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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6 대니얼 키스, 『앨저넌에게 꽃을』, 황금부엉이, 2017
대니얼 키스, 『앨저넌에게 꽃을』, 황금부엉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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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네이버 카페 '북카페 책과 콩나무' 서평 이벤트 활동의 일환으로, 황금부엉이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내가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저를 빵가게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것처럼 저도 찰리의 자리를 빼앗고 못 들어오게 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찰리 고든이 존재하던 시간은 과거이지만, 그 과거가 현실이라는 거예요. 오래된 건물을 허물어야 그곳에 건물을 새로 지어 올릴 수 있는데, 과거의 찰리는 지울 수가 없어요. 찰리는 지금도 존재해요. 처음에 저는 찰리를 찾고 있었어요. 찰리의 – 나의 – 아버지를 보러 갔죠. 찰리가 과거에 한 인간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저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저 자신의 존재도 정당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니머 교수가 저를 창조했다고 말했을 때, 저는 모욕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찰리가 과거에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제 안에, 제 주위에 말이에요. (후략)”
- 4부 이변,「제발 인격을 존중해줘요」, 299쪽.
우리 모두는 현재를,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여기’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역설하는 것처럼, 무거운 돌을 열심히 굴려 산을 오르던 과거의 ‘나’와 정상에 오른 현재의 ‘나’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분절적인 관념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한 사람을 바라볼 때 과연 그 과거를 논하지 않고 그의 삶 전체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지적장애인이었던 찰리 고든이 똑똑해지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능이 높아지는 수술을 받은 전후 3월부터 11월까지 변화의 과정 속에 자신이 경험하며 느낀 것을 기록한 경과보고서(일기)의 형식을 취하며 독자 자신이 찰리의 경험과 삶, 감정을 통해 이와 같은 질문에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나는 이 작품을 꼭 11년 만에 다시 만났다. 2006년 중학 3학년 시절, 1학년 때부터 존경하며 따르던 은사님(국어 선생님)의 소개로 찰리 고든을 접하게 되었고 그 때 구입한 ‘동서문화사’ 판본을 아직도 소장중이다. 그때와는 다른 출판사, 다른 역자에 표지도 아름답게 디자인되어 작품이 재출간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고, 무엇보다 내 마음 한 가운데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리하고 있던 ‘찰리 고든’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무척 설레며 책장을 넘겼다. 작품 초반부를 읽으며 독자인 나 자신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성장하고 변화했다는 사실을 분병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1년 전 작품을 읽을 때 로샤검사(로흐샤흐 검사)와 주제통각검사(TAT) 검사 등 투사검사가 등장하는 것도 몰랐던 중학생이 ,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국어국문-국어교육과 더불어)한 후 청소년상담사 자격을 취득하여, 소설 속에 다양한 심리 검사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반갑고도 놀라워했으니 말이다. 이와 같은 자그마한 성장과 변화, 10년 사이에 이루어진 지식의 확대와 넓어진 이해에도 놀랍기만 한데 그 모든 것을 단지 9개월 만에 경험한 찰리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싶다. 특히 초반부 경과보고서에서 맞춤법이 맞지 않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수술 후 폭발적으로 변화하여 180이 넘는 지능을 갖추고 몇 개국어를 하며 번역되지 않은 논문을 읽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지능을 따라가지 못하며 혼란을 느끼는 모습들에서 찰리의 혼란이 s 분명히 전해진다.
‘똑똑해지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지녔기에 찰리 고든은 비크맨대학교 심리학 실험실의 실험에 참여하게 되어 지능을 높이는 수술을 받게 된다. 분명 스트라우스 박사님이나 니머 교수님, 그리고 심지어는 찰리가 따르던 ‘지적장애성인센터’에서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는 키니언 선생님까지도 찰리의 이러한 ‘동기’와 열망을 ‘다른 지적장애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좋은 것’이라면서 칭찬한다. 그러나 찰리가 깨달았듯이,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던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로, 빵집의 여러 사람들과 진정한 친구로서 ‘인정’받기 위하여 그러한 강렬한 동기가 자리했기 때문에 그의 그런 강렬한 열망이 참으로 아프게 여겨졌다. 기실 (중요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인정’받고 싶고 기대에 ‘부응’하고픈 욕구는 누구나 어느정도 지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심리 정서적 문제인데 –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결코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그렇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관계에 있어 인정받고 수용되는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감정을 나눌 이들이 주변에 자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찰리는 온전히 인정받고 수용된 경험도, 또 진실되이 자신의 문제를 나눌 수 있는 이도(적어도 수술 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처절히 노력해왔어야만 했으며 그 스스로가 자신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고쳐야만 하는 것’, ‘없어져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한 사람이라도 주위 누군가가 찰리가 장애를 겪고 있어도, 똑똑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면, 내면을 어루만져주는 ‘상담자’의 역할을 하는 이가 주변에 있었다면, 과연 찰리가 그토록 강렬한 열망을 지닌 채 스스로 실험에 자원했을까.
똑똑해지고 싶다는 흔치 않은 욕구를 강하게 지닌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누구든지 무척 놀라워하는데, 그런 욕구가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이제는 나도 알 것 같다. 로즈 고든은 평생을 그것에 매달려 살았다. 찰리가 저능아라는 사실에서 공포와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로즈의 잘못인가? 아니면 매트의 잘못인가? 이런 물음들이 따라다녔다. 노마를 낳은 뒤에야 로즈는 자신도 정상적인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장애아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나를 바꾸려는 노력도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엄마가 바랐던 똑똑한 아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그만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 3부 고독, 「배울수록 이상한 점」, 218-219쪽.
그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게에 앉아서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한 아이구나” 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나는 인정받기를 원했고, 오래전에 내가 신발 끈을 묶고 스웨터의 단추를 채우는 법을 익혔을 때, 만족스러워하던 그의 얼굴에 떠오르던 환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지만, 끝내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 3부 고독, 「혹시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277쪽.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자신이나 가족들보다 겉으로 비친 모습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매트는 몇 번이고,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니라고 말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노마는 옷을 잘 입어야 했고, 집에는 좋은 가구를 두어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점을 알지 못하도록 찰리는 집 안에 있어야 했다.
- 5부 회귀, 「우리는 누군가가 필요했어」, 382쪽.
그러나 그 열망을 이루어 지능이 높아져 천재가 되어 세상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과 인지능력이 생기자, 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역차별’이다. 지능이 높아져 친구들과 대화하고 어울리고 싶었던 찰리에게 과거의 조롱에 비견할 ‘비난’과 ‘소외’가 찾아온다. 왜 그런 수술을 받아 자연을 거스르는지 지적하며 천재가 된 찰리가 자신들에게는 부담스럽다는 것을, 이질적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즉 지능이 매우 뛰어나든, 혹은 지능이 매우 낮든 정규분포표의 양 극단(양 끝)에 있는 ‘특별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면서 ‘소외’하고 ‘배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패니가 말했다. “찰리, 네가 뭔가 아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야. 네가 변한 방식 말이야! 나도 모르겠어. 예전에 넌 착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 아주 똑똑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평범하고 솔직했어. 그런데 갑자기 똑똑해지려고 네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어. 다들 그렇게 얘기해. 그건 옳지 않다고 말이야.”
“하지만 더 똑똑해지고, 지식을 얻고,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를 원하는 게 도대체 뭐가 잘못이야?”
- 2부 혼돈,「어둠속의 소년」, 164쪽.
“그럼 제가 어떤 모습이기를 바랐던 거죠? 제가 여전히 순종하는 강아지처럼 지내면서 꼬리를 흔들고 나를 걷어차는 발을 핥기를 바라는 거예요? 분명히 이 모든 것은 나를 바꿔놓았고 내가 나 자신을 생각하는 방식도 바꿔놓았죠. 더 이상 사람들이 내게 건네준 쓰레기를 받아먹을 필요가 없다고요.”
“사람들이 찰리에게 그렇게 심하게 대하진 않았어요.”
“선생님이 뭘 알아요? 잘 들어요. 그중에서 가장 나은 사람들도 잘난체하면서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생색을 냈죠. 자신들이 우월해 보이면서 부족한 점을 감출 수 있도록 저를 써먹으면서 말이죠. 누구든지 바보 곁에 있으면 자신이 똑똑한 것처럼 느껴지죠.”
-3부 고독, 「나는 왜 벌을 받고 싶었던 걸까?」, 188-189쪽.
더욱이 비크맨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서 찰리의 실험을 주도한 니머 교수는 수술 전의 찰리 고든을 ‘부정’하곤 한다. 수술 후 찰리가 사람이 되었으며 ‘새로 태어났다.’고 표현한다. 그는 ‘지적장애인’ 시절 찰리의 인격, 찰리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즉 지능이 낮은 지적장애인인 찰리 고든은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해할 만한 능력이 부재했기에, 자신과 같은 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으나 지능이 생긴 후 세상에 대한 인지능력이 갖춰졌으니 이제사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니머 교수가 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비록 ‘니머 교수’라는 한 개인이 작품에서 문제가 되었으나 찰리에 대한 니머 교수의 시선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비단 찰리를 포함한 지적장애인 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등 장애인 분들, 이방인(외국인) 등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지니고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는가? 청소년상담사 연수 때 네팔 이주배경 여성 ‘찬드라 꾸마리’씨가 겪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주노동자인 그녀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잠시 인근마을에 외출을 갔는데, 지갑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식사 후 값을 지불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한국인과 너무 닮았다는 점에만 포착해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정신병원에 감금해, 그녀는 그 곳에서 6년을 보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해 단지 그들이 우리와는 다르고(이질적이고), 우리와 같은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미 우리 내부에서 그들에 대한 가치관을 낙인찍은 후 우리가 행동양식이나 가치관 면에서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이 힘겹게 내려는 목소리를 억누른 것이 아닌지,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통제하려고 하며 정작 그들이 필요로 하는, 소망하는 것에는 ‘경청’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과리노 박사에 대한 재미난 사실. 그가 내게 했던 것에 대해. 로즈와 매트를 속인 것에 대해 나는 마땅히 그에게 화를 내야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첫날 이후로 그는 항상 나를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항상 어깨를 토닥여주고, 미소를 지어주고, 용기를 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것이다.
과리노 박사는 그때 나를 한 인간으로 대했던 것이다.
배은망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내가 화가 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나를 실험동물로 취급하는 태도이다. 니머 교수는 자신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계속해서 언급하거나 언젠가 앞으로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진짜 인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니머 교수가 나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그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지적장애인을 보며 웃을 때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들은 인간의 감정이 개입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니머 교수는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내가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3부 고독, 「배울수록 이상한 점」, 219쪽.
그때, 니머 교수가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비크맨 대학교에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우리들은 우리의 신기술로 자연이 낳은 오류를 우수한 인간으로 창조해낸 사실을 알게 되어서 만족스럽습니다. 찰리가 우리에게 왔을 때 그는 사회에서 벗어나 있었고, 돌봐줄 친구나 친척도 없이 대도시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으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정신적 능력도 없었습니다. 과거도 기억하지 못했고, 현재와도 동떨어져 있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습니다. 실험하기 전에는 찰리 고든이라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자기들의 개인금고에 넣어둔 새로운 귀중품처럼 취급할 때 왜 그토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확신하건대, 우리가 시카고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내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맴돌며 메아리치던 바로 그 생가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모든 사람들에게 니머 교수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나도 사람이에요, 사람. 부모도 있고, 지난 일도 기억하고, 과거도 있어요. 그리고 당신들이 저 수술실로 옮기기 전부터 난 존재했다고요!”
- 3부 고독,「나만의 공간」, 241-242쪽.
"자넨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고 있군. 늘 그랬지만, 우리가 항상 잘 대해주었다는 건 자네도 알잖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모든 걸 하셨지만, 저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진 않으셨죠. 제가 실험에 참여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당신은 몇 번이나 큰소리를 쳤죠. 네, 저도 압니다. 그렇게 말하면 당신이 날 만들었다는 뜻이 될 테고, 주인님에 창조주까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매순간마다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시는군요. 교수님이 믿든 안 믿든,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위해 한 일이 – 아무리 근사한 것이더라도 – 저를 실험실 동물처럼 다룰 권리는 없습니다. 지금 제가 한 인간이듯이 실험실에 걸어 들어오기 전부터 찰리도 한 인간이었죠. 충격을 받으셨나 보군요! 네, 제가 사람이 아닌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갑자기 알게 되었군요. 훨씬 전부터 사람이었죠. 그런데 이런 진실을 아이큐가 100을 넘지 않는 사람은 생각할 가치조차 없다는 교수님의 믿음에 이의를 제기하는 겁니다. 니머 교수님, 저를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찔리실 겁니다.”
- 4부, 이변,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364-365쪽.
‘인권감수성’, 개개인이 타인의 감정과 정서에, 타인치 처한 환경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으려면 그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보다도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뒷받침 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이 1959년에 출간된 것을 고려했을 때, 아마 저자는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학문중심 교육과정이 등장하면서 학문과 이성, 지능을 우선시하면서, 심리학 실험에서도 개개인의 인권을 도외시하는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59년의 미국 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은 길을 2017년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학교 성적이 뛰어난 우등생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밝혀지는 상황은 여전히 성적, 결과를 지향하며 ‘인권감수성’, ‘공감능력’에 대한 교육 더욱 진전하지 못하고 답보하고 있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대변한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혐오(비하)하는 단어들이 사용되어 오고 있으며 특정성별이나 소수자, 약자에 대한 혐오발화 등이 인터넷 상에서 수없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도 인권감수성 부재의 심각한 문제라 여겨진다. 특히 세월 호 사건 당시 유족들을 비하했던, 혹은 아직도 그 얘기냐고 하던 사람들과 같이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은 것은 이를 환기하게 한다. 특히 세월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초등생에 대해 같은 반 친구들이 조롱했다는 기사는 정서적, 심리적인 지원과 교육이 가장 강조되어야 할 유년시절 공감교육, 가치관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다시금 확인케 한다.
진정한 공감/가치관 교육은 학교에서 교과서로, 전공서로 이론을 배우며 머릿속을 ‘이론적 지식’이라는 내용물 만으로 채워가는 것이 아니며,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경험적으로 실천’하고, 직접 그들과 만나 대화하며 찾아가는 등 ‘소통과 교류’라는 내용물로 채울 때 가능한 것이라 여긴다.
가장 낮은 곳이라 여겨지는 –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찾아가 위로와 격려, 공감적 한 마디를 건넨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수단의 톤즈 아이들의 교육과 의료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치신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분들이 이러한 분들이시며, 작품의 후반부에 찰리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찾아간 워렌 주립보호소의 윈슬로우와 같은 이를 주목할 만하다.
"돈과 물질적인 것을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시간을 내서 애정을 주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이죠." 그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고, 그는 방을 가로질러 선반 위에 놓인 빈 아기 우윳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병이 보이시죠?"
우리가 사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다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다 자란 남자를 두 팔로 안고, 저 병으로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그리고 환자들이 누는 오줌과 똥을 뒤집어 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말이죠? 제 말에 놀라신 것 같군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저 고상하고 높다란 상아탑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 환자들처럼 모든 인간의 경험에서 차단되어 떨어져있는 것에 대해서 당신이 도대체 뭘 알죠?"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고, 내 웃음을 오해했는지 그는 갑자기 대화를 끝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여기에 돌아와 머물게 되면,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듣게 된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해할 것이다. 그는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 4부 이변,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38-339쪽.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도- 심지어 찰리와 같은 지적장애인 분들 또한 스스로 자신의 지능이 다른 사람들보다 낮음을 인지하신다고 한다. -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관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의 주인공 ‘오웬 서스킨드’ 씨 또한 자폐성 장애를 지니고 있으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를 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계시며 그 가치관과 철학으로 아름다운 삶을 꾸려가며 성장해 나가고 계신 분이다. 나와 다른 이들 – 장애인, 외국인, 성 소수자 등 –의 존엄성과 인격, 고유한 능력과 개성을 존중할 수 있는 ‘공감능력’은 지능과 더불어 가장 고귀한 능력임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자신과 같은 수술을 받아 ‘실험실’에서 인간의 손에 고통 받고 있는 생쥐 앨저넌의 상황과 행동을 이해하고, 그의 무덤에 ‘꽃을’ 놓아달라는 그 아름다운 부탁을 전하는 찰리를, 그 어느 누가 지능이 떨어진다 하여 무시할 수 있을까.
앨저넌은 멋진 쥐이다. 털은 솜처럼 부드럽다. 눈을 깜빡이는대 눈을 뜨면 눈동자는 검정색이고 둘레가 분홍색이다. 앨저넌에게 먹이를 줘도 좃냐고 난 버트에게 물어따. 왜냐하면 그를 이겨서 난 기분이 좋지 아나꼬 상냥하게 대하고 친구가 되고 시퍼끼 때문이다. 버트는 안 된다고 해따. 앨저넌은 나처럼 수술을 바든 무척 특별한 쥐라고 해따. 앨저넌은 노픈 지능을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한 최초의 동물이라고 버트가 말해꼬, 아주 똑똑해서 밥을 먹으러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자물쇠의 비밀번호가 앨저넌이 들어갈 때마다 바뀌기 때문에 앨저넌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워야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해따. 버트의 말을 드꼬 난 슬펐는대 앨저넌이 뭔가를 배우지 모타면 먹을 수 없어서 배고플 거시기 때문이다. 시험을 통과해야만 먹을 수 있는 건 올치 안타고 생가칸다. 버트라면 입장을 바꿔서 뭔가를 머글 때마다 시험을 치고 시플까. 난 앨저넌과 친구가 될 생각이다.
- 1부 꿈, 「의식과 잠재의식」, 54-55쪽.
추신. 혹시 기해가 있으면 뒷마당에 있는 앨저넌의 무덤에 꼿을 좀 놓아주세요
- 5부 회귀, 「혹시 기해가 있으면」, 453쪽.
교육학과 문학, 심리학을 공부하는 내게 다시금 귀한 의미로 10년 만에 다시 만난 이 작품은 내면을 감응시켰다. ‘공감할 수 있는’ 고귀한 마음을 지녔기에 가장 아름다운 청년, 찰리 고든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전공분야인 심리학을 문학에 형상화시킨 저자 대니얼 키스의 다른 작품들 – 특히 『빌리 밀리건』- 또한 기대가 된다.
“하지만 지능 하나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당신들의 대학에서는 지능과 교육과 지식을 모두 숭배하죠. 하지만 당신들이 모두 놓친 한 가지 사실을 이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능과 교육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 4부,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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