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경,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딜레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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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한솔수북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한솔수북(딜레르) 출판사와 저자이신 장유경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솔수북 인스타그램 : https://instagram.com/chaekdam?utm_medium=copy_link 

 

    강릉 보름살이를 이어나가던 12월 중순 어느날이던가, 한솔수북 출판사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을 읽고 책에 대한 소개를 접한 후 이 책은 내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여 이후 바로 서평단을 신청했다.

  『깜빡깜빡해도 괜찮아』라는 이 책은 인지심리학을 전공한 심리학자인 딸이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고 생활을 이어나가는 어머니를 부양하는 가족돌봄에 관한 에세이이다.  나 역시 심리학 전공자로서 전문상담교사를 목표로 하는 이로서, 전문성을 지닌 저자 분께서 경도인지장애를 어떻게 설명하실지 궁금증이 앞섰다. 그러나 전공 전문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만 스물아홉 살의 딸로서, 장녀로서 또래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부모님의 연세가 많은 편이다. (부모님 두분의 연세가 각각 55년 양띠와 57년 닭띠이시다.)

 가장 상대적인 것이 나이라고는 하나, 벌써부터 두렵고 슬프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또래 친구들에 비해 어쩌면 닥쳐올 부모님과의 이별이 머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 이전에 내가 30대로 진입하면서 부모님께서도 70에 가까워지시는 이 때에, 노화와 함께 인지저하를 겪으실 부모님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져 책소개에 그려진 내용이 남일같지 않게 느껴졌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어쩌면 내게 찾아올 수도 있는 부모님의 어려움을 잘 준비하고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딸이, 상담 전문가가 되고 싶어 서평단에 지원해 책을 받아보았다.

 

  책을 읽어나가며,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일상의 루틴'유지와 '사회적 접촉'의 중요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가사노동과 같이 젊은시절부터 유지해 온 일상의 루틴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유지해 나가는 것이 인지기능 회복에 중요한 것이기에 저자분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어머니께서 자연스럽게 저자분의 청소, 설거지를 조금씩이나마 보조할 수 있게끔(자연스럽게 도울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매일 꾸준히 산책할 수 있게끔 도움을 드리기도 한다.

 한편 노년기의 인지회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접촉', 즉 긴밀한 타인들과의 친밀감을 유지하고 외부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의 중요성이었는데, 이를 위해 저자께서는 어머니의 사회적 활동을 위해 센터의 미술강좌, 음악강좌에 등록하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시거나 카카오톡 등 연락수단을 통해 친구분들과 꾸준히 소통하실 수 있게끔 도움을 드리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부모님만 보더라도 성당활동을 꾸준히 하시며 모임에 참여하시는 어머니, 당구 모임에 참석하시며 동창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시고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기시는 아버지의 생활 속에서 더욱 건강성이 확보되는 것을 떠올리게 되는 한편,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팬데믹(코로나19) 이후 출생한 아이들의 지능이 코로나19 이전 출생한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저하되었다는 연구결과 또한 존재하는데, 이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본성에 대한 유의미한 연구가 아닌가 싶다. 영아기의 부모애착, 유아-아동기의 또래관계, 그리고 노년기의 공동체활동이 모두 인지기능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신뢰로운 친구들과의 교류와 대화가 얼마나 깊이 우리의 삶에 관여하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WHO에서 바람직한 노년의 모델로 제시한 '활동적 노년'(Active Aging)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활동적 노년은 심신의 건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내 집에 살지, 요양원에 들어갈지)을 자신이 결정하고(자율성), 공동체 내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받으면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독립성) 노인이다.

  -  장유경,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딜레르, 2021, 240쪽.





 


사회적 접촉이 많은 것은 더 건강한 생활습관의 표시일 수 있다. 
 사회적 접촉이 많은 사람은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활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일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사회적으로 활동적이어서 사회적 접촉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사회적 접촉이 많으면 치매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사회적 위축은 치매 위험의 증가와 관계된다. 치매 진단을 받기 전에 사람들은 점점 사회적인 접촉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이것이 실제로 향후 치매 가능성에 대한 초기 신호이기도 하다.

 -  장유경,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딜레르, 2021, 188-189쪽.



 

 

 

 


  한편 또한 책을 읽어나가며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미 성장하여 독립해 살던 딸인 자녀가 어머니와 다시 함께 살면서 격는 여러 심리적인 고민과 어려움이었는데, 경도인지장애의 증상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어머니를 대하는 저자분의 모습을 통해 많은 부분을 체득할 수 있었다. 저자분에 비하면, 그리고 실제로 경도인지장애나 치매를 겪는 가족을 부양하는 많은 이들에 비하면 나의 어려움은 세발의 피이기는 하나 노화와 함께 점점 반복질문이 늘어나시고 쉬이 짜증과 분노를 내시며 감정적으로 변하시는 父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고 나 역시 이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기도 하는데, 조금더 차분함과 인내심을 지니고 부모님을 대할 필요성과 더불어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내가 건강해야 부모님의 노화와 관련된 심리적 문제에 건강하게 대처/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2004년, 중학교 1학년 시절 치매 합병증으로 작고하신 친할아버지를 주로 부양하던 어머니께서 얼마나 내면에 어려움을 겪으셨을지,(자녀돌봄,시부모 부양, 가사노동)  노화와 더불어 사회적 활동이 극도로 줄어드시고 주로 집에서 TV시청에만 매몰하시던 친할아버지께서는 어떠한 감정을 주로 느끼셨을지, 유년시절의 나로서는 차마 다 헤아릴 수 없었던 그 모든 것을.

 그리고 대학 시절, 내가 심리학을 복수전공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본다. 교직이수에 실패해 특수교육과 복수전공이 무산되었던 20대 초반의 어느 날, 내가 심리학을 복수전공한 것은 자기이해의 욕구와 더불어 나의 주변에 자리한 부모님과 가족들의 내면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가족의 경계를 지키며 건강성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문상담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임용을 준비하는 현재도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초심(初心)을 기억하며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성과 더불어 주변 소중한 이들의 심리적 건강성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가족들의 질병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자칫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고 부정적 정서반응을 야기할 수 있는 가족들의 언행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도움을 된 책이다.

 한편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 몇 년 전 대학원에서 학부때와는 다른 교수님께 '발달심리학' 수업을 수강하며 '노인심리학'을 강조하시던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노년'을 두려움의 대상, 회피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노년기는 곧 삶의 종결, 무망감, 허무함과 연결되는 인식(병리적, 수동적 관점)이 팽배한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발달단계 상 노년기를 맞이하는 만큼, 자신은 어떠한 노년기를 맞이할 것인지 그리며, 전 생애를 통틀어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노년기의  중요성을 조망하는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특히 인지적, 언어적 소통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만큼, (이 책에서도 등장했던)미술치료나 음악치료 등이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는데, 전문상담교사로 평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로서,(상담 전문자로서) 노인심리학과 관련된 연구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비언어적 소통이 가능한 상담도구에 더욱 관심을 갖고 전문성을 확대해 나가고자 새로운 결심을 하게된다.

 

 

'일상의 기적' 시 속에서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맴돈다. 오늘도 이 사소한 일상의 기적에 감사한다.

                      -  장유경,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딜레르, 2021, 256쪽.

 

 

 

 

by papyros 2021. 12. 30. 18:39

[과제3] 제5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3주차

 

피천득, 『인연,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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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3주차에는 피천득 시인의 수필집 인연 , 엄마(99p)에서 인연(136p)까지 일독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수필

「엄마」, 「찬란한 시절」, 「딸에게」, 인연이었다.   '서영이'라는 부제(수필집의 Part2)가 적힌 두번째 파트로 넘어오면서, 피천득 시인은 그의 일생에

에정을 거진 유일한 두 명의 여인들에 대한 기억과 마음을 풀어낸다.

 

 특히 「엄마 「그 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남편을 일찍이 떠나보내고, 그미마저도 병환을 얻어 고향 평양에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아픔어린 사랑.

그 시기가 유독 짧아서였을까. 시인이 유년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과 함께 가꾼 추억들은 유독 각별해 보인다.

 마지막 임종 전까지도 아들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어머니를 빨리보려 달려가던 피천득 시인의 마음.

애타면서도 아름다운 모자지간의 사랑이 책장 너머까지 전해졌다.

 

 

 밤이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마당에 데려가 별 많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북두칠성을 찾아 북극성을 가르쳐 주었다. 은하수는 별들이 모인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그때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행히 천문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나는 그 후부터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피천득, 「엄마, 『인연』, 민음사, 2018, P103-104.

 

 

 

 

  한편, 「서영이에게」, 「어느 날」, 「서영이」,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이와 난영이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딸 '피서영'에 대한 사랑이 눈에 띠었다. 시인에게 있어 모친 다음으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여인이었으며 그만큼 애정을 쏟아 키웠던 서영이.

책을 읽으며 궁금해 문득 찾아보니 피서영 선생께서는 이론물리학 학계에서 저명한 학자로 알려져 있더란다. 유년시절부터 애지중지 사랑을 다 전하며 키워온 딸이 결혼도 마다하고 학문의 길을 택했을 때 으레 그 시대의 어른들이라면 결혼을 재촉하거나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등 가부장적인 태도를 유지하셨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피천득 시인에게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와 정 반대로 비록 영문학과 물리학으로 전공을 하고 공부를 해 나가는 학문분야는 다르지만, 연구자-학자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외로움에 대해 공감하고 격려하며, 어떤 길을 택하든 딸 서영이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그 길이 옳은 길임을 격려하고 있다. 또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딸에게 인문학적 감성 또한 강조하며 과학과 철학을 양립시켜 공부할 것을 조언하는 피천득 시인의 균형잡힌 태도 또한 눈에 들어왔다. (통섭적 사고는 최재천 교수님 이전에 피천득 시인이 있었다...?!!!! ㅎㅎ)

 

다정한, 그리고 부친이었으나 때로는 스승이, 때로는 동료 연구자가 되어주신 아버지가 계셨으니 - 비록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피서영 선생님의

지성과 인격 또한 분명 시인을 닮지 않으셨을까, 막연히 추측해 본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어 순조로운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아니면 외롭게 살며 연구에 정진하는 것이 네가 택해야 할 길인지 그것은 너 혼자서 결정할 문제다. 어떤 길이든 네가 가고 싶으면 그것이 옳은 길이 될 것이다.

(중략)

한편 과학자에게는 철학 공부가 매우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현대 과학은 광맥을 파 들어가는 것과 같이 좁고 깊은 통찰은 할 수 있으나 산 전체의 모습을 알기 어렵고 산 아래 멀리 전개되는 평야를 내려다볼 수는 없을 것이다 너는 시간을 아껴 철학과 문학을 읽고, 인정이 있는, 언제나 젊고 언제나 청신한 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피천득, 「딸에게, 『인연』, 민음사, 2018, P127-128.

 

 

 

 지막으로, 이 수필집의 제목으로 꼽히기도 한, 저명한 수필 「인연」.

첫사랑 - 아니 이 경우엔 순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 감정이 무엇이든, 사랑하고 아끼던 이를 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좇아가고 싶은

시인의 그 마음이, 그리고 한편으로는 추억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지 못한 데 대한 씁쓸한 회한이 그려진 작품이었다.

그러함에도 가을이면 또 춘천 소양강에 들르고 싶다는 소망은,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때이고 꺼내 추억할 수 있는 마치 일기장과도 같은 그런 애틋한 감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름도 잊고 얼굴도 기억에 없지마는 나와 제일 정답게 놀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양말이 조금 뚫어졌던 것이 이상하게도 생각난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사는지, 아마 대학에 다니는 따님이 있는 부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사는 그는 영원한 다섯 살 난 소녀이다.

유치원 시절에는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고, 사는 것이 기뻤다.

아깝고 찬란한 다시 못 올 시절이다.

 

 -피천득, 「찬란한 시절, 『인연』, 민음사, 2018, P110-111.

 

 

 

 

 

 

 





 

 

 

 

by papyros 2018. 8. 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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