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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5]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5주차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어느덧 5주차에 이르러, 제 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의 마지막 주차를 맞았다. 이번 주에는 소설의 결말부인 ‘7장-1958년 11월 14일 런던’ 부분과, ‘옮긴이의 말 – 고아로서 세상과 대면할 때’(김남주) 까지 읽으며 을 5주간에 걸친 독서를 마무리했다.
결말부에서는 1958년, 크리스토퍼의 나이가 약 50대 후반-60대 초쯤에 이르고, 제니퍼의 나이가 서른한 살에 이른 때를 그리고 있다. 크리스토퍼가 홍콩의 로즈데일 메너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는 이야기가 결말부의 서두에 등장하는데, 어머니 다이애나와 퍼핀(크리스토퍼 뱅크스)의 대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점은 크리스토퍼가 필립 삼촌을 만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당시의 청년시절 직후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세계대전을 겪은 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어머니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크리스토퍼에게 주어진 인생의 과업 - 가능한 빨리 어머니를 구하는 일, 그리고 그 안에 함축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 – 양 쪽 모두가 적기에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 어린 퍼핀이 어떤 용서를 받아야 할 만큼 그른 길을 가지 않았다고, 그녀의 아들이 자기의 길을 잘 걸어 나갔다고 믿고 있다.
지난 4주차의 감상과 이번 주차에 읽은 내용을 연결 지어 작품 전반에 대한 감상을 풀어나가 보자면, 크리스토퍼는 청년기, 필립 삼촌으로부터 세계의 진실을 듣기 전까지 성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보호와 사랑, 안정감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유년시절, 그 환상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탐정이 된 것 또한 부모를 찾아 안정적이고 평화롭던 유년시절/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무의식의 욕망에서 기인했다.
비록 중간부분이 작품 속에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필립 삼촌을 만난 이후 아마도 크리스토퍼의 삶은 이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체적인 성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그가 마침내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도. 어쩌면 그는 의식적으로 자기 내부에 자리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밀어내기 위해 더욱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내면 깊이 기저해 있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심리적 갈등을 이루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크리스토퍼에게는 더욱 무거운 책임의식이 자리하였으리라 여긴다. 그가 요양원에서 어머니의 말을 듣기 전까지 과연 온전히 그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지쳐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퍼핀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크리스토퍼, 제니퍼, 세라 헤밍스. 이들 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고아’로서의 정체성. 고아로서 세계와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 깨져버린/깨어나야만 하는 환상을 자각하고 주체적인 존재로서 성장해나가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이 무언가를 잃어왔는가. - 크리스토퍼와 세라의 사랑, 제니퍼의 양육자로서 역할, 제니퍼의 자존감 등 -
역자후기의 마지막 문구와 같이, 기실 ‘고아’라는 의미가 단지 부모님의 상실에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상계/상상계에서 벗어나 ‘주체의 결여’를 인정하고, 삶의 모순을 인정하고 실재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 여긴다.
아름답고 도덕적이었던 어머니와 따뜻했던 아버지, 그의 멘토인 필립삼촌, 아키라와의 우정으로 이루어졌던 크리스토퍼의 ‘환상스런 유년시절’이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 제국주의, 세계대전 등 ‘세계의 실체’와 마주하면서 발생한 모순과 혼란, 여러 간극들 -
비록 수많은 상실과 미처 성취하지 못한 삶에 공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공허함까지도 ‘내 것’으로 수용할 때, 자신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어루만지며 인정할 때, 삶을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내적 평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제는 자신의 고향을 ‘상하이 공동조계’가 아닌 ‘영국 런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마침내 자아의 갈등을 마친 크리스토퍼의 모습은 독자에게까지 내적 안정감을 전해 준다.결국 크리스토퍼의 삶을 통해 주체의 ‘결여된 부분’, 자아와 세계 사이의 모순을 무리해서 제거하기보다는, 그 자연스런 간극, 자기 내면에 잔존해 있는 자아의 부분들을 통합적으로 수용하면서 삶을 영위 해 나갈 때 자아가 비로소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을 마무리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 작품은 개개인의 성장과 실존,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을 작품 속에 함축하고 있으면서도 쉬운 내용으로 뛰어난 성장소설이자 역사소설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와의 첫 만남이 이 작품이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앞으로 마주하게 될 가즈오 이시구로의 다른 작품 - <남아 있는 나날>, <녹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등 – 또한 매우 기대된다.
“퍼핀을 용서하라고요? 퍼핀을 용서하라고 하셨나요? 왜죠?” 그러더니 다시 행복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 아이. 그 아이가 잘 하고 있다고들 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아, 그 아이가 얼마나 내게 걱정덩어리인지 몰라요. 상상도 하지 못할 거예요.”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30쪽.
내 말은 어머니가 나를 줄곧 사랑하셨다는 거야. 그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말이야.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 하나, 내가 좋은 삶을 누리는 거였어. 그 나머지 모든 것, 내가 어머니를 찾으려 노력했든, 이 세상을 파멸로부터 구하려 노력했든 어느 쪽이든 어머니께는 아무 차이가 없었던 거야. 나에 대한 어머니의 감정은 언제나 그저 거기 있는 것으로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어. 그건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나로서는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어.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30-431쪽.
“사람들이 저의 정신을 본다고 생각하신다고요? 크리스토퍼 삼촌, 그건 삼촌이 저를 볼 때마다 여전히 삼촌이 예전에 알았던 어린 소녀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직 그 소녀가 그대로 남아있는걸. 내 눈에 그게 보여. 아직 그게 그곳에, 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너를 바꿔 놓지 못했단다, 얘야. 그건 네게 충격 비슷한 것을 주었을 뿐이야. 그게 전부야.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이 세상에는 괜찮은 남자들이 몇 있단다. 너에게 알려주마. 너는 단지 있는 힘을 다해 그 사람들을 피하지만 않으면 돼.”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34쪽.
이런 필생의 관심사에 속박당하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의 운명은, 사라진 부모의 그림자를 오랜 세월 뒤쫓으면서 고아로서 세상과 대면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그 임무를 완수하려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41쪽.
우쭐한 척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곳 런던에서 하루하루를 무심하게 보내면서 나는 진정한 만족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나는 공원을 산책하고, 미술관에 들르는 것을 즐긴다. 최근 들어서는 자주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 들러 내 사건에 관한 기사가 실린 옛 신문을 들추면서 자그마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이 도시는 어느새 내 고향이 되어서,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해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럼에도 때때로 공허감 같은 것이 내 삶에 찾아든다. 제니퍼의 제안을 앞으로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41-442쪽.
이 작품은 ‘고아로서의 운명’을 품은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을 먹먹하게 담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중에서 어쩌면 가장 사적인 소설이다. 실제로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상하이를 떠난 나이는 이시구로가 나가사키를 떠난 나이와 비슷하다. 책을 덮으면서 어쩌면 고아가 된다는 것이 실제로 부모를 여의는 여부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고, 낙원을 잃은 이후 인간은 모두 고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시구로가 어쩔 수 없이 '문학'적인 이유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49쪽.
리즈 부르보, 『다섯 가지 상처』, Angle Books, 2017. (0) | 2017.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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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0) | 2017.12.17 |
[과제4]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4주차 (0) | 2017.12.08 |
[과제3]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3주차 (0) | 2017.12.01 |
[과제2]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2주차 (0) | 2017.11.24 |
[과제4]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4주차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스포주의 ( 이 글은 소설의 반전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4주차에는 ‘5장- 1937년 9월 29일, 상하이, 케세이 호텔’ 과 ‘6장- 1937년 10월 20일, 상하이, 케세이 호텔’ 부분 까지, 총 두 개의 챕터를 읽었다. 여러 의미에서 지난 주차에 느꼈던 더딘 전개에 비해 이번 두 장을 읽으며 사건이 확연히 진전되었으며, 두 개의 챕터, 그 여정을 지나오는 동안 놀라운 조우와 반전이 가득했다.
특히 부모님이 감금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예 천’의 집 맞은편 건물)를 마침내 알아내, 부모님을 구출하러 가기 위한 길에서 군인이 된 아키라와의 만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년 시절의 크리스토퍼와 아키라가 성인이 되었고, 그들은 그들이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좋은 세상’으로 기억하고 추억한다. ‘눈부신 시절’이었으며, 그들이 유일한 ‘고향’이었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웃을 수 있는.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세계 자체가 ‘긍정적인 곳’으로 인식되는 그런 시절. ‘친구/도모다치/Friend’와 함께 아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세계. 그렇기에 크리스토퍼와 아키라의 진실되고 순수한 우정은 아름답게 여겨진다. 바로 그 때문에 크리스토퍼 또한 아키라가 일본군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초탈할 수 있는 것이리라.
크리스토퍼가 아키라에게 새삼 상기시켰듯이 사실 ‘완벽한’ 세상이라는 건 없으며,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한, 아이들을 동심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부모님들의 노력 때문에 유년 시절의 세상이 그러한 곳으로 추억될 수 있는 것이다.
“좀 이상한 얘기 해 줄게, 아키라. 너한테는 이런 얘길 할 수 있지. 영국에서 살던 그 모든 세월 동안, 나는 그곳을 고향처럼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상하이 공동조계, 내 고향은 영원히 그곳이야.”
“하지만 지금 공동조계는 …….” 아키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여 있어. 내일 아니면 모레 …….” 그러면서 그는 작별이라는 뜻으로 허공에 한 손을 흔들어보았다.
“네 말뜻 알아. 우리가 어렸을 때 그곳은 우리에게 아주 견고해보였지. 하지만 지금은 네가 말한 대로야. 그곳이 우리 고향이야. 하나뿐인 우리의 고향.”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60쪽.
“이것 봐, 소용없어. 그냥 한 단어만 알려 줘. ‘친구’라는 뜻의 단어 말이야. 오늘 밤 그 이상은 배울 수가 없을 것 같아.”
“도모다치.” 하고 그가 말했다. “도-모-다-치.”나는 그 단어를 몇 번 반복하면서 스스로 꽤 정확하게 발음했다고 생각했으나 그가 어둠 속에서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예전에 곧잘 그랬던 것처럼 둘이 함께 도저히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우리는 꼬박 일 분 동안 그렇게 웃었으며 그런 다음 나는 갑자기 곯아떨어진 것 같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67쪽.
“어린 소년이었을 때 꿈을 꾸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계셨지. 난 어린 소년이고.”
“그런데 기억나, 아키라? 우리가 곧잘 하던 그 놀이들 말이야. 우리 정원의 그 작은 언덕에서 하던 놀이 말이야. 기억나, 아키라?”
“그래, 기억나.”
“참 좋은 추억이야.”
“그래. 아주 좋은 추억이지.”
“눈부신 시절이었어. 물론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눈부신 시절이었는지 몰랐지. 아마 아이들은 그걸 모를거야.”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68쪽.
“그 애한테 말해 줘. 내가 조국을 위해 죽었다고. 엄마 말씀 잘 들으라고. 지켜 주라고. 그리고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적당한 영어 단어를 찾느라 애쓰는 한편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소곤거림에 가까웠다.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말이야.”
그가 벽을 매끄럽게 다듬는 미장이처럼 손으로 허공을 다듬듯 움직이면서 다시 한 번 그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눈으로 의아한 듯 자기 손이 움직이는 모습을 응시했다.
“그래.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해 줘.”
“어렸을 때 우리는 좋은 세상에 살았어.”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우리가 지금까지 우연히 마주친 이 아이들은 어떤가. 그들이 세상의 실제 모습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그토록 일찍 알게 되다니 정말 끔찍해.”
“내 아들은 다섯 살이야. 일본에 있어. 그 애는 아무것도 몰라. 그 애는 세상이 좋은 곳인 줄 알고 있어. 친절한 사람. 장난감. 엄마와 아빠가 있는 그런 곳 말이야.”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69쪽.
“내 아들이 세상이 좋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그는 고통 때문이거나 적절한 영어가 떠오르지 않아서거나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말을 멈췄다. 그가 일본어로 무슨 말인가를 하다가 영어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애와 함께 있고 싶어. 그 애를 돕고 싶어. 그 애가 세상의 실상을 알게 될 때 말이야.”
“이것 봐, 넌 정말 바보같아. 그건 지나치게 침울한 얘기잖아. 넌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해 줄게.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 세상이 얼마나 좋아보였는가 하는 얘기 말이야. 어떤 점에서는 말도 안 돼. 그저 어른들이 우리에게 그런 생각을 주입시킨 것뿐이야. 어린 시절을 지나치게 그리워해서는 안 돼.”
“그……리워 한다고…….” 아키라는 마치 그것이 자신이 찾으려 애썼던 말이었던 것처럼 되뇌었다. 그런 다음 그는 일본어로 무슨 단어인가를 말했는데 아마 ‘그립다’의 일본어일 것이다. “그립다라. 그립다는 건 좋은 일이야. 아주 중요한 일이지.”
“정말 그럴까, 친구?”
“중요한 일이야. 아주 중요해. 그리워한다는 것 말이야. 그리워하면 기억하게 되거든. 우리가 어른이 되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라라는 걸 말이야. 우리는 그 기억을 가지고 좋은 세상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거지. 아주 중요하지. 조금 전 나는 꿈을 꾸었어. 꿈속에서 나는 어린아이였어. 엄마 아빠가 내 곁에 계셨지. 우리 집 안에.”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70-371쪽.
그러나 아키라에게 이러한 말을 건넬 당시 크리스토퍼로서는 자신이 바로 아직 그런 세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노란 뱀’과의 만남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의 절정이자 앞선 의문들이 해소됨과 동시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는 지점. 설마 하는 마음을 다소간 지니고 있었지만, ‘노란 뱀’은 바로 유년 시절 크리스토퍼가 믿고 따르던, 그렇지만 그를 배신한(배신했다고 여긴) ‘필립 삼촌’이었다. 그리고 그와의 조우, 대화를 통해 크리스토퍼가 믿어왔던 세계는 파괴된다. 아편 무역의 수익금 문제로 고용주에게 맞서 제거되었다고 믿었던 아버지는 사실 정부(情婦)와 함께 떠난 것이었으며, 어머니는 아편 무역의 권력자이자 군벌인 ‘왕 쿠’에 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그의 첩 생활을 하고 있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크리스토퍼는 비로소 듣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재력, 그의 삶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모친이 첩 생활을 하는 대신 거래조건으로 제시한 왕 쿠의 지원 때문이었으며, 사실 필립 삼촌은 배신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유년시절이 끝난다는 건 바로 이러한 의미가 아닐까. 세계를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던 마치 ‘환상’과 같은 보호막이 사라진다는 것. 이 보호막이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이지만 ‘통과의례’로서, 이 과정을 거쳐야 현실을 똑바로 대응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신의 행동양식을 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가 프리벳가에 만들어 둔 보호마법이 해리가 열일곱 살이 되는 순간 풀려버리고, 그가 헤드위그를 상실하는 것도,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선의 세계에서 벗어나 알을 깨고 태어난 ‘압락사스’의 의미, 선악이 공존하는 세계의 의미를 수용해나가는 것도 모두 같은 의미이다. 이런 지점에서 바로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었다. 비록 추리소설의 형태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의 과거와 자연스럽게 얽혀있는 ‘성장소설’. 아키라는 1930년대 후반, 일본군으로서 전쟁에 나아가면서 이미 세상의 잔혹함을 온몸으로 깨달았기에 더욱 간절히 유년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편 크리스토퍼는 이제야 막 사건의 실체, ‘진실’. 그 끔찍함을 깨닫게 되어 유년기를 벗어난 어른으로의 성장 과정으로 여정을 떠난 것이며, 그가 깨닫게 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말부에 나타날 그의 ‘선택’만이 남았다. 부디 그가 후회 없는 선택을 통해 그가 꿈꾸는 ‘좋은 세상’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진실로 바란다.
나는 이미 귀를 막고 있었으나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만해요! 어째서 나를 이렇게 고문하는 거죠?”
“어째서냐고?” 이제 그의 음성은 성난 기미를 띠었다.
“어째서냐고? 그건 네가 진실을 알기를 바라기 때문이지! 이 모든 세월동안 너는 나를 비열한 인간이라고 여겨 왔어. 아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세상이 너한테 하는 짓이야. 내가 진심에서 이런 짓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할 생각이었어. 나 나름의 방식으로 한때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적도 있지. 그런데 지금 내 꼴을 보거라. 너는 나를 경멸하고 있잖아. 너는 그동안 내내 나를 경멸해 왔어. 퍼핀, 내 아들처럼 여겨왔던 바로 네가. 그리고 지금도 나를 경멸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 실상을 알겠니? 너로 하여금 영국에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고? 네가 어떻게 유명한 탐정이 될 수 있었을까? 탐정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겠니? 도둑 맞은 보석, 유산 때문에 피살된 귀족 나부랭이들. 너는 맞서 싸울 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 어머니는 네가 영원히 그 마술 같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결국 그런 세상은 산산조각 나게 마련이다. 네게 있어서 그 세상이 그토록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건 기적이야. 자, 퍼핀. 내가 너에게 기회를 주마. 자.”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13-414쪽.
“어린 시절은 지금 보면 아득히 먼 옛날처럼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러면서 대령이 차 밖을 가리켜 보였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요. 일본에 궁녀이면서 시인인 사람이 있었는데, 오래 전 어린 시절이 얼마나 슬픈가에 관한 시를 썼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이 우리가 자랐던 이국의 땅과 같은 것이라고 했지요.”
“글쎄요, 대령님. 제게는 어린 시절이 낯선 이국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많은 점에서 저는 지금까지 어린 시절 속에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막 어린 시절을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지요.”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389-390쪽.
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0) | 2017.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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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5]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5주차 (0) | 2017.12.11 |
[과제3]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3주차 (0) | 2017.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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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1]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1주차 (0) | 2017.11.17 |
[과제3]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3주차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3주차에는 ‘4장- 1937년 9월 20일, 상하이, 케세이 호텔’ 부분을 읽었다. 당초 5장까지 읽고자 계획했으나 일이 바빠 5장까지 읽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4장에서는 서사 면에서 크게 진전된 부분이 별달리 없었기에, 더더욱 남은 5장부터 7장 까지의 서사 전개가 기대된다.
이번 주차에는 상하이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뱅크스가 ‘노란 뱀’, 즉 그의 부모님을 납치해 간 이들을 맞닥뜨리면서 가족을 상실한 그 사건을 해결할 가능성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키라와의 재회도.사실, 별달리 급격한 전개를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에 읽은 4장은 사건이 절정으로 치닫기 전, 절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풀어나갈 열쇠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히 추리소설의 매력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퍼즐을 맞춰갈 것인가에 대한 ‘예측’과 ‘희망’에 있기 때문에, 이번 4장은 충분히 의미있는 지점이었으며 이제 얼마 안남은 소설의 마지막 세 장이 더욱 기대가 된다.
특히 아무 죄 없는 이들을 인질로 납치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노란 뱀’이라는 조직의 진정한 실체가, 그리고 아키라는 중국, 이 상하이에서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대한 수많은 의문들이 하나씩 풀려나가길 바란다.
“그 세부 사항은 선생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보복 행위가 길게 끄는 이유는 홍군도 배신자가 누군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더군요. 그래서 엉뚱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정의에 대한 볼셰비키식 관점과 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노란 뱀이 누구인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달라질 때마다, 나가서 또 다른 가족을 처단하는 겁니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223쪽.
아직 난징 거리의 골목길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나는 그 일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도시의 이 구역 분위기는 밤이 되어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아서 이상한 걸인 하나가 말을 걸기도 하고 한번은 술 취한 선원과 부딪치기도 했으나 비교적 평온한 기분으로 밤 시간을 즐기는 인파에 섞여 걸을 수 있었다. 보트 창고에서 울적한 작업을 한 끝이어서 즐길 거리를 찾아다니는 온갖 인종과 계층의 인파 속에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불빛이 밝은 문 앞을 지날 때면 실려 오는 음식 냄새와 독특한 향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나는 최근에 점점 그랬듯이 간밤에도 주위를 둘러보며 혹시라도 아키라를 보게 될까 하는 희망에서 지나치는 군중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사실 상하이에 도착한 직후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밤에 이곳에서 옛 친구를 보았다고 거의 확신했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234-235쪽.
[과제5]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5주차 (0) | 2017.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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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4]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4주차 (0) | 2017.12.08 |
[과제2]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2주차 (0) | 2017.11.24 |
[과제1]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1주차 (0) | 2017.11.17 |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배송인증사진 (0) | 2017.11.17 |
[과제2]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2주차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2주차에는 ‘3장- 1937년 4월 12일, 런던’ 부분을 읽었다. 당초 두 개 챕터를 읽고자 했으나 이번 주가 여러모로 바빴던지라 다음 주차에 4장과 5장을 읽을 계획이다. 이번 주차에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해 경계하는 국제정세(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2년 전)가 그려짐과 더불어, 크리스토퍼 뱅크스가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 있는(부모님을 잃은) 소녀 제니퍼에게 느끼는 애정, 그리고 상하이로 귀환하고자 하는 크리스토퍼 뱅크스의 책임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오, 이런. 우리는 당연히 상하이로 갈 거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을 묘사하기는 어렵다.아마 놀라움이 어느 정도는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게 기억난다. 오래 전 채링워스 클럽에서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들었던 이상한 감정, 요컨대 나의 일부가 바로 그 순간을 기다려온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그동안 세라와 맺었던 우정이 바로 이 시점을 향해 움직여 온 것 같은, 그리하여 이제 마침내 그 시점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 우리가 계속 주고받은 몇 마디 말은 마치 이미 어디에선가 여러 번 예행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인상을 주었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206쪽.
세계의 긴장은 줄곧 상승하고 있고, 식견있는 이들은 우리의 문명을 불붙은 성냥이 떨어진 건초 더미에 견주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번민에 싸인 채 여기 런던에 남아 있다. 그러나 어제 온 편지로, 퍼즐의 마지막 조각들이 맞추어진 셈이다. 이토록 오랜 세월 후 마침내 그때가, 내가 직접 그곳으로, 상하이로 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그 예의바른 서부 지방의 형사가 표현한 대로 ‘범을 처단할’ 때가.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207-208쪽.
특히 크리스토퍼는 상하이로 돌아가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을 찾는 것을 어떤 종류의 사명감으로 여기는데, 자신이 그것을 수행할 때 제니퍼에게도 떳떳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 같이 보였다. 아마 그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진실을 밝혀야 크리스토퍼 본인, 제니퍼가 겪은 일들을 풀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들이 겪을지도 모르는 더 많은 상실을 방지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리라 여긴다. 이미 우리는 2차 세계 대전 – 전쟁이라는 국제 정세 속에서 억울한 희생을 당한 이들, 가족과의 이별을 당한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존재함을 잘 알고 있다. 탐정으로서 성공한 크리스토퍼는 그 자신이나 제니퍼와 같은 아이들 모두에게 역할모델이 되는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며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그러한 사명, 책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상하이로 돌아가 성년으로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탐정으로서 진실을 풀어낼 크리스토퍼의 행보가 기대된다. 부디 크리스토퍼와 제니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 자리할 그와 같은 아이들의 삶을,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2주차 독서를 마무리한다.
“학교에 있으면 이따금 내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잊어버리곤 해요. 물론 이따금이지만 말이에요. 다른 아이들처럼 방학 때까지 남은 날을 헤아리고 방학이 되면 엄마 아빠를 다시 볼 생각을 하죠.”
(중략)
“그 일이 종종 아주 어렵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주변 세상이 온통 무너지기라도 한 것 같을 거야. 하지만 이 말만은 해 주고 싶구나, 제니. 너는 흩어진 조각들을 다시 맞추는 놀라운 일을 하고 있어. 정말이란다. 전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네게는 지금 그 일을 계속해서 너 자신을 위한 행복한 미래를 만들 능력이 있어. 그리고 난 언제나 여기서 너를 도울 거야. 네가 그걸 알아 주었으면 좋겠구나.”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213쪽.
[과제4]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4주차 (0) | 2017.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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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3]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3주차 (0) | 2017.12.01 |
[과제1]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1주차 (0) | 2017.11.17 |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배송인증사진 (0) | 2017.11.17 |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0) | 2017.11.12 |
[과제1]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1주차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지난 추석연휴 기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영예의 문학상 수상자는 일본 출신의 영국인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했더니, 2011년 경부터 매 해 민음북클럽에 가입해 오면서 선택했던 모던클래식 작품 중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들이 있었고, 이미 집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이 많이 있었다. 삶이 바쁘다는 변명 아닌 변명 하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소장만 하고 아직 읽어오지 못했는데, 마침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제 4회 손끝으로 문장읽기의 테마가 ‘가즈오 이시구로’ 읽기라서 집에 없는 책을 선택해 최초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이번 1주차에는 ‘1장- 1930년 7월 24일, 런던’ 과 ‘2장-런던 1931년 5월 15일, 런던’ 까지 독파했는데,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은 참으로 신선했다. 아마 서사가 처음 시작되며 ‘크리스토퍼 뱅크스’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 그리고 그의 유년시절을 접하면서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되고 그 인물의 내면에 접속하게 되었기 때문이 컸던 것도 같고 ‘탐정’이라는 소재가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크리스토퍼는 중국 상해 외국인 조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영국인인데, 타국에서 유년을 보내며 고민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유사한 처지의 일본인 친구 ‘아키라’와의 일화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 어느 것보다도 그가 유년 시절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필립 삼촌이 그에게 건네 준 조언이, 두 장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 닿은 지점이었다.
“그럼 네 생각은 어떤데, 퍼핀? 네가 더 영국인다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니?”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래, 모르는 것도 당연하겠지. 사실 여기에서 너는 아주 다른 주위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으니까 말이야. 중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미국인이 다 있잖니. 네가 혼혈아처럼 자라는 것도 당연할지 모르지.” 그러면서 삼촌이 짤막하게 웃었다. 그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내 생각이 뭔지 알겠니, 퍼핀? 나는 너 같은 소년들이 모든 온갖 것을 이것저것 경험하며 성장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그러면 사람들이 서로를 훨씬 더 잘 대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야. 무엇보다 이런 전쟁도 줄어들게 될 거다. 아, 그래. 아마 언젠가는 이런 모든 갈등이 끝나는 날이 올 거야. 위대한 정치가나 교횐 이런 단체들로는 그 갈등을 끝낼 수 없단다. 사람이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거든. 사람들이 너처럼 바뀔 거란다, 퍼핀. 이런저런 면이 좀 더 섞이게 되는 거지. 그러니 혼혈아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단다, 그건 유익한 거니까.”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112쪽.
아키라는 일본에 도착한 바로 첫날부터 더할 나위 없이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비록 그 애가 그 사실을 한 번도 분명하게 시인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 애가 자신의 ‘이질적인 면’ 때문에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으리라고 추측했다.
그 애의 행동방식, 태도, 말투 같은 것들이 그 애를 별종으로 낙인찍었고, 그래서 동급생 뿐 아니라 교사, 심지어는 – 그 애는 그 사실을 여러 번 암시했다. - 함께 사는 친척들이 조롱감이 되었다. 결국 그 애가 너무나 불행하게 지내는 것을 본 그 애의 부모님은 학기 중간에 그 애를 다시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130쪽.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201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재에게도 이는 유효한 메시지라 여긴다. 세계화, 국제화를 논하면서도 우리와 다른, ‘이질적’인 누군가를 차별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 문화적 낙인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나 사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범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의 문제는 공동의 과제라 본다. 저자 본인이 일본계 영국인으로서 이러한 차별을 직접 경험했기에 작품에 녹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필립삼촌의 말대로 초점은 ‘다름’이나 ‘이질적’인 것이 아닌, ‘공통점’을 찾는 데 있음을, 공감과 이해의 지평을 확장해 나가는 데 있음을 되새겨 본다.
다음 주차에 읽을 분량이 매우 기대되는데, 필립 삼촌에 대한 진실과(저렇게 멋진 명언을 남기고도 2장 끝무렵에는 엄청난 배신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마치 세베루스 스네이프처럼.. 그래 결국엔 스네이프같은 인물이기를 기도해 본다..) 아키라와의 재회 등 – 앞으로 진행될 ‘전개’ 부분이 매우 기대되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나 행복한 가을이다. 이 책이 가즈오 이시구로와의 만남에, 그에게 매료되는 데 기틀이 되기를 바란다.
[과제3]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3주차 (0) | 2017.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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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2]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2주차 (0) | 2017.11.24 |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배송인증사진 (0) | 2017.11.17 |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0) | 2017.11.12 |
이제월,『만일 해리포터가 삶을 바꿀 수 있다면』, 항해출판사, 2017. (0) | 2017.10.30 |
가을의 끝자락에서 읽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은 예년에 민음북클럽 가입 시 모던클래식 책으로 이미 받은적이 있기는 하지만, (변명하자면)원체 삶이 바빴던지라 읽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 책이 처음으로 읽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인 셈이다. 함께 손끝으로문장읽기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아 더욱 든든하다.
[과제2]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2주차 (0) | 2017.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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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1]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1주차 (0) | 2017.11.17 |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0) | 2017.11.12 |
이제월,『만일 해리포터가 삶을 바꿀 수 있다면』, 항해출판사, 2017. (0) | 2017.10.30 |
『82년생 김지영』 : 인권감수성이 부재한 시대 (0) | 2017.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