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30주년 기념판

RHK, 2018. (자기계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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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알에이치코리아(RHK)'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RHK 측에 감사드립니다.



 

(네이버 책 정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642251)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의 상아탑 꼭대기에 있지 않았다.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었다. 내가 배운 것들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든 나누어 가져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라.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으라.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우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씻으라.

변기를 사용한 뒤에는 물을 내리라.

균형 잡힌 생활을 하라. 매일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하라.

매일 오후에는 낮잠을 자라.

밖에서는 차를 조심하고 옆 사람과 손을 잡고 같이 움직이라.

경이로움을 느끼라. 스티로폼컵에 든 작은 씨앗을 기억하라. 뿌리가 나고 잎이 자라지만 아무도 어떻게 그러는지, 왜 그러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 씨앗과 같다.

금붕어와 햄스터와 흰쥐와 스티로폼컵 속의 작은 씨앗마저 모두 죽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림책 딕과 제인Dick&Jane, 태어나서 처음 배운 단어, 모든 단어 중 가장 의미 있는 단어인 보다Look’를 기억하라.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9.

 

 초등학생인가 중학생 즈음으로 기억하는 어느 여름날, 가족 휴가로 간 어느 콘도에서인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초반의 청소년이던 내게는 책의 제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학교가 아닌 유치원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고? 무슨 말이야.’ 언뜻 책의 제목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며 책장을 펼쳐 일독하기 시작했으나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행복감에 젖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조금 더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우연히 독서 관련 카페에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접할 수 있었다. 낯설지 않은 제목.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보았는데, 기분 탓일까? 싶었으나 30주년 기념판으로 재출간된 도서라는 소개 글을 읽고 10여 년 전 어느 여름의 행복감을, 20대 후반의 성인이 된 지금 다시금 마주하고 싶었고,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유년기에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책의 제목을 비유적으로 느꼈을 때와는 달리 2018, 이미 대학원을 졸업한 20대 후반의 성인 독자인 내게 책의 제목, 그리고 저자의 경험은 비유적이라기보다 더욱 직접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워 온 학문에 관한 깊은 지식들이 분명 원하는 분야에의 자격을 갖추고 진로를 개척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 속에서 삶의 순간순간마다 간절히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은 저자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듯이 가치관이라는 삶의 지혜였기 때문이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의 가치관과 신념들이 드러나 있는 1: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수많은 타인들에 대해 다룬 2: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천사들, 그리고 마지막 3: 나는 나의 삶을 다시 살 것이다에서는 저자가 지향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미래에 대해 제시된다. 책의 이러한 구성처럼, 이 책은 저자가 실천하고 소망하고 있는 가치가 자신과 타인에서 나아가 세상으로까지 확대되는데, 즉 한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접하고 깨달은 많은 가치들을 이야기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목사 바텐더><도움받을 자격>이라는 에피소드였다. 개신교의 목사인 저자가 신학 대학원에 재학하던 시절 학비를 마련하고자 바텐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꾸중하긴 커녕, 오히려 사람들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겨 격려하는 대학 교수들의 태도. 그리고 장학금을 수령하기 위해 학비사용 계획안을 제출 하는 저자에게 즐거움을 추구하고 타인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예산을 계획하지 않는 학생에게 어떻게 장학금을 주느냐며 반문하는 학장의 가르침은 저자 뿐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까지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내 말을 잘 듣게. 자네 예산에는 즐거움을 위한 항목이 하나도 없네. , , 음악, 심지어 시원한 맥주 한 잔 할 돈조차 없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돈이 한 푼도 들어 있지 않아. 우리는 자네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돕지 않네.”

즐거움을 위한 항목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항목이라고!

나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돕지 않는다고!

세 번째 가르침이었다. 또 배웠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62-63.

 

 

 

 성공하기 위해, ‘빨리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허둥지둥 살아가는 것 보다는 마음 한켠에 여유와 행복의 자리를 비워두며 타인과 그 행복을, 즐거움을 나누는 삶이 더욱 귀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조급함과 불안에 종종 잊어버리곤 하는 그 당연한 가치를 새삼 떠올릴 수 있었다.

한편 2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인어들> 이었다. 거인, 마법사, 난쟁이 중 한 캐릭터를 정해 줄을 서야 하는 놀이에서 자신은 인어인데 인어는 어디에 서야 하느냐는 어린 아이의 물음.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모두 내가 생각하고 그리는 틀 안에 넣고 분류해 이에 맞추고자 하는 획일화된 교육, 이질적인 타인을 수용하기보다는 두려워하고 회피하고자 하는 사회현실. 최근 읽었던 표명희 작가님의 어느 날, 난민이라는 책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 모두가 어떤 부분에서는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고 소외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화된 배경을 존중하기보다는 획일화된 틀 안에서 세상을 운용해 수많은 난민들을 양산시키고 있지 않는가.

 

 

 

 

 

인어는 어디에 서요?

인어는 어디에 서냐고?”

긴 침묵이 흘렀다. 아주 긴 침묵이었다.

(중략)

 여자아이는 거인이나 마법사나 난쟁이 어느 것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인어였다. 놀이에서 빠지려고 하지도 않았고, 게임에서 진 아이들의 줄에 서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인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놀이를 계속하고 싶었다. 자신의 존엄성이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는 당연히 인어가 설 자리가 있으며, 내가 그 자리를 안다고 믿었다.

글쎄……. 인어는 어디에 서야 하나? 인어들, 남과 다른 사람들, 표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 이미 만들어진 상자와 비둘기집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에 서야 하나?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학교와 나라와 세계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26-127.

 

 

 책을 모두 완독하고, 책장을 덮을 무렵 나는 이 책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를 독자들 개개인이 진정성 있는 성찰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 준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저자가 <받은 만큼 돌려주기>라는 챕터에서도 기술하고 있으며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 Pay It Forward>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언뜻 자그마하게 보일 수 있는 누군가의 선행이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순환될 수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나의 일상을 함께하고 있는 동료나 이웃들을 차치하더라도, 나와 그 어떤 관련이 없어 보이는 타인(他人), 심지어 이방인(異邦人)으로 여겨지는 이, 약자(弱者), 심지어 인류를 넘어 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로부터 배울 점이 있고 늘 조금씩 빚을 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타인, 타 생명에 대한 사랑은 성인기에 이르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늘 배워오는 가치이지만, 곱씹어 올라가면 유년 시절부터 강조되어왔고 편견과 선입견 없이 타인과 대상을 대하던 시기가 유년기가 아니었던가.

 

메논은 그 빚을 결코 있지 않았다. 믿음이라는 선물도 15루피도 잊지 않았다. 메논이 죽기 전날에 어떤 거지가 와서 신발이 없어 발이 상처투성이니 샌들 살 돈을 달라고 구걸했다. 메논은 딸에게 지갑에서 15루피를 꺼내어 주라고 했다. 그것이 메논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한테 들었다.

(중략)

 그 사람의 아버지는 메논의 보좌관이었고, 메논에게 자선을 배웠으며, 자신의 배움을 아들에게도 물려주었다. 아들은 낯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전통을 이어나갔다. 이름 모를 어느 시크교도에서 인도 공무원에게로, 그의 보좌관에게로, 보좌관의 아들에게로, 그리고 절망에 빠진 백인 외국인인 나에게로 자비가 베풀어진 것이다. 그 선물은 큰돈이 아니었고, 나 또한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선물은 돈의 가치를 떠나 내게 축복받았다는 느낌을 주고, 나도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81-82.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서로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모퉁이 식품점의 남자, 자동차 정비소의 수리공, 주치의, 선생님, 이웃, 동료들이 그렇다. 항상 거기에있는 좋은 사람들, 작은 일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 매일 우리를 가르쳐주고 축복해주고 용기 내게 해주고 지지해주며,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을 역시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를 의지하고,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에게서 배우고 뭔가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 누가 그러는지 우리는 결코 모른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88.

 

 

 

 

 로버트 폴검의 이 에세이가 3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꾸준히 사랑받아 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추구할 만한 항존(恒存)적인 가치 타인과 생명에 대한 사랑, 늘 누군가로부터 빚지며 사는 존재라는 사실, 공정성, 삶에 대한 경이로움 등 는 거창한 소설이나 동화, 드라마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가까운 곳의 이웃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러한 마음 따뜻하면서도 타성(惰性)을 깨뜨릴 수 있는 깊고도 날카로운 울림은 바로 우리가 직접 발견할 수 있는 주변 인물들로부터 전해져 온다는 사실을.

로버트 풀검이 그리는 그의 할아버지가 그 내면의 추억에 자리하는 조부인 동시에 자신이 바라는 할아버지로서의 이상향(理想鄕)이기도 한 것처럼, 소소하게 보이는 일상 속의 작은 이야기들이 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한편 미래를 그려내게 하고 대를 걸쳐 전해줄 수 있는 가치를 품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다 널리, 오래 전해질 때에 한 개인을,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근원으로 작용하리라 믿으며,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전해 준 저자 로버트 풀검에게 마음 깊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나 또한 세월이 흐를수록 청춘기에서 벗어나 기성세대로 나아갈 지인데, 이 책을 읽어주며 새로운 청춘들과 소통하고 내 경험을 전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할아버지 집에 간다. 할아버지와 나는 밝은 람바 사기타리 별과 겹칠 정도로 가까워진 금성과 목성, 서남쪽 하늘에서 달리는 큰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본다. 머리 바로 위에는 뿌연 안개 가튼 안드로메다 성운이 보인다. 여름이 되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은하수도 보인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할아버지는 1910년에 본 헬리혜성 이야기를 해준다. 그해 5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밤, 할아버지는 인류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체험한 일을 목격했다. 세상은 헬리혜성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과 두려움을 느끼며 공포에 떠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할아버지는 헬리혜성이 다시 올 때 자신을 대신해서 꼭 보겠다는 약속을 하란다. 나는 약속한다.

새벽이 올 때쯤이면 머리 위 하늘을 지배하는 위대한 사냥꾼 오리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베텔게우스와 벨라트릭스, 오리온 허리 부분의 성운,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를 향해 있는 발 부분의 리겔과 사이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오랫동안 똑같은 별들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어서 지구와 마찬가지로 저 하늘 어딘가에도 생명체가 있고, 어떻게 생겼든 간에 우리를 보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서 보면 우리 지구도 빛날까? 우리 지구도 그곳에 사는 존재들이 상상력과 경이로움으로 만들어낸 밤하늘 별자리의 일부분일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어떤 것,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어떤 것의 일부이며 그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잃지 않으려면 가끔씩 나가서 하늘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잠자리에 든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95-196.

 

 

상상력은 지식보다 강하다.

신화는 역사보다 강력하다.

꿈은 사실보다 힘이 있다.

희망은 늘 경험을 이긴다.

웃음만이 슬픔을 치유한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9.

 

 

 

 

 

 

by papyros 2018. 6. 20. 14:21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필로소픽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필로소픽 측에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책과 독서에 대한 나의 애정고백서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2.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읽지 않은 책이 점점 더 늘어난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15.

 

 

  ‘내 마음속의 근원적인 불안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을 때 내 생이 끝장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67.

 

 

 

 

 학창시절, 나는 교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학생이었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도서관 청소를 자원했으면서도 청소는 뒷전이고 도서관에서 줄곧 독서에 매진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는 후문(後聞)은 성인이 된 후에야 모친의 지인이신 분으로부터 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유년시절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진실로 즐겨하던 나는 최근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죽기 직전까지 내 서가(書架)에 꽂혀져 있는 종이책들과 리더기에 다운로드 받아둔 E-book들을 완독(玩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20대 후반이니, 심각한 노안이 오기 전까지 약 25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으며, 그 이후 돋보기를 끼고 안경을 볼 수 있는 시간도 30년밖에 되지 않는데, 아직 읽은책보다 읽고 싶어 구입했으나 읽지 못한책들이 훨씬 많으니……. 그러나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이는 나만의 불안이 아닌 독서가들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자연스런 걱정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해리포터만큼이나 신비롭고 환상적인 표지를 지닌 이 책은 소설 등의 문학작품이 아닌, ‘책에 대한 이야기로서, 소설을 쓰는 일을 업()으로 둔,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한 독서가의 에세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챕터마다 화두를 던진다. 1나쁜 책, 스토커, 그리고 독자에서는 독자로서 지닐 수 있는 독자들의 책에 대한 감정과 독서법에 대해, 2사형수, 도둑, 선원, 알코올중독자 그리고 작가에서는 삶 전체가 바로 곧 작품이었던 작가들의 생()에 대해, 그리고 책의 제목이 되는 마지막 3네 번째 책상 서랍, 타자기, 그리고 회전목마에서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서재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선 저자가 다룬 가장 핵심적인 화두(話頭)는 우리 사회의 독서 문화에서 자성해야 할 부분인 고전주의(古典主義) 독서법이었다. 서울대생, 하버드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읽은 도서 목록들이 신문에 기사화되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처럼 소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고전(古典) 목록에 포함된 작품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과도한 부담감을 부여하는 독서문화에 대해 저자는 강력히 비판한다. 국어교과에서도, 교과서에 문학작품을 수록하는 기준에 있어 정전(正典)’의 자격 여부가 핵심적인데, 교과서에 선정될 만한 정전(定典) 기준이 재검토될 때, 그리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작품이 정전(定典)으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충분히 수용하고 인정할 때 더욱 다양한 양질의 작품들을 학습자들이 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일컨대 최근 사회에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조남주 작가님의 소설82년생 김지영의 경우 그 문제의식과 시대의 반영 면에서 보편적인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받은 바 있다. 때문에 문학사 일컫는 정전(正典)의 자격을 아직 부여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정전(定典)의 자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저자가 소개했듯이, 현대에 와서는 교육 고전(古典)으로 널리 알려진 장 자크 루소의 작품에밀1762년 출간 당시만 해도 금서로 지정되어 루소가 스위스로 망명을 가야만 했던 일화를 통해 고전(古典)이나 정전(正典)의 자격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재조정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문학치료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이로서 저자가 말했듯 독자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관심사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 즉 작품을 통해 작가의 고민과 작품의 고민을 통해 자신의 고민들이 이어지는 작품이야 말로 독자 자신에게 고전(古典)이 되는 작품이라는 저자의 메시지에 매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작품서사와 자기서사가 긴밀히 조응(照應)하거나, 작품서사와 자기서사의 간극이 작품을 통해 조정되고 변화할 수 있을 때 그 작품은 한 개인에게 고전(古典)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가령 그것이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라고 하더라도 독자의 자기서사가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변화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작품서사를 지니고 있다면, 해당 독자에게는 고전(古典)으로 자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의미에서 내게 있어서는 중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감응(感應)을 받고 있는 헤세의 작품들이나 김탁환 작가님의 작품들이 고전(古典)에 속하는데, 나의 자기서사가 문학치료학의 서사이론 영역 중에서도 보살핌의 대상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모감싸기 서사에 가장 공감하며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헤세의 성장소설, 교양소설이나 사람의 내면과 내면이 맞닿아 있는 서사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상상의 서재에서 만난 <세상에서 사라진 책들의 목록> 에 대한 아이디어도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했던지라 역사책을 읽으며 늘 현재까지도 논란중인 당쟁희생설과 사도세자의 역모라는 설 등으로 대립되는(정병설과 이덕일교수의 논란이 대표적.)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해 그 진실과 자신의 심경을 영조가 기록해 둔 책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나, 속편이 없는 작품에 대해 속편이나 후일담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설 해리포터에 대한 팬픽션(2차 창작)에 본편에서 나타나지 않은 독자들의 소망을 투여하는 것이 그러하고, 다음에서 연재중인 웹툰 <, 그리고 황제> 같은 작품이나 시간을 되돌리는 역사드라마 등의 작품들이 만약세상에 없는 책/작품들이 존재했다면, 발견된다면 어땠을까 꿈꾸어 보는 독자들의 소망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보르헤스는 한때 아름다움이 소수 작가의 특권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아름다움이 모두의 것이며 우연히 뒤적이던 책 어느 페이지나 길거리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도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면서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고전은 무슨 대단한 장점을 지닌 책이 아니다. 그것은 각 세대의 사람들이 온갖 이유 때문에 넘치는 열의와 알 수 없는 공경심을 가지고 읽게 되는 그런 책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38.

 

 

 고전 독서는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독자 자신이 지금 현재상황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개인적인 관심과 문제의식, 나아가 당대가 제기하는 문제와 대결하기 위한 사유의 연장에서 자신에게 필요할 때 찾아 읽어야 한다. 취향이 너무나 고전적이라 고전이 자신의 영혼에 딱 맞는 옷이라면 고전만 찾아 읽어도 된다. 그게 아니라면, 결코 고전이라는 권위나 고전 목록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40.

 

  만약 당신이 한 권의 책에서 자신의 실존적인 삶과 관련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책을 해석하는 것보다 그 책에서 당신이 무슨 고민을 발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작가의 고민과 작품의 고민, 그리고 당신이 책 속에서 발견한 고민들을 연결시키며 깊이 생각해보라. 즉 해석하지 말고 고민을 발견하라. 그러면 한 권의 책은 당신에게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올 것이며, 색다른 전율과 기쁨을 만나게 될 것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43.

 

 

 

 

 2부에서 저자가 소개한 작가들은, 작가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경험한 삶의 비극들이나 독특한 삶의 자국들이 그들의 작품에 반영된 일화들이 소개된다. 때문에 2부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다. 유형지에 머물렀던 경험이 있는 사형수 도스토예프스키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한 일화인지라 차치하고서라도, 콜리마 이야기의 저자 바를람 살라모프가 정권의 핍박으로 인해 겪은 고통, 장 주네의 도둑 일기가 당대 사회의 독자들에게 준 영향(부조리에 대한 고발) 등은 매우 놀라웠다. 1970년대 노동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위장취업까지 하면서 그러한 경험을 작품에 녹인 황석영, 방현석 작가님의 삶이나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대학원을 다니며 경험한 대학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결국 청춘을 다 담았던 연구자의 길에서 돌아나와야만 했던 김민섭 작가님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그리고 대학에서 소설이론이나 소설 창작에 대한 수업을 따로 들으신 적이 없음에도, 그저 노동자로서 글을 쓰신 회색 인간의 저자 김동식 작가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작가님들의 삶에, 그리고 작품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작가님들이 경험하신 특수성과 더불어 어쩌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보편성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특히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일화는 이유진 선생님의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유진 선생님께서는 파리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바로 귀국한다면 교수직이 보장되어 있었던 그의 삶에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 참여로 인해 정치권으로부터 탄압, 그리고 그로 인한 망명이 이어졌고, 개인사적으로는 아들이 선천성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비극까지 앉게 되었다. 연이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가 분노와 서러움의 감정으로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겪은 비극을 후손, 후학들이 격지 않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책을 읽고 연구하며, 추구할 만한 올바른 가치와 태도를 지켜나가고자 노력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소크라테스가 일컬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온몸으로 실천한 것이며, 저자가 소개한 또 다른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표현한 지식인의 참된 모습이 바로 이유진 선생님의 삶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표현을 통해 되새기고 이유진 선생님의 삶을 통해 발견한 지식인의 모습. 대학에서 얼마나 전문적인 분야를 전공했는가, 얼마나 많은 학위를 취득했는가보다는 꾸준히 양서(良書)를 읽으며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자신이 배운 바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점임을 다시금 깨닫고 지금의 나는 과연 참된 지식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 자성하게 되었고 이에 부끄러워졌다. 더 많이 세상과, 그리고 타인의 식견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통해 시련과 고통, 서러움과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생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니체적인 순수 긍정, 허무를 극복한 허무,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한국의 선비상을 보았다.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으면서도 끊임없이 조국을 걱정하고, 지식인으로서 조금이라도 후학들에게 힘이 되고자 끝없이 책을 읽고 탐구하며, 서양의 중심에 있으면서 오히려 우리가 외면하는 전통의 정신과 지혜, 사상을 더 깊이 연구하고 불의와 비굴함, 속된 것들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 고고함을 지닌 현대의 선비.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86.

 

 

 한국 사회가 그런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남을 짓밟고 진실마저 짓밟고 올라선 꼭대기 삶이나 60평 고급 아파트의 안락한 삶은 그런 조촐하고 가난한 삶에 감히 비견될 수도 없음을 깨달을 때, 잃어버린 우리의 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88.

 

 

 

 

 진짜 지식인은 겐자부로에 따르면 독서인들이다. 돈벌이와 무관한 지식이나 교양일지라도, 틈틈이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폭넓은 교양을 쌓고, 나아가 사적인 영역뿐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 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행동하기를 저어하지 않는 모든 이들, 불의 앞에서 촛불을 들 줄 아는 모든 이들은 모두 지식인이라고 해야 한다. 사이드의 말처럼, “사회 안에서 사고하고 우려하는 인간들이 지식인이다. 겐자부로는 말한다.

 대학에서 얻은 전문지식을 신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세 도움이 되지는 않을 지식인의 (아마추어로서 개개인이 각각 즐기고 쌓아가는) 독서를 또 하나의 새로운 습관으로 삼아주었으면 좋겠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34-135.

 

 

 

 

 마지막 3부에서는 드디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책상에 달린 열 한 개의 서랍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열 한 개의 서랍 중 세 번째 서랍네 번째 서랍이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세 번재 서랍의 경우 칸트가 일컬은 현상세계’, 즉 우리가 감각을 통해 경험 가능한 인식 세계, 현실을 의미하는 반면, ‘네 번째 서랍은 세 번째 서랍에 시간이라는 환상의 차원이 덧붙여진 세계를 의미하고 있다. 즉 우리가 여러 문학작품에서 만나는 시/공간을 넘은 여러 인물들과 시, 공간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 번째 서랍이 우리의 현실 그 자체라면, 네 번째 서랍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허구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소설의 정의(定義)와 같이, ‘허구적으로 만들어진또 다른 현실 공간이다. 세 번째 서랍과 네 번째 서랍에 대한 부분에 대해 생각하며, 네 번째 서랍에 속하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작품 속 인물들이 기실 세 번째 서랍에 속하는,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들이었듯이, 네 번째 서랍 속의 세계에 속하는 해리 포터라는 소년은 세 번째 서랍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학대 속에 외로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꼬마 아이일 수 있으며, 네 벤째 서랍에 속하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속 한스 기벤라트가 획일화된 학교교육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성장해 온 바로 옆의 한 소년이거나 심지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재발견 할 수 있었다. 구운몽에 등장하는 성진-양소유의 욕망이 기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욕망 그 자체였으며, 홍길동전의 길동과 그의 수하들이 바로 세 번째 서랍에 자리하는 수많은 서얼들과 양민들을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 특히 소설을 허구적인 것이며 현실과는 괴리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현실과 작품을 분리시키고 있을지 모르는 혹자(或者)들에게 바로 이 부분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마술적이고 환상적으로 보이는 네 번째 서랍 속의 수많은 세계들은, 바로 우리가 지금 뿌리내리고 있는 세계를 비유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두 세상은 늘 평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타자기는 스스로 회전하는 회전목마가 둘러싸고 지키고 있다. 누군가 이 타자기를 훔치기 위해 접근하려 하면 회전목마가 빛의 속도로 회전하는데 그 무시무시한 회전속도는 가까이 접근하는 모든 사물들을 모래알처럼 산산조각 내버린다. 목마들은 유니콘의 형상을 하고 있고, 그 목마들은 이 세계의 중심이자 기원인 타자기를 충실하게 지키는 영원한 파수꾼이다. 이 타자기가 존재하는 한, 이 세계는 무한히 새로운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12.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제기한 고전(古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기도 하고, 책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늘 책을 한 권씩 사 오고야 말고 심지어는 좋아하는 책가의 책을 수집하고픈 욕심이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나게 되는 한권의 책이 주는 기쁨에 어쩔 수 없는 애독가로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들을 느꼈다. 또한 이러한 종류의 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책에 대한 책들이 그러하듯이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작가와 작품을 새로이 접한 바, 새로이 만나게 될 작품들에 벌써 기대가 된다. 물론,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이미 깨달았듯이, 무한한 우주 그 자체인 그 도서관에 소장될 수 있는 책의 권수조차 유한한데, 나약한 한 개인일 뿐인 나 또한 내가 읽고 싶은, 읽고자 했던 책들을 모두 읽지 못할 것임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어나가는 이유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책이 선사하는 그 자체의 즐거움 너머 세 번째 서랍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네 번째 서랍속의 새로운 세계,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나와 다르면서도 유사한 인물들을 통해서 내 내면의 깊은 곳과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대화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선물 같은 순간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네 번째 서랍, 다섯 번째 서랍, 여섯 번째 서랍- 수많은 작품들을 진실로 기다린다.

  더불어 이러한 기쁨과 설레임이 넘치는 책상 서랍 속 여정에 동참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가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사랑이건 책이건, 또 다른 무엇이건 간에 예기치 못한 경이로움과 전율을 안겨 줄 어떤 낯선 대상을 어느 미래엔가 반드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다림의 설렘만으로도 삶은 한 번 살아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87-88.

 

든 책은 마법이고 동시에 진짜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없는 세계의 책이라는 한 권의 책이 시간과 공간 모두를 포괄하는 이 세계 자체와 일치하는 책이라면. 그 속에는 가능한 역사와 아직 쓰이지 않은 책도 모두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우주적인 한 권의 책이야말로 실제이며,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와 벤 존슨을 포함한 모든 작가와 그 작가들이 쓴 책들은 그 책의 한 부분이며, 따라서 허구이거나 책의 환영일 수도 있다. 어쩌면 보르헤스가 꿈꾸었던 <바벨의 도서관> 역시 그러한 한 권의 책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책과 세계는 마치 꿈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섞이듯, 서로가 서로를 꿈구면서 한데 뒤섞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04.

 

 

 

 

 

 

 자는 한 권의 책과 함께 그들만의 내밀한 비밀을 영혼 속에 간직한다.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책과 독자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84.

 

 

 

 

 






 

'이 서평은 필로소픽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것임을 밝힙니다'

 

by papyros 2018. 6. 2. 21:49

베아트릭스 포터, 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E-book cafe <피터 래빗 전집>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민음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민음사 측에 감사드립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곳이 맞고, 저 사람에게는 저곳이 맞다. 내 경우에는 티미 윌리처럼 시골에서 사는 것이 더 좋지만.”

 

- 베아트릭스 포터, 도시 쥐 조니 이야기,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575.

 

 

 

 ’피터 래빗. 기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피터 래빗은 그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수많은 귀여운 동물 중 하나일 뿐으로, ‘이나 영화같은 컨텐츠보다도, 오히려 클리어파일, 노트 등 학용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토끼일 뿐이었다.

 그러나 2018년 봄, 성인이 되어 제대로 마주하게 된 피터 래빗 전집덕분에, 베아트릭스 포터로부터 세상에 나오게 된, 피터 래빗을 비롯한 여러 동물 가족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자세히 접하게 되었다. 금색과 빨간색의 고급스런 표지, 양장본, 그리고 척 보기에도 제법 두꺼운 책에 압도되었으나, 책을 펼쳐든 순간 나는 동물가족들의 이야기로 몰입되어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단연 우화라고 할 수 있다. 피터 래빗을 비롯한 토끼가족, 생쥐 가족, 고양이 가족 등 수많은 동물들을 사람처럼 의인화하여 그 속에서 인간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전집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몇 가지 떠올리자면- 피터 래빗 이야기, 피터 래빗 이야기, 플롭시 버니네 아이들 이야기, 토드 씨 이야기(토끼 가족 스토리), 글로스터의 재봉사 이야기, 피글링 블랜드 이야기, 꼬마돼지 로빈슨 이야기정도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플롭시, 몹시, 코튼테일, 그리고 피터까지 4남매의 토끼가족 중 막내로 유독 장난기가 심하고 모험심이 강했던 피터 래빗. 자칫하면 맥그리거씨에게 붙잡혀 토끼파이신세가 될 수 있다는 어머니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맥그리거씨의 밭에 들어갔다가 파란 웃옷을 잃어버리는 등 호된 경험을 하고 돌아온 그의 유년시절에서부터, 그가 성년이 되어 펼쳐지는 플롭시 버니네 아이들 이야기, 토드 씨 이야기에서 그의 사촌 벤저민 버니와 누나 플롭시가 결혼해 얻은 여섯 마리의 아기토끼까지, 그들은 일평생을 농장 주인 맥그리거, 혹은 다른 동물(오소리나 여우 같은)들에게 잡혀갈 수 있다는 위험(불안)을 안고 지낸다. 여우나 오소리 등의 본능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맥그리거씨로 표상되는 인간의 이기심, 욕심 때문에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글링 블랜드 이야기꼬마돼지 로빈슨 이야기에서 피글링과 로빈슨이 결국 자신의 친구를 팔아넘기려는, 그리고 자신을 키워 베이컨으로 만들려고 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도망치는 여정을 그린 모험적인 이야기 이면에 그들이 그런 여정을 겪을 수밖에 없게 만든 인간들의 욕심에 잔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글로스터의 재봉사 이야기는 따뜻한 인간을 도와 실을 잣는 생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유년시절 읽은 동화 <구두장이와 꼬마요정>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앞서 언급한 맥그리거씨나 로빈슨을 잡아 베이컨으로 요리하고자 했던 요리사와 같은 인간의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오히려 인간이 동물들의 도움을 받는 내용이었다.

 일련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동물들을 모두 의인화해 표현하고, 이들이 인간에 의해 희생당할 위기에 처하거나, 혹은 인간을 돕는 내용이 그려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과 생명, 특히 동물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던 저자 베아트릭스 포터가 사람도 동물의 한 종()에 불과하며 사람들과 동물들은 이 세상에서 공생하는 존재라는 점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야기들 대부분에서 ’(맥그리거, 오소리, 여우 토드 등)에 대항할 때 조력자가 등장한다는 사실도 유의미하다고 여겼는데, 위험과 불안에 함께 대응하는 조력자를 통해 개개인의 힘보다는 조력자와의 협력(協力)을 통한 공동체성의 가치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한편 도시 쥐 조니 이야기, 여우와 황새 이야기의 경우 어릴 적 읽었던 이솝우화의 <도시 쥐와 시골쥐>,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와 매우 유사해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솝우화를 소재로 삼아 베아트릭스 포터가 각색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도시 쥐 조니 이야기를 통해, 지나치게 격식화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자성과 더불어,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농촌의 소외현상이라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저자의 가치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 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도, 각자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공존해야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게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전해졌다.

 귀여운 삽화 이면에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이면의 메시지를 대부분의 독자들이 마찬가지로 읽어낸다면, 피터 래빗 전집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이솝우화등의 고전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저자가 영국인이다 보니 영국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어휘나 노래, 비유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책과 더불어 저자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에 대한 이해, 영국 문화권에 대한 이해 등이 배경지식으로서 활성화 될 때 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2006년에 세상에 등장했던 영화 <미스 포터>를 함께 보거나 이와 더불어 책에 대한 큐레이터, 독서모임에서의 나눔 등 전문가나 타인의 해석을 아우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어머니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 <용궁에 간 토끼>이야기를 들으며 꿈나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이런 동화들은 왜인지 모르게 성인이 된 지금에까지 뇌리에 깊이 남는다. 피터 래빗 전집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도 그렇게 한 편씩 잠자리에서 들려줄 이야기로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피터와 벤저민이 아기 토끼들을 데리고 의기양양하게 나타났을 때 바우서 영감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플롭시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기 토끼들은 가벼운 타박상을 입고 몹시 허기진 상태였다. 아기들은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고 곧 회복되었다.

 

- 베아트릭스 포터, 토드 씨 이야기,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484.

 

 

 고양이는 순수한 우정에서, 그리고 요리사와 바나바스 선장에 대한 앙심에서 로빈스이 여러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게 도와주었다.

 

- 베아트릭스 포터, 꼬마 돼지 로빈슨 이야기,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665.

 

 

 

by papyros 2018. 5. 26.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