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녕달, 『안녕』, 창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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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창비출판사 측에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이젠 괜찮아…….”
그의 표정이 미묘해서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고맙소.”라고 말했다. 그날, 소시지 할아버지는 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소시지 할아버지는 이곳에 남게 되었다.
- 안녕달, 『안녕』, 창비, 2018, 236-255쪽.
수박수영장 이라는 그림책으로 널리 알려지신 안녕달 작가님의 신작 그림책인, <안녕>이라는 그림책을 처음 접했다. 기실 글줄로 된 책에 너무도 익숙해진 터이고, 심지어 종종 즐겨 보는 만화책에조차 적당량의 대사가 담겨있기에, 유년시절 이후 대사가 적은 그림책은 퍽 낯설었다.
적당한 낯설음, 그리고 마치 눈오는 마을을 그린 듯한 표지의 감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적당한 기대를 지니고 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솔직히 당황했다. 그림책에 사람도, 동물도 아닌 웬 소시지? 소시지라는 대상의 의인화는 낯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품으로부터 느껴지는 온기가 마음에 스며들었다. 따뜻하고 사랑 많은 소시지 어머니의 자녀로 태어난 소시지씨가 유년시절을 거치고 늙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소시지씨가 어머니를 여의고 외로워할 때 그에게 한 곰인형과, 흰둥이 강아지가 찾아온 과정... 누군가를 잃고 소외된 소시지씨의 처지와, 다른 강아지들이 모두 분양되어 갈 때 떨이로 전락하고 말고 심지어 그냥 가져가라는 팻말이 붙은 흰둥이에게는 모두 공통적으로 버림 받은 듯한 감정, 외로움, 소외 라는 감정이 관통된다.
무심하게 흰둥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지나가던 소시지씨가 흰둥이를 결국 데려가야만 했던 것도 흰둥이에게서 그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욱 놀라운 건 마지막 4장이었다. 3장에 그려진 소시지씨의 죽음 이후 홀로 남겨진 흰둥이의 행적들을 바로 소시지씨가 사후 지켜보고 있던 것이었다. 지난 겨울 관람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원더풀라이프> 라는 영화에서처럼, 죽음 이후 천국에서 자신의 삶에서 놓고 온 단 한 대상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이 그림책 4장에 그려진다. 소시지씨는 자신의 삶에 놓고 온, 보고 싶은 단 한 대상으로 그의 강아지 흰둥이를 택한다. 홀로 남겨진 흰둥이는 위험천만하게도, 언제 터져버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불꽃과 폭탄아이와 함께 다닌다.
그러나 영상의 말미 불꽃에게 유리모자를 씌워주고 폭탄 아이의 날선 머리(폭탄의 심지부분)을 핥아주는 흰둥이를 보고, 소시지씨가 그제서야 걱정을 내려놓으며 ‘이제 괜찮아’를 언급할 수 있었던 데는, 세상에서 아무리 위험하다고 말하는 , 꺼려하는 그 어느 존재일지라도 그들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쓰다듬으며 옆에서 함께 있어줄 때만이 그 아픔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어머니를 잃은 소시지씨가 흰둥이와 곰인형으로부터 위로를 얻고, 모두에게 선택받지 못한 처치 곤란한 존재로 여겨지던 흰둥이가 자신을 거둬 준 소시지씨에게 사랑을 전해주었듯이.
사랑을 받은 존재만이 또 다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이 그림책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한 권의 그림책이 때로는 300페이지의 여느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보다 더 함축적이고 의미있는 작품일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으며, 어린이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닌, 외로움을 느끼는 많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그림책이라고 여긴다.
주변의 아파하는 이들, 소외된 이웃들, 외로움이나 불안을 느끼는 이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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