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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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  <작은아씨들> 서평단의 일환으로, RHK(알에이치코리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컬처블룸 카페 매니저님과 RHK(알에이치코리아) 담당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련링크 : https://cafe.naver.com/culturebloom/883862) 

 

 

   영화 <작은아씨들>이 개봉한 덕분에,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을 통해 함께 읽기로 했던, 『메이블 이야기』를 후순위로 잠시 미루고, 영화를 관람한 뒤 『작은 아씨들』을 읽고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특히 감사하게도 RHK 출판사에서 받은 종이책은 원작의 표지를 그대로 구현해 정말 1860년대 출간된 작은아씨들을 읽는 느낌이었고, 흡입력있는 서사 덕분에 금방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기실, 베스와 로런스 할아버지의 신뢰관계, 에이미의 스케이트 사건, 메그의 무도회, 브룩선생님의 장갑 이야기 , 베스의 성홍열 등 주요서사는 유년시절부터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던 능인출판사의 세계고전 만화책 덕분에(박종관 화백 作) 온전히 기억하고 있었으나, 어린이를 위한 만화책이나 동화책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베스의 죽음과 에이미와 로리의 결혼은 이번 영화와 책을 통해 새로이 접해 매우 놀랍고 마치 새로운 작품을 보는 것만 같았다.

능인 <작은아씨들>

 

 기실 나는 유년시절부터 베스를 가장 좋아했다. 그러나 원작소설을 제대로 읽으며, 베스에 대한 애정에 더해 '조'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베스는 작품 곳곳에서 네 자매 중, 아니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선한 인물로 묘사된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부상 소식에 아버지를 돌보러 떠났을 때, 유일하게 훔멜 씨 가족을 돌보다 성홍열에 걸리기까지 한 정도로 이타적이었으며 로런스 할아버지의 선물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아마도 유년시절의 내가 베스와 동일시 했던 것은 '인정욕구'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베스처럼 내향적인 아이였으며 선생님들께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나는 당연히 베스가 지닌 선(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었던 것 같다. 아마도 교사를 꿈꾸게 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특히 베스와 로런스 할아버지의 신뢰로운 관계는 참으로 애틋하고 다정한데, 가족 외의 타인을 대하기를 어려워하는 베스가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로런스 씨의 애정어린 시선과 배려 덕분이었다. 나 또한 은사님들의 애정 속에 성장해 온 만큼 베스와 로런스 씨의 관계에 많은 이입이 되었다.

 


"난 매일 갔어. 하지만 아이가 아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훔멜 부인은 일하러 나가고 로트첸이 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있어. 내 생각엔 언니나 해나 아주머니가 가봐야 할 것 같아." 베스가 진지하게 말하자, 메그는 내일 가보겠다고 약속했다.

(중략)

메그와 조는 각자의 일에 다시 파묻혀 훔멜 씨네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에이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베스는 할 수 없이 조용히 일어나 두건을 두르고 불쌍한 아이들에게 가져다줄 여러 가지 물건을 바구니에 담은 뒤 참을성 있는 눈동자에 슬픔을 가득 담고서 차디찬 밖으로 나갔다.

-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363-364쪽.

 


 

"엄마, 로런스 할아버지께 실내화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제게 그토록 잘 대해 주시는데 저도 감사를 드려야겠어요. 달리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고요. 그래도 돼요?" (중략) 베스는 메그와 조와 여러 차례 진지한 논의를 거쳐 모양을 정하고 재료를 산 다음 실내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진한 보라색 바탕에 점잖으면서도 화사한 분위기의 삼색제비꽃 무늬를 보고 다들 아주 예쁘다며 한마디했다.

(중략)

"지금까지 많은 실내화를 신어보았지만, 이처럼 나에게 꼭 맞는 실내화는 이번이 처음이오." 조는 잠시 뜸을 들인 뒤 계속해서 읽었다. "삼색제비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오. 이 꽃들을 볼 때마다 이걸 준 친절한 사람이 생각날 거요. 신세를 갚고 싶어 그러니 '이 늙은이'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손녀딸의 물건을 아가씨께 보내는 걸 허락해 주구려. 진심 어린 감사와 축복을 보내며. 당신의 좋은 친구이자 충실한 하인, 제임스 로런스."

 

-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132-136쪽.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러 왔어요…….."

 그러나 로런스씨가 너무나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는 바람에 할 말을 잊어버려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베스는 노인이 사랑하는 손녀딸을 잃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노인의 목에 팔을 두르고 키스를 했다. 자기 집 지붕이 날아가버렸다 해도 이보다 더 놀라진 않았겠지만, 노인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정말 그랬다! 노인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는 신뢰가 담뿍 담긴 키스에 감동한 나머지 체면을 모두 벗어던지고 베스를 번쩍 들어 자기 무릎에 앚혔다. 그러고는 주름살투성이 뺨을 베스의 분홍빛 뺨에 대고 비비며 손녀딸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그 순간 이후로 베스는 노인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노인의 무릎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처럼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감사하는 마음은 자존심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베스가 집으로 돌아갈 때 노인은 그녀의 집 앞까지 함께 걸어가 따스한 마음이 담긴 악수를 건넸다.

 

-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132-136쪽.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1부 내용에 이어 2부가 포함된 원작소설을 정독하면서, 마치가문의 둘째, '조'에게 깊은 애정이 더해졌다. 조에게는 다른 자매들과는 다른 '강인함'이 분명히 존재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스케이트 사건은 조의 원고를 불태운 에이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했음에도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화를 낸 자신을 자책하는가하면, 자신의 슬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위급한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머리칼을 자를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가족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특히 2부 결말부에서는 마치 대고모로부터 물려받은 저택을 소년들을 위한 학교로 활용하며 보살핌과 애정이 필요한 소년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은 만큼 '조'는 다른 어떤 자매들보다 가장 강인했으며 자신의 신념을 믿고 옳은 선택을 하면서, '성장하는 인물'이었다. 조가 완벽한 인물이 아닌 '성장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내게는 더욱 와 닿았다. 해리 포터가 처음부터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성장하는 인물'이었던 것처럼, '조' 역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자신이 걸어갈 길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인물이었다. 기실 성인기의 주요과제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믿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것인데, 이 점을 조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유년시절의 내가 베스와 같았다면, 이제는 조와 같이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다 내 고약한 성질 때문이에요!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돼요. 이제 됐다 싶으면 전보다 더 악화돼 있어요. 엄마! 어쩌면 좋아요, 난?"

불쌍한 조가 자포자기한 채 외쳤다.

"늘 주의하면서 기도하렴. 그리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거야. 혹시라도 네 결점을 극복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라."

 마치 부인은 헝클어진 머리를 끌어당겨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한 뒤 축축한 뺨에 다정하게 키스를 했다.

 

-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168쪽.

 


"어디서 났니? 25달러나 되잖아! 조, 난 네가 경솔한 짓을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런 돈 아니에요. 이건 내가 정직하게 번 돈이에요. 구걸하거나 빌리거나 훔친 게 아니라고요. 내가 번 거예요. 내 걸 팔았을 뿐이니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조가 보닛을 벗자 다들 놀라서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풍성한 머리털이 짧게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글쎄, 난 정말 아빠를 위해 뭔가 해드리고 싶었어." 자매들은 조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탁 주위로 모여들었다. 한창 때의 젊은이들은 고통의 한가운데에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만큼이나 돈을 빌리는 게 싫었어. 그리고 마치 대고모님이 잔소리를 해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 9펜스를 빌려도 잔소리를 하실 분이니까. 게다가 메그 언니는 석 달 치 봉급을 집세로 내놓았는데 난 내 옷만 사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거든. 돈을 구할 수 있다면 코라도 베어 팔았을 거야."

-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338-340쪽.

 


 "초 좀 치지 마, 테디. 물론 부자 학생도 받을 거야. 처음엔 그렇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일단 시작하고 나면 시험 삼아 사정이 딱한 아이 한두 명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야. 사실 부잣집 아이들도 가난한 집 아이들만큼 보살핌과 위로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하인들의 손에 내맡겨지거나 타고난 성향과 정반대의 길로 내몰리는 불행한 꼬마들이 한둘이 아니야. 정말 잔인한 일이지. 잘못된 교육을 받거나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해 비뚤어진 아이들도 있고, 엄마를 잃은 아이들도 있어. 게다가 아무 문제 없는 아이들도 사춘기 시절은 겪고 넘어가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인내와 배려가 가장 많이 필요할 때가 바로 이 시기거든. 사람들은 이 시기 아이들을 비웃고, 다그치고,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려고 하면서 예쁜 아이에서 하루아침에 훌륭한 청년으로 바뀌질 바라지. 자존심이 있어서 불평은 잘 안 하지만 애들도 다 느껴. (후략)"
 

-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958-959쪽.

 

 

 한편 전체적인 서사 면에서, 영화만으로는 로리와 에이미의 결혼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에이미가 그저 얄미워보였고 타이밍을 놓친 조가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원작소설을 읽으며 로리와 에이미, 그리고 조와 프리드리히가 이어진 것에 대한 감정선이나 상황이 영화에 비해 더욱 이해되었는데, 조에게 로리는 그저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함께 보내 온 '친구',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반면, 에이미에게 로리는 '동경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조가 프리드리히를 대하는 감정도 그가 지닌 '지식'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출발했던 것으로 여겨졌다.  

 메그와 브룩, 조와 프리드리히, 에이미와 로리의 애정과 결혼관계를 통해 작품에 드러나는 당시 여성에 대한 관점이나 결혼에 대한 인식은 일반적으로 여성이 '부유한 남성'과 결혼해야 출세한다는 인식들이 작품 곳곳에 깔려 있다. 그러나 세 자매 모두 '돈'이나 여타 물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인격, 지식, 신뢰로운 관계 등을 더욱 중시했으며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이 네 자매의 선택을 통해 더욱 중요한 가치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외에도 천로역정 놀이 (순례자 놀이) 등의 챕터에서 드러나듯이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경에 따라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며 네 자매 모두가 각자의 짐이 있고 그 짐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묘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바로 이 점이 작은아씨들이 진정한 '고전'이라고 불리는 이유라 여겨진다. 자매들의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 그 나이대 청소년/청년이라면 한번쯤 지녔을 고민을 다루고, 각자 짊어진 짐을 자신의 방식대로 극복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메그는 당대 사회상에서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지는 않았지만 책임감을 지니고 여 가정교사로 일했으며, 조는 마치 대고모를 보살피는 등 그저 삶을 충실히 살아냈기 때문이다.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과 선택들 안에서 깊은 가치와 깨달음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소소하지만 거대한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작은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 자신이 실제로 네 자매 중 장녀였고, 둘째였던 동생 리지를 떠내보내는 상실을 겪어낸 바 있으며 실제로 '조'와 같이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젊은 시절 신문과 잡지에 단편소설을 싣기도 했고, 간호사로 종군한 경험이 있는 등 작가의 삶이 작품 곳곳에 여러모로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자신의 삶을 풀어낸 여러 자전적 소설(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 루시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 등)들과 마찬가지로 <작은아씨들> 또한 독자들에게 있어 작가의 자기고백을 통한 강렬한 몰입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160년의 세월을 넘은 고전소설 <작은아씨들>의 강렬한 힘은 작가의 경험을 통한 '진정성'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확신한다. 최근에 인상깊게 관람하여 인생작이 된 뮤지컬 <Story Of My Life>에서도 이 점이 드러나는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한 갈래들이 하나하나 모두 소중히 들여댜보아야 할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며, 이 점이 바로 어느 시대의 어느 누가 읽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는 중요한 단초라고 여긴다.

 

 유년시절에는 네 자매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행복과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고 성인이 된 지금에는 실제적인 '선택'과 '책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금 정리하게 해 준 책 <작은아씨들>에 깊은 감사함과 애정을 느끼며, 평생 옆에 두고 삶의 순간순간마다 함께하고 싶은 이야기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 

 

by papyros 2020. 3. 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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