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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31 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김영하 작가 북클럽 도서로 선정된 이 책에 특히 관심을 된 것은 어쩌면 제목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본래 프랑스어 원제는 『Derrière la grille』로, 곧 ‘철책 뒤에서’ 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제목을 그대로 차용하지는 않았지만 ‘완벽한 아이’라는 번안이 많은 한국 독자들이 책에 더욱 주목한 계기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다른 문화권에 비해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더욱 심한 사회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장 나부터도 어느정도 완벽주의적 성향과 이로인한 수행지연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모의 양육태도로 인한 심리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으려니 생 각하면서 책에 관심을 가졌고,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 도서로 함께 읽을 것을 제안하여 함께 상담심리를 함께 전공한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개인적으로 가장 놀랍고도 소름끼쳤던 지점은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에세이’(수필)이라는 점이다. 허구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부친에 대한 내용은 차마 믿기 힘든 부분이었으며 저자의 묘사나 문체가 유려하여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몰입감이 느껴졌고 서사의 전개와 결말이 너무도 궁금해 책을 단숨에 읽어나갔다.
저자가 거대한 철책 뒤 감옥에서 그 부친만의 기준으로 설정된 규율과 규칙을 요구받으면서도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 버텨내 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사랑’ 과 ‘배움(책)에 대한 열망’ 덕이 아니었나 싶다. 심리학에서 ‘애착 이론’을 강조하는 것만 보더라도 사람은 타인과의 감정적 교류가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저자와 같이 유년기의 결정적 시기에 부모로부터 적절한 지지와 격려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심리 내적인 문제들이 우려될 법 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내부에 있는 사랑을 아르튀르나 블랑숑과 같은 다른 생명을 지닌 종(동물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아이였고 또한 그녀와 함께하는 동물들로부터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아이였다. 사실 인간이야말로 타 종에 대해 가장 이기적인 존재일 법한데, 모드 쥘리앵이 다른 생명들로부터 사랑과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아이였다는 사실이 바로 그녀가 지닌 깊은 강점이었다고 여긴다.
동물들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걸까? 혼란스러운 중에도 나에게는 그런 커다란 행복의 샘이 있다. 놀라운 행운이다. 아르튀르를 보러 간다는 생각만으로 내 가슴은 애정과 즐거움에 부풀어오른다. 혹은 아르튀르 곁을 지나간다는, 재빠르게 지나가며 행복에 젖은 아르튀르의 눈길을 받는다는 새악만으로도 그렇다. 밤마다 나는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참을성 있게 버티던 아르튀르의 흔들림 없는 표정을 떠올린다. 나는 아르튀르를 사랑하고, 린다를 사랑한다. 린다는 아르튀르를 사랑하고, 아르튀르는 린다를 사랑한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강하고 아름답다. 물론 힘겹기는 하다. 그래도 함께하는 사랑의 순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견뎌낼 수 있다.
- 모드 쥘리앵, 「아르튀르」,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83-84쪽.
나는 정원의 향기, 작은 관목, 꽃 핀 나무들과 황수선화 향기, 무엇보다 라일락 향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마당에 나가는 것도 싫다. 이따금 피투가 보인다. 이제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동물인 피투는 베란다 앞 계단이나 린다의 집 안에서 나를 기다린다. 내가 나오는지 목을 빼고 살핀다. 비가 많이 오는 서늘한 여름이다. 밖에는 차가운 물기둥이 쏟아지고, 내 마음속에는 눈물의 광풍이 몰아친다.
다른 집에서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고 춥지 않도록 이불을 잘 덮어준다는 얘기를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혼자다.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외톨이다. 혼자 버텨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싫다. 혼자만 떨어져 있는 것은 지옥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싶다.
- 모드 쥘리앵, 「블랑숑」,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18쪽.
이제는 기구를 타고 떠나는 상상을 하지 않는다. 아르튀르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아르튀르 없이 더는 사는 게 아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슬로모션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린다까지도, 피투까지도 그렇다. 나는 말을 듣고 있는 척, 어머니의 수업을 듣고 있는 척, 숙제를 하는 척,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척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따르는 척, 사는 척한다. 하지만 나는 없다. 내가 있는 자리에 나는 없다. 나는 아무데도 없다.
아버지가 조랑말을 새로 사자고 한다. 조건은 내가 삼회전 공중제비를 사흘 연달아 성공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숫자 3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삼회전 공중제비를 하고 싶지 않다. 새 조랑말도 갖고 싶지 않다.
이어지는 날들은 매일매일이 똑같다. 내 삶 전체가 길고 메마른, 끝이 보이지 않는, 자비 없는, 단 하나의 똑같은 날이다. 나는 쟁기에 묶인 소처럼 일과표에 매여 있다. 온 힘을 다해 쟁기를 끈다. 왜 끌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질문도 못한다. 숨도 거의 쉬지 못한다.
- 모드 쥘리앵, 「블랑숑」,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19쪽.
며칠 전에 알 두 개가 부화했다. 그런데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깃털도 없는 작은 몸에 납작한 작은 부리와 쪼그라든 분홍색 다리를 보며 나는 속상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둥지에 혼자 남아 있으니 얼마나 슬플까. 하지만 하루하루 갈수록 그 작은 몸이 흰색 솜털로 덮인다. 나는 블랑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 블랑숑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날게 될 텐데 …… 어머니는 그때쯤 비둘기를 잡아 요리를 한다. 나는 용기를 끌어모아 아버지가 식탁에서 일어설 때 직접 말한다. “아빠, 부탁이 있어요 ……” ‘아빠’라는 호칭이 너무 이상하다. 아버지의 날 카드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다. 아버지도 놀랐는지 나를 뚫어져랴 쳐다본다. “아빠, 블랑숑을 오랫동안 보살펴도 돼요?”
- 모드 쥘리앵, 「블랑숑」,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22쪽.
‘아빠’라는 호칭이 마법을 부린 걸까? 아니면, 말은 안 했어도 아버지는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걸까? 아버지가 대답한다. “그렇게 해라.” 다행이다. 가슴속은 여전히 기쁨 없이 텅 비어 있지만, 나는 하얀 솜뭉치 같은 블랑숑을 보살피기로 한다. 비둘기장을 고치는 정도의 사소한 일에는 따로 조수가 필요없다 해도, 하루 두 번씩 알베르와 레미에게 맥주를 가져다줘야 할 테니 그때 블랑숑을 보살필 수 있다.
블랑숑은 멋진 흰 비둘기로 자라난다. 유모를 잊지 않는 다정한 비둘기다. 내가 정원에 나가면 블랑숑은 내 손으로 날아와서 인사한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린다를 풀어놓고 블랑숑과 인사를 시킨다. 린다와 피투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린다가 블랑숑을 해치지는 않을 것 같다. 다행이다.
- 모드 쥘리앵, 「블랑숑」,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23쪽.
한편 그녀가 그녀의 부친에 대해 아주 약간이나마 기대를 하는 대목에서 참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했다. 자녀들이 당연히 신뢰로운 보호자이자 든든한 지렛대로 여기고 믿고 따를 수 있는, 또한 투정을 부리거나 짜증을 내도 받아주시는 부모님이란 존재가 바로 부모님일 지인데 그러한 존재가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되며 아주 사소한 호의에도 그저 ‘감사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러니라니.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난 정인이 사건과도 교차하는 지점이 있어 작품을 완독한 후에도 더욱 많은 안타까움이 들었다. 온전히 부모에게 사랑받으며 세상의 주인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유년기’의 결정적 시기에 ‘규율에 대한 복종’과 ‘두려움’을 먼저 배워야만 한다는 사실은 실로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는가. ‘결정적 시기’에 형성된 감정과 관계방식들이 평생의 삶을 좌우한다는 것을 기억해본다면 이는 삶 전체에 대한 폭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레고르다. 하지만 따라가야 할 모델을, 본고리를, 이상을 찾았다. 당테스가 나에게 자유의 길을 보여준다. 밤에 차가운 수돗물을 아주 가늘게 흘러나오도록 틀어놓고 몰래 머리를 감는 동안, 나는 그레고르를 떠나 당테스가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 카틀랭 공장의 노동자들이 단호한 걸음으로 일터로 향하고 어린애들이 거리에서 웃고 떠들며 학교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당테스에게 다가간다. 삶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하다. 언제나 해결책이 있다. 기필코 그것을 찾아내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고함을 치며 화낼 때면 나의 자신감은 단숨에 무너지고 그레고르의 세상만이 남는다. 어머니의 눈길이 나를 향할 때면 나는 그레고르로 변하는 게 아니라 이미 그레고르다. 등껍질을 바닥에 대고 배를 드러낸 채 일어서지 못하고 네발을 우스꽝스럽게 허우적대는 그레고르다.
- 모드 쥘리앵, 「그레고르와 에드몽」,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37쪽.
나는 충격에 빠져 읽고 또 읽는다. 늘 숨어서, 늘 몇 페이지씩 읽는다.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된다. 내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흔든 그 주인공은 바로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둘은 똑같이 다른 사람들을, 세상을, 관습을 밀어낸다. 똑같이 광기 상태를, 거창한 말들을, 가혹함을 좋아한다. 어쩌면 아버지 역시 굳은 외관 아래 아직까지 벌어져 있는 상처가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 스스로 행하고 어머니와 나에게도 강요하는 것, 그 모두가, 아버지가 우리를 가두어놓은 이 세상 전부가 사실한 탁월한 통찰력이 아니라 은밀한 고통에서 나온 게 아닐까?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을 때마다 결말에 담긴 냉혹한 교훈이 나를 죄어온다. 그 교훈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언젠가 자신의 광기를 깨닫는 날이 온다 해도,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사람이야. 도망쳐!”
- 모드 쥘리앵, 「지하에서」,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58-159쪽.
또한 정말 다행스러웠던 지점은 그녀가 문학작품의 주인공들을 통해, 그리고 음악을 통해 문학이나 음악의 선율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과 유사한 지점들을 찾아내기도 하며 그들과 대화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강한 내향성으로 다소 외로웠던 나의 학창시절에도 ‘책’과 ‘음악’은 귀한 친구였는데, 모드에게도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자기서사와 작품서사 간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스스로 자기의 삶을 들여다보며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 셈이다. 저자가 자기 나름의 도피처이자 강력한 무기를 찾아내고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점이 굉장히 다행스러웠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를 덜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무언가를 해보지 않았는가. 우리는 비밀을 공유하고, 같은 의문을 품고, 같은 불안과 같은 긴장을 느꼈다. 더구나 이번에는 어머니가 나 때문에 그르쳤다며 비난하지도 않았기에, 내 마음은 오히려 가볍기까지 하다.
이따금씩 나는 잠시 제자리를 떠나갔다 돌아온 호랑이들의 여행을 생각한다. 이제는 가구와 물건과 책을 모두 다른 자리로 옮겨놓고 싶다. 일과표의 일정들도 마음껏 바꾸고 싶다. 마침내 가능한 변화의 문이 열린 듯한 기분이다. 우리 머리 위로 뚜껑이 완전히 봉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만 같다. 어머니와 내가 동무가 되어 또다른 모험들을 상상해본다면 삶이 얼마나 달콤해질까? 점점 더 무거워지는 아버지의 권위에 맞서서 우리가 또다른 작은 공모를 꾸밀 수 있다면 말이다.
- 모드 쥘리앵, 「호랑이 카펫」,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73쪽.
어머니의 경우 그녀는 자신의 딸인 모드 쥘리앵에게는 가해자였으나 동시에 아버지로부터 양산된 또다른 피해자라 할 수 있는데, 물론 그녀가 딸에 대한 학대에 방관한 가해자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피해자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드가 바랐던 바와 같이 어머니가 조금은 더 그녀와 함께 아버지의 폭력에 함께 싸우는 경험들이 많았으면 좋았을런만, 사실 모드의 어머니야말로 너무 오랜 시간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기에 어쩌면 딸에 대한 학대와 질투, 그리고 아버지의 규율 그 모든 것을 폭력이라 자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녀의 삶 전체가 남편에게 엮여 있었기에, 독립할 만한 힘을 갖추기에는 어머니 또한 아직 그 내면에 ‘학대당한 어린 아이’의 마음을 떨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가정 문제의 모든 근원이 되는 지점인 부친이야말로 정신과적 치료가 가장 필요해보이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늘 아버지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어머니, 그리고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져야만 했던 어린 모드 쥘리앵의 내면이 얼마나 하루하루 초조하고 고통스러웠을지 작품을 읽으면서도 감히 나로서는 다 짐작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저자의 실화임이 분명한, 수필(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사실성 있는 소설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빠르게 책장을 넘기며 작품을 읽으면서도 몇번씩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끝나갈 때쯤 나는 기진맥진하다. 아버지는 나에게 블랑딘처럼 사자들을 굴복시키고, 잔 다르크처럼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그러면서 퐁파두르 부인처럼 섬세하고 기품 있게 행동하기를 기대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들을 해낸단 말인가. 진짜 슬픔은 다른 데 있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초라한 삶을 동경한다. 나는 아버지를 배신한 딸이다.
- 모드 쥘리앵, 「티레의 히람」,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83쪽.
얼마 전부터 아버지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언제든 원할 때 누구의 머릿속에나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언제든 원할 때 누구의 머릿속에나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아무도 볼 수 없게 옮겨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물리적으로 같은 자리에 있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절대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무얼 하든 다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자꾸 저 말을 할까? 내가 털어놓기 힘든 생각들과 계획들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나?
- 모드 쥘리앵, 「벽돌담」,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90쪽.
때로 침대에 누워 있으면 슬픔이 옥죄어온다. 나는 다정한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주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마치 아기를 흔들어 재우듯 내 베개를 흔들어준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입으로 소리 내보기도 한다. “아가야 울지 마, 걱정하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넌 사랑받고 있어. 알잖아. 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아이가 아니야. 너도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그 목소리는 곧 비난의 목소리에 밀려난다. “잘하는 짓이다! 이젠 동정이 필요해? 쇼하지 마!”
- 모드 쥘리앵, 「벽돌담」,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190-191쪽.
정말 다행스러운 지점은 저자가 성장 이후 ‘몰랭 선생님’을 만난 점이었다. 몰랭의 지혜와 재치, 그리고 그녀에 대한 애정으로 드디어 모드가 집 밖을 나설 수 있게 되었을 때 독자로서 느낀 그 엄청난 다행스러움이란..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는데 저자는 그 순간 얼마나 믿기지 않고도 경이로운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평생을 살아온 그 감옥같은 공간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의 해방감이었을까. 인생을 되찾은,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최근 왓챠에서 제작한 시즌드라마 <디 액트>를 관람한 바 있다. 2015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집시 로즈 블랜처드’의 모친 살해사건은 바로 그녀가 유년시절부터 어머니께 당해온 가스라이팅(장애가 없는 자녀를 평생 장애인이라고 하며 모친의 거짓말에 이용해 온 것)으로 인해 그 어느 곳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것으로 기인한 사건이었다. 오죽하면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보다 차라리 감옥이 더 자유롭다고 형용했을 정도였을까. 집시 로즈 블랜처드와 모드 쥘리앵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친부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환경에서 학대당하고 학대당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결국 모드는 좋은 사람들 덕에 다행히 그 감옥과도 같은 집을 탈출했지만, 집시 로즈의 비극은 그녀 주변에 그녀에게 조금 더 관심을 쏟은 누군가가 부재했기에 야기된 것이라 하겠다. 집시 로즈에게, 그녀를 대신해 어머니를 살해하는 남자친구 대신에 모드에게 찾아온 '몰랭 선생님'같은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였던 집시 로즈가 오히려 살인자가 되는 일 없이 그녀도 직접 자유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어쩌면 사회 곳곳에 만연한 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과 학대에 우리 모두가 너무 무심했던 것이 아닌가 자성하게 된다.
동시에 작은 선의와 실천적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지점인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특히 저자가 오랜 기간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집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만난 여러 조력자들 덕분에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아가 공황장애, 우울, 불안, 공포증 등 수많은 심리적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직면하여 치유한 뒤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자가 되어 누군가의 지지체계가 되어주며 선을 나누는 저자를 통해 , 진실로 그녀야말로 '상처입은 치유자'로서 자신의 온 생애를 다 바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존경스러웠다.
저자에게 앞으로 펼쳐질 노년기의 삶이 진실로 평안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그녀가 겪은 내담자로서의 경험과 상담자로서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를 더 만나고 싶다. 다음 책이 나오기를 진실로 바란다. (복복서가 출판사 관계자분들 이 글을 보신다면 꼭....!! 추진해 주세요:) )
나는 경이로울 만큼 행복하다. 내가 있는 곳은 수용소가 아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다른 연주자들,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함께 흥에 젖기 위해 연주한다.
나는 내 부모의 집을 나왔다. 정말로 나왔다.
- 모드 쥘리앵, 「산티나스 재즈밴드」,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312쪽.
철책에 가로막히지 않고 몇 시간이든 걷고 싶었고,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해변을 뛰아다니고 싶었고, 동료들과 일하면서 내 힘으로 살아내고 싶었다. 여행도 하고, 가구 배치도 바꾸고, 서점에 들어가서 책을 사고, 비틀스의 음악도 듣고, 극장에도 가고 싶었다. 자지러지게 웃고도, 마음껏 울고도 싶었다.
- 모드 쥘리앵, 「에필로그」,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315쪽.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기에 내 상태를 되돌려놓기 위한 치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긴 심리치료가 시작되었고, 그 치료가 끝날 즈음에는 나 역시 심리치료사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시 구렁텅이에 빠질 위험도 겪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식 치료를 하는 어느 의사를 만나러 다니던 일 년 동안, 그 의사는 내내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미 침묵 때문에 너무도 큰 고통을 겪었던 나는 다시 한 번 내쳐지는 상처를 겪어야 했다. (중략) 이런 과정을 모두 겪은 뒤에야 나는 따뜻한 열정으로 맞아주는 정신과의사를 만났고 마침내 그녀와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 모드 쥘리앵, 「에필로그」,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318쪽.
아버지가 만들어낸 빈틈없는 체계는 반항의 싹이 돋아날 가능성 자체를 잘라버렸다. 하지만 나는 결국 자유의 길을 찾아냈다. 우선 나에게는 생명 넷으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과 애정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개 한 마리, 조랑말 둘, 그리고 오리다. 나에게 우정을 베풀어준 사람들도 있었다. 엄격했던 피아노 선생님, 겁에 질려 있던 미용사, 바칼로레아에 떨어진 여고생 말이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도전하는 길을 생각과 감정과 상상력으로 열어준 책과 음악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주 조금씩 용기를 냈고, 돌을 하나씩 옮겨가며 나의 정신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나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상상의 대화 상대를 만들었고, 비밀 창고를 팠고, 금지된 이야기들을 글로 썼고, 나 스스로의 생각을 지닐 권리를 확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운명이 나에게 구세주를 보냈을 때,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몰랭 선생님은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찾고 삶 안에서 늘 경이를 느끼는, 무한한 선의를 지닌 분이었다. 선생님은 내 아버지와 정반대편에 선, 아버지가 틀렸음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인간들은 훌륭하다.
- 모드 쥘리앵, 「에필로그」,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322-323쪽.
벨마 월리스, 『새소녀』, 이봄출판사, 2021. (0) | 2021.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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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위고양이 시즌5 서포터즈_선공개 세 편 후기 (0) | 2021.11.01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 2021. (2) | 2021.05.26 |
[청춘의책탑] 호프 자런, 『랩 걸 (Lab Girl)』, 알마, 2017. (0) | 2021.04.30 |
[독립북클러버 16기- 청춘의책탑] 10회차(16기 1회차)-「페인트」 후기 (0) | 2021.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