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개인적으로 김민섭 작가님과는 몇 년 전 최인아책방에서의 '북토크'자리, <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 유령들의 패자부활전> 북토크 외에도, 2023년 가을 '당신의 강릉' 책방이 오픈했을 때 가장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를 집필하셨을 때부터 작가님의 글을 관심있게 보아왔고, 그때는 단순한 독자였지만 지금은 김민섭작가님과 같이 누군가를 돕고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나누고 싶어하는 그 귀한 마음에 함께 연대하고 싶을 뿐이다. 좋은 어른으로서의 롤 모델이 주변에 많음에 늘 진실로 감사한 마음이 크다.
김민섭 작가님을 유퀴즈에 출연하게 한 도서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의 서문(프롤로그)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저는 이렇게 멋지고 좋은 사람입니다."하면서 크게 타오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멀리서도 알아볼 만큼 큰 불꽃이 될 만한 자신이나 깜냥이 없다.
그러면 나는 곧 연소되어 재만 남고 말 것이다.
다만 나는 작고 온화하게 오래 타오르고 싶다.
될 수 있다면 누구도 상처 주지 않는, 무해한,
내 곁의 타인에게 작은 온기를 나누어 줄 수 있는 모닥불이 되고 싶다.
- 김민섭,『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창비교육, 2021, 9쪽.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에 마음을 울리는 여러 문장들이 있지만 몇 년 전 출간되어 신간으로서의 이 에세이를 읽을 당시 나는 이 문장에 참으로 공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록 내가 활활 타오르는 큰 불이 아닐지라도 작은 모닥불로서 주변에 따뜻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것. 사실 2024년이 저물어가는 만 32세의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상처 주지 않는', '무해한'이라는 이 수식어조차 욕심인 것을 잘 안다. 다만 끊임없이 부끄러움을 알고 성찰하는 가운데 내가 나아가고 싶은 좋은 어른의 상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 때문에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가치를 지닌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되는데 김민섭작가님도 그 중 한 분이다. (이외 김탁환 작가님, 이번 11월도 교사들을 위한 심리적 CPR 6기를 함께하는 사랑하는 클레어(정혜신 교수님) 등등 .. 많은 분들이 더 있다.)
그런 작가님이 오늘 내가 근무하는 지역 청에서 인문학 연수를 하신다고 하여, 자료집계 선착순 신청에 성공했었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변경된 학교 일정으로 인해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고, 출장을 나가는데 대설로 인해 교통편이 많이 정체되어서 종료 20분을 남기고 급하게 입장하고 말았다. ㅠㅠ 그래도 등록부에 싸인할 수 있었고, 마지막 주요 10분의 핵심 내용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어디인가!!
김민섭작가님의 책이 집에 전권 있지만 이미 싸인본인 책이 대부분이고,
이번 연수의 주제도서인(이미 싸인본이지만)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와 더불어, 故 홍세화 선생님과 이원재 선생님의 대담집,(김민섭 엮음) <교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 그대에게> 책 두 권을 챙겨 갔다.
이미 읽었던 책이지만 연수가 끝난 후 다시 읽게 되는데 내가 어떤 어른으로, 그리고 어떤 교사로 살아가야할지를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우선 가장 먼저는 나는 언제나 부족한 한 개인이기에 , 언제든 실수와 잘못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부족한 나까지도 자기수용이 되어야 하고 그 자기수용이 되어야만 내 실수와 잘못에 책임지며 진정성 어린 사과를 전하는 어른, 책임있는 어른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한 사회의 어른으로서, 또 무엇보다 교사로서 그것이 내가 갖춰야 하는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오늘 책을 다시 읽으며 숙고하게 되었다.
저도 잘못한 것 같으면 빨리 사과하려 노력합니다.
사실 사과하는 사람이 정말 힘센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사과할 수 있다는 건 참 지금 시대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치원이든 초중등이든 학교 교육에서 사과하는 연습을 좀 많이 시켜주시면
지금 말씀하신 똘레랑스의 실천이라든지 학교 폭력의 부작용이라든지 하는 것들도
조금은 더 근본적으로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사회적인 폭력들도 줄어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 김민섭 엮음, 홍세화·이원재 대담집
『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 그대에게 』, 당신의 강릉, 2024, 65-66쪽.
특히 학폭위에 교사위원으로 참석하고 연수를 참석했던지라, 학폭 가,피해가 엮여있는 상황에서 보호자들의 대응(법률자문 과정에서 변호사를 찾아가는 등) 과정 및 절차에서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진정으로 친구와 이웃에 대한 보호와 정의를 배워나갈 수 있을까 우려되는 가운데 대담집의 해당 페이지는 특히 공감이 되었다.
김민섭 요즘 보면 꼭 학교 폭력 사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하면 저 사람을 당장 단두대에 매달아라,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분노와 증오를 증폭시키고 그것으로써 자신의 정의로움을 말하고자 하는 일들이 좀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교폭력이라고 했을 때 어쨌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아닙니까.
강력한 처벌 이런 것도 당연히 필요는 하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과의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야 되는데ㅐ 너무나 증오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른 일들을 보면서도 하고 있거든요. 근데 그런 것들이 학교까지 번진다,라는 것은 많이 슬픕니다.
- 김민섭 엮음, 홍세화·이원재 대담집
『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 그대에게 』, 당신의 강릉, 2024, 61쪽.
한편 지금의 내가 여전히 임용시험을 매년 응시하며 기간제교사로서 살아가는 가운데 여전히 나는 부족한 나를 마주하는 것이 두렵고 나의 무능감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이 두렵다.
여전히 나에겐 학창시절 부모님과 스승들께 인정받고자 애써왔던 그 학생의 모습이 너무 크게 남아있다.
때문에 여전히 나는 교사로서 '얼마나 잘 하고있나'를 반문하게 되고, 늘 평가에 두려워하지만...... 미완의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지점에서 자신을 수용하고 출발할 때 더 좋은 어른으로 한 발짝 나아가는 길이라 여긴다.
오늘도 조금씩 자기비난의 언어를 줄이고 자기수용의 언어를, 지금의 부족한 나를 그대로 마주할 수 있기를 진실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김민섭 작가님이 오늘, 아니 2024년의 11월, 만 32세를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강연에서 하신 말씀 중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여전히 '임용시험'의 성패로, 정교사가 되었냐/되지 못했냐를 기준으로 나를 가장 냉혹하게 평가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개인상담에서 상담자분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내가 나를 수용해 준다는 것도 '방향'인데 그것까지 속도를 내려고 하지 말라고. 속도를 내려고 하니까 안 되는 나를 비난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아직 나 자신도 목표와 나 자신을 온전히 분리해 내지 못했지만 김민섭 작가님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고,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이 마음을 내가 하는 교육에서는, 상담 장면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가질 수 있게 돕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김민섭(2024.11.27 인문학 연수 중)
" 사실 학생들이 별거 없이 그냥 제로 잘 놀고 유치하게 잘 놀면 좋겠어요.
어떤 성과나 성취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한다는 것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그 선택과 동시에 이게 행복해진다라는 걸 몇 년간의 경험으로 알게 됐어요.
우리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할 때 저는 도착하는 데만 있다라고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내가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내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됐어요. 삶의 의미는 도착해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거기로 하루하루 가까워진다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도착보다 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됐죠.
이제 그래서 이날 어떤 결정을 했느냐면 책 제목과 같죠.
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이름의 비영리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냥 신청서 내면 될 줄 알았는데 1년이 걸렸어요.
그래서 작년 10월에 있었던 일인데 올해 11월에 설립이 완료가 됐고
그래서 저는 이번 달부터는 이 비영리 법인을 운영하는 사람으로도 살아가게 됩니다.
별 건 없어요. 그냥 제가 버는 돈을 전부도 아니고 일부를 잘 모아서
청소년들을 여행 보내주는 일을 할 겁니다.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많은 김민섭들을 만나게 되겠죠.
이름은 김민섭이 아니지만 김민섭과 닮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또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것이고 저는 쓰는 사람이잖아요. 또 그것을 기록할 겁니다.
세상에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세상에 행해보고
그게 잘 되든 잘 되지 않든 그것을 기록하는 삶이라는 것은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글이 된다라고 믿고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이 사람보다 잘 될 것인가,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인가,
저 선생님에게 인정받을 것인가
그러한 게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나는 무엇을 선택했을 때 가장 어울리고 행복한 사람인가, 하는.
사람이 정서적인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제가 생각하기엔 글쓰기입니다.
- 김민섭 엮음, 홍세화·이원재 대담집
『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 그대에게 』, 당신의 강릉, 2024, 90-91쪽.
홍세화 (전략) 한국에서 어른이라고 하면 완성된 존재랄까
그런 게 전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런 의미의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아요.
끝없는 변화, 성숙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굳이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라고 할 때
자기 변화, 자기 성숙의 여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나의 현존재가 미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그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 김민섭 엮음, 홍세화·이원재 대담집
『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 그대에게 』, 당신의 강릉, 2024,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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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아무튼, O O O’ 를 읽고
(가제본도서)
<아무튼 문고> 시리즈 출간 전 리뷰단
위고 X 제철소 X 코난북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독서모임 '아그레아블' 아무튼 문고 출간 전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얼마 전, 아그레아블 독서모임을 통해서 출간 전 도서를 미리 읽고, 독서모임을 가진 후 서평을 작성할 분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접했다. ‘출간 전 도서’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가 되는데, 더욱이『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로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문제, 일상의 단면을 성찰하신 김민섭 작가님의 ‘망원동’이 실릴 예정이라 하여 기대감을 갖고 서평 모임에 신청해, 책을 수령해 읽게 되었다.
김윤관 작가님의 <아무튼, 서재>, 김민섭 작가님의 <아무튼, 망원동>, 류은숙 작가님의 <아무튼, 피트니스>, 장성민 작가님의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조성민 작가님의 <아무튼, 쇼핑> 까지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이 가제본 도서는, 곧 출간될 다섯 편의 도서 중 일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당초 기대를 갖고 있었던 망원동을 포함해 서재와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우선 김민섭 작가님의 <아무튼, 망원동> 이야기에 대한 단상부터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망원동’은 저자의 유년기와 소년기, 청년기가 어려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망원동’과 ‘경리단길’의 합성어로 형성된 ‘망리단길’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진 동네이기도 하다. 얼마 전, ‘알쓸신잡’ 경주편 방송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다룬 바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구도심이 번성함에 따라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인해 저자와 저자의 가족, 친구들에게는 일상을 영위하며 삶을 살아나가는 터전인 그 공간- 망원동이, 점점 해체되어가는 모습은 유명한 카페와 식당이 아닌, 그 공간에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상기하게 한다. 나 또한 서울에서 태어나 신도시에서 계속 살아왔지만, 저자의 삶 곳곳에 깃든 ‘망원동의 골목’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은 아닌지라, 그 골목을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는 저자의 시선을 참으로 따뜻하게 느꼈다. 그런 저자에게, 그리고 망원동에서 삶을 살아 온 그 모두에게 그 공간은 ‘다시 되돌아오고픈 곳’일 터이다. 황석영의『삼포 가는 길』에서 고향을 잃고 갈 길을 잃은 ‘영달’의 모습이 <아무튼, 망원동>의 한 부분을 읽으며 그려졌다. 그 어느 곳이든 현상 너머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동시에 대학의 모순을 경험하고 나와 대리기사 일과 글쓰는 일을 병행하며 삶을 살아나가는 저자의 삶 저변에 어떠한 자기서사가 자리할지 궁금해 작품 전체를 빨리 읽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들었다.
2017년에 다시 걷는 망원동은 눈길 닿는 곳마다 복잡한 감정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나는 망원시장을, 망원우체국 사거리를, 유수지로 가는 좁은 골목을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천천히 유영한다. 그러면서 망리단길이 가린 거리의 추억들을 들춰본다.
- 김민섭,「아무튼, 망원동」,『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59쪽.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 역시 이제 별로 남지 않았다. 내가 아는 많은 또래가 서른 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크고 작은 인생의 변화를 겪으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의 북쪽 끝인 수유나 미아로 간 친구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고 역곡으로, 동탄으로, 원흥으로, 김포로, 저마다 이름도 생소한 도시로 떠났다. 광역버스나 급행전철의 노선을 따라 ‘이주’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조금 더 멀어져야 할지 모른다.
망원동/서울은 더 이상 젊은 세대가 자신의 노동이나 신용으로 거주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나고 자란 곳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뿐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그 무엇이 거기에 있기에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버텨낸다.
- 김민섭,「아무튼, 망원동」,『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67쪽.
도시에는 지도나 대중교통 노선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는 무수한 섬들이 있다. 망리단길은 빠르게 업데이트되어도 난지도길은 제대로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감각은 점차 무디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신도시의 택지라는 이름이 붙은 뒤 마땅히 사람이 살아야 할 도시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다. 높은 아파트와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를 점령하듯 들어서고, 지하철역과 광역버스 정류장이 촘촘히 그 사이를 메운다. 그러고 나면, 거기에 오래 살았던 ‘그들’은 또 다른 섬을 찾아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어느 너머의 타인을 상상하지 않는 우리는 주변을 섬으로 만들며 스스로 섬이 된다. 지도가 닿지 않는 곳에도 여전히 사람이 있고, 그곳 아이들이 ‘동네’라는 감각을 가진 채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김민섭,「아무튼, 망원동」,『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78쪽.
한편, 장성민 작가님의 <아무튼, 게스트하우스>는 존재로서의 자아를 포착함과 동시에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생경한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오는 가치를 독자들에 전하고 있다. 나영석 PD의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게스트하우스를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 나영석 PD가 칸 광고제에서 발표한 대로- ‘실현 가능한 판타지’, 즉 ‘욕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피로사회 속에서 학교, 직장 등 일상의 경쟁에 지친 우리에게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단편에서 저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공간이 <게스트하우스>라는 점을 독자에게 전한다. 여행지를 결정하고 숙박할 게스트하우스를 고민하는 여행의 시작단계에서부터 ‘수많은 선택’을 통해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동시에 진실한 마음을 나누며 ‘인격적 만남’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게스트하우스는 우리가 늘상 쓰고 있는 ‘가면’(페르조나)를 벗기어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이 단편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늘 자신의 내부에서 이러한 ‘여행’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라 여긴다. 너무도 바삐, 쉬지 못하고 달려왔기에 잠시 멈추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고 싶고, 타인에 의한 ‘평가’나 ‘판단’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픈 그 욕망. 독립적 자아와 관계적 자아의 교차점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그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첫걸음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저자를 통해 나 자신의 마음 깊이 있는 소망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고, <아무튼, 게스트하우스>에서 펼쳐질 또 다른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지, 그 과정에서 저자는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는지 기대가 된다.
게스트하우스의 훌륭한 점은 과거의 기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와 맞닿을 때 더 빛난다. 그 공간에서 알게 될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 생각조차 못한 사건들 그리고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내 속에 숨어 있던 여러 가지 모습을 보내는 일.
- 장성민,「아무튼, 게스트하우스」,『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41쪽.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자신’이라는 존재가 더 자주, 더 강하게 드러나게 마련. 그런 드러남은 상처가 되기도 하고 치료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최소한 자신을 볼 수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여행은 거기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장성민,「아무튼, 게스트하우스」,『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44쪽.
이국의 거리를 혼자서 다녀보고 싶은 마음, 그렇지만 길을 잃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었겠지. 어찌보면 그냥 밤에 걸었다는 것뿐인,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들려줄 때의 아버지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자랑스럽게 기억한다. 모든 첫걸음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고 그가 몇 살이건 어떤 인간이건 어디에선가는 우리는 첫걸음을 떼어야 하는 것이다.
- 장성민,「아무튼, 게스트하우스」,『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54쪽.
어쩌면 그 밤 당신은 전혀 다른 가면 속에 숨겨진, 당신과 무척 비슷한 한 인간을 마주치고 깜짝 놀랄지 모른다. 그렇게 기대를 훌쩍 넘긴 즐거운 시간을 한 번이라도 가지게 되면 그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당신 곁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만약, 아직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꼭 해야 할 이야기가 당신 속에서 나와준다면, 그것은 보석처럼 소중한 순간이 될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다 털어놓기 쉬운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당신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도, 그 밤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도. 물론 끝까지 가면을 벗지 못하고 판에 박힌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질 수도 있다. 어떨 때 우리는 스스로가 아주 약한 존재라고 믿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언제나 다른 밤들이 있으니까.
어쨌든 솔직하거나 솔직하지 않은 서로의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맥주는 시원하고 밤공기는 포근할 것이다. 혹시 물고기가 바로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결국 모두들 여기로 모이게 되니까. 그래서 호텔보다 게스트하우스가 좋은 거니까.
- 장성민,「아무튼, 게스트하우스」,『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58-159쪽.
마지막으로, 김윤관 작가님의 <아무튼, 서재>는 서평 모임을 진행하면서도 가장 많은 분들이 인상 깊었던 이야기로 선택한 작품이다. 저자도, 그리고 나도 – 또 책을 좋아하는 그 누구든 자신만의 서재를 꾸미는 꿈을 꾸곤 한다. 예컨대 나는 원목으로 된 엔틱풍이 나는 책상과 책장을 갖춘 서재를 갖는 것이 오랜 꿈이다. 서재에는 빼곡한 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책장’이 아닌 수많은 ‘책’들에 행복해 한다.
그런데 저자는 서재에 있어 ‘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책들을 담아내는 ‘책장’임을 환기시켜주었다. 수많은 책만큼이나, 그 책을 관리하기 위해 선택하는 책장의 재질, 색감 또한 책장 주인의 성향과 세계를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를 통해 새삼 체득할 수 있었다.
책장은 단지 책을 진열해 두는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한가? 식기가 단지 음식을 담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라면 책상 역시 그러할 것이다. 옷이 단지 몸을 가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책장 역시 그러할 것이다. 집이 단지 추위와 외부 시선으로부터의 보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면, 책장 역시 그러할 것이다. 육체가 단지 정신을 담고 정신이 뜻한 바를 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면, 책장 역시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식기는, 옷은, 집은, 육체는 그러한 것인가?
- 김윤관,「아무튼, 서재」,『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26쪽.
책을 사랑한다면, 책에 담긴 내용만큼 책이라는 형식을, 육체를 사랑한다면 깊이 고민해볼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올바른 문화라는 것,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균형이, 책장에 있다.
- 김윤관,「아무튼, 서재」,『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34쪽.
더욱이 ‘목수’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는 공예와 관련된 서적을 비롯해 수많은 책을 읽는다. 특히 ‘조선’, ‘공예’, 그리고 ‘아나키즘’ 분야의 책을 주로 일독하는데 ‘조선’과 ‘공예’는 목수라는 직업에서부터 출발한 관심이라고 한다. 직업이 지닌 역사와 그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론을 공부하고 경험적으로 실천해 온 저자가 그토록 오래 목수 일을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그에게서 진정한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장인정신의 저변에 꾸준한 독서와 배움에 대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음을 짧은 단편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어떤 책상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책을 읽으며 목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직업에 있어 이론과 경험을 융합시키는 저자의 삶을, 그의 삶을 만들어 준 가치관과 사상에 깊은 감응을 받았고, 이 분의 직업적 태도, 소명의식, 배움에 대한 의지에 대한 전체적인 글을 접하고 싶을 따름이다.
공예가 생활로, 원래 있던 그 자리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론이 필요하다. 생활이 자신의 원래 집이고 고향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예가 없는 생활이란 황폐하고 품격이 없다는 것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공예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 깎는 목수가 연장 옆에 책을 두는 이유가 여기 있다.
- 김윤관,「아무튼, 서재」,『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5쪽.
바니시가 없으니 자잘한 생활 스크래치들과 얼룩이 수없이 생기겠지만, 그 역시 사용자의 습관과 시간을 담은 파티네이션으로 남을 것이다. 육 개월에 한 번씩 같은 오일을 발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신상’의 반짝임은 없겠지만, 십 년을 써도, 이십 년이 흘러도 바래고 깊어진 책상으로,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 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책상으로 남을 것이다. 페터 한트케의『느린 귀향』이 쓰인 것처럼 그 책상 위에서는 또 다른 소설이, 시가, 희곡이, 편지가 쓰일 것이고, 다시 페터 한트케의 희곡이, 카프카의 소설이, 이성복의 시가, 누군가의 편지가 읽힐 것이다.
- 김윤관,「아무튼, 서재」,『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42-43쪽.
다섯 편의 작품들은 모두 – 특히 세 편의 작품들이 더욱 – 삶, 일상의 한 단면에서 주제를 포착해 자신의 가치관을 풀어나가고, 이를 통해 그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이 의미는 저자들 본인의 삶뿐만 아니라 책장 너머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에세이(수필)의 힘이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은가 싶다. 책장 너머 저자들의 ‘삶’에 대해 간접경험을 통해 이해함으로써 타인과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혀 나갈 수 있음을. 편안하게 읽은 단편이었지만 다섯 편의 작품들이 나의 내면에 던져준 화두가 결코 적지 않았으며 한 권 한 권 모두 더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고픈 작품들이다. 다섯 편의 작품들이 출간될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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