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마르탱 뒤 가르, 『회색 노트,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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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민음사' 첫 번째 독자 (7월) : 민음북클럽 서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민음사와 민음북클럽 담당자님께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련링크 : http://minumsa.com/event/30529/)

 

 

 


 

 

 『회색노트』는 민음사 홈페이지에서 7월의 첫 번째 독자서평 프로그램 공고가 올라왔을 때 가장 눈길이 간 제목이었다. 12년 전, 중학 3학년 시절 지금까지도 안부를 여쭙고 종종 뵙곤 하는 국어과목 은사님께서 내게 직접 추천해 주신 책이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소설이긴 하지만 아마 네가 좋아할 만한 책일 것이라고.

 당시의 나는 아마 헤세와 김탁환 작가, 그리고 독서토론 수업에서 읽던 책들이 우선되었는지 언젠가 선생님께서 권해주신 책을 읽어보아야겠다고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고,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특히 도서 정보를 확인하니 두 소년의 우정과 성장, 교육에 대한 화두가 작품 속에 다루어져 있다고 하여 교육자를 목표로 정진하는 이로서, 도서를 접하기 전부터 기대가 매우 컸던 바이다.

 왜인지회색노트라는 도서를 이미 소장중이었던 것 같아, 방을 살펴보니 언젠가 이사를 가시며 장서를 정리한 이웃분의 서가에서, 그리고 헌책방에서 판매하던 책 각기 다른 출판사의 회색노트서적이 총 두 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회색노트라는 책이 뇌리에 남았고 마음 한켠에 항상 읽어야 할 책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을 수령한 뒤 깔끔한 책 표지에 매료되었고, 책 속에 금방 몰입될 수 있었다. 책을 완독한 후에는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크와 다니엘의 우정이 마치 헤르만 헤세의 작품 속에 나오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우정 같기도 하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우정 같기도 하고. 또한 일전에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에 등장한 소년들의 우정도 생각났다.

 헤세의 작품, 프레드 울만의 작품, 그리고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자크와 다니엘의 우정에 공통적인 속성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청소년기(사춘기)를 보내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동경을 기반으로 우정을 가꿔나갔다는 것이다. 그러한 동경이 마치 열망처럼 느껴지다보니 마치 우정을 넘어 사랑과 같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동경.

 기실 그러한 동경은 자신의 내면이나 외적 환경에 부재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일수록 더욱 강렬하기 마련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서로 이성과 감성의 속성을 부러워하듯. 자크와 다니엘 또한 다니엘은 그가 가지지 못한 자크의 열망과 감수성에, 자크는 그가 가지지 못한 다니엘의 모범적이고 이성적인 면에 이끌렸기에, 서로가 친구의 소망을 이해해 주는 존재였기에 그들이 그토록 오랜 기간 교사들의 눈을 피해 회색 노트에 시를 통해 마음을 터놓고 강렬한 우정을 나눈 것이 아니었을까.

 

  자크는 가톨릭 학교의 준기숙생이며, 종교적 생활 형식을 중요시하는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또 한번 뛰어넘어본다는 쾌감 때문에 이 프로테스탄트 소년의 관심을 사려고 했다. 그는 그 소년을 통해 자기의 세계와는 대립되는 세계를 이미 예감했다. 그리고 몇 주일 안 가서 그들의 우정은 불길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변했으며, 각자 자신도 모르게 괴로워하고 있던 정신적인 고독에 대한 위로를 상대방에게서 찾아내게 된 것이다. 청순한 사랑, 신비한 사랑, 그 속에서 그들의 청춘은 미래를 향해 똑같은 설렘으로 융합되었다. 그들 열네 살짜리 소년의 마음을 휩쓸던 격렬하면서도 서로 모순되는 온갖 감정, 누에 키우기나 글자 맞추기 놀이에 대한 열정에서부터 그들 내부의 은근한 비밀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삶에 대한 열광적인 호기심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정이 두 소년에게 공통되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91-92.

 

 

 

 

 그러나 기실 그들이 가출을 하게 된 가장 강력한 배경은 그들의 강렬한 우정보다도 가정, 학교, 사회의 환경이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 여겨진다. 현대에 와서는 이미 고전(古典)으로 널리 읽히는 루소의 참회록을 금기시하는 시대적 분위기(교육환경), 유명 정치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자크를 과도하게 보호하고 통제하려 하는 교사들의 태도, 그리고 시를 짓는 아들의 감수성과 관심사에 무관심한 가족환경(형을 제외하고). 자크가 가장 애정을 지니고 있는 친구와 함께 그러한 학교와 가족환경에서 탈출하고 싶어했던 마음이 충분히 공감될 만큼 자크의 성장에 외부 환경은 매우 억압적이었다. 다니엘의 경우 같은 사회적 환경(교육환경)을 지니고 있었으나 자크와 다니엘의 가족환경이 가출 이후 그들의 삶에 결정적 차이를 빚은 것으로 보인다.

 

 

 

 

 늘 아들 다니엘을 신뢰하고 필요한 순간엔 그녀의 아들과 딸을 보호하고자 강인해지고 단호한 결정을 내리던  퐁타냉 부인. 특히 그녀가 아들의 노트를 증거물이라며 제시하는 비노 신부의 행동에 보인 언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녀가 아들을 마음 깊이 신뢰하고 독립된 인격으로서 아들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부모의 태도라고 느꼈기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로 그러한 어머니가 있기에, 타인을 존중하는 어머니가 있기에 소중한 친구의 제안을 수락하여 함께 가출하긴 하였으나 가출 기간 동안 내내 어머니를 그리며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러분, 저는 단 한 줄의 글도 읽지 않겠어요. 그 애의 비밀이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애 모르게 폭로되고, 그 애에게는 변명할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다니요! 전 그 애에게 이런 대우를 받도록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38-39.

 

 

 

 

 

 다니엘은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었을까? 부인은 늘 하던 버릇대로 뜨거운 차를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차에서 무럭무럭 올라오는 김 속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불빛을 등진 그 얼굴은 확실히 좀 피로해 보이기는 했지만 언제나 보아 온 그 얼굴이었다! , 이 미소, 이 오랜 눈길…….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29.

 

 

 

  주님은 언젠가는 남편이 선의의 길로 가도록 그를 돕게 하려고 방종한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선량한 마음을 가진 이 죄이 곁에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닐까? 아니다. 급선무는 가정과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다. 그녀의 생각이 천천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자신이 더 굳센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제롬이 없는 동안에 기도로써 밝혀진 그녀의 마음속에 내린 판단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38.

 

 

 

 

 

 

 

 

 한편 자크는 비록 젊은 의사인 형, 앙투안이 그나마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좋은 형제이긴 하지만 앙투안을 제외하고서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이가 가족 내에 없었을뿐더러, 아버지 티보씨의 엄격한 통제와 억압에 내몰리고 있었다. 특히 유력가 집안의 후손이고 정치인인 티보씨로서는 그의 아들을 엄격히 교육해 제대로 성장하게 하여 가문의 명예를 지켜나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티보씨가 자크에게 엄한 아버지였으며 아들의 관심사에 무심했을지 모르나, 그 또한 악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속으로는 아들이 달려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아들을 위해 그리스도께 기도를 바치는 신실한 신앙인이자 나약한 한 개인이었다. 티보씨가 조금만 더 그의 아들이 무엇에 흥미를 갖고 관심을 보이는지, 힘든 점은 무엇인지 감정을 잘 헤아리고 보살폈다면, 아니- 자크가 가출 후 귀환했을 때라도 아버지로서 진심을 비추어 그를 어루만져주고 아들을 반기었다면, 자크의 비극적인 선택을 결심하게 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자크를 보는 순간 티보 씨는 마음의 동요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응접실에 그 복사판이 걸려 있는 그뢰즈의 그림처럼 죄지은 이들이 그의 무릎 앞으로 달려와 엎드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은 감히 그러지 못했다. 서재 역시 꼭 잔칫날처럼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그때 마침 부엌 문앞에 두 하녀가 나타났으며, 더구나 티보 씨는 저녁에 입는 가벼운 재킷을 걸치고 있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 모든 예사롭지 않은 광경이 자크를 마비시켜버렸다. 자크는 유모의 품에서 빠져나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자기도 모르는 그 무엇을 기다리면서, 울고 싶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한 심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서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그토록 애정이 복받쳐 있었다!

 그러나 티보 씨의 첫마디는 그를 이미 이 가정에서 쫓아내 버리기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자크가 보인 그 태도가 관대해지려던 티보 씨의 생각을 단번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는 그대로 버티고 서 있는 아들놈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기 위해 철저하게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 너 왔구나.” 그는 앙투안만 보며 말했다.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거기 일은 다 제대로 되었느냐?” 그가 내민 나른한 손을 잡은 앙투안으로부터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나자 이렇게 말했다. “고맙다, 얘야. 나 대신 그런 일을 처리해 줘서……. 그런 창피한 일을!”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때까지도 죄 지은 아들이 달려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하녀들을 흘끗 쳐다보고 나서 다시 자크를 쳐다보았다. 자크는 우울한 표정으로 양탄자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티보 씨는 결정적으로 화난 말투로 말했다.

 “다시는 그런 추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일 당장 방침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51-152.

 

 

  그곳에서 홀로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 이 뚱뚱한 신사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얼굴에서는 피로의 가면이 벗겨져 내리는 것 같았고, 얼굴 윤곽이 소박한 표정으로 변하여 어렸을 때의 사진 속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다. 그는 기도대 앞으로 다가가 몸을 던져 무릎을 꿇었다. 그는 두툼한 두 손을 익숙한 몸짓으로 재빨리 마주 잡았다. 이곳에서의 그의 일거일동에는 무엇인가 편안하고 비밀스러운 자기 혼자만의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생기 없는 얼굴을 들었다. 지금 하느님에게 자신의 실망과 이 새로운 시련을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부터 모든 원한을 풀어 버린 그는 지금 아버지로서 길 잃은 자식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기도대 아래에 있는 종교 서적들 틈에서 묵주를 꺼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53-154.

 

 

 

 

 

 자크의 모습에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한스 기벤라트가 겹쳐보였다. 한스 기벤라트 또한 학업에 내몰린 교육적 환경 속에서 고되고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못하며 힘든 길을 지나가다가 종국에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그에게도 마지막 과수원에서 만난 이의 손길이 있었다면 다른 선택지가 열렸을지도 모른다. 굳이 문학작품에서 찾지 아니하더라도, 사도세자의 비극은 또 어떠한가. 사도세자 또한 지나치게 엄한 부친 영조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을 옹송그리며살다가 병에 걸리지 않았던가.

결국 문학작품 속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성장 중에 내면의 생각과 가치와 사회체계의 가치 사이에서 여러모로 혼란을 겪고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할까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재능과 개성, 관심사와 선호에 반하는 것들을 억압하면서 무언가를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경청으로 그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격려하는 것.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바로잡아야할 인격체가 아니라 고유한 개성을 가진 동등한 인격 으로서 대우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교육(敎育)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기실회색노트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8부작 장편소설 티보 가의 사람들의 서두가 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학교교육의 불합리성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가출을 결행하는 자크와 앙투안의 행동 속에는 그들의 가정환경 뿐 아니라 신교에 대한 가톨릭(구교)의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 또한 배경으로 등장했는데, 회색노트이후 앙투안의 내면과 삶, 티보씨의 행동들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스포가 될지 모르겠으나 검색중에 알게 되었는데, 결국 자크는 비극적인 선택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으나 이를 결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좋은 작가를 마주하고 앞으로 완독하고픈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되어 진실로 기쁘고 이후의 서사가 참으로 기대된다.

 

 회색노트는 나의 내면에 경종을 울리는, 짧고도 굵은 단편이자 장편소설 티보 가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알리는 긴 여정의 출발점과 같은 작품으로 남았다.

 

 

 

 


 

 

 

 

by papyros 2018. 8. 30. 15:06

[과제5] 제5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5주차

 

피천득, 『인연,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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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5주차에는 수필집의

「은전 한 닢」(226p)에서부터 시작해,  작품집 후기로 등장한 박준, 박완서 시인과 피천득 시인의 장남인 의사 피수영 선생님께서 피천득 시인께 보내는 애정어린 고백 내지 서편을 지나,「작가연보」(295p)까지 읽어내려갔다.

 

 

 

 

 『인연이라는 한 권의 수필집을 모두 완독한 주차인 만큼,  많은 소회가 밀려왔다. 5주라는 기간동안 읽어온 피천득 시인의 여러 수필들을 통해 느껴지는 그분의 가치관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시인이자 수필가로서의 피천득', '소박한 한 개인으로서의 피천득'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특히 5주차에 읽은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순례, 여린마음, 기도, 우정, 만년 과 같은 작품들이 가장 마음속에 남았다.

 

  순례에서는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읽고 그 문학작품을 현실, 외부세계에서 재인식하여 여러 감정과 가치, 생각에로 뻗어나가는 과정이 하나의 '순례'와 같다고 표현하신 부분이 참으로 마음에 많이 남았다. 나 또한 헤세를 통해 독일 교양소설 내지 성장소설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김탁환 작가님을 통해 백탑파 실학자들을 알아가게되었듯이, 문학은 다른 문학작품으로, 그리고 또다른 외부의 사람이나 사물로 끊임없이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는 데 진실로 공감했다.

 

 

 

 

 나는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문학은 낯익은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여 나를 풍유(豐裕)하게 하여  준다. 구름과 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눈, 비, 바람, 가지가지의 자연 현상을 허술하게 놓쳐 버리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여 준다. 도연명을 읽은 뒤에 국화를 더 좋아하게 되고 워즈워스의 시를 왼 뒤에 수선화를 더 아끼게 되었다. 운곡(耘谷)의 「눈 맞아 휘어진 대」를 알기에 대나무를 다시 보게 되고, 백화나무를 눈여겨보게 된 것은 시인 프로스트를 안 후부터이다.

 바이런의 소네트가 아니라면 쉬옹의 감옥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요, 수십 년 전에 내가 크레인의 「다리()」를 읽지 않았던들 작년에 본 뉴욕의 브루클린 브리지가 그렇게까지 아름답게 보였을까.

 

- 피천득, 「순례」, 『인연』, 민음사, 2018, 239쪽.

 

 

 

 여린마음에서는 한 사람으로서의 모든 개개인들에 대한 신뢰가 인상적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 팽배해질수록 개개인 간의 불신이 심해지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주의적인 모습이 자주 발견되는데도 불구하고, 피천득 선생님께서는 보편적인 대다수의 소시민들이 지닌 '정'에 대해 강한 믿음을 지니시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품어내셨다. 이 부분이 인상깊었던 것이, 실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사이 우리 내면에 깊은 정(情)과 선(善) 등의 가치가 있는데, 다른 가치를 추구하려다가 이렇듯 중요한 가치를 자주 잊고 산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광주민주화운동 또한 지역 시민사회의 깊은 연대와 유대로 이어져 있던 것이 아니었는가. 몇년 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우리가 울고 웃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본시 연한 정으로 만들어 졌다. 이런 연민의 정은 냉혹한 풍자보다 귀하다.

 소월도 쇼팽도 센티멘털리스트였다.

 우리 모두 여린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인생은 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 피천득, 「여린마음」, 『인연』, 민음사, 2018, 254쪽.

 

 

 기도는 이미 어머니 뱃속으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지녀온 신자이기에 더욱 와 닿았던 수필인지도 모르겠으나, 나 자신의 물질적 복락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아닌 그저 마음을 비운 진실성 있는 기도, 인격적 성장과 내면의 행복과 지혜를 추구하는 기도가 더욱 의미있는 기도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하고 우리는 기도의 끝을 맺습니다. 어찌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 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타고르의  「기탄잘리」의 한 대목이 있습니다. "저의 기쁨과 슬픔을 수월하게 견딜 수 있는 그 힘을 저에게 주옵소서."

 내가 읽은 짧고 감명 깊은 기도가 있으니 "저희를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 피천득, 「기도」, 『인연』, 민음사, 2018, 260-261쪽.

 

  우정」과 만년에서는 오랜기간 지속되는 벗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우정」에서 우정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한 바, 벗 사이의 비극은 '이별'이 아니라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데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만년」의 마지막 문단이 마음 깊이 와 닿았다. 나이가 점차 들어감에 따라 실질적으로 자주 교류할 수 있는 벗들이 점차 적어지겠으나, 마음 깊이 연결되어 있다면, 말과 행동으로, 그리고 글로 그 사랑을 마음 깊이 전한 사람이라면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기에.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 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익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 피천득, 「만년晩年」, 『인연』, 민음사, 2018, 282-283쪽.

 

 

 

 

  5주간 피천득 시인의 수필을 통해 피천득 시인을 간접적으로 마주해 왔다. 5주간 꾸준히 정독하고 필사하며 느낀 바, 피천득 시인은 참으로 겸허하고 소박하며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있는 분이셨다. 학부 시절 모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윤동주 시인의 내면이 다른 그 어떤 이들보다도 더 깨끗했으며 한 점 부끄럽지 않았기에 그만큼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즉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 더욱 겸허하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마주한 피천득 시인도 그러하다. 시와 수필을 통해 진정 중요한 가치를 담아내시고, 독자들, 제자들이 그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해 줄 수 있는 선한 마음과 공감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셨음이 느껴진다. 이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많이 사랑하셨고 그렇기에 사랑하는 이들이 잘못되거나 떠나가는 듯 보일 때 아파하고 외로워하셨을 피천득 시인...

 그렇기에 수필집을 읽으며 나의 내면도 안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일까.

 

 

 박준 시인의 발문에 이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있다고 여긴다. 언젠가 피천득 시인의 수필과 시들로 문학치료 수업을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독서모임에서도 함께 읽고 싶다.

 피천득 시인의 인연』을 통해, 나도 또다른 누군가와,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좋은 문학작품과 좋은 인연을 맺기를 진실로 소망하게 되는 밤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상처들이 점처럼 찍혀 있고 물론 저에게도 숨겨지지 않는 큰 점같은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의 글은 사람의 상처와 얼마나 마주해야 할까요. 아니 꼭 글을 쓰지 않더라도 말을 뱉거나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어떻게 직면하거나 외면해야 할까요. 조선 땅에서 태어나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나온 선생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더욱 자주 가지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해법을 이미 알고 계셨다고도 생각합니다. 

  『인연』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시작은 분명 외로움이나 슬픔인데 아무도 외롭지 않게 그리고 아무도 슬프지 않게 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선생님 특유의 천진과 소박은 그 여정에서 줄곧 가장 큰 빛을 내고 있고요. 아마 선생님이 화가였다면 그의 옆으로 가서 초상을 그리셨을 것입니다. 점이 보이지 않는 옆모습을 그린다고 해서 소흘히 하거나 왜곡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옆모습을 그리고 있노라면 어느새 바람도 불어와 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휘날려 줄 것입니다. 혹은 선생님이시라면 별이 많은 밤, 바닥에 누워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림을 그리셨을 수도 있습니다. 밤과 숱한 별을 담고 얼굴과 점도 함께 그려 냈을 것입니다. 그러면 별이 점 같고, 점은 별처럼 보일 테지요. 

 

 

 

 

- 박준(시인), 「『인연』과의 인연-피천득 선생님께」, 『인연』, 민음사, 2018, 284-285쪽.

 

 

 

by papyros 2018. 8. 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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