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게시물은 ‘『라이프 재킷』’가제본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창작과 비평)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이현 작가님과, 창비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각 개인의 삶에서 성장통을 겪는 모든 아동·청소년과 청년들을 생각하며 이 서평을 남깁니다.
‘라이프 재킷’즉 우리말로 ‘구명보트’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요트 탈래?’라는 한 남고생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서사가 시작된다.
고등학생 ‘천우’가 전학이 확정된 이후, 부산의 바닷가에 있는 부모님의 요트를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것이 그 발단이었다. 천우는 스토리를 빛삭(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삭제)했지만, 찰나에 그 스토리를 확인한 천우의 친구들이 정말 천우가 태그한 부산 마리나 8번 계류장에 나타난 것이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천우는 돛을 올리는 법을 모른다, 실은. 전혀 모르지는 않지만,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돛만이 아니다. 천우는 요트 모는 법을 모른다, 실은.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렸다. 돈 냄새 풀풀 나는 초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를 배경으로 ‘신조호’는 잘리고 ‘천우’만 나오도록 비스듬한 각도로 요트를 찍은 사진이었다. 해시태그도 주르르 달았다. #우리집요트 #돛을올려버려 #천우신조호 #해운대라이프. 물론 #플렉스_릴랙스도 빠뜨리지 않았다. 평소 가장 애용하는 해시태그였다.
- 이현, 「2부 하루 전」,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1쪽.
스토리를 올린 당사자인 이천우를 비롯해 스토리를 보고 계류장에 나타난 천우의 친구 김노아, 같은 반 급우 서장진, 전학생 정태호, 천우의 옛 여자친구 고은의 절친 류 그리고 얼결에 오빠가 벌인 일에 함께 엮여버리게 된 여동생 ‘신조’까지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출항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곁에 계실 때만 출항과 입항을 해본적이 있었던 천우였지만 천우도 간단한 출항 정도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시간을 계획한 그 출항은 천우신조호가 안개의 바다속에 갇히면서 하루를 꼬박 넘기게 되었다. 아이들의 조난과 함께 아이들 개개인의 서사가 하나씩 떠오르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각각 큰아버지와 이모 댁으로 떠나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천우와 신조 남매의 불안감과 외로움, 그리고 스토리를 올린 장본인이자 요트에 붙은 압류장을 떼어버린 천우에 대한 약간의 원망감과 더불어 ‘완벽한 생기부’를 만들고 싶고 오점을 남기지 않고 싶다는, 노아의 완벽주의와 부담감이 가장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 그러한 마음이 내 안에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유가 있었다. 마리나로 돌아간다고 끝이 아니었다. 천우를 기다리는 어떤 결과가 있었다. 어쩌면 노아 자신을 포함한 다른 애들에게도 얼마쯤 그럴 터였다. 그 때문에 지난밤에 신고를 말렸다. 노아도 겁이 났다. 압류, 형벌, 법원,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법적으로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에서는 얘기가 다를지 몰랐다. 그건 노아가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단 한 줄의 오점도 허락할 여유가 없었다. 노아에게는 완벽한 생기부가 필요했다.
- 이현, 「3부 그날의 바다」,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57쪽.
‘천우신조호’ 그 배에 함께 탄 모든 아이들이 각기 다 나름대로의 개인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인해 떠나고 싶지 않은 부산을 떠나야만 하는 천우와 신조, 특히 천우는 그로 인한 불안과 불만을 약간의 허세로 표현한다. 완벽한 생기부를 만들어야만 하는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애써 모든 것을 충실하게 해야만 하고 욕구를 눌러온 노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결정하게 된 류, 초등학생 시절부터 수영선수로 살아왔지만 수영에 회의감을 느끼고 수영부를 그만두게 된 장진, 할머니와 같이 살아왔고 자신의 강아지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는 외로운 전학생 태호.
노아의 다른 친구들은 노아가 어째서 이천우 같은 애랑 친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천우의 친구들도 어떻게 천우가 김노아 같은 애랑 친할 수 있냐고들 했다. 숨이 막혀서 어떻게 같이 다니냐는 거였다. 그건 정말 멋모르는 소리들이었다. 천우는 노아가 오히려 편했다.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기분이었다. 노아랑 같이 있으면 브레이크가 따로 필요 없었다. 김노아면 충분했다. 노아가 와 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바다로 나오지 못했을 터였다.
- 이현, 「4부 표류」,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21쪽.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반장이었고, 그 직함에 어긋나지 않는 학생으로 마땅히 주어진 대가를 받았을 따름이었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다가오는 날들을 꼬박꼬박 살아 내는 것이 노아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 이현, 「5부 섬」,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60쪽.
그 모두가 나름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데, 배에 달린 구조물인 ‘붐’으로 인해 장진이 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잃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취약성은 더욱 극대화된다. 장진의 죽음 앞에서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 신고를 외면하거나, 친구의 죽음 때문에 너무나 슬프고 충격을 받으면서도 자신은 살아야만 하는, 너무나 취약하고 인간적인 아이들의 모습들.......
투둑. 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계기판 아래 페달에 묶여 있던 노란 밧줄이 스르르 풀려나는 것을 보았다. 붐에 연결된 밧줄 중 하나였다. 그 또한 그저 기억인지도 몰랐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 들려온 끔찍한 소리였다. 퍽!
- 이현, 「3부 그날의 바다」,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82쪽.
류는 울음을 터뜨렸다. 장진은 죽었다. 죽어 버렸다. 그 생강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궁금해하지도 않으려 했는데 그만 더없는 모습으로 들이닥쳤다. 장진을 생각하면 당장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줄 알았다. 장진을 그렇게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류는 움직이고 있었다. 장진에게 눈길을 사로잡힌 채 울면서도 몸은 살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 이현, 「4부 표류」,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45쪽.
천우의 여자친구였던 고은이 스토리를 보았기에 아이들의 실종을 신고했고, 아이들은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 해역까지 흘러들어갔던 배의 조난이 끝나고, 아이들이 발견되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6부에서 그러나 아이들의 삶은 출항 이전보다 더 망망대해에 놓였다고 느껴졌다. 그러니 6부의 제목이「여전히 항해」인 것이리라.
여전히 취약하고, 어쩌면 그 취약성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나는 함께 배에 올랐던 그 아이들 모두 충분히 ‘성장’했다고 느낀다.
노아는 생에서 처음으로 부모님을 거슬러 ‘장진’의 빈소에 가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드러내며 늘 어른들의 뜻에 따르던 착한 아들의 모습에서 벗어났으며, (262쪽) 태호는 고은을 새로운 존재로 재인식했고(253쪽), 류는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살아 내야만 하는’ 이야기를 마주했다. (250쪽) 그리고 또다른 깊은 아픔을 경험한 신조는 전과 다른 삶을 다짐할 수 있게 되었다. 파도에 삼켜지지 않고 파도를 스스로 헤쳐가는 개인.(270-271쪽)
이야기와 삶은 달랐다. 삶은 마음에 드는 설정만 골라 편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다는 천우신조호였고 장진이었고 장진의 엄마였다. 호주의 바다는 부산의 바다였고 그 섬의 바다였다. 이야기와 삶은 달랐다. 삶의 이야기는 만드는 게 아니었다. 살아 내야 하는 거였다. 그러나 편집은 작가의 몫, 그것만은 달랐다. 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원하느냐고, 어떤 이야기를 살아내고 싶으냐고.
- 이현, 「6부 여전히 항해」,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50쪽.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삶은 바다처럼 무정한 것이다. 파도의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그 바다가 신조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럼에도 파도에 삼켜지지 않는 일이다.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신조는 그러기로 했다. 단 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이현, 「6부 여전히 항해」,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70-271쪽.
책을 완독하던 시점(2024년 8월 2일)과 달리 서평을 쓰는 지금(2024년 8월 11일)은 개인의 체험이 바뀌기도 했고, 서평을 쓰기 위해 책에 표시한 문장들을 다시 흝으며 책에 대한 인상이 매우 달라졌음을 느낀다.
완독 직후에는 아이들의 취약성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 작품을 다시 마주한 현재, 나는 비로소 이 아이들의 성장을 읽었다. 모든 주변인들이 사고를 겪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내야만 하는 존재, 혹은 무모한 행동으로 친구를 잃게 한 비난받아 마땅할 아이들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 한 발짝 성장했다고 여긴다.
물론 소중한 이를 상실하는 경험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아픔으로 인해 비로소 아이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마주하고, 그 취약성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자기 삶의 방식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창비 청소년문학에서 표방하는 ‘성장’은 비단 청소년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된 나 역시 성장하고 있고, 그 취약성을 여실히 마주하고 있다. 자기비난과 자책, 후회의 굴레 속에서 내 안의 취약성을 오롯이 마주하고 안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나한테 내는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아직 그것이 어려운 한 개인이기에, 이미 어른이 된 내게도 이 작품은 성장,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귀한 작품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상실의 고통과 자기비난의 목소리, 관계에서의 상처, 학교(사회)부적응 등 많은 상처를 마주하고 그 취약성과 함께하는 수많은 아동,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해 이서평을 바치며, 좋은 어른으로서, (전문상담)교사로서 특히 아동,청소년들의 마음과 함께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좋은 책을 마주하고, 이를 넘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이현작가님과 창비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리스 카페 덕분에 다양한 전자책을 접하며 그동안 많은 이북리더기를 사용해 왔다. 특히 과분하게도 교보문고 펜있샘 7.8 체험단으로 활동했던 것, 리디북스 페이퍼프로 사용기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리스와 함께 독서생활을 하고 전자책에 대해 배워나갈 수 있었던 덕택이었다.
현재 소장중인 기기로 크레마카르타G, 오닉스포크3, 오닉스노바에어, 리디북스페이퍼4, 리디북스페이퍼3, 리디북스페이퍼1, 교보 펜있샘 7.8, 하이센스A5 등이 존재하고 크레마 그랑데와 크레마 사운드 역시 사용하다 중고로 판매한 적이 있다. 다른 전자기기들에 그렇게까지 욕심이 큰 편은 아닌데 책 욕심과 맞물리는 것인지 이상하게도 전자책 기기에는 욕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겨 처음 리디북스페이퍼1을 접한 이후 다양한 기기를 사용해 왔다.
많은 리더기들을 사용해 보고 거쳐오기도 했지만 시중에 출시된 이북리더기들 중 특히 크레마 기기들은 여러 면에서 우수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출시되고 있는 가장 스펙좋은 ‘범용기’라는 점에서 크레마는 많은 이북리더기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전용기를 구입 할 경우 열린서재가 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으니..
특히 이번에 출시되는 신기기 <크레마 모티프>는 강화유리 패널을 사용하고 있어 기존의 설탕액정에대한 우려와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강인함?이 있는 기기이기도 하고범용기일 뿐 아니라 SD슬롯을 지원하니 이 얼마나 혜자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6인치 패널의 깔끔한 크기와 화이트의 매력은 나를 사로잡는다.
체험단에 선정된다면 그 어느 서평과 이전에 업로드 했던 그 어느 리더기 체험단 후기보다도 열과 성을 다해 체험단으로서 후기 남기겠습니다.. :) 독서생활을 함께하는 #이리스 와, #Yes24 에 늘 감사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 ‘『경우 없는 세계』’ 가제본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백온유 작가님과, 창비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 게시물의 인용구 페이지는 정식 출간본과 차이가 있음을 밝힙니다.
3년 전, 백온유 작가님의 소설 『유원』 사전 서평단에 참여한 적이 있기도 하고, 청소년소설에 늘 관심을 두고 있는지라 금번에 출간 예정인 백온유 작가님의 신간 소설 『경우 없는 세계』 서평단에 지원했다. 『유원』이 PTSD를 겪고 있는 개인의 상처 극복과 성장과정을 그린 작품이라면, 『경우 없는 세계』는 가출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내면과 아픈 성장과정을 청소년들 그 자신의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두 축은 ‘인수’와 ‘이호’인데, 이미 성인이 된 인수가 가출청소년 이호를 만나면서 가출 청소년 시절을 겪은 바 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이호와 인수의 서사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이호’의 경우 인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깊은 에피소드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청소년인 이호가 가출 이후 ‘돈’을 버는 방법은 스스로 가짜 교통사고를 내는 방식이었다. 다가오는 차량에 슬쩍 몸을 던지고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돈을 뜯어내는 방식. 그의 그런 방식들을 목격한 ‘인수’가 이호에게 손을 내밀며 이를 만류한다. 위험한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조처하고 이호를 자신의 집에 거두어 숙식을 제공한다. 덕분에 이호는 다른 친구들까지 인수의 집으로 데려오며 기거하게 된다.
이호에게 있어 ‘인수’는 그의 손을 잡고 도움을 주고자 한 유일한 어른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호와 달리 인수에게는 그런 어른이 없었던 것이 그의 청소년기를 아프고 곤란하게 했다.
전문상담교사로서 소설을 읽으며 인수의 청소년기를 ‘사례개념화’ 해 보게 되었다.
인수의 ‘가출로 인한 심신의 고통’을 주 호소문제로 보자면, 인수의 경우 父의 가정폭력이 인수의 가출에 대한 직접적인 ‘촉발요인’인데, ‘유발요인’으로는 진심어린 사랑이 부재한 가족환경, 의지되지 않는 母에 대한 실망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인수가 가출 이후 집에 자신의 옷 여벌과 돈을 가지러 들어갔을 때 부모의 집에는 사랑을 받으며 먹이를 먹는 반려묘가 자리했으며 인수는 자신을 찾지 않는 대신 그 고양이에 투자하는 부모에게 서운함과 실망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수는 내심 늘 부모가 사랑으로 대해주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지니고 있었지만 부모는 늘 인수의 소망과는 대조적인 언행을 보인다.
강압적이며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몹시 엄격한 아버지가 내게 분노하는 지점은 너무나 다양하고도 변칙적이라 나는 지뢰밭을 걷는 심정으로 조심조심 살았다.
-47쪽.
‘위험요인’(유지요인)으로서 인수가 가출생활을 지속하는 데는 가출생활 중 만난 친구들이 있는데, 특히 ‘성연’은 주목할 만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무리속에서 대장으로 자리하려고 하는 성연은 ‘인수’를 가까이한다. 성연은 그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가족들이 있지만 그 따뜻함 속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반면 인수는 걱정하고 아껴주는 가족들을 갈망하고 내심 부모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는데, 이처럼 대조적인 환경과 상황이지만 그들은 ‘가출 청소년’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 집’이라는 공간 내에서 함께 가출 생활을 지속한다.
보호요인으로는 ‘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작품의 제목도 ‘ 경우’의 이름에서 기인하는데, ‘ 경우’는 가출 청소년이지만 늘 규범과 규칙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보육원에서 자랐으나 언젠가는 자신을 만나러 와 줄 어머니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선을 넘는 행동을 삼가려는 경우는 ‘인수’가 다른 가출팸(‘우리 집’이라고 불린다.) 친구들을 따라 선을 넘으려고 할 때 이를 적당히 제어해준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언젠가는 자신을 데리러 오려는 의지가 있다고 믿은 경우는 마치 ‘사랑 받아 본’ 아이처럼 보이며 구김살도 없어 보인다. 인수에게는 그런 경우야 말로 한편으로는 가장 부럽고 질투가 나는 대상이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의지하고 싶은 존재였을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그 자신이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으니 낯선 호의에 다소간 경계한 것도 당연했을지 모른다.
왜 저 아이는 사랑받아본 아이처럼 행동할까. 나는 궁금해했다. 왜 처음에 경우의 존재에 대해 순수하게 감격하거나 감동하는 대신 의아해하고 얼마쯤 수상하게 여겼는지 지금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경우와 가장 친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오래 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우가 집을 구하고, 그애의 소원대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더라도(경우라면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때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두운 마음 한편에는 저렇게 가식적이고 답답한 애는 도무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애에게 과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며 경우에게 정을 떼기 위해 마음속으로 고군분투했다.
-253∼254쪽.
소설의 후반부, 인수가 성인이 되어서 만난 ‘이호’와 같이 그의 어린 시절에 만난 A라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가출팸 아이들은 무너지고 해체된다. A는 이호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해 차에 자기 몸을 던지는 일을 지속해온 아이인데, A가 죽던 그 날 밤 차에 깔리고 짓밟혀 마치 누군가에게 맞은 것 같이 보였던 그 소년은 결국 그 날 새벽 죽음을 맞이한다.
그 죽음을 보고 가출팸‘우리 집’아이들은 이성이 마비되어 신고를 말리고 심지어는 사체를 산에 가서 매장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나는 그 아이들이 ‘악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신고 후 따라올지 모르는 온갖 낙인이 두려웠으리라. 불필요한 오해가 두려웠으리라. 다시는 가족들이 자신을 찾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쌓였으리라.(막연한 희망의 좌절).
결국 사건이 드러나고 경찰 수사 및 법적 처분이 드러난 이후 인수와 혜연을 제외한 아이들은 8호, 10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송치된다. 그 과정에서 인수는 유일하게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그의 父 가 자신의 재력을 통해 값비싼 변호사를 선임한 덕분에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으나 그런 아버지에게 질린(사랑과 걱정이 아닌 자신의 명예만 생각하는) 인수는 결국 집을 다시 나가게 된다.
아버지에게 항변하고 싶었다. 저도 보통의 아이들처럼 순하게 살고 싶어요. 깨끗하고 단정하게 차려입고도 불편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싶은데요. 아빠한테 조금 더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거든요. 내 방에서 자고 싶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어요.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대신 분식집의 테이블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갑작스러운 행패에 당황한 분식집 아줌마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옆 테이블의 의자도 쓰러뜨렸다. 학생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분식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테이블 모서리에 발등이 찍힌 아버지가 윽, 하고 신음을 내뱉더니 곧장 몸을 일으켜 내 뺨을 힘껏 내리쳤다. 귀가 먹먹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덕에 재판장을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감동적이기보다는 너무나 견디기가 힘들었다.
- 244∼245쪽.
보조인과 판사는 내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나만은 알고 있었다. 내가 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좁은 캐리어 안에 웅크린 자세로 굳어가던 A가 화석처럼 내 영혼에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추위에 시달리며 내가 외면한 A를 줄곧 앓고 있는 것이다.
-248쪽.
가출팸의 분명 비이성적이었고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정했으나,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싶다. 그들을 그렇게 내몬 것은 사랑과 관심, 따뜻한 손길을 표현하지 않은 어른들과 사회의 잘못이 아닐까. ‘ 경우’가 가출팸의 그 어떤 아이보다도 인수에게 가장 큰 의지가 되는 존재였던 것처럼, 인수가 ‘이호’에게 기꺼이 집을 내주고 사랑과 걱정을 표현한 것처럼,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손을 잡아주고 사랑과 걱정, 진심을 표현하는(비록 혼을 내더라도 사랑을 담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다.) 존재 한명이 그들의 세계에 전부가 되는 것일지 모른다.
인수, 이호, 경우, 성연........그들의 세계를 조금쯤 따뜻하고 평온하게 만들 수 있는 한 개인으로, 어른으로 자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린 나이에 그 외로움과 처절한 몸부림을 겪어낸 그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다.
몰입감있고 가독성있어 편안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들의 서사를 따라가며 종국에는 다소간 무겁고 먹먹해진 이 책을 주변의 많은 어른들-특히 교사(교육자), 상담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한때 청소년이었던 나를 떠올리는 한편 전문상담교사로서 내가 만날 이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어떻게 상담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던 책이고,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작품이었다. 또한 작가님의 의도일지 모르겠으나....... 영상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영화로 제작되기를 소망해 본다.
죽을 때까지 안고 갈 비밀이라면, 아직도 종종 집 근처를 배회한다는 것.
일년에 한번쯤, 대체로 사람이 없는 늦은 밤을 노렸다.아버지는 주로 차를 지하 1층 주차장에 댔다. 술을 한병 먹고 낫 날카로운 자갈이나 열쇠로 몰래 아버지 차를 긁어놓고 재빨리 도망쳤다. 아버지가 홧김에라도 나를 찾아와 눈물이 날 만큼 혼쭐내는 상상을 했다. 옥탑방으로 쳐들어와 멀쩡한 집 놔두고 왜 밖에서 개고생이냐며 거친 손길로 대강의 짐을 챙겨 차에 태우는 상상도 했다. 반강제적으로 집으로 끌려 들어가 불편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서성대고 있으면 어머니는 감격한 표정으로 내 등을 감싸 안으리라.
그들은 내가 꿈속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나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
-249∼250쪽.
이호의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느 쭈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뭐가.” “누가 내 신발 끈 묶어주는 거요.” 나는 멈칫했다. “어릴 때. 누군가가 묶어줬을 거야. 네가 기억 못할 뿐이지.” 나는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요.”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요.”
- 256∼257쪽.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심연에서 바람이 휘돌며 서서히 내 몸을 녹였다. 이런 온기를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막상 따스함을 느끼니 내게는 이런 온기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워졌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 본 게시물은 문학동네북클럽 ‘『너와 나의 점심시간』’ 가제본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김선정 선생님과, 문학동네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전에 문학동네북클럽 가제본 서평단 공지를 우연히 접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김선정 선생님의 에세이, <너와 나의 점심시간>이었다. 마침 얼마 전 여러 작가님들께서 앤솔로지 형식으로 집필하신 <나와 너의 야자시간>을 구입하고 읽고 있던 참이라 고등학교가 아닌 초등학교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나는 현재 상담 기간제교사이지만, 국어로 근무를 처음 시작했기에 내가 있는 곳은 중등(중,고등을 통칭)학교였고 특히 왜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채용되는 곳은 고등학교들이었다. (딱히 중학교와 중학교를 배제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력이 적지만, 이제는 교사의 입장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장단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 고등학교는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점잖은 대신 생기부와 출제로 허덕이게 되고 중학교는..그 에너지에 기가 빨리는 곳 ^^ 그러나 초등학교는 내게 다소간 미지의 영역이다. 대학원 시절 교육봉사 시간을 받고 2주/간 초등학교에서 시간강사 근무를 한 적이 있는데, 수업을 하기도 힘들고 진땀이 났던 기억만 난다.
주변에 초등학교 교사인 지인들이 많기도 하고, 전문상담교사인로 평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상 초등학교로 임용을 응시하거나 발령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바 초등학교에 대한 궁금증을 지니고 책을 펼쳤다.
<너와 나의 야자시간>에서 저자분들이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한 소회를 풀어내며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수험생 시절에 대한 기억, 야자시간에 지도해 주신 선생님을 떠올리는 등 청소년기에 겪을 법한 정체성의 문제와 감정선이 잘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김선정 선생님의 <너와 나의 점심시간>은 '김영하북클럽' 선정도서였던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 를 떠오르게 했다. 초등 교사의 입장에서,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모든 학년을 다 지도하면서 어린이들을 마주하고 경험한 선생님의 어린이들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게 그려져있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에세이 속 에피소드들이 있는데,특히 체육시간을 그닥 좋아하지 않던 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체육시간의 서열화문제는 너무나도 공감되었는데, 영화 <우리들>에서도 피구를 통한 묘한 관계의 서열화와 아이들의 우정이 잘 그려져있다. 또한 어린이들의 채무관계 정리방법이 참 인상적이었다.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규칙을 정하고, 어른들보다 더 따뜻하면서도 정의로운 존재가 어린이들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짧지만 울림이 깊은 책이었는데, 특히 책을 읽으며 곳곳에서 나의 학창시절(초중등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체육시간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운동신경이 1도 없는 어린이였고, 지금보다도 더욱 더 극 내향적이라 친구들 무리에 끼기 보다는 교실 한쪽에서 조용히 독서에 매진하며 학교 도서관을 자신만의 도피처로 삼던 아이.. 급식을 먹을 때도 혼자 앉아 밥을 먹으며 책읽기에 열중하던 그 아이는, 자칫 혼자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아이구나라는 시선 이면에 외로움을 감추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무리에 끼고싶고, 반장이란 걸 해보고 싶은 어린아이 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선정 선생님의 에세이 곳곳에도 어릴 적의 나 자신과 같은 아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학교급을 막론하고 지금도 자리하고 있을 또다른 나에게 가장 따뜻한 것은 믿음직하고 따뜻한 어른의 존재이다.
위클래스가 부재하던 시절 내가 만난 초중고의 은사님들께서 내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주셨고 덕분에 학교생활을 버텨올 수 있었음이다. 위클래스, 위센터에서 중고등학생을 만나고 또 초등학생들을 만나게 될 나 자신이, 내가 만나게 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그러한 존재로 자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다시금 떠올렸다.
가장 아름답고 사랑받아 마땅한 그 작은 존재들이 사랑과 행복을 듬뿍 받아 자라나길 소망한다.
비록 성장하며 제도권에 편입되어 가더라도, 그들이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기를. 좁디 좁은 운동장, 학교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기를.
아주 오랫동안 아이들의 집을 생각하면 두렵고 무서웠다. '어서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어라. 그리고 그 집에서 나와라.' 나는 속으로 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함께 사는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쉴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아이가 밖에서 힘든 일, 슬픈 일을 겪고 들어왔을 때 "어서 와라"하며 맞이해주는 것이다. 그런 어른이 한 명만 있다면 아이는 살아갈 수 있다던 선배의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사소함은 아직도 많은 곳에서 실현되지 않는다.
(86쪽)
학원 차를 타느라 바쁘게 뛰어가는 아이들 뒤로 남겨진 운동장이 쓸쓸하다. 밥을 입안에 쓸어넣으면서까지 차지하고 싶었던 운동장은 다음날이 올 때까지 오래오래 비어 있다. 수업이 끝난 오후나 휴일, 그리고 방학에도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52쪽)
어른에 의해 자신의 의도가 나빴다고 규정당하고 미래까지 점쳐져서는 안 된다. 너는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며 충분히 달라질 수 있고 더 좋은 방식으로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끝까지 믿어주는 어른이 있을 때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60쪽)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외로운 아이는 반드시 있었다. 무리에서 겉도는 아이가 없도록 살피고 감시해도 어느새 혼자인 아이들이 생겼다. 마음이 따뜻한 아이에게 좀 챙겨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내가 나서서 같이 밥을 먹거나 놀아주기도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이미 쌓인 상처 때문에 달아나버리거나 차라리 혼자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여럿이 뭔가를 조정하고 맞춰가는 것보다 혼자가 편하다는 아이도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도서관으로 달려가거나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68쪽)
(전략) 전처럼 안달을 해가면서 아이를 빨리 누군가와 연결시키려고 무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조심스럽게 알려줄 것이다. 사람은 혼자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무리 속에 있어야 할 때도 있고, 혼자이기 싫어서 애를 써도 외로울 때가 있다는 사실을.
(69쪽)
아이들은 계속 자란다. 어떤 아이도 계속 혼자 있거나 계속 같이 있지는 않는다. 무리 안에서 신난 아이도 살다보면 혼자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고, 늘 혼자인 아이도 어느새 친구를 만난다. 그렇게 관계의 쓴맛과 단맛, 허무함을 배우면서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뒤에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얕은 인간관계를 넓게 갖기도 하고 좁은 범위의 인간관계를 깊게 갖긷 한다. 이런저런 관계를 맺어가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이 경험 없이 저절로 자리잡지는 않으며 이 모든 경험이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 본 게시물은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캐서린 메이와,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른아홉이라는 나이에(삼십대 끝무렵에 이르러서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은 캐서린 메이. 저자의 신작에 대한 홍보문구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서평단을 신청했다. 서평단에 선정되고서는 나도 모르게 신간이 아니라 기존에 구입해 읽다가 완독하지 못했던 전작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를 먼저 완독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전작의 남은 부분을 먼저 일독했다.
전작에서 저자 캐서린은 ‘윈터링’, 즉 ‘겨우나기’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삶에서 가장 어둡고고도 추운 ‘겨울’의 시절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누구에게나 겨울은 있으며 그 겨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역설한 바 있다.
윈터링(이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 ― 옮긴이)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내는 것이다. 겨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이다.
-캐서린 메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웅진지식하우스, 2021 중에서.
행복이 하나의 기술이라면, 슬픔 역시 그렇다. 그것이 바로 윈터링이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캐서린 메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웅진지식하우스, 2021 중에서.
특히 그녀가 우울과 슬픔에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겨울을 보내는 방법으로 소개되는 바다수영이 인상적이기도 했는데, 이번 신간인『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에서는 그 연장선상으로 ‘걷기’가 제시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사실 바다수영은 겨울의 시간을 잘 보내고 고통을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 중 하나였지만 ‘걷기’라는 행위는 자신의 고통마저도 전체적인 삶으로 통합하고자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저자의 자기고백은, 라디오를 듣다가 자신의 자폐 증상을 인지하는 순간에서부터 출발한다. ‘스펙트럼 선상에 있나?’라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저자의 내부에 있으나 ‘걷기’를 통해 그 답은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온다. 저자가 유년시절부터 겪어온 자신의 ‘고통’에 대해 그 누구도 진단해 주지 않아 겪는 답답함이 책에 잘 묘사되는데, (98-104쪽.) 사실 그녀에겐 오히려 그 고통을 이해하고 수용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서른 아홉에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 선상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저자에게 있어서 어쩌면 평생 가져온 자신의 ‘남다름’, ‘이상함’에서의 해방이 아니었을까 싶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녀는 나에게서 좀 예민한 상태이긴 해도 행복하게 잘 지내는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가 이미 구축한 나의 이미지에 반기를 들어봤자 아무 소용 없었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니 나는 그런 단순한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잘 넘겨버리는 듯ᄒᆞᆮ. 넘겨버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캐서린 메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웅진지식하우스, 2022, 102쪽.
‘남다름’, ‘이상함’, ‘기이함’. 자폐스펙트럼장애 뿐 아니라 세상의 기준과 달라 이해받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부과되는 수식어이다. 특히 특정한 진단을 받지 않거나, 자신에 대한 이해 측면에서 무언가 괴리감을 느낄 경우 자아 스스로 더욱 큰 불안과 혼란을 느낄 것이다. 책의 추천사를 쓴 정지음작가(민음사, 『젊은 ADHD의 슬픔』 저자)님도 캐서린 메이와 마찬가지로 성인이 된 후 ADHD 진단을 받았기에 아마 캐서린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싶다.
이 책은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위한 책은 결코 아니다. (그런 책을 읽기 원하신다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캐서린 메이’라는 한 개인이 자신의 자폐 가능성을 발견한 이후 자신의 삶을 어떻게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에세이는 깊은 통찰과 부드러운 사유로 자기치유의 성격을 넘어 하나의 문학작품과 같이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저자는 자폐 스펙트럼 선상에 있지만,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쓰는 데 탁월한 역량이 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누군가는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에서 부족한 점을 지닐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그러하다. 업무를 보면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늘 뚝딱이곤 한다.) 누구나 조금씩 어느정도는 스펙트럼 안에 있는 한 개인으로서, 각각의 한 개인이 누구나 특별하고 가치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스러이 느낀다. 지난 여름 사랑스러운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보았고, 이번 겨울 캐서린 메이의 글을 통해 다시금 보았듯이 진정 중요한 것은 자폐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닌 개개인의 존재 자체라는 것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 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뇌신경을 가지고 있고 다른 특별함을 지닌 존재일 수밖에.
자폐인들을 생각하면 별무리나 은하계가 떠오른다. 수백만 개의 서로 다른 별들이 저마다 빛을 발하며 반짝인다. 나는 그 무수한 별들 가운데 하나의 유형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캐서린 메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웅진지식하우스, 2022, 9쪽.
함께 읽을 책으로 저자의 전작과 함께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젊은 ADHD의 슬픔』을 권하고 싶습니다.
- 본 게시물은 ‘모락모락 블라인드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문학동네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문학동네에서 블라인드북 서평단 모집을 안내하면서 <모락모락>이라는 책에 대해 ‘어디에서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의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사랑스러운 책’ 이라는 수식어로 작품을 형용한 바 있어 어떤 책일까 무척 궁금해졌다. 제목이 표현하듯 무언가 자라나는 성장의 이야기인가? 라는 궁금증을 안고 서평단에 지원한 바 있다. 사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완독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무척 짧은 책이다. 하지만 그 길이 이상으로 주는 깊은 여운이 작품에 깃들어 있었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 애독가라면 한번쯤 접해봤을 법한 ‘하이케 팔러’의 <100 인생 그림책> 처럼 이 작품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쪽 수대신 작품 안에서 성장하는 한 개인의 나이가 등장한다. 또한 유년기에서부터 100세 노인이 될 때 까지의 주요한 인생 여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점 또한 유사하다(사춘기, 독립, 사랑, 결혼, 출산 등..) 다만 <모락모락>이 <100 인생 그림책>과 구별될 만한 특별한 점은, 다소 독특한 화자(발화자)를 내세운 데 있다. 책의 화자는 성장하는 주인공 자신도 , 그녀의(주인공이 여성이기에 편의상 그녀로 지칭) 부모님도 자녀도 아닌 다름 아닌 그녀의 머리카락이다. 출생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랜 세월 그녀의 뒤에서 함께하는 머리카락이 성장과정을 옆에서 온전히 바라보며 성장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왜 하필 머리카락이 발화자였을까, 책을 읽고 나름대로 그 답을 고민해 보았다. 작품에서 성장하는 주인공도,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일평생을 자신의 미를 가꾸는데 치중한다. 누군가와 비교될 수밖에 없으며 항상 평가되는 사회 속에서 ‘아름다움’, 즉 외모를 가꾸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머리카락이 아닐 수 없다. 늘 미용실에 가서 새로 펌을 하거나 염색을 하는 등 외모를 관리하는 것의 중요한 부분이 머리카락에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청소년기에 여드름을 가리려고 앞머리를 내리기도 하고, 스무살 언저리 즈음에는 파격적인 염색을 시도하거나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머리를 따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물아홉에는 머리 스타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고, 마흔둘에는 온전히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해주고 신경써주는 헤어디자이너를 만나기도 한다.
29. “머리 스타일은 단지 누구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일이자 소중한 자신을 가꾸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거야.”
42.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으세요?” 이렇게 너를 위해 진심어리게 고민하는 사람을 왜 이제야 만나게 된 걸까? 늘 유행하는 머리에 필요한 시술만 말하던 사람들과 정말 달랐지. 너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이해한 후 만들어낸 스타일은 오직 너만을 위한 것 같았어. 그건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웠지. 나도 내가 특별해진 느낌이었다고.
유년기, 청소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하며 삶을 영위해가지만, 결국 한 개인으로서의 성장이란 ‘자기 정체성’을 오롯이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에서처럼 그 자기 정체성이란 자신만의 고유한(잘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찾는 것 뿐 아니라 생의 과정에서 부모로부터의 독립, 대학 진학, 취업, 결혼 후 자신의 자녀를 낳고 부모가 되는 것, 심지어는 집에서 떠나 요양원에 들어가는 어느날에 이르기까지 삶의 순간순간 한 개인으로서 독립할 때 / 삶을 마주할 때 확립될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이 책의 첫 표지가 어린 아이였으나 마지막, 책의 뒷표지는 노년기를 그리고 있는 만큼 .. 책을 읽어 내려가며 성장하는 그녀의 일생에 함께 마음을 보탤 수 있었다. 비록 머리카락이 화자이긴 하지만, 그 여느 누군가보다도 더 가까이서 그녀의 삶의 여정을 지켜보고 함께 한 그 머리카락이 숱이 많고 검은 머리에서, 백발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많은 불안과 걱정, 고민을 뒤로하고 행복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독립할 수 있어 진실로 기뻤다.
현재는 내 한 몸 건사하기에도 부족하기만 한, 서른한살의 끝을 지나고 있는 나 역시 노년기에는 고양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카페에서 책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그런 할머니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정말 짧은 책이었으나, 사랑과 행복, 그리고 그 이상의 ‘가치관’를 선물해 준 귀한 책으로 , 청소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가 함께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나눌 수 있기를 권하고 싶다.
13. 도서관 안으로 숨어들었어. 책장 사이사이 길 위에는 손이 닿는 곳마다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들이 있어. 누굴 만나든 아무도 너에게 뭐라 하지 않는 곳. 아무도 너에게 말을 걸지 않고, 오직 창가의 햇살 아래 하얀 먼지들만이 주목받는 곳. 넌 책장 그림자 위에 앉아 머리카락을 커튼처럼 드리우고 책을 읽고 있지.
14. 집 앞 앵두나무를 보면서 엄마가 말했어. “지난 사 년 동안은 많이 안 자라더니 올해 갑자기 커버렸네.” 너도 꼭 그렇잖아. 신기하지, 나무도 너도 어느 순간 쑥 자라버린다는 게 말야. 그리고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지. 너는 그대로인데 몸만 어른이 되려고 한다니 말이야. 엄마는 햇살 아래 빨간 앵두를 하나하나 따서 노란 소쿠리에 담았어. 그러고는 흐르는 찬물에 씻어 너의 입에 쏙 넣어줬지. “엄마, 쓴데 달콤해.” 엄마는 쏟아지는 햇빛을 등지고 웃으며 너에게 얘기해. “나중에 신기한 걸 더 많이 알게 될 거야.”
27. 너는 독립을 하기로 했어. 마지막 날, 짐을 정리할 때 엄마는 서랍 속에 간직해둔 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여주었어. 거기엔 네가 처음 입은 옷, 제일 좋아했던 장난감, 처음 부모님께 쓴 카드, 유치원 복…… 잊었지만 다시금 기억이 되살아나는 물건들이 가득 모여 있었지 (중략) 너, 언제 이렇게 큰 거니?
28. 어느 날 모든 걸 정지시켰어. 그리고 짐을 꾸렸지. 나는 정말 불안했어. 아직도 너를 다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작은 짐처럼 웅크리고, 낯선 사람들이 있는 서랍장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또 버스를 탔지. 그리고 겨울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는 꽁꽁 언 눈밭에 앉아 있어. 나는 오들오들 추워서 얼어버렸지. 왜 이렇게 추운 먼 곳까지 온 거니? 네가 정말 걱정이 된다고. 그때였어. 겨울 숲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지. 세상에, 번쩍 일어나 하늘을 바라봤어. 우와, 지금 우리 우주에 있는 거니? 오로라야! 아름다운 초록 커튼들이 하늘 가득 별빛과 함께 우리에게 쏟아질 듯 넘실거리고 있어. 지금 이건 현실이니? 이런 아름다움이 이 세상에 있다니. 너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어. 오로라를 보고 싶어했던 그 꼬마가 아직 네 안에 있었구나. 그래, 넌 변한 게 아니었어.
30. 밤부터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어. 새벽녘까지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지. 라디오에서는 오십 년 만의 폭설이래.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런 눈이 내렸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니? 너는 얼굴도 씻지도 않고 새집이 된 나를 모자에 급하게 밀어넣고 밖으로 나갔지. 뽀드득뽀드득 발목까지 쌓인 눈을 밟으며 걸었어. 눈에 묻힌 마을은 정말 고요했고. 폭설도 서른이란 나이도 아름답고 낯설지.
50. 머리카락은 꼭 나뭇가지 같아. 봄처럼 여리게 자라 여름처럼 쑥 컸다 겨울처럼 잠시 쉬기도, 가을 낙엽처럼 떨어지기도 해. 그리고 다시 봄이 온 것처럼 또 자라나지. 나무와 네가 함께 계절을 보내듯 우리도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
56.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하늘의 미세먼지, 짧아지는 봄과 가을, 사라지거나 전에 없던 먹거리. 너는 부쩍 환경에 더 관심이 많아졌지. 너는 페트병 대신 물을 끓여 텀블러를 사용하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너의 존재가 세상과 자연에 해가 되는 일을 줄이겠다는 결심은 네게 잔잔하고도 깊은 기쁨을 주었어. 근데 아니? 수분 보충은 나에게도 기쁜 일이라는 걸.
58. 너는 알게 되었구나. 이제 너의 아이는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네가 독립할 때 부모님께 들었던 말을 아이에게도 똑같이 해주어야 했어. “잘해낼 거야. 응원할게.” 너는 그 말이 얼마나 많은 말들을 버린 후에야 나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네. 이제 너는 추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말야.
59. 햇빛이 유리알 같은 날. 짙은 산빛이 드리운 물위에 손을 담갔지 시원한 물줄기가 몸안으로 밀려들어오고. 꺄르르 웃으며 물위를 첨벙거렸어. 너는 아직도 웃음소리가 여름처럼 크고 풀어진 마음은 어디든 닿을 것 같아.
85. “엄마, 도서관 갈 때 무릎담요 챙겨가세요.” 이제 너는 누구라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러. 너는 익숙한 공간이 조금은 낡아 편안해진 코트처럼 아늑하지. (중략) 오늘은 가을 햇살이 가득하네. 너는 담요에 손을 올리고 꾸벅꾸벅 졸았지. 발밑에 길고양이 한마리가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100. 밤하늘 가득 별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아. 눈으로 보지 않아도 별빛이 느껴지지? 여름밤 공기도 나긋하고 좋아. 정말 좋은 순간이야.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하지 않니? 
문학동네북클럽을 통해 가제본 도서를 수령해 먼저 읽게 된, ‘벨마 월리스’의 소설 <새소녀>를 드디어 완독했다. 사실 ‘성장소설’이다보니 아무래도 행복한 결말과 사랑이야기를 예측했었다. 얼마 전 <새소녀> 기대평을 작성할 때만 해도 소년 ‘다구’와 새소녀 ‘주툰바’가 재회하여 전통적인 성 고정관념과는 다른 그들의 성향을 서로 인정하고, 기존의 사회질서와는 달리 새로운 가정을 꾸려 기존 부족들에게서 비판받을지라도 그들의 신념을 믿고 나아가고, 결국 인정을 받게 되는 일반적인 성장소설의 흐름을 따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결말과는 무척이나 달라 사실 다소간의 충격이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잔인하고 마음이 아픈 부분은 새소녀 ‘주툰바’가 원치 않는 혼인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부족인 ‘그위친족’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치콰이’족에게 노예로 사로잡혀 갖은 수모와 모욕을 겪는것도 모자라 적장인투라크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그의 아들인 카누크를 치콰이족에게 빼앗기며 아들에게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생애를 겪어왔던 점이다. 특히, 그녀가 치콰이족에서 벗어난 것도 누군가의 조력을 받은 것도, 혹은 무언가 협상의 자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 새소녀를 구하러 온 그녀의 오빠들의 머리통이 치콰이족의 공놀이에 쓰이는 그 참혹한 형상을 목도한 후 치콰이족을 모두 살해한 후 탈출한 것이라는 사실까지, 그녀의 전 생애가 너무 비극적이고도 애통해서 작품을 읽는 동안 참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왜 누구보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려던 그녀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만 하는 것인가. ‘다구’ 역시 자신이 원하던 삶의 방향과는 많은 변곡점을 겪는다. 무리 속에 예속되어 사냥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안히 여행하고 싶던 소년은 그위친 족 남성들이 살해당하고 자신만 운좋게 살아남은 이후 한 부족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는다.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인데, 부족을 안정시킨 이후 ‘해의 땅’을 찾아 여행하는 다구가 다시 비극적인 사건으로 자신이 꾸리고 선택한 가정을 상실하는 과정을 읽어내려가면서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다구의 모습을 보면서 다구가 삶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진정 어른이 되어 돌아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성장’에는 반드시 그에 수반되어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통과제의’라고 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시대, 오늘날의 사회보다는 다구와 새소녀가 살아가던 그 시대에 더욱 많은 희생이 요구되었으니 그들의 통과제의와 ‘어른이 되는 과정’은 더욱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다구와 새소녀의 삶을 통해,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결정’해 올 수 있는 그 많은 삶의 과정에서 어떤것을 ‘기억’하고 삶의 중심에 두는지를 기준으로 삶을 영위할 때 조금씩 어른됨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문득 생각해본다. 물론, 그 어른됨을 위해 자신의 소망이나 본성,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을 ‘강요’당하는 것은 다구와 새소녀의 시대나 지금이나 부당하다. 그러나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하고 마주해 온 그 길을, (그 비극성까지도) 모두 감내하다보면 어느 순간 어른됨에 가까워져있을 터이고, 결국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그때의 ‘내’가 해야하는 무언가를 더욱 잘 식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바람과 해와 별이 멀리 있고 가까이 있고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음을 그는 알았다. 그를 고향 땅에서 아득히 먼 곳으로 데려간 것은 바로 그의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다구는 긴 여행으로 어떤 대단한 지혜를 얻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해의 땅’에서 찾아냈다가 잃어버리고 만 귀중한 삶에 대한 생각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수년 전 떠나고 싶다는 자신의 조바심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 즉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을 하는 것 뿐이었다.
'북크루'에서 서비스하는 에세이 메일링서비스 '책장위고양이.' 나는 시즌2를 구독한 적이 있는데, 이메일로 작가들의 에세이가 전달되는 것이 새롭기도 했고 무언가 이메일로 특별한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다.
책을 사랑하고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 시즌5 서포터즈 공고를 보고 욕심이 생겼다. 이 좋은 서비스를 다시 체험하고 싶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과도 함께 향유하고픈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10월 23일)부터 월요일(10월 25일)까지 서포터즈로서 미리 선공개된 시인들의 시 세 편을 받아보았는데 세 편의 에세이가 모두 담백하면서도 깊이있고, 큰 여운을 가져다 주었다.
본 글에서는 세 편의 에세이에 수록된 내용 일부를 소개하고 간단한 후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 그리고 누군가 이 글을 통해 '책장 위 고양이' 서비스에, 그리고 책이나 해당 작가에, 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책 중독자로서 함께할 수 있는 독서가를 또 한 명 만드는 일로 나의 행복이 될지도 모르겠다 :)
1. 김선오, '첫 시집' : 「미래로의 회귀」
- 첫번째 에세이였던 김선오 시인의 '미래로의 회귀'를 읽으며,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 그리고 김선오 시인의 세계를 지나 나는 '나'를 이루는 세계를 떠올렸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루는 세계는 바로 '책'('독서')에 있다. 만 이십 구년 10개월을 독서가로 살다 보니 자연스레 나도 나의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욕심을 지니기도 하고, 나도 내가 전공분야에 대해 쌓아온 문학과 심리학에 대한 지식으로 비평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김선오 시인의 에세이 본문 중 마지막 문장이 유독 마음에 와 닿았다. 언젠가 도서관 책장 한 자리에 나의 이름이 담긴 '나의 첫 책'이 출간되겠지. 그리고 먼 미래에 어느 누군가가 내 책을 읽고는 또다른 독서 중독자로 성장하며 자신의 이름을 담은 글을 내리라는 꿈을 꾸겠지.......
2. 유희경, '첫 시집' : 「마른나무인간의 시절」
- 두번째로 접한 에세이는 유희경 시인의 글이었다. 시인은 '첫 시집'을 출간한 이후 , '마른나무인간의 시절'을 보냈다고 표현한다. '첫 시집'을 내본 적이 없는 일개 독자로서는 그 고독과 우울의 깊이가 어느정도까지 내려갈는지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시를 포함해 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내는 과정에는 작가가 반드시 담고싶었던 자기 내면의 본질이 출판사나 편집자, 혹은 외부의 여러 사정에 의해 잘려나가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시집을 펴낸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기타협이나 절충의 의미려나....싶은데, 사실 '첫 시집'을 내는 시인 뿐 아니라 대부분 많은 이들의 처음도 '마른나무 인간의 시절'을 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첫 논문, 첫 그림, 첫 직장... 많은 처음들 이후에 부서지고 깨지고 가라앉기도 하는 나약한 존재들인 우리 주변에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마른나무 인간의 시절을 잘 버티어 낼 수 있으리라.
3. 김복희, '첫 시집' : 「나를 닮았지만 나는 아닌」
- 세 번째로 받아 본 김복희 시인의 에세이. ' 첫 시집'을 주제로 하는 시인의 글이 참으로 담백하면서도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시인의 첫 시집, 소설가의 첫 소설, 교사의 첫 제자들(첫 담임)........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그 '첫'이란 나의 - 내가 지은 그것이면서도 '나'는 아닌 무언가가 안ㄹ까? 내게는(내 경우에는) 첫 학위논문이 이에 해당할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너무 이질적인 것만 같게 느껴지는 내 논문....
- 김복희 시인의 시를 읽고싶어졌다. 시인은 아니지만, 시인의 내면이 깃든 그 첫 시집 속 시는 무엇을 담아내고 있을까. 시인의 시 세계는 어떠할까. 시집을 사 볼까 싶다. 그리고 문득 내가 과거에 썼던, 그리고 앞으로 써 나갈 글들은 무엇으로 이루어질 지 궁금하다.
책의 제목을 끈 순간, 이것은 내 이야기이고 그래서 더욱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책을 만났다. 어쩌면 이 책을 만난 것은 운명인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서평을 시작하고자 한다.
해당 도서를 알게 된 것은, 서평단 모집 마감일은 지난 5월 13일이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으로서 실업급여를 수령하기 위한 ‘구직활동’의 일환으로 지원한 학교의 전문상담 기간제교사 자리에 합격해서 면접을 보러간 바 있다. 집에서 아주 멀지는 않은 광주의 모 중학교였는데, 2개월 자리이고, 임용공부를 하기에도 방해는 되지않으리라 생각해 다소간 합격의 마음을 품고 면접자리에 임했다.
앞선 면접자분이 나오시기를 대기하던 중, 본교무실 선생님들의 안내로 마침 국어선생님 책상에 앉아 대기하게되었는데 바로 그 국어선생님의 교무실 책상에 놓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오잉 제목부터 나잖아? 내얘기잖아?'는 생각이 스쳤고, 책 중독자라 이건 어떤 책일까 살펴보던 와중, 그 책이 저자사인본이라 더욱 그 책을 소장한 선생님이 부러워 면접을 마치고 나오며 해당 책의 정보를 검색하게 되었다. 심지어 ‘책과 콩나무’ 카페에서 해당 책을 모집하는 중이었으며 신청 마지막날이었기에 이책과의 만남을 개인적으로 필연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아마 저자분 중 한분인 김보영선생님께서 내가 면접보고온 학교서 근무중이신듯 하다. 학창시절부터 오랫동안 책 중독자로서 다독해왔고 스무살 이후 서평단에 참여해 블로그에 올린 서평들이 이제는 적지 않은 양이라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서평단으로서 책을 무상제공받아 서평을 올리게 된 책들 중 가장 빨리 완독후(책을 반나절만에 일독했다.) 서평을 쓰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분들의 삶이 곧 내 삶이고, 책의 제목이 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과목은 다르지만 나도 두 분 저자분들처럼 중학교 1학년, 열세살의 어린 나이부터 교직을 마음에 품고 자라왔다. 아마 ‘교사’라는 꿈은 어쩌면 모범생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내향적이고, 수업시간에 가장 집중해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던 나는 또래친구들보다 선생님들께 인정받고 싶어했고 ‘성실한 학생’이라는 인정과 칭찬을 피드백을 곧 나를 이루는 가장 주요한 가치로 내면화해왔던 것 같다.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과목이 바로 ‘국어 교과’였기에, 국어 교사를 목표로 두고 삶을 살아왔다. 저자분들과 과목과 다를 뿐 오랜 세월 교직을 바라온 그것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책의 첫부분부터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범대에 바로 입학한 두분 저자분들과는 달리, 나는 사범대 입학에 실패했다. 교원자격을 취득하고 몇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한으로 남는 부분인데, 고3때는 모 대학 국어국문학과수시전형에 합격했으나 너무나 하향지원한 학교라 결국 등록을 포기하고 재수를 했고, 재수시절 서울의 사범대 국어교육과 두곳에 수시전형 1차에 합격했으나 수능 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해 결국 최저등급이 없었던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시작부터 좌절감과 ‘교사가 되어야만 한다’는 조급함을 안고 나의 스무살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스무살의 나는 그렇게 영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교직이수를 바란다면 쉬운 과목 위주로 수업을 듣고, 교직에 선발된 다음 학점이 조금 안나올지라도 듣고싶었던 과목들을 들으면 되는 일인데 마음만 급하고 영리하지 못했던 나는 어려운 과목을 욕심내어 먼저 들어 결과적으로 교직이수 면접에 올라갔으나 등수에 밀려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3학년 때 준비한 사범대 편입에서는 예비 1번을 받고 최종적으로 불합격 결과를 받았다. 결국 대학원에 진학해 국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는 데까지 대학입학 후 6년이 걸렸다. 그렇게 어렵게 취득한 교원자격증임에도 불구하고 임용의 벽은 더욱 높고 단단했다. 특히 주요교과의 경우 지원자에 비해 TO가 현저히 적은 편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만약 내가 다시 대학교 1, 2학년으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사범대학 울타리를 벗어나 보고 싶다. 선생님이 될 거라는 굳건한 의지가 있어도 말이다. 아이들도 이른 나이에 임용고시에 합격한 선생님보다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온 선생님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26쪽.
결국 임용TO라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해, 복수전공한 심리학으로 임용을 보고자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20대의 10년에서 이룬 가장 주요한 성취는 교원자격증을 두 개 취득한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시간강사부터 시작해 기간제도 했고 경력도 쌓았으나 책을 읽으며 저자분들의 생각에 공감할 지점들이 참 많았다. 지금 다시 20대 초반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여행도 다니고 책도 더 양껏 읽으며 그 시기를 좀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20대 초반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먼 길을 돌아가고 있지만, 나중에 합격하여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그 긴 여정이 즐거운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91쪽.
저자분들은 졸업 이후 임용에 올인하는 시기를 충분히 가지신 것 같은데, 기실 나는 오히려 대학원을 졸업해 국어 교원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임용고시라는 너무 큰 산을 넘기 버겁기도 하고 무서워서 회피해오고 일과 공부를 병행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20대 초반에 즐기지 못한 친구들과의 여행도 다녀보고, 뮤지컬도 보러 다녔다. 사실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 왜 몰입해 공부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도 드는데, 저자분들도 이런 나와 다르지 않았다. 일과의 병행, 올인, 취미생활 등 여러 주변환경에서 각자의 고민들이 조금씩 다른 형태로, 다른 결로 나타날 뿐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지난 몇 년간, 긴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면 시험날의 기억이 떠올라 긴장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길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겨울을 가장 좋아했는데, 임용고시 n수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찬 바람이 불면 두려움이 먼저 느껴져서 겨울이 반갑지만은 않게 되었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38쪽.
사범대학에 다니면서 미래에 선생님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늘 사람을 쉽게 평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 나는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성하고 뉘우치며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선생님이 되어서도 색안경을 벗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정적 고정관념은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늘 그런 문제에 깨어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아직 경험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66쪽.
이런 취미활동 덕분에 길고 긴 임고생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취미활동을 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면 더 빨리 좋은 결과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하루 20시간씩 공부만 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 취미 때문에 숨을 잘 쉬며 버틸 수 있었다. 오래 걸리고 있지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나는 기다리는 걸 잘 하니까, 임용고시 합격도 기다리고 있다.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99쪽.
어쩌면 이런 고민과 경험의 시기가 삶에 한 번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또래들이 점점 정규직으로 취업에 성공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불안함이 밀려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나 또한 최대한 빨리 임용고시에 합격해 안정적으로 길을 걸어 나가야 할 지인데 하는 걱정과 조급함은 늘 존재한다. 특히 나에게는 저자 중 한 분인 김보영 선생님처럼 ‘안정성’을 쉽사리 포기하고 기간제교사로 평생을 살아갈 용기가 없기에, 임용시험은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며 삶에 필수적인 관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선택들과 내가 향유하는 여러 관계들이 부디 임용시험의 독으로 여겨지기보다 앞으로의 교직생활에 있어 중요한 거름으로 자리잡기를 소망해 본다.
나는 아직 나에 대한 믿음이 충분하지 않고, 기간제 교사에 대한 못 미더운 편견에 맞설 용기가 없어. 그래서 계속 임용고시에 도전해보려고 해.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정교사가 되는 날이 멀리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빠르게, 열심히 달려볼게. 정교사라는 날개가 나에게 붙여진다면, “역시 제가 자격 있던 것 맞죠?”라고 말하듯 훨훨 날아볼게.
- 김보영·박수정, 『나는 임고생이고 기간제교사입니다』, 저녁달고양이,2021, 75쪽.
서평의 말미에 이른 이제야 고백하자면, 임용시험에만 집중(올인)하고자 마음 먹고 공부를 하던 와중, 붙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고 그저 실업급여 수령을 위해 지원한 학교 두 곳에 붙은 바 있다. 어차피 두 곳에 붙었으니 한 곳은 포기해야만 했고, 남은 한 학교가 집 근처인지라 매우 많은 고심을 했다. 남은 실업급여 2회를 포기하고, 그리고 안정적으로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병행이 가능할 것인가? 현재로선 이것이 복(福) 혹은 기회인지 독(毒)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고민 끝에 집에서 가까운 거리이기에 오히려 간절함을 안고 공부하며 일과 병행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왕 결정했으니, 국어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전문 상담 정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하는 기회로 올해를 만들어야만 한다.
불안함이 없지 않지만, 나는 기간제일때나 혹은 임용 합격 후 정교사가 되어서나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며 내 삶을 통해 모범을 보이고 가르침의 내용을 통해 그들과 소통하고픈 한 사람일 뿐이다. 때문에 지금의 나를 믿고 지금의 불안을 조금은 내려놓아 보기로 했다.
특히, 책의 마지막 부분,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느껴도 괜찮다는 저자분들의 작은 메시지가 내게는 큰 위로로 다가왔고, 완독과 함께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선물받았다.
김보영 선생님, 그리고 박수정 선생님! 어느학교에서 동료로 만나든 함께 성장해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교단에서 뵙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교사의 역할은 북극성, 남십자자리와 일치한다. 교사는 북극성과 남십자자리처럼 학생들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게 지식이든, 인성이든, 가치관이든,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그러니 옛날 옛적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북극성이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처럼 다양한 지식과 가치관이라는 바닷속에서 헤매고 있을 아이들에게 교사라는 별이 여전히 필요하다.
반드시 나를 존경한다고 말해줬던 반장을 비롯한 나를 진짜 선생님으로서 사랑해준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보다 더 따뜻하고 커다란 사랑으로 아이들을 아껴줄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다. 좋은 선생님이 되는 조건에 기간제인지 정교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3년 전쯤(2018년) 이었던가, 가장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던 <알쓸신잡> 시즌2 10회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픈 책에 대한 화두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 중 유시민 작가님께서 ‘딸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영향으로 호프 자런의 이 책, 『랩 걸 (Lab Girl)』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나도 전자책을 진즉 구입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3년 간 『랩 걸 (Lab Girl)』은 내게 있어서 수많은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 중 한 권이었다. 언젠가 읽겠지, 하는 마음을 한켠에 지닌 채, 그렇게 3년이 흐르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나보다. 독서모임을 함께하는 친구들 모두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의 반열에 『랩 걸 (Lab Girl)』이 자리해 있었고, 그렇게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 덕분에 사놓고 읽지 못한 책 한 권을 완독할 수 있었다.
‘과학’에 대한 에세이라길래 기실 조금 걱정했는데 책은 매우 두꺼운 장편 에세이(7.8인치 전자책 ‘페이퍼프로’ 기준으로도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인 것 치고는 제법 가독성 있었고 저자의 삶을 함께 지나가는 중에 생각할 거리도, 삶에 대한 여러 문장들도 다수 등장했다.
특히 저자의 삶에 가장 큰 양분이 되어 준 것은 바로 부친의 실험실을 놀이터삼아 유년기를 보낸 일이다. 또한 학위과정을 마치고자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한 어머니의 모습도 호프 자런에게는 모델링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자랐다. 화학 실험도구가 늘어서 있는 실험대에 키가 닿지 않을 때는 그 밑에서 놀았고, 키가 큰 다음에는 실험대에서 놀았다. 아버지는 미네소타 시골 한가운데에 있는 전문대학에 자리한 실험실에서 물리학과 지구과학 입문을 42년에 맞먹는 시간 동안 가르쳤다. 아버지는 자신의 실험실을 사랑했고, 나와 오빠들도 그곳을 사랑했다.
해마다 5월제(유럽 각지에서 5월 1일에 하는 봄 축제—옮긴이) 날이 되면 엄마와 나는 땅에 씨를 하나하나 심었고, 일주일 후 싹을 틔우지 못한 것들을 파내고 새 씨앗을 다시 심었다. 6월 말이 되면 모든 작물이 왕성하게 자라고 주변이 모두 초록빛으로 둘러싸여서, 그렇지 않은 시절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곤 했다. 7월이 되면 이 모든 식물들이 흘리는 땀으로 공기가 가득 차서 그 습기 때문에 공중을 가로지르는 전선들이 윙윙거렸다.
엄마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빠와 결혼을 했고, 네 아이를 낳은 후 20년을 자녀 양육에 전념했다. 막내가 유치원에 갈 무렵, 학사 학위를 따겠다는 집념을 불태우며 엄마는 미네소타 대학교에 다시 등록했다. 엄마는 통신 과정밖에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문학을 택했다. 내 일과의 대부분을 엄마와 함께 보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 공부에 참여했다.
엄마는 책을 읽는 것도 일종의 노동이며, 각 문단마다 분투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나는 그런 식으로 어려운 책을 흡수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유치원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나는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나는 반 아이들보다 수준이 높은 책을 읽고, ‘상냥하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
그러나 호프 자런의 유년시절부터 뿌리깊게 자리해 온 여성에 대한 성 차별은 그녀의 삶에서 너무나 크나큰 ‘장벽’으로 느껴졌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과학계’(이공계)에서 여성으로서 버티기 위해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해왔으며 심지를 굳건히 했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작년에 관람한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도 여성과학자로서 그녀가 경험한 고군분투를 작품을 통해 생생히 느낀 바 있었다. 소르본대학에 입학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실험실을 제대로 구하기 어려웠고 화장실도 없었기에 분투해야만 했고, 어느정도 업적을 거둔 후에도 자녀들의 육아에 전념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은 마리 퀴리. 19세기를 살았던 ‘마리 퀴리’의 시대가 그러했을지인데 20세기를 살아간 ‘호프 자런’의 삶도 마리 퀴리의 시대와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물론, 19세기가 아닌 20세기였기에 호프 자런이 ‘여성 연구자’로서 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그녀에게는 ‘유리천장’이 존재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여긴다.
다섯 살 때 나는 내가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그게 무엇이든 남자아이보다는 못한 건 확실했다.
여자아이인 척하는 동안 나는 솜씨 좋게 몸단장을 하고 다른 여자아이들과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관해 수다를 떨었다. 줄넘기를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었고, 내 옷을 스스로 꿰맬 수도 있었으며 누구든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을 완전히 처음부터 모두 내 손으로, 그것도 세 가지 다른 방법으로 요리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늦은 저녁이 되면 나는 아빠와 함께 실험실로 향했다. 건물들은 텅 비어 있었지만 모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거기서 나는 어린 여자아이에서 과학자로 변신했다.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하는 것처럼. 내 경우는 반대 방향의 변신이긴 했지만.
과학 교수들은 내가 여자아이였음에도 나를 받아들였고, 내가 이미 의심하던 사실들을 재차 확인해줬다. 바로 내 진정한 잠재력은 내 과거나 현재의 상황보다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내 의욕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다시 한 번 나는 아빠의 실험실에서처럼 원하는 만큼 모든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난 것이다.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내 욕망의 근본은 깊은 본능에 토대를 두고 있었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 번도 살아 있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도, 심지어 텔레비전에서 본 적도 없었다. 여성 과학자로서 나는 여전히 그다지 평범하지 않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한 번도 다른 것이었던 적이 없다. 지금까지 나는 세 개의 실험실을 처음부터 시작해서 완성했다.
그가 이야기를 끝내고 “고마워” 하고 말하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몸이 움츠러드는 경험을 했다. 소개받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기 때문이다. 모두의 얼굴에는 이제 내게 익숙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저 여자가? 그럴 리가. 뭔가 실수가 있었겠지.”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 기구들에서는 과학계 내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 호프 자런, 「2부. 나무와 옹이」,『랩 걸 (Lab Girl)』, 알마, 2017.
그들은 나도 그들과 동등한 학자로서 이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연구 자금을 댄 기관에서 나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별 상관이 없다. 그들의 눈에 나는 괴상한 사람을 달고 와서 20킬로그램 정도의 짐도 들지 못하는 지저분한 작은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나는 그 이미지를 없애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았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성’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인정받는 자기상에 비중을 두고 삶을 살아가지 않았나 싶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비중에 둔다면 여러 한계와 장벽이 존재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에 비중을 둔다면 연구자로서 실험을 설계하고 변인을 통제하며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등 자신의 자유의지와 선택, 계획에 따라 세상을 탐구할 수 있으며 사회적 성취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험실’이라는 공간이 그녀에게는 그렇기에 더욱 소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녀가 아버지와 보낸 유년시절에서 느낀 행복감과 연결되어 었다.
실험실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날에 가는 곳이다. 세상 모든 곳이 문을 닫는 휴일에도 내 실험실은 열려 있다. 내 실험실은 도피처이자 망명처이다. 그곳은 직업상 전투를 벌이다가 후퇴해서 몸을 쉬는 곳이자, 내 상처를 돌아보고 갑옷을 보수하는 곳이다. 그리고 교회와 마찬가지로, 그 안에서 자라난 내가 진정으로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시간은 나, 내 나무에 대한 나의 눈, 그리고 내 나무가 자신을 보는 눈에 대한 나의 눈을 변화시켰다.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과학은 또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도 가르쳐줬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았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내 나무도 그중 하나이다.
과학자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장 위험한 부분은 진정한 과학자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불안한 첫걸음을 떼서 오솔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 오솔길은 도로가 되고, 그 도로는 고속도로가 되고, 그 고속도로는 언젠가 목적지에 나를 데려다줄지도 모른다.
바로 이날을 위해 일하고 기다려왔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함으로써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무언가를 증명했고, 마침내 진정한 연구가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다. 그러나 그 큰 만족감에도 그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좋은 과학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깨달은 동시에 지금까지 알던 여성들처럼 될 기회를 이제 공식적으로, 완전히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우리만이 열쇠를 갖고 있는 우리의 첫 실험실이었다. 작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곳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것이었다. 나는 그 텅 빈 방을 우리가 언제나 계획하고 꿈꿔왔던 실험실과 비교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본 빌의 눈에 감탄했다. 과거의 꿈과 현재의 현실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있었지만 그는 우리의 새 삶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도 그 삶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보겠다고 결심했다.
한편, 비단 여성과학자로서의 한계 뿐 아니라 실험실의 책임자로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로서의 어려움도 호프 자런의 이 에세이에 여실없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미국사회도 연구자에게 ‘연구비’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도 민감한 문제임이 강조되며, ‘빌’이 아무리 뛰어난 연구자이라 할지라도 그의 계약과 보험 등 안정된 직장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지점이 그러하다. 어쩌면 호프 자런은 이 에세이를 통해 ‘과학계’를 비롯한 연구 환경에 솔직하고도 따끔한 비판을 가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진정한 연구자이자 가족과도 같은 깊은 친구(마치 전우戰友와도 같은) ‘빌’과 연대하며 그러한 어려움들을 이겨낸다. 그리고 이는 단지 호프 자런 그녀의 안위安慰나 명예名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후세대 연구자들을 위한 호프 자런의 기꺼운 걸음이기도 했다.
언젠가 과학 분야의 교수를 만나면 연구 결과가 잘못될까 걱정이 되느냐고 물어보라. 연구가 불가능한 문제를 선택했거나 연구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를 간과했을까 걱정이 되는지 물어보라. 지금도 여전히 찾고 있는 해답이 가지 않은 여러 길에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지 물어보라. 과학 분야의 교수에게 무엇이 가장 걱정인지 물어보라. 길게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면서 한 마디로 답할 것이다. “돈이오.”
- 호프 자런, 「2부. 나무와 옹이」,『랩 걸 (Lab Girl)』, 알마, 2017.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호프 자런, 「2부. 나무와 옹이」,『랩 걸 (Lab Girl)』, 알마, 2017.
빌은 실험실에 필요한 연구 자금을 말하고 있었다. 연방 정부에서 받은 계약이 몇 개 있어서 2016년 여름까지는 재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실험실을 접어야 할 위험이 여전히 있었다. 환경 과학에 대한 연구 기금은 매년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종신 계약을 맺은 상태지만 빌은 그렇지 않다. 종신 계약은 교수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과학자들 중 가장 뛰어나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과학자가 장기적 직업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나는 엄청나게 화가 난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기금을 받지 못하면 나도 그만두겠다고 위협하는 것뿐이다. 아마 그러면 우리 둘 다 거리로 나앉게 되겠지만 말이다. 연구 과학자의 직업을 가진 우리는 절대, 영원히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호프 자런에게 더 경의를 표하고 싶으며 그녀가 부딪혀 온 과정에 놀라왔던 점은 결혼 이후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정신과적 문제’를 겪고 있는 내담자로서 호프 자런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 매우 불안해한다. 사실 이는 저자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모든 여성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오는 불안이다. ‘경력단절’에 이어 아이를 위해 ‘내 삶’ 전체를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우리 사회의 현재에 있어서도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더해 정신과적 문제를 겪고 있는 산모로서, 임신 25주차까지 항정신성 약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얼마나 깊은 공포로 다가왔을지 –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라 여긴다.
그러나 호프 자런은 해냈고,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수용해낸다. 어쩌면 그것이 가능했던 건 저자가 부친으로부터 받은 뿌리깊은 사랑이 저자의 내면 한 가운데 양분이 되어 내재해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나는 2002년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의사들과 간호원들을 붙잡고 도대체 왜, 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묻고 또 묻지만 그들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필요한 약을 먹어도 괜찮은 날이 오기만 기다리며 날짜를 세는 것밖애 없다. 임신 26주차라는 것은 마술 같은 날이다. 그때부터 나는 임신 7개월에 접어들고, 그때부터는 산모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항정신성 의약품을 사용해도 된다고 미국식약청이 승인했기 때문이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그때 학과장 월터가 걸어들어왔고 나는 상관을 만난 군인처럼 자동으로 일어섰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여자로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종신 교수직을 받기 직전이던 나는 임신에 동반되는 어떤 육체적 약점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나도 내가 행복하고 기대에 차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쇼핑하고, 아기 방을 꾸미고, 배 안의 아기에게 사랑을 담아 말을 건네면서, 사랑의 결실을 기뻐하고, 내 자궁이 그득 찼다는 사실을 느긋하게 즐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신 이 아기가 태어남으로써 인생의 일부분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슬퍼했다.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이 신비로운 정체에 대해 꿈을 꿔야 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미 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나는 이 아기가 남자아이고, 그의 아빠처럼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것을 알고 있었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나는 혼란스럽게 말을 더듬는다. “전 모유 수유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 말은, 일을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약을 먹어야 하거나 그러면-”
“괜찮아요.” 의사가 내 말을 가로막는다. “아기는 조제분유로도 잘 자랄 거예요. 전 그 걱정은 하지 않아요.”
아기에 대한 내 첫 번째 실패를 이토록 너그럽고도 쉽게 받아들이는 의사의 용서가 내 심장을 관통한다.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어린애 같은 희망이 꿈틀거린다. 어쩌면 이 여자는 내게 관심과 애정이 있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내 차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무서워요.” 내가 말한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낳다가 죽을 것이라고 늘 확신해왔다.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외할머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의혹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고, 삼촌이나 이모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죽지 않고 성장한 삼촌, 이모만 해도 열 명이 넘었지만 말이다. ‘Diskutere fortiden gir ingenting(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어쩌면 이건 내가 어떻게 해도 망칠 수 없는 100만 년이 넘게 지속되어 온 실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아기가 나를 나보다 더 큰 또 하나의 무언가에 닻을 내릴 수 있도록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자라는 것을 보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내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특권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도와줄 사람이 있고, 충분한 돈이 있고, 사랑이 있고, 직업이 있고, 필요하면 먹을 수 있는 약이 있다. 어쩌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정말로 기쁨을 거두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나도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나와 아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아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답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삶에서 뭔가를 이루어내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온 나로서는 정말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는데 귀중한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경험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예전에는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달라고 기도했지만 이제는 내가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아이에게 하는 입맞춤 하나하나는 내가 그토록 절실히 원했지만 받지 못했던 모든 입맞춤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이제는 내 사랑이 아이가 이해하기에 너무 큰 건 아닐까 걱정한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알 필요가 있고, 나는 내가 느끼는 이 풍요로운 사랑을 모두 표현할 능력이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 이제 나는 내 아들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렸던 기다림의 끝이라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의 엄마가 될 단 한 번의 기회가 한 번 내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 나는 이 아이의 엄마(이 말을 이제는 할 수 있다)지만 오직 내가 기대했던 엄마 노릇의 관념에서 나 자신을 해방시킨 후에야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었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딸에 대해서는? 나는 이 감정이 딸에 대해서도 똑같이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내가 직접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딸로 산다는 것은 나에게도 우리 엄마에게도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 모계혈통은 한 세대를 건너뛰어야 다시 이런 어려운 관계가 반복되는 것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손녀를 기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내 욕심은 늘 너무 앞서 나가곤 한다. 내 계산에 따르면 이렇게 기다리는 손녀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죽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특히 이 혈통이 건너뛰는 것을 계속한다면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되도록 처음부터 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럼에도 햇살이 눈부신 오늘 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병을 띄워 보내고 싶다. 누군가 기억해주길. 누군가 언젠가 내 손녀를 찾아서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그 아이에게 할머니가 부엌에 앉아 손에 펜을 쥔 채 창밖을 보던 그날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그 아이에게 할머니는 결정을 내리느라 바빠서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도, 창틀에 쌓인 먼지도 볼 겨를이 없었다고 이야기해주기를. 결국 할머니는 수십 년 먼저 손녀를 사랑해버리기로 결정했다고 그 아이에게 말해줄 수 있기를. 그 아이에게 할머니가 햇빛을 받고 앉아서 나무를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너를 꿈꿨다고 누군가가 말해줄 수 있기를.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아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라고요? 처음에는 ‘그’라고 했잖아요. 호랑이는 남자예요.”
“호랑이가 여자면 왜 안 되지?” 내가 물었다.
아들은 너무도 뻔한 사실을 내게 설명했다.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리고 몇 초 후 물었다. “오늘 밤에도 실험실에 갈 거예요?”
“응, 하지만 네가 깨기 전에 다시 돌아올 거야.” 나는 아이를 안심시켰다.
“아빠가 바로 방 밖에 있고, 네가 자는 동안 코코가 너를 지켜줄 거야. 이 집은 널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해.” 나는 아이를 재우며 날마다 하는 말을 반복했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일단 환경의 제한을 넘어서게 되면 나무는 모든 것을 잃는다. 주기적으로 가지치기를 해줘야 나무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마지 피어시(미국의 소설가, 페미니스트 – 옮긴이)가 말했듯 삶과 사랑은 버터 같아서, 둘 다 보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온실 안에서 빌과 내가 함께 앉아있던 그날, 우리는 희망과 목표에 대해서, 그리고 식물들이 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한 것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됐다. 얼마 가지 안아 우리는 서로에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20년에 걸쳐 벌어졌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 호프 자런, 「3부. 꽃과 열매」,『랩 걸 (Lab Girl)』, 알마, 2017.
호프 자런 뿐 아니라 개개인의 인생은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즉 개인마다 고유한 ‘자기서사’를 지니고 있는 셈인데, 나는 호프 자런의 자기서사가 문학치료학적 이론에 근거하면 ‘부모서사’와 가장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서사는 스승이나 부모 등의 위치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위치에서, 양육을 통해 자녀의 성장과 독립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호프 자런이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함께한 실험실을 양분 삼아, 그리고 소중한 이들과의 만남을 발판삼아 여러 장벽을 넘어 성장했듯이, 그녀도 그녀의 아들에게 양분이 되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유시민 작가님이 이 책을 자신의 딸에게 추천하고 싶었던 이유도 그에 있지 않을까. 과학자(연구자)로서의 삶, 여성으로서의 한계 극복이라는 호프 자런의 삶에 주요한 키워드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아버지의 사랑을 양분 삼아 네 길을 올곧이 걸어가고 이루어 나가라고.
그런 점에서 나도 이 책을 통해 깊은 위로를 받는다. 또한 나는 나의 청년기를 어떤 모습으로 보낼지, 그리고 내게 주어진 여러 한계를 어떻게 넘어 나갈지 깊이 고민하며 앞으로의 삶을 재조망해보게 된다.
나무가 되는 것은 긴 여정이다. 그래서 경험이 굉장히 많은 식물학자라도 나뭇가지나 묘목만을 보고 그 나무가 향후 50년 사이에 어떤 나무로 자라게 될지 정확히 에측할 수 없다. 나무의 성장표가 추측하는 데 유용하기는 하지만 그 표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만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