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5] 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5주차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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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5주차에 이르러, 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의 마지막 주차를 맞았다. 이번 주에는 소설의 결말부인 ‘7-19581114일 런던부분과, ‘옮긴이의 말 고아로서 세상과 대면할 때’(김남주) 까지 읽으며 을 5주간에 걸친 독서를 마무리했다.

 결말부에서는 1958, 크리스토퍼의 나이가 약 50대 후반-60대 초쯤에 이르고, 제니퍼의 나이가 서른한 살에 이른 때를 그리고 있다. 크리스토퍼가 홍콩의 로즈데일 메너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는 이야기가 결말부의 서두에 등장하는데, 어머니 다이애나와 퍼핀(크리스토퍼 뱅크스)의 대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점은 크리스토퍼가 필립 삼촌을 만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당시의 청년시절 직후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세계대전을 겪은 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어머니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크리스토퍼에게 주어진 인생의 과업 - 가능한 빨리 어머니를 구하는 일, 그리고 그 안에 함축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 양 쪽 모두가 적기에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 어린 퍼핀이 어떤 용서를 받아야 할 만큼 그른 길을 가지 않았다고, 그녀의 아들이 자기의 길을 잘 걸어 나갔다고 믿고 있다.

 지난 4주차의 감상과 이번 주차에 읽은 내용을 연결 지어 작품 전반에 대한 감상을 풀어나가 보자면, 크리스토퍼는 청년기, 필립 삼촌으로부터 세계의 진실을 듣기 전까지 성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보호와 사랑, 안정감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유년시절, 그 환상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탐정이 된 것 또한 부모를 찾아 안정적이고 평화롭던 유년시절/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무의식의 욕망에서 기인했다.

 비록 중간부분이 작품 속에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필립 삼촌을 만난 이후 아마도 크리스토퍼의 삶은 이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체적인 성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그가 마침내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도. 어쩌면 그는 의식적으로 자기 내부에 자리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밀어내기 위해 더욱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내면 깊이 기저해 있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심리적 갈등을 이루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크리스토퍼에게는 더욱 무거운 책임의식이 자리하였으리라 여긴다. 그가 요양원에서 어머니의 말을 듣기 전까지 과연 온전히 그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지쳐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퍼핀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크리스토퍼, 제니퍼, 세라 헤밍스. 이들 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고아로서의 정체성. 고아로서 세계와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 깨져버린/깨어나야만 하는 환상을 자각하고 주체적인 존재로서 성장해나가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이 무언가를 잃어왔는가. - 크리스토퍼와 세라의 사랑, 제니퍼의 양육자로서 역할, 제니퍼의 자존감 등 -

 역자후기의 마지막 문구와 같이, 기실 고아라는 의미가 단지 부모님의 상실에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상계/상상계에서 벗어나 주체의 결여를 인정하고, 삶의 모순을 인정하고 실재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 여긴다.

아름답고 도덕적이었던 어머니와 따뜻했던 아버지, 그의 멘토인 필립삼촌, 아키라와의 우정으로 이루어졌던 크리스토퍼의 환상스런 유년시절이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 제국주의, 세계대전 등 세계의 실체와 마주하면서 발생한 모순과 혼란, 여러 간극들 -

비록 수많은 상실과 미처 성취하지 못한 삶에 공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공허함까지도 내 것으로 수용할 때, 자신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어루만지며 인정할 때, 삶을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내적 평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제는 자신의 고향을 상하이 공동조계가 아닌 영국 런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마침내 자아의 갈등을 마친 크리스토퍼의 모습은 독자에게까지 내적 안정감을 전해 준다.

 결국 크리스토퍼의 삶을 통해 주체의 결여된 부분’, 자아와 세계 사이의 모순을 무리해서 제거하기보다는, 그 자연스런 간극, 자기 내면에 잔존해 있는 자아의 부분들을 통합적으로 수용하면서 삶을 영위 해 나갈 때 자아가 비로소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을 마무리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 작품은 개개인의 성장과 실존,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을 작품 속에 함축하고 있으면서도 쉬운 내용으로 뛰어난 성장소설이자 역사소설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와의 첫 만남이 이 작품이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앞으로 마주하게 될 가즈오 이시구로의 다른 작품 - <남아 있는 나날>, <녹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또한 매우 기대된다.

 

 

 

 퍼핀을 용서하라고요? 퍼핀을 용서하라고 하셨나요? 왜죠?” 그러더니 다시 행복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 아이. 그 아이가 잘 하고 있다고들 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에요. , 그 아이가 얼마나 내게 걱정덩어리인지 몰라요. 상상도 하지 못할 거예요.”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30.

 

 

 

 

 

 내 말은 어머니가 나를 줄곧 사랑하셨다는 거야. 그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말이야.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 하나, 내가 좋은 삶을 누리는 거였어. 그 나머지 모든 것, 내가 어머니를 찾으려 노력했든, 이 세상을 파멸로부터 구하려 노력했든 어느 쪽이든 어머니께는 아무 차이가 없었던 거야. 나에 대한 어머니의 감정은 언제나 그저 거기 있는 것으로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어. 그건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나로서는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어.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30-431.

 

 

 

 

 

 사람들이 저의 정신을 본다고 생각하신다고요? 크리스토퍼 삼촌, 그건 삼촌이 저를 볼 때마다 여전히 삼촌이 예전에 알았던 어린 소녀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직 그 소녀가 그대로 남아있는걸. 내 눈에 그게 보여. 아직 그게 그곳에, 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너를 바꿔 놓지 못했단다, 얘야. 그건 네게 충격 비슷한 것을 주었을 뿐이야. 그게 전부야.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이 세상에는 괜찮은 남자들이 몇 있단다. 너에게 알려주마. 너는 단지 있는 힘을 다해 그 사람들을 피하지만 않으면 돼.”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34.

 

 

 

 

 

 이런 필생의 관심사에 속박당하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의 운명은, 사라진 부모의 그림자를 오랜 세월 뒤쫓으면서 고아로서 세상과 대면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그 임무를 완수하려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41.

 

 

 

 

 

 우쭐한 척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곳 런던에서 하루하루를 무심하게 보내면서 나는 진정한 만족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나는 공원을 산책하고, 미술관에 들르는 것을 즐긴다. 최근 들어서는 자주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 들러 내 사건에 관한 기사가 실린 옛 신문을 들추면서 자그마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이 도시는 어느새 내 고향이 되어서,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해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럼에도 때때로 공허감 같은 것이 내 삶에 찾아든다. 제니퍼의 제안을 앞으로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41-442.

 

 

 

 

 

 이 작품은 고아로서의 운명을 품은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을 먹먹하게 담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중에서 어쩌면 가장 사적인 소설이다. 실제로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상하이를 떠난 나이는 이시구로가 나가사키를 떠난 나이와 비슷하다. 책을 덮으면서 어쩌면 고아가 된다는 것이 실제로 부모를 여의는 여부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고, 낙원을 잃은 이후 인간은 모두 고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시구로가 어쩔 수 없이 '문학'적인 이유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49.

 

 

 

 

by papyros 2017. 12. 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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