일어날 힘을 결코 내지 못했겠지만, 그 밤 교실의 청소도구함에서 빠져나온 나방은 다시 몸을 일으켜 날개를 퍼덕인다. 그리고 종국에는 더없이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환한 밤을 맞이한다. ‘나’가 어둠으로 가득 찬 학교에서 영지를 만난 이후 친구관계와 가족관계에 자리했던 불안이 모두 해소된 것처럼. 이와 같이 작품은 나방을 통해 ‘나’의 좌절과 성장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불꽃 주변으로 커다란 나방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녔다. 자기들끼리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며, 뭐가 그리 신나는지 펄쩍 뛰어오르며 주변을 맴돌았다. 그 순간 무리 중 하나가 튕겨 나와 유리창에 부딪히며 떨어졌다. 창문에 나방의 잿빛 비늘가루가 묻어났다. 나방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날개를 퍼덕였다. (「환한 밤」, 24쪽.)
결국 이 작품은 청소년 성장소설로서 그 의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온전히 청소년 환상소설로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따를지 모르나, 밤의 학교라는 통과제의적 공간을 통해 분리-전이-결합의 과정을 거쳐 ‘가치의 세계’를 획득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지와의 만남을 통해 ‘분리’되고 영지와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내면을 확장해 ‘전이’되며 학교에서의 밤을 보내고 가족관계와 친구관계에서 문제가 해소되는 점이 ‘결합’된다고 생각하면 결국 이 작품은 ‘나’가 어두운 학교에서 통과제의를 거치고 성장하는 서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환한 밤’과 같은 환상적 이미지를 통해 청소년기에 필요한 소통과 공감, 사랑의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달빛을 쫓아가다가 가로등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해 머무른다는 점에서 그들의 날갯짓이 무의미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두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만의 달빛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인다는 것 , 그리고 그 날갯짓을 통해 가치와 행복을 획득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9년 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을 거친 학생으로서, 그리고 현재 교직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으로서 청소년기에 자리할 수 있는 여러 어두움(가족 및 학교 내에서 관계로 인한 심리적 정서적 문제, 학습부진, 학교폭력 등 다양한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개별 학습자 한 명 한 명에 필요한 달빛을 제공 해 주는 것이야 말로, 교육의 진정한 역할임을 다시금 느낀다.
"길을 찾고 있는 거야. 원래 달빛을 쫓아가고 있었는데 가로등 불빛이 자꾸 밝아지면서 길을 잃고 만 거야. 다시 달빛을 쫓아 헤매다가 결국 가로등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하고 저렇게 되어 버렸지."
"다시 달빛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찾을 수 없지. 가로등 불빛이 꺼질 일도 없겠지만 애초에 달빛이라는 건 찾을 수 없어. 그냥 계속 찾아다니는 거지." (「환한 밤」,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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