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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고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민음사, P331)
페르미나 다사에 대한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은 언뜻 낭만적으로 보인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사랑하는 이와 함께 떠나는 선상 여행이 어찌 행복하고 달콤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낭만적이고 행복한 결말일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사랑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별로 그렇지만은 못한 것 같다.
사실, 플로렌티노 수십년의 세월 동안 페르미나 한 사람을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고 동의하기 힘든 부분은 그가 페르미나와의 사랑을 이루기 전에 수없이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그가 페르미나에 대한 사랑을 내면 깊은 곳에서는 지켰다고 할지 몰라도 그의 행동으로 인해 페르미나 다사가 느낄 감정이나 기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숙고한다면 지양해야 할 행동이다. 뿐만 아니라 페르미나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관계를 맺은 여인들은 단지 플로렌티노의 애정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는 수단에 불과했다. 여인들로서는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고되고 힘든 삶을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서 위로받고 자존감을 얻었을 터인데, 플로렌티노는 여인들을 단지 수단으로서만 바라보았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올림피아 술레타와의 관계였는데, 플로렌티노가 그녀의 배에 남긴 ‘This is Mine’이라는 표식 때문에 술래타는 남편으로부터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살해되고 마는 사건이다. 한 여인을 사랑한다면서 다른 여인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리고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위해 다른 여인들은 모두 수단으로서만 바라보는 것 두 측면 모두 과연 합리화 될 수 있는 것일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페르미나 다사 또한 건강한 사랑을 하지 못했음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애초에 젊은 시절 한 때 나마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던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결별을 선언한 이유는, 아버지 로렌소 다사로부터의 압력을 제외한다면 단지 그에게서 느껴지는 순간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고, 자기 눈에서 두 뼘 정도 떨어진 곳에서 차가운 눈과 창백한 얼굴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굳어진 입술을 보았다. 그와 처음으로 가까이 있었던 자정미사의 군중 틈에서 보았던 모습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당시와는 달리 사랑의 감동이 아닌 환멸의 심연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런 망상을 키워왔는지 모르겠다고 놀란 마음으로 자문했다.’ (민음사, P181)
물론 아버지가 둘의 사랑에 미치는 압력은 어쩔 수 없었다 해도, 결별에 대한 제대로 된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은 채 단지 순간적인 느낌만으로 사랑을 저버린다는 것은 플로렌티노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또한 페르미나는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그림자’와 같다고 표현한 바 있는데, 결국 페르미나를 사랑하지만 먼발치서 바라보기만 하며 기다리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한 것도 진실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의사로서 상류층의 지위를 누리는 데다인,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즉 플로렌티노 아리사, 페르미나 다사의 사랑 모두 진실하고 건강한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에 두 남녀 주인공 모두의 가치관이나 감정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물론 저자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소설에 담아내고자 했던 부분이 19세기 말 사회를 지배하던 그리스도교 사상에 의한 제도적 억압, 결혼제도에 의해 개인의 욕망이 억압되는 측면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나 사회를 불문하고 역사적으로 제도와 개인의 욕망 사이의 갈등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왔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와 <구운몽> 또한 유교 윤리의 억압적 측면과 사대부의 욕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점이 단적인 예이다. 페르미나 다사를 둘러싼 그리스도교 사상 하의 결혼제도, 그리고 상류계급의 욕망. 결국 개인의 욕망에 대한 제도적 억압을 심화시키는 것은 사회에 속한 인간들 자신인 것 같다. 플로렌티노가 조금이라도 자신이 관계를 맺는 여인들을 배려하고 신중했더라면 술래타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고 그리고 페르미나 다사가 사회적 권력이나 신분에 예속되지 않았더라면 우르비노와의 사랑 없는 결혼생활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진실로 중요한 것은 종교나 사회 제도로부터의 억압보다도,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아닌가 싶다. 감각적 쾌락이나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을 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국 제도의 억압을 심화시키고 다시 자신을 예속 시킬 뿐이다. 즉 자신의 가치관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인 것 같다. 작품 안에서 노년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온갖 시련과 갈등 속에서도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배려하여 오랜 시간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콜레라의 위험이 닥치고 있는 혼돈의 시대에서, 지나치게 빨리 전염되는 콜레라 같은 사랑. 이는 결국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없는 사랑은 그 위험이 치명적인 콜레라와 같음을 역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통해 똑같이 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즉 다른 방식으로는 함께 살 수도 서로 사랑할 수도 없으며, 이 세상에 사랑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민음사, P110)
-콜레라 시대의 사랑. 명작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읽으면서 크게 공감이 되지 않는 책이었다. 아직 내 자신이 경험적으로 미숙한 바가 큰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면 더 많은 부분이 공감되고 이해가 잘 되는 책이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물론 이는 변명일 수밖에 없겠고, 필자의 부족함 탓에 작품에 대해 오독을 했을 여지가 있으니 널리 이해 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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