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배케트의 연극을 부조리 연극이라고 최초로 이름붙인 마틴 에슬린은 베케트를 <유쾌한 허무주의자>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에슬린이 베케트에게 붙여 준 명칭 때문일까, 정말로 이 희곡을 다 읽고 난 뒤 지극한 허망함을 느꼈다. 문학의 가장 기본적 요소인 서사구조가 없었고, 흥미로운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도 아니었다. 혹시나 고도라는 인물이 후반부쯤에는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의 끈을 아주 놓아버리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고도는 등장하지 않았고, 볼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바보 같은 대화만이 남았고 이건 무슨 우스운 개그인가, 라는 생각에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도 몇몇 표현들이 쉽지 않았고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찾으려, 저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특별한 것이 주어지지 않은 채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난해함과 많은 의문점들을 지닌 채 책을 덮었다.

그러나 부조리극’, ‘허무주의’, 그리고 작품이 쓰인 당시의 시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보기에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한 데가 있다는 뜻을 지닌 의뭉스럽다는 단어에 걸맞은 작품인 듯하다. 볼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이어가는 한 편의 희곡은 그야말로 희극적인 콩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인간과 사회현실의 단면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1952년에 출간된 베케트의 이 희곡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허망함과 좌절만이 남은 가운데 피폐해진 사회의 모습, 사유하기를 거부한 당대 사회의 모습, 즉 부조리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출간된 이 희곡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에스트라공과 볼라디미르의 희극적 행동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굳이 오래 전의 과거를 이야기 하지 않아도, 지난 해 대선 때를 회고해 보자. 비록 지지하는 후보자는 다르지만, 모두가 이번에 뽑히는 제 18대 대통령 때는 사회가 조금이나마 바람직한방향으로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표를 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한지 100여일이 지난 지금도 이전 정부가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정작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가 없고 여전히 신문기사의 정치, 사회면에는 씁쓸한 기사들이 판을 치고 있다. 강도, 살인, 위선, 너무나도 비윤리적이고 부조리한 행동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그 중 남양유업의 갑-을관계와 윤창중 사건이 확대되어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조명되었을 뿐이지 이미 현대사회의 부조리는 오래 전부터 비일비재해왔다. 즉 많은 이들이 한마음으로 기다리고 추구하는 바인,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가치관과 정의로운 세계질서 하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인격적 관계를 이루는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사회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언제 부조리한 사회가 개선되고 진정한 지도자가 출현하여 바람직한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고도는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많은 이들의 열망이고 소망이며 이육사의 시 광야청포도에서 표현된 바와 같이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요, ‘청포를 입고 찾아 올 손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에스트라공과 볼라디미르는 이러한 소망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고 있는 서민들 그 자체이며, 거만한 노인과 늙은 짐꾼의 관계로 등장하는 포조와 럭키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전형으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갑을관계, 불평등한 사회구조로서 사회 전반의 억압, 틀을 대표하는 것이 아닐까. 즉 정리해 보자면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포조와 럭키의 관계) 안에서 부조리한 사회가 개선되기를 꿈꾸고 희망하는 서민들이 존재하지만(에스트라공과 볼라디미르) 아직 서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이상세계, 구원(고도)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비단 현대 사회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억압적 사회 구조 하에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지고 변화에 대한 열망, 혹은 지도자의 출현에 대한 소망을 가진 민중들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단적인 예로 고려시대 최충의 노비가 주도했던 만적의 난, 조선후기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시작해 지금의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 준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 명동성당에 모여 항거했던 6.10 민주항쟁 까지....... 만적의 난의 경우는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예외로 치더라도, 동학농민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의 경우,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볼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모습이나 현 시대 우리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인데 , 우리는 볼라디미르, 에스트라공과 함께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면서 사회 현실에 체념하고 안주한다. ‘고도가 오면 살 수 있지만 오지 않으면 그저 체념하고 현실에 순응하거나 혹은 극단적인 방법(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에스트라공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

볼라디미르 다들 하는 소리지.

에스트라공 우리 헤어지는 게 어떨까?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볼라디미르 내일 목이나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야.

에스트라공 만일 온다면?

볼라디미르 그럼 살게 되는 거지.

(민음사, P158)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달랐다. ‘고도를 기다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비판의식과 능동적 실천을 조화시켜 직접 고도를 찾아 나섰다는 점에서 우리의 모습과 중요한 차이를 지닌다. 사회의 부도덕이나 불평등에 부조리함과 모순을 느끼고도 누군가 나서겠지, 하는 생각에 자신은 현실에 안주해버리곤 한다. 심지어 자살의 비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 현실에 치여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비단 고도를 사회 개선에 대한 열망, 소망이라는 점과 연관 짓지 않아도 개인의 상황이나 현실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데, 이때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아직 실현하지 못한 자신만의 목표가 있고 꿈이 있지만 현실의 장벽에 막혀 꿈에 다가가기도 전에, 도전 해 보기도 전에 쉽게 포기해 버리곤 한다.

진정으로 고도를 만나고 싶다면, 더 이상 고도를 기다리지만 말고 이제는 고도를 찾아나서 거나 그 자신이 고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혁명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는데 바로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고 조화시키려는 노력, 자신의 의견만이 절대적 진리이며 가치라고 오판을 내려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 혁명이 대표적 예랴 할 수 있는데, 자본주의로부터 발생된 문제점을 인식하고 비판함으로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한 비판적, 대항적 혁명이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으나 자본주의의 장점을 모두 부정했고 자신들과 다른 가치관에 대해서는 모두 배격하고 축출한 바 있다. 그러한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오판이 사회주의 혁명의 저항정신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이다.

즉 우선적으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의식을 지녀야 하는데, 단지 사회 현실에 대한 감정적 불만이 아닌 이성적이며 합리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단 한 번 있었던 럭키의 대사가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진행되었던 점이 이를 시사한다.

 

럭키 (단조로운 어조로) 프왕송과 와트만의 최근의 공동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 인격신은 공간의 시간 밖에 존재 하고 있어 하늘의 무감각과 무공포와 침묵 위 높은 곳에서 몇몇을 제외하고는 우리를 사랑하는데 그 까닭은 모르지만 곧 알게 될 터이고 하늘의 미랑다의 본을 떠서 고뇌와 불 속을 헤매는 자들과 함께 그 고통을 겪는데 그 까닭은 모르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이하 생략)

(민음사, P69-72)

 

그리고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합리적 비판의식이 마련된 후에 능동적인 실천이 가능한데, 능동적 실천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가치 질서의 체계 안에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구체적이며 바람직한 가치관을 선택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실망은 정신적 행복이 아닌 육적 쾌락으로 사람들을 빠지게 하고 쾌락에서의 같은 좌절은 폭력과 범죄를 낳는다. 즉 가치아노미 현상이 발생하고 진정한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인데, 즉 가치관의 분석과 점검을 통해 가치 질서를 재정립, 재구조화 하여 다양한 가치관을 포용하고 통합해 나아가며 가치관의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고도를 직접 찾아나감으로서 혹은 자신이 고도를 직접 이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을 선택하고 삶의 방향을 주도적으로 전환, 조정 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이며 반항적 자아로서 능동적 실천과 참여가 가능하며, 프로라이프의 생명대행진 등 낙태를 반대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을 촉구하는 것이 생명경시풍조의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정신 실천적 참여로서의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더 나아가 합리적인 비판의식과 능동적 실천을 통해 고도를 찾아나서는 개인과 사회를 돕기 위해서 교육의 의미가 중요해지며, 도덕적이고 윤리적 책임감을 지닌 교육자 혹은 지도자가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롤 모델이 되어 지식과 지혜, 그리고 영감을 불어넣어 줄 때 개인과 사회 전체의 능동적인 변화가 가능해 진다고 본다.

 

 

 

by papyros 2013. 6. 2. 12:31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홀든 콜필드’.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이 소년을 획일적이고 억압적 교육에 반항하는 학생으로서 획일적이고 주입식 교육에 의해 희생당한 반항아’, ‘문제아로서 사랑과 관심으로 보듬어 주어야 할 소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고 깊은 사랑과 관심을 주면서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교육해 나가는 진정한 참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커다랗게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오랜만에 다시 만난 콜필드는 문제 학생이 아니었다. 학창시절부터 주어진 길, 올바른 삶만을 추구하며 기성세대가 전해주는 가치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품지 않았던 전형적인 학생이었던 내가 콜필드에게 가졌던 인상은 문제 학생이라는 낙인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콜필드는 그 누구보다도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기만의 가치관과 내면의식이 풍요로운 개성이 풍부하고 작가로서의 가능성이 돋보였던 학생이었을 뿐 아니라, 유년기와 청년기의 진실함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동생인 피비를 누구보다 아끼고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며,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픈 꿈을 지니고 있는 이유도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을 보호해주고 싶다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키려는 소망에서 비롯된 꿈이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거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민음사, 229-230)

 그러나 콜필드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그가 지키려난 순수함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내적인 가치보다는 외적인 가치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 콜필드가 그나마 믿고 따르는 두명의 스승스펜서와 앤톨리니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기성세대를 대표하고 있다. 교사 스펜서는 콜필드의 문학실력만큼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다른 과목들에서 낙제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실력 없는 학생이라고 생각 하고 있으며, 교사 앤톨리니는 결국 아무리 개성 있고 창의성이 있어도, 한 분야에서 실력이 출중해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결국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회적 평가와 현실을 대변한다.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 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불행히도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냥 재능 있고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불행히도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 이들은 보다 분명하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걸 들 수 있어. 무슨 소린지 알아듣겠어?(민음사, P250)

 결국 콜필드를 문제 학생으로 보이게 하고, 그가 퇴학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인간 내면의 진실함이나 개성, 창의력보다는 시험 점수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능력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한 교육제도 때문이었다. 또한 호밀밭의 파수꾼이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자전적 소설임을 염두에 둔다면, 작품 속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 정도로 추정되며 당시 미국의 경우 재건주의 교육운동이 확산되어 사회 질서에의 적응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에 반대하여 사회의 새로운 목표를 지향했으며 사회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므로 그러한 사회적 가치를 소설 속에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소설이 1951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생각 해 보면, 적어도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학문중심 교육과정이 우세하기 이전의 1950년대 초반까지는 경험중심 교육과정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에 출간 시기와 소설 속에서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기를 통해 학생들의 전인교육, 통합적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즉 지나친 주입식, 암기식 교육 제도는 학생들에 대한 전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며 콜필드는 그러한 교육제도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기성세대의 위선, 인간 내면의 본래적 가치가 아닌 외적인 가치를 중시하며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는 것에 대해 비판하며 염증을 느끼고 있는데, 당시 학교에서 발견하게 되는 위선의 인물 중 하나로 펜시 고등학교에 많은 기부금을 내어 그 이름을 딴 건물도 있는 장의사 오센버거(Ossenburger)를 통해 발견된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연설할 때 물질적 성공만을 강조하고, 자신의 기여사실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데에만 급급하다. 또 그러한 오센버거에게 굽신대는 교장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이다.

 즉 콜필드는 사회 및 교육제도, 기성세대 전반에 대해 회의감을 품고 어른들의 외적인 세계와는 대조되는 내적인 순수함과 진실성을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며,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물질만능주의와 위선으로 가득 찬 사회에 대조되어 개츠비의 순수성이 부각되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콜필드가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되며 작가 샐린저가 위대한 개츠비를 극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콜필드의 진실성과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한 대항방식에서는 문제점을 찾을 수 있는데, 그가 클럽에서 성적인 것을 추구하거나, 동료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비속어를 사용하는 등의 행동은 분명히 부도덕한 행동이며 음주 , 흡연 등을 하며 기성세대를 비판하면서도 모방하면서 도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피비와 함께 서부로 도망가려는 모습에서 그가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모습이 부각 되는데, 이는 콜필드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고, 자신의 정체성 및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한 롤모델-도덕적 책임감에 기초한 권위자,리더-에 의한 가치관교육이 전혀 부재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즉 청소년기의 가치관교육의 중요성과 인생의 안내자이자 조언자로서의 교육자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교육적 의미를 지닌 소설이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by papyros 2013. 6. 1. 00:19

장폴 사르트르의 을 읽고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경구이다. 그의 자서전인 을 읽으며 사르트르의 너무나도 현학적이고 심도 있는 자아에 대한 고찰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긴 했지만, 이 책은 결국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철학적 결론을 이끌어준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의 1부 읽기에서는 그의 유년시절에 대해 자세히 상술되어 있는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외조부 샤를 슈바이체르와 함께 지내며 그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으며 신동’, 혹은 특별한 선물로 여겨지며 성장한다. 외조부 샤를은 사제였으나 문학 교수가 되려고 했을 만큼 문학적, 지적 소양을 중히 여겼고 그런 외조부의 영향 때문에 유년기의 사르트르의 삶은 외조부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심지어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교직을 성직(聖職)으로 생각하고 문학을 수난으로 여기는 소지를 기르게 되었다고 그는 기술한다.(민음사, P49) 거장들의 책을 읽으며 그들의 글을 암송하고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성장하지만 사르트르는 그의 유년기의 이러한 행동들이 자신과 어른들을 기만하는 연극에 불과했고 어른의 세계 또한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즉 의식적이며 어른들의 기대에 충족하는 연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뿐이었으며 문학 읽기를 통한 지식의 획득을 그에게 주어진 기대와 환경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의무이자 인간으로서의 본질로 받아들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책의 2쓰기단계에서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이는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소설 속 주인공들에 자신을 반영해 나가고 자신의 삶을 성찰 해 나감으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진정한 주체로서의 자신을, ‘실존적 자아를 탐구해 나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러한 자세가 책의 곳곳에 드러난다.

 

나의 의식을 활자화하고 삶의 소음 대신 불멸의 기록을 남기리라(민음사, P208)

 

미래의 기다림에서 탄생한 나는 눈부시게 온몸으로 비약했고, 순간순간이 나의 탄생이라는 예식의 반복이었다. 나는 내 마음의 작용을 톡톡 튀는 불꽃처럼 느끼고 싶었다. 어째서 과거가 나를 풍요롭게 해 주었단 말인가? 과거가 나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바로 나 자신이 나의 잿더미에서 소생하면서 부단히 다시 시작되는 창조를 통해서 나의 기억을 무()로부터 건져 낸 것이다. 나는 더욱 훌륭한 존재로 다시 태어났고, 내 영혼에 사장(死藏)된 비축물들을 더욱 잘 활용했다.(민음사, P253)

 

특히 사르트르는 글을 씀을 통해 자신의 실존, 존재 이유를 파악했는데 자신이 쓴 글이 전 인류에게 항존적 가치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을 포착한 것 같다. 즉 그의 사후 자신의 글이 인류에 전해 질 수 있다는 점을 통해 글쓰기의 의미를 보다 확고히 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 인류가 나의 불멸을 보장해 주리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 나는 인류가 끝없이 존속하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류속으로 내가 꺼져 없어진다는 것, 그것이 곧 탄생하고 또 무한한 존재가 되는 길이었다.(민음사, P265) 또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직업 선택에 대한 자유, 즉 인생의 우연적 측면을 글쓰기라는 과정을 통해 필연적 의미의 삶으로 바꾸어나가며 실존적 결단에 대해 숙고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로서는 오랫동안 죽음에게, 가면을 쓴 종교에게 내 인생을 우연에서 구출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었다(민음사, P267) 특히 그가 30세에 이르렀을 때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명작 구토는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삶을 형상화 한 대표작이자 완성이었다. 나는 서른 살 때 멋진 솜씨를 발휘했다. 구토를 쓴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확언하지만 아주 진지하게, 내 동족들의 정당화될 수 없는 씁쓸한 존재를 묘사하고, 나 자신의 존재는 시비의 대상에서 제외해버렸다. 나는 로캉탱이었다. 나는 로캉탱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내 삶의 곡절을 가차 없이 드러내 보였다.(민음사, P267-268)

즉 그는 쓰기를 통해 읽기과정에서 느낀 인간의 의무, 본질, 연극과는 달리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 실존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의미를 찾은 것 같다.

한 줄이라도 쓰지 않는 날은 없도다 나는 책을 쓰고 또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쓸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무슨 소용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교양은 아무것도, 또 그 누구도 구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산물이다. 인간은 그 속에 자기를 투사하고, 거기서 제 모습을 알아본다. 오직 이 비판적 거울만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민음사, P270)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내가 존재한 것은 오직 글짓기를 위해서였다. ’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쁨을 알았다.“

 

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보냈고, 자신의 삶을 인물에 형상화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선택해야 할 길을 걸어가며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고 책임짐으로써 존재 이유를 만들어 나가야 함을 깨닫지 않았나 싶다. 손주로서 외조부의 지적 만족, 욕구를 채워드리기 위한 자기기만의 연극적 행위에서 벗어나 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고 진실한 만족과 기쁨을 느낀 사르트르의 작가라는 직업적 선택이 가능했기에 쓰기를 통한 성찰과정에서 자신의 실존을 발견한 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포괄적이며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주석이 달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나갈 때 부족함과 어려움을 많이 느꼈지만 미약하게나마 그의 자서전 을 통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의미, 성찰을 통한 주체적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읽어나가며 많은 부분에서 지적 한계를 느꼈기에, 더 많은 공부를 한 후 꼭 다시 읽고 새로이 정리하고 싶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사르트르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도 연결을 시켜 보았는데, 사르트르가 현대의 위대한 철학자로 불리는 점, 그리고 개츠비라는 이름 앞에 위대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이유를 두 가지 기준에서 찾아보았다. 위대함의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첫 번째는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사르트르는 쓰기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실존적 주체를 탐색해 나갔고, 개츠비 또한 어떤 점에서는 굉장히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긴 했으나, 경제대공황 시대에 물질과 향락에 빠져있는 사람들에 반해 소중한 이와의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물질적 논리에 앞서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성찰했다는 점에서 위대한이라는 수식이 붙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또한 두 번째 기준은 고독함,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가의 여부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많은 이들이 항상 따르는 이들은 그들 내면의 외로움을 지닐 수 있는데,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을 정도로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쓰기과정을 통해 극복했으며, 개츠비 또한 데이지와의 미래와 꿈에 대해 생각하며 드넓은 집에서 외로움을 견뎌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by papyros 2013. 5. 31. 22:01

대학시절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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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yros 2013. 1. 15. 17:57

부활절의 기도

                          이해인

 

돌무덤에 갇힌 침묵이

큰 빛으로 일어나

눈부신 봄

빛이 어둠을 이겼습니다.

용서가 미움을 이겼습니다.

 

슬픔과 절망으로

웃음 잃은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시는 분

분쟁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 평화로 오시는 분

 

산 위에 바다 위에 도시 위에

눈물 가득한 우리 영혼에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빛나는

단 하나의 이름 예수여

당신은 왜 그리 더디 오십니까?

 

오오, 주님

생명이 죽음을 이겼습니다.

이제는 살아야겠습니다.

하루하루를 수난의 마지막 저녁처럼

부활의 첫 새벽처럼 살아야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과 함께 죽어서

당신과 함께 살게 해 주십시오.

 

당신과 함께 어둠 속에 누워서

밝은 빛으로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왜 자주 숨어 계십니까?

좀 더 일찍 알아 뵙지 못했음을

용서하십시오.

 

당신이 부활하신 세상에서

이제 거짓 사랑은 끝난 것입니다.

삶을 지치게 하는 교만과 불신이 사라지고

겸손과 감사가 넘쳐 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기심의 무덤을 빠져나와

어디든지 희망으로 달려가는

하늘빛 바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오직 죽음을 이긴 사랑 하나로

새롭게 듣고 새롭게 말하고

새롭게 행동하는

부활의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님이 오시는 들길을 웃으며 달려가는

연초록 봄바람으로 깨어있게 해 주십시오.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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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꼭 한 개의 별을

十二星座 그 숱한 별을 어찌나 노래하겠니

 

꼭 한 개의 별! 아침 날 때 보고 저녁 들 때도 보는 별

우리들과 아-하고 그 중 빛나는 별을 노래하자

아름다운 未來를 꾸며볼 東方의 큰 별을 가지자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건 한 개의 地球를 갖는 것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에서

한 개의 새로운 地球를 차지할 오는 날의 기쁜 노래를

목 안에 핏대를 올려가며 마음껏 불러보자

 

처녀의 눈동자를 느끼며 돌아가는 軍需夜業의 젊은 동무들

푸른 샘을 그리는 고달픈 砂漠行商隊도 마음을 축여라

火田에 돌을 줍는 百姓들도 沃野千里를 차지하자

 

다같이 제멋에 알맞은 풍양(豊穰)地球主宰者

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질 노래를 부르자

 

한 개의 별 한 개의 地球 단단히 다져진 그 땅 위에

모든 生産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보자

앵속(罌粟)처럼 찬란한 열매를 거두는 饗宴

禮儀에 꺼림 없는 半醉의 노래라도 불러보자

 

염리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이란 항상 거룩합시니

새 별을 찾아가는 移民들의 그 틈엔 안 끼어 갈 테니

새로운 地球에단 없는 노래를 眞珠처럼 흩치자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

한 개 또 한 개 十二星座 모든 별을 노래하자.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 이육사 (風林, 193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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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편지

      봄편지

                        이해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힌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두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 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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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특강 첫날, 2012년 2월 13일 내 역할모델이자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사랑하는 구본만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중요한 말씀 마음에 새기기 위해 몇자 적어본다

영국의 데일리즈 총리가 말하기를,
'성공의 비결은 기회가 올 때를 대비해서 꾸준히 준비하는 것'이라 했다.

임용고시 등을 비롯한 고시 등의 시험을 볼 때 시험을 위해서 준비하는 건 딱 1년인데
이 1년동안에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이 최소 하루에 10시간에서-11시간을, 즉
365일 3650시간 공부해야 합격한다.

예전에 미국에서 국무부에서 언어를 공부하는데 어느정도 언어를 공부하면
수준급이 될수있는지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 , 전혀모르는 언어를 공부할 때 3600시간을 투자해야 수준급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하루에 10시간정도를 공부해야 한다. 앉아있는 시간이 아니라 공부하는시간이다.
결국 강한마음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며 꾸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앉아있는 시간은 10시간인데 공부하는시간은 1~2시간이라면 그건 단지 행운을 바라는 것이다.

10시간을 공부한다고 할때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너무너무 뚜렷해야 하고 그 뚜렷함에 다가가기 위해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준비하는 시험을 분석해서 어떤 패턴으로나오는지 알아야 하고
내자신이 현재 어떤 위치인지 알고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어떤것이 약점이고, 어떤것이 강점인지 파악한 다음에 내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완할 내용과 시간을 덜 투자해도 되는 내용을 파악한 다음에 공부를 시작해야한다.
즉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보완해서 약점을 강점으로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1년도 안남은 시험, 즉 8개월-10개월 남은 시험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해야하는 노력이다.

구본만 신부님의 사견에 따르면 명석한 두뇌의 차이는 박사학위따고, 그 이후 연구할 때는 차이가 나는데, 그전에는 두뇌의 차이가 아니라, 노력의 차이일 뿐이다.

노력의 차이며 준비의 차이다. 누가 준비를 성실히 했느냐, 그리고 누가 준비전략에 딱 맞춰가지고 노력을 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성공이란 희망이 아니라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사람에게건 상관이 없다. 전략을 잘 짜가지고 노력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다.!!!

결국 내가 홍대 국어교육과에 떨어진건 수능 전 마지막 노력이 부족한 것이었고, 고대 교원대 국교과 편입을 준비한다면 오늘부터라도 10시간씩 전공공부와 영어공부를 병행해야하며 이건 나중에 임용볼때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편입공부, 그리고 2년정도 후엔 임용공부를 할 때, 그리고 그 언제라도 어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할때 명심하고 마음에 새기자.

구본만 교수님 감사합니다.

by papyros 2012. 2. 1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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