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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8 차홍, 『모락모락』, 문학동네, 2022. 1
차홍, 『모락모락』,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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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모락모락 블라인드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문학동네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문학동네에서 블라인드북 서평단 모집을 안내하면서 <모락모락>이라는 책에 대해 ‘어디에서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의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사랑스러운 책’ 이라는 수식어로 작품을 형용한 바 있어 어떤 책일까 무척 궁금해졌다. 제목이 표현하듯 무언가 자라나는 성장의 이야기인가? 라는 궁금증을 안고 서평단에 지원한 바 있다.
사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완독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무척 짧은 책이다. 하지만 그 길이 이상으로 주는 깊은 여운이 작품에 깃들어 있었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 애독가라면 한번쯤 접해봤을 법한 ‘하이케 팔러’의 <100 인생 그림책> 처럼 이 작품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쪽 수대신 작품 안에서 성장하는 한 개인의 나이가 등장한다. 또한 유년기에서부터 100세 노인이 될 때 까지의 주요한 인생 여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점 또한 유사하다(사춘기, 독립, 사랑, 결혼, 출산 등..)
다만 <모락모락>이 <100 인생 그림책>과 구별될 만한 특별한 점은, 다소 독특한 화자(발화자)를 내세운 데 있다. 책의 화자는 성장하는 주인공 자신도 , 그녀의(주인공이 여성이기에 편의상 그녀로 지칭) 부모님도 자녀도 아닌 다름 아닌 그녀의 머리카락이다. 출생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랜 세월 그녀의 뒤에서 함께하는 머리카락이 성장과정을 옆에서 온전히 바라보며 성장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왜 하필 머리카락이 발화자였을까, 책을 읽고 나름대로 그 답을 고민해 보았다. 작품에서 성장하는 주인공도,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일평생을 자신의 미를 가꾸는데 치중한다. 누군가와 비교될 수밖에 없으며 항상 평가되는 사회 속에서 ‘아름다움’, 즉 외모를 가꾸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머리카락이 아닐 수 없다. 늘 미용실에 가서 새로 펌을 하거나 염색을 하는 등 외모를 관리하는 것의 중요한 부분이 머리카락에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청소년기에 여드름을 가리려고 앞머리를 내리기도 하고, 스무살 언저리 즈음에는 파격적인 염색을 시도하거나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머리를 따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물아홉에는 머리 스타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고, 마흔둘에는 온전히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해주고 신경써주는 헤어디자이너를 만나기도 한다.
29.
“머리 스타일은 단지 누구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일이자
소중한 자신을 가꾸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거야.”
42.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으세요?”
이렇게 너를 위해 진심어리게 고민하는 사람을 왜 이제야 만나게 된 걸까?
늘 유행하는 머리에 필요한 시술만 말하던 사람들과 정말 달랐지.
너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이해한 후 만들어낸 스타일은 오직 너만을 위한 것 같았어.
그건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웠지. 나도 내가 특별해진 느낌이었다고.
유년기, 청소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하며 삶을 영위해가지만, 결국 한 개인으로서의 성장이란 ‘자기 정체성’을 오롯이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에서처럼 그 자기 정체성이란 자신만의 고유한(잘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찾는 것 뿐 아니라 생의 과정에서 부모로부터의 독립, 대학 진학, 취업, 결혼 후 자신의 자녀를 낳고 부모가 되는 것, 심지어는 집에서 떠나 요양원에 들어가는 어느날에 이르기까지 삶의 순간순간 한 개인으로서 독립할 때 / 삶을 마주할 때 확립될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이 책의 첫 표지가 어린 아이였으나 마지막, 책의 뒷표지는 노년기를 그리고 있는 만큼 .. 책을 읽어 내려가며 성장하는 그녀의 일생에 함께 마음을 보탤 수 있었다. 비록 머리카락이 화자이긴 하지만, 그 여느 누군가보다도 더 가까이서 그녀의 삶의 여정을 지켜보고 함께 한 그 머리카락이 숱이 많고 검은 머리에서, 백발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많은 불안과 걱정, 고민을 뒤로하고 행복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독립할 수 있어 진실로 기뻤다.
현재는 내 한 몸 건사하기에도 부족하기만 한, 서른한살의 끝을 지나고 있는 나 역시 노년기에는 고양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카페에서 책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그런 할머니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정말 짧은 책이었으나, 사랑과 행복, 그리고 그 이상의 ‘가치관’를 선물해 준 귀한 책으로 , 청소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가 함께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나눌 수 있기를 권하고 싶다.
13.
도서관 안으로 숨어들었어.
책장 사이사이 길 위에는 손이 닿는 곳마다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들이 있어.
누굴 만나든 아무도 너에게 뭐라 하지 않는 곳.
아무도 너에게 말을 걸지 않고, 오직 창가의 햇살 아래 하얀 먼지들만이 주목받는 곳.
넌 책장 그림자 위에 앉아 머리카락을 커튼처럼 드리우고 책을 읽고 있지.
14.
집 앞 앵두나무를 보면서 엄마가 말했어.
“지난 사 년 동안은 많이 안 자라더니 올해 갑자기 커버렸네.”
너도 꼭 그렇잖아. 신기하지, 나무도 너도 어느 순간 쑥 자라버린다는 게 말야. 그리고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지.
너는 그대로인데 몸만 어른이 되려고 한다니 말이야.
엄마는 햇살 아래 빨간 앵두를 하나하나 따서 노란 소쿠리에 담았어.
그러고는 흐르는 찬물에 씻어 너의 입에 쏙 넣어줬지.
“엄마, 쓴데 달콤해.”
엄마는 쏟아지는 햇빛을 등지고 웃으며 너에게 얘기해.
“나중에 신기한 걸 더 많이 알게 될 거야.”
27.
너는 독립을 하기로 했어.
마지막 날, 짐을 정리할 때 엄마는 서랍 속에 간직해둔 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여주었어.
거기엔 네가 처음 입은 옷, 제일 좋아했던 장난감, 처음 부모님께 쓴 카드, 유치원 복…… 잊었지만 다시금 기억이 되살아나는 물건들이 가득 모여 있었지 (중략)
너, 언제 이렇게 큰 거니?
28.
어느 날 모든 걸 정지시켰어. 그리고 짐을 꾸렸지. 나는 정말 불안했어.
아직도 너를 다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작은 짐처럼 웅크리고, 낯선 사람들이 있는 서랍장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또 버스를 탔지.
그리고 겨울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는 꽁꽁 언 눈밭에 앉아 있어. 나는 오들오들 추워서 얼어버렸지.
왜 이렇게 추운 먼 곳까지 온 거니? 네가 정말 걱정이 된다고. 그때였어. 겨울 숲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지.
세상에, 번쩍 일어나 하늘을 바라봤어. 우와, 지금 우리 우주에 있는 거니? 오로라야!
아름다운 초록 커튼들이 하늘 가득 별빛과 함께 우리에게 쏟아질 듯 넘실거리고 있어.
지금 이건 현실이니? 이런 아름다움이 이 세상에 있다니. 너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어.
오로라를 보고 싶어했던 그 꼬마가 아직 네 안에 있었구나.
그래, 넌 변한 게 아니었어.
30.
밤부터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어. 새벽녘까지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지.
라디오에서는 오십 년 만의 폭설이래.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런 눈이 내렸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니?
너는 얼굴도 씻지도 않고 새집이 된 나를 모자에 급하게 밀어넣고 밖으로 나갔지. 뽀드득뽀드득 발목까지 쌓인 눈을 밟으며 걸었어.
눈에 묻힌 마을은 정말 고요했고. 폭설도 서른이란 나이도 아름답고 낯설지.
50.
머리카락은 꼭 나뭇가지 같아.
봄처럼 여리게 자라 여름처럼 쑥 컸다 겨울처럼 잠시 쉬기도,
가을 낙엽처럼 떨어지기도 해.
그리고 다시 봄이 온 것처럼 또 자라나지.
나무와 네가 함께 계절을 보내듯 우리도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
56.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하늘의 미세먼지, 짧아지는 봄과 가을, 사라지거나 전에 없던 먹거리. 너는 부쩍 환경에 더 관심이 많아졌지.
너는 페트병 대신 물을 끓여 텀블러를 사용하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너의 존재가 세상과 자연에 해가 되는 일을 줄이겠다는 결심은 네게 잔잔하고도 깊은 기쁨을 주었어.
근데 아니? 수분 보충은 나에게도 기쁜 일이라는 걸.
58.
너는 알게 되었구나.
이제 너의 아이는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네가 독립할 때 부모님께 들었던 말을 아이에게도 똑같이 해주어야 했어.
“잘해낼 거야. 응원할게.”
너는 그 말이 얼마나 많은 말들을 버린 후에야 나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네.
이제 너는 추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말야.
59.
햇빛이 유리알 같은 날.
짙은 산빛이 드리운 물위에 손을 담갔지 시원한 물줄기가 몸안으로 밀려들어오고.
꺄르르 웃으며 물위를 첨벙거렸어.
너는 아직도 웃음소리가 여름처럼 크고 풀어진 마음은 어디든 닿을 것 같아.
85.
“엄마, 도서관 갈 때 무릎담요 챙겨가세요.”
이제 너는 누구라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러.
너는 익숙한 공간이 조금은 낡아 편안해진 코트처럼 아늑하지.
(중략)
오늘은 가을 햇살이 가득하네.
너는 담요에 손을 올리고 꾸벅꾸벅 졸았지.
발밑에 길고양이 한마리가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100.
밤하늘 가득 별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아.
눈으로 보지 않아도 별빛이 느껴지지?
여름밤 공기도 나긋하고 좋아.
정말 좋은 순간이야.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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