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문장읽기 4주차 - 「삼포 가는 길, 객지客地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11월의 넷째 주, 단편집돼지꿈의 마지막에 수록된 삼포 가는 길, 객지客地를 읽어내려갔다. 삼포 가는 길은 국어/문학 교과서의 정전(正典)으로서, 주지하듯이 산업화 과정에서 고향을 상실한 민중들의 애환을 그리며 그들 간의 유대와 연대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한편 객지客地는 간척지 현장에서 일용노동자들이 겪는 애환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서의 노동쟁의를 벌이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삼포 가는 길(1973) 에서는 고향을 상실해 어느 곳에서든 정착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영달이 등장한다. 영달은 고향을 떠난 지 십 년 만에 자신의 고향 삼포로 돌아가려는 정씨를 만나 이와 동행하게 되고, 정씨와 영달은 삼포로 돌아가려는 여로에서 백화를 만나게 된다. 정씨와 영달이 서울식당 부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백화를 잡지 않은 것은 그 짧은 시간 동행하며 느낀 동류의식과 연대감 때문이다. 비록 그들은 공사장 노동자, 노무자, 술집 작부 등으로 모두 직업도 다르고 연배도 성별도 다르지만 그들이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근거는 셋 모두 그 방식은 다르지만 저마다 고달픈 삶의 애환을 지니며 고향을 상실하고 떠돌아 다녀야 일을 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소시민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에게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가명으로만 자신을 소개하던 백화가 고작 스물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술집 작부 일을 하게 되기까지의 일을 정씨와 영달에게 고백하며 삶을 공유할 뿐 아니라 이별에 앞서 정씨와 영달에게만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유의미한 부분인데, 산업화 시대에 고향을 상실할 만큼 극단의 처지까지 내몰린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 휩쓸려 사람을 불신하며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중히 여기며 목적으로 대하는 물 밑의 연대를 통한 사랑의 윤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와 영달은 그녀가 서울식당이라는 주점에서 도망친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며 그녀가 술집 작부로 일 해온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러한 신분이나 처지로 인해 그녀 자체를 격하시킨 적이 없으며 그들이 가진 돈을 들여 표와 삼립빵 두 개, 그리고 계란을 전해주기까지 한다.

또한 과거 술집 갈매기집에 처음 팔려 가 군 감옥에 수용된 군 죄수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등 그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은 앞서 읽었던몰개월의 새에서 베트남으로 파병될 군 장병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미자의 모습과 겹쳐진다.

삼포 가는 길의 결말부에서 영달과 백화와 마찬가지로, 결국 정씨마저도 산업화로 인해 고향 삼포를 상실함으로써 마지막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려 공허함을 느끼게 하지만, 정씨와 영달이 같은 처지에서 경험하는 동류의식, 그리고 백화와 나눈 이간적 유대와 교류는 결국 몰개월의 새가 그러했듯이 소외되고 희생된 민중들에게 주어진 선물로서 존재의 자기증명이었던 것이다. 백화가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것도, 그리고 정씨가 마지막까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지니고 마음의 정처를 잃지 않고자 갈구했던 것도 결국 존재의 근원을 향한 깊은 갈망이라 할 수 있겠다.

(나선욱,황석영 소설의 민중상 연구 : 70년대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32-42쪽 참조.)

삼포엘 같이 가실라우?”

어째든…….”

영달이가 뒷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오백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저 여잘 보냅시다.”

영달이는 표를 사고 삼립빵 두 개와 찐 달걀을 샀다. 백화에게 그는 말했다.

우린 뒤차를 탈 텐데…… 잘 가슈.”

영달이가 내민 것들을 받아 쥔 백화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 여자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무도…… 안 가나요.”

우린 삼포루 갑니다. 거긴 내 고향이오.”

영달이 대신 정씨가 말했다. 사람들이 개찰구로 나가고 있었다. 백화가 보퉁이를 들고 일어섰다.

정말, 잊어버리지…… 않을게요.”

백화는 개찰구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백화는 눈이 젖은 채로 웃고 있었다. “내 이름은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요…… 이점례예요.”

- 삼포 가는 길, P240.

말두 말우. 거긴 지금 육지야. 바다에 방둑을 쌓아놓구, 추럭이 수십 대씩 돌을 실어 나른다구.”

뭣 땜에요?”

낸들 아나, 뭐 관광호텔을 여러 채 짓는담서, 복잡하기가 말할 수 없대.”

동네는 그대루 있을까요?”

그대루가 뭐요. 맨 천지에 공사판 사람들에다 장까지 들어섰는걸.”

그럼 나룻배두 없어졌겠네요

바다 위로 신작로가 났는데, 나룻배는 뭐에 쓰오. 허허, 사람이 많아지니 변고지.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

작정하고 벼르다가 찾아가는 고향이었으나, 정씨에게는 풍문마저 낯설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영달이가 말했다. “잘됐군. 우리 거기서 공사판이나 잡읍시다.” 그때에 기차가 도착했다.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는 마음의 정처를 방금 잃어버렸던 때문이었다. 어느 결에 정씨는 영달이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버렸다.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

- 삼포 가는 길, P241-242.

객지客地(1971)는 간척지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노동자들이 노동쟁의를 벌이게 되는 과정을 상술하고 있는 중편소설이다. 객지客地공장노동자들의 파업이라는 비슷한 주제를 지니고 있는야근과 달리 노동쟁의에서 성공적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결말지어진다. 객지客地야근과 같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으며 기계같이 일해야만 하는 공장노동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야근의 노동자들이 기능공으로서 숙련된 기술이 있어 쉽게 해고 할 수 없는 존재인 반면, 객지客地의 노동자들은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라는 점에서 그 위치가 더욱 불안하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다는 점에서 죽음정치적 노동의 속성이 더욱 짙게 나타난다.

삼포 가는 길에서 정씨와 영달, 백화가 그러했듯 고향을 상실하고(떠나) 객지客地에서 일해야만 하는 현실로 인해 노동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집단적으로 조직화된 행동을 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소설은 회사 측, 즉 자본가 측의 회유에 넘어가 감독조로서 회사측에 협력하는 인물, 패배의식으로 인해 떡밥이 되는 인물들 등 노동자들이 각자 자신의 존재방식을 택하는 이유를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결국 이미 요구조건을 이행해 휴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쟁의에 참가한 이들 덕분에 성과를 거두었다는 떡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부상자를 치료해야 하지 않겠냐는 명목 하에 국회의원들이 도착하기 전날 저녁까지 내려오라는 회사 측의 권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려가게 되며 결국 동혁 혼자 남는다. 내려간 이후 상황이 소설 속에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회사 측의 계획대로 국회의원들의 방문에는 보여주기식으로 치장 된 이후 점진적으로 다시 노임과 휴가시간을 줄여나가 쟁의가 실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혁은 강렬한 희망이 솟구침을 느낀다는 것으로 결말이 끝나는데, 비록 쟁의에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회사측의 회유에 넘어가며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모습이 비관적으로 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비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꼭 내일이 아니어도 좋다.’며 전망과 희망을 제시하며 소설이 마무리된다.

(나선욱,황석영 소설의 민중상 연구 : 70년대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48-56쪽 참조.)

누구나 객지 나올 땐, 그렇게 시작한다네. 나도 머슴살일 해봤다구. 부농이나 호농이나 매한가지야. 소작붙이 해 먹는 사람들도 마찬가질세. 토지 수득세, 수리비, 공과금, 뭐 어쩌구 하는 터에 곡가는 형편없이 싸지, 거기다 어디 땅 파먹는 놈들이 한둘인가. 식구 작은 집에서도 쉴 틈 없이 부업으로 잔푼벌이를 해야 되네. 땅을 더 사야지, 자기 땅을 말이야. 부농도 별 수는 없지. 농번기 핑계로 우리네 같은 뜨내기들이 붙어 있긴 하지만 오래 못 가. 인근의 품팔이 농군들이 많거든. 그 사람들도 얼마 안 가 우리네처럼 대처로 꺼질 게 뻔하단 말일세. 날품팔이를 해야 할 촌놈들이 많으니, 아무려나 대처엘 가든 공사판엘 가든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 객지客地, P309.

 

어쩌면 자네들은 혜택을 못 받게 될지도 모를 텐데? 돈이 생겨, 술이 생기는가, 도대체 뭘 바라구 이런 짓을 벌이나? 덮어놓고 불평불만을 터뜨려 보자는 식이로군.”

우리가 못 받으면, 뒤에 오는 사람 중 누군가 개선된 노동 조건의 혜택을 받게 될 거요.”

- 객지客地, P344.

 

그는 바위를 등지고 함바를 향해 앉았는데, 독산을 내려가는 인부들의 모습이 몇 명씩 그의 눈앞에 아른거리곤 했다. 제방이 보였고, 그 너머로 무한하게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이 보였다. 숙부가 타고 있던 이민선이 바다 바깥을 다시 지나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자기의 결의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으며, 거의 텅 비어버린 듯한 마음에 대하여 스스로 놀랐다. 알 수 없는 희망이 어디선가 솟아올라 그를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동혁은 상대편 사람들과 동료 인부들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그는 혼자서 다짐했다.

- 객지客地, P377-378.

결국 삼포 가는 길객지客地는 두 작품 모두 산업화(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고향을 잃고, 타관을 전전하며 하루를 어떻게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인물들의 처지를 형상화해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결국 삼포 가는 길은 정씨마저도 고향을 잃음으로써, 그리고객지客地는 회사 측의 회유에 못 이겨 산을 내려가 쟁의에 실패함으로써 결말이 비관적으로 제시되는 듯 보이나, 그러한 비관적 결말 이면에는 물밑의 연대와 유대에 대한 강렬한 소망이 자리함을 제시하여, 두 작품 모두 나름대로의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by papyros 2016. 11. 23. 2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