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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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을 챙긴다는 건 힘든 일이다. 사실 감정이입이란 게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피곤할 수밖에 없다. 감정이입을 하려면 모든 사람의 삶도 끊임없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모든 걸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워지더라도 정지 버튼을 누를 방법이 없지만 생각해보면 남들도 마찬가지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245쪽.

 


 

지난 2018년 4월, 나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신간 <배어타운>을 그 누구보다 먼저 접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다산북스의 <베어타운> 신간 서평단에 참여해 먼저 가제본 도서를 접하고 서평을 남겼으니 말이다.

(베어타운 서평 링크 : https://pedagogics.tistory.com/110 2018.4.17 작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베어타운>이라는 작품이 내게 너무나 완벽한 명작이었으니까. 마치 완벽하고 깔끔한 결말이었던 토이스토리3에 이어 2019년에 토이스토리4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와 당신들>은 서평단에 참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다가 출간일이 조금 지난 후에야 소식을 접하고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상에 치여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베어타운>의 뒷야이가를 담고있는 이 책의 서사가 너무나 기대되어 언제 읽을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다가 이번 독서모임을 통해 읽게 되었다.

<우리와 당신들> 책을 완독한 후, 베어타운을 읽었던 당시의 서평을 조금 살펴보았다. <베어타운>에서도 그러했듯 나는  <우리와 당신들>의 강점 또한 인물들의 서사가 충분히 제시된 점이라 여긴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둘러싼 문제가 복잡해지는 이유도 우리가 대부분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407.

 


 

 작품 속 위 문장에 정말 많은 공감이 되었던 것이, 나는 처음 우리와 당신들을 읽으며 '그 일당'을 악인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티무 리니우스를 둘러싼 그 일당, 그리고 그의 동생 비다르. 그들이 더욱 자세히 소개되기 전만해도 베어타운의 분위기를 흐리는 악역이겠거니, 페테르의 구단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겠거니 생각했지만 이러한 나의 오해가 부끄럽게도, 티무와 비다르를 포함한 '그 일당'이라고 불리는 인물들 모두 그저 베어타운을, 그리고 베어타운의 하키구단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일 뿐이었다. 특히 비다르에 대해선 폭력적인 아이를 어떻게 골키퍼로 영입할 수 있는지, 사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경악했는데 뒷부분에 등장한 티무와 비다르 - 리니우스 형제-의 서사를 보면서 나의 짧은 생각에 많은 반성을 하기도 했다. 동전에도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것처럼 완벽히 좋은 사람도, 완벽히 나쁜 사람도 없고 사람은 누구나 좋은 모습과 나쁜 모습 - '선과 악'이 그 내면에 공존하고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악한 모습만으로 쉽게 낙인을 찍고 있었다. 프레드릭 베크만은 작품 내내 계속 이 지점을 경계하게 한다. 리니우스 형제가 '그 일당'에 속해있고 폭력을 쉽게 행사할지언정 그들은 지켜야 할 어머니가 있으며 나보다도 더 아껴야만 하는 형제가 있다.

 


 티무 리니우스는 지금도 어머니와 함께 산다. 경찰에서는 그가 불법적인 수입으로 자기 소유의 집을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추측하고 그는 다들 그렇게 믿도록 내버려둔다. 진짜 이유는 어머니를 두고 혼자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숫자를 셀 사람이 필요하다. (중략) 리니우스 형제를 두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이 학교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과목은 수학이었다. 그들은 평생 숫자를 세며 지내왔다. 화장실에 있는 벽에 약이 몇 알 남았나, 엄마가 몇 시간째 자고 있나. 비다르가 체포되어 끌려갔을 때 그 임무를 티무 혼자 떠맡게 됐다. 막내아들이 교화 시설에 수감되자 그들의 어머니는 더 오래, 더 깊게 잠만 자고 싶어 했기 때문에 숫자를 세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비다르가 어떤 짓을 저지르더라도 그녀에게는 항상 어린 꼬맹이였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30-331쪽.

 


 질투심에 눈이 멀어보였던 헤드의 선수 빌리암 뤼트도, 심지어는 정말이지 가장 옹호하기 힘든 인물로서 마야에게 성폭행을 저지르는 범죄를 저지른 케빈 에르달도, 모두 악해보이는 모습 이면에 자기 내면에 고통을 겪고 있었고 각각 고유한 서사가 존재했다.  겉으로는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인물들 각기 나름의 서사가 하나하나 등장하면서 <우리와 당신들>이라는 이 소설은 갈수록 더욱 풍부해졌다고 여긴다.

 

 특히 모든 아이들의 공통점이, 그들이 아무리 폭력을 저지르고 악한 행동을 할 지언정 그들이 최악의 극단으로 빠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사랑하는 '누군가'가 자리했다는 점이다. 심리학적 용어로 이를 '인적 자원'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 모두에게는 각기 나름의 인적자원이 존재했다.

 벤이가 폭력적 성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큰 누나인 아드리를 포함해 누나들과 어머니의 영향이었고, 벤이는 그들의 사랑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내가 이겨. 왜냐하면 불공평한 싸움이거든. 벤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니까.”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141.

 


 마야와 레오가 그들의 고통과 성장통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좌절하지 않은 것은 늘 그들을 사랑하고 바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페테르와 미라'라는 부모님에 더해 그들이 나쁜 방향으로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수네, 라모나, 예아네테, 사켈 같은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제 열여섯 살이다. 그녀의 아빠는 그녀의 방문 앞에 서 있지만 너무 소심해서 문을 두드리지도 못한다. 그는 어렸을 때 그녀를 말랭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하키를 절대 좋아한 적이 없었기에 그녀가 기타와 사랑에 빠지자 차고에서 같이 연주를 할 수 있게 그가 드럼을 배웠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27쪽.


 티무, 비다르, 스니칸, 스핀델이 소속된 '그 일당'은 각기 검은 재킷을 입은 그 일당에 소속된 그들의 사랑하는 형제들을 지켜내야 할 책임과 의무, 신뢰와 의리가 존재했고 그들이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인 스탠딩석을 함께 지켜내야만 했다.

아나에게는 비록 음주에 쉽게 빠지고 폭력적 행동을 보일때가 많은 - 나쁜 면을 보일 때가 많은 - 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그 내면에 선한 면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지켜야 할 아버지가 있었다.


"너하고 나는 남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잖니."

(중략)

그녀는 항상 아빠를 사랑했다. 아빠가 우울해할 때도 그랬다. 어쩌면 그는 속으로는 항상 우울했을지 모른다. 엄마가 떠나서 그가 우울해진 건지 아니면 그가 우울해해서 엄마가 떠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가슴 한가운데 우울을 담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부엌에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며 눈물을 흘렸고 아나는 그런 그가 안쓰러웠다. 술에 취했을 때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녀는 자신에게 좋은 아빠와 나쁜 아빠, 이렇게 두 명의 아빠가 있다고 여기고, 나쁜 아빠가 외출하면 다음날 아침에 좋은 아빠가 그 몸을 온전하게 쓸 수 있도록 다치지 않게 관리하는 걸 그녀의 임무로 삼았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75-376쪽.


보보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고, 아맛에게는 어머니와 그의 친구들이 있었다. 특히 아맛은 정말 세상 그 어디와도 바꿀 수 없는 친구들을 두었다는 점에서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할로출신이라는 열등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친구들..

페테르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과 멘토 수네와 라모나, 그리고 절친한 친구 프락이 있었다.

 심지어는 성폭행을 저지른 케빈에게도 범죄자가 된 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마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라모나는 이곳을 들락거린 상처받기 쉬운 영혼들을 보았다. 새로 출발한 사람도 있고 주저앉은 사람도 이다. 일이 잘 풀린 사람도 있고 알란 오비크처럼 숲속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다. 라모나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기에 일이 잘 풀리더라도 뛸 듯이 기뻐하지 않고 일이 안 풀리더라도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금 같은 가을에 하키단을 두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기가 얼마나 쉬운지도 안다. 스포츠는 현실이 아니고 현실이 지옥 같으면 동화 같은 이야기가 필요해진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모든 게 좋은 쪽으로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30-331쪽.

 


 

 그들의 하키팀에서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라고, 혹은 너무나 폭력적인 미친 아이라고 다양한 이유로 학교나 스포츠팀에서 낙인찍어지고 배제된 아이들이언정 그들에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던져서라도 지켜내야 할 만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그들은 쉽게 삶을 내던지거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벤이가 아나로 인해 그의 성 정체성이 액팅아웃 되는 끔찍한 사건을 겪고서도 끝까지 A팀 주장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켜야 할 가족들과 베어타운 하키팀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 때문이었다.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유롭지 않지, 벤이. 네가 두려워하는 이유가 그거야."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289쪽.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겠어?"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206쪽.

 

  결국 이 작품의 중요한 두 키워드가 있다면 '책임감'과 '사랑'(우정, 신뢰, 믿음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랑.)  이라고 여긴다. 케빈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인 마야에 대한 성폭행은 벤이와 마야 모두에게 절대 용서받을 수 행위인 반면,  벤이의 성 정체성을 액팅 아웃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아나가 용서받을 수 있었던 점은 바로 케빈은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도, 주변인들에 대한 사랑도 보여주지 않았던 반면(실제로 그는 그의 친구라고 여겼던 벤이에게는 용서를 구했을지언정, 성폭행 피해 당사자인 마야에게는 용서를 구하지 않앗다.) 아나는 벤이와 마야에 대한 죄책감을 온몸과 마음으로 표현했고, 그들에게 전달했다. 그 누구보다 아나 스스로가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맞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다했기에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티무에게도 '그 일당' 형제들을 반드시 지켜내야한다는 책임감과 사랑이 있었기에 폭력을 불사했던 것이고, 벤이가 소설의 결말부에 이를 때 시합에서 그 일당들이 헤드 응원단에게 행하고자 했던 폭력을 막아서며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 것도 벤이의 팀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과 사랑 때문이었다.

작중에서 보보가 동생들에게 읽어주는 책으로 '해리포터'가 계속 언급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해리포터와 볼드모트(톰 마볼로 리들)의 삶이 매우 유사하면서도(고아로 유년기를 보낸 후, 뒤늦게 마법세계를 알게 된 점 등) 그들의 인격과 가치는 매우 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해리 포터는 부모님의 희생(사랑)이 뒷받침 되었으며 친구들과의 우정을 통해 '사랑할 줄 아는 마법사'였으나, 볼드모트는 그 태생 자체가 사랑의 묘약(인위적인 사랑)에 의해 태어났으며 끝까지 그 누구도 사랑할 줄 모르는 점에서 두 인물의 삶이 극과 극으로 달랐던 것을 고려한다면 왜 이 작품에 그토록 해리포터가 언급되는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다음번에 어떤 아이가 자기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렇게 반문해야지. '그래서 뭐?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지 않나?' 그러면 어느 날 동성애 하키 선수와 여자 코치가 없어질지 몰라. 그냥 하키 선수와 코치만 남을지 몰라."

"이 사회가 그렇게 간단치 않으니까 그렇죠." 페테르가 얘기한다.

"이 사회? 우리가 바로 사회잖아!" 수네가 대꾸한다.

(중략)

"나는 한심한 늙은이다, 페테르. 나는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잘 몰라. 하지만 벤야민은 오래전부터 아이스링크 밖에서 수많은 사고를 쳤지. 싸움을 벌이고 약에 취하고 또 뭐가 있을지 아무도 몰라. 하지만 워낙 훌륭한 선수라 너도 그렇고 다들 매번 이렇게 얘기했잖아. '그건 하키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그런데 왜 이건 하키하고 상관이 있어야 하니? 그 아이 마음대로 살게 내버려둬. 간판이 되도록 강요하지 말고. 우리가 그 아이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불편하다면 문제가 있는 쪽은 그 아이가 아니라 우리야!"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410-411쪽.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사랑할 줄 모르는, 그 무엇도 사랑할 줄 모르며 사랑받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지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차별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그의 성 정체성이 어떻건, 사회적 배경이나 출신지역이 어떻건 (할로 출신이든, 베어타운 출신이든, 헤드 출신이든 실력만 있으면 그만 아닌가!) , 여자 코치이건, 남자 코치이건,  일부 요소들이 결코 그들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마치 수학을 좀 못 한다고 해서 공부를 전혀 못하는 게 아닌 것처럼.

(학부 시절 존경하는 심리학 교수님께 들은 내용이었던 것 같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단점이나 결핍은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니지만 나의 일부인 거라고.)

 

여러 사회적 이슈와 인간 내면과 본성에 대한 문제,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어색하지 않게, 아니 심지어 문학작품 - 소설이라는 매체에 너무나 잘 녹여 인간 내면과 감정, 사회, 개개인의 역할까지 다룬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 이 두 작품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하지만, 프레드릭 베크만은 그의 작품을 오래, 많이 보고싶은 작가 중 한명으로 남는다.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되는 바이며 '차별'이라는 이슈나 '인권감수성'에 관심있는 분들(독자들),  '청소년', 청소년과 관련있는 어른들' , 정치인 등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by papyros 2020. 1. 31. 2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