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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민음사 에브리데이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리바이선, 『에브리데이』를 읽고
“그러니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끔찍해 보일 거라는 걸 알지만, 난 아주 많은 걸 보아 왔어. 한 몸 안에서만 살면 삶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느끼기가 무척 어려워.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에 깊이 뿌리박고 살아가니까. 하지만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이 매일 바뀌면 보편적인 것을 더 많이 접하게 돼.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까지 말이야. 사람마다 체리 맛을 다르게 느낀다는 걸 알게 되지. 파란색도 다 달라 보여. 남자애들이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벌이는 온갖 이상한 의식들을 알게 돼. 자신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지만.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 주는 엄마나 아빠는 좋은 부모라는 것도 깨닫게 돼.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시간을 내지 않는 부모님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 왔으니까. 하루가 진정 얼마나 가치 있는지도 알게 되지. 매일매일이 다르니까 말이야. 만약 사람들에게 월요일과 화요일의 다른 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저녁 식사로 무얼 먹었는지 얘기할 거야. 나는 그렇지 않아. 세상을 아주 다양한 각도에서 보기 때문에 더 많은 면들을 느낄 수 있거든.” (<에브리데이>, 141-142쪽.)
매일 아침 어떤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 하루를 보내고 또 다른 사람의 몸으로 이동하는 삶. A는 마치 한 곳에 정착 할 수 없는 여행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언뜻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시크릿 가든>이나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도 하루쯤 영혼을 바꿔보는 흥미로운 경험을 한다든가, 혹은 도민준과 같은 천재적이며 영생을 누리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보는 것을 꿈꾸곤 한다.
A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상상해 보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존재이다. 고작 열여섯 살로, 또래 10대 친구들의 육신을 빌려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A는 특별한 삶이 아닌 평범한 삶을 꿈꾼다. 매일 똑같은 사람으로 깨어나, 그저 자신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존재인 ‘리애넌’과의 만남을 지속해 나가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면 언제 어디서 누구의 몸으로 깨어날지 모르는 A에게 ‘지속적인 관계’는 불가능해 보인다. A에게 리애넌과의 만남은 너무나도 짧고 한정된 시간일 뿐이기에, A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리애넌을 만나고 그녀와 교류해 나간다.
사람들은 자기 몸이 지속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사랑도 당연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지속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일단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면, 그건 우리 삶에 추가된 또 하나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그런 지속적인 만남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를 지탱해 줄 토대는 늘 하나뿐이다. (<에브리데이>, 80쪽.)
그러나 A와 달리 우리는 ‘만남’이라는 것을 너무나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페이스북에 접속해 지인의 계정을 확인하고 타임라인을 확인한다. 그리고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 정도를 묻는, 그리고 밥이나 한 번 먹자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네곤 한다. 더욱이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일상을 부러워하며 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지니게 된다. 그러나 A에게 이메일이나 SNS 계정은 우리와 그 의미가 달리 이용된다. 자기 실존을 확인하고, ‘지속적 만남’을 가능하게 해 주는 유일한 소통창구인 것이다. A가 이메일과 SNS를 사용하는 목적이야 말로 – 그 본질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같은 몸으로 일어나지만 늘 다른 삶을 부러워하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항상 다른 몸으로 일어나지만 육체의 원래 주인의 삶을 크게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자기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A의 모습이 대조적이지 않을 수 없다. A가 비록 열여섯의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삶이나 관계에 대해 더욱 깊이 파악하고 성찰할 수 있는 것은 A야 말로 오랜 관찰과 주의를 통해 삶과 관계의 본질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빠르고 편한 만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이 작품을 통해 환기해야 할 것이 있다면 ‘존재가치에 대한 인정’과 ‘진정성’이 아닌가 싶다. 남들과는 차별화된 자기 고유의 가능성 - 그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계발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이 선행 될 때 A와 리애넌 같은 순수하고 진실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아의 본질을 추구하며, 언제나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A이기에 – 폴 목사를 찾아가는 그의 다음 모습이 한편으로는 걱정되면서도, 그가 마주할 고민과 선택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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