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 '인권 감수성'이 부재한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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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다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왔다. 두 살 많은 이모는 이미 상경해 청계천 방직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같은 공장에 취직해 언니와 공장 언니들과 함께 두 평 남짓 벌집방에서 살게 됐다. 공장 동료들은 거의 또래의 여자아이들이었다. 나이도, 배움도, 집안 사정도 비슷비슷했다. 어린 여공들은 직장 생활이 원래 그런 건 줄 알고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일만 했다. 방직기계가 내뿜는 열기 때문에 덥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고, 안 그래도 짧은 스커트를 최대한 걷어 올리고 일을 해도 팔꿈치와 허벅지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뿌옇게 먼지가 날려 폐병을 얻는 이들도 많았다. 잠깨는 약을 수시로 삼켜 가며 누런 얼굴로 밤낮없이 일해서 받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은 대부분 오빠나 남동생들의 학비로 쓰였다.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딸들은 기꺼이 남자 형제들을 뒷바라지했다.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34-35.

 

 

 

  지난 817, 격주로 진행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조남주 작가님의 소설,82년생 김지영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시간을 가졌다.

 가정, 학교, 사회 그 모든 곳에서,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남성과는 다른,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드러난다.

성 불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지는 임신과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과 유리천장 문제만이 아니다. 저자는 김지영씨를 통해 학창시절의 출석번호에서부터 본질적 의문을 던진다. - ‘왜 남학생의 출석번호가 늘 여학생의 앞에 놓일까?’ -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 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이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46.

 

  ‘가계(家系)’를 잇고, ‘제사(祭祀)’를 받든다는 명목 하에서, 남아선호사상에 이어진 일상 속의 자연스러운 차별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관행처럼 다가온다. 김지영 씨를 첫 손님으로 태운 택시기사님의 불평,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부모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며느리, 어느 때고 도사리는 성범죄의 위험들 이는 비단 70-80년대에서 국한되는 과거가 아닌,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문제이다. 특히, 작품에 소개되는 김지영 씨가 겪은 일들 중 적어도 한 가지쯤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겪기 마련이라는 점은 씁쓸함을 낳는다.

최근 여성 인권이 신장되고, 성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 이러한 차별과 불평등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여성의 고등교육(대학교육)과 사회 활동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며, 고용할당제가 도입 되는 등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답보하고 있다. 추석을 앞둔 지금, 아직도 차례 음식 준비로 걱정하는 것은 여성(가정주부) - 어머니-들의 몫이며, 가사노동과 육아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최근 여성의 병역 의무와 관련된 청원이 기사화되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는데, ‘의무를 논하기에 앞서 여성들에 대한 평등이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의 개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사회적 성찰과 논의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의식적으로라도 가사와 육아 전담, 임신과 출산에 따르는 고용 불안정(경력단절과 유리천장)과 피임 등 생명에 관한 문제를 공동의 책임이 아닌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바깥 일 하는 사람이라는 데에 방점을 두며 일방적 권위를 가지려 했던 것은 아닌지.

 

  손목 많이 쓰지 말고 잘 쉬어. 어쩔 수 없지 뭐.”

애 보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손목을 안 쓸 수가 없어요.”

김지영 씨가 푸념하듯 낮게 말하자 할아버지 의사는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 걸까.

 의사는 모니터에 쓴 김지영 씨의 이전 치료 기록들을 흝어 본 후, 모유 수유를 해도 괜찮은 약들로 처방하겠다고 말하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148-149.

 

 결국 여성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의 핵심은 내 일이 아니라는무관심과 공감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김지영 씨의 남편 정대현 씨를 통해, 그리고 소설의 결말부 정신과 의사의 언행을 통해 이 점이 분명히 재확인된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145-146.

 

  그냥 하나 낳자. 어차피 언젠가 낳을 텐데 싫은 소리 참을 거 없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낳아서 키우자.” 정대현 씨는 마치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자, 라든가 클림트의 키스퍼즐 액자를 걸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말했다. 적어도 김지영 씨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135.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중략)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174-175.

 

 

  결말에서 보이듯 자신의 아내가 육아문제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내담자인 김지영씨의 어려움과 아픔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정작 직장 내 여성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그것이 차별인지도 모른 채 자연스레 행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의 언행은 씁쓸함을 낳는 한편 또한 작품의 현실성을 증대하는 역할을 한다. 가족, 친척, 친구 등 가까운 사람의 차별에는 문제를 인식하고 공감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일상과 사회 속에서 행하고 있는 만연한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실 파편화되고 분절된 현대 사회 안에서 타인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다. 그러나 문제를 인식하는 데에서 나아가 공감과 변화를 위한 실천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근본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다는 건, 그런 짓을 용서해 줄 이유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대표님 생각부터 고치세요. 그런 가치관으로 계속 사회생활하시다가는 이번 일 운 좋게 넘기더라도 비슷한 일 또 터집니다. 그동안 성희롱 예방 교육 제대로 안 한 건, 아시죠?”

  사실 김은실 팀장도 두렵고 지쳐 있었다. 김은실 팀장도, 강혜수 씨도, 함께 고민하고 있는 피해자들 모두 일이 빨리 마무리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156.

 

  작품에서 유일하게 공감과 실천적 노력을 병행하는 이가 바로 김은실 팀장이다. 물론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당연한 권리까지도 포기하는 모습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김은실 팀장은 자신의 일이 아닌, 김지영씨의 일임에도 두려움과 피해를 감수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저항하기까지 한다.

여성/남성을 막론하고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반응하기 위해서는 약자(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인권감수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유년시절부터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명교육 공감능력의 교육 가치관의 질서를 확립하는 교육(인격교육)을 우선하는 교육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특히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 발레리노’(발레를 하는 남성)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에 대해 논의하거나 <앨저넌에게 꽃을>과 같은 문학작품을 읽고 지적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 등을 떠올리는 등, 이 과정에서 좋은 문학작품과 영화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이러한 교육방법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한다.

  92년생인 내가 지금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내가 경험한 여성에 대한 차별에 고개를 끄덕이며 결혼 이후 찾아올 수 있는 육아 문제 등에 대해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것과는 달리, 2002년생, 2012년생이 20, 30대가 되어 이 소설을 읽을 때 즈음에는 이런 시대도 있었냐며 반문하는 사회가 되기를 진실로 소망한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132.

 

 

 

 

by papyros 2017. 9. 2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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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게시물은  창비 책읽는당 『아몬드 사전 서평단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출간 전 비매품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손원평, 아몬드』, 창비, 2017.

 

*본문의 인용구 페이지는 출간된 도서를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위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애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아몬드는 어딘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 손원평, 아몬드, 29.

 

이 작품에는 편도체-아미그달라의 이상으로 감정-특히 공포나 불안, 두려움 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조금 특별한 17세 소년 윤재(선윤재)의 성장과정이 그려져 있다. 유년 시절 눈앞에서 한 아이의 죽음을 보고도,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윤재의 열일곱 생일날 한 남자의 무차별 살인으로 인해 갑작스레 닥친 할멈(할머니)의 죽음과 칼에 찔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도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윤재를, 사람들은 마치 이상한 괴물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대한다.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으로 인해 학교에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윤재의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윤재가 정상적인’, ‘평범한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감정과 감정의 반응에 대해 교육시켜왔다.

‘- 복잡한 것까진 몰라도, 기본은 꼭 알아야 해. 그렇게만 해도 조금 메말랐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정상범주에 속할 거야.

사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 손원평, 아몬드, 38.

 

 

- 엄마도 네가 이렇게 지내는 걸 원하시지는 않았을 거다.

- 엄만 제가정상적으로 살길 원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 바꾸어 말하면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 평범…….

내가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같은 것. 굴곡 없이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얻고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 튀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

-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이루기 가장 어려운 가치란다.

- 손원평, 아몬드, 89-90.

 

 한편 곤이(윤이수) 또한 윤재와 같이 사람들에게서 괴물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곤이는 유년 시절 놀이동산에서 부모님과 헤어져 이후 보호시설에서 지내다 입양 후 다시 파양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여러번 사고를 쳐 소년원에 들락거리는 삶을 살아가 부모님을 다시 만난다. 걸핏하면 폭력을 휘드르고, 교사들의 수업 진행을 방해하거나 잦은 욕설을 사용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곤이는 소위 문제아로 불리며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윤재는 비록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할지언정 그 누구보다도 타인과 소통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독서량이 풍부해 지식이 많을뿐더러 성장과정에서 할멈과 엄마로부터 받은 충만한 사랑을 늘 추억하고 있다.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 손원평, 아몬드, 171-172.

 

 

곤이 또한 그가 정말 천성이 나쁜아이라서, 폭력을 행사하고 반항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찾지 못한 후 곤이는 여러 번 거처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파양당하며 버려진 경험이 있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부모님을 찾았지만 친어머니의 임종도 떳떳하게 보지 못했고 , 아버지는 자신과 소통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버려지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내적 자아를 지니고 있는 곤이는 다시 고통 받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강해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만 그 강함을 어른들이 규정해 둔 세계에 반항하고 질서를 위반하는 과시적 욕구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곤이가 신뢰할 만한 어른들에게, 혹은 학교/청소년상담사와 상담을 받으며 유기되는 것에 대한 불안’, ‘이해와 소통의 욕구를 해소한다면 곤이의 문제행동 또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고통이라는 감정에 공감하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나비의 날개를 찢으면서까지 윤재와 소통하고자 하는 장면을 통해 곤이의 진실성과 순수성 또한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윤재의 내면을 이해하며 곤이를 좋은 아이라고 바라보는 것은 윤재뿐이다. 바로 그 때문에 곤이는 윤재와 단 둘이 있을 때만은 다른 누구에게 보이지 않는 속마음을 깊이 터놓을 수 있었다.

 

 

- 그 남자는 말이야…….

곤이가 말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그 사람이 날 만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 강남에 있는 학교에 날 처넣은 거였어. 거기 가면 내가 모범적으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라도 갈 줄 알았나봐. 근데 첫날 가보니까 나 같은 놈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물인거야. 날 보는 눈빛 하나하나에 그렇게 써있더라고. 그래서 깽판을 좀 쳐 줬지. 거긴 얄짤 없더라. 하루 만에 쫓겨났어.

곤이가 콧바람을 불었다.

간신히 전학시킨 게 여기야. 그나마 인문계라 체면은 섰겠지.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 손원평, 아몬드, 166-167.

 

 

불과 몇 달 전의 기억이 아련하게 머릿속을 오갔다. 나비의 날개를 찢던 날, 곤이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다가 실패한 그날, 어스름이 내리던 무렵, 바닥에 짓이겨진 나비의 잔해를 닦아 내며 곤이는 몹시 울었다.

- 아무런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싶어.

눈물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조금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기엔 넌 너무 감정이 풍부하거든. 넌 차라리 화가나 음악가가 되는 편이 더 어울릴걸.

곤이가 웃었다. 물기 어린 웃음을.

- 손원평, 아몬드, 248.

 

 

윤재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과 곤이의 마음 깊은 곳 진실한 내면을 바라보면서, 한 개인이 지닌 외적인 부분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해 그 내면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성급히 낙인찍는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는 중요한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특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음에도 타인의 고통, 타인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나서서 돕기보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범인凡人들과 달리 윤재는 곤이가 위험에 마주했을 때 진심을 전하고 곤이를 구해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 직접 위험과 대면하는 용기를 보인다.

즉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편도체의 크기와 같은 장애나 질환, 혹은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한계로 인해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삶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실천하느냐의 문제에 달려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실직(해고)된 노동자 등 사회 문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한다는 문제도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공감하는 마음을 그저 마음에만 품고 있지 않고 실천적 행동으로 옮기는 것. 나 또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행인 중 한명이 아니었던가 싶은 마음에 부끄러워진다.

 

 

내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처음엔 할멈을 찌른 남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점차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중략)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엄마와 할멈을 뻔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것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당시 성가대원 중 한 사람이 했던 인터뷰가 뇌리에 떠다녔다. 남자의기세가 너무나 격렬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손원평, 아몬드, 244-245.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가 칼에 찔린 그 사건 뒤로 심박사에게 삶의 조언을 얻고, 곤이와 소통하며 진실한 우정을 배우고 고통과 두려움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통찰했으며 도라(이도라)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깨달을 뿐 아니라, 특별한 존재가 된 도라에게는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내밀한 마음을 고백한다.

 

 

불을 끄고 책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겐 풍경처럼 익숙한 냄새였다. 그런데 거기 무언가 다른 게 실려 있었다. 갑자기 마음속에 탁, 하고 작은 불씨가 켜졌다. 행간을 알고 싶었다. 작가들이 써 놓은 글의 의미를 정말 알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깊은 얘기를 나누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왔다. 도라였다.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말하고 싶었다. 마음에 떠오른 불씨가 꺼지기 전에.

- 나 언젠간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 도라의 눈망을이 뺨을 간질였다.

- 나도 이해 못하는 나를,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 이해.

- 손원평, 아몬드, 206-207.

 

 

즉 기존의 세계에서 가족을 상실한 후 새로운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결과적으로 윤재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도 기적적으로 회복되며 마무리된다. 편도체의 문제로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평가하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의사들의 확정적 진단을 넘어서 윤재의 소통하고 이해하며 진심을 다하고자 하는 내면의 노력이 결국 뇌(편도체)의 문제를 극복해낸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야, 사람의 머리란 생각보다 묘한 놈이거든.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사가 웃었다.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나는 곤이와 도라와 함께 보낸 지난 몇 개월을 짧게 회상했다. 그리고 곤이가 후자로 자라고 변하기를 바랐다. 그 전에 좋은 방향이 어떤 것인지부터 고민해야겠지만.

- 손원평, 아몬드, 252-253.

 

책장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너무나 마음을 울리는 문구들이 많았던 이 소설은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 우정, 고통과 두려움, 불안 등 감정들을 다룰 뿐 아니라 진정한 공감이란 실천적 행동의 수반에 있음을, 그리고 삶의 좋은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찾은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을 위해 노력해 나갈 때 변화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좋은 방향을 고민하며 그저 달리는 개개인 모두의 삶이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이 소설을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청소년들, 새로운 관계를 마주하며 청소년기에 마주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변화와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청년들, 외적인 문제행동만으로 학습자(청소년)들을 쉽게 낙인찍으려하는 일부 교사들을 비롯해 선입견을 지니고 타인을 바라보는 어른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이들……. 그들 모두와 함께 읽고 소통하며 성장해나가고 싶다. 삶을 살아가며 그 삶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는 만큼, 자신이 느끼는 것 그대로 행동하는 만큼 어느 새 한 발짝 나아가 있을 것이다.

 

누워있는 동안 같은 꿈을 자주 꿨다. 운동회가 한창인 운동장이다.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태양 아래 나와 곤이가 서 있다. 무척 뜨겁다. 앞에서 달리기 시합이 펼쳐지고 있다. 곤이가 씩 웃으며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준다. 손을 펼치자, 반투명한 구슬이 손바닥 위를 또르르 구른다. 중간에 웃는 표정 같은 둥근 선이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구슬을 굴리자 붉은 선이 방향을 바꾸며 울었다 웃었다 한다. 자두 맛 사탕이다. 사탕을 입안에 넣는다. 달콤하고 새콤하다. 침이 고인다. 혀로 사탕을 굴린다. 이따금씩 사탕이 이빨과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낸다. 갑자기 혀가 저릿하다. 짭짜름하고 시큰하다. 비리기도 하고 쓰기도 하다. 그 사이로 다디단 향이 올라와 나는 정신없이 코를 킁킁댄다.

, 어디선가 출발 신호가 공기를 울린다. 우리는 지면을 밀어내며 달리기 시작한다. 시합이아니라, 그저 달리기다. 우린 그냥 몸이 공기를 가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 손원평, 아몬드, 249-250.

 

 

 

여기서부터는 아주 다른 얘기다. 새롭고, 알 수 없는.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 따윈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일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 손원평, 아몬드, 258-259.

 

 

 

 

 

 

 

 

by papyros 2017. 4. 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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