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4.  필사 4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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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번 4주차에는 드디어 『불멸』에서 가장 길고 길었던 3부 - 「투쟁」을 모두 완독했다.

쿤데라의 문장 자체가 익숙치 않아서일까, 아니면 유독 이 소설인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난이도 높은 작품이어서 그럴까... 그의 작품 중에서는 처음 접하는 소설인지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책의 내용을 내면화 하는 데에 있으니...

다음주까지 꼭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지 못하더라도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읽고 후기를 남기고자 한다.

3부 「투쟁」 뒷부분을 모두 완독하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몇 가지 있었다.

 

 특히 브리지트의 피아노에 대한 일화에서는 '스카이캐슬'에서 그렇게도 차교수가 외치던 '피라미드 꼭대기'를 부숴버리던  장면이 겹쳐보였다. 학습자에게 그 학습이 자발적이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비자발적이거나 강요된 무언가라면 과연 그것이 아무리 좋은것이라 하더라도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일까?를 다시금 생각케 하는 핵심적 질문이 브리지트로부터 등장했다.

 

 

로라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녜스의 집에 들렀다. 그녀는 브리지트를 친딸처럼 보살폈고,

언니에게 피아노를 사 준것도 조카가 피아노 연주를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브리지트는 피아노를 싫어했다.

로라가 마음 상할까봐, 아녜스는 딸에게 좀 힘이 들더라도 흑백 건반들에 애착을 가져 보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브리지트는 이렇게 반문했다.

"그렇담 이모를 즐겁게 해주려고 제가 피아노를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 밀란 쿤데라, 「3부 투쟁, 불멸, 민음사, 2011, 168쪽.

 

 

 

 

 헤밍웨이의 일화를 통한 '기자'라는 직군이 지녀야 하는 직업적 태도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언론이, 언론인들이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많은 양의 정보를 다량으로 만들어내기에만 급급하기에.... 현실의 씁쓸함을 다시한 번 느낌과 동시에 기자라는 직업이 본디 이러해야 하는 구나를 다시금 통찰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기자라는 직군 외 다른 직업에도 통용될 것이다. 직업윤리를 지키며 도덕성을 추구하는 태도..)

 

 

 예전에는 기자의 영예를 가리키는 상징을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위대한 이름에서 찾을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간결하고 허식 없는 문체는 물론이요, 그의 작품 전체가, 사실은 청년시절 그가 캔자스시티 신문들에 보냈던 취재 기사들에 그 뿌리를 뒀다.

당시 기자가 된다는 것은 삶의 숨겨진 구석들을 파헤치고, 거기에 자신의 손을 집어넣어 스스로를 더럽히기도 하면서, 그 어떤 직업보다 더 현실의 삶 가까이 다가간다는 걸 의미했다.

 헤밍웨이는 그토록 삶의 밑바닥에 있음과 동시에 그토록 예술의 하늘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그런 책들을 쓴 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 밀란 쿤데라, 「3부 투쟁, 불멸, 민음사, 2011, 168쪽.

 

 

 

 또한 인권을 위한 투쟁이 대중화되면서 모든 욕구가 권리로 변화되었다는 문장에 매우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행복추구권,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출판의 자유.... 자유와 권리는 물론 분명 보장되어야 하고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임이 분명하지만 과거 이 권리를 위해 절실히 투쟁하고 노력하던 그 시기만큼이나

우리는 사회의 약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자성해야 할 문제라고 여긴다.

 

인권을 위한 투쟁이 대중화될수록 점점 구체적인 내용을 상실한 채,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공통된  태도가 되었고,

모든 욕구를 권리로 바꿔놓는 일종의 에너지가 되어 버렸다.

세계 전체가 하나의 인권이 되었고,

모든 것이 권리로 바뀌었다.

사랑의 욕구는 사랑의 권리로, 휴식의 욕구는 휴식의 권리로, 우정의 욕구는 우정의 권리로, 과속으로 달리고 싶은 욕구는 과소그로 달릴 권리로, 행복의 욕구는 행복의 권리로, 책을 출판하고 싶은 욕구는 책을 출판할 권리로, 야밤에 길거리에서 소리치고 싶은 요구는 야밤에 길거리에서 소리칠 권리로

바뀌었던 것이다.

 

 

 

- 밀란 쿤데라, 「3부 투쟁, 불멸, 민음사, 2011, 223-224쪽.

 

 

 

 

 

 다음 주차에도 깊은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좋은 문장들을 이 책에서 많이 마주하고 싶고, 무엇보다 어떤 방식으로 작품이 마무리될지 매우 궁금하기에...부지런히 열독하고자 한다:)

 

 

 

 

 


 

 

 

 

 

 

 

 

 

by papyros 2019. 2. 20. 23:43

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3.  필사 3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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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3주차. 이번 주차에는 『투쟁』 부분을 읽었다. 최근 기간제교사 원서를 접수하러 다니기도 했고 3부인 『투쟁』이 너무 길기도 해서 이번 3주차에는 그리 많이 책을 읽지는 못했다. 그러나 급히 읽지 않더라도 천천히 , 깊이 읽는 것이 독서의 의미라 생각하기에..

 얼마 안 되는 3주차의 독서 후기이지만 글을 올린다.

 

3부 초반에는 다시 아녜스와 로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2부에서 잠시 옆길로 새었다가 돌아온 느낌이랄까.

 3부를 읽는 도중 로라의 아녜스를 향한 외침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아마 내가 로라처럼 살아와서 그럴까.. 사범대 입학에 아쉽게 실패했음에도 교직이수를 위해 편입을 향해 최선을 다했고 국어 임용의 길이 너무 힘들어보인다고 교직을 포기하지 않고 플랜비인 전문상담 임용 쪽도 마련해 두고 있을 만큼... 삶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아녜스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로라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아녜스의 삶의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여긴다. 로라의 말처럼 단 한번뿐인 삶이기 때문에 그만큼 시행착오를 누구나 겪기 때문에....  20대 후반까지 열심히 공부하며 애를 쓰고 있는 내게, 특히 기간제교사 원서를 접수하며 2월을 참 복잡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 내게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었다.

 

"하지만 난 노래를 하려고 최선을 다했어. 그런데 언니는 자신의 야망을 제 발로 차버렸잖아. 난 패배했지만 언니는 항복했다고."

"한데 내가 왜 꼭 그렇게 살아야만 했다는 거지?"

"언니! 인생은 한 번뿐이야! 피할 일이 아니라고! 그래도 뭔가 우리 뒤에 남겨둬야 하지 않겠어!"

 

 

 

- 밀란 쿤데라, 「3부 투쟁, 불멸, 민음사, 2011, 156쪽.



 

 

 

한편 자아의 유일성, 독창성을 가꾸는 아녜스와 로라의 두 가지 방식도 흥미로웠다. 과연 나는 자아를 어떤 방식으로 가꾸고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자아를 가꾸어갈지 고찰하고 필요한 방식을 적절히 조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아녜스와 로라의 방식 그 중간지점 어딘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주차에는 조금 더 힘을 내서 3부를 마무리하고 4부,5부... 완독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고 싶다 :)

밀란 쿤데라의 책을 처음 접하는 거지만... 독서 중간의 개인적인 소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철학적인 작가인 듯 하다.

 

매일 점점 더 많은 얼굴들이 등장하고 그 얼굴들이 날이 갈수록 서로 닮아 가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자아의 독창성을 확인하고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유일성을 확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아의 유일성을 가꾸눈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덧셈 법과 뺄셈 법이다.

- 밀란 쿤데라, 「3부 투쟁, 불멸, 민음사, 2011, 164쪽.

 

by papyros 2019. 2. 13. 23:53

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2.  필사 2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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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도 어느덧 2주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주차에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 중 제 2부 <불멸> (민음사 p75~p144) 까지 일독하고 필사를 진행하였다. 기이하게도 지난 주에 일독했던 1부의 얼굴과 완전히 다른 서사가 전개되었다.

 우선 괴테와 나폴레옹과의 만남을 통한 작은 불멸과 큰 불멸의 차이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가 삶을 마치고 우리를 기억해주는 이들에 회자되는 작은 불멸, 그리고 좁은 차원이 아니라 그 사후에까지 많은 영향력을 떨치는 예술가와 정치인들의 큰 불멸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일전에 관람하였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의 서사가 생각나기도 했고, 지금 이렇게 작품을 접하고 있는 밀란 쿤데라를 비롯해 헤르만 헤세, 괴테, 헤밍웨이, 셰익스피어... 소위 고전을 쓴 작가들의 작품이나 빈센트 반 고흐 , 모네 등 화가들의 작품..그리고 작년 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 반증하듯이 음악까지도.. 그 사후 더욱 많이 회자되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불멸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 않다. 작은 불멸, 말하자면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어떤 인물에 대한 추억 (모리비아 마을의 그 시장이 꿈꾸던 불멸)과 큰 불멸, 즉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어떤 인물에대한 추억은 구분되어야 한다.

 사실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을, 도무지 사실 같지 않고 있음직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이론의 여지 없이 가능한 그런 엄청난 불멸에 맞닥뜨리게 하는 생애들이 있다.

 바로 예술가와 정치가의 생애가 그렇다.

 

 

- 밀란 쿤데라, 2부 불멸, 불멸, 민음사, 2011, 82쪽.

 

 

 그리고 괴테와 그의 연인 베티나에 대한 서사를 통해 그 안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인생의 전개 과정에서의 '불멸'에 대한 수용이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특히 죽음이란 것이 너무도 먼 일인 것만 느껴지는 , 가장 행복한 1단계, 곧 청춘기를 보내고 있는 20대로서 내가 죽음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그대로 묘사되어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더불어 내가 인생의 말년인 제 3단계에 이르렀을 때 나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도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삶의 태도를 향해 성장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다음 주차에 일독하게 될 3부 <투쟁>에서는 또 어떤 문장들이 내 심장을 뛰게 할지 기대가 된다.

 

 

 인생이라는 시간의 전체 틀을 이해해야 한다. 인생의 어느 순간까지는 신경 쓰고 근심하기엔 죽음이란 것이 너무나 먼 일로 여겨진다. 죽음에 대한 전망도 없고, 죽음이 보이지도 않는다.

 가장 행복한, 인생의 1단계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는 목전에 다가선 우리의 죽음을 보게 되며, 우리 시야에서 떼어낼 수 없게 된다.

 

- 밀란 쿤데라, 2부 불멸, 불멸, 민음사, 2011,119쪽.

 

 

 잠시도 죽음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인생의 이 2단계가 지나면, 가장 짧고 은밀한,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얘기도 하지 않는 세 번째 단계가 온다. 우리의 기력이 쇠하고 견디기 힘든 피로가 삶을 사로잡는다.

 피로라는 것, 그것은 사람을 삶의 기슭에서 죽음의 기슭으로 나르는 침묵의 다리다.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으므로, 이제는 죽음을 바라보는 것조차 지겹다. 그래서 예전처럼 다시, 죽음에 대한 전망도 없고 죽음이 보이지도 않는다.

어떤 대상에 너무나 친숙하고 그 대상을 너무나 잘 알 때는, 그것에 대한 전망도 없어지는 법이다.

피로에 지친 인간이 창문을 통해 나뭇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머릿속으로 그 이름을 부른다.

마로니에, 포퓰러, 단풍나무. 이 이름들은 존재 자체처럼 아름답다. 키 큰 포퓰러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올린 운동선수 같다. 화석이 된 긴 꼬리 불꽃 같기도 하다.

포퓰러, 아, 포퓰러.

불멸은 덧없는 환상이요, 깨어진 말 [言]이요, 나비 채를 들고 좇는 바람의 숨결이다.

피로에 지친 노인이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포퓰러의 아름다움에 불멸을 견주어 본다면 말이다.

불멸, 피로에 지친 노인은 이제 더는 불멸을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귀찮은 쇠파리"라는 말은 그의 작품에는 물론이요 그의 인생이나 불멸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말은 수수한 자유에서 온 말이다.

오직 인생의 3단계에 도달한, 그리하여 더는 불멸을 관리하지도, 중요한 일로 여기지도 않는 사람만이 그런 말을 쓸 수 있다. 그런 극한까지 이른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일단 거기 도달한 사람은 다른 어디도 아닌 바로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음을 안다.

 

 

 

- 밀란 쿤데라, 2부 불멸, 불멸, 민음사, 2011,120-122쪽.

 

 


by papyros 2019. 2. 6. 22:46

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1. 배송 인증 + 필사 1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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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의 작가는 다름 아닌 밀란 쿤데라였다.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이나 #농담 같은 유구의 소설들로 이미 잘 알려진 밀란 쿤데라의 명성은 모르지 않았고 실제로 아직 완독하지 못했으나 쿤데라의 책들도 몇 권 소장하고 있던 차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처음으로 도전할 구실로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프로그램이 적절하다고 생각해 이번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에도 지원을 하고 말았다.

 

 


쿤데라의 작품 중에서 처음으로 정독을 시작한 <불멸>이라는 이 소설은... 문체가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으나 아직 본격적으로 서사 전개가 이루어지기 전이어서 그런지 소설이라기 보다 좋은 문장들로부터 사유를 이끌어주는 인문학 서적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자아에 대한 아녜스의 사유와 개인주의에 대한 부분...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주인공 아녜...스에와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마음을 울렸다. 아직은 낯설고 새롭기만 한 쿤데라의 이 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다음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이 소설에 더욱 몰입할 수 있기를, 매료되기를 기대한다.

 

 

by papyros 2019. 1. 30. 23:47

 

 

로제 마르탱 뒤 가르, 『회색 노트,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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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민음사' 첫 번째 독자 (7월) : 민음북클럽 서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민음사와 민음북클럽 담당자님께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련링크 : http://minumsa.com/event/30529/)

 

 

 


 

 

 『회색노트』는 민음사 홈페이지에서 7월의 첫 번째 독자서평 프로그램 공고가 올라왔을 때 가장 눈길이 간 제목이었다. 12년 전, 중학 3학년 시절 지금까지도 안부를 여쭙고 종종 뵙곤 하는 국어과목 은사님께서 내게 직접 추천해 주신 책이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소설이긴 하지만 아마 네가 좋아할 만한 책일 것이라고.

 당시의 나는 아마 헤세와 김탁환 작가, 그리고 독서토론 수업에서 읽던 책들이 우선되었는지 언젠가 선생님께서 권해주신 책을 읽어보아야겠다고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고,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특히 도서 정보를 확인하니 두 소년의 우정과 성장, 교육에 대한 화두가 작품 속에 다루어져 있다고 하여 교육자를 목표로 정진하는 이로서, 도서를 접하기 전부터 기대가 매우 컸던 바이다.

 왜인지회색노트라는 도서를 이미 소장중이었던 것 같아, 방을 살펴보니 언젠가 이사를 가시며 장서를 정리한 이웃분의 서가에서, 그리고 헌책방에서 판매하던 책 각기 다른 출판사의 회색노트서적이 총 두 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회색노트라는 책이 뇌리에 남았고 마음 한켠에 항상 읽어야 할 책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을 수령한 뒤 깔끔한 책 표지에 매료되었고, 책 속에 금방 몰입될 수 있었다. 책을 완독한 후에는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크와 다니엘의 우정이 마치 헤르만 헤세의 작품 속에 나오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우정 같기도 하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우정 같기도 하고. 또한 일전에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에 등장한 소년들의 우정도 생각났다.

 헤세의 작품, 프레드 울만의 작품, 그리고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자크와 다니엘의 우정에 공통적인 속성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청소년기(사춘기)를 보내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동경을 기반으로 우정을 가꿔나갔다는 것이다. 그러한 동경이 마치 열망처럼 느껴지다보니 마치 우정을 넘어 사랑과 같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동경.

 기실 그러한 동경은 자신의 내면이나 외적 환경에 부재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일수록 더욱 강렬하기 마련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서로 이성과 감성의 속성을 부러워하듯. 자크와 다니엘 또한 다니엘은 그가 가지지 못한 자크의 열망과 감수성에, 자크는 그가 가지지 못한 다니엘의 모범적이고 이성적인 면에 이끌렸기에, 서로가 친구의 소망을 이해해 주는 존재였기에 그들이 그토록 오랜 기간 교사들의 눈을 피해 회색 노트에 시를 통해 마음을 터놓고 강렬한 우정을 나눈 것이 아니었을까.

 

  자크는 가톨릭 학교의 준기숙생이며, 종교적 생활 형식을 중요시하는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또 한번 뛰어넘어본다는 쾌감 때문에 이 프로테스탄트 소년의 관심을 사려고 했다. 그는 그 소년을 통해 자기의 세계와는 대립되는 세계를 이미 예감했다. 그리고 몇 주일 안 가서 그들의 우정은 불길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변했으며, 각자 자신도 모르게 괴로워하고 있던 정신적인 고독에 대한 위로를 상대방에게서 찾아내게 된 것이다. 청순한 사랑, 신비한 사랑, 그 속에서 그들의 청춘은 미래를 향해 똑같은 설렘으로 융합되었다. 그들 열네 살짜리 소년의 마음을 휩쓸던 격렬하면서도 서로 모순되는 온갖 감정, 누에 키우기나 글자 맞추기 놀이에 대한 열정에서부터 그들 내부의 은근한 비밀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삶에 대한 열광적인 호기심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정이 두 소년에게 공통되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91-92.

 

 

 

 

 그러나 기실 그들이 가출을 하게 된 가장 강력한 배경은 그들의 강렬한 우정보다도 가정, 학교, 사회의 환경이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 여겨진다. 현대에 와서는 이미 고전(古典)으로 널리 읽히는 루소의 참회록을 금기시하는 시대적 분위기(교육환경), 유명 정치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자크를 과도하게 보호하고 통제하려 하는 교사들의 태도, 그리고 시를 짓는 아들의 감수성과 관심사에 무관심한 가족환경(형을 제외하고). 자크가 가장 애정을 지니고 있는 친구와 함께 그러한 학교와 가족환경에서 탈출하고 싶어했던 마음이 충분히 공감될 만큼 자크의 성장에 외부 환경은 매우 억압적이었다. 다니엘의 경우 같은 사회적 환경(교육환경)을 지니고 있었으나 자크와 다니엘의 가족환경이 가출 이후 그들의 삶에 결정적 차이를 빚은 것으로 보인다.

 

 

 

 

 늘 아들 다니엘을 신뢰하고 필요한 순간엔 그녀의 아들과 딸을 보호하고자 강인해지고 단호한 결정을 내리던  퐁타냉 부인. 특히 그녀가 아들의 노트를 증거물이라며 제시하는 비노 신부의 행동에 보인 언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녀가 아들을 마음 깊이 신뢰하고 독립된 인격으로서 아들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부모의 태도라고 느꼈기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로 그러한 어머니가 있기에, 타인을 존중하는 어머니가 있기에 소중한 친구의 제안을 수락하여 함께 가출하긴 하였으나 가출 기간 동안 내내 어머니를 그리며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러분, 저는 단 한 줄의 글도 읽지 않겠어요. 그 애의 비밀이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애 모르게 폭로되고, 그 애에게는 변명할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다니요! 전 그 애에게 이런 대우를 받도록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38-39.

 

 

 

 

 

 다니엘은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었을까? 부인은 늘 하던 버릇대로 뜨거운 차를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차에서 무럭무럭 올라오는 김 속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불빛을 등진 그 얼굴은 확실히 좀 피로해 보이기는 했지만 언제나 보아 온 그 얼굴이었다! , 이 미소, 이 오랜 눈길…….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29.

 

 

 

  주님은 언젠가는 남편이 선의의 길로 가도록 그를 돕게 하려고 방종한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선량한 마음을 가진 이 죄이 곁에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닐까? 아니다. 급선무는 가정과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다. 그녀의 생각이 천천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자신이 더 굳센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제롬이 없는 동안에 기도로써 밝혀진 그녀의 마음속에 내린 판단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38.

 

 

 

 

 

 

 

 

 한편 자크는 비록 젊은 의사인 형, 앙투안이 그나마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좋은 형제이긴 하지만 앙투안을 제외하고서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이가 가족 내에 없었을뿐더러, 아버지 티보씨의 엄격한 통제와 억압에 내몰리고 있었다. 특히 유력가 집안의 후손이고 정치인인 티보씨로서는 그의 아들을 엄격히 교육해 제대로 성장하게 하여 가문의 명예를 지켜나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티보씨가 자크에게 엄한 아버지였으며 아들의 관심사에 무심했을지 모르나, 그 또한 악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속으로는 아들이 달려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아들을 위해 그리스도께 기도를 바치는 신실한 신앙인이자 나약한 한 개인이었다. 티보씨가 조금만 더 그의 아들이 무엇에 흥미를 갖고 관심을 보이는지, 힘든 점은 무엇인지 감정을 잘 헤아리고 보살폈다면, 아니- 자크가 가출 후 귀환했을 때라도 아버지로서 진심을 비추어 그를 어루만져주고 아들을 반기었다면, 자크의 비극적인 선택을 결심하게 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자크를 보는 순간 티보 씨는 마음의 동요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응접실에 그 복사판이 걸려 있는 그뢰즈의 그림처럼 죄지은 이들이 그의 무릎 앞으로 달려와 엎드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은 감히 그러지 못했다. 서재 역시 꼭 잔칫날처럼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그때 마침 부엌 문앞에 두 하녀가 나타났으며, 더구나 티보 씨는 저녁에 입는 가벼운 재킷을 걸치고 있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 모든 예사롭지 않은 광경이 자크를 마비시켜버렸다. 자크는 유모의 품에서 빠져나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자기도 모르는 그 무엇을 기다리면서, 울고 싶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한 심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서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그토록 애정이 복받쳐 있었다!

 그러나 티보 씨의 첫마디는 그를 이미 이 가정에서 쫓아내 버리기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자크가 보인 그 태도가 관대해지려던 티보 씨의 생각을 단번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는 그대로 버티고 서 있는 아들놈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기 위해 철저하게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 너 왔구나.” 그는 앙투안만 보며 말했다.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거기 일은 다 제대로 되었느냐?” 그가 내민 나른한 손을 잡은 앙투안으로부터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나자 이렇게 말했다. “고맙다, 얘야. 나 대신 그런 일을 처리해 줘서……. 그런 창피한 일을!”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때까지도 죄 지은 아들이 달려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하녀들을 흘끗 쳐다보고 나서 다시 자크를 쳐다보았다. 자크는 우울한 표정으로 양탄자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티보 씨는 결정적으로 화난 말투로 말했다.

 “다시는 그런 추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일 당장 방침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51-152.

 

 

  그곳에서 홀로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 이 뚱뚱한 신사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얼굴에서는 피로의 가면이 벗겨져 내리는 것 같았고, 얼굴 윤곽이 소박한 표정으로 변하여 어렸을 때의 사진 속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다. 그는 기도대 앞으로 다가가 몸을 던져 무릎을 꿇었다. 그는 두툼한 두 손을 익숙한 몸짓으로 재빨리 마주 잡았다. 이곳에서의 그의 일거일동에는 무엇인가 편안하고 비밀스러운 자기 혼자만의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생기 없는 얼굴을 들었다. 지금 하느님에게 자신의 실망과 이 새로운 시련을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부터 모든 원한을 풀어 버린 그는 지금 아버지로서 길 잃은 자식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기도대 아래에 있는 종교 서적들 틈에서 묵주를 꺼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53-154.

 

 

 

 

 

 자크의 모습에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한스 기벤라트가 겹쳐보였다. 한스 기벤라트 또한 학업에 내몰린 교육적 환경 속에서 고되고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못하며 힘든 길을 지나가다가 종국에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그에게도 마지막 과수원에서 만난 이의 손길이 있었다면 다른 선택지가 열렸을지도 모른다. 굳이 문학작품에서 찾지 아니하더라도, 사도세자의 비극은 또 어떠한가. 사도세자 또한 지나치게 엄한 부친 영조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을 옹송그리며살다가 병에 걸리지 않았던가.

결국 문학작품 속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성장 중에 내면의 생각과 가치와 사회체계의 가치 사이에서 여러모로 혼란을 겪고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할까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재능과 개성, 관심사와 선호에 반하는 것들을 억압하면서 무언가를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경청으로 그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격려하는 것.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바로잡아야할 인격체가 아니라 고유한 개성을 가진 동등한 인격 으로서 대우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교육(敎育)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기실회색노트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8부작 장편소설 티보 가의 사람들의 서두가 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학교교육의 불합리성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가출을 결행하는 자크와 앙투안의 행동 속에는 그들의 가정환경 뿐 아니라 신교에 대한 가톨릭(구교)의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 또한 배경으로 등장했는데, 회색노트이후 앙투안의 내면과 삶, 티보씨의 행동들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스포가 될지 모르겠으나 검색중에 알게 되었는데, 결국 자크는 비극적인 선택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으나 이를 결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좋은 작가를 마주하고 앞으로 완독하고픈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되어 진실로 기쁘고 이후의 서사가 참으로 기대된다.

 

 회색노트는 나의 내면에 경종을 울리는, 짧고도 굵은 단편이자 장편소설 티보 가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알리는 긴 여정의 출발점과 같은 작품으로 남았다.

 

 

 

 


 

 

 

 

by papyros 2018. 8. 30. 15:06

[과제5] 제5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5주차

 

피천득, 『인연, 민음사,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5주차에는 수필집의

「은전 한 닢」(226p)에서부터 시작해,  작품집 후기로 등장한 박준, 박완서 시인과 피천득 시인의 장남인 의사 피수영 선생님께서 피천득 시인께 보내는 애정어린 고백 내지 서편을 지나,「작가연보」(295p)까지 읽어내려갔다.

 

 

 

 

 『인연이라는 한 권의 수필집을 모두 완독한 주차인 만큼,  많은 소회가 밀려왔다. 5주라는 기간동안 읽어온 피천득 시인의 여러 수필들을 통해 느껴지는 그분의 가치관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시인이자 수필가로서의 피천득', '소박한 한 개인으로서의 피천득'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특히 5주차에 읽은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순례, 여린마음, 기도, 우정, 만년 과 같은 작품들이 가장 마음속에 남았다.

 

  순례에서는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읽고 그 문학작품을 현실, 외부세계에서 재인식하여 여러 감정과 가치, 생각에로 뻗어나가는 과정이 하나의 '순례'와 같다고 표현하신 부분이 참으로 마음에 많이 남았다. 나 또한 헤세를 통해 독일 교양소설 내지 성장소설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김탁환 작가님을 통해 백탑파 실학자들을 알아가게되었듯이, 문학은 다른 문학작품으로, 그리고 또다른 외부의 사람이나 사물로 끊임없이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는 데 진실로 공감했다.

 

 

 

 

 나는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문학은 낯익은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여 나를 풍유(豐裕)하게 하여  준다. 구름과 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눈, 비, 바람, 가지가지의 자연 현상을 허술하게 놓쳐 버리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여 준다. 도연명을 읽은 뒤에 국화를 더 좋아하게 되고 워즈워스의 시를 왼 뒤에 수선화를 더 아끼게 되었다. 운곡(耘谷)의 「눈 맞아 휘어진 대」를 알기에 대나무를 다시 보게 되고, 백화나무를 눈여겨보게 된 것은 시인 프로스트를 안 후부터이다.

 바이런의 소네트가 아니라면 쉬옹의 감옥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요, 수십 년 전에 내가 크레인의 「다리()」를 읽지 않았던들 작년에 본 뉴욕의 브루클린 브리지가 그렇게까지 아름답게 보였을까.

 

- 피천득, 「순례」, 『인연』, 민음사, 2018, 239쪽.

 

 

 

 여린마음에서는 한 사람으로서의 모든 개개인들에 대한 신뢰가 인상적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 팽배해질수록 개개인 간의 불신이 심해지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주의적인 모습이 자주 발견되는데도 불구하고, 피천득 선생님께서는 보편적인 대다수의 소시민들이 지닌 '정'에 대해 강한 믿음을 지니시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품어내셨다. 이 부분이 인상깊었던 것이, 실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사이 우리 내면에 깊은 정(情)과 선(善) 등의 가치가 있는데, 다른 가치를 추구하려다가 이렇듯 중요한 가치를 자주 잊고 산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광주민주화운동 또한 지역 시민사회의 깊은 연대와 유대로 이어져 있던 것이 아니었는가. 몇년 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우리가 울고 웃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본시 연한 정으로 만들어 졌다. 이런 연민의 정은 냉혹한 풍자보다 귀하다.

 소월도 쇼팽도 센티멘털리스트였다.

 우리 모두 여린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인생은 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 피천득, 「여린마음」, 『인연』, 민음사, 2018, 254쪽.

 

 

 기도는 이미 어머니 뱃속으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지녀온 신자이기에 더욱 와 닿았던 수필인지도 모르겠으나, 나 자신의 물질적 복락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아닌 그저 마음을 비운 진실성 있는 기도, 인격적 성장과 내면의 행복과 지혜를 추구하는 기도가 더욱 의미있는 기도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하고 우리는 기도의 끝을 맺습니다. 어찌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 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타고르의  「기탄잘리」의 한 대목이 있습니다. "저의 기쁨과 슬픔을 수월하게 견딜 수 있는 그 힘을 저에게 주옵소서."

 내가 읽은 짧고 감명 깊은 기도가 있으니 "저희를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 피천득, 「기도」, 『인연』, 민음사, 2018, 260-261쪽.

 

  우정」과 만년에서는 오랜기간 지속되는 벗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우정」에서 우정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한 바, 벗 사이의 비극은 '이별'이 아니라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데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만년」의 마지막 문단이 마음 깊이 와 닿았다. 나이가 점차 들어감에 따라 실질적으로 자주 교류할 수 있는 벗들이 점차 적어지겠으나, 마음 깊이 연결되어 있다면, 말과 행동으로, 그리고 글로 그 사랑을 마음 깊이 전한 사람이라면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기에.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 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익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 피천득, 「만년晩年」, 『인연』, 민음사, 2018, 282-283쪽.

 

 

 

 

  5주간 피천득 시인의 수필을 통해 피천득 시인을 간접적으로 마주해 왔다. 5주간 꾸준히 정독하고 필사하며 느낀 바, 피천득 시인은 참으로 겸허하고 소박하며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있는 분이셨다. 학부 시절 모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윤동주 시인의 내면이 다른 그 어떤 이들보다도 더 깨끗했으며 한 점 부끄럽지 않았기에 그만큼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즉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 더욱 겸허하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마주한 피천득 시인도 그러하다. 시와 수필을 통해 진정 중요한 가치를 담아내시고, 독자들, 제자들이 그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해 줄 수 있는 선한 마음과 공감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셨음이 느껴진다. 이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많이 사랑하셨고 그렇기에 사랑하는 이들이 잘못되거나 떠나가는 듯 보일 때 아파하고 외로워하셨을 피천득 시인...

 그렇기에 수필집을 읽으며 나의 내면도 안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일까.

 

 

 박준 시인의 발문에 이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있다고 여긴다. 언젠가 피천득 시인의 수필과 시들로 문학치료 수업을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독서모임에서도 함께 읽고 싶다.

 피천득 시인의 인연』을 통해, 나도 또다른 누군가와,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좋은 문학작품과 좋은 인연을 맺기를 진실로 소망하게 되는 밤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상처들이 점처럼 찍혀 있고 물론 저에게도 숨겨지지 않는 큰 점같은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의 글은 사람의 상처와 얼마나 마주해야 할까요. 아니 꼭 글을 쓰지 않더라도 말을 뱉거나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어떻게 직면하거나 외면해야 할까요. 조선 땅에서 태어나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나온 선생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더욱 자주 가지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해법을 이미 알고 계셨다고도 생각합니다. 

  『인연』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시작은 분명 외로움이나 슬픔인데 아무도 외롭지 않게 그리고 아무도 슬프지 않게 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선생님 특유의 천진과 소박은 그 여정에서 줄곧 가장 큰 빛을 내고 있고요. 아마 선생님이 화가였다면 그의 옆으로 가서 초상을 그리셨을 것입니다. 점이 보이지 않는 옆모습을 그린다고 해서 소흘히 하거나 왜곡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옆모습을 그리고 있노라면 어느새 바람도 불어와 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휘날려 줄 것입니다. 혹은 선생님이시라면 별이 많은 밤, 바닥에 누워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림을 그리셨을 수도 있습니다. 밤과 숱한 별을 담고 얼굴과 점도 함께 그려 냈을 것입니다. 그러면 별이 점 같고, 점은 별처럼 보일 테지요. 

 

 

 

 

- 박준(시인), 「『인연』과의 인연-피천득 선생님께」, 『인연』, 민음사, 2018, 284-285쪽.

 

 

 

by papyros 2018. 8. 23. 17:58

[과제4] 제5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4주차

 

피천득, 『인연, 민음사,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4주차에는 수필집의 「유순이」(141p)에서부터 「낙서」(222p)까지 읽어내려갔다. 이번 주차에 읽은 수필들은 대부분 피천득 시인이 존경하고 애정을 가지던, 닮고 싶어하는 인물들이 수필의 대상인물로서 등장한다.

도산 안창호, 춘원 이광수, 셰익스피어, 로버트 프로스트, 찰스 램, 아이슈타인, 주요섭, 장익봉 교수.

 

 실제로 피천득 시인과 인연이 닿았던 주요섭, 장익봉 교수님과 같은 경우 그분들과의 일화를 상기하기도 하고, 피천득 시인이 문학적으  로 존경해 마지않는 로버트 프로스트와 찰스 램같은 경우 그들의 삶과 가치, 문학 위에 기반으로 둔 토대가 되는 삶을 소개하고 있다.

 많은 수필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남기는 했지만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수필을 몇 편 생각해 보면,  「로버트 프로스트 」,  「로버트 프로스트 」, 「찰스 램」, 「나의 사랑하는 생활」, 그리고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

 

 

 우선 「로버트 프로스트 에서는 직접 농부로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사랑했던, 일상 속에서 소박하고 담백한 시를 지었던 자연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김용택 시인이나 도종환 시인을 존경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 아닌가 싶다. 특히 김용택 시인의 경우 직접 산골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며 , 자연을 노래하는 시를 쓰셨기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소박함과 자연스러움, 농부이자 시인으로서 진정 자연에 대한 깊이 있는 애정이 있었던 그를,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이셨던 피천득 시인이 왜 닮고 싶어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피천득 시인 덕분에 나 또한 존경하고 좋아할 만한 시인 한 명을 더 알게 된 듯해 무척 기뻤다. 이런 것이야 말로 독서가 제공하는 제2차 독서의 효과가 아닐까. 

 

 

 "우리는 존재 그대로를 사랑한다."

 당신은 시인이기 이전에 농부입니다. 「풀베기」, 「사과 딴 뒤에」, 「머슴의 죽음」, 「목장」 등 여러 시들은 농부인 당신이 아니면 못할 말들입니다. 당신의 시골은 돌이 많고 눈이 많이 내리는 미국 동북방 뉴잉글랜드의 농촌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가리켜 '뉴잉글랜드 시인'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시의 배경이 이 지역에 놓여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당신의 시가 곧 이 지방의 사람들의 생활인 까닭입니다. 당신은 본질적으로 자연시인(自然詩人)입니다.

(중략)

 당신의 시는 뉴잉글랜드 과수원에 사과가 열리고, 겨울이면 그 산과 들에 눈이 내리는 것과 같이 영원한 것입니다.

 

 -피천득, 「로버트 프로스트 , 『인연』, 민음사, 2018, P163-165.

 

 

 

 

  「찰스 램」에서는 무엇보다 서두의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일전에 어디에선가 접했던 문구이기도 해서 더욱 반가웠다. 마치 루소와 같이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고 런던의 문화, 런던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소시민 개개인을 사랑하고 애정을 가졌던 찰스 램. 피천득 시인이 서두에서 찰스 램의 인물 특성을 묘사한 바처럼, 바로 그와 같이 나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나 또한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기에- 찰스 램에 대한 묘사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중요한 방향성이 되는 문구로 자리했다.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 동정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곧잘 수줍어하고 겁 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아련한 애수의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피천득, 「찰스 램, 『인연』, 민음사, 2018, P169.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서는 무엇보다 피천득 시인이 좋아하는 것을 나열하는 문장을 읽으내려가며, 그저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TVN에서 방영한 나영석 PD의 관찰예능 <숲속의 작은 집>에서 'ASMR' 이라는 용어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는 오감과 같은 특정 자극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이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지칭하는데,  피천득 시인의 ASMR로 구성되어 있는 수필이었다.

  읽어내려가며 피천득 시인과 내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에 행복감을 느끼며 반가워하기도 하고, 한편 이 작품이야말로 국어교육 현장에서 수필을 가르칠 때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도 단 한편의 수필이 될 수 있기에. 글쓰기를 어려워 하는 학생(성인들도 마찬가지가 되겠다)에게 좋은 시도가 될 것이라고 여겼고, 비단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이나 성인이 아닐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 나가고 정리해 나가며 휴식의 장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수필 「이야기」에서는 수필의 마지막 문단으로 등장한 구절이 참으로 인상깊었다. 결국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상과 경험들, 내 내면에 깊숙이 박혀 괴로움이나 불안을 형성하는 그 어떤 감정들까지도 결국에는 '나'라는 한 개인의 서사를 이루어가는 대상이 된다는 데 깊이 공감하고 있다.

 개개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기에, 그러한 개개인의 삶을 그려내는 '문학'작품의 작품서사와 자기서사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조정하면서 자기서사를 변화시키고 성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산다. 그리고 모든 경험은 이야기로 되어 버린다. 아무리 슬픈 현실도 아픈 고생도  애끓는 이별도 남에게는 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당사자들에게도 한낱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날의 일기도 훗날의 전기도 치열했던 전쟁도 유구한 역사도 다 이야기에 지나지 아니한다.

 

 

 -피천득, 「이야기, 『인연』, 민음사, 2018, P212.

 

 

 

 

 

 

by papyros 2018. 8. 16. 02:32

 

안녕달, 안녕, 창비,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창비출판사 측에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이젠 괜찮아…….”

그의 표정이 미묘해서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고맙소.”라고 말했다. 그날, 소시지 할아버지는 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소시지 할아버지는 이곳에 남게 되었다.

 

- 안녕달, 『안녕』, 창비, 2018, 236-255쪽.

 

 

 수박수영장 이라는 그림책으로 널리 알려지신 안녕달 작가님의 신작 그림책인, <안녕>이라는 그림책을 처음 접했다. 기실 글줄로 된 책에 너무도 익숙해진 터이고, 심지어 종종 즐겨 보는 만화책에조차 적당량의 대사가 담겨있기에, 유년시절 이후 대사가 적은 그림책은 퍽 낯설었다.

적당한 낯설음, 그리고 마치 눈오는 마을을 그린 듯한 표지의 감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적당한 기대를 지니고 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솔직히 당황했다. 그림책에 사람도, 동물도 아닌 웬 소시지? 소시지라는 대상의 의인화는 낯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품으로부터 느껴지는 온기가 마음에 스며들었다. 따뜻하고 사랑 많은 소시지 어머니의 자녀로 태어난 소시지씨가 유년시절을 거치고 늙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소시지씨가 어머니를 여의고 외로워할 때 그에게 한 곰인형과, 흰둥이 강아지가 찾아온 과정... 누군가를 잃고 소외된 소시지씨의 처지와, 다른 강아지들이 모두 분양되어 갈 때 떨이로 전락하고 말고 심지어 그냥 가져가라는 팻말이 붙은 흰둥이에게는 모두 공통적으로 버림 받은 듯한 감정, 외로움, 소외 라는 감정이 관통된다.

 

 무심하게 흰둥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지나가던 소시지씨가 흰둥이를 결국 데려가야만 했던 것도 흰둥이에게서 그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욱 놀라운 건 마지막 4장이었다. 3장에 그려진 소시지씨의 죽음 이후 홀로 남겨진 흰둥이의 행적들을 바로 소시지씨가 사후 지켜보고 있던 것이었다. 지난 겨울 관람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원더풀라이프> 라는 영화에서처럼, 죽음 이후 천국에서 자신의 삶에서 놓고 온 단 한 대상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이 그림책 4장에 그려진다. 소시지씨는 자신의 삶에 놓고 온, 보고 싶은 단 한 대상으로 그의 강아지 흰둥이를 택한다. 홀로 남겨진 흰둥이는 위험천만하게도, 언제 터져버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불꽃과 폭탄아이와 함께 다닌다.

 

 

 

 그러나 영상의 말미 불꽃에게 유리모자를 씌워주고 폭탄 아이의 날선 머리(폭탄의 심지부분)을 핥아주는 흰둥이를 보고, 소시지씨가 그제서야 걱정을 내려놓으며 이제 괜찮아를 언급할 수 있었던 데는, 세상에서 아무리 위험하다고 말하는 , 꺼려하는 그 어느 존재일지라도 그들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쓰다듬으며 옆에서 함께 있어줄 때만이 그 아픔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어머니를 잃은 소시지씨가 흰둥이와 곰인형으로부터 위로를 얻고, 모두에게 선택받지 못한 처치 곤란한 존재로 여겨지던 흰둥이가 자신을 거둬 준 소시지씨에게 사랑을 전해주었듯이.

 사랑을 받은 존재만이 또 다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이 그림책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한 권의 그림책이 때로는 300페이지의 여느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보다 더 함축적이고 의미있는 작품일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으며, 어린이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닌, 외로움을 느끼는 많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그림책이라고 여긴다.

 

 

 주변의 아파하는 이들, 소외된 이웃들, 외로움이나 불안을 느끼는 이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꼭 권하고 싶다.

 

 

 

 

 


 

by papyros 2018. 8. 11. 23:01

[과제3] 제5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3주차

 

피천득, 『인연, 민음사,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3주차에는 피천득 시인의 수필집 인연 , 엄마(99p)에서 인연(136p)까지 일독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수필

「엄마」, 「찬란한 시절」, 「딸에게」, 인연이었다.   '서영이'라는 부제(수필집의 Part2)가 적힌 두번째 파트로 넘어오면서, 피천득 시인은 그의 일생에

에정을 거진 유일한 두 명의 여인들에 대한 기억과 마음을 풀어낸다.

 

 특히 「엄마 「그 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남편을 일찍이 떠나보내고, 그미마저도 병환을 얻어 고향 평양에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아픔어린 사랑.

그 시기가 유독 짧아서였을까. 시인이 유년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과 함께 가꾼 추억들은 유독 각별해 보인다.

 마지막 임종 전까지도 아들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어머니를 빨리보려 달려가던 피천득 시인의 마음.

애타면서도 아름다운 모자지간의 사랑이 책장 너머까지 전해졌다.

 

 

 밤이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마당에 데려가 별 많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북두칠성을 찾아 북극성을 가르쳐 주었다. 은하수는 별들이 모인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그때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행히 천문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나는 그 후부터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피천득, 「엄마, 『인연』, 민음사, 2018, P103-104.

 

 

 

 

  한편, 「서영이에게」, 「어느 날」, 「서영이」,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이와 난영이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딸 '피서영'에 대한 사랑이 눈에 띠었다. 시인에게 있어 모친 다음으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여인이었으며 그만큼 애정을 쏟아 키웠던 서영이.

책을 읽으며 궁금해 문득 찾아보니 피서영 선생께서는 이론물리학 학계에서 저명한 학자로 알려져 있더란다. 유년시절부터 애지중지 사랑을 다 전하며 키워온 딸이 결혼도 마다하고 학문의 길을 택했을 때 으레 그 시대의 어른들이라면 결혼을 재촉하거나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등 가부장적인 태도를 유지하셨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피천득 시인에게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와 정 반대로 비록 영문학과 물리학으로 전공을 하고 공부를 해 나가는 학문분야는 다르지만, 연구자-학자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외로움에 대해 공감하고 격려하며, 어떤 길을 택하든 딸 서영이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그 길이 옳은 길임을 격려하고 있다. 또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딸에게 인문학적 감성 또한 강조하며 과학과 철학을 양립시켜 공부할 것을 조언하는 피천득 시인의 균형잡힌 태도 또한 눈에 들어왔다. (통섭적 사고는 최재천 교수님 이전에 피천득 시인이 있었다...?!!!! ㅎㅎ)

 

다정한, 그리고 부친이었으나 때로는 스승이, 때로는 동료 연구자가 되어주신 아버지가 계셨으니 - 비록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피서영 선생님의

지성과 인격 또한 분명 시인을 닮지 않으셨을까, 막연히 추측해 본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어 순조로운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아니면 외롭게 살며 연구에 정진하는 것이 네가 택해야 할 길인지 그것은 너 혼자서 결정할 문제다. 어떤 길이든 네가 가고 싶으면 그것이 옳은 길이 될 것이다.

(중략)

한편 과학자에게는 철학 공부가 매우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현대 과학은 광맥을 파 들어가는 것과 같이 좁고 깊은 통찰은 할 수 있으나 산 전체의 모습을 알기 어렵고 산 아래 멀리 전개되는 평야를 내려다볼 수는 없을 것이다 너는 시간을 아껴 철학과 문학을 읽고, 인정이 있는, 언제나 젊고 언제나 청신한 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피천득, 「딸에게, 『인연』, 민음사, 2018, P127-128.

 

 

 

 지막으로, 이 수필집의 제목으로 꼽히기도 한, 저명한 수필 「인연」.

첫사랑 - 아니 이 경우엔 순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 감정이 무엇이든, 사랑하고 아끼던 이를 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좇아가고 싶은

시인의 그 마음이, 그리고 한편으로는 추억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지 못한 데 대한 씁쓸한 회한이 그려진 작품이었다.

그러함에도 가을이면 또 춘천 소양강에 들르고 싶다는 소망은,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때이고 꺼내 추억할 수 있는 마치 일기장과도 같은 그런 애틋한 감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름도 잊고 얼굴도 기억에 없지마는 나와 제일 정답게 놀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양말이 조금 뚫어졌던 것이 이상하게도 생각난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사는지, 아마 대학에 다니는 따님이 있는 부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사는 그는 영원한 다섯 살 난 소녀이다.

유치원 시절에는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고, 사는 것이 기뻤다.

아깝고 찬란한 다시 못 올 시절이다.

 

 -피천득, 「찬란한 시절, 『인연』, 민음사, 2018, P110-111.

 

 

 

 

 

 

 





 

 

 

 

by papyros 2018. 8. 9. 23:14

[과제2] 제5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2주차

 

피천득, 『인연, 민음사,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2주차에는 피천득 시인의 수필집 『인연』 中,  

「맛과 멋」(71p)에서 「보스턴 심포니」(95p)까지 일독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았던 수필은 단연

 

「전화」 「장수」 그리고 「기다리는 편지」였다.

 

 「전화」에서는 사람 간 情을 연결하고 이어주는 전화라는 매체에 대한 애착과 고마움에 공감할 수 있었다. 현대 현대사회에서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같이 시공간을 초월해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여러 매체들이 발달되어 있지만,

 사람의 지문과도 같은 '목소리'를 통해 우러나오는 것은 대화의 진정성이기에, 전화기라는 물건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피천득 시인의 이 수필 덕분에 새삼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한편, 「장수」와  「기다리는 편지」에서는 누군가의 편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건강한 성찰에 대한 자세를 노래하고 있었다. 특히  「장수」에서 '추억'할 수 있는 과거가 많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부유하고 넉넉한 사람이라는 데에 마음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과 깊은 사랑과 정을 나누고, 공유하고 '더불어 가는 삶'을 살아가는 이의 내면이야말로 행복하고 고귀한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장수」의 마지막 두 문단을 삶의 지표로서 늘 기억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 둔 보물의 세목(細目)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작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

 

 -피천득, 「장수, 『인연』, 민음사, 2018, P80.

 

 

 

 

 

 

 

 

 

 

by papyros 2018. 8. 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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