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3] 제5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3주차

 

피천득, 『인연, 민음사,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3주차에는 피천득 시인의 수필집 인연 , 엄마(99p)에서 인연(136p)까지 일독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수필

「엄마」, 「찬란한 시절」, 「딸에게」, 인연이었다.   '서영이'라는 부제(수필집의 Part2)가 적힌 두번째 파트로 넘어오면서, 피천득 시인은 그의 일생에

에정을 거진 유일한 두 명의 여인들에 대한 기억과 마음을 풀어낸다.

 

 특히 「엄마 「그 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남편을 일찍이 떠나보내고, 그미마저도 병환을 얻어 고향 평양에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아픔어린 사랑.

그 시기가 유독 짧아서였을까. 시인이 유년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과 함께 가꾼 추억들은 유독 각별해 보인다.

 마지막 임종 전까지도 아들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어머니를 빨리보려 달려가던 피천득 시인의 마음.

애타면서도 아름다운 모자지간의 사랑이 책장 너머까지 전해졌다.

 

 

 밤이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마당에 데려가 별 많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북두칠성을 찾아 북극성을 가르쳐 주었다. 은하수는 별들이 모인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그때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행히 천문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나는 그 후부터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피천득, 「엄마, 『인연』, 민음사, 2018, P103-104.

 

 

 

 

  한편, 「서영이에게」, 「어느 날」, 「서영이」,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이와 난영이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딸 '피서영'에 대한 사랑이 눈에 띠었다. 시인에게 있어 모친 다음으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여인이었으며 그만큼 애정을 쏟아 키웠던 서영이.

책을 읽으며 궁금해 문득 찾아보니 피서영 선생께서는 이론물리학 학계에서 저명한 학자로 알려져 있더란다. 유년시절부터 애지중지 사랑을 다 전하며 키워온 딸이 결혼도 마다하고 학문의 길을 택했을 때 으레 그 시대의 어른들이라면 결혼을 재촉하거나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등 가부장적인 태도를 유지하셨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피천득 시인에게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와 정 반대로 비록 영문학과 물리학으로 전공을 하고 공부를 해 나가는 학문분야는 다르지만, 연구자-학자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외로움에 대해 공감하고 격려하며, 어떤 길을 택하든 딸 서영이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그 길이 옳은 길임을 격려하고 있다. 또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딸에게 인문학적 감성 또한 강조하며 과학과 철학을 양립시켜 공부할 것을 조언하는 피천득 시인의 균형잡힌 태도 또한 눈에 들어왔다. (통섭적 사고는 최재천 교수님 이전에 피천득 시인이 있었다...?!!!! ㅎㅎ)

 

다정한, 그리고 부친이었으나 때로는 스승이, 때로는 동료 연구자가 되어주신 아버지가 계셨으니 - 비록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피서영 선생님의

지성과 인격 또한 분명 시인을 닮지 않으셨을까, 막연히 추측해 본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어 순조로운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아니면 외롭게 살며 연구에 정진하는 것이 네가 택해야 할 길인지 그것은 너 혼자서 결정할 문제다. 어떤 길이든 네가 가고 싶으면 그것이 옳은 길이 될 것이다.

(중략)

한편 과학자에게는 철학 공부가 매우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현대 과학은 광맥을 파 들어가는 것과 같이 좁고 깊은 통찰은 할 수 있으나 산 전체의 모습을 알기 어렵고 산 아래 멀리 전개되는 평야를 내려다볼 수는 없을 것이다 너는 시간을 아껴 철학과 문학을 읽고, 인정이 있는, 언제나 젊고 언제나 청신한 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피천득, 「딸에게, 『인연』, 민음사, 2018, P127-128.

 

 

 

 지막으로, 이 수필집의 제목으로 꼽히기도 한, 저명한 수필 「인연」.

첫사랑 - 아니 이 경우엔 순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 감정이 무엇이든, 사랑하고 아끼던 이를 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좇아가고 싶은

시인의 그 마음이, 그리고 한편으로는 추억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지 못한 데 대한 씁쓸한 회한이 그려진 작품이었다.

그러함에도 가을이면 또 춘천 소양강에 들르고 싶다는 소망은,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때이고 꺼내 추억할 수 있는 마치 일기장과도 같은 그런 애틋한 감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름도 잊고 얼굴도 기억에 없지마는 나와 제일 정답게 놀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양말이 조금 뚫어졌던 것이 이상하게도 생각난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사는지, 아마 대학에 다니는 따님이 있는 부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사는 그는 영원한 다섯 살 난 소녀이다.

유치원 시절에는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고, 사는 것이 기뻤다.

아깝고 찬란한 다시 못 올 시절이다.

 

 -피천득, 「찬란한 시절, 『인연』, 민음사, 2018, P110-111.

 

 

 

 

 

 

 





 

 

 

 

by papyros 2018. 8. 9. 23:14

[과제2] 제5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2주차

 

피천득, 『인연,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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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주차에는 피천득 시인의 수필집 『인연』 中,  

「맛과 멋」(71p)에서 「보스턴 심포니」(95p)까지 일독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았던 수필은 단연

 

「전화」 「장수」 그리고 「기다리는 편지」였다.

 

 「전화」에서는 사람 간 情을 연결하고 이어주는 전화라는 매체에 대한 애착과 고마움에 공감할 수 있었다. 현대 현대사회에서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같이 시공간을 초월해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여러 매체들이 발달되어 있지만,

 사람의 지문과도 같은 '목소리'를 통해 우러나오는 것은 대화의 진정성이기에, 전화기라는 물건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피천득 시인의 이 수필 덕분에 새삼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한편, 「장수」와  「기다리는 편지」에서는 누군가의 편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건강한 성찰에 대한 자세를 노래하고 있었다. 특히  「장수」에서 '추억'할 수 있는 과거가 많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부유하고 넉넉한 사람이라는 데에 마음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과 깊은 사랑과 정을 나누고, 공유하고 '더불어 가는 삶'을 살아가는 이의 내면이야말로 행복하고 고귀한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장수」의 마지막 두 문단을 삶의 지표로서 늘 기억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 둔 보물의 세목(細目)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작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

 

 -피천득, 「장수, 『인연』, 민음사, 2018, P80.

 

 

 

 

 

 

 

 

 

 

by papyros 2018. 8. 2. 14:19

 

[과제1] 제5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1주차

 

피천득, 『인연,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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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천득 시인. 물론 그의 시도 널리 알려져 사랑받고 있지만, 시만큼이나 사랑받고 있는 글들이 그의 수필임을 익히 알고 있기는 했다.

 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기에, 나 또한 그 유명한 피천득 시인의 <인연>이라는 수필 - 수필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그 수필- 에 성심여대에 재학중인 아사코의 이야기가 나오는것은 잘 알고있지만 따로 수필집 전체를 정독해본 적은 없었기에 기대가 컸다.

 

이번 밑줄긋고 생각잇기 신청 당시,
시집과 수필집 중 어떤 책을 선택할까 마지막까지 고심했으나 동네책방 에디션에도 불구하고 인연의 원래 표지에 끌려 선택한 후 , 이번주에는 70페이지 정도까지 그의 수필들을 읽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부분은 단연 첫 장의 <수필> 과 <선물>, <눈물> 그리고 <플루트 플레이어> 였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피천득의 <수필>이라는 이 글을 읽으며 - 피천득 시인은 수필이 가장 솔직한 글이라고 표현했으며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문학이라고 서술했는데, 그렇기에 소설/시/비평..문학의 그 어느장르보다도 수필이 가장 어려운 장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내면을 있는 그대로 글에 서술한다는 것이, 꾸밈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기에...
이러한 수필이라는 장르의 글을 엮어 수필집까지 출간하신 피천득 시인의 영혼이야말로 순수하고 맑은분이 아니었을까, 한편의 글을 통해 추측해본다.

한편, 필사노트에는 수록되어있지 않았으나, <선물>이라는 수필을 읽으며 다시금 선물을 하는 과정이 물질의 교환이 아닌 내면,마음을 전하는 '존재의 자기증명'의 행위라는 것을 새삼 숙고할 수 있었다.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선물>의 글귀 일부를 아래 수록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선물은 포샤가 말하는 자애와 같이 주는 사람도 기쁘게 한다.

무엇을 줄까 미리부터 생각하는 기쁨, 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 기쁨, 인편이나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에는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상상하여 보는 기쁨,

이런 가지가지의 기쁨을 생각할 때 그 물건이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선물을 받는 순간의 기쁨도 크지마는 선물을 푸는 순간의 기쁨이 있다.

이 기쁨을 길게 연장시키기 위하여 나는 언젠가 작은 브로치 하나를 싸고 또 싸서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더 큰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또 더 큰 상장 넣어 누구에게 준 적이 있다.

남에게 주는 물건들이 다 좋은 선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양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양담배를 한 보루 주는 것은 돈으로 이삼천 원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늘 진로 소주를 먹는 사람에게 조니워커 한 병은 선물이 되는 것이다. 백청 한 항아리는 선물이 되어도 설탕 한 포대는 선물이 될 수 없다.

와이셔츠가 아니라 넥타이가 좋은 선물이 된다. 유럽에 갔다가 파리에서 사 온 넥타이라면 더욱 좋다.

촌 부인에게 광목 한 통이 비단보다 더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양단 저고리 한 감이 정말 선물이 되는 것이다.’

 

 

 

-피천득, 「선물」, 『인연』, 민음사, 2018, P51-52.

 

 

 

 

 

by papyros 2018. 7. 26. 19:31

리디북스 페이퍼프로(RIDIBOOKS PAPER PRO) 7개월 사용후기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어느덧 리디북스 페이퍼프로를 사용한 지도 꼭 7개월이 지났다. 일전에 구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용후기를 올린 바 있지만,
(관련링크 http://pedagogics.tistory.com/109)

당시는 구입 및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충분히 페이퍼프로를 사용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때문에 이번글에서는 7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페이퍼프로를 사용하며 직접 느낀 장단점에 대해 지난 글보다 조금 더 서술해 보고자 한다.

 

 

 

'페이퍼 프로(Paper Pro). 그는 어떤 리더기인가.'

 

(BGM . 그것이  알고 싶다)

 

 

강점 1.  종이책과 유사한 크기와 분량. (7.8인치)

 

 

 

 

 7.8인치인 페이퍼프로의 경우, 종이책과 거의 유사한 크기를 지닌다.

 심지어 종이책과 페이지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데 창비에서 출간된 표명희 작가님의<어느 날 난민>이라는 소설의 경우 종이책 전체 페이지가 296페이지인데 , 페이퍼프로 원본설정 기준으로 275페이지 분량이다. 물론 전자책이라는 특성 상, 페이지 수의 차이는 불가피하겠지만 종이책 분량과 거의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기기 자체의 크기도 일반 종이책의 크기와 유사하기 때문에 '종이책'의 감성을 다소간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강점 2.  활자의 가독성

 

 

 

(좌 : 리디북스 페이퍼, 6인치   우: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 7.8인치)

 

 

 

페이퍼프로의는 활자의 가독성이 깔끔하고 활자가 큼직하다.

 

 기실 활자의 크기는 리더기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당연히 확대되는 것이라 여길지 모르겠으나 페이퍼프로는 같은 300PPI의 선명도를 지니고 있는 리디북스 페이퍼와 비교했을 때도 활자가 깔끔하다.  즉, 흐릿하게 보이는 글자가 없으며 활자의 선명도가 매우 좋아 독서하는 데 눈의 피로가 적다.

 

 

강점 3.  저장공간 용량의 확대

 

 

 

 

저장공간의 확대.  리디북스 페이퍼프로는 내부저장소 6G의 용량을 확보하고 있어 기존 리디북스 페이퍼보다 저장공간이 확대되었다.

SD카드는 최대 32G 추가 가능하다고 되어있지만 실제 삽입 결과 60G이상의 SD카드도 인식되니, 고용량의 SD카드를 사용하면 많은 책을 질러도 독서에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강점 4.  퀵버튼  및 가로모드와 색 온도 조절 기능

 

 

 

 

페이퍼 프로의 경우, 제품 상단 오른쪽 버튼을 길게 누르면 퀵버튼 창이 뜨고 여러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유용하다 생각하며 눈에 띠는 기능은  화면회전 기능과 색 온도 조절 기능이었다. 

 

 

 

1) 가로모드

 

  페이퍼 프로의 경우 기존모델인 페이퍼와 달리 7.8인치라는 큰 화면을 활용할 수 있는 가로모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마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가로모드 편의를 제공하여 만화책을 보는 독자들이나 논문이나 전문서적 등 한 페이지에서 더 많은 내용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편리성을 제공하고 있다. 

 

 

2) 색 온도 조절 기능

 

 

 

(좌 : 리디북스 페이퍼, 6인치   우: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 7.8인치)

 

 

 

 

 기존에 페이퍼에 있던 밝기 조절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여기에 새로운 기능으로, 색 온도 조절 기능을 추가 제공하여, 야간 독서 시 눈의 피로도를 풀어주며 타인에게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밝기, 분위기있는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Feat. 김상중)

이 기기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

 

 

 

1) 형광펜 기능 사용 시 멈춤현상

 

 

  개인적으로 페이퍼 프로를 사용하면서 거의 유일하게 발견한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간혹 형광펜 기능을 사용해 밑줄을 그을 때 멈춤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구입 초기부터 그러했고, 대여도서에서 더욱 그러한 현상이 많이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리더기 사용자 개개인의 독서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필자가 리디북스 고객센터 측에 문의를 넣었고 현재 이 부분에 대해 점검 중으로 알고 있으며 문의 이후 최근에는 거의 발생하고 있지 않은 현상이기에, 점차 업데이트나 리디북스 측의 점검 등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고 여긴다.

 

 

 

 

2) 열린서재 기능의 부재

 

 물론 이 부분은 리디북스의 기기 제작 시의 철학과 관련되어 있을지 모르겠으나, 늘 제기되어왔듯 크레마진영에 존재하는 열린서재 기능(타 서점사 책 독서 가능)이 리디북스 측에는 제공되어 있지 않는 부분을 아쉬운 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필자는 페이퍼프로를 루팅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어디에선가 눈물을 흘리며(?) 루팅을 하고 있는 페이퍼/페이퍼프로 유저를 위해 타 서점사 서적을 읽을 수 있는 기능을 리디만의 방법으로 제공, 포용해 주시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3) 블루투스 및 리모콘 , TTS 기능 등 여타 IT 기능의 부재

 

 

  필자는 리더기 사용 시 블루투스나 리모콘, TTS 기능을 크게 활용하고 있지 않아 많이 체감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 이북 리더기 유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피드백이다. 큰 화면으로 인한 리모콘 사용에 대한 소망은 거치대 케이스 등을 구입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며, 개개인의 기능에 대한 필요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다음 제품 발매 시 이러한 부분들 - 독자들의 니즈를 고려한다면 더욱 성공적이지 않을까 싶다.

 

 

 

리디북스 페이퍼프로(RIDIBOOKS PAPER PRO) 종합평가

 

- 간략요약

'전자책이 종이책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종이책 만큼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독서할 수 있도록 여러 편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추가하거나 오류사항을 개선한다면 더욱 완벽할 것이라 기대한다. 

 

★★★★☆ 4.5/5점

 

 

 

 

 

+

꿀 팁 !

 

 

당신이 페이퍼프로 유저이며, 페이퍼프로를 더욱 알차게 이용하고 싶다면!

 

 

 

1. 리디북스에서 월 6500원에 최대 10권의 도서를 대여해 읽을 수 있는 리디셀렉트 기능을 사용하거나,

https://select.ridibooks.com/home

 

 

 

 

  2. 나와 페이퍼프로의 즐겁고 가치있는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 올리는 인스타그램 사진 이벤트 MyPaperTime 이벤트 등에 참여해 보면 더욱 좋을 것이다..!!

https://ridibooks.com/event/10471

 

 

 

 

(늘 고객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 제공,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다양한 이벤트 및 서비스를 마련하는 리디북스는 사랑입니다♡)

 

 

 

 

 

by papyros 2018. 7. 22. 20:57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비즈니스북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비즈니스북스측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내가 고정돼 있다고 믿지 않는다. 과거에 내가 갇혀 있었던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나는 환경을 바꾸겠다고 선택했고 마침내 달라졌다.’

 

-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246.

 

 

 대학 시절 심리학개론에서 처음 유전 대 환경논쟁에 대해 접한 바 있다. 유전과 환경 중 어느 쪽이 더욱 한 개인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논쟁은 심리학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결론은 유전과 환경이 각각 반씩 영향을 미치고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여길 수 없다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저자는 개인 내적인 고유성보다도 환경이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의 저자인 벤저민 하디. 그는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자기계발 분야의 저명한 파워블로거이자 작가로서도 성공했다. 이렇듯 자타가 인정하듯 뛰어난 성취를 이룬 저자의 삶은 그가 겪은 유년시절의 가족환경이 기실 부모님의 이혼과 약물에 중독된 가족들, 자폐증을 앓고 있는 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2년 간 고향을 떠나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한 후 귀향한 뒤 환경의 차이로 저자가 몸소 느낀 변화야말로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던 주된 계기였다. 저자의 삶을 접하며 지난 해 읽었던 J. 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밴스 또한 힐빌리 가정에서 자라나 약물중독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두었고, 늘 부친이 바뀌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조부모의 도움으로 힐빌리의 세계를 탈출해 대학에 진학하고 로스쿨을 졸업해 미국 백인 사회에 무사히 편입한 바 있다. 하디와 밴스는 모두 공통적으로 극과 극의 환경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 경험했다.

밴스의 저서가 에세이 형식으로 기술되어 그의 삶을 회고하는 한편 미국 백인사회의 양극단을 바라보는 사회적 측면을 함의하고 있다면,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형태를 지니며 구체적으로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레시피’, 지도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개개인마다 각자 다른 삶의 목표와 동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레시피를 어떻게 자기 나름대로 활용할 것인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으나, 저자가 활용하는 아침 루틴의 사례로, ‘일기쓰기에 주목할 수 있었다. 일기라고 하면 주로 밤에 자신의 하루 일과와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저자는 아침에 일어나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일기를 쓰면서 지난 주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 얻은 것과 잃은 것, 중요한 일들, 다음 주의 계획, 단기와 장기 목표 등을 정리해 주간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해 나간다. 일기 쓰기라는 가장 간편한 방법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자신을 평가해나가고 반성하며 나아갈 방향을 재고하는 저자의 생활양식은 본받을 만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또한 개인내적으로, 휴식기 없이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교원자격증 취득이라는 목표를 이룬 후 소진 된 임용고시의 난도(難度)에 대한 불안감과 더불어 내게 주어진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불안해하며 고민을 거듭하던 내게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주었고, 내면을 다스리는 힘과 영향력을 선물해 주었다. 특히 고정형 사고방식이 아닌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것들을 배워올 수 있었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또한 벤스와 하디 모두 공통적으로 느낀 바 있듯, 안정적인 지원, 정서적 지지가 바탕이 되는 환경은 한 개인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한 바를 느꼈기 때문에 하디 또한 자신이 받은 안정된 환경이라는 선물을 또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 위탁 양육을 자처했다고 여긴다. 이 책을 통해 학습자에게 지식, 인격, 정서의 모든 측면에서 학습자에게 중요한 지지체계가 되는 교육자로서의 소명을- ‘교육을 통해 선순환을 이루고 싶은 나의 소망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

성공과 좌절의 문턱에서 숨을 고르고 불안해하는, 나와 같은 수많은 청춘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람들은 행복이 마음의 짐이 없는 상태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도전 과제나 어려움 없는 수월한 인생을 살기 원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그 짐이 있어야 우리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견인력을 얻을 수 있다.

 

 

-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162.

 

 

  귀환불능지점은 목표를 회피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가 쉬워지는 순간을 일컫는다. 당신의 가장 큰 야망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 당신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그런 노력은 강한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중략) 사람들은 회피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깊은 내면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안전한 선택을 한다. 자신이 멍청해 보이지 않도록 계산해서 행동한다. 자신의 꿈이 제대로 달성되지 않을 경우를 상정해 여러 대안을 세워두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결국에는 대안에 주력하고, 그 대안이 그들의 삶이 된다. 당신이 부정적인 영향이나 감정을 회피하는 삶을 꾸려왔다면 그런 성향을 바꿀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당신은 그런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 정체성은 당신의행동과 당신이 선택한 환경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174-175.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을 바라보듯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무한한 잠재력과 유연성을 갖고 있다. 그런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라. 그들에게 애정을 보여라. 그리고 그들이 당신처럼 발전하고 향상될 수 있도록 환경의 규칙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라.

 

-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249.

 

 


by papyros 2018. 7. 11. 19:09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30주년 기념판

RHK, 2018. (자기계발, 에세이)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독서 카페 리뷰어스 클럽 http://cafe.naver.com/jhcomm/13279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알에이치코리아(RHK)'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RHK 측에 감사드립니다.



 

(네이버 책 정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642251)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의 상아탑 꼭대기에 있지 않았다.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었다. 내가 배운 것들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든 나누어 가져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라.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으라.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우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씻으라.

변기를 사용한 뒤에는 물을 내리라.

균형 잡힌 생활을 하라. 매일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하라.

매일 오후에는 낮잠을 자라.

밖에서는 차를 조심하고 옆 사람과 손을 잡고 같이 움직이라.

경이로움을 느끼라. 스티로폼컵에 든 작은 씨앗을 기억하라. 뿌리가 나고 잎이 자라지만 아무도 어떻게 그러는지, 왜 그러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 씨앗과 같다.

금붕어와 햄스터와 흰쥐와 스티로폼컵 속의 작은 씨앗마저 모두 죽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림책 딕과 제인Dick&Jane, 태어나서 처음 배운 단어, 모든 단어 중 가장 의미 있는 단어인 보다Look’를 기억하라.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9.

 

 초등학생인가 중학생 즈음으로 기억하는 어느 여름날, 가족 휴가로 간 어느 콘도에서인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초반의 청소년이던 내게는 책의 제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학교가 아닌 유치원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고? 무슨 말이야.’ 언뜻 책의 제목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며 책장을 펼쳐 일독하기 시작했으나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행복감에 젖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조금 더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우연히 독서 관련 카페에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접할 수 있었다. 낯설지 않은 제목.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보았는데, 기분 탓일까? 싶었으나 30주년 기념판으로 재출간된 도서라는 소개 글을 읽고 10여 년 전 어느 여름의 행복감을, 20대 후반의 성인이 된 지금 다시금 마주하고 싶었고,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유년기에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책의 제목을 비유적으로 느꼈을 때와는 달리 2018, 이미 대학원을 졸업한 20대 후반의 성인 독자인 내게 책의 제목, 그리고 저자의 경험은 비유적이라기보다 더욱 직접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워 온 학문에 관한 깊은 지식들이 분명 원하는 분야에의 자격을 갖추고 진로를 개척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 속에서 삶의 순간순간마다 간절히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은 저자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듯이 가치관이라는 삶의 지혜였기 때문이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의 가치관과 신념들이 드러나 있는 1: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수많은 타인들에 대해 다룬 2: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천사들, 그리고 마지막 3: 나는 나의 삶을 다시 살 것이다에서는 저자가 지향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미래에 대해 제시된다. 책의 이러한 구성처럼, 이 책은 저자가 실천하고 소망하고 있는 가치가 자신과 타인에서 나아가 세상으로까지 확대되는데, 즉 한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접하고 깨달은 많은 가치들을 이야기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목사 바텐더><도움받을 자격>이라는 에피소드였다. 개신교의 목사인 저자가 신학 대학원에 재학하던 시절 학비를 마련하고자 바텐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꾸중하긴 커녕, 오히려 사람들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겨 격려하는 대학 교수들의 태도. 그리고 장학금을 수령하기 위해 학비사용 계획안을 제출 하는 저자에게 즐거움을 추구하고 타인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예산을 계획하지 않는 학생에게 어떻게 장학금을 주느냐며 반문하는 학장의 가르침은 저자 뿐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까지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내 말을 잘 듣게. 자네 예산에는 즐거움을 위한 항목이 하나도 없네. , , 음악, 심지어 시원한 맥주 한 잔 할 돈조차 없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돈이 한 푼도 들어 있지 않아. 우리는 자네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돕지 않네.”

즐거움을 위한 항목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항목이라고!

나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돕지 않는다고!

세 번째 가르침이었다. 또 배웠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62-63.

 

 

 

 성공하기 위해, ‘빨리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허둥지둥 살아가는 것 보다는 마음 한켠에 여유와 행복의 자리를 비워두며 타인과 그 행복을, 즐거움을 나누는 삶이 더욱 귀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조급함과 불안에 종종 잊어버리곤 하는 그 당연한 가치를 새삼 떠올릴 수 있었다.

한편 2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인어들> 이었다. 거인, 마법사, 난쟁이 중 한 캐릭터를 정해 줄을 서야 하는 놀이에서 자신은 인어인데 인어는 어디에 서야 하느냐는 어린 아이의 물음.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모두 내가 생각하고 그리는 틀 안에 넣고 분류해 이에 맞추고자 하는 획일화된 교육, 이질적인 타인을 수용하기보다는 두려워하고 회피하고자 하는 사회현실. 최근 읽었던 표명희 작가님의 어느 날, 난민이라는 책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 모두가 어떤 부분에서는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고 소외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화된 배경을 존중하기보다는 획일화된 틀 안에서 세상을 운용해 수많은 난민들을 양산시키고 있지 않는가.

 

 

 

 

 

인어는 어디에 서요?

인어는 어디에 서냐고?”

긴 침묵이 흘렀다. 아주 긴 침묵이었다.

(중략)

 여자아이는 거인이나 마법사나 난쟁이 어느 것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인어였다. 놀이에서 빠지려고 하지도 않았고, 게임에서 진 아이들의 줄에 서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인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놀이를 계속하고 싶었다. 자신의 존엄성이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는 당연히 인어가 설 자리가 있으며, 내가 그 자리를 안다고 믿었다.

글쎄……. 인어는 어디에 서야 하나? 인어들, 남과 다른 사람들, 표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 이미 만들어진 상자와 비둘기집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에 서야 하나?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학교와 나라와 세계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26-127.

 

 

 책을 모두 완독하고, 책장을 덮을 무렵 나는 이 책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를 독자들 개개인이 진정성 있는 성찰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 준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저자가 <받은 만큼 돌려주기>라는 챕터에서도 기술하고 있으며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 Pay It Forward>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언뜻 자그마하게 보일 수 있는 누군가의 선행이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순환될 수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나의 일상을 함께하고 있는 동료나 이웃들을 차치하더라도, 나와 그 어떤 관련이 없어 보이는 타인(他人), 심지어 이방인(異邦人)으로 여겨지는 이, 약자(弱者), 심지어 인류를 넘어 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로부터 배울 점이 있고 늘 조금씩 빚을 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타인, 타 생명에 대한 사랑은 성인기에 이르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늘 배워오는 가치이지만, 곱씹어 올라가면 유년 시절부터 강조되어왔고 편견과 선입견 없이 타인과 대상을 대하던 시기가 유년기가 아니었던가.

 

메논은 그 빚을 결코 있지 않았다. 믿음이라는 선물도 15루피도 잊지 않았다. 메논이 죽기 전날에 어떤 거지가 와서 신발이 없어 발이 상처투성이니 샌들 살 돈을 달라고 구걸했다. 메논은 딸에게 지갑에서 15루피를 꺼내어 주라고 했다. 그것이 메논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한테 들었다.

(중략)

 그 사람의 아버지는 메논의 보좌관이었고, 메논에게 자선을 배웠으며, 자신의 배움을 아들에게도 물려주었다. 아들은 낯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전통을 이어나갔다. 이름 모를 어느 시크교도에서 인도 공무원에게로, 그의 보좌관에게로, 보좌관의 아들에게로, 그리고 절망에 빠진 백인 외국인인 나에게로 자비가 베풀어진 것이다. 그 선물은 큰돈이 아니었고, 나 또한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선물은 돈의 가치를 떠나 내게 축복받았다는 느낌을 주고, 나도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81-82.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서로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모퉁이 식품점의 남자, 자동차 정비소의 수리공, 주치의, 선생님, 이웃, 동료들이 그렇다. 항상 거기에있는 좋은 사람들, 작은 일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 매일 우리를 가르쳐주고 축복해주고 용기 내게 해주고 지지해주며,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을 역시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를 의지하고,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에게서 배우고 뭔가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 누가 그러는지 우리는 결코 모른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88.

 

 

 

 

 로버트 폴검의 이 에세이가 3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꾸준히 사랑받아 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추구할 만한 항존(恒存)적인 가치 타인과 생명에 대한 사랑, 늘 누군가로부터 빚지며 사는 존재라는 사실, 공정성, 삶에 대한 경이로움 등 는 거창한 소설이나 동화, 드라마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가까운 곳의 이웃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러한 마음 따뜻하면서도 타성(惰性)을 깨뜨릴 수 있는 깊고도 날카로운 울림은 바로 우리가 직접 발견할 수 있는 주변 인물들로부터 전해져 온다는 사실을.

로버트 풀검이 그리는 그의 할아버지가 그 내면의 추억에 자리하는 조부인 동시에 자신이 바라는 할아버지로서의 이상향(理想鄕)이기도 한 것처럼, 소소하게 보이는 일상 속의 작은 이야기들이 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한편 미래를 그려내게 하고 대를 걸쳐 전해줄 수 있는 가치를 품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다 널리, 오래 전해질 때에 한 개인을,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근원으로 작용하리라 믿으며,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전해 준 저자 로버트 풀검에게 마음 깊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나 또한 세월이 흐를수록 청춘기에서 벗어나 기성세대로 나아갈 지인데, 이 책을 읽어주며 새로운 청춘들과 소통하고 내 경험을 전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할아버지 집에 간다. 할아버지와 나는 밝은 람바 사기타리 별과 겹칠 정도로 가까워진 금성과 목성, 서남쪽 하늘에서 달리는 큰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본다. 머리 바로 위에는 뿌연 안개 가튼 안드로메다 성운이 보인다. 여름이 되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은하수도 보인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할아버지는 1910년에 본 헬리혜성 이야기를 해준다. 그해 5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밤, 할아버지는 인류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체험한 일을 목격했다. 세상은 헬리혜성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과 두려움을 느끼며 공포에 떠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할아버지는 헬리혜성이 다시 올 때 자신을 대신해서 꼭 보겠다는 약속을 하란다. 나는 약속한다.

새벽이 올 때쯤이면 머리 위 하늘을 지배하는 위대한 사냥꾼 오리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베텔게우스와 벨라트릭스, 오리온 허리 부분의 성운,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를 향해 있는 발 부분의 리겔과 사이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오랫동안 똑같은 별들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어서 지구와 마찬가지로 저 하늘 어딘가에도 생명체가 있고, 어떻게 생겼든 간에 우리를 보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서 보면 우리 지구도 빛날까? 우리 지구도 그곳에 사는 존재들이 상상력과 경이로움으로 만들어낸 밤하늘 별자리의 일부분일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어떤 것,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어떤 것의 일부이며 그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잃지 않으려면 가끔씩 나가서 하늘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잠자리에 든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95-196.

 

 

상상력은 지식보다 강하다.

신화는 역사보다 강력하다.

꿈은 사실보다 힘이 있다.

희망은 늘 경험을 이긴다.

웃음만이 슬픔을 치유한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9.

 

 

 

 

 

 

by papyros 2018. 6. 20. 14:21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필로소픽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필로소픽 측에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책과 독서에 대한 나의 애정고백서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2.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읽지 않은 책이 점점 더 늘어난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15.

 

 

  ‘내 마음속의 근원적인 불안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을 때 내 생이 끝장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67.

 

 

 

 

 학창시절, 나는 교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학생이었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도서관 청소를 자원했으면서도 청소는 뒷전이고 도서관에서 줄곧 독서에 매진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는 후문(後聞)은 성인이 된 후에야 모친의 지인이신 분으로부터 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유년시절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진실로 즐겨하던 나는 최근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죽기 직전까지 내 서가(書架)에 꽂혀져 있는 종이책들과 리더기에 다운로드 받아둔 E-book들을 완독(玩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20대 후반이니, 심각한 노안이 오기 전까지 약 25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으며, 그 이후 돋보기를 끼고 안경을 볼 수 있는 시간도 30년밖에 되지 않는데, 아직 읽은책보다 읽고 싶어 구입했으나 읽지 못한책들이 훨씬 많으니……. 그러나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이는 나만의 불안이 아닌 독서가들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자연스런 걱정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해리포터만큼이나 신비롭고 환상적인 표지를 지닌 이 책은 소설 등의 문학작품이 아닌, ‘책에 대한 이야기로서, 소설을 쓰는 일을 업()으로 둔,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한 독서가의 에세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챕터마다 화두를 던진다. 1나쁜 책, 스토커, 그리고 독자에서는 독자로서 지닐 수 있는 독자들의 책에 대한 감정과 독서법에 대해, 2사형수, 도둑, 선원, 알코올중독자 그리고 작가에서는 삶 전체가 바로 곧 작품이었던 작가들의 생()에 대해, 그리고 책의 제목이 되는 마지막 3네 번째 책상 서랍, 타자기, 그리고 회전목마에서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서재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선 저자가 다룬 가장 핵심적인 화두(話頭)는 우리 사회의 독서 문화에서 자성해야 할 부분인 고전주의(古典主義) 독서법이었다. 서울대생, 하버드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읽은 도서 목록들이 신문에 기사화되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처럼 소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고전(古典) 목록에 포함된 작품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과도한 부담감을 부여하는 독서문화에 대해 저자는 강력히 비판한다. 국어교과에서도, 교과서에 문학작품을 수록하는 기준에 있어 정전(正典)’의 자격 여부가 핵심적인데, 교과서에 선정될 만한 정전(定典) 기준이 재검토될 때, 그리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작품이 정전(定典)으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충분히 수용하고 인정할 때 더욱 다양한 양질의 작품들을 학습자들이 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일컨대 최근 사회에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조남주 작가님의 소설82년생 김지영의 경우 그 문제의식과 시대의 반영 면에서 보편적인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받은 바 있다. 때문에 문학사 일컫는 정전(正典)의 자격을 아직 부여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정전(定典)의 자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저자가 소개했듯이, 현대에 와서는 교육 고전(古典)으로 널리 알려진 장 자크 루소의 작품에밀1762년 출간 당시만 해도 금서로 지정되어 루소가 스위스로 망명을 가야만 했던 일화를 통해 고전(古典)이나 정전(正典)의 자격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재조정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문학치료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이로서 저자가 말했듯 독자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관심사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 즉 작품을 통해 작가의 고민과 작품의 고민을 통해 자신의 고민들이 이어지는 작품이야 말로 독자 자신에게 고전(古典)이 되는 작품이라는 저자의 메시지에 매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작품서사와 자기서사가 긴밀히 조응(照應)하거나, 작품서사와 자기서사의 간극이 작품을 통해 조정되고 변화할 수 있을 때 그 작품은 한 개인에게 고전(古典)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가령 그것이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라고 하더라도 독자의 자기서사가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변화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작품서사를 지니고 있다면, 해당 독자에게는 고전(古典)으로 자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의미에서 내게 있어서는 중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감응(感應)을 받고 있는 헤세의 작품들이나 김탁환 작가님의 작품들이 고전(古典)에 속하는데, 나의 자기서사가 문학치료학의 서사이론 영역 중에서도 보살핌의 대상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모감싸기 서사에 가장 공감하며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헤세의 성장소설, 교양소설이나 사람의 내면과 내면이 맞닿아 있는 서사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상상의 서재에서 만난 <세상에서 사라진 책들의 목록> 에 대한 아이디어도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했던지라 역사책을 읽으며 늘 현재까지도 논란중인 당쟁희생설과 사도세자의 역모라는 설 등으로 대립되는(정병설과 이덕일교수의 논란이 대표적.)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해 그 진실과 자신의 심경을 영조가 기록해 둔 책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나, 속편이 없는 작품에 대해 속편이나 후일담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설 해리포터에 대한 팬픽션(2차 창작)에 본편에서 나타나지 않은 독자들의 소망을 투여하는 것이 그러하고, 다음에서 연재중인 웹툰 <, 그리고 황제> 같은 작품이나 시간을 되돌리는 역사드라마 등의 작품들이 만약세상에 없는 책/작품들이 존재했다면, 발견된다면 어땠을까 꿈꾸어 보는 독자들의 소망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보르헤스는 한때 아름다움이 소수 작가의 특권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아름다움이 모두의 것이며 우연히 뒤적이던 책 어느 페이지나 길거리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도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면서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고전은 무슨 대단한 장점을 지닌 책이 아니다. 그것은 각 세대의 사람들이 온갖 이유 때문에 넘치는 열의와 알 수 없는 공경심을 가지고 읽게 되는 그런 책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38.

 

 

 고전 독서는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독자 자신이 지금 현재상황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개인적인 관심과 문제의식, 나아가 당대가 제기하는 문제와 대결하기 위한 사유의 연장에서 자신에게 필요할 때 찾아 읽어야 한다. 취향이 너무나 고전적이라 고전이 자신의 영혼에 딱 맞는 옷이라면 고전만 찾아 읽어도 된다. 그게 아니라면, 결코 고전이라는 권위나 고전 목록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40.

 

  만약 당신이 한 권의 책에서 자신의 실존적인 삶과 관련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책을 해석하는 것보다 그 책에서 당신이 무슨 고민을 발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작가의 고민과 작품의 고민, 그리고 당신이 책 속에서 발견한 고민들을 연결시키며 깊이 생각해보라. 즉 해석하지 말고 고민을 발견하라. 그러면 한 권의 책은 당신에게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올 것이며, 색다른 전율과 기쁨을 만나게 될 것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43.

 

 

 

 

 2부에서 저자가 소개한 작가들은, 작가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경험한 삶의 비극들이나 독특한 삶의 자국들이 그들의 작품에 반영된 일화들이 소개된다. 때문에 2부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다. 유형지에 머물렀던 경험이 있는 사형수 도스토예프스키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한 일화인지라 차치하고서라도, 콜리마 이야기의 저자 바를람 살라모프가 정권의 핍박으로 인해 겪은 고통, 장 주네의 도둑 일기가 당대 사회의 독자들에게 준 영향(부조리에 대한 고발) 등은 매우 놀라웠다. 1970년대 노동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위장취업까지 하면서 그러한 경험을 작품에 녹인 황석영, 방현석 작가님의 삶이나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대학원을 다니며 경험한 대학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결국 청춘을 다 담았던 연구자의 길에서 돌아나와야만 했던 김민섭 작가님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그리고 대학에서 소설이론이나 소설 창작에 대한 수업을 따로 들으신 적이 없음에도, 그저 노동자로서 글을 쓰신 회색 인간의 저자 김동식 작가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작가님들의 삶에, 그리고 작품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작가님들이 경험하신 특수성과 더불어 어쩌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보편성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특히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일화는 이유진 선생님의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유진 선생님께서는 파리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바로 귀국한다면 교수직이 보장되어 있었던 그의 삶에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 참여로 인해 정치권으로부터 탄압, 그리고 그로 인한 망명이 이어졌고, 개인사적으로는 아들이 선천성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비극까지 앉게 되었다. 연이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가 분노와 서러움의 감정으로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겪은 비극을 후손, 후학들이 격지 않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책을 읽고 연구하며, 추구할 만한 올바른 가치와 태도를 지켜나가고자 노력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소크라테스가 일컬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온몸으로 실천한 것이며, 저자가 소개한 또 다른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표현한 지식인의 참된 모습이 바로 이유진 선생님의 삶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표현을 통해 되새기고 이유진 선생님의 삶을 통해 발견한 지식인의 모습. 대학에서 얼마나 전문적인 분야를 전공했는가, 얼마나 많은 학위를 취득했는가보다는 꾸준히 양서(良書)를 읽으며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자신이 배운 바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점임을 다시금 깨닫고 지금의 나는 과연 참된 지식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 자성하게 되었고 이에 부끄러워졌다. 더 많이 세상과, 그리고 타인의 식견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통해 시련과 고통, 서러움과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생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니체적인 순수 긍정, 허무를 극복한 허무,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한국의 선비상을 보았다.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으면서도 끊임없이 조국을 걱정하고, 지식인으로서 조금이라도 후학들에게 힘이 되고자 끝없이 책을 읽고 탐구하며, 서양의 중심에 있으면서 오히려 우리가 외면하는 전통의 정신과 지혜, 사상을 더 깊이 연구하고 불의와 비굴함, 속된 것들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 고고함을 지닌 현대의 선비.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86.

 

 

 한국 사회가 그런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남을 짓밟고 진실마저 짓밟고 올라선 꼭대기 삶이나 60평 고급 아파트의 안락한 삶은 그런 조촐하고 가난한 삶에 감히 비견될 수도 없음을 깨달을 때, 잃어버린 우리의 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88.

 

 

 

 

 진짜 지식인은 겐자부로에 따르면 독서인들이다. 돈벌이와 무관한 지식이나 교양일지라도, 틈틈이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폭넓은 교양을 쌓고, 나아가 사적인 영역뿐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 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행동하기를 저어하지 않는 모든 이들, 불의 앞에서 촛불을 들 줄 아는 모든 이들은 모두 지식인이라고 해야 한다. 사이드의 말처럼, “사회 안에서 사고하고 우려하는 인간들이 지식인이다. 겐자부로는 말한다.

 대학에서 얻은 전문지식을 신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세 도움이 되지는 않을 지식인의 (아마추어로서 개개인이 각각 즐기고 쌓아가는) 독서를 또 하나의 새로운 습관으로 삼아주었으면 좋겠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34-135.

 

 

 

 

 마지막 3부에서는 드디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책상에 달린 열 한 개의 서랍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열 한 개의 서랍 중 세 번째 서랍네 번째 서랍이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세 번재 서랍의 경우 칸트가 일컬은 현상세계’, 즉 우리가 감각을 통해 경험 가능한 인식 세계, 현실을 의미하는 반면, ‘네 번째 서랍은 세 번째 서랍에 시간이라는 환상의 차원이 덧붙여진 세계를 의미하고 있다. 즉 우리가 여러 문학작품에서 만나는 시/공간을 넘은 여러 인물들과 시, 공간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 번째 서랍이 우리의 현실 그 자체라면, 네 번째 서랍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허구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소설의 정의(定義)와 같이, ‘허구적으로 만들어진또 다른 현실 공간이다. 세 번째 서랍과 네 번째 서랍에 대한 부분에 대해 생각하며, 네 번째 서랍에 속하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작품 속 인물들이 기실 세 번째 서랍에 속하는,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들이었듯이, 네 번째 서랍 속의 세계에 속하는 해리 포터라는 소년은 세 번째 서랍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학대 속에 외로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꼬마 아이일 수 있으며, 네 벤째 서랍에 속하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속 한스 기벤라트가 획일화된 학교교육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성장해 온 바로 옆의 한 소년이거나 심지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재발견 할 수 있었다. 구운몽에 등장하는 성진-양소유의 욕망이 기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욕망 그 자체였으며, 홍길동전의 길동과 그의 수하들이 바로 세 번째 서랍에 자리하는 수많은 서얼들과 양민들을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 특히 소설을 허구적인 것이며 현실과는 괴리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현실과 작품을 분리시키고 있을지 모르는 혹자(或者)들에게 바로 이 부분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마술적이고 환상적으로 보이는 네 번째 서랍 속의 수많은 세계들은, 바로 우리가 지금 뿌리내리고 있는 세계를 비유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두 세상은 늘 평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타자기는 스스로 회전하는 회전목마가 둘러싸고 지키고 있다. 누군가 이 타자기를 훔치기 위해 접근하려 하면 회전목마가 빛의 속도로 회전하는데 그 무시무시한 회전속도는 가까이 접근하는 모든 사물들을 모래알처럼 산산조각 내버린다. 목마들은 유니콘의 형상을 하고 있고, 그 목마들은 이 세계의 중심이자 기원인 타자기를 충실하게 지키는 영원한 파수꾼이다. 이 타자기가 존재하는 한, 이 세계는 무한히 새로운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12.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제기한 고전(古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기도 하고, 책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늘 책을 한 권씩 사 오고야 말고 심지어는 좋아하는 책가의 책을 수집하고픈 욕심이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나게 되는 한권의 책이 주는 기쁨에 어쩔 수 없는 애독가로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들을 느꼈다. 또한 이러한 종류의 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책에 대한 책들이 그러하듯이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작가와 작품을 새로이 접한 바, 새로이 만나게 될 작품들에 벌써 기대가 된다. 물론,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이미 깨달았듯이, 무한한 우주 그 자체인 그 도서관에 소장될 수 있는 책의 권수조차 유한한데, 나약한 한 개인일 뿐인 나 또한 내가 읽고 싶은, 읽고자 했던 책들을 모두 읽지 못할 것임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어나가는 이유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책이 선사하는 그 자체의 즐거움 너머 세 번째 서랍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네 번째 서랍속의 새로운 세계,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나와 다르면서도 유사한 인물들을 통해서 내 내면의 깊은 곳과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대화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선물 같은 순간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네 번째 서랍, 다섯 번째 서랍, 여섯 번째 서랍- 수많은 작품들을 진실로 기다린다.

  더불어 이러한 기쁨과 설레임이 넘치는 책상 서랍 속 여정에 동참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가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사랑이건 책이건, 또 다른 무엇이건 간에 예기치 못한 경이로움과 전율을 안겨 줄 어떤 낯선 대상을 어느 미래엔가 반드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다림의 설렘만으로도 삶은 한 번 살아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87-88.

 

든 책은 마법이고 동시에 진짜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없는 세계의 책이라는 한 권의 책이 시간과 공간 모두를 포괄하는 이 세계 자체와 일치하는 책이라면. 그 속에는 가능한 역사와 아직 쓰이지 않은 책도 모두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우주적인 한 권의 책이야말로 실제이며,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와 벤 존슨을 포함한 모든 작가와 그 작가들이 쓴 책들은 그 책의 한 부분이며, 따라서 허구이거나 책의 환영일 수도 있다. 어쩌면 보르헤스가 꿈꾸었던 <바벨의 도서관> 역시 그러한 한 권의 책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책과 세계는 마치 꿈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섞이듯, 서로가 서로를 꿈구면서 한데 뒤섞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04.

 

 

 

 

 

 

 자는 한 권의 책과 함께 그들만의 내밀한 비밀을 영혼 속에 간직한다.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책과 독자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84.

 

 

 

 

 






 

'이 서평은 필로소픽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것임을 밝힙니다'

 

by papyros 2018. 6. 2. 21:49

베아트릭스 포터, 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E-book cafe <피터 래빗 전집>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민음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민음사 측에 감사드립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곳이 맞고, 저 사람에게는 저곳이 맞다. 내 경우에는 티미 윌리처럼 시골에서 사는 것이 더 좋지만.”

 

- 베아트릭스 포터, 도시 쥐 조니 이야기,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575.

 

 

 

 ’피터 래빗. 기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피터 래빗은 그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수많은 귀여운 동물 중 하나일 뿐으로, ‘이나 영화같은 컨텐츠보다도, 오히려 클리어파일, 노트 등 학용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토끼일 뿐이었다.

 그러나 2018년 봄, 성인이 되어 제대로 마주하게 된 피터 래빗 전집덕분에, 베아트릭스 포터로부터 세상에 나오게 된, 피터 래빗을 비롯한 여러 동물 가족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자세히 접하게 되었다. 금색과 빨간색의 고급스런 표지, 양장본, 그리고 척 보기에도 제법 두꺼운 책에 압도되었으나, 책을 펼쳐든 순간 나는 동물가족들의 이야기로 몰입되어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단연 우화라고 할 수 있다. 피터 래빗을 비롯한 토끼가족, 생쥐 가족, 고양이 가족 등 수많은 동물들을 사람처럼 의인화하여 그 속에서 인간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전집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몇 가지 떠올리자면- 피터 래빗 이야기, 피터 래빗 이야기, 플롭시 버니네 아이들 이야기, 토드 씨 이야기(토끼 가족 스토리), 글로스터의 재봉사 이야기, 피글링 블랜드 이야기, 꼬마돼지 로빈슨 이야기정도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플롭시, 몹시, 코튼테일, 그리고 피터까지 4남매의 토끼가족 중 막내로 유독 장난기가 심하고 모험심이 강했던 피터 래빗. 자칫하면 맥그리거씨에게 붙잡혀 토끼파이신세가 될 수 있다는 어머니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맥그리거씨의 밭에 들어갔다가 파란 웃옷을 잃어버리는 등 호된 경험을 하고 돌아온 그의 유년시절에서부터, 그가 성년이 되어 펼쳐지는 플롭시 버니네 아이들 이야기, 토드 씨 이야기에서 그의 사촌 벤저민 버니와 누나 플롭시가 결혼해 얻은 여섯 마리의 아기토끼까지, 그들은 일평생을 농장 주인 맥그리거, 혹은 다른 동물(오소리나 여우 같은)들에게 잡혀갈 수 있다는 위험(불안)을 안고 지낸다. 여우나 오소리 등의 본능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맥그리거씨로 표상되는 인간의 이기심, 욕심 때문에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글링 블랜드 이야기꼬마돼지 로빈슨 이야기에서 피글링과 로빈슨이 결국 자신의 친구를 팔아넘기려는, 그리고 자신을 키워 베이컨으로 만들려고 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도망치는 여정을 그린 모험적인 이야기 이면에 그들이 그런 여정을 겪을 수밖에 없게 만든 인간들의 욕심에 잔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글로스터의 재봉사 이야기는 따뜻한 인간을 도와 실을 잣는 생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유년시절 읽은 동화 <구두장이와 꼬마요정>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앞서 언급한 맥그리거씨나 로빈슨을 잡아 베이컨으로 요리하고자 했던 요리사와 같은 인간의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오히려 인간이 동물들의 도움을 받는 내용이었다.

 일련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동물들을 모두 의인화해 표현하고, 이들이 인간에 의해 희생당할 위기에 처하거나, 혹은 인간을 돕는 내용이 그려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과 생명, 특히 동물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던 저자 베아트릭스 포터가 사람도 동물의 한 종()에 불과하며 사람들과 동물들은 이 세상에서 공생하는 존재라는 점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야기들 대부분에서 ’(맥그리거, 오소리, 여우 토드 등)에 대항할 때 조력자가 등장한다는 사실도 유의미하다고 여겼는데, 위험과 불안에 함께 대응하는 조력자를 통해 개개인의 힘보다는 조력자와의 협력(協力)을 통한 공동체성의 가치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한편 도시 쥐 조니 이야기, 여우와 황새 이야기의 경우 어릴 적 읽었던 이솝우화의 <도시 쥐와 시골쥐>,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와 매우 유사해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솝우화를 소재로 삼아 베아트릭스 포터가 각색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도시 쥐 조니 이야기를 통해, 지나치게 격식화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자성과 더불어,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농촌의 소외현상이라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저자의 가치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 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도, 각자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공존해야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게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전해졌다.

 귀여운 삽화 이면에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이면의 메시지를 대부분의 독자들이 마찬가지로 읽어낸다면, 피터 래빗 전집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이솝우화등의 고전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저자가 영국인이다 보니 영국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어휘나 노래, 비유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책과 더불어 저자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에 대한 이해, 영국 문화권에 대한 이해 등이 배경지식으로서 활성화 될 때 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2006년에 세상에 등장했던 영화 <미스 포터>를 함께 보거나 이와 더불어 책에 대한 큐레이터, 독서모임에서의 나눔 등 전문가나 타인의 해석을 아우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어머니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 <용궁에 간 토끼>이야기를 들으며 꿈나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이런 동화들은 왜인지 모르게 성인이 된 지금에까지 뇌리에 깊이 남는다. 피터 래빗 전집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도 그렇게 한 편씩 잠자리에서 들려줄 이야기로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피터와 벤저민이 아기 토끼들을 데리고 의기양양하게 나타났을 때 바우서 영감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플롭시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기 토끼들은 가벼운 타박상을 입고 몹시 허기진 상태였다. 아기들은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고 곧 회복되었다.

 

- 베아트릭스 포터, 토드 씨 이야기,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484.

 

 

 고양이는 순수한 우정에서, 그리고 요리사와 바나바스 선장에 대한 앙심에서 로빈스이 여러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게 도와주었다.

 

- 베아트릭스 포터, 꼬마 돼지 로빈슨 이야기,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665.

 

 

 

by papyros 2018. 5. 26. 03:06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E-book cafe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RHK(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RHK측에 감사드립니다.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그러면 반드시 응해 올 거야.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158.

 

레일라는 살아 있는 거야? 죽은 거야? 적어도 그것만이라도 알려줘. 너희들의 깨끗한 마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야. 만약 레일라가 살아 있다면 도와줘.”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159.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이 서정적인 제목을 지니고 있는 미야모토 테루의 이 작품은, 단순한 서사구조 안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환상의 빛>을 먼저 접했는데, 알고보니 그 영화의 원작소설 작가가 바로 미야모토 테루였기에 작품의 서정성이나 서사 구조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서정적인 소설이라는 소개와는 달리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마주하게 되는 것은 기쿠에 올컷이라는 한 여성의 죽음이다. 그녀는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미망인으로, 남편인 이안 올컷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이 남편 대에서 성공을 거두었기에 상당한 재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전국 일주 중 벌어진 '기쿠에 올컷'의 죽음. 그리고 망자의 유산을 그녀의 조카인 오바타 겐야-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원에서 유학하며 MBA과정을 마친 일본인 가 전부 상속하게 되어 오바타 겐야가 로스엔젤레스(LA)의 팔로스버디스반도로 건너가게 되면서 작품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기쿠에 올컷의 집 그 정원에서 겐야가 마주한 진실은, 백혈병으로 여섯 살의 나이에 죽은 줄만 알았던 사촌 레일라가 사실 유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비공식적인 기쿠에 올컷의 유언 마지막 줄에 따라서, 레일라를 찾아 유산의 70%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책임이 겐야에게 부과된다.

 

 

“‘그것과는 아직 떨어질 수 없다……. ‘그것이라고 쓰여 있는 걸로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고. 물건인가. 떨어질 수 없는 물건……. 멜리사는 레일라와 나이가 별로 다르지 않지. 그렇다면 그때는 다섯 살이나 여섯 살. 그 정도의 여자아이가 떨어질 수 없는 그것이란 한정되지 않을까? 부모가 우격다짐하지 않고 느긋하게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그것이라고 하면 인형이나 장난감, 이제 갓난아기가 아닌 유아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겠지.”

 겐야는 니코가 교코 매클라우드의 편지에서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낀 것인지, 딸 멜리사가 떨어질 수 없는 그것에만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이라……. 이 교코 매클라우드의 편지를 보면 원래 몬트리올에 살지는 않았군. 다른 나라에서 이주한 거야. 기쿠에 씨하고는 어디서 알게 되었을까? 일본에선가. 일본에서부터 친구인데 기쿠에 씨는 미국인과, 교코는 캐나다인과 결혼했지만 교우관계는 이어졌다. 하지만 기쿠에 씨는 그것을 남편한테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어떻게든 남편에게 숨기고 싶었다. 그건 왜일까?”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152-153.

 

 

 레일라를 찾기 위해 오바타 겐야가 기쿠에 올컷이 만약을 위해 남겨둔 마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것만 같은 힌트들을 찾아내고, 사립탐정인 니콜라이 벨로셀스키’(니코)가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히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이 협력하여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기쿠에 올컷이 유괴사건에 가담했다는 것. , 딸을 유괴당한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했다는 것. 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독자들은 ? 무엇 때문에 어머니가 딸을?”이라는 질문에 당면하게 된다. 그녀가 유괴라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감수하고서라도 레일라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야 했던 것은, 마트 CCTV안에서 자신에게 타월을 흔드는 딸 레일라의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학생을 만났나요?”

흑인 경비원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 .. 건방진 꼬맹이였어요. 신분증을 보여달라지 뭐예요.”

경비원은 웃으며,

학생의 요구는 정당한 겁니다.”

하고 말했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207.

 

 

언제였더라. 사격 클럽의 이사를 맡고 있다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가,

매년 미국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이 총알이 들어있지 않은 총으로 죽는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위의 어른들도 총알이 들어 있지 않다고 믿는 총으로 놀다가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221.

 

 

 

벽이나 창에 매달린 화분의 숫자 말이네. 거베라 화분이 서른세 개야. 레일라는 서른세 살이지. 우연일까?”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260.

 

 

이후 작품의 후반부에서 겐야가 교코와 케빈 부부를 만나며 밝혀지는 진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왜 어머니가 직접 유괴사건을 조작해 딸을 떠나보내야만 했나하는 물음에 석연치 않았던 부분이 드디어 풀리는 지점. 소설에서만 나타나는 허구라고 치부하기에는, 대부분의 성폭력이 친족 간에 일어난다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최근 읽었던 프레드릭 베크만의 신작소설 베어타운에서도 하키단 단장의 딸 마야가 유소년팀 하키팀 유망주인 청소년 케빈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공동체의 시선과 싸워나가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사건 이후 공동체 안에서 외롭고 처절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족들이 추구하는 가치인 사랑안에서 부모님의 보호 속에 사건을 함께 극복해 나가면서 결국 베어타운에 남게 되다. 그러나 이 작품의 레일라는 결국 어머니를 떠나 다른 가정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니고, (그녀의 친부모를 잊고) 살아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레일라와 마야의 삶은 (본래의 가족들과 함께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마야와 레일라 둘 모두,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한 모성애에 의해 보호받았으므로.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삶은 어떤 어린아이에게나 당연한 환경이어야 하는 것이다.

 

 

기쿠에 씨는 굉장한 정신력의 소유자네. 감탄할 수밖에 없어. 27년이나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불안이나 공포와 싸우며 살아온 거니까. 몬트리올대학의 졸업식 식장에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멜리사 매클라우드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쿠에 씨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401.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부터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손에 맡겨 자신을 잊게 해야만 했던, 그리고 범죄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평생 두려워하며 살아야 했던 기쿠에 올컷의 비극적인 상황. 딸을 보호해야 하는 그녀의 깊은 애정이 아니었다면, 레일라는 지금의 삶처럼 행복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기쿠에 올컷이 진정으로 바라고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야 말로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의 행복이었기에, 작품 말미에 겐야가 그려낸 27년 전 기쿠에 올컷과 레일라의 모습은 따뜻하고도 슬픈 느낌이 묻어난다. 레일라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비극을 기꺼이 감수한 어머니 기쿠에 올컷의 희생이, 마치 자신의 진주알을 기꺼이 내어주는 어미조개 같기에. 그만큼 아름답고도 서린 사랑이기에.

 

 

 

 

 겐야는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오바타가의 능소화보다 색이 짙고 꽃잎도 큰 올컷가의 능소화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중정의 잔디밭 위에 27년 전 서른여섯 살의 기쿠에 고모를 두었다. 겐야에게는 그 모습이 확실히 보였다.

기쿠에 고모는 길이가 긴 주름치마를 입고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겐야가 잠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어디선가 어린 레일라가 달려와 엄마에게 안겼다. 기쿠에 고모는 깔깔 웃음소리를 내며 레일라와 함께 잔디밭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달빛이 두 사람의 몸에 금색으로 선을 둘렀다.

레일라는 엄마에게 안아달라며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나서 꽃밭으로 달려가 꽃들을 가슴에 안을 만큼 안아서는 강아지 같은 걸음걸이로 돌아와 엄마에게 쏟았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405.

 

 

 추리적(미스테리적) 서사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이 가치 있었던 이유는, 기쿠에 올컷이 그녀의 조카에게 전해주고자 한 - 마치 퍼즐과도 같은 레일라에 대한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한편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지닌 내면의 깊은 곳에 순수한 사랑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한 개개인의 소망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겐야가 품은 제시카에 대한 사랑, 탐정 니코와 함께하는 터본스테이크와 스프가 마련된 식사자리 등의 소박한 행복이 서사 속에 자리하는 것은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삶의 그러한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중정의 풀꽃이라는 신비스러운 존재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한편 행복소망하며 진실을 찾아나가는 서정성. 양측의 무게 추를 맞추는 사이 기쿠에 올컷의 내면을 독자 자신에게로 내사하는 마법 같은 순간, 작품은 마무리된다.

비극과 행복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중정의 꽃들, 기쿠에 올컷의 결심, 겐야와 니코의 추리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만 같은 작품이었다.

(애초에 영화화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극장 스크린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기쿠에 씨는 이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나서 레일라가 좀처럼 잠을 자지 않는 밤에는 정원의 꽃밭으로 안고 나갔어요. 그리고 반드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아무리 무서운 일이나 슬픈 일이 일어나도 엄마가 반드시 도와줄 테니까, 레일라는 그냥 안심하고 있으면 된다고 말이에요.

 그러고 나서 기쿠에 씨는 레일라가 얼마나 영리하고, 마음씨가 얼마나 고우며, 모두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인지를 몇 번이고 말해주었대요. 어른이 되면 키도 크고 다들 돌아볼 만큼 예뻐질 거야. 그렇게 되도록 이 꽃밭에 부탁해보자, 꽃에게도 풀에게도 나무에게도 마음이 있어.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레일라의 마음과 꽃, , 나무의 마음은 말을 할 수 있어. 꽃도 풀도 나무도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말해줄 거야. 레일라도 언젠가 꽃, , 나무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러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알게 될 거고…….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393.

 

 

 

 

 

 



 

by papyros 2018. 5. 4. 01:07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가제본도서)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다산북스 출판사 <베어타운>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다산북스 출판사' 에서 도서(가제본)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다산북스측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여기서 무슨 상품을 개발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무슨 제조업체도 아니고. 우리는 인간을 육성하고 있어요. 그 아이들은 사업 계획이나 투자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에요. 몇몇 후원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청소년 육성 프로그램은 공장이 아닙니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92.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 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중략)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153.

 

 

 

 베어타운, (구체적인 지역은 작품에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어느 작은 소도시로, 숲속 한 가운데 자리해 숲속마을로 불리는 이 곳에는 베어타운 아무리 즐겨도 부족한 도시 라는 문구가 적힌 과거의 유행어가 담긴, 세월의 흔적에 빛바랜 표지판이 남겨져있다. 과거만 해도 마을에 학교가 세 개씩 있었으나 이제는 단 한 학교가 남았으며, 일자리가 줄어 실업률이 늘고 인구도 점점 줄고 있으며, 해마다 숲이 폐가 한 두 채씩을 삼켜버리는 곳이다.

 그런 이 숲속마을 베어타운에서 도시를 다시 일으킬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바로 하키. 베어타운은 유소년, 청소년, A(성인팀) 의 하키팀이 있고, 그들은 이번 청소년팀 리그에서 우승하기를 소망한다. 하키스쿨이 들어오면 아이스링크가 새로 마련되고 대도시 못지않은 쇼핑몰과 컨퍼런스센터가 건립될지 모른다. 베어타운이 단순히 여러 스포츠 중 하나에 불과한, 그리고 그저 시합이지만 목숨을 걸게 만드는 이 하키라는 스포츠에는 도시를 다시 번영시키려는 희망을 넘어, 베어타운 사람들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것이다.

 때문에 베어타운 청소년팀에서 뛰고 있는 아이들은 우승하기 위해, 수많은 연습량을 감내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며 성장하곤 한다.

 

 이 작품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었다. 그것은 하키라는 연관성으로 얽혀 등장하는 베어타운 사람들 개개인이 모두 각기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어타운이 배출한 프로선수로서 다시 고향에 돌아와 베어타운 하키단 단장을 역임하고 있는 페테르, 페테르의 부인으로 능력있는 변호사지만 큰아들을 읽은 상처, 그리고 늘 아이들(마야와 레오)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는 미라, 페테르와 미라의 딸로서 기타와 친구 아나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강인한 성품을 지닌 마야, 마야의 친구로 사냥꾼인 아버지와 살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아나, 열일곱 살의 천재 하키선수로, 베어타운 하키팀의 주력선수이자 장래를 짊어진 케빈, 청소년팀의 공격수이자 케빈의 절친한 친구로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벤이, 열다섯 살이지만 열일곱 살 그 어느 선수보다 스케이팅 속도가 빠른 아맛, 베어타운 하키 A팀 코치로, 승리보다 선수들의 성장에 초점을 두는 수네, 청소년팀 코치로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지만 그 이면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지닌 다비드…….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

 

 

하키를 왜 좋아하느냐고?

 

하키에는 사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57.

 

 

 

 

 

 이야기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가족사와 내면묘사, 그리고 하키팀의 준결승 시합을 둘러싼 여러 상황과 갈등들 안에서 전개된다. 저자가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만큼,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인물들 개개인의 가족사와 , 그들이 지닌 내면의 상처가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특히 청소년팀의 가장 유망한 선수로 그 천재성을 인정받고 있는 '케빈'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완벽'을 요구받으며 자라왔다. 하키 뿐 아니라 학업, 일상 그 모든 면에서 '완벽'을 요구받으며 심지어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시간약속에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자기 키만한 눈밭 속을 걸어와야 했던 케빈 - 탄탄대로의 장래가 펼쳐져 있으며 단 한번도 좌절을 겪지 않았을 법한 이 아이에게는 '완벽'에의 부담감이 자리한다.

 

 

우리 부모님은 하키에 관심 없어.” 벤이가 그럼 두 분은 뭐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자 케빈은 성공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열 살 때 나눈 대화였다.

 케빈이 거의 항상 그렇듯이 반 역사 시험에서 1등을 하고 집에서 50점 만점에 49점을 받았다고 하면 케빈의 아빠는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뭘 틀렸니?”라고 묻고는 그만이다. 에르달 집안에서는 완벽이 목표가 아니다. 표준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68.

 

 열다섯 살로, 유소년팀 하키선수로 훈련받고 있는 아맛은 타국에서 건너와 아이스링크를 청소하는 어머니를 늘 생각하는 아들이다. 그는 가장 처음 아이스링크를 쓰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매일 아침 혼자 스케이팅을 연습하곤 한다. 프로 선수로 성장하여 어머니가 고생하게끔 하지 않고 싶은 아맛에게는 하키에 대한 간절함과 절실함이 자리하고, 그는 남다른 연습량으로 빚어진 그의 가장 재빠른 스케이팅 속도 덕분에 청소년팀에 합류해 함께 시합에 나갈 수 있게 된다. 베어타운 임대 아파트 지역의 할로에서 자란 난민이자 가장 왜소하고 작은 아이 아맛은 늘 그렇게 노력하고 분투하며 자라왔다.

 

그는 아이스하키장으로 간다. 팀원들과 합류한다. 그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전쟁으로 짓밟힌 모국을 떠났을지 몰라도 난민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오로지 하키를 통해서만 어떤 집단의 일원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아이가 된 기분, 뭐든 잘하는 게 생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479.

 

  하키를 접어야 한다는 소리를, 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아이가 빙판 위에 서 있다. 이번 기회를 잡으려고 그 아이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 선수가 없을 텐데, 다비드가 많고 많은 날 중에 바로 오늘 그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작은 소망에 불과하지만 오늘 같은 날 페테르에게는 작은 소망이 절실하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135.

 

 이 아이를 보세요! 어머님의 아들이 이 아이보다 더 많은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둘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똑같은 길을 걸었을까요? 어머님의 가족이 이 아이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아이를 보세요!”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186.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청소년팀 케빈, 벤이, 아맛 , 단장과 코치인 페테르, 수네, 다비드…… 베어타운과 아이스하키팀에서 청소년들과 성인이 하키를 통해 함께 갈등 안에서 이를 극복해나가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릴 것이라 예상했던 소설은, 중반부에 들어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준결승에서 우승 직후 케빈이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연 파티에서, 페테르 단장의 , 마야를 성폭행하며, 이 장면을 아맛이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베어타운의 모습은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피해자인 마야가 이야기하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마을의 자랑, 하키팀의 촉망받는 선수인 케빈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하키팀을 와해시키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양상이 펼쳐진다. 심지어 마야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못하며 제대로 처신을 못한 탓으로 간주되곤 한다. 저자 프레드릭 베크만은 놀라우리만큼 성폭행을 둘러싼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2차 피해의 실상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피해자인 마야의 가족과 마야가 겪는 베어타운 마을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가해자인 케빈 가족에 대한 의견들은 현실에서 논의되는 성폭력 사건의 논의를 너무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에 더욱 아리다. 작년 한 해, 화제의 도서로 주목받았던 소설 82년생 김지영, 최근 미투 운동이 확산된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베어타운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이 공동체는 성 역할에 대해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가.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져 있는가. 자성하게 된다.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 라이브 10-12회의 장면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문제를 다룬 바 있는데, 과연 여성이 싫다고 외치는 하는 한 마디를 존중하고 있는 사회인가. 부당함에 대해 외치는 목소리를 충분히 수용하고 있는 사회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게 된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이미 우리 사회가 미투 운동의 확산을 통해 확인한 바 있듯이 성폭력 사건에서 후광효과낙인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케빈과 마야 역시 그렇다. 가해자로 지목된 케빈에게는 베어타운의 유지이며 하키타운의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산가인 케빈의 부친(父親), 그리고 베어타운을 다시 일으킬 청소년 하키팀의 유망주인 케빈에 대한 후광효과가 여전히 남아있는 반면, 마야에게는 마야가 여성으로서 제대로 처신하지 못한 것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후광효과와 낙인은 진실을 추구하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 수 없다고 여긴다.

 혹여, 가해자가 케빈이 아닌 가난한 할로 출신 아이 아맛이거나, 하키팀에 중요한 선수라고 여겨지지 않는 필리프같은 아이였다면 과연 케빈과 같이 후광효과가 적용될 수 있었을까. 오히려 가해자라는 사실을 더 확신하게끔 하는 낙인이 찍히지는 않았을까 우려되기조차 한다. 마지막 순간에 결국 하키 팀에서 프로 선수로 성공해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보다는 진실을 밝히는 일이 옳은 것임을 깨닫고 자신이 목격한 그 날의 진실을 고백한 아맛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증거부족으로 케빈이 처벌받지 않은 것은 바로 이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역으로 묻겠네, 다비드. 경찰에 고발당한 아이가 케빈이 아니었다면? 다른 아이였다면? 할로 출신이었다면? 그래도 너는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할까?”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494.

 

 

 나중에 검은 재킷의 사나이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왜 그는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이 케빈인지 아닌지 아니면 아맛인지 고민했을까. 왜 마야의 주장으로는 부족했을까.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514.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245.

 

 

 마야는 두 팔로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다. 간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흔들린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런데 창밖의 길거리에서 뛰어노는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그녀의 생각을 바꿔놓는다.

 아나는 지쳐 쓰러져서 마야의 침대에서 자고 있다. 두툼한 이불 밑에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작고 연약하게 느껴진다. 마야가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보호하기 위해 케빈의 진실을 폭로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그리고 그날 아침 창가에 서 있었을 때부터 이 마을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이 마을과 이 날의 실상을 보여주는 끔찍한 단면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315.

 

 

 갈등이 벌어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편을 정한다. 양쪽의 생각을 같이 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는다. 평범한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위안이 될 만한 증거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적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한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374.

 

 

 그녀는 이 마을의 모든 나이 먹은 남자들이 그들을 가리켜 투지가 넘치물러설 줄 모른다고 칭찬할 뿐, 여자아이가 싫다고 할 때는 정말로 싫은 거라고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았느냐고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 마을의 문제는 어떤 남자아이가 어떤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수준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가 그런 짓을 하지 않은 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남자아이들까지 그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450-451.

 

 

 

 결국 케빈은 법적 처벌의 대상에서는 풀려나지만, 결국 아맛의 주장 덕분에 마야의 아버지 페테르 단장은 해임되지 않게 되며, 여전히 베어타운의 하키팀 단장 자리를 맡게 된다. 그러나 팀의 주요 멤버들은 헤드의 아이스하키팀으로 팀을 옮기게 된다.

 아무 소득 없이 수사가 종결되어 버려 삭막하기만 한 이 베어타운에서 역설적이게도 페테르가 단장 자리에서 해임되지 않은 이유, 마야의 가족이 버티어낼 수 있었던 점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가치였다. 열 다섯 살이라는 점 빼고는 너무도 다른 성향을 지닌 마야와 아나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둘의 우정(친구로서의 사랑)덕분이었고, 일곱 살 시절 케빈과 벤이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열일곱 살이 되어 벤이가 케빈으로부터 떠난 것도 바로 이 사랑 때문이었다.

 특히 이미 수년 전, 큰아들 이삭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마야의 부모님 미라와 페테르가 느끼는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절망감, 그리고 아이를 위해 그 어떤 것이든 해 보이겠다는 고군분투 속에서 전해져 오는 그들의 굳건한 신뢰와 사랑은 책을 읽는 저 너머, 한 사람의 독자에게까지 가슴이 뭉클해져오는 따뜻하고도 아린 감정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부모이기에, 마야와 레오를 지켜내야겠다는, 마야를 그 이상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사랑으로 그들 가족이 겪는 시련을 함께 견디어 올 수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신기하다. 어떤 사람이건 사랑을 시자하게 된 기점이 있는데, 이 사랑만큼은 아니다. 항상 사랑했고 심지어 아이가 존재하기 전부터 그랬다. 아무리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도 엄마와 아빠들은 감정의 파도가 그들을 치고 지나가서 완전히 나가떨어지는 충격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 사랑은 무어과도 비교할 수 없기에 불가사의하다. 평생 암실에서 지낸 사람에게 발가락 사이로 들어온 모래나 혀끝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그 사랑은 영혼을 비행하게 만든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487.

 

 

 어른이면 누구나 완전히 진이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겪는다. 뭐 하러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싸웠는지 알 수 없을 때, 현실과 일상의 근심에 압도당할 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그런 날들을 생각보다 더 많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끔찍한 사실이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이 견딜 수 있을지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것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88.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아빠?”

그래, 말랭아.”

저도 하키 좋아해요.”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도 그래, 말랭아. 나도 그래.”

제가 뭐 하나만 부탁해도 돼요?”

뭐든.”

더 훌륭한 아이스하키단을 만들어주세요. 그 자리에 남아서 하키의 발전을 이끌어주세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525-526.

 

 

 

 결국 저자 프레드릭 베크만이 그의 신작 베어타운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것을 공동체가 지닌 가치관에서 발견했다. 사회의 문화는 결국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그 가치관을 어떻게 후대들에게 심어주는가에서 기인한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베어타운 사람들이 하키를 목숨처럼 생각하며 청소년팀의 시합에 모든 것을 건 이유는 바로 결과’, ‘우승’, ‘성공 뒤에 따르는 경제적인 이득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베어타운이라는 그 공동체는 지금 과연 행복한가?

 아이들이 자라나며 아이로서의 모습을 상실한다면, 향유해야 할 가치와 수단으로서 사용해야 할 가치가 전도된다면, 아무리 하키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과연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그들은 진정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야의 가족이 겪은 시련도, 케빈과 벤이의 우정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던 것도, 모두 베어타운 공동체의 어른들이 그들의 욕심을 아이들에게 전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베어타운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라났다면 케빈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았을지 모르며, 벤이는 자유롭게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페테르와 미라는 마야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게끔 지켜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베어타운의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베어타운의 어른들이 하키에 대한 개개인의 열정과 사랑을 정치와 경제의 문제로 변질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벚나무 냄새가 나야 할 자리에서 왜 벚나무 냄새가 나지 않겠는가.

 

 

 수네는 빙판을 내다보며 코로 몇 차례 심호흡을 한다. 상대 팀 선수 몇 명이 몸을 풀러 나온다. 원래 겁에 질린 사람들이 일찌감치 준비하기 마련이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수네는 거기서 위안을 느낀다. 사장실에 모인 남자들이 어떤 식으로 바꾸려고 애를 쓰는지 몰라도 이건 여전히 운동경기일 뿐이다. 한 개의 배, 두 개의 골대, 열정으로 가득한 심장. 하키를 종교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하키는 믿음과 같다. 종교는 나와 타인들 간의 문제고 해석과 이론과 견해도 가득하다. 하지만 믿음은…… 나와 신 사이의 문제다. 심판이 센터 서클로 미끄러지듯 나와서 두 선수 사이에 설 때, 스틱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까만 원판이 그 사이로 떨어지는 게 보일 때 느껴지는 무엇이다. 바로 그 때 그것은 나와 하키만의 문제가 된다. 돈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반면, 벚나무에서는 항상 벚나무 냄새가 나지 않는가.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178.

 

 

 

 프레드릭 베크만의 전작인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있다중에서는오베라는 남자를 완독했으며 아직 나머지 두 권은 미처 완독하지 못했다. 사실상 그의 책 중에서 두 번째로 읽는 작품이었는데, 오베라는 남자를 읽으며 오베의 까칠한 행동 속에 숨어있는 내면의 따뜻한 심성을 읽어낼 수 있어 마음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베어타운을 읽으며, 책의 행간 사이로 계속 봄과 겨울을 넘나들었다. 베어타운이라는 숲속 마을은 정지용 시인의 시() 유리창에 등장하는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구절을 연상시키는 마을이었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아름다운, 황홀함마저 깃드는 숲속마을이지만 그 깊은 곳에는 마을 사람들 개개인의 외로움과 슬픔이 깃들어있는 마음.

 결말부가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베어타운에, 베어타운 하키팀에 여전히 남아있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선택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마음 속에 곰을 한 마리씩 지니고 있는 베어타운 사람들. 베어타운이라는 도시와 하키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애정을 가진) 그들이 베어타운의 새로운 지향을 새로이 지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엄청난 두께의 장편소설이었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작품의 화두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아름답고도 마음 한 켠이 아려오는 이 소설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처음 읽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여러 메시지와 복선들을 따라가며 몇 번이고 재독하고 싶다.

 

  베어타운은 단순히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교양소설)에서 그치지 않고 성폭력, 동성애 등 사회적 이슈에 화두를 던지는 한편 가족 간의 사랑, 청소년들 사이의 우정에 대한 내면 묘사를 탁월하게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문장의 행간 속에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애정을 담은 수작이었다.

 

 

카시아는 해가 바뀌고 벤이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동생이 다른 삶을 살 수 있길 바랐다. 다른 곳,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동생은 다르게 자랐을지 모른다. 좀 더 순하고 불안하지 않은 아이로 자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베어타운에서는 그럴 수 없다. 여기에서는 그 아이가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짐을 너무 많이 짊어지고 있고 거기다 하키가 있다. , 동료들, 케빈. 그들이 그 아이의 모든 것이기에 그 아이는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끔찍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모르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241.

 

케브, 네가 그걸 찾을 수 있길 바랄게.”

케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바람이 케빈의 눈꺼풀을 간질인다.

?”

벤이는 목발로 눈을 짚는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친했던 단짝 친구를 두고 한 발로 천천히 바위를 뛰어 넘어가며 숲속으로 멀어진다. 그들의 섬에서 멀어진다.

그거라니? 뭘 찾을 수 있길 바란다는 거야?” 케빈이 벤이의 뒤통수에 대고 외친다.

벤이의 목소리가 어찌나 고요한지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서 그의 대답을 호수 저편으로 실어 나르는 듯이 느껴질 정도다.

네가 찾는 네 모습.”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528.

 

 

 공동체는 우리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서로의 역할을 존중한다는 뜻이지. 가치는 우리가 서로 신뢰한다는 뜻이고. 서로 사랑한다는 뜻.” 다비드는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하고 난 뒤에 다시 물었다. “그럼 문화는요?” 수네는 좀 더 진지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화에선 어떤 걸 허용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어떤 걸 권장하는가라고 본다.”

 다비드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수네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사회에서 허용하는 대로 하지.”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291.

 

 

 

 

 

by papyros 2018. 4. 17.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