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졸업
김사인
선생님 저는 작은 지팡이나 구해서
호그와트로 갈까 해요.
아 좋은 생각.
그것도 좋겠구나.
서울역 플랫폼 3과 1/4 홈에서 옛 기차를 타렴.
가방에는 장난감과 잠옷과 시집을 담고
부지런한 부엉이와 안짱다리 고양이를 데리고
호그와트로 가거라 울지 말고
가서 마법을 배워라.
나이가 좀 많겠다만 입학이야 안되겠니.
이곳은 모두 머글들
숨 막히는 이모와 이모부들
고시원 볕 안 드는 쪽방 뒤로
한 블록만 삐끗하면 달려드는 '죽음을 먹는 자들'.
그래 가거라
인자한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과 주근깨 친구들
목이 달랑달랑거리지만 늘 유쾌한 유령들이 사는 곳.
빗자루 타는 법과 초급 변신술을 떼고 나면, 배고프지 않
는 약초 욕먹어도 슬퍼지지 않는 약초 분노에 눈 뒤집히지
않는 약초를 배우거라. 학자금 융자 없애는 마법 알바 시급
올리는 마법 오르는 보증금 막는 마법을 익히거라. 투명 망
또도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그곳이라고 먹고살 걱정 없을까마는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저 흑마술을 잘 막아야 한다.
그때마다 선량한 사냥터지기 해그리드 아저씨를 생각
하렴.
나도 따라가 약초밭 돌보는 심술 첨지라도 되고 싶구나.
머리 셋 달린 괴물의 방을 지나
현자의 돌에 닿을 때까지,
부디 건투를 빈다
불사조기사단 만세!
김사인 / 『어린 당나귀 곁에서』中 , 詩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