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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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네이버 E-book cafe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RHK(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RHK측에 감사드립니다.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그러면 반드시 응해 올 거야.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158.

 

레일라는 살아 있는 거야? 죽은 거야? 적어도 그것만이라도 알려줘. 너희들의 깨끗한 마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야. 만약 레일라가 살아 있다면 도와줘.”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159.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이 서정적인 제목을 지니고 있는 미야모토 테루의 이 작품은, 단순한 서사구조 안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환상의 빛>을 먼저 접했는데, 알고보니 그 영화의 원작소설 작가가 바로 미야모토 테루였기에 작품의 서정성이나 서사 구조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서정적인 소설이라는 소개와는 달리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마주하게 되는 것은 기쿠에 올컷이라는 한 여성의 죽음이다. 그녀는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미망인으로, 남편인 이안 올컷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이 남편 대에서 성공을 거두었기에 상당한 재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전국 일주 중 벌어진 '기쿠에 올컷'의 죽음. 그리고 망자의 유산을 그녀의 조카인 오바타 겐야-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원에서 유학하며 MBA과정을 마친 일본인 가 전부 상속하게 되어 오바타 겐야가 로스엔젤레스(LA)의 팔로스버디스반도로 건너가게 되면서 작품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기쿠에 올컷의 집 그 정원에서 겐야가 마주한 진실은, 백혈병으로 여섯 살의 나이에 죽은 줄만 알았던 사촌 레일라가 사실 유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비공식적인 기쿠에 올컷의 유언 마지막 줄에 따라서, 레일라를 찾아 유산의 70%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책임이 겐야에게 부과된다.

 

 

“‘그것과는 아직 떨어질 수 없다……. ‘그것이라고 쓰여 있는 걸로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고. 물건인가. 떨어질 수 없는 물건……. 멜리사는 레일라와 나이가 별로 다르지 않지. 그렇다면 그때는 다섯 살이나 여섯 살. 그 정도의 여자아이가 떨어질 수 없는 그것이란 한정되지 않을까? 부모가 우격다짐하지 않고 느긋하게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그것이라고 하면 인형이나 장난감, 이제 갓난아기가 아닌 유아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겠지.”

 겐야는 니코가 교코 매클라우드의 편지에서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낀 것인지, 딸 멜리사가 떨어질 수 없는 그것에만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이라……. 이 교코 매클라우드의 편지를 보면 원래 몬트리올에 살지는 않았군. 다른 나라에서 이주한 거야. 기쿠에 씨하고는 어디서 알게 되었을까? 일본에선가. 일본에서부터 친구인데 기쿠에 씨는 미국인과, 교코는 캐나다인과 결혼했지만 교우관계는 이어졌다. 하지만 기쿠에 씨는 그것을 남편한테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어떻게든 남편에게 숨기고 싶었다. 그건 왜일까?”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152-153.

 

 

 레일라를 찾기 위해 오바타 겐야가 기쿠에 올컷이 만약을 위해 남겨둔 마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것만 같은 힌트들을 찾아내고, 사립탐정인 니콜라이 벨로셀스키’(니코)가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히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이 협력하여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기쿠에 올컷이 유괴사건에 가담했다는 것. , 딸을 유괴당한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했다는 것. 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독자들은 ? 무엇 때문에 어머니가 딸을?”이라는 질문에 당면하게 된다. 그녀가 유괴라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감수하고서라도 레일라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야 했던 것은, 마트 CCTV안에서 자신에게 타월을 흔드는 딸 레일라의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학생을 만났나요?”

흑인 경비원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 .. 건방진 꼬맹이였어요. 신분증을 보여달라지 뭐예요.”

경비원은 웃으며,

학생의 요구는 정당한 겁니다.”

하고 말했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207.

 

 

언제였더라. 사격 클럽의 이사를 맡고 있다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가,

매년 미국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이 총알이 들어있지 않은 총으로 죽는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위의 어른들도 총알이 들어 있지 않다고 믿는 총으로 놀다가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221.

 

 

 

벽이나 창에 매달린 화분의 숫자 말이네. 거베라 화분이 서른세 개야. 레일라는 서른세 살이지. 우연일까?”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260.

 

 

이후 작품의 후반부에서 겐야가 교코와 케빈 부부를 만나며 밝혀지는 진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왜 어머니가 직접 유괴사건을 조작해 딸을 떠나보내야만 했나하는 물음에 석연치 않았던 부분이 드디어 풀리는 지점. 소설에서만 나타나는 허구라고 치부하기에는, 대부분의 성폭력이 친족 간에 일어난다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최근 읽었던 프레드릭 베크만의 신작소설 베어타운에서도 하키단 단장의 딸 마야가 유소년팀 하키팀 유망주인 청소년 케빈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공동체의 시선과 싸워나가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사건 이후 공동체 안에서 외롭고 처절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족들이 추구하는 가치인 사랑안에서 부모님의 보호 속에 사건을 함께 극복해 나가면서 결국 베어타운에 남게 되다. 그러나 이 작품의 레일라는 결국 어머니를 떠나 다른 가정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니고, (그녀의 친부모를 잊고) 살아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레일라와 마야의 삶은 (본래의 가족들과 함께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마야와 레일라 둘 모두,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한 모성애에 의해 보호받았으므로.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삶은 어떤 어린아이에게나 당연한 환경이어야 하는 것이다.

 

 

기쿠에 씨는 굉장한 정신력의 소유자네. 감탄할 수밖에 없어. 27년이나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불안이나 공포와 싸우며 살아온 거니까. 몬트리올대학의 졸업식 식장에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멜리사 매클라우드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쿠에 씨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401.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부터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손에 맡겨 자신을 잊게 해야만 했던, 그리고 범죄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평생 두려워하며 살아야 했던 기쿠에 올컷의 비극적인 상황. 딸을 보호해야 하는 그녀의 깊은 애정이 아니었다면, 레일라는 지금의 삶처럼 행복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기쿠에 올컷이 진정으로 바라고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야 말로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의 행복이었기에, 작품 말미에 겐야가 그려낸 27년 전 기쿠에 올컷과 레일라의 모습은 따뜻하고도 슬픈 느낌이 묻어난다. 레일라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비극을 기꺼이 감수한 어머니 기쿠에 올컷의 희생이, 마치 자신의 진주알을 기꺼이 내어주는 어미조개 같기에. 그만큼 아름답고도 서린 사랑이기에.

 

 

 

 

 겐야는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오바타가의 능소화보다 색이 짙고 꽃잎도 큰 올컷가의 능소화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중정의 잔디밭 위에 27년 전 서른여섯 살의 기쿠에 고모를 두었다. 겐야에게는 그 모습이 확실히 보였다.

기쿠에 고모는 길이가 긴 주름치마를 입고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겐야가 잠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어디선가 어린 레일라가 달려와 엄마에게 안겼다. 기쿠에 고모는 깔깔 웃음소리를 내며 레일라와 함께 잔디밭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달빛이 두 사람의 몸에 금색으로 선을 둘렀다.

레일라는 엄마에게 안아달라며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나서 꽃밭으로 달려가 꽃들을 가슴에 안을 만큼 안아서는 강아지 같은 걸음걸이로 돌아와 엄마에게 쏟았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405.

 

 

 추리적(미스테리적) 서사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이 가치 있었던 이유는, 기쿠에 올컷이 그녀의 조카에게 전해주고자 한 - 마치 퍼즐과도 같은 레일라에 대한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한편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지닌 내면의 깊은 곳에 순수한 사랑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한 개개인의 소망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겐야가 품은 제시카에 대한 사랑, 탐정 니코와 함께하는 터본스테이크와 스프가 마련된 식사자리 등의 소박한 행복이 서사 속에 자리하는 것은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삶의 그러한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중정의 풀꽃이라는 신비스러운 존재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한편 행복소망하며 진실을 찾아나가는 서정성. 양측의 무게 추를 맞추는 사이 기쿠에 올컷의 내면을 독자 자신에게로 내사하는 마법 같은 순간, 작품은 마무리된다.

비극과 행복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중정의 꽃들, 기쿠에 올컷의 결심, 겐야와 니코의 추리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만 같은 작품이었다.

(애초에 영화화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극장 스크린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기쿠에 씨는 이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나서 레일라가 좀처럼 잠을 자지 않는 밤에는 정원의 꽃밭으로 안고 나갔어요. 그리고 반드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아무리 무서운 일이나 슬픈 일이 일어나도 엄마가 반드시 도와줄 테니까, 레일라는 그냥 안심하고 있으면 된다고 말이에요.

 그러고 나서 기쿠에 씨는 레일라가 얼마나 영리하고, 마음씨가 얼마나 고우며, 모두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인지를 몇 번이고 말해주었대요. 어른이 되면 키도 크고 다들 돌아볼 만큼 예뻐질 거야. 그렇게 되도록 이 꽃밭에 부탁해보자, 꽃에게도 풀에게도 나무에게도 마음이 있어.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레일라의 마음과 꽃, , 나무의 마음은 말을 할 수 있어. 꽃도 풀도 나무도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말해줄 거야. 레일라도 언젠가 꽃, , 나무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러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알게 될 거고…….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393.

 

 

 

 

 

 



 

by papyros 2018. 5. 4. 01:07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가제본도서)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다산북스 출판사 <베어타운>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다산북스 출판사' 에서 도서(가제본)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다산북스측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여기서 무슨 상품을 개발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무슨 제조업체도 아니고. 우리는 인간을 육성하고 있어요. 그 아이들은 사업 계획이나 투자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에요. 몇몇 후원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청소년 육성 프로그램은 공장이 아닙니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92.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 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중략)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153.

 

 

 

 베어타운, (구체적인 지역은 작품에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어느 작은 소도시로, 숲속 한 가운데 자리해 숲속마을로 불리는 이 곳에는 베어타운 아무리 즐겨도 부족한 도시 라는 문구가 적힌 과거의 유행어가 담긴, 세월의 흔적에 빛바랜 표지판이 남겨져있다. 과거만 해도 마을에 학교가 세 개씩 있었으나 이제는 단 한 학교가 남았으며, 일자리가 줄어 실업률이 늘고 인구도 점점 줄고 있으며, 해마다 숲이 폐가 한 두 채씩을 삼켜버리는 곳이다.

 그런 이 숲속마을 베어타운에서 도시를 다시 일으킬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바로 하키. 베어타운은 유소년, 청소년, A(성인팀) 의 하키팀이 있고, 그들은 이번 청소년팀 리그에서 우승하기를 소망한다. 하키스쿨이 들어오면 아이스링크가 새로 마련되고 대도시 못지않은 쇼핑몰과 컨퍼런스센터가 건립될지 모른다. 베어타운이 단순히 여러 스포츠 중 하나에 불과한, 그리고 그저 시합이지만 목숨을 걸게 만드는 이 하키라는 스포츠에는 도시를 다시 번영시키려는 희망을 넘어, 베어타운 사람들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것이다.

 때문에 베어타운 청소년팀에서 뛰고 있는 아이들은 우승하기 위해, 수많은 연습량을 감내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며 성장하곤 한다.

 

 이 작품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었다. 그것은 하키라는 연관성으로 얽혀 등장하는 베어타운 사람들 개개인이 모두 각기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어타운이 배출한 프로선수로서 다시 고향에 돌아와 베어타운 하키단 단장을 역임하고 있는 페테르, 페테르의 부인으로 능력있는 변호사지만 큰아들을 읽은 상처, 그리고 늘 아이들(마야와 레오)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는 미라, 페테르와 미라의 딸로서 기타와 친구 아나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강인한 성품을 지닌 마야, 마야의 친구로 사냥꾼인 아버지와 살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아나, 열일곱 살의 천재 하키선수로, 베어타운 하키팀의 주력선수이자 장래를 짊어진 케빈, 청소년팀의 공격수이자 케빈의 절친한 친구로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벤이, 열다섯 살이지만 열일곱 살 그 어느 선수보다 스케이팅 속도가 빠른 아맛, 베어타운 하키 A팀 코치로, 승리보다 선수들의 성장에 초점을 두는 수네, 청소년팀 코치로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지만 그 이면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지닌 다비드…….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

 

 

하키를 왜 좋아하느냐고?

 

하키에는 사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57.

 

 

 

 

 

 이야기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가족사와 내면묘사, 그리고 하키팀의 준결승 시합을 둘러싼 여러 상황과 갈등들 안에서 전개된다. 저자가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만큼,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인물들 개개인의 가족사와 , 그들이 지닌 내면의 상처가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특히 청소년팀의 가장 유망한 선수로 그 천재성을 인정받고 있는 '케빈'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완벽'을 요구받으며 자라왔다. 하키 뿐 아니라 학업, 일상 그 모든 면에서 '완벽'을 요구받으며 심지어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시간약속에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자기 키만한 눈밭 속을 걸어와야 했던 케빈 - 탄탄대로의 장래가 펼쳐져 있으며 단 한번도 좌절을 겪지 않았을 법한 이 아이에게는 '완벽'에의 부담감이 자리한다.

 

 

우리 부모님은 하키에 관심 없어.” 벤이가 그럼 두 분은 뭐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자 케빈은 성공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열 살 때 나눈 대화였다.

 케빈이 거의 항상 그렇듯이 반 역사 시험에서 1등을 하고 집에서 50점 만점에 49점을 받았다고 하면 케빈의 아빠는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뭘 틀렸니?”라고 묻고는 그만이다. 에르달 집안에서는 완벽이 목표가 아니다. 표준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68.

 

 열다섯 살로, 유소년팀 하키선수로 훈련받고 있는 아맛은 타국에서 건너와 아이스링크를 청소하는 어머니를 늘 생각하는 아들이다. 그는 가장 처음 아이스링크를 쓰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매일 아침 혼자 스케이팅을 연습하곤 한다. 프로 선수로 성장하여 어머니가 고생하게끔 하지 않고 싶은 아맛에게는 하키에 대한 간절함과 절실함이 자리하고, 그는 남다른 연습량으로 빚어진 그의 가장 재빠른 스케이팅 속도 덕분에 청소년팀에 합류해 함께 시합에 나갈 수 있게 된다. 베어타운 임대 아파트 지역의 할로에서 자란 난민이자 가장 왜소하고 작은 아이 아맛은 늘 그렇게 노력하고 분투하며 자라왔다.

 

그는 아이스하키장으로 간다. 팀원들과 합류한다. 그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전쟁으로 짓밟힌 모국을 떠났을지 몰라도 난민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오로지 하키를 통해서만 어떤 집단의 일원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아이가 된 기분, 뭐든 잘하는 게 생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479.

 

  하키를 접어야 한다는 소리를, 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아이가 빙판 위에 서 있다. 이번 기회를 잡으려고 그 아이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 선수가 없을 텐데, 다비드가 많고 많은 날 중에 바로 오늘 그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작은 소망에 불과하지만 오늘 같은 날 페테르에게는 작은 소망이 절실하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135.

 

 이 아이를 보세요! 어머님의 아들이 이 아이보다 더 많은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둘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똑같은 길을 걸었을까요? 어머님의 가족이 이 아이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아이를 보세요!”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186.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청소년팀 케빈, 벤이, 아맛 , 단장과 코치인 페테르, 수네, 다비드…… 베어타운과 아이스하키팀에서 청소년들과 성인이 하키를 통해 함께 갈등 안에서 이를 극복해나가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릴 것이라 예상했던 소설은, 중반부에 들어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준결승에서 우승 직후 케빈이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연 파티에서, 페테르 단장의 , 마야를 성폭행하며, 이 장면을 아맛이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베어타운의 모습은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피해자인 마야가 이야기하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마을의 자랑, 하키팀의 촉망받는 선수인 케빈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하키팀을 와해시키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양상이 펼쳐진다. 심지어 마야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못하며 제대로 처신을 못한 탓으로 간주되곤 한다. 저자 프레드릭 베크만은 놀라우리만큼 성폭행을 둘러싼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2차 피해의 실상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피해자인 마야의 가족과 마야가 겪는 베어타운 마을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가해자인 케빈 가족에 대한 의견들은 현실에서 논의되는 성폭력 사건의 논의를 너무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에 더욱 아리다. 작년 한 해, 화제의 도서로 주목받았던 소설 82년생 김지영, 최근 미투 운동이 확산된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베어타운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이 공동체는 성 역할에 대해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가.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져 있는가. 자성하게 된다.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 라이브 10-12회의 장면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문제를 다룬 바 있는데, 과연 여성이 싫다고 외치는 하는 한 마디를 존중하고 있는 사회인가. 부당함에 대해 외치는 목소리를 충분히 수용하고 있는 사회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게 된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이미 우리 사회가 미투 운동의 확산을 통해 확인한 바 있듯이 성폭력 사건에서 후광효과낙인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케빈과 마야 역시 그렇다. 가해자로 지목된 케빈에게는 베어타운의 유지이며 하키타운의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산가인 케빈의 부친(父親), 그리고 베어타운을 다시 일으킬 청소년 하키팀의 유망주인 케빈에 대한 후광효과가 여전히 남아있는 반면, 마야에게는 마야가 여성으로서 제대로 처신하지 못한 것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후광효과와 낙인은 진실을 추구하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 수 없다고 여긴다.

 혹여, 가해자가 케빈이 아닌 가난한 할로 출신 아이 아맛이거나, 하키팀에 중요한 선수라고 여겨지지 않는 필리프같은 아이였다면 과연 케빈과 같이 후광효과가 적용될 수 있었을까. 오히려 가해자라는 사실을 더 확신하게끔 하는 낙인이 찍히지는 않았을까 우려되기조차 한다. 마지막 순간에 결국 하키 팀에서 프로 선수로 성공해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보다는 진실을 밝히는 일이 옳은 것임을 깨닫고 자신이 목격한 그 날의 진실을 고백한 아맛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증거부족으로 케빈이 처벌받지 않은 것은 바로 이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역으로 묻겠네, 다비드. 경찰에 고발당한 아이가 케빈이 아니었다면? 다른 아이였다면? 할로 출신이었다면? 그래도 너는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할까?”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494.

 

 

 나중에 검은 재킷의 사나이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왜 그는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이 케빈인지 아닌지 아니면 아맛인지 고민했을까. 왜 마야의 주장으로는 부족했을까.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514.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245.

 

 

 마야는 두 팔로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다. 간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흔들린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런데 창밖의 길거리에서 뛰어노는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그녀의 생각을 바꿔놓는다.

 아나는 지쳐 쓰러져서 마야의 침대에서 자고 있다. 두툼한 이불 밑에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작고 연약하게 느껴진다. 마야가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보호하기 위해 케빈의 진실을 폭로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그리고 그날 아침 창가에 서 있었을 때부터 이 마을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이 마을과 이 날의 실상을 보여주는 끔찍한 단면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315.

 

 

 갈등이 벌어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편을 정한다. 양쪽의 생각을 같이 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는다. 평범한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위안이 될 만한 증거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적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한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374.

 

 

 그녀는 이 마을의 모든 나이 먹은 남자들이 그들을 가리켜 투지가 넘치물러설 줄 모른다고 칭찬할 뿐, 여자아이가 싫다고 할 때는 정말로 싫은 거라고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았느냐고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 마을의 문제는 어떤 남자아이가 어떤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수준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가 그런 짓을 하지 않은 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남자아이들까지 그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450-451.

 

 

 

 결국 케빈은 법적 처벌의 대상에서는 풀려나지만, 결국 아맛의 주장 덕분에 마야의 아버지 페테르 단장은 해임되지 않게 되며, 여전히 베어타운의 하키팀 단장 자리를 맡게 된다. 그러나 팀의 주요 멤버들은 헤드의 아이스하키팀으로 팀을 옮기게 된다.

 아무 소득 없이 수사가 종결되어 버려 삭막하기만 한 이 베어타운에서 역설적이게도 페테르가 단장 자리에서 해임되지 않은 이유, 마야의 가족이 버티어낼 수 있었던 점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가치였다. 열 다섯 살이라는 점 빼고는 너무도 다른 성향을 지닌 마야와 아나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둘의 우정(친구로서의 사랑)덕분이었고, 일곱 살 시절 케빈과 벤이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열일곱 살이 되어 벤이가 케빈으로부터 떠난 것도 바로 이 사랑 때문이었다.

 특히 이미 수년 전, 큰아들 이삭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마야의 부모님 미라와 페테르가 느끼는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절망감, 그리고 아이를 위해 그 어떤 것이든 해 보이겠다는 고군분투 속에서 전해져 오는 그들의 굳건한 신뢰와 사랑은 책을 읽는 저 너머, 한 사람의 독자에게까지 가슴이 뭉클해져오는 따뜻하고도 아린 감정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부모이기에, 마야와 레오를 지켜내야겠다는, 마야를 그 이상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사랑으로 그들 가족이 겪는 시련을 함께 견디어 올 수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신기하다. 어떤 사람이건 사랑을 시자하게 된 기점이 있는데, 이 사랑만큼은 아니다. 항상 사랑했고 심지어 아이가 존재하기 전부터 그랬다. 아무리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도 엄마와 아빠들은 감정의 파도가 그들을 치고 지나가서 완전히 나가떨어지는 충격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 사랑은 무어과도 비교할 수 없기에 불가사의하다. 평생 암실에서 지낸 사람에게 발가락 사이로 들어온 모래나 혀끝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그 사랑은 영혼을 비행하게 만든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487.

 

 

 어른이면 누구나 완전히 진이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겪는다. 뭐 하러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싸웠는지 알 수 없을 때, 현실과 일상의 근심에 압도당할 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그런 날들을 생각보다 더 많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끔찍한 사실이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이 견딜 수 있을지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것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88.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아빠?”

그래, 말랭아.”

저도 하키 좋아해요.”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도 그래, 말랭아. 나도 그래.”

제가 뭐 하나만 부탁해도 돼요?”

뭐든.”

더 훌륭한 아이스하키단을 만들어주세요. 그 자리에 남아서 하키의 발전을 이끌어주세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525-526.

 

 

 

 결국 저자 프레드릭 베크만이 그의 신작 베어타운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것을 공동체가 지닌 가치관에서 발견했다. 사회의 문화는 결국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그 가치관을 어떻게 후대들에게 심어주는가에서 기인한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베어타운 사람들이 하키를 목숨처럼 생각하며 청소년팀의 시합에 모든 것을 건 이유는 바로 결과’, ‘우승’, ‘성공 뒤에 따르는 경제적인 이득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베어타운이라는 그 공동체는 지금 과연 행복한가?

 아이들이 자라나며 아이로서의 모습을 상실한다면, 향유해야 할 가치와 수단으로서 사용해야 할 가치가 전도된다면, 아무리 하키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과연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그들은 진정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야의 가족이 겪은 시련도, 케빈과 벤이의 우정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던 것도, 모두 베어타운 공동체의 어른들이 그들의 욕심을 아이들에게 전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베어타운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라났다면 케빈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았을지 모르며, 벤이는 자유롭게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페테르와 미라는 마야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게끔 지켜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베어타운의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베어타운의 어른들이 하키에 대한 개개인의 열정과 사랑을 정치와 경제의 문제로 변질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벚나무 냄새가 나야 할 자리에서 왜 벚나무 냄새가 나지 않겠는가.

 

 

 수네는 빙판을 내다보며 코로 몇 차례 심호흡을 한다. 상대 팀 선수 몇 명이 몸을 풀러 나온다. 원래 겁에 질린 사람들이 일찌감치 준비하기 마련이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수네는 거기서 위안을 느낀다. 사장실에 모인 남자들이 어떤 식으로 바꾸려고 애를 쓰는지 몰라도 이건 여전히 운동경기일 뿐이다. 한 개의 배, 두 개의 골대, 열정으로 가득한 심장. 하키를 종교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하키는 믿음과 같다. 종교는 나와 타인들 간의 문제고 해석과 이론과 견해도 가득하다. 하지만 믿음은…… 나와 신 사이의 문제다. 심판이 센터 서클로 미끄러지듯 나와서 두 선수 사이에 설 때, 스틱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까만 원판이 그 사이로 떨어지는 게 보일 때 느껴지는 무엇이다. 바로 그 때 그것은 나와 하키만의 문제가 된다. 돈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반면, 벚나무에서는 항상 벚나무 냄새가 나지 않는가.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178.

 

 

 

 프레드릭 베크만의 전작인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있다중에서는오베라는 남자를 완독했으며 아직 나머지 두 권은 미처 완독하지 못했다. 사실상 그의 책 중에서 두 번째로 읽는 작품이었는데, 오베라는 남자를 읽으며 오베의 까칠한 행동 속에 숨어있는 내면의 따뜻한 심성을 읽어낼 수 있어 마음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베어타운을 읽으며, 책의 행간 사이로 계속 봄과 겨울을 넘나들었다. 베어타운이라는 숲속 마을은 정지용 시인의 시() 유리창에 등장하는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구절을 연상시키는 마을이었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아름다운, 황홀함마저 깃드는 숲속마을이지만 그 깊은 곳에는 마을 사람들 개개인의 외로움과 슬픔이 깃들어있는 마음.

 결말부가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베어타운에, 베어타운 하키팀에 여전히 남아있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선택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마음 속에 곰을 한 마리씩 지니고 있는 베어타운 사람들. 베어타운이라는 도시와 하키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애정을 가진) 그들이 베어타운의 새로운 지향을 새로이 지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엄청난 두께의 장편소설이었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작품의 화두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아름답고도 마음 한 켠이 아려오는 이 소설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처음 읽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여러 메시지와 복선들을 따라가며 몇 번이고 재독하고 싶다.

 

  베어타운은 단순히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교양소설)에서 그치지 않고 성폭력, 동성애 등 사회적 이슈에 화두를 던지는 한편 가족 간의 사랑, 청소년들 사이의 우정에 대한 내면 묘사를 탁월하게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문장의 행간 속에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애정을 담은 수작이었다.

 

 

카시아는 해가 바뀌고 벤이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동생이 다른 삶을 살 수 있길 바랐다. 다른 곳,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동생은 다르게 자랐을지 모른다. 좀 더 순하고 불안하지 않은 아이로 자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베어타운에서는 그럴 수 없다. 여기에서는 그 아이가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짐을 너무 많이 짊어지고 있고 거기다 하키가 있다. , 동료들, 케빈. 그들이 그 아이의 모든 것이기에 그 아이는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끔찍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모르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241.

 

케브, 네가 그걸 찾을 수 있길 바랄게.”

케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바람이 케빈의 눈꺼풀을 간질인다.

?”

벤이는 목발로 눈을 짚는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친했던 단짝 친구를 두고 한 발로 천천히 바위를 뛰어 넘어가며 숲속으로 멀어진다. 그들의 섬에서 멀어진다.

그거라니? 뭘 찾을 수 있길 바란다는 거야?” 케빈이 벤이의 뒤통수에 대고 외친다.

벤이의 목소리가 어찌나 고요한지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서 그의 대답을 호수 저편으로 실어 나르는 듯이 느껴질 정도다.

네가 찾는 네 모습.”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528.

 

 

 공동체는 우리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서로의 역할을 존중한다는 뜻이지. 가치는 우리가 서로 신뢰한다는 뜻이고. 서로 사랑한다는 뜻.” 다비드는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하고 난 뒤에 다시 물었다. “그럼 문화는요?” 수네는 좀 더 진지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화에선 어떤 걸 허용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어떤 걸 권장하는가라고 본다.”

 다비드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수네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사회에서 허용하는 대로 하지.”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291.

 

 

 

 

 

by papyros 2018. 4. 17. 19:53

리디북스 페이퍼프로(RIDIBOOKS PAPER PRO) 사용후기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진리의 두 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E-book 리더기 애용자일 것이다.

 

 11월의 어느 날, 자주 활동하는 카페인 네이버 E-book cafe에서 우연히 리디북스 페이퍼프로의 출시일을 접하게 되었다.

리디북스 페이퍼라이트와 페이퍼에 이은 새 기계라니. 기실 그 때만 해도 리디북스 페이퍼프로를 내가 구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2016년  7월 9일 구입해 사용하던 리디북스 페이퍼가 멀쩡히 , 그것도 매우 유용히 사용중에 있었고 무엇보다 이북리더기에 7.8인치라니, 너무 무겁거나 휴대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더랬다.

 

그러나 스펙이 공개되고, 카페에 글이 올라오고 ....... 사전예약일이 점점 가까워지고.. 점차.....어? 약간 큰 기기도 나쁘지 않겠는데? 무엇보다 가독성이 너무 뛰어나 보이는데...?에 혹하게 되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손은 이미.... 11월 30일 사전예약을 해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사전예약 뒷 회차도 아니고 얼마나 정각에 클릭했던 건지.......

 

 

 

 

 

 

 

사전예약 1차에 성공하였다...... 즉 리페프로를 제일 빨리받아보는 배송일자에 속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리페프로를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크지는 않았으나 E-book cafe의 글들에 혹해 ,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끔씩 나타나는 페이퍼의 오류? 때문에(이건 소비를 위한 합리화이긴 하지만 ㅎㅎ ) 진리의 두대를 실현해서 리페의 고장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에도 크레마 그랑데와 매우 깊은 고민을 하다가 알라딘 중고매장에 들러 크레마 그랑데의 실물과 반응속도를 살펴본 후 최종적으로 리디북스 페이퍼프로, 줄여서 리페프로를 12월 14일에(결제 가능한 13일 이후에도 다소간 고민을 하다가 결국 다음날인) 결제하고 말았다.......!

(질러버렸고, 돌이킬 수 없었다. 사전예약 플립케이스 3만원 할인 쿠폰은 알뜰히 사용했다 ㅎㅎ)

 

 

 

 

그리고는 택배를 기다리는 즐거운 몇 일이 흘러

금요일 퇴근한 후 저녁에 집에 가보니 나와 간발 차이로 택배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박스조차 고급스러워 보이는 페이퍼프로...... 조심스레......? 아니 허겁지겁......?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박스를 뜯고 드디어 페이퍼프로를 만났다..!! 뭔가 페이퍼 구매 때보다 더 신중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플립커버를 꺼내고, 리페프로를 꺼내기 시작했다.

 

 

 

 

 

 

전원을 켠 후 리디북스 아이디 및 wifi 환경을 설정한 후, 새로 등장한 기능인 색 온도 조절 기능과 함께 프론트라이트 밝기 조절 기능에 대해 사용법을 다시금 익힌 후, 드디어 리디북스 페이퍼프로를 사용할 모든 셋팅이 완료되었다.......!! 

 

 

 

는.....- 어이 책부터 다운 받아야지..!!

기존에 소장중인 책을 다운 받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백업 기능이 있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일순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설정이 완료된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 페이퍼프로를 귀히 여기느라 밖에서 많이 이용하지는 않았고 (휴대용으로는 페이퍼를 주로 이용)

요즘에야 카페나 회사에서 페이퍼프로를 더 애용하기 시작한 지라, 순수 사용 시간이 아주 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약 2주 간의 간단한 사용 소감을 정리해 보자면,

 

장점으로는,

 

- 플립커버케이스를 씌웠음에도 무게가 무겁지 않다. 심지어 나는 손이 매우 작은 편에 속하는 여성인데도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리디북스 페이퍼에 익숙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 활자의 크기가 커지며 가독성이 더 좋아져 책을 읽는 데 페이퍼보다 조금 더 시원시원한 느낌이 있다.

- 반응속도의 경우 가장 걱정한 부분이었는데 페이퍼에 비해 '아주 느리다'고 까지 생각되진 않았다. 페이퍼보다 느리긴 하지만 불편할 정도/신경쓸 정도는 아니며 알라딘 매장에서 만져본 크레마 그랑데보다는 빨리 넘어가는 편. (개인적인 체감이다.)

- 색 온도 기능. 색감이 따뜻한 기능 또한 있어서 좋았다.

- 가로로도 물리키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단점으로는,

 

- 슬립화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동기화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지만, 슬립화면 버튼을 누를 때 오른쪽 상단이 흩뿌려지는?? 현상 같은 것이 있었다. 슬립화면을 바꾸니 이런 현상이 사라지긴했는데 심각한 오류인 줄 알고 놀라기도 한 만큼 리디측에서 슬립화면 디자인?? 등도 신경 써 주시면 감사하겠다.

 

- 동기화 문제. Wifi를 꺼 두면 페이퍼 및 기타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 등에서 읽던 부분 동기화가 되지 않는데, Wifi가 켜져있지 않을 때에도 동기화 되면 좋겠다는 생각. 배터리 때문에 Wifi를 거 두는 때가 생각보다 더욱 많다.

 

- 페이퍼보다는 전체적인 속도가 느린 편인 것 같은데, 책을 좀 빨리 터치하다가 그대로 페이퍼 프로가 멈추어 버려서 어쩔 수 없이 리셋한 적이 한 번 있었다 ㅠㅠ.. 고장난 줄 알고 식겁했다...

 

 

그리고 사용하면서 기타 불편한 사항은 아직 많이 느끼지 못했고, 아직 시스템 자체가 초기상태이기 때문에, 리디측에서 인지하는 부분들에 대해 점차 업데이트 해 주실 것이라 믿고 있다.

 

 

 

언제나 고객의 의견을 듣고 기계의 최적화를 위해 노력해주시는,

그리고 양질의 독서환경을 제공해주시고자 하는 리디북스 측에 늘 감사드리며

 

소비생활의 중심 , 그리고 독서생활의 중심인 E-book cafe에도 많은 애정을 보낸다...!

 

만족스러운 소비였으며, 페이퍼프로(리페프로)와 함께하는 시간을 점차 늘려나가고자 한다:) 

 

 

 

 

 

 

 

 

 

 

 

 

by papyros 2017. 12. 28.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