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전문상담교사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차열음 작가과, 창비 출판사,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전국의 모든 동료 전문상담교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울은 때로 타고난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 내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애초에 우울의 뿌리를 찾았던 것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가족력과 같은 통제 불가 요인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나는 우울을 발현하게 한 또 다른 뿌리를 찾아야 했고, 상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6.

 

 

  차열음 작가의 에세이,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는 저자의 자기고백이 담긴 글이다. 이제는 20대 성인이 된 저자가 중학생 때 거식증과 우울증을 겪어내는 과정을 회상하며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가 경험한 청소년기 거식증과 우울증의 증상과 그 내면을 촘촘하게 서술하고 있어 거식증이 발현된 원인부터 우울과 관련된 가족력, 거식증에 이어 폭식증이 나타나면서 섭식장애의 양상을 지니게 된 촉발요인과 유지요인을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의사인 부모님을 두고 있던 열 네 살의 저자는 학업으로는 동생만큼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경험으로 인해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에 몰두하게 된다. 그 열 네 살 아이의 인정욕구가 다이어트와 외적인 미()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져 거식증이 발현한 것인데, 상담과 병원치료의 여정 중에서 급작스런 환경의 변화와(급작스럽게 결정된 전학) 교사 및 친구들로부터의 낙인 등의 선행사건들이 저자가 자살 시도와 자해 등 위기이슈로까지 나아간 일들이 160페이지 남짓의 짧은 책 속에 상세히 그려진다.

 평생을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독자로 살아왔으며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고 서평을 써 왔지만, 직업적인 이유로 속해있는 연구회 단톡방에서 서평단에 참여하게 된 것은 새로운 일이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왜 출판사에서 그 많은 교사들 중에서도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의 전문상담교사들이 읽고 서평을 쓰기를 가장 바랐는지 그제야 알 듯했다.

 이 책은 저자가 거식증과 우울증을 지나 성장해왔다는 내용의 자기 고백이 담긴 단순한 에세이임을 넘어서, 충분히 사랑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온전히 수용되는 무조건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그 경험을 갈구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짧은 교직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저자의 청소년기와 같이 그런 고통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들을 작년에 가장 많이 만났다.

 작년에 근무한 전임교는 내 전문상담교사 경력 중에서 아니, 교직 경력 중에서 가장 힘들었고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고통스러웠던 학교임이 틀림이 없다.

 위기관리위원회를 1년에 여덟 번 열었고,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돌아가는 학교의 4계절 중 자살시도만 최소 4(학기가 시작된 조금 후), 7(방학 직전), 8(2학기 개학 이후), 10, 12(2학기가 끝나가는 시점) 다섯 번 이상은 있었으니 말이다. 약물 과다복용, 투신 시도 등…….

 가장 많은 아이들이 약물을 과다복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상담교사로 상담을 하고 관련 위원회 업무를 맡아 준비해야 했던 나 역시도 반복되는 자살시도 사안에 많이 힘들었지만, 시도를 해야만 했던 아이들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지나는 와중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거겠지.

 저자의 글을 읽어내려가다보니 작년에 잠시나마 선생님도 힘들어, 제발, 살아만 있어줘, 라는 기도를 반복해서 올리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 대신 아이들이 시도를 결심할 용기를 내기 직전에 나를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야 하나...?

 

‘가방에는 집에서 몰래 훔쳐 온 수면제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어디선가 봤는데,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자는 듯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중략) 거식증이나 우울증 환자가 전보다 활력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은 쉽게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환자에게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정신적인 회복 전에 약과 식이 조절로 몸이 먼저 활력을 찾게 되면서 실제로 이 시기에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으나 마음먹은 것을 실행할 만큼의 몸의 기력은 생겼기 때문이다. ’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89.

 

 

 

‘언니 오빠들과 있다 보면 자유롭게 나는 것 같다가도, 공기가 없는 공중에 표류하는 것같이 숨이 턱 막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때 컴퍼스나 커터 칼 같은 것으로 손목을 그으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예전 학교에서 어울렸던 친구의 말이 맞았다. 그 친구의 팔뚝에는 늘 붉은 별이 그어져 있었다. 컴퍼스로 그은 별이었다. 아빠에게 맞아 화가 날 때마다 이렇게 하면 분이 풀린다던 그 친구의 말처럼 예리한 고통은 순간적인 쾌감이 되었다. (중략)
스트레스를 자해로 푼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우울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나름의 SOS 신호였던 것이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10-113.

 

 

 한편 저자가 거식증으로 인해 상담을 받는 장면을 그려내는 지점에서는 저자보다도 상담자의 발화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자살시도를 하고도 자퇴를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불안했고 아이들이 그들이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것처럼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도(거부하고도) 자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잘 꾸려 나갈 수 있을까, 병원 치료를 더 설득하고 내가 연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걱정하던 내게, 작년 4월 한 내담학생이 해 준 말이 떠오른다. 자살시도 이후 바로 연계와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조력했지만, 끝까지 자퇴를 고집하던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걱정만 하는데 왜 제가 잘 될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사실 지금의 내가 1년 전의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아이들이 학교에 기댔으면 좋겠고 할 수 있는 만큼 제도 안에서 상담과 치료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상담교사로서 상담을 하며 내가 만나는 내담학생에게 불안과 걱정을 티내거나 훈시하지 않고 저자가 만난 상담자처럼 따뜻하고 객관적이면서도 한 걸음을 늦추며 내담자에게 맞추는 상담자로 자리하고 싶다. 적어도, 다른 곳에 찾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Wee클래스에서 온전히 사랑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하러 편히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먹는 걸로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들을 때마다 짜증 나요.”
“그래, 선생님이 이따가 이야기해 둘게. 먹는 걸로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지.”
“사실 할머니는 더 심하긴 해요. 방까지 쫓아와서 먹이려고 하는데 짜증 나서 가출해 버리고 싶어요
.”
선생님과 있을 때는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좋았다.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먼 발걸음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상담실의 체중계와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0-51.

 

 

 

“이번 주 식단 일기는 지난주보다 빠진 부분이 많네. 식사를 거른 거야?”
“…….”
“뭐라고 하는 거 아냐. 그래도 시간은 맞춰서 먹기로 했었지? 먹고 싶은 만큼 조절해서 먹고, 먹은 것만 잘 적어 보자
.”
무리해서 다가오려는 엄마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아빠보다
모든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더 편했다.
사랑해서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가족보다 이성적인 타인이 때로 더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2.

 

 살기 위해 자해를 하고, 고통의 끝에서 조금 더 안전한 방법을 고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많은 아이들이, Wee클래스/Wee센터/병원/사설 상담센터, 그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그들에게 가장 가깝고 편한 곳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선생님도 한 사람이기에 많이 나약하고 부족하지만, 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고통은 당연하다고, 아픔을 느끼는 네 마음이 너무나 옳다고, 함께 길을 찾아보자고 손을 내밀고 곁에 머무르고 싶다.

 

‘너를 응원한다고, 작고 연약해진 너의 이런 모습마저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6.

 

 

‘물론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가 모든 우울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주벼에서도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병행했지만 호전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살아온 시간이, 삶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테니 문제를 벗어나는 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담과 약물을 통해 문제가 나아지는 경우도 있은 병원은 삶의 낭떠러지 앞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주요한 방법 주 하나임은 틀림없다.
정신 병원은 학교와 같다. 환자는 모두 학생이다. 그곳에서 스스로 마음을 진단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다음에 더 강인해질 수 있도록, 다음 우울엔 더 의연히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도움도 받아 본 사람이 청할 줄 안다. 우울도 겪어 본 사람이 이길 줄 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8-149.

 

 

 

 전문상담교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2023년을 잘 버텨 내고(수많은 위기사안들에 소진이 심해, 작년에는 블로그에 서평을 많이 써내지 못했다), 2024년 블로그에 올리게 된 첫 서평이 이 책이었기에 더욱 유의미하다고 여긴다.

 나는 학창시절 외로움을 느끼며 청소년기를 보냈고(당시에는 몰랐지만) Wee클래스가 부재하고 상담교사가 없던 시절 교과 선생님들의 지지와 격려 덕에 자라났기에 평생의 업()으로 교사를 목표로 하게 된 아이였다. 학부 시절 심리학을 복수전공할 때만 해도 내가 전문상담교사로 살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교직에의 첫 동기와 가장 밀접한, 전문상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도 상담을 받으며 나의 비합리적 신념을 수정하고자 노력하고(가령 상담교사로서 상담에서 실수하면 다 망할 것 같다는 비합리적 신념? 지난 주에 상담자분과 찾아봤는데 근거가 1도 없더라~) 자기 이해와 타인 이해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한 개인이지만,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상담을 경험하는 전문상담교사이기에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상담의 의미를 더 잘 전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저자의 학창시절을 넘어,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진실로, 함께 근무하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나누며,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잘 들여다보고 지원하면서 항상 상기하고픈 글이다.

 어렵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어 주신 차열음 작가님과, 창비출판사, Wee클래스와 Wee센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료 전문상담교사/전문상담사 선생님들께 다시금 깊은 감사를 전한다.

 

 

 

 

by papyros 2024. 4. 23. 01:29

 

 

 

 

#예스24 #이리스 #크레마 #크레마모티프 #ebookreader #ebookreaders #EbookReaderSociety #책 #독서 #이북리더기 #전자책 

 이리스 카페 덕분에 다양한 전자책을 접하며 그동안 많은 이북리더기를  사용해 왔다. 특히 과분하게도 교보문고 펜있샘 7.8 체험단으로 활동했던 것, 리디북스 페이퍼프로 사용기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리스와 함께 독서생활을 하고 전자책에 대해 배워나갈 수 있었던 덕택이었다.


 현재 소장중인 기기로 크레마카르타G, 오닉스포크3, 오닉스노바에어, 리디북스페이퍼4, 리디북스페이퍼3, 리디북스페이퍼1, 교보 펜있샘 7.8, 하이센스A5 등이 존재하고 크레마 그랑데와 크레마 사운드 역시 사용하다 중고로 판매한 적이 있다. 다른 전자기기들에 그렇게까지 욕심이 큰 편은 아닌데 책 욕심과 맞물리는 것인지 이상하게도 전자책 기기에는 욕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겨 처음 리디북스페이퍼1을 접한 이후 다양한 기기를 사용해 왔다.

 많은 리더기들을 사용해 보고 거쳐오기도 했지만 시중에 출시된 이북리더기들 중 특히 크레마 기기들은 여러 면에서 우수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출시되고 있는 가장 스펙좋은 ‘범용기’라는 점에서 크레마는 많은 이북리더기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전용기를 구입 할 경우 열린서재가 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으니.. 

 특히 이번에 출시되는 신기기 <크레마 모티프>는 강화유리 패널을 사용하고 있어 기존의 설탕액정에대한 우려와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강인함?이 있는 기기이기도 하고 범용기일 뿐 아니라 SD슬롯을 지원하니 이 얼마나 혜자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6인치 패널의 깔끔한 크기와 화이트의 매력은 나를 사로잡는다.

체험단에 선정된다면 그 어느 서평과 이전에 업로드 했던 그 어느 리더기 체험단 후기보다도 열과 성을 다해 체험단으로서 후기 남기겠습니다.. :) 
 독서생활을 함께하는 #이리스 와,  #Yes24 에 늘 감사합니다!

by papyros 2023. 4. 17. 23:41

백온유, 『경우 없는 세계』, 창비, 2023.

 

#경우없는세계 #백온유 #당신의경우 #창비 #성장소설 #청소년 #창비청소년문학 #서평단 #가제본서평단 #책 #독서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  ‘『경우 없는 세계』’ 가제본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백온유 작가님과, 창비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 게시물의 인용구 페이지는 정식 출간본과 차이가 있음을 밝힙니다.

 

 

 3년 전, 백온유 작가님의 소설 유원사전 서평단에 참여한 적이 있기도 하고, 청소년소설에 늘 관심을 두고 있는지라 금번에 출간 예정인 백온유 작가님의 신간 소설 경우 없는 세계서평단에 지원했다. 유원PTSD를 겪고 있는 개인의 상처 극복과 성장과정을 그린 작품이라면, 경우 없는 세계는 가출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내면과 아픈 성장과정을 청소년들 그 자신의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두 축은 ‘인수’와 ‘이호인데, 이미 성인이 된 인수가 가출청소년 이호를 만나면서 가출 청소년 시절을 겪은 바 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이호와 인수의 서사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이호의 경우 인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깊은 에피소드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청소년인 이호가 가출 이후 을 버는 방법은 스스로 가짜 교통사고를 내는 방식이었다. 다가오는 차량에 슬쩍 몸을 던지고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돈을 뜯어내는 방식. 그의 그런 방식들을 목격한 인수가 이호에게 손을 내밀며 이를 만류한다. 위험한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조처하고 이호를 자신의 집에 거두어 숙식을 제공한다. 덕분에 이호는 다른 친구들까지 인수의 집으로 데려오며 기거하게 된다.

이호에게 있어 인수는 그의 손을 잡고 도움을 주고자 한 유일한 어른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호와 달리 인수에게는 그런 어른이 없었던 것이 그의 청소년기를 아프고 곤란하게 했다.

 전문상담교사로서 소설을 읽으며 인수의 청소년기를 사례개념화해 보게 되었다.

 인수의 가출로 인한 심신의 고통을 주 호소문제로 보자면, 인수의 경우 의 가정폭력이 인수의 가출에 대한 직접적인 촉발요인인데, ‘유발요인으로는 진심어린 사랑이 부재한 가족환경, 의지되지 않는 에 대한 실망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인수가 가출 이후 집에 자신의 옷 여벌과 돈을 가지러 들어갔을 때 부모의 집에는 사랑을 받으며 먹이를 먹는 반려묘가 자리했으며 인수는 자신을 찾지 않는 대신 그 고양이에 투자하는 부모에게 서운함과 실망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수는 내심 늘 부모가 사랑으로 대해주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지니고 있었지만 부모는 늘 인수의 소망과는 대조적인 언행을 보인다.

 

 

강압적이며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몹시 엄격한 아버지가
내게 분노하는 지점은 너무나 다양하고도 변칙적이라
나는 지뢰밭을 걷는 심정으로 조심조심 살았다.


                                                                       -47쪽.

 

 

 ‘위험요인’(유지요인)으로서 인수가 가출생활을 지속하는 데는 가출생활 중 만난 친구들이 있는데, 특히 성연은 주목할 만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무리속에서 대장으로 자리하려고 하는 성연은 인수를 가까이한다. 성연은 그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가족들이 있지만 그 따뜻함 속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반면 인수는 걱정하고 아껴주는 가족들을 갈망하고 내심 부모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는데, 이처럼 대조적인 환경과 상황이지만 그들은 가출 청소년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 집이라는 공간 내에서 함께 가출 생활을 지속한다.

 

 보호요인으로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작품의 제목도 경우의 이름에서 기인하는데, ‘ 경우는 가출 청소년이지만 늘 규범과 규칙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보육원에서 자랐으나 언젠가는 자신을 만나러 와 줄 어머니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선을 넘는 행동을 삼가려는 경우는 인수가 다른 가출팸(‘우리 집이라고 불린다.) 친구들을 따라 선을 넘으려고 할 때 이를 적당히 제어해준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언젠가는 자신을 데리러 오려는 의지가 있다고 믿은 경우는 마치 사랑 받아 본아이처럼 보이며 구김살도 없어 보인다. 인수에게는 그런 경우야 말로 한편으로는 가장 부럽고 질투가 나는 대상이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의지하고 싶은 존재였을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그 자신이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으니 낯선 호의에 다소간 경계한 것도 당연했을지 모른다.

 

 왜 저 아이는 사랑받아본 아이처럼 행동할까. 나는 궁금해했다.
왜 처음에 경우의 존재에 대해 순수하게 감격하거나 감동하는 대신 의아해하고 얼마쯤 수상하게 여겼는지 지금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경우와 가장 친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오래 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우가 집을 구하고, 그애의 소원대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더라도(경우라면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때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두운 마음 한편에는 저렇게 가식적이고 답답한 애는 도무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애에게 과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며 경우에게 정을 떼기 위해 마음속으로 고군분투했다.

-253254.

 

 소설의 후반부, 인수가 성인이 되어서 만난 이호와 같이 그의 어린 시절에 만난 A라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가출팸 아이들은 무너지고 해체된다. A는 이호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해 차에 자기 몸을 던지는 일을 지속해온 아이인데, A가 죽던 그 날 밤 차에 깔리고 짓밟혀 마치 누군가에게 맞은 것 같이 보였던 그 소년은 결국 그 날 새벽 죽음을 맞이한다.

 

 그 죽음을 보고 가출팸 ‘우리 집 아이들은 이성이 마비되어 신고를 말리고 심지어는 사체를 산에 가서 매장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나는 그 아이들이 악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신고 후 따라올지 모르는 온갖 낙인이 두려웠으리라. 불필요한 오해가 두려웠으리라. 다시는 가족들이 자신을 찾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쌓였으리라.(막연한 희망의 좌절).

결국 사건이 드러나고 경찰 수사 및 법적 처분이 드러난 이후 인수와 혜연을 제외한 아이들은 8, 10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송치된다. 그 과정에서 인수는 유일하게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그의 가 자신의 재력을 통해 값비싼 변호사를 선임한 덕분에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으나 그런 아버지에게 질린(사랑과 걱정이 아닌 자신의 명예만 생각하는) 인수는 결국 집을 다시 나가게 된다.

 

 아버지에게 항변하고 싶었다. 저도 보통의 아이들처럼 순하게 살고 싶어요.
깨끗하고 단정하게 차려입고도 불편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싶은데요.
아빠한테 조금 더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거든요. 내 방에서 자고 싶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어요.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대신 분식집의 테이블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갑작스러운 행패에 당황한 분식집 아줌마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옆 테이블의 의자도 쓰러뜨렸다.
학생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분식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테이블 모서리에 발등이 찍힌 아버지가 윽, 하고 신음을 내뱉더니 곧장 몸을 일으켜 내 뺨을 힘껏 내리쳤다. 귀가 먹먹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덕에 재판장을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감동적이기보다는 너무나 견디기가 힘들었다.

 

- 244245.

 

 

보조인과 판사는 내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나만은 알고 있었다.
내가 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좁은 캐리어 안에 웅크린 자세로 굳어가던 A가 화석처럼 내 영혼에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추위에 시달리며 내가 외면한 A를 줄곧 앓고 있는 것이다.

 

-248.

 

 가출팸의 분명 비이성적이었고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정했으나,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싶다. 그들을 그렇게 내몬 것은 사랑과 관심, 따뜻한 손길을 표현하지 않은 어른들과 사회의 잘못이 아닐까. ‘ 경우가 가출팸의 그 어떤 아이보다도 인수에게 가장 큰 의지가 되는 존재였던 것처럼, 인수가 이호에게 기꺼이 집을 내주고 사랑과 걱정을 표현한 것처럼,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손을 잡아주고 사랑과 걱정, 진심을 표현하는(비록 혼을 내더라도 사랑을 담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다.) 존재 한명이 그들의 세계에 전부가 되는 것일지 모른다.

 인수, 이호, 경우, 성연........그들의 세계를 조금쯤 따뜻하고 평온하게 만들 수 있는 한 개인으로, 어른으로 자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린 나이에 그 외로움과 처절한 몸부림을 겪어낸 그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다.

 몰입감있고 가독성있어 편안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들의 서사를 따라가며 종국에는 다소간 무겁고 먹먹해진 이 책을 주변의 많은 어른들-특히 교사(교육자), 상담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한때 청소년이었던 나를 떠올리는 한편 전문상담교사로서 내가 만날 이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는아이들을 어떻게 상담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던 책이고,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작품이었다. 또한 작가님의 의도일지 모르겠으나....... 영상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영화로 제작되기를 소망해 본다.

 

 

 

죽을 때까지 안고 갈 비밀이라면, 아직도 종종 집 근처를 배회한다는 것.

일년에 한번쯤, 대체로 사람이 없는 늦은 밤을 노렸다.아버지는 주로 차를 지하 1층 주차장에 댔다.
술을 한병 먹고 낫 날카로운 자갈이나 열쇠로 몰래 아버지 차를 긁어놓고 재빨리 도망쳤다.
아버지가 홧김에라도 나를 찾아와 눈물이 날 만큼 혼쭐내는 상상을 했다.
옥탑방으로 쳐들어와 멀쩡한 집 놔두고 왜 밖에서 개고생이냐며 거친 손길로 대강의 짐을 챙겨 차에 태우는 상상도 했다.
반강제적으로 집으로 끌려 들어가 불편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서성대고 있으면 어머니는 감격한 표정으로 내 등을 감싸 안으리라.

그들은 내가 꿈속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나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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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의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느 쭈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뭐가.”
“누가 내 신발 끈 묶어주는 거요.”
나는 멈칫했다.
“어릴 때. 누군가가 묶어줬을 거야. 네가 기억 못할 뿐이지.”
나는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요.”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요.”

- 256257.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심연에서 바람이 휘돌며 서서히 내 몸을 녹였다.
이런 온기를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막상 따스함을 느끼니
내게는 이런 온기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워졌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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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yros 2023. 4. 1.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