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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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라이프 재킷』 가제본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창작과 비평)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이현 작가님과, 창비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각 개인의 삶에서 성장통을 겪는 모든 아동·청소년과 청년들을 생각하며 이 서평을 남깁니다.

 

 

   ‘라이프 재킷 즉 우리말로 구명보트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요트 탈래?’ 라는 한 남고생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서사가 시작된다.

 고등학생 천우가 전학이 확정된 이후, 부산의 바닷가에 있는 부모님의 요트를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것이 그 발단이었다. 천우는 스토리를 빛삭(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삭제)했지만, 찰나에 그 스토리를 확인한 천우의 친구들이 정말 천우가 태그한 부산 마리나 8번 계류장에 나타난 것이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천우는 돛을 올리는 법을 모른다, 실은.
전혀 모르지는 않지만,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돛만이 아니다.
천우는 요트 모는 법을 모른다, 실은.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렸다.
돈 냄새 풀풀 나는 초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를 배경으로 ‘신조호’는 잘리고
‘천우’만 나오도록 비스듬한 각도로 요트를 찍은 사진이었다.
해시태그도 주르르 달았다.
#우리집요트 #돛을올려버려 #천우신조호 #해운대라이프.
물론 #플렉스_릴랙스도 빠뜨리지 않았다.
평소 가장 애용하는 해시태그였다.

- 이현, 2부 하루 전,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1.

 

 

 스토리를 올린 당사자인 이천우를 비롯해 스토리를 보고 계류장에 나타난 천우의 친구 김노아, 같은 반 급우 서장진, 전학생 정태호, 천우의 옛 여자친구 고은의 절친 류 그리고 얼결에 오빠가 벌인 일에 함께 엮여버리게 된 여동생 신조까지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출항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곁에 계실 때만 출항과 입항을 해본적이 있었던 천우였지만 천우도 간단한 출항 정도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시간을 계획한 그 출항은 천우신조호가 안개의 바다속에 갇히면서 하루를 꼬박 넘기게 되었다. 아이들의 조난과 함께 아이들 개개인의 서사가 하나씩 떠오르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각각 큰아버지와 이모 댁으로 떠나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천우와 신조 남매의 불안감과 외로움, 그리고 스토리를 올린 장본인이자 요트에 붙은 압류장을 떼어버린 천우에 대한 약간의 원망감과 더불어 완벽한 생기부를 만들고 싶고 오점을 남기지 않고 싶다는, 노아의 완벽주의와 부담감이 가장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 그러한 마음이 내 안에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유가 있었다. 마리나로 돌아간다고 끝이 아니었다.
천우를 기다리는 어떤 결과가 있었다.
어쩌면 노아 자신을 포함한 다른 애들에게도 얼마쯤 그럴 터였다.
그 때문에 지난밤에 신고를 말렸다.
노아도 겁이 났다. 압류, 형벌, 법원,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법적으로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에서는 얘기가 다를지 몰랐다.
그건 노아가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단 한 줄의 오점도 허락할 여유가 없었다.
노아에게는 완벽한 생기부가 필요했다.

 

- 이현, 3부 그날의 바다,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57.

 

 ‘천우신조호그 배에 함께 탄 모든 아이들이 각기 다 나름대로의 개인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인해 떠나고 싶지 않은 부산을 떠나야만 하는 천우와 신조, 특히 천우는 그로 인한 불안과 불만을 약간의 허세로 표현한다. 완벽한 생기부를 만들어야만 하는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애써 모든 것을 충실하게 해야만 하고 욕구를 눌러온 노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결정하게 된 류, 초등학생 시절부터 수영선수로 살아왔지만 수영에 회의감을 느끼고 수영부를 그만두게 된 장진, 할머니와 같이 살아왔고 자신의 강아지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는 외로운 전학생 태호.

 

 

노아의 다른 친구들은 노아가 어째서 이천우 같은 애랑 친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천우의 친구들도 어떻게 천우가 김노아 같은 애랑 친할 수 있냐고들 했다.
숨이 막혀서 어떻게 같이 다니냐는 거였다.
그건 정말 멋모르는 소리들이었다.
천우는 노아가 오히려 편했다.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기분이었다.
노아랑 같이 있으면 브레이크가 따로 필요 없었다.
김노아면 충분했다.
노아가 와 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바다로 나오지 못했을 터였다.

 

- 이현, 4부 표류,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21.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반장이었고,
그 직함에 어긋나지 않는 학생으로 마땅히 주어진 대가를 받았을 따름이었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다가오는 날들을 꼬박꼬박 살아 내는 것이 노아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 이현, 5부 섬,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60.

 

 

 그 모두가 나름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데, 배에 달린 구조물인 으로 인해 장진이 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잃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취약성은 더욱 극대화된다. 장진의 죽음 앞에서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 신고를 외면하거나, 친구의 죽음 때문에 너무나 슬프고 충격을 받으면서도 자신은 살아야만 하는, 너무나 취약하고 인간적인 아이들의 모습들.......

 

 

투둑.
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계기판 아래 페달에 묶여 있던 노란 밧줄이 스르르 풀려나는 것을 보았다.
붐에 연결된 밧줄 중 하나였다.
그 또한 그저 기억인지도 몰랐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 들려온 끔찍한 소리였다.
퍽!

 

- 이현, 3부 그날의 바다,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82.

 

 

류는 울음을 터뜨렸다.
장진은 죽었다. 죽어 버렸다.
그 생강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궁금해하지도 않으려 했는데
그만 더없는 모습으로 들이닥쳤다.
장진을 생각하면 당장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줄 알았다.
장진을 그렇게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류는 움직이고 있었다.
장진에게 눈길을 사로잡힌 채 울면서도 몸은 살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 이현, 4부 표류,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45.

 

 

 천우의 여자친구였던 고은이 스토리를 보았기에 아이들의 실종을 신고했고, 아이들은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 해역까지 흘러들어갔던 배의 조난이 끝나고, 아이들이 발견되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6부에서 그러나 아이들의 삶은 출항 이전보다 더 망망대해에 놓였다고 느껴졌다. 그러니 6부의 제목이 여전히 항해인 것이리라.

  여전히 취약하고, 어쩌면 그 취약성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나는 함께 배에 올랐던 그 아이들 모두 충분히 성장했다고 느낀다.

 노아는 생에서 처음으로 부모님을 거슬러 장진의 빈소에 가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드러내며 늘 어른들의 뜻에 따르던 착한 아들의 모습에서 벗어났으며, (262) 태호는 고은을 새로운 존재로 재인식했고(253), 류는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살아 내야만 하는이야기를 마주했다. (250) 그리고 또다른 깊은 아픔을 경험한 신조는 전과 다른 삶을 다짐할 수 있게 되었다. 파도에 삼켜지지 않고 파도를 스스로 헤쳐가는 개인.(270-271)

 

이야기와 삶은 달랐다.
삶은 마음에 드는 설정만 골라 편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다는 천우신조호였고 장진이었고 장진의 엄마였다.
호주의 바다는 부산의 바다였고 그 섬의 바다였다.
이야기와 삶은 달랐다.
삶의 이야기는 만드는 게 아니었다.
살아 내야 하는 거였다.
그러나 편집은 작가의 몫, 그것만은 달랐다.
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원하느냐고, 어떤 이야기를 살아내고 싶으냐고
.

- 이현, 6부 여전히 항해,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50.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삶은 바다처럼 무정한 것이다.
파도의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그 바다가 신조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럼에도 파도에 삼켜지지 않는 일이다.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신조는 그러기로 했다. 단 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이현, 6부 여전히 항해,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70-271.

 

 

 

 책을 완독하던 시점(202482)과 달리 서평을 쓰는 지금(2024811)은 개인의 체험이 바뀌기도 했고, 서평을 쓰기 위해 책에 표시한 문장들을 다시 흝으며 책에 대한 인상이 매우 달라졌음을 느낀다.

 완독 직후에는 아이들의 취약성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 작품을 다시 마주한 현재, 나는 비로소 이 아이들의 성장을 읽었다. 모든 주변인들이 사고를 겪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내야만 하는 존재, 혹은 무모한 행동으로 친구를 잃게 한 비난받아 마땅할 아이들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 한 발짝 성장했다고 여긴다.

 물론 소중한 이를 상실하는 경험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아픔으로 인해 비로소 아이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마주하고, 그 취약성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자기 삶의 방식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창비 청소년문학에서 표방하는 성장은 비단 청소년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된 나 역시 성장하고 있고, 그 취약성을 여실히 마주하고 있다. 자기비난과 자책, 후회의 굴레 속에서 내 안의 취약성을 오롯이 마주하고 안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나한테 내는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아직 그것이 어려운 한 개인이기에, 이미 어른이 된 내게도 이 작품은 성장,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귀한 작품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상실의 고통과 자기비난의 목소리, 관계에서의 상처, 학교(사회)부적응 등 많은 상처를 마주하고 그 취약성과 함께하는 수많은 아동,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해 이 서평을 바치며, 좋은 어른으로서, (전문상담)교사로서 특히 아동,청소년들의 마음과 함께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좋은 책을 마주하고, 이를 넘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이현작가님과 창비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4년 7월 26일 기준, 정식 출간본 링크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907508

 

라이프 재킷 | 이현 - 교보문고

라이프 재킷 | 우리 요트 탈래? 이 모든 이야기는 장난처럼 시작되었다 밀리언셀러 작가 이현이 펼치는 광활한 바다 이야기『푸른 사자 와니니』 『1945, 철원』 『호수의 일』 등 어린이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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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yros 2024. 8. 11. 21:33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전문상담교사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차열음 작가과, 창비 출판사,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전국의 모든 동료 전문상담교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울은 때로 타고난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 내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애초에 우울의 뿌리를 찾았던 것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가족력과 같은 통제 불가 요인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나는 우울을 발현하게 한 또 다른 뿌리를 찾아야 했고, 상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6.

 

 

  차열음 작가의 에세이,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는 저자의 자기고백이 담긴 글이다. 이제는 20대 성인이 된 저자가 중학생 때 거식증과 우울증을 겪어내는 과정을 회상하며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가 경험한 청소년기 거식증과 우울증의 증상과 그 내면을 촘촘하게 서술하고 있어 거식증이 발현된 원인부터 우울과 관련된 가족력, 거식증에 이어 폭식증이 나타나면서 섭식장애의 양상을 지니게 된 촉발요인과 유지요인을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의사인 부모님을 두고 있던 열 네 살의 저자는 학업으로는 동생만큼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경험으로 인해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에 몰두하게 된다. 그 열 네 살 아이의 인정욕구가 다이어트와 외적인 미()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져 거식증이 발현한 것인데, 상담과 병원치료의 여정 중에서 급작스런 환경의 변화와(급작스럽게 결정된 전학) 교사 및 친구들로부터의 낙인 등의 선행사건들이 저자가 자살 시도와 자해 등 위기이슈로까지 나아간 일들이 160페이지 남짓의 짧은 책 속에 상세히 그려진다.

 평생을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독자로 살아왔으며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고 서평을 써 왔지만, 직업적인 이유로 속해있는 연구회 단톡방에서 서평단에 참여하게 된 것은 새로운 일이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왜 출판사에서 그 많은 교사들 중에서도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의 전문상담교사들이 읽고 서평을 쓰기를 가장 바랐는지 그제야 알 듯했다.

 이 책은 저자가 거식증과 우울증을 지나 성장해왔다는 내용의 자기 고백이 담긴 단순한 에세이임을 넘어서, 충분히 사랑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온전히 수용되는 무조건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그 경험을 갈구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짧은 교직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저자의 청소년기와 같이 그런 고통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들을 작년에 가장 많이 만났다.

 작년에 근무한 전임교는 내 전문상담교사 경력 중에서 아니, 교직 경력 중에서 가장 힘들었고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고통스러웠던 학교임이 틀림이 없다.

 위기관리위원회를 1년에 여덟 번 열었고,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돌아가는 학교의 4계절 중 자살시도만 최소 4(학기가 시작된 조금 후), 7(방학 직전), 8(2학기 개학 이후), 10, 12(2학기가 끝나가는 시점) 다섯 번 이상은 있었으니 말이다. 약물 과다복용, 투신 시도 등…….

 가장 많은 아이들이 약물을 과다복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상담교사로 상담을 하고 관련 위원회 업무를 맡아 준비해야 했던 나 역시도 반복되는 자살시도 사안에 많이 힘들었지만, 시도를 해야만 했던 아이들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지나는 와중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거겠지.

 저자의 글을 읽어내려가다보니 작년에 잠시나마 선생님도 힘들어, 제발, 살아만 있어줘, 라는 기도를 반복해서 올리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 대신 아이들이 시도를 결심할 용기를 내기 직전에 나를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야 하나...?

 

‘가방에는 집에서 몰래 훔쳐 온 수면제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어디선가 봤는데,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자는 듯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중략) 거식증이나 우울증 환자가 전보다 활력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은 쉽게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환자에게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정신적인 회복 전에 약과 식이 조절로 몸이 먼저 활력을 찾게 되면서 실제로 이 시기에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으나 마음먹은 것을 실행할 만큼의 몸의 기력은 생겼기 때문이다. ’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89.

 

 

 

‘언니 오빠들과 있다 보면 자유롭게 나는 것 같다가도, 공기가 없는 공중에 표류하는 것같이 숨이 턱 막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때 컴퍼스나 커터 칼 같은 것으로 손목을 그으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예전 학교에서 어울렸던 친구의 말이 맞았다. 그 친구의 팔뚝에는 늘 붉은 별이 그어져 있었다. 컴퍼스로 그은 별이었다. 아빠에게 맞아 화가 날 때마다 이렇게 하면 분이 풀린다던 그 친구의 말처럼 예리한 고통은 순간적인 쾌감이 되었다. (중략)
스트레스를 자해로 푼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우울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나름의 SOS 신호였던 것이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10-113.

 

 

 한편 저자가 거식증으로 인해 상담을 받는 장면을 그려내는 지점에서는 저자보다도 상담자의 발화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자살시도를 하고도 자퇴를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불안했고 아이들이 그들이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것처럼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도(거부하고도) 자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잘 꾸려 나갈 수 있을까, 병원 치료를 더 설득하고 내가 연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걱정하던 내게, 작년 4월 한 내담학생이 해 준 말이 떠오른다. 자살시도 이후 바로 연계와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조력했지만, 끝까지 자퇴를 고집하던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걱정만 하는데 왜 제가 잘 될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사실 지금의 내가 1년 전의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아이들이 학교에 기댔으면 좋겠고 할 수 있는 만큼 제도 안에서 상담과 치료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상담교사로서 상담을 하며 내가 만나는 내담학생에게 불안과 걱정을 티내거나 훈시하지 않고 저자가 만난 상담자처럼 따뜻하고 객관적이면서도 한 걸음을 늦추며 내담자에게 맞추는 상담자로 자리하고 싶다. 적어도, 다른 곳에 찾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Wee클래스에서 온전히 사랑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하러 편히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먹는 걸로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들을 때마다 짜증 나요.”
“그래, 선생님이 이따가 이야기해 둘게. 먹는 걸로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지.”
“사실 할머니는 더 심하긴 해요. 방까지 쫓아와서 먹이려고 하는데 짜증 나서 가출해 버리고 싶어요
.”
선생님과 있을 때는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좋았다.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먼 발걸음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상담실의 체중계와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0-51.

 

 

 

“이번 주 식단 일기는 지난주보다 빠진 부분이 많네. 식사를 거른 거야?”
“…….”
“뭐라고 하는 거 아냐. 그래도 시간은 맞춰서 먹기로 했었지? 먹고 싶은 만큼 조절해서 먹고, 먹은 것만 잘 적어 보자
.”
무리해서 다가오려는 엄마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아빠보다
모든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더 편했다.
사랑해서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가족보다 이성적인 타인이 때로 더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2.

 

 살기 위해 자해를 하고, 고통의 끝에서 조금 더 안전한 방법을 고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많은 아이들이, Wee클래스/Wee센터/병원/사설 상담센터, 그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그들에게 가장 가깝고 편한 곳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선생님도 한 사람이기에 많이 나약하고 부족하지만, 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고통은 당연하다고, 아픔을 느끼는 네 마음이 너무나 옳다고, 함께 길을 찾아보자고 손을 내밀고 곁에 머무르고 싶다.

 

‘너를 응원한다고, 작고 연약해진 너의 이런 모습마저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6.

 

 

‘물론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가 모든 우울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주벼에서도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병행했지만 호전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살아온 시간이, 삶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테니 문제를 벗어나는 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담과 약물을 통해 문제가 나아지는 경우도 있은 병원은 삶의 낭떠러지 앞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주요한 방법 주 하나임은 틀림없다.
정신 병원은 학교와 같다. 환자는 모두 학생이다. 그곳에서 스스로 마음을 진단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다음에 더 강인해질 수 있도록, 다음 우울엔 더 의연히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도움도 받아 본 사람이 청할 줄 안다. 우울도 겪어 본 사람이 이길 줄 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8-149.

 

 

 

 전문상담교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2023년을 잘 버텨 내고(수많은 위기사안들에 소진이 심해, 작년에는 블로그에 서평을 많이 써내지 못했다), 2024년 블로그에 올리게 된 첫 서평이 이 책이었기에 더욱 유의미하다고 여긴다.

 나는 학창시절 외로움을 느끼며 청소년기를 보냈고(당시에는 몰랐지만) Wee클래스가 부재하고 상담교사가 없던 시절 교과 선생님들의 지지와 격려 덕에 자라났기에 평생의 업()으로 교사를 목표로 하게 된 아이였다. 학부 시절 심리학을 복수전공할 때만 해도 내가 전문상담교사로 살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교직에의 첫 동기와 가장 밀접한, 전문상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도 상담을 받으며 나의 비합리적 신념을 수정하고자 노력하고(가령 상담교사로서 상담에서 실수하면 다 망할 것 같다는 비합리적 신념? 지난 주에 상담자분과 찾아봤는데 근거가 1도 없더라~) 자기 이해와 타인 이해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한 개인이지만,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상담을 경험하는 전문상담교사이기에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상담의 의미를 더 잘 전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저자의 학창시절을 넘어,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진실로, 함께 근무하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나누며,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잘 들여다보고 지원하면서 항상 상기하고픈 글이다.

 어렵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어 주신 차열음 작가님과, 창비출판사, Wee클래스와 Wee센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료 전문상담교사/전문상담사 선생님들께 다시금 깊은 감사를 전한다.

 

 

 

 

by papyros 2024. 4. 23.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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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스 카페 덕분에 다양한 전자책을 접하며 그동안 많은 이북리더기를  사용해 왔다. 특히 과분하게도 교보문고 펜있샘 7.8 체험단으로 활동했던 것, 리디북스 페이퍼프로 사용기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리스와 함께 독서생활을 하고 전자책에 대해 배워나갈 수 있었던 덕택이었다.


 현재 소장중인 기기로 크레마카르타G, 오닉스포크3, 오닉스노바에어, 리디북스페이퍼4, 리디북스페이퍼3, 리디북스페이퍼1, 교보 펜있샘 7.8, 하이센스A5 등이 존재하고 크레마 그랑데와 크레마 사운드 역시 사용하다 중고로 판매한 적이 있다. 다른 전자기기들에 그렇게까지 욕심이 큰 편은 아닌데 책 욕심과 맞물리는 것인지 이상하게도 전자책 기기에는 욕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겨 처음 리디북스페이퍼1을 접한 이후 다양한 기기를 사용해 왔다.

 많은 리더기들을 사용해 보고 거쳐오기도 했지만 시중에 출시된 이북리더기들 중 특히 크레마 기기들은 여러 면에서 우수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출시되고 있는 가장 스펙좋은 ‘범용기’라는 점에서 크레마는 많은 이북리더기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전용기를 구입 할 경우 열린서재가 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으니.. 

 특히 이번에 출시되는 신기기 <크레마 모티프>는 강화유리 패널을 사용하고 있어 기존의 설탕액정에대한 우려와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강인함?이 있는 기기이기도 하고 범용기일 뿐 아니라 SD슬롯을 지원하니 이 얼마나 혜자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6인치 패널의 깔끔한 크기와 화이트의 매력은 나를 사로잡는다.

체험단에 선정된다면 그 어느 서평과 이전에 업로드 했던 그 어느 리더기 체험단 후기보다도 열과 성을 다해 체험단으로서 후기 남기겠습니다.. :) 
 독서생활을 함께하는 #이리스 와,  #Yes24 에 늘 감사합니다!

by papyros 2023. 4. 17. 2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