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메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웅진지식하우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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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캐서린 메이와,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른아홉이라는 나이에(삼십대 끝무렵에 이르러서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은 캐서린 메이. 저자의 신작에 대한 홍보문구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서평단을 신청했다. 서평단에 선정되고서는 나도 모르게 신간이 아니라 기존에 구입해 읽다가 완독하지 못했던 전작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를 먼저 완독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전작의 남은 부분을 먼저 일독했다.

 전작에서 저자 캐서린은 윈터링’, 겨우나기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삶에서 가장 어둡고고도 추운 겨울의 시절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누구에게나 겨울은 있으며 그 겨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역설한 바 있다.

 

윈터링(이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 ― 옮긴이)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내는 것이다. 겨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이다.

 

-캐서린 메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웅진지식하우스, 2021 중에서.

 

행복이 하나의 기술이라면, 슬픔 역시 그렇다.
그것이 바로 윈터링이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캐서린 메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웅진지식하우스, 2021 중에서.

 

특히 그녀가 우울과 슬픔에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겨울을 보내는 방법으로 소개되는 바다수영이 인상적이기도 했는데, 이번 신간인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에서는 그 연장선상으로 걷기가 제시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사실 바다수영은 겨울의 시간을 잘 보내고 고통을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 중 하나였지만 걷기라는 행위는 자신의 고통마저도 전체적인 삶으로 통합하고자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저자의 자기고백은, 라디오를 듣다가 자신의 자폐 증상을 인지하는 순간에서부터 출발한다. ‘스펙트럼 선상에 있나?’라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저자의 내부에 있으나 걷기를 통해 그 답은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온다. 저자가 유년시절부터 겪어온 자신의 고통에 대해 그 누구도 진단해 주지 않아 겪는 답답함이 책에 잘 묘사되는데, (98-104.) 사실 그녀에겐 오히려 그 고통을 이해하고 수용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서른 아홉에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 선상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저자에게 있어서 어쩌면 평생 가져온 자신의 남다름’, ‘이상함에서의 해방이 아니었을까 싶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녀는 나에게서 좀 예민한 상태이긴 해도 행복하게 잘 지내는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가 이미 구축한 나의 이미지에 반기를 들어봤자 아무 소용 없었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니 나는 그런 단순한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잘 넘겨버리는 듯ᄒᆞᆮ. 넘겨버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캐서린 메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웅진지식하우스, 2022, 102.

 

 ‘남다름’, ‘이상함’, ‘기이함’. 자폐스펙트럼장애 뿐 아니라 세상의 기준과 달라 이해받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부과되는 수식어이다. 특히 특정한 진단을 받지 않거나, 자신에 대한 이해 측면에서 무언가 괴리감을 느낄 경우 자아 스스로 더욱 큰 불안과 혼란을 느낄 것이다. 책의 추천사를 쓴 정지음작가(민음사, 젊은 ADHD의 슬픔저자)님도 캐서린 메이와 마찬가지로 성인이 된 후 ADHD 진단을 받았기에 아마 캐서린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싶다.

 

 이 책은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위한 책은 결코 아니다. (그런 책을 읽기 원하신다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캐서린 메이라는 한 개인이 자신의 자폐 가능성을 발견한 이후 자신의 삶을 어떻게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에세이는 깊은 통찰과 부드러운 사유로 자기치유의 성격을 넘어 하나의 문학작품과 같이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저자는 자폐 스펙트럼 선상에 있지만,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쓰는 데 탁월한 역량이 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누군가는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에서 부족한 점을 지닐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그러하다. 업무를 보면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늘 뚝딱이곤 한다.) 누구나 조금씩 어느정도는 스펙트럼 안에 있는 한 개인으로서, 각각의 한 개인이 누구나 특별하고 가치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스러이 느낀다. 지난 여름 사랑스러운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보았고, 이번 겨울 캐서린 메이의 글을 통해 다시금 보았듯이 진정 중요한 것은 자폐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닌 개개인의 존재 자체라는 것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 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뇌신경을 가지고 있고 다른 특별함을 지닌 존재일 수밖에.

 

자폐인들을 생각하면 별무리나 은하계가 떠오른다. 수백만 개의 서로 다른 별들이 저마다 빛을 발하며 반짝인다. 나는 그 무수한 별들 가운데 하나의 유형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캐서린 메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웅진지식하우스, 2022, 9.

함께 읽을 책으로 저자의 전작과 함께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젊은 ADHD의 슬픔을 권하고 싶습니다.

 

 

 

 
by papyros 2022. 12. 9. 23:59

유시민, 청춘의 독서, 웅진지식하우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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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네이버 카페 '북카페 책과 콩나무' 서평 이벤트 활동의 일환으로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독서는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주고 그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유시민, 후기 위대한 유산에 감사 -,청춘의 독서, 2017, 웅진지식하우스, 320.

 

 

 

 

 

 흔히 이르길,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고 한다. 즉 한 개인이 읽고 있는 책을 통해 지식과 인품을 알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치료에서는 이를 자기서사작품서사를 통해 설명한다. 모든 문학작품에 인간관계의 발달 과정과 유사한 서사가 존재하여 모든 문학은 서사를 바탕으로 성립한다는 것이 작품서사이며, ‘자기서사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서사를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독자 개개인이 작품서사에 얼마나 공감하느냐에 따라 자기서사가 변화되고 개선될 수 있다.

 

 

(기초서사에는 자녀서사, 남녀서사, 부부서사, 부모서사가 있으며 이러한 기초서사들은 다시 네 개의 수준으로 나뉘어 16개의 기초서사가 존재하고 있다. 문학치료, 그리고 문학치료의 서사이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에서 출간된 책이나 문학치료학회의 주요논문 특히 정운채 교수님의 저술 들을 읽어보시기 권한다.)

 근 일주일 동안 청춘의 독서를 읽으며, 단지 여러 작가들의 명저(名著)를 소개받고 지적인 성장을 이룬 것, 독서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떠올린 것을 넘어서 자기서사와 작품서사의 상호관계를 직접적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가치로운 시간을 보냈다. 청춘의 독서를 일독 후의 지금,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는 말이 추상적인 문구가 아닌 직접 체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기실 유시민 작가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과 비슷하신 연배의 이름 있는 정치인으로 알고 있었고, 어머니께서 젊은 시절 읽으셨으며 지금은 내 책장에 꽂혀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두 어 권의 책 (거꾸로 읽는 세계사, 아침으로 가는 길) 을 통해 글을 잘 쓰는, 지식 있는 정치인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최근 애용하고 있는 전자책 서점에서 할인이벤트를 하기에 1년 대여로 구입한 유시민 작가의나의 한국현대사(유시민,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2014.)를 일독했으며 이후 TVN에서 방영중인 나영석 PD님의 예능 알쓸신잡’(알고보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통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시는 유시민 작가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유시민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고, 그 분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방송에서 항소이유서가 소개된 후, 전자책으로 출간된 항소이유서를 일독하니 지금의 나와 같이 고작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안정된 삶의 여로를 걸어 나갈 수 있었을 터인데도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비판하고 저항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과 신념을 지키고자 처절히 노력해 온 이 분의 삶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방송 회차가 거듭될수록 유시민 작가님의 그 가치관에 진실로 매료되어 있었다. 어쩌면, 작가님께서 걸어오신 여정이 너무도 험난하여 아무나 쉽게 걸어가지 못하는 길이기에,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이 공존하여, 작가님의 말과 글에서 배움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커져 나갔다.

 

 

 

 

 

 그러던 차, 최근 유시민 작가가 2009년 집필했던 청춘의 독서가 리커버 되어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기회를 얻어 책을 읽고 이렇게 서평을 쓰게 되었다.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부터 E . H 카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대문호와 학자들의 작품이나 저술들이 여럿 소개한다. 죄와 벌, 인구론을 통해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지속되어야만 하는가에 의문을 품고,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고 밝히고자 하는 지식인의 소명을 재발견하던 저자의 소회가 담겨있는가 하면, 독일 소설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통해 인권에 대한 존중 없이 특종을 따내기에만 급급한 부도덕한 언론을 고발하는 하인리히 뵐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읽어내기도 한다. 언뜻 개별적으로 보이는 이 작품들은 모두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다. 바로 개별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를 바라보고, 또한 그 안에 속한 개개인을 기억하는 것이다.

 특히 이승만 정권에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이어지는 반공의 기치에 따라 내부에서 적을 만들어 부당함에 항거하는 대학생들이나 납북 어민들을 간첩으로 몰고, 부당함을 지적하는 여러 지식인과 시민들에 폭력을 행사하여 문인들의 자유로운 집필활동을 통제하고 심지어 모든 신문과 언론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보도지침을 따라야만 했던, 자유가 통제되고 인가에 대한 존중을 기대할 수 없는 부조리하고 암울했던 사회 현실을, 러시아의 소설가 푸시킨의 삶과 그의 소설 대위의 딸을 통해, 군대노동자(군인)이나 수용소에서 헹하는 죽음정치적 노동에도 불구하고 충실히 삶을 살아나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통해 전체주의를 폭로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통해, 그리고 진실을 은폐하고 허위보도를 자행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등 독일문학과 러시아문학을 비롯한 세계 고전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씁쓸하게 다가왔다. 그 이후의 시대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나도 이렇게 씁쓸한데, 그 부당한 권력이 지배하는 삶을 살며, 그에 직접적으로 항거하다 군에 끌려가며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는 저자는, 그리고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그 모든 이들은 얼마나 더 처절히 괴로워하고 아파했을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결국 7 , 80년대 암울한 독재정권의 시기를 지나오며 올바른 삶의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한 자기서사가 청년 유시민이 애정을 가지고 읽어온, 깊은 영향을 받은 책들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를 비롯해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이 모두 지금의 우리보다 더 용감하고 비범했기에 그러한 자기서사를 지니고 부당함에 맞섰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특별한 소명을 지닌, ‘남들과는 다른이들만이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자기희생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은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가 지녔던 초인론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방향의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평범한 이들 다수가 함께할 때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령, 윤동주 시인이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고결한 도덕성과 맑은 영혼으로 써 오신 시가 윤동주 시인의 자기 희생정신을,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부당함을 보여주었듯이.

 

 

라스꼴리니꼬프의 초인론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 체제로 현실화되었다.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완벽한 권리를행사한 전체주의 체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인권과 참정권을 부여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에게 의사결정권을 제한적으로 위임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있다.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없이 많은 소냐와 두냐들이 좋은 세상을 만든 것이다. 만약 도스토옙스키가 20세기를 목격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 유시민, 0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청춘의 독서, 2017, 웅진지식하우스, 32.

 

 

 E. H. 카가 밝혔듯 인간 능력의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역사적, 사회적 진보를 야기하는 것처럼 과거에 비해 조금 더 진보한 201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과거와는 다른 시대의 화두가 놓여 있다. 저자와 같이, 혹은 부당함을 위해 몸을 던진 전태일 열사처럼 그 어떤 고문과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없음이 부끄럽긴 하지만, 가톨릭을 종교로 믿으며 헤르만 헤세와 김탁환 작가에게 큰 영향을 받아온, 마틴 부버의 실존주의 교육철학에 깊이 공감하며 교직과 상담에 뜻을 두고 있는 나는 적어도 다시 부당함을 외치고 누군가 희생해야만 하는 사회가 오지 않도록 청소년들이 심리적, 정서적으로 건강성을 유지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조력하며 나의 소명을 다하고픈 소망이 있다.

 성적과 입시경쟁으로 심신을 피폐하게 하는 교육, 물질과 경제적 배경에만 집착하는 욕망 등 목적과 수단의 가치전도현상.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표현을 빌리면 향유해야 할 것을 사용하고, 사용해야 할 것을 향유하는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고 사람을 목적 그 자체로 향유(존중)하며 사물을 수단으로서 사용할 수 있도록청소년들의 인격교육을 위해 헌신하고픈 이상이 있다. 죄와 벌에 나오는 소냐와 두냐의 인격처럼, 약자와 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마음 깊이 소망하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었던 비범한 사람들을 배경으로 놓으면 평범한 사람인 두냐는 더욱 빛난다. 속물 루쥔이 탐냈고 허무주의자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병적으로 집착했던 처녀, 결국 첫눈에 반한 라스꼴리니꼬프의 친구 라주미힌의 삶과 반려자로 맺어진 여인. 나는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농밀한 애정을 쏟아가며 만든 인물이 바로 두냐라고 본다. 오빠의 하숙방에서 소냐를 처음 보았을 때, 두냐는 소냐가 을 파는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인사한다.

 

- 유시민, 0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청춘의 독서, 2017, 웅진지식하우스, 30-31.

 

 그래서인지 나의 자기서사의 경향성은 유시민 작가님께서 사회 정의와 분배등 사회과학 서적의 작품서사와 교차하는 것과 달리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등 독일교양소설, 교육자나 학습자에 대해 다루는 성장소설, 인류애를 보여주는 작품들 김탁환 작가님의 목격자들, 뱅크, 앵두의 시간,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와 같은 작품서사와 교차한다.

 지난 주(721) 알쓸신잡 전주편 후반부에서 논의된 바 있듯 지식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절대적 진리에 대한 경계와 일리(一理)를 수용하는 자세를 늘 염두에 두고 진정 비판해야 할 때,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내가 추구하는 소명과 지식, 가치관과 신념의 방향을 외면하지 않고 실천적으로 적용한다면, 나도 엘스버그나 리영희 선생님처럼, 아니 꼭 멀리서 찾지 않아도 내가 존경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범인 김탁환 작가님이나 유시민 작가님과 같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의 진보에 조금은 기여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월남 정책의 수립을 위한 조사 연구에서 시작하여 정책 수습 과정의 핵심적 지위에까지 올라갔다가 기밀문서를 전 세계에 폭로하는 대니얼 엘스버그는 햄릿적인 과정을 밟아 하나의 진리를 실천한 독특한 지성인이다. 그의 행동에 대해 우익적 여론과 군부에서는 비난과 인신공격, 중상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진실과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매머드와 한 관료 기구 속에서 자기의 임무와 정부의 정책이 부정이며 불의임을 깨달았을 때 진정한 국가이익을 위해 진실을 밝힌 용기는 고민하는 지성인의 최고의 자세인 듯하다. (……) 지성인의 최고의 덕성은 인식과 실천을 결부시킨다는 것이다. 엘스버그는 그의 객관적 인식 변천의 과정에서 로스토-맥나마라-불의 단계를 거쳐서 그 자신에 도달한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엘스버그였던 것이 아니라 로스토에서 시작하는 사상 발전의 과정에서 가슴을 에는 수년간의 고민을 겪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의 실천의 뜻을 깊게 해 준다. 전환시대의 논리, 1920.

 

- 유시민, 02.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청춘의 독서, 2017, 웅진지식하우스, 44-45.

 

 

리영희 선생은 놀랍도록 맑은 영혼을 가진 지식인이다. 지식인으로서의 바른 삶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선생의 글이 막대한 감화력을 발휘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여러 차례 투옥되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 유시민, 02.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청춘의 독서, 2017, 웅진지식하우스, 45-46.

 

 

 지난 1, 영화관에서 개봉한 마틴 스콜세지의 <사일런스>를 본 후 대학 시절 읽었던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재독했던 바 있다. 침묵에 등장하는 기치지로처럼 나의 가치관과 신념을 상황에 따라 바꾸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로드리게스 신부처럼 인간적인 나약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 내면에서는 신념과 가치관을 깊이 있게 보존하고자 하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자기서사와 작품서사의 조응을 통해, 자신이 삶에서 체득한 바를 작품 속에서 찾고, 작품 속에서 배운 바를 삶에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있게 숙고해 온 청년 유시민의 삶과 같이, 나는 어떤 방향으로 신념과 가치관을 지켜가며 살아나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끔 자극을 준, 스물여섯 살 7월의 마지막 를 함께한 청춘의 독서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도 20여년 후, 나의 자기서사와 작품서사 간 조응이 담긴 나만의청춘의 독서책을 세상에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지금의 내 청년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를 진실로 바란다. 더불어 그 여로에 계속 함께 해 줄 지금까지 만나왔으며,  앞으로 만날 많은 책들에 대한 기대를 가진다. 청춘의 독서뿐 아니라 유시민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앞으로의 여정에 함께하게 될 것 같다.

더불어 알쓸신잡 감독판 마지막 화(7/28 9회 방송분)를 시청한 뒤 한 줄의 생각을 더 추가해 보자면, 결국 책을 읽는 그 본질은 지식의 함양도, 여가생활 즐거움을 위한 것도 아닌 공동체의 삶을 위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타자들과 이 세상과 교류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일리들이 모여 진리를 이루기에....... 그리고 누군가의 소중한 가치들이 타인에게 전달되어 자신이 생각하는 어떠한 소중한 가치나 대상이 수많은 타자들에게까지 감응을 주며 뻗어나갈 때, 그 가치들이 전수되어 항존성을 지녀, 더욱 조화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바로 이것이 항존주의 교육철학에서 고전을 강조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바로 여러 저자들이 책을 쓰는 이유 아닐까.

 그 무엇보다 그 어떤 조건이나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그저 사람을 귀히 여기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 ‘자유와 사회정의를 소중히 여기며 전수하고자 하신 작가님의 가치가, 나의 가치에 온전히 녹아들기를 진실로 바란다.

 

 

결국 남은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에서 얻는 감명이 25년 세월을 견디고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나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

- 유시민, 09. 슬픔도 힘이 될까,청춘의 독서, 2017, 웅진지식하우스, 201.

 

 

 

 

by papyros 2017. 7. 2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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