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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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독립출판 플랫폼 인디펍으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교육은 행복해지려고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적어도 내가 학교 다니면서 본 친구들 중에 90% 이상은 학교 때문에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학교가 끝나거나 방학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행복해보였다.’

 

- 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18.

 

  핀란드. 주지하듯이 한국 교육계에서는 늘 교육현장의 모범사례로 선망받는 교육현장이 바로 핀란드의 교육이다. 제목과 표지를 보고 이 책에서는 핀란드의 무엇을 말하고 있을지, 과연 핀란드 교육의 행복비결을 바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지 궁금증을 안고 이 책을 펼쳤다. 경쟁식 교육으로 모두가 지쳐있는 한국사회에 대비되는 핀란드의 교육.

  저자도 나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교환학생으로 핀란드에 갔다고 한다. 저자의 표현처럼, 학생이 행복하지 않은 교육이라면 과연 무슨 의미인 것인가. 나는 중학생 때부터 국어교사를 꿈꾸며 살아왔고 최근까지 국어 기간제교사로 일해왔지만(지금은 전문상담 임용을 준비하며 전문상담 기간제교사로 근무중이다.) 학교에서는 교사도 학생도 행복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교사(특히 주요교과교사의 경우 더욱)는 수업시수도 많은데 과도한 행정업무까지 떠안게 된다. 출제와 수행평가, 행정업무가 반복되다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

  핀란드의 교육은 과연 어떻게 다를 것인가. 이미 방송 등 매체를 통해 접한 바는 있지만 실제로 교환학생을 하며 핀란드의 대학교육을 체감한 저자의 글에 기대감이 컸던 것은 바로 내가 교직에 나아가길 희망하는 한 청년으로서 한국 교육이 변화되기를 진실로 소망하는 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선택한 이유였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성공하려고 무언가를 추가적으로 열심히 한다. 영어공부나 운동, 독서가 대표적이다. 그것을 하는 이유가 스펙을 위해서 혹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더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좋다. 더 노력해서 더 많이 벌고, 더 많은 자율권을 얻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 좋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부리는 것이다. 모두 그렇게 하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다.

- 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20.

 

  모두가 깊은 사유를 통해 가치관과 세계를 위한 무언가를 해 나갈 시간보다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한국 사회와는 대조적으로, 핀란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공동의 가치관을 위하여 노력하는 개인을 위해 사회공동체가 함께 발을 맞추는 선택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채식에 대한 일화를 언급하는데, 한 개인의 실천이 거대한 집단,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핀란드 사회의 건강한 신념과 선순환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의 경우 채식을 하는 개인을 소수자로 취급하면서 심지어는 채식하는 개인에 대해 보여주기식이 아니냐는 비판어린 시선까지 따라붙는 경우를 왕왕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했지만, 주된 이유는 역시 지속가능성의 관점이었다. 한국의 미세먼지와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의 대비를 통해, 자연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극적으로 체험하고 있을 때였고,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채식을 실천하고 있었다. 핀란드에서는 특히 개인이 집단을 이룬다는 사고방식이 강하다. 집단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 개인이 함께 모여 집단을 만든다. 그렇기에 한 개인의 행동, 윤리적, 도의적 책임의식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개인의 행동이 쌓여서, 그리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한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 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49.

 

  또한 뒤이어 나오는 기후변화를 위해 학생이 시위를 하며 등교거부를 하는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학생 개인의 정치, 사회적 신념을 인정하고 학생이 신념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존중하는 것인데, 학교교육에서 함께 사회 현안을 공론화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사회적 인식도 부족한 현실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개발이 가능할지 스스로 공론화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시급하다. 한국에서는 아직 금요일에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았다. 올해부터 만 열여덟 살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투표권을 부여받게 된 만큼, 학생들을 ‘어린 존재’ ‘피교육자’로서만 대하기보다는 이제 그들이 ‘자율성’과 ‘주체성’을 지닌 존재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책임이 있는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교육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교육에서는 학생들을 ‘수동적 존재’로서 바라보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학생들이 금요일에 학교에 오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교사들은 이것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교사는 이 운동을 권장해야하며, 그 운동을 그저 결석의 구실로만 다룰 수는 없다. 교사는 학교에서 이 운동을 타협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이미 파업에 참여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권장하거나 파업을 소개하고 파업 동기를 설명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과 같은 어린 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운동은 학생으로서 영감을 쉽게 받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이미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학생들은 실제 행동 단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종류의 행동을 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교육자로서 학생이 학교와 실생활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 단계를 소개해야 한다.

- 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64-65.

 

  성 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교육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어른들의 고정관념이 발화되고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면서 어린아이들의 고정관념이 생기는 만큼 핀란드의 아동교육은 성 중립성을 지키고자 상당부분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 핵심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타 성별에 대한 혐오발언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데, 그 기저에 성 중립성보다는 성 역할 고정관념을 확대시키는 어른들의 발화가 아이들의 내면에 뿌리깊게 내재화되고, 나아가 학교교육 내에서 경험한 개개인의 성 정체성으로 인한 경험이 이를 심화시켰다고 여겨진다.

 

 


  성 중립성 학교에서 교사가 되려면 스웨덴 LBT권익 연맹(Shutts, Kenward, Falk, lvegran & Fawceet, 2017)이 제공하는 종합적인 교육(기간 6~8개월)을 사전에 받아야만 해당 학교에서 교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들의 교육은 교사에게 학생을 성 역할에 구애되지 않고, 보다 포괄적이고 동등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법론을 제공한다.(RFSL, 2019.)

  교사들은 학생들과 대화할 때 성별에 구애받는 언어들을 피하고, 전통적으로 한 성별만을 대상으로 한 행동을 피한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수많은 동화와 노래 등을 통해 전통적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학습한다. 대표적으로 미녀와 야수는 납치당한 여주인공이 납치한 괴수에게 사랑에 빠지는 스톡흘름 증후군의 이야기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잠에 들어 있는 공주님을 멋진 왕자님이 구해주는 이야기다. 남성에게는 능동성이, 여성에게는 수동성이 관념적으로 내재되어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에 문제의식을 느껴 더 다양한 정체성과 가족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이야기, 노래 및 기타 교육 자료를 수정하도록 훈련받는다(Shutts 등, 2017). 작품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지나치게 많은 문학작품들이 백마 탄 왕자님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공주님을 구하는 일변도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성의 부재가 문제인 것이다.

 

- 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89-90.

 

 

  마지막으로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바로 제 5, 경쟁이 없는 학교에서 언급하는 핀란드 사회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었다. 한국 교육은 고정형 사고방식으로 인해 한 개인이 정체성을 성공’, ‘성취’, ‘성적을 기준으로 형성하기 쉬운데 한국 교육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지닐 필요가 있다.

  독자로서의 나 또한 사실 평가에 예민한 학생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나는 저자처럼 모든 분야에 성적이 우수하지는 않았지만, 학창시절 학습태도가 바람직해 모범생으로 불렸고 그 정체성을 깨기 싫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 대학원에 진학해서까지 그 정체성을 유지하느라 한 번도 대학 수업시간 중 대출을 하거나 수업을 빼고 여행 가는 과감한 행위를 해 본적이 없는데 30을 코앞에 둔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경험을 한 친구들이 더욱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대학원에서까지 좋은 학점을 유지하는 데 스트레스를 받는 , 그런 학생이었다. 교사를 꿈꾸게 된 이유도,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정체성을 근간으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만나게 될 미래 세대의 아이들은 나처럼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 평가에 예민한 사람으로 자라게끔 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순간순간 경험하는 자신의 선택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한다. 학점보다는 과감히 여행을 떠나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아이들로 키워내고 싶다. 어쩌면 학교교육의 ‘과정중심평가’ 도입이 그 시작이리라 여기지만, 아직도 많은 변화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평생 1등만 할 수 있는 학생들은 극소수다. 언젠가는 그 정체성이 깨지게 되어 있다. 역설적으로 공부를 잘해 그 정체성을 오래 유지하는 학생일수록 그 정체성이 깨질 때 타격이 크다. 그래서 오히려 전교 1등, 명문대학교 학생들이 갑자기 정체성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보다는 그들의 노력, 과정에 칭찬을 해주는 정체성을 부여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꾸준한”, “언제나 성장하는” 등의 정체성을 주어야 한다. 이 정체성은 상황이 바뀌어도 내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 어렵겠지만 평가 역시 위를 바탕으로 할 방법을 고안해 보아야 한다.

  캐롤 드웩교수의 정의를 빌리자면 고정형 사고방식(Fixed mindset)보다는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을 학생들에게 부여해야 한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를 자신에게 닥칠 시련이나 방해요소로만 보아 기피하는 반면,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은 같은 상황을 넘어서야 할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 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128-129.

 

 

  전체적으로 이 책은, 전문상담교사로서 한 평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내게 교사로서의 지침서 같은 책이었다고 여긴다. 미처 서평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는 인종차별혐오발언에 대한 부분까지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다수자, 강자에 속했을 때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최소한의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혐오 발언이 급증하고 있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소양은 ‘공감능력’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바로 공감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간접경험인데, 하단부 저자의 표현이 내 마음과 너무나도 같아 인용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교사로서, 특히 전문상담교사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소양은 공감능력’, ‘(다양한 상담기법을 활용할 수 있는)상담자로서의 학문적 역량’, ‘성 중립성등 외에도 풍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이루는 가장 큰 두 축이 책과 영화인 만큼 지금껏 내가 너무나도 좋아해 즐겁게 읽어오고 보아온 영화들이 전문상담교사로서의 내 역량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여긴다. 내담학생들에게 이것이 전달된다면 내담학생들은 또 누군가에게 이를 전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어떤 곳에서도 주류이기 때문에 차별을 한 번도 당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마음 깊은 속에서 차별은 나쁘다고 느껴지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인류가 위대한 발견을 한다. 그것이 바로 글과 스토리의 위대함이다. 소설이고, 영화고 예술이다. 자신과 전혀 다른 상황 속에 대입하고, 공감하는 능력. 그것이 인간이 가진 위대함이다. 그래서 인류는 예술을 향유하고, 만든다. 내 글을 읽고 분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아시아인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분노하기 쉽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이 주류가 되었을 때, 상대적 강자가 되었을 때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을 멀리해주길 바란다. 자신이 소수일 때 경험했던 차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 어떤 마음을 속에 새겨서 다른 사람이 그 경험을 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 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151.

 

 

  이 책의 저자는 한국 사회 내에서는 학문적으로도(소위말하는 명문대학생) 성별로도 다수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책의 도입부 군대에 지원했다는 표현이 나오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특히 후반부인 인종차별 부분에서는 어? 이 작가님이 여성이셨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다수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타자를 위한 배려를 통해 그 깊은 사유가 엿보였다.

  핀란드에서의 14개월을 통해 느낀 점을 책으로 내어주신 저자분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 저자분이 핀란드 대학 교육학 시간에 경험한 내용을 상기하며 서평을 갈무리하고 싶다. 나의 대학 시절에도, 저자와 같은 교수님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교육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셨는데, 학생과 수평적이며 신뢰로운 관계를 맺고 표면에 보이는 부분보다는 이면을 보시며 따듯한 시선을 견지하셨던 교수님의 교육철학이 내 교육철학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내가 Martin Buber(마르틴 부버)의 ‘만남의 철학’에 가장 크게 공감하는 이유도 그 영향이 크다.

  이 책에서도 그와 유사한 부분이 나오는데, 앞으로 평생 교사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나는, 아래 문장을 평생 담으며 살아가고 싶다. 부디 내가 30년 후에 꼰대 교사가 되지 않고 모쪼록 상담시간 중 점심을 먹는 내담자의 이면에 있는 욕구를 진정성있게 공감하는 따뜻한 상담자(전문상담교사)’로서 자리하기를. 30년 후에 이 글을 다시 볼때도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핀란드에는 학교 내에 엄격한 계급제도가 없다. 학생이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고 서로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방법이나 내용을 선택하는 데 더 많은 자유가 있다. 학생들은 학교를 자유롭게 느낀다.

 

- 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121.

 


  수업이 정말 자유로워서 수업 중에 음료를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예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충분한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식사를 할 때 교사의 시선은 “수업이 바빠 식사를 할 시간이 없었구나.”의 따듯함을 유지하고 있다.

 

- 안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하모니북, 2020, 116.

 

 

by papyros 2020. 10. 31. 21:48

 

조아연,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모니북,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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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의 마지막 보석이라 불리는 미얀마의 작은 도시 인레에는 두 명의 피셔맨이 있다. 머니 피셔맨과 노 머니 피셔맨. 그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한다. 내가 감히 어떻게 그들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노력과 노동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여행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삶을 잠시나마 엿보는 일. 그 순간을 우리는 여행이라 부른다.

- 조아연,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모니북, 2020, 169.

 

 조아연 작가의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이 책은 이번 독립출판 서포터즈 7기 활동을 위해 선택한 도서들 중 그 어떤도서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여행에세이였다. 기실 코로나로 인해 여행도 마음 편히 가지 못하는 시대에, 대리만족의 욕구때문일까, 여행에세이로나마 간접적으로 여행을 하고싶은 욕구가 큰 요즈음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예상외로 마음에 와 박는 귀한 문장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20대의 끝을 불과 1개월 여 남겨두고 있는 지금, 작가님과 달리 나는 20대를 학업으로만 보냈다. 대학-대학원-대학원. (두 번의 대학원이 석사-박사가 아닌 석사-석사라는 다소 슬픈 이야기는 차치하자.)

 그렇기에 젊은 시절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소회를 옮기고 멋진 사진들을 찍고 사람들을 만난 작가님의 여행이 참으로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여행 자체보다는 여행을 통해 느낀 작가님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사유의 흔적들이 더욱 부러웠다.

  꼭 작가님처럼 많은 여행을 갈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단 한 번의 여행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주체인 여행하는 나의 사유.

  유년기의 나와 어른이 된 나는 그 본질적으로는 같은 사람이지만 경험세계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바라보면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그 양질의 경험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여행이 아닐까. 나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그리고 타인의 오롯한 삶을 바라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조금 더 분명히 하기 위해.

  그런 면에서 <팔찌 파는 10>에 등장한 소년의 일화는 지금 이 순간 어른으로 살아가는 나를 반성하게 했다. 나는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 할까.

 만 289개월 7일을 살아왔음에도 아직 나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아직도 누군가와의 관계에 슬퍼하고 그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이지만, 부족한 부분을 포함한 그 모든 내 모습들을 안고 나의 길을 떠날 때 뜻밖의 변화를 만나는 것처럼, 여행도 그렇지 않은가싶다.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라고 했다.

  나도 언젠가 떠나게 될 또 한 번의 여행에서 2020년, 스물아홉의 나와는 다른 또다른 나의 모습을 새로이 발견하기를....... 그리고 나의 여행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열 살 소년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기를, 상처를 넘어서 누군가의 상처를 포근하게 감싸는 존재로 여행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4다르함(500원)을 내면 마실 수 있는 순도 100% 오렌지주스, 혹여 소매치기를 만날까 복잡하고 긴장되는 골목길, 12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야 하는 일, 호스텔에서 무료로 주는 싸구려 비누로 세수하기와 같은 것들이 일상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아마도 이런 일상이 일상적이지 않은 순간이 될 때까지 난 여행을 할 것이다. 길고 긴 여행이 끝나면 이 복잡하고 어려운 메디나 골목조차 그리워질까. 그때가 되면 내 안경에 남겨진 검은색 나사를 바라보며 문득문득 이 순간을 떠올리게 될까.

- 조아연,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모니북, 2020, 23.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불량식품, 컵 떡볶이, 선생님 몰래 흰 우유에 몰래 타 먹던 초콜릿 가루 이런 것들이 이제는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이제 마카롱 하나로는 행복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된 나는 그때처럼 따뜻하고 작지만 사랑스러운 것들에 쉽게 감동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수많은 계절이 바뀌는 동안 입맛이 변했고 취향이 변했고 좋아하는 것들이 변했기에 그때 느꼈던 감동은 당연히 존재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조금씩 착실하게 날 변하게 했다.

- 조아연,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모니북, 2020, 29.

 


  우리의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거운 순간을 살아 내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마음의 상처 또한 내가 가지고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비록 흉터가 남을지라도 그 자리에는 딱지가 올라오고 새살이 돋는다. 마치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이 오는 것처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추운 계절은 끝이 난다.

  시간이 지나 엄지발가락이 수영해도 괜찮을 만큼 나았다. 오랜만에 들어가는 수영장은 여전히 차갑고 시원했다. 발가락의 흉터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흉터가 남는다고 내가 행복하지 못할 단 하나의 이유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도 엉망으로 상처 입는다고 해도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매년 상처와 흉터는 늘어나겠지만, 그것조차 끌어안고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 조아연,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모니북, 2020, 57.

 


  열 살 무렵 나는 매일 용돈으로 500원을 받아 슬러시를 사 먹고 남는 돈으로 만화책을 빌려보거나 스티커를 사곤 했다. 엄마가 가직 싶은 비싼 바비 인형을 사주지 않아서 슬픈 것 빼고는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옛 잉카 왕국의 수도 쿠스코에 사는 초등학생이라고 나와 다를까 싶었다. 달콤한 군것질거리와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다면 행복할 나이. 열 살은 그런 나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열 살이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소년은 말을 이어나갔지만, 스페인어를 못 하는 나는 그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얇은 옷을 입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씩씩하게 물건을 팔고 있었던 그 아이의 꿈은 뭐였을까. 좋아하는 운동은 뭐고 좋아하는 음식은 뭐였을까. 미처 건네지 못한 질문들이 마음에 울렁거려 코끝이 시큰거렸다.

- 조아연,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모니북, 2020, 145-147.

 

 

 

by papyros 2020. 10. 28. 01:56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https://ridibooks.com/books/1849000035?_s=search&_q=%EB%82%9C+%EA%B0%80%EB%81%94+%EC%95%84%EB%B9%A0%EB%A5%BC+%EC%A3%BD%EC%9D%B4%EB%8A%94+%EC%83%81%EC%83%81%EC%9D%84+%ED%95%98%EA%B3%A4+%ED%95%B4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해당 도서는 독립출판 플랫폼 인디펍으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책의 제목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라니. 프로이트의 꿈분석에 관한 내용일까? 아니면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할 정도로 아버지의 존재가 부정적이라는 걸까. 후자겠지? 하며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기실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은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지나친 가부장적인 면(아마 그 연배의 대부분 분들이 그러하겠지만)은 부정적으로 지각하고 있다. 때문에 책의 내용이 좀 더 궁금해졌다.

 마치 『안네의 일기』나 『징비록』과 같이 이 책은 작가 본인의 일기장이었다. 작가는 몇 년동안 꾸준히 일기를 써내려갔는데, 저자의 일기가 기쁘고 즐거운 일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언젠가 법정에서 쓰일 날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가족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일삼는 알콜중독자 아버지로 인해 저자(해열)의 가정은 늘 살얼음판만 같다. 저자는 삼남매의 맏이인데, 행여 동생들이 아버지의 주취와 폭력을 알게 되지 않을까-를 저자 본인도 어렸던 청소년기부터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치워야 해. 깨뜨릴지도 몰라.” 덜덜 떠는 손으로 제일 먼저 어항을 치우던 엄마. 그 모습을 본 내가 받은 충격이란. 엄마는 그때 내가 깨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미 우리 집은 무너진 모래성이라는 걸.

-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아빠를 믿는, 아빠가 변화되리라 믿으며 주님께 간구하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참으로 많이 속이 탔다. 가정해체를 야기한 당사자는 그대로인데 고통받는 것은,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가족들이라니. 가해자-피해자의 불합리한 힘의 관계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혈연이라는 끈으로 맺어졌기에......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저자의 마음이 너무 절실했다.

 폭력의 주체가 타인이 아닌 가족이기에, 아빠이기에 더 괴로웠을 것이다. 작품을 읽으며 저자의 부친이 보이는 폭력과 그 가족들의 대응에 대해 이해와 공감과 더불어 답답함과 분노가 함께 느껴지곤 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을, 가족 구성원들을 지켜내고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가장 필요하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주님, 제가 함부로 아빠를 판단하지 않게 해주세요. 저는 모르잖아요, 아빠를 통해 주님이 무엇을 행하실지. 제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도록 좀 도와주세요. 주님, 또다시 반복되는 밤들을 통해 제가 느껴야 하는 것들이 뭐죠? 아니면 제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요?

-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학교 갔다 집에 오는 게 두렵다. 아빠가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면 좋겠다.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만약 액자를 부수다가 갑자기 어딘가에 꽂혀 우리에게 돌진하면.. 우린 속수무책으로 그냥 맞는 거다. 아빠 몸짓 하나에 모든 사람이 자는 척 숨죽여 떨고 있다.

-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람이란 게 이런 건가 보다. 두렵고 무서울 땐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가도 그 대상의 약한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그 미워하는 마음은 사그라진다. 아빠의 풀이 죽은 모습은 내 약점이다. 그저 아빠도 불쌍한 한 인간이겠거니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그리고 몇 주 전, 또다시 악몽에 시달리면서 언젠가 일이 터질 거란 걸 예감하고 침대 밑에 야구 배트를 갖다 놓은 내가, 더 이상 비극이 시작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야구 배트를 챙겨 놓은 내가 밉다.

-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특정 분위기 특히, 성인 남성이 언성을 높이면 그게 어디가 됐든, 누구든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우리 가게는 시장 입구에 있어서 ‘저녁’엔 술 취한 아저씨들이 자주 온다. 하지만 오늘같이 대낮은 예외다.

  게다가 소리 지르며 달려오는 취객이라니. 초점 없이 풀린 그의 동공에서, 아무렇게나 질러대는 목청과 따로 노는 손짓에서 나는 아빠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무섭다. 또 가슴이 뛴다. 그리고 측은하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 아빠. 그럼 누군가는 집에서 도어락 소리를 두려워하고 있을 텐데.

 들의 두려움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내가 측은하다. 결국 나나 당신네나 우리 모두는 다 측은한 존재일까.

-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와 가족들이 분리된 이후 저자가 20대에 이르러 대학에 들어가 영화를 전공하면서 나타나는 저자의 생각이나 감정의 결은 더욱 섬세하다. 대학에 진학해 영화를 전공하는데 자신의 작품에 늘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 걱정하는 저자의 모습.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감독인 나 자신이고, 나의 아버지가 이런 사람이라고, 나는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아주 친한 사람들 소수 외에는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모습들… 저자가 느끼는 만성적인 우울감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일기 속에 엿보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켠으로 나는 저자의 20대를 읽어 내려가며 안도했다.

 비록 가정폭력의 PTSD로 내재된 심리적 문제가 자주 신체화 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자기 주체를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주어서,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사실 20대에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걱정하는 건 당연한 것이지 않나. 그런 마음을 품으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저자의 취향이 엿보일 때는 나도 함께 기뻐했다. 치유와 안정감을 야기하는 반 고흐의 그림이라든가, 김애란 작가를 좋아하는 저자의 취향들. 그래 이 작가 나도 좋아해! 하는 마음에 공감이 되었다. (나도 신뢰하는 이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좋아하는 게 많을수록 그게 그만큼 강점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책을 읽어내려가며 저자의 취향에 대해, 저자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특히 저자가 만든 영화가 궁금해졌다. 주제가 반복되면 어떤가. 저자가 언급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처럼- 가족에 대한 주제로 계속 영화를 만들어도 각각의 영화가 모두 다른것처럼, 해열작가님 또한 ‘아버지’라는 한 주제를 통해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그만큼 진솔하고 섬세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겠지. 글도 이렇게 호소력이 있는데 영화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반 고흐 전> 보러 혼자 서울에 갔다 왔다. 이제 혼자서도 잘 돌아다닌다.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빈센트의 그림들은 정말이지 끝장났다. 여기서 살고 싶다는 마음밖에 안 들었다. 고흐 그림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자주 봐서 그런가? 게다가 그의 일생을 알아버린 이상 그는 내 평생의 스승이자 동료이고 하나뿐인 연인이다. 나는 빈센트만 편식한다. 그의 그림이 내 활력이 되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영양제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나는 빈센트만 편식한다. 동경한다. 편애한다.  그의 푸르고 노란 그림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내겐 위로고 안정제다. 빈센트의 마음이 너무 예쁘다. 그의 마음이 그림에도 스며들어있는 거 같아 놀랍다. 서울에 갔다 온 뒤로 내 책상엔 빈센트가 더 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확고해지는 건 취향뿐 이다. 난 어쩜 이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신기하다.

-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졸업 작품은 좀 다르게 찍고 싶었다. 1학년 때의 그 첫 작품이 또 나올까 봐 두려웠다. 이건 지금도 여전하다. 유명한 감독이 ‘감독은 평생 하나의 작품만을 만들 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갈수록 그 말에 공감한다. 내 마지막 작품은 곧 내 첫 번째 작품의 모방이 될 것이며 결국 나는 일생동안 하나의 영화만을 찍어낼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자기 복제만 끊임없이 하다 죽을까 봐 겁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어. 아직 내 안에 아빠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게 많은가 본데.

-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기실 이 숨기고만 싶은, 누군가에게 공개하기에는 슬픔과 고통으로 채워져있는 자신의 일기를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편집의 과정을 거친 작가님의 그 용기가, 계속해 나아가고 성장해가는 작가님의 모습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빠른)92년생 독자 한 사람이 95년생 해열작가님의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앞으로 세상에 나올 작가님의 더 많은 이야기를 기다리는 한편, 나도 머지않은 시일 내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어 그 때는 해열작가님이 나의 독자가 되고 나는 해열작가님의 관객이 되기를 깊이 소망해 본다.

 


  나는 자꾸 시도한다. 생각하고, 공부하고, 느끼고, 표현하고 흔적을 남긴다. 자꾸 남긴다. 아직 미완인 것들이 많다. 내 작품이지만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도, 또 반대로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싶은 것도 있다.

-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난 왜 이런 걸까? 사실 성장이나 더 나은 인간이 되는 시간 같은 것들은 애초에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행동을 하는 거고, 일어나야만 했기에 그런 일들이 있었던 것뿐 결국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건 인간이다. 그러니까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군가는 파국으로 누군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성장 할 것인가? 파멸할 것인가?

- 해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인디펍, 2020.

 

 

by papyros 2020. 10. 26. 13:55

 

김정례, 『사모님, 구텐 모르겐』, 문예바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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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독립출판 플랫폼 인디펍으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사모님, 구텐 모르겐.’ 책 제목과 더불어 책 소개 페이지에서 아, 독일 생활을 적은 에세이구나! 하는 마음에 자연스레 마음이 갔다. 독일 이민과 독일에서의 삶과 교육을 적어내려간 책이려니, 생각하고 책장을 펼쳐내려갔다.

 저자는 개신교 교회 목사님의 아내로, 90년대 중반 먼저 유학길에 오른 남편의 뒤를 따라 독일에 이민하게 된다. 저자에게는 세 아이가 있는데 차례로 ‘결, 길, 힘.’이다. 내 나이와 저자의 아이들 중 ‘길’의 나이가 엇비슷해 보여 괜히 세 남매 중 길의 에피소드에 마음이 갔다.

 작품의 여러 내용 중 특히 인상깊은 점은 저자가 독일에서 아이들의 한글(모국어)교육에 힘쓰며 아이들을 한국 학교에 보내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최근 이중국적이나 다문화가정, 해외거주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겪는 문제와 맥을 같이한다. 즐겨보는 다음 웹툰 <딩스,뚱스,땡스>라는 만화만 보아도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살다 귀국한 아이 땡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모국어 정체성문제, 학교부적응 등의 문제를 겪는 부분들이 그려지는데, 그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독일에 살면서도 얼마나 자녀들의 한국적 정체성과 한글 교육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을지 그 과정이 너무나 생생히 그려졌다. 서로 다른 두 국가의 문화와 언어를 모두 습득한다는 것이 분명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이를 위해서는 교육자/주 양육자들의 아이들에 디핸 신뢰와 기다림, 지속적인 대화가 필수적이지 않은가 싶다.

 

 에세이를 통해 아이들의 유년기부터 성장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내 또래의 친구들이 커가는 모습을 살펴본 듯한 기분이 들어 무언가 유대감이 형성되기도 했다.

 다만 이 책에서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개신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다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가 짙어진다는 점인데, 종교적 색채가 짙어지는 것은 그만큼 저자의 삶을 지탱해온 데 개신교 신앙이 가장 우선순위에 놓이며 그 삶의 결과 가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의미이겠으나, 다만 독일 사회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는 독일문화와 독일의 학교교육에 대해 더 알고싶어 선택했던 책인지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by papyros 2020. 10. 19. 13:52

 

채샘,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어』, 연지출판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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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독립출판 플랫폼 인디펍으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순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 채샘, 「4부」 서문,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어』, 연지출판사.

 

 분홍빛이 감돌아 마치 힐링을 줄 것만 같은 에세이로 보이는 이 책은, 표지와는 달리 결코 가볍게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는 아니다.

 문체는 가벼우나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닌 이유는 바로 저자가 도박중독자의 가족으로서 경험한 내용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있다. 그리고 이는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전문상담교사 임용을 준비중이긴 하지만, 아직 임상경험도 상담장면에서의 상담 경험도 이제 겨우 한 발 내딛은 내게 도박장애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도박중독자의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심리정서적 문제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120쪽에도 약술하고 있듯이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는 DSM-5 편람 상 물질사용 및 중독성 장애(Substance Use and Addictive Disorder)의 아형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그 진단기준은 아래와 같다.

 

[DSM-5의 도박장애 진단기준]

4개 이상= 도박장애, 2~3개=준임상 도박장애

(4~5개: 경증 Mild, 6~7개: 중등도 Moderate, 8~9개: 중증 Severe)

A. 지난 12개월 도안 다음 중 네 개(또는 그 이상) 항목에 해당하는 도박행동이 비적응적인 성격을 띠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1. 집착(Preoccupation with Gambling): 지난 도박의 좋은 기억, 도박계획, 도박자금 마련 등에 집착하여 일상생활이 곤란해진다.

2. 내성(Tolerance): 원하는 흥분을 위해 판돈을 올릴 필요성을 느낌.

3. 통제력의 상실(Loss of control): 도박을 줄이거나 끊으려는 노력의 반복적 실패

4. 금단증상(Withdrawal): 도박을 줄이거나 끊으려 할 때 초조, 안절부절, 성마름

5. 회피(Escape): 문제나 나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함

6. 추격매수(Chasing):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도박함

7. 거짓말(Lying):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도박을 숨김

8. 대인관계, 일 등에 부정적인 결과(Negative consequences): 관계손상, 가족 및 사회관계 직업, 학업 등 위태, 상실

9. 구조요청(Bailout): 도박으로 인한 재정문제로 도움 요청.

B. 도박행동이 조증삽화에 의하지 않는다.(조증의 증상으로 도박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즉 조증삽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12개월 이상의 지속성을 지니고 도박에 집착하며 도박에 대한 통제력(조절능력)을 상실, 금단증상을 겪고, 재정문제로 인해 주변인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주요 증상들이 4개 이상이라면 임상심리사들에 의해 도박장애로 진단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서평에서 이런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등의 문제는 차치하고 싶다. 심리학 전공자이며 전문상담교사 임용을 준비중이긴 하지만 내가 임상전문가인 것도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나는 저자가 들려주는 그동안의 분투와 삶에 깊이 공감하며 몰입해 책을 읽었다.

 특히 저자는 도박중독을 겪는 가족이 그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쌍둥이오빠였다는 점에서 더욱 힘이 들었을 것 같다. 차라리 일반 형제나 자매라면 어느 정도 선에선 타인과 마찬가지로 심리정서적 분리가 가능하지만, 단순한 형제가 아니라 ‘쌍둥이’이기에 이미 성장과정 상 공유해온 내면세계가 깊이 자리했기에 저자가 우울증과 무기력을 겪을 정도로 순교자형의 공동의존 형태까지 겪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조심히 생각해 본다.

 저자 본인이 그녀의 쌍둥이오빠 현이 도박중독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 구성원 중 가장 먼저 알게 되었기에 저자는 오빠와 부모님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느라 그녀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버린다. 물론 도박중독 문제를 겪고 있는 저자의 오빠 본인에게도 그 고군분투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스쳐가고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은 바는 심리와 적응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신체적 어려움으로 인한 것인지를 막론하고 모든 질병들은 그 질병을 겪는 환자 본인과 더불어 가족들이 그 치료의 여정을 함께 지난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 한명의 도박중독으로 인해 저자는 우울과 무기력을 겪는가 하면 지난세월 자녀의 성장과 교육에 헌신했으나 그 지난 삶을 모두 부정당한 듯한 느낌을 받는 어머니, 아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난다. 자가 작품 중간 인용한 사티어의 이론처럼, 가족 구성원 한 명의 문제가 가족 전체로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가족 치유의 어머니’로 불리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상담가 버지니아 사티어(Virgina Satir)는 가족을 천장에 매달아 놓는 장난감 모빌에 비유했다. 모빌의 어느 한 부분이 움직이면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가족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미친다.

- 채샘,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어』, 연지출판사, 175쪽.

 

 때문에 질병을 앓는 환자 개인 뿐 아니라 환자와 긴밀한 관계를 지닌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 역시 함께 치료받아야 할 대상임을 우리 사회가 더욱 깊이 인식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저자가 개인상담을 받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녀 스스로를 자책하는가 하면 오빠의 일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아야만 했던 것은 질병을 앓는 이의 가족도 치료의 주체라는 인식 없이 질병을 앓고 있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일반적인 사회의 요구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 가족이 고통을 넘어 치유의 길로 들어선 것은 그들이 도박중독은 ‘완치’가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벗어나 ‘단(斷)도박’의 기간을 유지하는 것임을 인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도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과잉기대도, 도박중독이 장애가 아니라고 여기며 ‘부정’하는 것도 아닌 도박장애의 실체와 그 문제를 ‘직면’하는 것부터 시작했기에 그 치유의 여정이 열렸던 것이다.

 특히 저자의 가족에게는 가족상담보다도 ‘자조집단’을 통한 집단상담이 더욱 유의미했는데, 어쩌면 중독 관련 자조집단 모임의 특성 상,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개방’을 통해 응집력을 지닌다는 점이 강점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오빠 현뿐만 아니라 저자도 함께 모임에 꾸준히 나가는 것은 가족구성원들의 자조집단에서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평가하거나 염려,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경험을 한 이로서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안전감을 통한 응집력의 형성이 중독치료에서 얼마나 중요한것인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곱씹을 수 있었다. 비단 중독모임 뿐만 아니라 상실과 같은 외상경험(PTSD)을 겪은 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중독문제가 없는 이들은 내 삶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오늘도 살아갑니다. 삶의 변화를 꿈꾸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방법도 모르고 의지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중독자는 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문제를 벗어나고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을 가리켜 회복자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삶이 회복중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내 삶이 회복 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 채샘,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어』, 연지출판사, 219쪽.

 특히 이 에세이에서 나 자신에게 경종을 울린 부분은 후반부에 등장했는데, 사실 우리 모두 누구나 조금씩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자의 오빠 현처럼 도박중독이라는 진단이 꼭 내려지지 않더라도, 혹은 알콜중독이 아닐지라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누구나 어딘가에 중독되어있다. (나만 해도 설탕과 밀가루 중독이 아닌가......! ) 개인적으로, 다이어트 중이라 최대한 초콜릿과 같은 군것질거리와 밀가루와 튀김과 같은 음식을 멀리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나 또한 이러한 중독에서 멀어지기 위한 노력을 나름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꼭 진단이 내려지지 않더라도, 현대인은 누구나 대상이나 정도의 차이 있을뿐 다소간의 중독을 겪고 이는데 이를 인정하고 자신을 ‘회복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켜나가냐, 혹은 자신이 무언가에 중독되어있다는 사실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그 삶에 안주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이 책이 평이하고 편안한 어투로 쓰여져 가독성이 있었음에도 결코 ‘가볍지’ 않았던 이유는 이 책의 저자 본인이 겪은 ‘외상과 치유의 경험’을 고백하고 깨달음을 나눔으로써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의 치유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4년 전, 출간 후 화제가 되었던 수 클리볼드의 저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은 바 있다. 그 책 또한 미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학생의 어머니가 총기난사 이후 그녀가 마주한 삶의 변화와 체득한 내용을 책으로 출간한 것인데, 수 클리볼드의 이 책도 그리고 저자의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어』 라는 이 책도.. 두 책은 모두 그들이 겪은 외상의 경험을 책의 제재로 잡아 다른 치유의 가능성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교사가 되고자 했던 동기가 내 유년시절 너머 외로움의 기억과 이를 보듬어주신 좋은 은사님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었듯,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변화와 성장의 동력이 되리라 여긴다.

 때문에 이 책의 독자로서, 내가 지닐 수 있는 몫은 상담자(전문상담교사)로서 도박중독을 겪고있는 청소년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단(斷)도박을 위해 조력하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책을 주변사람에게 널리 알리는 것,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내 삶의 체험과 상담교사로서의 경험들을 함께 나누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자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족한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해 주고, 새로운 목표를 지니게 해 준 이 책의 저자분께 진실로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저자분과 그녀의 가족들의 삶을, 그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도하게 된다.

 


 “나는 내가 신부이고 도박을 끊은 강박적 도박중독자라는 사실에 신께 감사한다. 내가 도박을 할 때 일어났던 많은 일들에 대해 후회를 했지만, 그 일들도 모두 내가 회복으로 가는 여정과 어떻게 다른 강박적 도박중독자들이 도박을 끊도록 도울 수 있는가를 배워가는 과정의 일부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책자를 덮고 일어나 다시 백 신부님의 영정사진 앞으로 걸어갔다. 헨리 나우웬이 말했던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상처 입은 자신의 상태를 치유의 원천으로 타인에게 제공한 사람. 상처 입은 이들을 자신의 삶에 들이고, 그들이 삶의 닻을 내릴 수 있게 안전한 환대의 공간을 만들어준 사람.

- 채샘,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어』, 연지출판사, 225쪽.

 

 

 

 

by papyros 2020. 10. 1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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