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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북클러버 16기- 청춘의책탑] 10회차(16기 1회차)-「페인트」 리뷰
이희영, 『페인트』, 창비, 2019.
2020.12.27. 日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 10회차 리뷰(16기 1회차)
with yes24 독립 북클러버
지난 여름, 국어과 기간제교사로 근무하던 중, 7월 8일에 인천 부평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페인트> 온라인 북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페인트를 1회독한 이후, 청춘의책탑에서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진행하기 위해 5개월 만에 다시 이희영 작가님의 <페인트>를 재독했다. 청소년문학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역시 짧고 후루룩 읽을 수 있긴 하지만 , 작품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고민의 내용들은 참 풍부한 작품이었다.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는 '부모면접'이라는 작품의 주요 소재 자체는 어쩌면 소설을 읽는 어린이/청소년 독자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 효과를 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그 카타르시스를 넘어서 결말부쯤엔 부모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끔 한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바로 그 지점이 이 책이 청소년문학인 이유이기도 하리라.)
작품에서 주요 장면과 인상적인 부분들을 짚어보자면 센터장 '박'의 서사, 제누301과 하나&해오름의 페인트 과정과 관계설정, 아키와 아키의 부모면접, 그리고 NC에 대한 사회적 차별, 이렇게 네 부분을 들고 싶다.
우선 박은 '상처 입은 치유자'의 전형이라 여겨진다. 친부모에게서 버려지거나 부모와 이별하게 되어 NC에 들어온 아이들은 모두 부모면접(페인트)을 통해 좋은 부모를 만나 NC출신이라는 낙인을 제거하고 평범한 한 사람으로, 누군가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한 아이의 삶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부모면접과정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페인트를 연결해주는 사람은 센터장 '박'인데, 그는 비록 NC출신은 아니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매우 큰 상처를 지니고 있다. 센터장 '박'이라는 인물은 낳아준 부모와 함께 살고있지만 그 부모들로부터 불행했으며 NC아이들은 부모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인해 불안한 삶을 겪어내고 있다. 결국 한 개인의 삶에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자녀 관계의 유무보다는 그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었는지가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싶다.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수동적인 관계인지 혹은 함께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관계인지에 부모-자녀관계의 방점이 자리한다고 여긴다. 박은 자신이 전자의 관계를 경험했기에, 아이들 각자에게 적합한 '최고의', '완벽한' 부모를 찾아주고자 부단히 애쓴다. (물론 완벽한 부모는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NC센터의 상식 기준에서는 자격미달인 부모가 제누301에게는 이상적인 부모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박'의 모습은 결국 그 본인 자체가 자신의 상처를 발판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감싸려는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기능하기에 , 박이라는 인물이 참으로 많이 마음에 남았다.
물론 직업에 몰두하는 만큼 가정 안에서의 그는 좋은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NC아이들에게 그는 좋은 부모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여긴다.
"가장 어려운 아이들 곁에 있고 싶었어. 부모를 만난다는 게, 십 년 넘게 센터 생활만 해 온 아이들이 부모를 만난다는 게 마냥 신나고 좋기만 한 일이 아니잖아. 실적이 낮다는 건 부모 만나기를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뜻이지. 그만큼 더 사랑해줘야 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뜻이고."
- 이희영,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페인트』
' 박은 누구보다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범적이고 화목한 가정에서 생활했으리라 믿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박에게서 불우하고 끔찍한 어린시절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가 이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부모를 소개해 주고자 애쓰고, 단 한 명의 아이도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속에는, 채 자라지 못한 아이의 상처를 감싸 안아 보려는 안간힘이 있었다......'
- 이희영,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페인트』
'어째서 박이 센터를 찾아오는 프리 포스터들에게 그토록 엄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자신과 같은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부모에게 상처받고 학대받은 기억은 평생을 따라다닐 테니까. 그것은 어쩌면 NC출신이라는 꼬리표보다 더욱 감당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박은 강한 사람이었다. 이토록 올곧은 어른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강철처럼 단단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센터장은 분명 밝은 얼굴로 돌아올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세상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 이희영,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페인트』
작품의 주인공인 제누301과 해오름&하나의 페인트 면접과정은 매우 흥미로운데, 나는 제누301이 하나와 해오름에게 마음을 연 것이 바로 '진솔성'의 힘에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다른 여타의 프리포스터들과는 달리 '완벽한' 부모로 자신들을 포장하지 않았다. 아이를 향한 듣기 좋은 말이나 환심을 사려는 노력 대신 그들이 지닌 상처와 있는그대로의 환경을 그대로 개방했다. '완벽'하기 보다는 '부족한' 사람들임을 전했다. 나는 그 지점이 바로 이들이 바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부모라고 여겼다. 완벽히 착한 자녀가 존재하지 않듯 '완벽히 좋은 부모' 역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보완할 방법을 고민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여겨진다. 하나와 해오름은 그들 의 부족함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숨기지 않음으로서 제누301과 진정한 라포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는 상담장면에서 상담자 또한 내담자에게 이러한 태도, 진솔성 어린 태도와 자기개방이 강조되는 것과 연결된다고 하겠다. (로저스님 찬양합니다..:) )
"더 듣고 싶어요, 저분들의 이야기." 모두들 얼마나 훌륭한 부모 밑에서 성장해는지 자랑하기에 바빴다. 자신들도 뒤늦게나마 그런 부모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니 우리가 따뜻한 가족이 되어 주겠다, 선심 쓰듯이 말했다. 자신이 부모에게 상처받았다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이 두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 이희영, 「어른이라고 다 어른스러울 필요 있나요」, 『페인트』
한편 제누와 친밀한 관계인 귀여운 동생인 아키라는 인물과 아키의 부모면접과정도 마음에 많이 남았다. 제누301이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 어른스러운 아이라면 아키는 아이다운 순수성을 지니고 있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다. 아키가 그에게 맞는 부모를 찾아갈 수 있었던 점이 매우 다행스러웠는데, 한편으로 우리가 아키의 그 어린아이다운 순수성과 그 아이 내면의 사랑과 신뢰를 지켜 줄 수 있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지 한편으로 고민하게되었다. 아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고픈 욕심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소설 속에 묘사되는 NC출신에 대한 차별과 낙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지점들이 여러모로 있었는데, 어쩌면 NC센터는 비단 소설 속 허구의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는 고아원/보육원에 대한 어느정도의 선입견이 있으며, '부모가 없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동정/걱정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과연 부모가 없다는 사실이,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그 사실이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부모와 이별하게 되는데 유년시절 부모와 이별/상실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가엾음/동정의 대상이되고 차별적 요인이 되는 사회현실에 자성하게 된다. '부모의 부재'여부보다는 우리 사회의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으며 어떤 내적 문제를 겪고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심리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깊은 초점을 맞추는 사회로 변모하길 소망한다.
"어른으로서 이런 말,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 있고,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 힘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연약한 존재들을 짓밟지. 특권 의식을 누리려는 거다. 힘 있는 자들만이 아니다. 힘이 약한 사람들도 그런 특권의식을 지니고 있어. 자신도 약하면서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들을 짓밟는 거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 누구나 기피하는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 등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친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은 국가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 너희들에게 묘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너는 영리하고 매력적인 아이다. 누구라도 너를 보면 호감이 생길 거야. 그러나 네가 NC 출신임을 밝히는 즉시 사람들은 너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거다. 그건 제누, 너도 잘 알잖아. 이곳에서 부모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어떤 불이익을 당하고 차별 속에 살아가는지."
- 이희영, 「마지막으로 물어봐도 돼요?」, 『페인트』
책을 2회독한 지금, 초독때 부모면접이라는 소재의 참신성에 대해서 생각했던 반면 지금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얼마나 좋은 자녀인가? 내일로 정말 한국나이 서른이 되는데, 서른이 되는 지금도 여전히 나의 어머니께 '따뜻함'만을 바라고 내가 상정하는 부모에 대한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속상해하는 아이같은 면모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정작 나는 어머니께, 그리고 아버지께 항상 따뜻하지만은 않은 자녀이면서도.
자녀로서의 내가 불완전하고 부족하듯이, 부모님들도, 그분들도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비록 부모님들의 자녀인 나 앞에서 직접 그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미리 헤아려 생각하는 자녀로서의 마음을 조금 더 넓혀간다면.. 나의 부족함처럼 부모님들도 부족함 많은 한 사람임을 생각하고 그 한계를 받아들인다면, 갈등의 상당한 부분들이 줄어가지 않을까 싶다.
좋은 면만 바라고, 좋은면만 보여주기보다는 'Good Enough' - 충분히 좋은 부모 그 자체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부모님의 부족함까지 통합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자녀가 되기를..
그리고 나 자신의 부족함도 통합적으로 수용할 수 건강한 부모자녀관계를 맺어갈 수 있기를..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 이희영,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페인트』
"한 가족이 된 것을 기뻐할 때도 있고, 후회할 때도 있을 거야. 너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야. 얼굴 표정, 목소리만으로 서로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알 정도로 가까워지겠지. 그렇게 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야. 내가 친구들과 그랬듯이. 해오름과 부부가 되었을 때 또 그랬듯이."
- 이희영, 「기다릴게, 친구」, 『페인트』
"기다릴게, 친구."
하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나를 안아 준 프리 포스터는 단 한명도 없었다. 포옹이 가능한 단계까지 페인트를 이어 온 적이 없었으니까. 하나는 나와 단둘이 산책을 하고, 포옹을 해 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아니, 친구였다.
- 이희영, 「기다릴게, 친구」, 『페인트』
"이 세상에 처음부터 끝까지 좋기만 한 사람은 없어. 그분들이 너한테 항상 밝고 예쁜 모습만 요구한다면, 너 그럴 수 있어?"
"네가 할 수 없는 걸 그분들에게 강요하지 마. 나랑 아옹다옹하는 것처럼 그분들과도 마음 안 맞는 일이 분명히 생길 거야. 그분들에게서 좋은 면만 찾지 마. 너도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그러지 않으면 그게 너와 그분들 모두를 힘들게 할 테니까."
- 이희영, 「Parents' Children」, 『페인트』
하나와 해오름은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두 사람은 부모 준비가 끝난 사람들이었다. "실은, 제가 좋은 아들이 될 자신이 없더라고요."
"왜 부모에게만 자격을 따지고 자질을 따지세요? 자식 역시 부모와 잘 지낼 수 있을지 꼼꼼하게 따지셔야죠. 부모라고 모든 걸 알고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은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부모라고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요."
- 이희영, 「마지막으로 물어봐도 돼요?」, 『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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