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홍, 『모락모락』,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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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모락모락 블라인드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문학동네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문학동네에서 블라인드북 서평단 모집을 안내하면서 <모락모락>이라는 책에 대해 ‘어디에서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의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사랑스러운 책’ 이라는 수식어로 작품을 형용한 바 있어 어떤 책일까 무척 궁금해졌다. 제목이 표현하듯 무언가 자라나는 성장의 이야기인가? 라는 궁금증을 안고 서평단에 지원한 바 있다.
사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완독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무척 짧은 책이다. 하지만 그 길이 이상으로 주는 깊은 여운이 작품에 깃들어 있었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 애독가라면 한번쯤 접해봤을 법한 ‘하이케 팔러’의 <100 인생 그림책> 처럼 이 작품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쪽 수대신 작품 안에서 성장하는 한 개인의 나이가 등장한다. 또한 유년기에서부터 100세 노인이 될 때 까지의 주요한 인생 여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점 또한 유사하다(사춘기, 독립, 사랑, 결혼, 출산 등..)
다만 <모락모락>이 <100 인생 그림책>과 구별될 만한 특별한 점은, 다소 독특한 화자(발화자)를 내세운 데 있다. 책의 화자는 성장하는 주인공 자신도 , 그녀의(주인공이 여성이기에 편의상 그녀로 지칭) 부모님도 자녀도 아닌 다름 아닌 그녀의 머리카락이다. 출생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랜 세월 그녀의 뒤에서 함께하는 머리카락이 성장과정을 옆에서 온전히 바라보며 성장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왜 하필 머리카락이 발화자였을까, 책을 읽고 나름대로 그 답을 고민해 보았다. 작품에서 성장하는 주인공도,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일평생을 자신의 미를 가꾸는데 치중한다. 누군가와 비교될 수밖에 없으며 항상 평가되는 사회 속에서 ‘아름다움’, 즉 외모를 가꾸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머리카락이 아닐 수 없다. 늘 미용실에 가서 새로 펌을 하거나 염색을 하는 등 외모를 관리하는 것의 중요한 부분이 머리카락에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청소년기에 여드름을 가리려고 앞머리를 내리기도 하고, 스무살 언저리 즈음에는 파격적인 염색을 시도하거나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머리를 따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물아홉에는 머리 스타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고, 마흔둘에는 온전히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해주고 신경써주는 헤어디자이너를 만나기도 한다.




29.
“머리 스타일은 단지 누구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일이자
소중한 자신을 가꾸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거야.”


42.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으세요?”
이렇게 너를 위해 진심어리게 고민하는 사람을 왜 이제야 만나게 된 걸까?
늘 유행하는 머리에 필요한 시술만 말하던 사람들과 정말 달랐지.
너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이해한 후 만들어낸 스타일은 오직 너만을 위한 것 같았어.
그건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웠지. 나도 내가 특별해진 느낌이었다고.




유년기, 청소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하며 삶을 영위해가지만, 결국 한 개인으로서의 성장이란 ‘자기 정체성’을 오롯이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에서처럼 그 자기 정체성이란 자신만의 고유한(잘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찾는 것 뿐 아니라 생의 과정에서 부모로부터의 독립, 대학 진학, 취업, 결혼 후 자신의 자녀를 낳고 부모가 되는 것, 심지어는 집에서 떠나 요양원에 들어가는 어느날에 이르기까지 삶의 순간순간 한 개인으로서 독립할 때 / 삶을 마주할 때 확립될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이 책의 첫 표지가 어린 아이였으나 마지막, 책의 뒷표지는 노년기를 그리고 있는 만큼 .. 책을 읽어 내려가며 성장하는 그녀의 일생에 함께 마음을 보탤 수 있었다. 비록 머리카락이 화자이긴 하지만, 그 여느 누군가보다도 더 가까이서 그녀의 삶의 여정을 지켜보고 함께 한 그 머리카락이 숱이 많고 검은 머리에서, 백발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많은 불안과 걱정, 고민을 뒤로하고 행복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독립할 수 있어 진실로 기뻤다.

현재는 내 한 몸 건사하기에도 부족하기만 한, 서른한살의 끝을 지나고 있는 나 역시 노년기에는 고양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카페에서 책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그런 할머니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정말 짧은 책이었으나, 사랑과 행복, 그리고 그 이상의 ‘가치관’를 선물해 준 귀한 책으로 , 청소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가 함께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나눌 수 있기를 권하고 싶다.




13.
도서관 안으로 숨어들었어.
책장 사이사이 길 위에는 손이 닿는 곳마다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들이 있어.
누굴 만나든 아무도 너에게 뭐라 하지 않는 곳.
아무도 너에게 말을 걸지 않고, 오직 창가의 햇살 아래 하얀 먼지들만이 주목받는 곳.
넌 책장 그림자 위에 앉아 머리카락을 커튼처럼 드리우고 책을 읽고 있지.


14.
집 앞 앵두나무를 보면서 엄마가 말했어.
“지난 사 년 동안은 많이 안 자라더니 올해 갑자기 커버렸네.”
너도 꼭 그렇잖아. 신기하지, 나무도 너도 어느 순간 쑥 자라버린다는 게 말야. 그리고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지.
너는 그대로인데 몸만 어른이 되려고 한다니 말이야.
엄마는 햇살 아래 빨간 앵두를 하나하나 따서 노란 소쿠리에 담았어.
그러고는 흐르는 찬물에 씻어 너의 입에 쏙 넣어줬지.
“엄마, 쓴데 달콤해.”
엄마는 쏟아지는 햇빛을 등지고 웃으며 너에게 얘기해.
“나중에 신기한 걸 더 많이 알게 될 거야.”

 

27.
너는 독립을 하기로 했어.
마지막 날, 짐을 정리할 때 엄마는 서랍 속에 간직해둔 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여주었어.
거기엔 네가 처음 입은 옷, 제일 좋아했던 장난감, 처음 부모님께 쓴 카드, 유치원 복…… 잊었지만 다시금 기억이 되살아나는 물건들이 가득 모여 있었지 (중략)
너, 언제 이렇게 큰 거니?
28.
어느 날 모든 걸 정지시켰어. 그리고 짐을 꾸렸지. 나는 정말 불안했어.
아직도 너를 다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작은 짐처럼 웅크리고, 낯선 사람들이 있는 서랍장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또 버스를 탔지.
그리고 겨울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는 꽁꽁 언 눈밭에 앉아 있어. 나는 오들오들 추워서 얼어버렸지.
왜 이렇게 추운 먼 곳까지 온 거니? 네가 정말 걱정이 된다고. 그때였어. 겨울 숲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지.
세상에, 번쩍 일어나 하늘을 바라봤어. 우와, 지금 우리 우주에 있는 거니? 오로라야!
아름다운 초록 커튼들이 하늘 가득 별빛과 함께 우리에게 쏟아질 듯 넘실거리고 있어.
지금 이건 현실이니? 이런 아름다움이 이 세상에 있다니. 너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어.
오로라를 보고 싶어했던 그 꼬마가 아직 네 안에 있었구나.
그래, 넌 변한 게 아니었어.
30.
밤부터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어. 새벽녘까지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지.
라디오에서는 오십 년 만의 폭설이래.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런 눈이 내렸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니?
너는 얼굴도 씻지도 않고 새집이 된 나를 모자에 급하게 밀어넣고 밖으로 나갔지. 뽀드득뽀드득 발목까지 쌓인 눈을 밟으며 걸었어.
눈에 묻힌 마을은 정말 고요했고. 폭설도 서른이란 나이도 아름답고 낯설지.
50.
머리카락은 꼭 나뭇가지 같아.
봄처럼 여리게 자라 여름처럼 쑥 컸다 겨울처럼 잠시 쉬기도,
가을 낙엽처럼 떨어지기도 해.
그리고 다시 봄이 온 것처럼 또 자라나지.
나무와 네가 함께 계절을 보내듯 우리도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
56.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하늘의 미세먼지, 짧아지는 봄과 가을, 사라지거나 전에 없던 먹거리. 너는 부쩍 환경에 더 관심이 많아졌지.
너는 페트병 대신 물을 끓여 텀블러를 사용하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너의 존재가 세상과 자연에 해가 되는 일을 줄이겠다는 결심은 네게 잔잔하고도 깊은 기쁨을 주었어.
근데 아니? 수분 보충은 나에게도 기쁜 일이라는 걸.




58.
너는 알게 되었구나.
이제 너의 아이는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네가 독립할 때 부모님께 들었던 말을 아이에게도 똑같이 해주어야 했어.
“잘해낼 거야. 응원할게.”
너는 그 말이 얼마나 많은 말들을 버린 후에야 나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네.
이제 너는 추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말야.



59.
햇빛이 유리알 같은 날.
짙은 산빛이 드리운 물위에 손을 담갔지 시원한 물줄기가 몸안으로 밀려들어오고.
꺄르르 웃으며 물위를 첨벙거렸어.
너는 아직도 웃음소리가 여름처럼 크고 풀어진 마음은 어디든 닿을 것 같아.




85.
“엄마, 도서관 갈 때 무릎담요 챙겨가세요.”
이제 너는 누구라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러.
너는 익숙한 공간이 조금은 낡아 편안해진 코트처럼 아늑하지.
(중략)
오늘은 가을 햇살이 가득하네.
너는 담요에 손을 올리고 꾸벅꾸벅 졸았지.
발밑에 길고양이 한마리가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100.
밤하늘 가득 별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아.
눈으로 보지 않아도 별빛이 느껴지지?
여름밤 공기도 나긋하고 좋아.
정말 좋은 순간이야.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하지 않니? 





by papyros 2022. 10. 18. 00:15

장유경,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딜레르, 2021.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한솔수북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한솔수북(딜레르) 출판사와 저자이신 장유경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솔수북 인스타그램 : https://instagram.com/chaekdam?utm_medium=copy_link 

 

    강릉 보름살이를 이어나가던 12월 중순 어느날이던가, 한솔수북 출판사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을 읽고 책에 대한 소개를 접한 후 이 책은 내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여 이후 바로 서평단을 신청했다.

  『깜빡깜빡해도 괜찮아』라는 이 책은 인지심리학을 전공한 심리학자인 딸이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고 생활을 이어나가는 어머니를 부양하는 가족돌봄에 관한 에세이이다.  나 역시 심리학 전공자로서 전문상담교사를 목표로 하는 이로서, 전문성을 지닌 저자 분께서 경도인지장애를 어떻게 설명하실지 궁금증이 앞섰다. 그러나 전공 전문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만 스물아홉 살의 딸로서, 장녀로서 또래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부모님의 연세가 많은 편이다. (부모님 두분의 연세가 각각 55년 양띠와 57년 닭띠이시다.)

 가장 상대적인 것이 나이라고는 하나, 벌써부터 두렵고 슬프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또래 친구들에 비해 어쩌면 닥쳐올 부모님과의 이별이 머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 이전에 내가 30대로 진입하면서 부모님께서도 70에 가까워지시는 이 때에, 노화와 함께 인지저하를 겪으실 부모님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져 책소개에 그려진 내용이 남일같지 않게 느껴졌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어쩌면 내게 찾아올 수도 있는 부모님의 어려움을 잘 준비하고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딸이, 상담 전문가가 되고 싶어 서평단에 지원해 책을 받아보았다.

 

  책을 읽어나가며,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일상의 루틴'유지와 '사회적 접촉'의 중요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가사노동과 같이 젊은시절부터 유지해 온 일상의 루틴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유지해 나가는 것이 인지기능 회복에 중요한 것이기에 저자분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어머니께서 자연스럽게 저자분의 청소, 설거지를 조금씩이나마 보조할 수 있게끔(자연스럽게 도울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매일 꾸준히 산책할 수 있게끔 도움을 드리기도 한다.

 한편 노년기의 인지회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접촉', 즉 긴밀한 타인들과의 친밀감을 유지하고 외부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의 중요성이었는데, 이를 위해 저자께서는 어머니의 사회적 활동을 위해 센터의 미술강좌, 음악강좌에 등록하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시거나 카카오톡 등 연락수단을 통해 친구분들과 꾸준히 소통하실 수 있게끔 도움을 드리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부모님만 보더라도 성당활동을 꾸준히 하시며 모임에 참여하시는 어머니, 당구 모임에 참석하시며 동창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시고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기시는 아버지의 생활 속에서 더욱 건강성이 확보되는 것을 떠올리게 되는 한편,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팬데믹(코로나19) 이후 출생한 아이들의 지능이 코로나19 이전 출생한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저하되었다는 연구결과 또한 존재하는데, 이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본성에 대한 유의미한 연구가 아닌가 싶다. 영아기의 부모애착, 유아-아동기의 또래관계, 그리고 노년기의 공동체활동이 모두 인지기능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신뢰로운 친구들과의 교류와 대화가 얼마나 깊이 우리의 삶에 관여하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WHO에서 바람직한 노년의 모델로 제시한 '활동적 노년'(Active Aging)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활동적 노년은 심신의 건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내 집에 살지, 요양원에 들어갈지)을 자신이 결정하고(자율성), 공동체 내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받으면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독립성) 노인이다.

  -  장유경,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딜레르, 2021, 240쪽.





 


사회적 접촉이 많은 것은 더 건강한 생활습관의 표시일 수 있다. 
 사회적 접촉이 많은 사람은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활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일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사회적으로 활동적이어서 사회적 접촉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사회적 접촉이 많으면 치매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사회적 위축은 치매 위험의 증가와 관계된다. 치매 진단을 받기 전에 사람들은 점점 사회적인 접촉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이것이 실제로 향후 치매 가능성에 대한 초기 신호이기도 하다.

 -  장유경,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딜레르, 2021, 188-189쪽.



 

 

 

 


  한편 또한 책을 읽어나가며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미 성장하여 독립해 살던 딸인 자녀가 어머니와 다시 함께 살면서 격는 여러 심리적인 고민과 어려움이었는데, 경도인지장애의 증상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어머니를 대하는 저자분의 모습을 통해 많은 부분을 체득할 수 있었다. 저자분에 비하면, 그리고 실제로 경도인지장애나 치매를 겪는 가족을 부양하는 많은 이들에 비하면 나의 어려움은 세발의 피이기는 하나 노화와 함께 점점 반복질문이 늘어나시고 쉬이 짜증과 분노를 내시며 감정적으로 변하시는 父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고 나 역시 이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기도 하는데, 조금더 차분함과 인내심을 지니고 부모님을 대할 필요성과 더불어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내가 건강해야 부모님의 노화와 관련된 심리적 문제에 건강하게 대처/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2004년, 중학교 1학년 시절 치매 합병증으로 작고하신 친할아버지를 주로 부양하던 어머니께서 얼마나 내면에 어려움을 겪으셨을지,(자녀돌봄,시부모 부양, 가사노동)  노화와 더불어 사회적 활동이 극도로 줄어드시고 주로 집에서 TV시청에만 매몰하시던 친할아버지께서는 어떠한 감정을 주로 느끼셨을지, 유년시절의 나로서는 차마 다 헤아릴 수 없었던 그 모든 것을.

 그리고 대학 시절, 내가 심리학을 복수전공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본다. 교직이수에 실패해 특수교육과 복수전공이 무산되었던 20대 초반의 어느 날, 내가 심리학을 복수전공한 것은 자기이해의 욕구와 더불어 나의 주변에 자리한 부모님과 가족들의 내면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가족의 경계를 지키며 건강성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문상담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임용을 준비하는 현재도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초심(初心)을 기억하며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성과 더불어 주변 소중한 이들의 심리적 건강성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가족들의 질병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자칫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고 부정적 정서반응을 야기할 수 있는 가족들의 언행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도움을 된 책이다.

 한편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 몇 년 전 대학원에서 학부때와는 다른 교수님께 '발달심리학' 수업을 수강하며 '노인심리학'을 강조하시던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노년'을 두려움의 대상, 회피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노년기는 곧 삶의 종결, 무망감, 허무함과 연결되는 인식(병리적, 수동적 관점)이 팽배한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발달단계 상 노년기를 맞이하는 만큼, 자신은 어떠한 노년기를 맞이할 것인지 그리며, 전 생애를 통틀어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노년기의  중요성을 조망하는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특히 인지적, 언어적 소통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만큼, (이 책에서도 등장했던)미술치료나 음악치료 등이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는데, 전문상담교사로 평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로서,(상담 전문자로서) 노인심리학과 관련된 연구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비언어적 소통이 가능한 상담도구에 더욱 관심을 갖고 전문성을 확대해 나가고자 새로운 결심을 하게된다.

 

 

'일상의 기적' 시 속에서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맴돈다. 오늘도 이 사소한 일상의 기적에 감사한다.

                      -  장유경, 『깜빡깜빡해도 괜찮아』, 딜레르, 2021, 256쪽.

 

 

 

 

by papyros 2021. 12. 3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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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마 월리스, 『새소녀』, 이봄출판사, 2021.




 문학동네북클럽을 통해 가제본 도서를 수령해 먼저 읽게 된, ‘벨마 월리스’의 소설 <새소녀>를 드디어 완독했다. 사실 ‘성장소설’이다보니 아무래도 행복한 결말과 사랑이야기를 예측했었다. 얼마 전 <새소녀> 기대평을 작성할 때만 해도 소년 ‘다구’와 새소녀 ‘주툰바’가 재회하여 전통적인 성 고정관념과는 다른 그들의 성향을 서로 인정하고, 기존의 사회질서와는 달리 새로운 가정을 꾸려 기존 부족들에게서 비판받을지라도 그들의 신념을 믿고 나아가고, 결국 인정을 받게 되는 일반적인 성장소설의 흐름을 따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결말과는 무척이나 달라 사실 다소간의 충격이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잔인하고 마음이 아픈 부분은 새소녀 ‘주툰바’가 원치 않는 혼인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부족인 ‘그위친족’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치콰이’족에게 노예로 사로잡혀 갖은 수모와 모욕을 겪는것도 모자라 적장인투라크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그의 아들인 카누크를 치콰이족에게 빼앗기며 아들에게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생애를 겪어왔던 점이다. 특히, 그녀가 치콰이족에서 벗어난 것도 누군가의 조력을 받은 것도, 혹은 무언가 협상의 자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 새소녀를 구하러 온 그녀의 오빠들의 머리통이 치콰이족의 공놀이에 쓰이는 그 참혹한 형상을 목도한 후 치콰이족을 모두 살해한 후 탈출한 것이라는 사실까지, 그녀의 전 생애가 너무 비극적이고도 애통해서 작품을 읽는 동안 참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왜 누구보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려던 그녀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만 하는 것인가.
 ‘다구’ 역시 자신이 원하던 삶의 방향과는 많은 변곡점을 겪는다. 무리 속에 예속되어 사냥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안히 여행하고 싶던 소년은 그위친 족 남성들이 살해당하고 자신만 운좋게 살아남은 이후 한 부족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는다.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인데, 부족을 안정시킨 이후 ‘해의 땅’을 찾아 여행하는 다구가 다시 비극적인 사건으로 자신이 꾸리고 선택한 가정을 상실하는 과정을 읽어내려가면서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다구의 모습을 보면서 다구가 삶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진정 어른이 되어 돌아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성장’에는 반드시 그에 수반되어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통과제의’라고 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시대, 오늘날의 사회보다는 다구와 새소녀가 살아가던 그 시대에 더욱 많은 희생이 요구되었으니 그들의 통과제의와 ‘어른이 되는 과정’은 더욱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다구와 새소녀의 삶을 통해,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결정’해 올 수 있는 그 많은 삶의 과정에서 어떤것을 ‘기억’하고 삶의 중심에 두는지를 기준으로 삶을 영위할 때 조금씩 어른됨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문득 생각해본다. 
 물론, 그 어른됨을 위해 자신의 소망이나 본성,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을 ‘강요’당하는 것은 다구와 새소녀의 시대나 지금이나 부당하다. 그러나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하고 마주해 온 그 길을, (그 비극성까지도) 모두 감내하다보면 어느 순간 어른됨에 가까워져있을 터이고, 결국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그때의 ‘내’가 해야하는 무언가를 더욱 잘 식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바람과 해와 별이 멀리 있고 가까이 있고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음을 그는 알았다. 그를 고향 땅에서 아득히 먼 곳으로 데려간 것은 바로 그의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다구는 긴 여행으로 어떤 대단한 지혜를 얻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해의 땅’에서 찾아냈다가 잃어버리고 만 귀중한 삶에 대한 생각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수년 전 떠나고 싶다는 자신의 조바심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 즉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을 하는 것 뿐이었다.

- 벨마 월리스, 『새소녀』, 이봄출판사, 2021, 219쪽.

by papyros 2021. 12. 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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