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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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게시물은 창비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전문상담교사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차열음 작가과, 창비 출판사,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전국의 모든 동료 전문상담교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울은 때로 타고난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 내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애초에 우울의 뿌리를 찾았던 것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가족력과 같은 통제 불가 요인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나는 우울을 발현하게 한 또 다른 뿌리를 찾아야 했고, 상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6.

 

 

  차열음 작가의 에세이,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는 저자의 자기고백이 담긴 글이다. 이제는 20대 성인이 된 저자가 중학생 때 거식증과 우울증을 겪어내는 과정을 회상하며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가 경험한 청소년기 거식증과 우울증의 증상과 그 내면을 촘촘하게 서술하고 있어 거식증이 발현된 원인부터 우울과 관련된 가족력, 거식증에 이어 폭식증이 나타나면서 섭식장애의 양상을 지니게 된 촉발요인과 유지요인을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의사인 부모님을 두고 있던 열 네 살의 저자는 학업으로는 동생만큼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경험으로 인해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에 몰두하게 된다. 그 열 네 살 아이의 인정욕구가 다이어트와 외적인 미()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져 거식증이 발현한 것인데, 상담과 병원치료의 여정 중에서 급작스런 환경의 변화와(급작스럽게 결정된 전학) 교사 및 친구들로부터의 낙인 등의 선행사건들이 저자가 자살 시도와 자해 등 위기이슈로까지 나아간 일들이 160페이지 남짓의 짧은 책 속에 상세히 그려진다.

 평생을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독자로 살아왔으며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고 서평을 써 왔지만, 직업적인 이유로 속해있는 연구회 단톡방에서 서평단에 참여하게 된 것은 새로운 일이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왜 출판사에서 그 많은 교사들 중에서도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의 전문상담교사들이 읽고 서평을 쓰기를 가장 바랐는지 그제야 알 듯했다.

 이 책은 저자가 거식증과 우울증을 지나 성장해왔다는 내용의 자기 고백이 담긴 단순한 에세이임을 넘어서, 충분히 사랑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온전히 수용되는 무조건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그 경험을 갈구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짧은 교직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저자의 청소년기와 같이 그런 고통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들을 작년에 가장 많이 만났다.

 작년에 근무한 전임교는 내 전문상담교사 경력 중에서 아니, 교직 경력 중에서 가장 힘들었고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고통스러웠던 학교임이 틀림이 없다.

 위기관리위원회를 1년에 여덟 번 열었고,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돌아가는 학교의 4계절 중 자살시도만 최소 4(학기가 시작된 조금 후), 7(방학 직전), 8(2학기 개학 이후), 10, 12(2학기가 끝나가는 시점) 다섯 번 이상은 있었으니 말이다. 약물 과다복용, 투신 시도 등…….

 가장 많은 아이들이 약물을 과다복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상담교사로 상담을 하고 관련 위원회 업무를 맡아 준비해야 했던 나 역시도 반복되는 자살시도 사안에 많이 힘들었지만, 시도를 해야만 했던 아이들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지나는 와중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거겠지.

 저자의 글을 읽어내려가다보니 작년에 잠시나마 선생님도 힘들어, 제발, 살아만 있어줘, 라는 기도를 반복해서 올리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 대신 아이들이 시도를 결심할 용기를 내기 직전에 나를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야 하나...?

 

‘가방에는 집에서 몰래 훔쳐 온 수면제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어디선가 봤는데,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자는 듯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중략) 거식증이나 우울증 환자가 전보다 활력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은 쉽게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환자에게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정신적인 회복 전에 약과 식이 조절로 몸이 먼저 활력을 찾게 되면서 실제로 이 시기에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으나 마음먹은 것을 실행할 만큼의 몸의 기력은 생겼기 때문이다. ’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89.

 

 

 

‘언니 오빠들과 있다 보면 자유롭게 나는 것 같다가도, 공기가 없는 공중에 표류하는 것같이 숨이 턱 막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때 컴퍼스나 커터 칼 같은 것으로 손목을 그으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예전 학교에서 어울렸던 친구의 말이 맞았다. 그 친구의 팔뚝에는 늘 붉은 별이 그어져 있었다. 컴퍼스로 그은 별이었다. 아빠에게 맞아 화가 날 때마다 이렇게 하면 분이 풀린다던 그 친구의 말처럼 예리한 고통은 순간적인 쾌감이 되었다. (중략)
스트레스를 자해로 푼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우울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나름의 SOS 신호였던 것이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10-113.

 

 

 한편 저자가 거식증으로 인해 상담을 받는 장면을 그려내는 지점에서는 저자보다도 상담자의 발화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자살시도를 하고도 자퇴를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불안했고 아이들이 그들이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것처럼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도(거부하고도) 자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잘 꾸려 나갈 수 있을까, 병원 치료를 더 설득하고 내가 연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걱정하던 내게, 작년 4월 한 내담학생이 해 준 말이 떠오른다. 자살시도 이후 바로 연계와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조력했지만, 끝까지 자퇴를 고집하던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걱정만 하는데 왜 제가 잘 될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사실 지금의 내가 1년 전의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아이들이 학교에 기댔으면 좋겠고 할 수 있는 만큼 제도 안에서 상담과 치료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상담교사로서 상담을 하며 내가 만나는 내담학생에게 불안과 걱정을 티내거나 훈시하지 않고 저자가 만난 상담자처럼 따뜻하고 객관적이면서도 한 걸음을 늦추며 내담자에게 맞추는 상담자로 자리하고 싶다. 적어도, 다른 곳에 찾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Wee클래스에서 온전히 사랑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하러 편히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먹는 걸로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들을 때마다 짜증 나요.”
“그래, 선생님이 이따가 이야기해 둘게. 먹는 걸로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지.”
“사실 할머니는 더 심하긴 해요. 방까지 쫓아와서 먹이려고 하는데 짜증 나서 가출해 버리고 싶어요
.”
선생님과 있을 때는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좋았다.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먼 발걸음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상담실의 체중계와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0-51.

 

 

 

“이번 주 식단 일기는 지난주보다 빠진 부분이 많네. 식사를 거른 거야?”
“…….”
“뭐라고 하는 거 아냐. 그래도 시간은 맞춰서 먹기로 했었지? 먹고 싶은 만큼 조절해서 먹고, 먹은 것만 잘 적어 보자
.”
무리해서 다가오려는 엄마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아빠보다
모든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더 편했다.
사랑해서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가족보다 이성적인 타인이 때로 더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2.

 

 살기 위해 자해를 하고, 고통의 끝에서 조금 더 안전한 방법을 고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많은 아이들이, Wee클래스/Wee센터/병원/사설 상담센터, 그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그들에게 가장 가깝고 편한 곳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선생님도 한 사람이기에 많이 나약하고 부족하지만, 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고통은 당연하다고, 아픔을 느끼는 네 마음이 너무나 옳다고, 함께 길을 찾아보자고 손을 내밀고 곁에 머무르고 싶다.

 

‘너를 응원한다고, 작고 연약해진 너의 이런 모습마저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6.

 

 

‘물론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가 모든 우울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주벼에서도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병행했지만 호전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살아온 시간이, 삶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테니 문제를 벗어나는 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담과 약물을 통해 문제가 나아지는 경우도 있은 병원은 삶의 낭떠러지 앞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주요한 방법 주 하나임은 틀림없다.
정신 병원은 학교와 같다. 환자는 모두 학생이다. 그곳에서 스스로 마음을 진단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다음에 더 강인해질 수 있도록, 다음 우울엔 더 의연히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도움도 받아 본 사람이 청할 줄 안다. 우울도 겪어 본 사람이 이길 줄 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8-149.

 

 

 

 전문상담교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2023년을 잘 버텨 내고(수많은 위기사안들에 소진이 심해, 작년에는 블로그에 서평을 많이 써내지 못했다), 2024년 블로그에 올리게 된 첫 서평이 이 책이었기에 더욱 유의미하다고 여긴다.

 나는 학창시절 외로움을 느끼며 청소년기를 보냈고(당시에는 몰랐지만) Wee클래스가 부재하고 상담교사가 없던 시절 교과 선생님들의 지지와 격려 덕에 자라났기에 평생의 업()으로 교사를 목표로 하게 된 아이였다. 학부 시절 심리학을 복수전공할 때만 해도 내가 전문상담교사로 살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교직에의 첫 동기와 가장 밀접한, 전문상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도 상담을 받으며 나의 비합리적 신념을 수정하고자 노력하고(가령 상담교사로서 상담에서 실수하면 다 망할 것 같다는 비합리적 신념? 지난 주에 상담자분과 찾아봤는데 근거가 1도 없더라~) 자기 이해와 타인 이해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한 개인이지만,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상담을 경험하는 전문상담교사이기에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상담의 의미를 더 잘 전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저자의 학창시절을 넘어,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진실로, 함께 근무하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나누며,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잘 들여다보고 지원하면서 항상 상기하고픈 글이다.

 어렵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어 주신 차열음 작가님과, 창비출판사, Wee클래스와 Wee센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료 전문상담교사/전문상담사 선생님들께 다시금 깊은 감사를 전한다.

 

 

 

 

by papyros 2024. 4. 23. 01:29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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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눈가리고 책읽는당 활동'(버드 스트라이크 가제본 사전 서평단) 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출간 전 양서를 먼저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구병모 작가님과 창비출판사 측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서평 중 인용문의 쪽수(페이지)는 직접 구입한 <버드 스트라이크> 정식 단행본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다친 동물을 감싸기 위해서는 양어깨의 날개를 앞으로 모두 모아야 한다. 따라서 날개가 큰 자일수록 더 큰 동물을 보살필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새의 보호를 받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새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그들은 때가 되거나 필요한 순간이 오면 모두 일정 크기의 이상은 날개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펼쳐 보아도 비오의 날개는 그 자신의 등을 덮기에도 모자랄 만큼 짧고 작았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6쪽.

 


 

  “우리가 하는 말 …… 대강 알아듣지? 너희는 어릴 때부터 우리 말과 벽안인(碧眼人)들의 말까지 모두 배운다고 들었는데.”

비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비오의 엄마의 엄마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시 사람들에게 유구한 세월 들볶이고 형태가 있는 거라면 뭐든 빼앗기는 과정을 거치며 이제는 고원 지대의 고유어를 제대로 기억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지장을 비롯해서 열 손가락 안에나 들까. 마을 행사 때 단체로 부르는 노랫말 정도를 제외하곤 자신들의 말을 쓸 일이 없었다. 고원 지대에 남은 거라곤 이제 한 뼘의 땅과 흐드러진 꽃과 바람 같은 것들뿐. 애당초 그런 것들조차 소유하려 들지 않고 고원의 품에 되돌려주면서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들은, 도시인의 약탈로 인해 그런 꿈을 꿀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0-21.

 


 

 지금은 이미 구병모 작가님의 신작으로 널리 알려진 『버드 스트라이크』의 정식 출간 전, ‘눈가리고 책읽는당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수령하였다. 백색의 표지에 작품의 단서로 #새인간 #작은날개 #영어덜트소설(*Young Adult(YA)소설은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을 의미한다.)이라는 단 세 개의 해시태그(키워드)만 제시되어 있는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지닌 채 작품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내가 읽는 작품의 작가와 책의 제목도 모른 채 책장을 처음 넘겨가는 와중 벽안인익인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생소한 용어에 공간적 배경이나 시간적 배경이 특수한 SF소설인가? 미래소설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졌던 것도 찰나, 작품을 읽어내려가며 익인과 벽안인들의 관계, 그리고 핵심 주인공 비오(익인)와 루(벽안인)가 그들의 집단에서 자리하는 특수한 위치를 읽어낼 수 있었다.

  과학기술과 문명을 지닌 도시에서 살아가는 벽안인들은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유사한 반면, 날개를 가진 사람들인 익인들은 도시의 벽안인과는 떨어져 그들만의 고원지대에서 살아가며 그들만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익인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벽안인들에게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심지어 벽안인들과는 달리, ‘날개를 지니고 있는특수한 인종(人種)으로 여겨져 연구나 실험의 대상으로 자리하기까지 한다.

 


  여러모로 맘에 들지 않는 생활이었지만 청사에서 지내다 보면 가끔 특별한 기회가 있었다. 청사 바에 사는 또래 아이들은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 책에서 사진으로나 보았던 익인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고원 지대에 모여 사는 익인은 날기에 최적화된 작고 가벼운 몸집에 성질은 순한 편이라 들었는데 어쩌다 오늘처럼 떼를 지어 청사를 공격해온 건지, 지적 수준이 도시인들과 같으며 동작이 빠르고 날기까지 해서 생포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잡혔는지 궁금했다. 낮에 그들이 천장과 벽을 두드려 대고 부수는 동안 진동을 일으키는 책상 밑에서 볼썽사납게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루는 이제 가까이서 포로를 관찰하는 특전 정도는 누리고 싶은, 아직은 천진난만하고 무신경한 나이였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감수성이 익인한테까지 미치지는 못했고 그들이 무언가 진귀한 대상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35.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의 벽안인과 익인들 사이에서, 현 시행의 이복(異腹)동생이며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아버지의 고향에서 평화로이 살다가 갑작스레 어머니 아마라와 전() 시행의 재혼으로 정부청사에 들어오게 된 소외된 아이 벽안인(碧眼人) , 그리고 날개가 있는 익인들 사이에서, 익인 어머니와 벽안인 친부(親父) 사이의 혼혈로 태어나 다른 익인들보다 작고 왜소한 날개를 가지고 태어난 익인(翼人), ‘비오’.

  벽안인들의 청사에 납치되어 취조를 받던 비오가 고원으로 도망치기 위해 루를 납치한 다소 기이한 만남으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결국 인종(人種)간의 경계를 넘어 루와 비오가 갖게 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자연스런 이끌림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집단)에서 누구보다 약하고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타인과 동일시(同一視)한다는 것이 위험요소도 분명히 있겠으나, 비오와 루의 경우 이를 통해 외로운/소외된 이들 간의 연대와 유대로 이어졌고 그 외로움을 이해하고 품어 주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선물과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기실 우리 모두가 누군가로부터 평가받거나 판단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축복이나 선물과 같은 귀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난 걸 후회하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부끄럽지도 않아. 사실 축제 날 나 말고 다른 두 친구는 뜨거운 불 앞에서 이미 다른 이들의 청혼을 받았는데, 나한테만 아무도 청혼해 온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의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 말이야.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07.

 


 

“아주 잠깐이라도, 그 인연을 귀하게 여기세요.”

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기에 루는 엉거주춤 일어서려고 했으나 지장은 그대로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어떤 우여곡절을 거쳤든 간에,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나 연결된 데에는 이치가 있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론 설명되는 연결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살아 있는 이유랍니다. 그러니 이어진 끈을 섣불리 자르려 하지 말고 그리로 마음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지내는 동안 루, 당신에게 평안이 있기를.”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26.


 

  작품 내에서 벽안인들과 익인들 사이의 불평등한, 차별적 관계와 루와 비오의 소외된 위치에 대한 내용과 메시지들이 유독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큰 목소리)로 들려오고 그만큼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오래 전부터 2019년을 살아가는 현재까지 이러한 이슈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하며 읽어 온 우리 세대의 명작, 해리포터(Harry Potter)만 해도 마법세계에서 순수혈통과 혼혈, 머글 간의 차별이 핵심이슈로 등장하며 머글 출신이기에 차별받거나 심각한 욕설을 듣기도 하고, 집요정과 같은 존재는 생명체로서의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 최근 10주년을 맞이한 구병모 작가님의 등단작 위저드 베이커리(2009) 또한 말을 더듬고 집안에서 마음 줄 곳이 없는 소외되고 외로운 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바 있다. 그만큼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다시금 차별의 실체와 소외된/외로운 이들 간의 연대와 유대, 존재의 필요에 대해 역설한 버드 스트라이크의 목소리가 반가우면서도 아직도 이러한 문제가 사회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고 동시에 고맙기까지 했다. 비단 다문화가정이나 난민문제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성별(여성/남성), 장애유무, 성적 등 다양한 방면, 어떠한 상황에서 약자이며 소수자일 수 있고 소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빠, 어떻게 좀 해 봐요. 내 작은 날개로는 이 아이를 덮을 수 없어요.

죽어 가는 다람쥐를 안고 속을 끓였던 그 때, 아버지는 뭐라고 했더라.

사막의 밤바람이 부러진 뼈마디를 속속들이 핥고 지나간 비오는 이제 상반신을 완전히 일으켜서 버티고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날개 따위 신경 끄렴.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던가?

-그냥 그대로, 꼭 안아 주면 돼.

그것이 뭐든 간에 자신이 가진 것을 주면 된다고, 아버지는 그랬던 것 같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56.

 


 

“베푸는 겁니다. 무엇이든 나눠 주는 거지요. 자기가 가진 거라면, 하다 못해 한 줌의 체온이라도 말입니다. 조각 내서 나눠 줄 수 없으니 그 순간 눈앞에 있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마음의 전부를 주는 것, 그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58.


 

한편 작품이 영 어덜트(Young Adult) 소설, 즉 성장소설이자 교양소설(입사식 교양소설)로서 정체성을 지니고 자리할 수 있는 성장에 대한 화두또한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익인들의 사회에서 성인이 되는 열여덟 살을 맞는 이행식은 굉장히 중요한 순간으로 다가오는데 루의 항의로 인한 지장의 내적 갈등과 변화 전까지 비오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작은 날개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열여덟살의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행식에 참석할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였다.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를 통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고 예속된다면 그것을 진정한 성장이라 볼 수 있을까?

2019년 대한민국의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성인들이 20-30대에 이르기까지 심리적,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심리적, 경제적 독립이 되어있지 않으니 완벽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이르기에도 어렵다. 주요 애착대상이었던 가족, 부모에게서 온전히 독립하여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혼자 비행하기 위한 독립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작품은 비오의 일화를 통해 이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비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지장이 지니는 문제의식과 비오의 정체성 확립은 익인들 모두와 비오의 성장에 주요하게 자리한다.

 


 

  우리는 열여덟 살을 맞이하는 해에 날을 정해 놓고 다 같이 모여서 이행식을 한단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일. 아이에서 어른으로 건너가는 날. 그 도약을 모두가 함께 축하하는 날. 그해에 열여덟 살을 맞이하는 사람이 비록 한두 명에 불과하더라도 그 날은 마을 전체의 축제일이란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한 해에 한 명은 꼭 있어. 많을 때는 아홉 명까지도 있었고 나 때는 세 명이었지. (중략) 사실 내게는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니었단다. 내 몸의 달맞이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했고, 그날의 축제는 나이를 한 살 다 먹는다는 의미일 뿐 사람의 인생에 어떤 경계나 구획이 명확히 그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축제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누구도 내가 다음에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지 않는데, 그 시간과 함께 아이의 껍질을 벗고 어른이 되었다고 선포하는 행위가 나한테는 새삼스럽게 여겨졌단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05-106.


“그 애는 아닙니다.”

“예?”

“비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올해 열여덟 살이 되긴 하지만 비오는 우리 안에서 온전한 어른으로 지낼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그런 비난에 가까운 폭언을 고스란히 받아 내면서도 비오의 앉은 자세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중략)

“……우리 비오라면서요.”

(중략)

“그래도 실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 전 제 얘기를 코로 들으셨나 봐요. 웅장하고 경직된 청사 안에서 아무도 저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숨 쉬는 것 말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입 밖에 낼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갈 수 있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없었어요. 제가 원해서 그곳으로 간 게 아닌데도요. 그런 저한테도 축복을 이야기하시고서, 이렇게 가까이 있는 비오에게는 이러실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28-130.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지나치게 잘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규격에 맞도록 어깨를 움츠린다는 게, 좋기만 한 일이었을까? 안 그래도 작은 날개가, 비오의 마음에 영향을 받아 더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더 크게 활짝 펼칠 자격이 없다 하면서.

지장은 비오에게서 어른이 될 권리를 빼앗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일인지에 대한 확신이 옅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초원조는…….”

졸고 있는 줄 알았던 옛사람이 문득 입을 열어 소리를 내자 지장은 고개를 들었다.

“아기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간에…… 생긴 그대로 품어 주었네.”

다른 사람들의 불안과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가, 생각보다 너무 길고 가혹한 대가가 되어 그 애에게 영원한 유목민 내지는 이주자의 낙인을 찍어버린 걸까. (중략)

“그러니 그 작은 날개로 어디까지 날겠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이제는 날 수 없는 몸으로 초원조의 부름을 기다리는 옛사람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나.”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45-147.


  비오는 그 전까지 형식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썼던 이행식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실은 자신이 이 문을 통과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얼룩의 자리를 옅은 기대감이 채워나갔다. 비오는 한 명의 당연한 익인이었다. 도대체 날개가 있는데 익인이 아니라면 뭐란 말일까?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87.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본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잊을 수 없다. 그 드라마의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현실을 비판하면서 결국 자녀의 인생이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핵심 메시지로 강조하고 있었다. 구병모 작가의 <버드 스트라이크> 또한 맥을 같이한다. ‘는 비오를 구하면서 자신이 지닌 힘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며 유영기 조종사의 직업을 선택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였고 비오는 어머니와 가족, 익인 사회의 품을 떠나 완벽한 독립을 위한 비행을 시작했다.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청년들의 가능성을 규정하지 않고 그들이 그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끔, 스스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10년간 오랜 사랑을 받은 구병모 작가의 등단작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선택과 ,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최신작 『버드 스트라이크』에서도 이 주제의 맥이 다른 언어와 서사로 그려진다. 루와 비오의 성장을 통해 다시금 청(소)년들에게 성장에 대한 자각을 촉구한 구병모 작가님에게 진실로 감사드리며 10주년을 축하하고 싶다.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선택하는 삶을 통한 성장에 대한 작품들을 더욱 오래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보며 차기작을 다시금 기다린다.

 

구병모, <버드스트라이크>,작가님 사인


 

엄마와 나를 그 집에 두고 먼저 떠난 비오가 원망스럽기도 해. 하지만 그것이 비오의 선택이라면, 존중해 주려고. 비오는 결코 원해서 그와 같은 몸을 하고 이 세상에 온 게 아니니까.

출발하기 전날까지 지장 어른을 비롯해서 아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오랫동안 인사를 나눴어. 그걸 보니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라는 걸, 일시적이며 기분 전환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완전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꼭 그렇게 우리 옆에서 멀어지고 홀로 되어야만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나아가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날아가고 싶은지……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 수 있는 거냐고, 마지막 날 밤까지도 나는 묻지 않았어.

아이들이란 언젠가는 부모를 떠나는 게 맞는 거라고 엄마가 허락한 걸, 내가 무슨 자격으로 따질 수 있겠어.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339-340.


by papyros 2019. 3. 30. 12:07

 

안녕달, 안녕, 창비,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창비출판사 측에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이젠 괜찮아…….”

그의 표정이 미묘해서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고맙소.”라고 말했다. 그날, 소시지 할아버지는 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소시지 할아버지는 이곳에 남게 되었다.

 

- 안녕달, 『안녕』, 창비, 2018, 236-255쪽.

 

 

 수박수영장 이라는 그림책으로 널리 알려지신 안녕달 작가님의 신작 그림책인, <안녕>이라는 그림책을 처음 접했다. 기실 글줄로 된 책에 너무도 익숙해진 터이고, 심지어 종종 즐겨 보는 만화책에조차 적당량의 대사가 담겨있기에, 유년시절 이후 대사가 적은 그림책은 퍽 낯설었다.

적당한 낯설음, 그리고 마치 눈오는 마을을 그린 듯한 표지의 감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적당한 기대를 지니고 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솔직히 당황했다. 그림책에 사람도, 동물도 아닌 웬 소시지? 소시지라는 대상의 의인화는 낯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품으로부터 느껴지는 온기가 마음에 스며들었다. 따뜻하고 사랑 많은 소시지 어머니의 자녀로 태어난 소시지씨가 유년시절을 거치고 늙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소시지씨가 어머니를 여의고 외로워할 때 그에게 한 곰인형과, 흰둥이 강아지가 찾아온 과정... 누군가를 잃고 소외된 소시지씨의 처지와, 다른 강아지들이 모두 분양되어 갈 때 떨이로 전락하고 말고 심지어 그냥 가져가라는 팻말이 붙은 흰둥이에게는 모두 공통적으로 버림 받은 듯한 감정, 외로움, 소외 라는 감정이 관통된다.

 

 무심하게 흰둥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지나가던 소시지씨가 흰둥이를 결국 데려가야만 했던 것도 흰둥이에게서 그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욱 놀라운 건 마지막 4장이었다. 3장에 그려진 소시지씨의 죽음 이후 홀로 남겨진 흰둥이의 행적들을 바로 소시지씨가 사후 지켜보고 있던 것이었다. 지난 겨울 관람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원더풀라이프> 라는 영화에서처럼, 죽음 이후 천국에서 자신의 삶에서 놓고 온 단 한 대상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이 그림책 4장에 그려진다. 소시지씨는 자신의 삶에 놓고 온, 보고 싶은 단 한 대상으로 그의 강아지 흰둥이를 택한다. 홀로 남겨진 흰둥이는 위험천만하게도, 언제 터져버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불꽃과 폭탄아이와 함께 다닌다.

 

 

 

 그러나 영상의 말미 불꽃에게 유리모자를 씌워주고 폭탄 아이의 날선 머리(폭탄의 심지부분)을 핥아주는 흰둥이를 보고, 소시지씨가 그제서야 걱정을 내려놓으며 이제 괜찮아를 언급할 수 있었던 데는, 세상에서 아무리 위험하다고 말하는 , 꺼려하는 그 어느 존재일지라도 그들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쓰다듬으며 옆에서 함께 있어줄 때만이 그 아픔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어머니를 잃은 소시지씨가 흰둥이와 곰인형으로부터 위로를 얻고, 모두에게 선택받지 못한 처치 곤란한 존재로 여겨지던 흰둥이가 자신을 거둬 준 소시지씨에게 사랑을 전해주었듯이.

 사랑을 받은 존재만이 또 다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이 그림책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한 권의 그림책이 때로는 300페이지의 여느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보다 더 함축적이고 의미있는 작품일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으며, 어린이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닌, 외로움을 느끼는 많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그림책이라고 여긴다.

 

 

 주변의 아파하는 이들, 소외된 이웃들, 외로움이나 불안을 느끼는 이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꼭 권하고 싶다.

 

 

 

 

 


 

by papyros 2018. 8. 11. 23:01

안재성, 『윤한봉 - 5.18 민주화운동 마지막수배자』, 창비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윤한봉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안재성, 윤한봉

성찬성은 그해 4월 유치장에서 만난 후배 윤한봉의 첫인상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 마주한 그이의 얼굴은 수척했었지만 다부지고 시국과는 무관하게 매우 희망적이었다. 전남대 수괴다운 비범한 풍모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만난 그 짧은 순간에 그이는 초면부지의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이의 진지한 모습은 당시 그이의 처지와 어울리지 않아 나는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좋은 세상이 올 테니 열심히 살자고 했다. 하지만 어디 그럴만한 세상이었던가?”

- 안재성, 윤한봉, 창비, P241.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학창시절 역사 수업시간을 통해, 그리고 여러 대중매체와 자료들을 통해 익히 들 어와 이미 어느 정도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 화려한 휴가를 어머니와 극장에서 보았고, 황석영 작가님의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후 대학에 진학한 이후 도서관 책장 한편에 자리한 그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나 20175, ‘윤한봉이라는 그 이름 석 자를 처음 들었고 내가 아는 역사는 극히 일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으로부터 12년이 지난 후 서울에서 태어난 나에게 그 사건은 역사적으로 무섭고 참담하게 받아들여진다. 도저히 발생해서는 안 될 사건이었고 그 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신 많은 분들의 안타까운, 있어서는 안 될 죽음에 대한 슬픔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에 저항하신 모든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공존한다. 그런데, 기실 그 존경심의 너머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맞서고 싸우고 투쟁해 지켜내고자 하신 광주의 시민 분들에 대한 영웅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자리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마치 일제 강점기 시절 많은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셨듯이.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가 일제 식민치하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이자 영웅으로 여겨지듯이 말이다.

그러나 합수(合水)로 불리는 윤한봉 선생님의 삶을 처음 마주하면서, 윤한봉이라는 한 사람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아가면서 이런 나의 생각이 참으로 일면만을 보는 것이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책을 읽으며 알아가게 된 윤한봉이라는 사람은 결코 영웅이 아니었다. 여기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분들이 영웅이 아니라니 당췌 무슨 이야기인가 의문을 던질 수 있는데, 분명 시대의 의인(義人)임이 분명하지만, 윤한봉을 비롯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당시,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참여적으로 연대한 그 청년들이 우리와는 다른 마치 유충렬이나 조웅과 같은- 고전소설 속 영웅들처럼 신이한 출생과 비범한 풍모를 지니며 적()을 물리쳐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그런  영웅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같이 그저 평범한 한 개인이었을 뿐이라는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독재자의 등장이 없었고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억압되고 짓눌리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윤한봉은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열사/투사가 아니라 그저 평화로이 강호에서 자연을 벗하며 삶의 깨달음을 글로 옮기는 시인이 되어 한국 문단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 독재정치의 그늘이 그저 지금의 나와 같은, 한 청년이 꿈꾸고 미래를 그려나갈 기회를 송두리째 빼앗아 버린 것이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후배 최권행은 윤하농 안에는 시인이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는 윤한봉이 시적 열정으로 가득했고, 막힘없는 묘사와 구수한 달변, 유머, 역사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최권행의 말대로 윤한봉 안에는 시인이 들어 있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지 않았다면 풍요로운 강진 땅에서 목장을 하며 바다와 산을 시로 그렸을 것이다. 개인적 사색에 빠질 마음의 여유가 없던 바쁜 와중에도 그는 고통스럽게 살다 간 이 땅의 민초를 그린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미국에서 쓴 세월의 의미라는 시도 그중 하나다.

- 안재성, 합수,윤한봉, 창비, P272.

 당대 독재정권은 희생된 이들 뿐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이 그저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 또한 앗아버렸다는 점에서 평생을 속죄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윤한봉이 평범한 개인들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윤한봉은 다른 이들이 쉬이 가질 수 없는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순결하여 하얀 별과 같고 따뜻하여 봄 햇살과도 같아 우리는 그를 삶의 나침반이자 소외된 이들의 벗이라 일컬었으나 그는 다만 자신을 합수(合水)라 불리기를 바랐다.’ 그의 별명 합수(合水)란 두 줄기 끈이 합쳐진다는 뜻으로, 호남 지방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의 똥과 오줌이 합쳐진 똥거름을 말한다. 역사와 민중을 위해 인생을 바쳤노라고 말하는 이들은 많지만, 명예도 지위도 돈도 모두 마다하고 스스로 퇴비가 된 이는 드물다. 윤한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 안재성, 책머리에,윤한봉, 창비, P7.

 

 심인보만이 아니라 윤한봉과 오래 활동한 사람일수록 그의 인본주의적 민중운동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한다. 실제 생활에서도 그랬다. 그가 민족학교에서 맡은 직함은 심부름꾼인 소사(小使)였다. 그리고 진실로 소사처럼 살았다.

 비난의 표적이 된 초창기의 민족학교에는 반년이 되도록 찾아오는 이 하나 없었다. 그래도 윤한봉은 손에서 걸레를 놓지 않았다. 문틈이고 창틀이고 닦고 또 닦아 먼지가 앉을 틈이 없었다. 민족학교가 세 든 건물 주위에는 담배꽁초나 종잇조각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바닥에 물걸레질할 때는 꼭 무릎을 끓고 앉아 양손으로 걸레를 밀고 다녔다. 나선 사람이 본다면 생김새며 옷차림이며 하는 짓이 영락없는 청소부요 학교 소사였다.

- 안재성, 고립,윤한봉, 창비, P86-87.

민족학교 창립 반년이 지나면서 청년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일단 윤한봉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청년들은 그에게 빠져들었다. 권력욕도 전혀 없고 궈위적이지도 않은 솔직한 성품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운동권 선배 중에는 좀처럼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빙글빙글 웃으며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만 하면서 실제로는 상대방을 떠보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들이 있었다. 무슨 일에서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상대방을 지도하려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윤한봉은 상대방을 이용해 먹으려는 정치적인 태도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자세라고는 전혀 없었다.

- 안재성, 고립,윤한봉, 창비, P94-95.

 

 윤한봉의 성품, 인격에 대한 서술은 여러 사람들의 입을 거쳐 증언된다.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그 사람을 보아 온 이들보다 윤한봉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이러한 윤한봉의 성품과 인격을 통틀어, 윤한봉이야말로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권위나 지위를 내세우기보다 낮은 자리를 자처해 오로지 희생하고 헌신을 통해 봉사하는 모습, 사실은 민족학교의 교장이라 할 만함에도 불구하고 소사(小使)의 역할을 자처하며 실제로 소사처럼 먼저 나서 낮은 자리에서 겸손된 모습으로 봉사하며 인격적 모범을 보이는 모습, 그리고 특히 소수자와 약자로 향하는 이타주의의 덕목까지 모두 그가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면들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이태석신부님께서 갖추고 있었던 그 성품과 풍모가 윤한봉에게서도 느껴졌다. 자연히 그가 한국의 예수로 불리었다는 이유에 대해서도 짐작이 갔다. 대표적인 서번트 리더가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간관을 가진 사람이 올바른 대중관을 가질 수 있어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올바른 인간관이란 무엇이냐? 인간은 존엄하다. 피부의 색깔이 어떻든, 몸매가 뚱뚱하든, 빼빼하든, 작든 크든, 지체의 부자유자든 아니든, 배웠든 안 배웠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관계없이! 무당이건 똥 푸는 사람이건 시체 화장하는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늙어서 추해진 노인들이건 똥만 내지르는 갓난애건 모든 인간은 위대한 것이고 존엄한 것이다! 만물 중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창조적이고 의식적인 우수한 생명체다! 이런 인간관을 토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 중에서도 서럽고 쓰라린 생활을 하는 민중들, 그들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이 생기는 거죠. 여러 손가락 중에 가장 아픈 손가락에 신경을 더 많이 쓰듯이, 어머니가 제일 못한 자식한테 애정을 쏟듯이! 올바른 인간관에서 올바른 대중관이 나오고 올바른 대중관에서 올바른 대중노선이 관철되고, 올바른 대중노선이 관철될 때만이 올바른 대중운동이 되는 거예요!”

- 안재성, 돌쇠와 곰바우들,윤한봉, 창비, P103-104.

 참담하고 서러운 광주의 한복판에서 시민들의 뜻을 따라 미국으로 도주한 이후 윤한봉은 단 한 번도 그의 가치관과 태도를 저버리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민족학교를 통한 한청련 조직 뿐 아니라 문화운동, 인권에 대한 강조, 나눔에 기초한 대동정신 등....... 특히 당장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곳에서 끊임없이 통일 조국에 대한 이상을 그리며 그에 대한 준비도 지속해 온 바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많은 청년들과 재야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 독재에 맞섰다면 윤한봉은 후방에서 비록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묵묵히 소임을 다하며 독재에 맞서온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귀국한 윤한봉이 본 대한민국 사회 역시 결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귀국 후 나는 변화된 조국 사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엄청나게 돈이 많은 사회, 그러나 정신도 혼도 원칙도 질서도 없고 꿈도 감동도 없는 사회, 악독하고 살벌한 사회, 허세와 과시와 쾌락이 넘치는 사회…… 사람의 생명은 별것이 아닌 사회가 되어버렸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2-343.

 

차별보다는 화평을 추구하고 작은 다름보다는 큰 같음을 추구하는 정신,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정신, 세상 사람을 다 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정신인 대동정신이 대동단결과 도덕적 항쟁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7.

 

특히 시민운동 쪽에서 대동정신을 등한시해요. 삶의 문제, 빈곤의 문제, 실업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 차상위층이라든지 하는 문제들을 등한시해요. () 우리가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 해도 세계 15위 안에 듭니다. 엄청난 부자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서 엄청나게 갈라지기 시작하는 거죠. 비정규직 비율이 호주 스페인 한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높습니다. 이 황당한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으로 대동정신을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대동세상이란 화평한 세상이고, 평화의 핵심은 나눠 먹는 것이며, 모든 부당한 것에 대해 저항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윤한봉의 견해였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8.

 

 윤한봉이 귀국한 것이 1993년이라고 한다. 24년이라는 시간동안 분명 2017년의 대한민국의 경제적 측면은 눈부시게 발전해 IT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이 아닌 사회의 건강성이나 도덕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하지 않았나 싶다. 행정부 수반의 권력 남용, 검찰이나 국회의원의 부정부패 등은 모두 윤한봉이 말한 대동정신의 가치를 따르지 못한 채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찍으며 사회에서 배제하고 자기 자신의 권력욕과 물질에 대한 탐욕을 채워가려는 이기주의, 금권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라 여겨진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데 합수 형님은 통일운동가가가 아니라니까요. 그분은 소수와 약자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우리는 어디를 가더라도 거기에 있는 소수와 약자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만약에 그런 날은 안 오겠지만 만약에 한반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미국에서 코리안이 다수가 되고 백인이 소수가 되면 여기서 백인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된다고 했어요. 우리는 죽어서도 어딜 가든지 소수와 약자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거였거든요.”

- 안재성, 신노선,윤한봉, 창비, P319.

 

 2017년 봄, 행정부의 수반이 새로 선출되어 내각이 다시 구성되면서 우리 사회도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정치인, 법조인, 교육자 등 리더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윤한봉이 지니고 있던 서번트 리더십의 태도를 닮아 모범을 보이며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정의와 배려를 우선에 두는 정책들이 마련된다면, 언론들이, 그리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을 수호하고 부당한 것을 비판하며 끊임없이 사회의 방향을 점검한다면 또 다른 괴물들이 나타나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당한 정권과 비정상적인 사회, 이기적인 개인들에 의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희생된 이들이 꿈꾸던 세상을, 그들 한 명한명이 지니고 개인적인 꿈을 늘 기억하고 그들이 지니고 있던 가치와 태도를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 해 날 때 비정상적인 사회의 4.19, 민청학련 사건, 5.18을 지나 4.16에 이르기까지,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고 그려내며 추모할 때 우리 사회도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그리고 김탁환 작가님의 거짓말이다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4.16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려내는 작업이라면, 이 책이 황석영 작가님의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함께 5.18, 그리고 윤한봉과 더불어 5.18을 겪고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많은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려내는 책으로 오래도록 함께 읽혔으면 한다.

 

가장 무서운 이들이 사람이라고 하지만 결국 김탁환 선생님의 소설 제목처럼, 아름다운 그이 또한 사람이기에, 사람들 안에서 받은 상처는 사람들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

아름다운 그 이, 윤한봉을 만나 의미있는 20175월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걸은 적이 있었기에 이 행성은 아름답다."

진정 윤한봉 같은 사람이 있기에 인간의 바다는 썩지 않고 살아 숨 쉬는 것이리라.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75.

 

 

 

 

by papyros 2017. 5. 31. 11:35

최강욱, 정치의 시대 -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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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정치의 시대 소책자 사전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중략)

유일하게 주권자인 국민에게만 권력을 딱 한 번 쓴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헌법이 권력이 가지고 있는 속성, 본질에 대해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헌법의 정의대로라면 주권자가 인정하지 않는 권력은 권력이 아닌 셈입니다. 권력은 주권자에게만 있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떻습니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헌법이 그 사실을 보장하고 있다는 게 의외라고 여겨질 정도로 헌법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고, 오남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법에서 규정한 권력에서 크게 벗어나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그들을 옹호하는 구체적인 판결을 예로 들 것도 없습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6-7.

 

나는 고등학생 때 수능 사회탐구 선택과목 중 하나로 법과 정치를 공부하고, 대학 신입생 때 법학과 전공기초 과목인 법학개론을 수강했을 정도로 -심지어 법학과를 부전공하고자 했다. 물론 심리학 복수전공과 교직수업의 방대함으로 인해 취소하고 말았지만- 법학이나 정치 등 사회의 정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다소간의 관심을 가져온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의 대한민국을 지켜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행정부 수반이 주체적으로 자기 몫을 하지 못하고 한 개인에 의존하는 모습, 심각한 정경유착 등이 공개되고 난 후 충격을 금치 못했다. 물론 정치인이나 법조인들의 관행이나 관습,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해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암흑기(독재정치)를 역사책으로 공부한 내게 있어 행정부의 수반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심각성이 피부로 와 닿았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는 유독 정치인들에 특히 국정운영의 중심을 이루는 행정부의 수반(대통령)-대한 국민(책에서 인민이라는 단어의 필요성에 대해 더 명확히 나오지만, 편의상 국민으로 통칭한다.) 들의 기대가 높은 편이다. 이게 나라냐는 자조 섞인 질문 또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헌법 제 1조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듯 보이는 국가. 사리사욕에 앞서 국민들을 우선하지 않는 국가.

많은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며 매우 추운 겨울을 견디어 올해 초 헌재의 탄핵가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이 책의 제목을 질문으로 던져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최강욱 변호사)는 첫 페이지에서부터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 이는 한국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탓이다. 실망스러울지 모르나 생각을 전환시켜 본다면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가 변화된다면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법의 두 축인 검찰법원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제시한다. 두 조직 모두 위계질서에 따른 서열화가 핵심 문제로 등장한다. 우선 검찰의 경우, 검사들이 지니고 있는 막강한 권력인 기소권이 이와 관련해 쟁점이 되는데 이 기소권의 행사에 있어 대상에 따라 기준이 바뀌거나 검찰 조직 내부의 윗사람(검사장 등)의 개입이나 압력에 의해 검사 개인의 법적 판단이 침해 될 수 있다. 법원(사법부)의 경우 법관들의 임명에 있어서, 특히 대법관의 임명에 있어서 여당과 야당, 그리고 여야합의에 의해 선출하는 방식이 적용되고 있는 만큼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고려가 이미 선출에 있어 고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두 조직 모두 서열화문제는 심각한데 가령 성적이 좋지 못하거나 윗선의 눈 밖에 나게 되면 서울중앙지검에 다시 돌아오지 못해 검사로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승진의 기회가 막혀버리며 판사(법관)의 경우에도 초기 발령을 성적순에 따라 획일적으로 배치할 뿐 아니라, 고등법원 부장판사라는 요직에 승진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뒤따른다.

이렇듯 저자가 지적한 법조계의 문제는 몇 달 전 읽었던 김두식 선생님의 불멸의 신성가족의 화두와도 정확히 일치했다. 국민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법조인들이 소수의 국민들에게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점, 그리고 정치인 뿐 아니라 판사나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지나치게 신성화 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특히 성적이나 조직 내 순위에 의해 서열화 되어 같은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차별을 두는 것은 그 권력과 권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신성화작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과 일부 판사들은 정의의 여신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눈을 떠서 당사자의 사정을 세세하게 살피고 헤아리며, 그런 후에 저울에 달아서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판단을 해보다가, 그래도 부족하면 책을 펼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정확한 판결을 내린다.

(중략)

대다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당사자의 신분과 지위를 확인해서 봐줄 사람인가 아닌가를 식별한 후에 형식적으로 저울에 다는 척을 하다가, 손에 든 장부를 보고 나에게 뭘 갖다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다음 심판한다.

어떻습니까? 후자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릴 듯한데, 바로 이 점이 대한민국 사법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21-22.

 

 

 

검경 조직이 자신의 법적인 양심에 따라 기소권을 행사하고, 법원이 약자들의 편에서 공정한 재판을 가할 때, 즉 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올 때 비로소 판사로서, 그리고 검사로서 이상적 모범이 되는 법조인들이 증가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법조계 내부의 자성적 기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기에, 사법 조직 개혁을 단행하려면 행정부나 국회 등 정치권의 문제의식이 자리해야하며, 법조계와 이해관계가 없는 인물이 개혁을 진행해야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조국교수의 민정수석 임명은 첫 단추가 잘 꿰매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절차와 행정절차의 관계를 재정립해 나가고자 하는 데 그 방향을 지니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개혁이 다시금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갈등과 충돌에 있어 국민들의 건전한 법 상식을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과 법조인의 유착과 정경유착 등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교육현실에서 해결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겠다. 법조인들은 학창시절 성적이 뛰어나 모범생’, ‘우등생으로 불리는 이들이었고,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부의 서열화가 자행되어 있어 우수한 인재로 상급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즉 학창시절 우등생으로서 급우들을 통제하는 한편 교사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저 당연히 해야 될 것이기에, 명령을 따라야 인정받을 수 있기에 그 어떤 비판의식 없이 상급자(대통령, 검사장, 부장판사 등)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제 2의 아이히만을 양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다. 때문에 법조인들이나 정치인들의 그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고자 할 때 이를 제어하고 비판할 수 있는 국민들의 시선, 그리고 법조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나와는 멀리 있는저 너머의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 법적 도움을 제공하는 조력자일 뿐이며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신성화의 해체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서열화되어 있으며 획일화된 학벌위주의 교육 현실을 바로잡고 대학진학 및 직업 선택에 있어 특정 직업군의 이들이 지나치게 신성화되지 않고 고유한 직업윤리를 지닐 수 있도록 윤리 및 가치관교육, 직업의식, 그리고 교육 평준화가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목고나 자사고 등 학습자 간 교육 격차를 확대할 수 있는 학교들의 폐지 또는 전환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단적으로 의사 면허는 합법적 살인 면허라는 한 의대생의 발언은 특정 직업을 신성화하며 특권화 해 온 우리 사회의 부정적 단면이라 하겠다. 서열화를 통해 학습자들을 줄 세우고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유하고 토론하고 논의하여 나와 다른 의견과 생각, 가치를 지니고 있는 타자의 의견을 조화롭게 반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문화를 변화시켜 나갈 때 법조계와 정치계의 문제도 해결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법이 정치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기보다 정치를 통해 올바른 법이 만들어지고, 법을 집행하거나 법을 통해 판단하는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주권자의 입장에서 가장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올바른 정치는 주권자의 뜻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법은 당연히 정치의 아래에 놓여야 하지요.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법이 올바로 만들어지고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주권자에겐 일종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111.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by papyros 2017. 5. 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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