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북스 페이퍼프로(RIDIBOOKS PAPER PRO) 7개월 사용후기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어느덧 리디북스 페이퍼프로를 사용한 지도 꼭 7개월이 지났다. 일전에 구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용후기를 올린 바 있지만,
(관련링크 http://pedagogics.tistory.com/109)

당시는 구입 및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충분히 페이퍼프로를 사용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때문에 이번글에서는 7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페이퍼프로를 사용하며 직접 느낀 장단점에 대해 지난 글보다 조금 더 서술해 보고자 한다.

 

 

 

'페이퍼 프로(Paper Pro). 그는 어떤 리더기인가.'

 

(BGM . 그것이  알고 싶다)

 

 

강점 1.  종이책과 유사한 크기와 분량. (7.8인치)

 

 

 

 

 7.8인치인 페이퍼프로의 경우, 종이책과 거의 유사한 크기를 지닌다.

 심지어 종이책과 페이지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데 창비에서 출간된 표명희 작가님의<어느 날 난민>이라는 소설의 경우 종이책 전체 페이지가 296페이지인데 , 페이퍼프로 원본설정 기준으로 275페이지 분량이다. 물론 전자책이라는 특성 상, 페이지 수의 차이는 불가피하겠지만 종이책 분량과 거의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기기 자체의 크기도 일반 종이책의 크기와 유사하기 때문에 '종이책'의 감성을 다소간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강점 2.  활자의 가독성

 

 

 

(좌 : 리디북스 페이퍼, 6인치   우: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 7.8인치)

 

 

 

페이퍼프로의는 활자의 가독성이 깔끔하고 활자가 큼직하다.

 

 기실 활자의 크기는 리더기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당연히 확대되는 것이라 여길지 모르겠으나 페이퍼프로는 같은 300PPI의 선명도를 지니고 있는 리디북스 페이퍼와 비교했을 때도 활자가 깔끔하다.  즉, 흐릿하게 보이는 글자가 없으며 활자의 선명도가 매우 좋아 독서하는 데 눈의 피로가 적다.

 

 

강점 3.  저장공간 용량의 확대

 

 

 

 

저장공간의 확대.  리디북스 페이퍼프로는 내부저장소 6G의 용량을 확보하고 있어 기존 리디북스 페이퍼보다 저장공간이 확대되었다.

SD카드는 최대 32G 추가 가능하다고 되어있지만 실제 삽입 결과 60G이상의 SD카드도 인식되니, 고용량의 SD카드를 사용하면 많은 책을 질러도 독서에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강점 4.  퀵버튼  및 가로모드와 색 온도 조절 기능

 

 

 

 

페이퍼 프로의 경우, 제품 상단 오른쪽 버튼을 길게 누르면 퀵버튼 창이 뜨고 여러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유용하다 생각하며 눈에 띠는 기능은  화면회전 기능과 색 온도 조절 기능이었다. 

 

 

 

1) 가로모드

 

  페이퍼 프로의 경우 기존모델인 페이퍼와 달리 7.8인치라는 큰 화면을 활용할 수 있는 가로모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마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가로모드 편의를 제공하여 만화책을 보는 독자들이나 논문이나 전문서적 등 한 페이지에서 더 많은 내용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편리성을 제공하고 있다. 

 

 

2) 색 온도 조절 기능

 

 

 

(좌 : 리디북스 페이퍼, 6인치   우: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 7.8인치)

 

 

 

 

 기존에 페이퍼에 있던 밝기 조절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여기에 새로운 기능으로, 색 온도 조절 기능을 추가 제공하여, 야간 독서 시 눈의 피로도를 풀어주며 타인에게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밝기, 분위기있는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Feat. 김상중)

이 기기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

 

 

 

1) 형광펜 기능 사용 시 멈춤현상

 

 

  개인적으로 페이퍼 프로를 사용하면서 거의 유일하게 발견한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간혹 형광펜 기능을 사용해 밑줄을 그을 때 멈춤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구입 초기부터 그러했고, 대여도서에서 더욱 그러한 현상이 많이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리더기 사용자 개개인의 독서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필자가 리디북스 고객센터 측에 문의를 넣었고 현재 이 부분에 대해 점검 중으로 알고 있으며 문의 이후 최근에는 거의 발생하고 있지 않은 현상이기에, 점차 업데이트나 리디북스 측의 점검 등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고 여긴다.

 

 

 

 

2) 열린서재 기능의 부재

 

 물론 이 부분은 리디북스의 기기 제작 시의 철학과 관련되어 있을지 모르겠으나, 늘 제기되어왔듯 크레마진영에 존재하는 열린서재 기능(타 서점사 책 독서 가능)이 리디북스 측에는 제공되어 있지 않는 부분을 아쉬운 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필자는 페이퍼프로를 루팅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어디에선가 눈물을 흘리며(?) 루팅을 하고 있는 페이퍼/페이퍼프로 유저를 위해 타 서점사 서적을 읽을 수 있는 기능을 리디만의 방법으로 제공, 포용해 주시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3) 블루투스 및 리모콘 , TTS 기능 등 여타 IT 기능의 부재

 

 

  필자는 리더기 사용 시 블루투스나 리모콘, TTS 기능을 크게 활용하고 있지 않아 많이 체감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 이북 리더기 유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피드백이다. 큰 화면으로 인한 리모콘 사용에 대한 소망은 거치대 케이스 등을 구입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며, 개개인의 기능에 대한 필요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다음 제품 발매 시 이러한 부분들 - 독자들의 니즈를 고려한다면 더욱 성공적이지 않을까 싶다.

 

 

 

리디북스 페이퍼프로(RIDIBOOKS PAPER PRO) 종합평가

 

- 간략요약

'전자책이 종이책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종이책 만큼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독서할 수 있도록 여러 편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추가하거나 오류사항을 개선한다면 더욱 완벽할 것이라 기대한다. 

 

★★★★☆ 4.5/5점

 

 

 

 

 

+

꿀 팁 !

 

 

당신이 페이퍼프로 유저이며, 페이퍼프로를 더욱 알차게 이용하고 싶다면!

 

 

 

1. 리디북스에서 월 6500원에 최대 10권의 도서를 대여해 읽을 수 있는 리디셀렉트 기능을 사용하거나,

https://select.ridibooks.com/home

 

 

 

 

  2. 나와 페이퍼프로의 즐겁고 가치있는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 올리는 인스타그램 사진 이벤트 MyPaperTime 이벤트 등에 참여해 보면 더욱 좋을 것이다..!!

https://ridibooks.com/event/10471

 

 

 

 

(늘 고객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 제공,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다양한 이벤트 및 서비스를 마련하는 리디북스는 사랑입니다♡)

 

 

 

 

 

by papyros 2018. 7. 22. 20:57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비즈니스북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비즈니스북스측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내가 고정돼 있다고 믿지 않는다. 과거에 내가 갇혀 있었던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나는 환경을 바꾸겠다고 선택했고 마침내 달라졌다.’

 

-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246.

 

 

 대학 시절 심리학개론에서 처음 유전 대 환경논쟁에 대해 접한 바 있다. 유전과 환경 중 어느 쪽이 더욱 한 개인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논쟁은 심리학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결론은 유전과 환경이 각각 반씩 영향을 미치고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여길 수 없다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저자는 개인 내적인 고유성보다도 환경이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의 저자인 벤저민 하디. 그는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자기계발 분야의 저명한 파워블로거이자 작가로서도 성공했다. 이렇듯 자타가 인정하듯 뛰어난 성취를 이룬 저자의 삶은 그가 겪은 유년시절의 가족환경이 기실 부모님의 이혼과 약물에 중독된 가족들, 자폐증을 앓고 있는 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2년 간 고향을 떠나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한 후 귀향한 뒤 환경의 차이로 저자가 몸소 느낀 변화야말로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던 주된 계기였다. 저자의 삶을 접하며 지난 해 읽었던 J. 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밴스 또한 힐빌리 가정에서 자라나 약물중독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두었고, 늘 부친이 바뀌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조부모의 도움으로 힐빌리의 세계를 탈출해 대학에 진학하고 로스쿨을 졸업해 미국 백인 사회에 무사히 편입한 바 있다. 하디와 밴스는 모두 공통적으로 극과 극의 환경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 경험했다.

밴스의 저서가 에세이 형식으로 기술되어 그의 삶을 회고하는 한편 미국 백인사회의 양극단을 바라보는 사회적 측면을 함의하고 있다면,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형태를 지니며 구체적으로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레시피’, 지도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개개인마다 각자 다른 삶의 목표와 동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레시피를 어떻게 자기 나름대로 활용할 것인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으나, 저자가 활용하는 아침 루틴의 사례로, ‘일기쓰기에 주목할 수 있었다. 일기라고 하면 주로 밤에 자신의 하루 일과와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저자는 아침에 일어나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일기를 쓰면서 지난 주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 얻은 것과 잃은 것, 중요한 일들, 다음 주의 계획, 단기와 장기 목표 등을 정리해 주간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해 나간다. 일기 쓰기라는 가장 간편한 방법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자신을 평가해나가고 반성하며 나아갈 방향을 재고하는 저자의 생활양식은 본받을 만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또한 개인내적으로, 휴식기 없이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교원자격증 취득이라는 목표를 이룬 후 소진 된 임용고시의 난도(難度)에 대한 불안감과 더불어 내게 주어진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불안해하며 고민을 거듭하던 내게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주었고, 내면을 다스리는 힘과 영향력을 선물해 주었다. 특히 고정형 사고방식이 아닌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것들을 배워올 수 있었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또한 벤스와 하디 모두 공통적으로 느낀 바 있듯, 안정적인 지원, 정서적 지지가 바탕이 되는 환경은 한 개인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한 바를 느꼈기 때문에 하디 또한 자신이 받은 안정된 환경이라는 선물을 또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 위탁 양육을 자처했다고 여긴다. 이 책을 통해 학습자에게 지식, 인격, 정서의 모든 측면에서 학습자에게 중요한 지지체계가 되는 교육자로서의 소명을- ‘교육을 통해 선순환을 이루고 싶은 나의 소망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

성공과 좌절의 문턱에서 숨을 고르고 불안해하는, 나와 같은 수많은 청춘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람들은 행복이 마음의 짐이 없는 상태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도전 과제나 어려움 없는 수월한 인생을 살기 원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그 짐이 있어야 우리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견인력을 얻을 수 있다.

 

 

-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162.

 

 

  귀환불능지점은 목표를 회피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가 쉬워지는 순간을 일컫는다. 당신의 가장 큰 야망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 당신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그런 노력은 강한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중략) 사람들은 회피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깊은 내면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안전한 선택을 한다. 자신이 멍청해 보이지 않도록 계산해서 행동한다. 자신의 꿈이 제대로 달성되지 않을 경우를 상정해 여러 대안을 세워두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결국에는 대안에 주력하고, 그 대안이 그들의 삶이 된다. 당신이 부정적인 영향이나 감정을 회피하는 삶을 꾸려왔다면 그런 성향을 바꿀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당신은 그런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 정체성은 당신의행동과 당신이 선택한 환경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174-175.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을 바라보듯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무한한 잠재력과 유연성을 갖고 있다. 그런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라. 그들에게 애정을 보여라. 그리고 그들이 당신처럼 발전하고 향상될 수 있도록 환경의 규칙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라.

 

-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8. 249.

 

 


by papyros 2018. 7. 11. 19:09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30주년 기념판

RHK, 2018. (자기계발, 에세이)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독서 카페 리뷰어스 클럽 http://cafe.naver.com/jhcomm/13279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알에이치코리아(RHK)'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RHK 측에 감사드립니다.



 

(네이버 책 정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642251)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의 상아탑 꼭대기에 있지 않았다.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었다. 내가 배운 것들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든 나누어 가져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라.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으라.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우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씻으라.

변기를 사용한 뒤에는 물을 내리라.

균형 잡힌 생활을 하라. 매일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하라.

매일 오후에는 낮잠을 자라.

밖에서는 차를 조심하고 옆 사람과 손을 잡고 같이 움직이라.

경이로움을 느끼라. 스티로폼컵에 든 작은 씨앗을 기억하라. 뿌리가 나고 잎이 자라지만 아무도 어떻게 그러는지, 왜 그러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 씨앗과 같다.

금붕어와 햄스터와 흰쥐와 스티로폼컵 속의 작은 씨앗마저 모두 죽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림책 딕과 제인Dick&Jane, 태어나서 처음 배운 단어, 모든 단어 중 가장 의미 있는 단어인 보다Look’를 기억하라.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9.

 

 초등학생인가 중학생 즈음으로 기억하는 어느 여름날, 가족 휴가로 간 어느 콘도에서인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초반의 청소년이던 내게는 책의 제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학교가 아닌 유치원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고? 무슨 말이야.’ 언뜻 책의 제목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며 책장을 펼쳐 일독하기 시작했으나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행복감에 젖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조금 더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우연히 독서 관련 카페에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접할 수 있었다. 낯설지 않은 제목.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보았는데, 기분 탓일까? 싶었으나 30주년 기념판으로 재출간된 도서라는 소개 글을 읽고 10여 년 전 어느 여름의 행복감을, 20대 후반의 성인이 된 지금 다시금 마주하고 싶었고,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유년기에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책의 제목을 비유적으로 느꼈을 때와는 달리 2018, 이미 대학원을 졸업한 20대 후반의 성인 독자인 내게 책의 제목, 그리고 저자의 경험은 비유적이라기보다 더욱 직접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워 온 학문에 관한 깊은 지식들이 분명 원하는 분야에의 자격을 갖추고 진로를 개척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 속에서 삶의 순간순간마다 간절히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은 저자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듯이 가치관이라는 삶의 지혜였기 때문이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의 가치관과 신념들이 드러나 있는 1: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수많은 타인들에 대해 다룬 2: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천사들, 그리고 마지막 3: 나는 나의 삶을 다시 살 것이다에서는 저자가 지향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미래에 대해 제시된다. 책의 이러한 구성처럼, 이 책은 저자가 실천하고 소망하고 있는 가치가 자신과 타인에서 나아가 세상으로까지 확대되는데, 즉 한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접하고 깨달은 많은 가치들을 이야기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목사 바텐더><도움받을 자격>이라는 에피소드였다. 개신교의 목사인 저자가 신학 대학원에 재학하던 시절 학비를 마련하고자 바텐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꾸중하긴 커녕, 오히려 사람들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겨 격려하는 대학 교수들의 태도. 그리고 장학금을 수령하기 위해 학비사용 계획안을 제출 하는 저자에게 즐거움을 추구하고 타인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예산을 계획하지 않는 학생에게 어떻게 장학금을 주느냐며 반문하는 학장의 가르침은 저자 뿐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까지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내 말을 잘 듣게. 자네 예산에는 즐거움을 위한 항목이 하나도 없네. , , 음악, 심지어 시원한 맥주 한 잔 할 돈조차 없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돈이 한 푼도 들어 있지 않아. 우리는 자네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돕지 않네.”

즐거움을 위한 항목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항목이라고!

나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돕지 않는다고!

세 번째 가르침이었다. 또 배웠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62-63.

 

 

 

 성공하기 위해, ‘빨리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허둥지둥 살아가는 것 보다는 마음 한켠에 여유와 행복의 자리를 비워두며 타인과 그 행복을, 즐거움을 나누는 삶이 더욱 귀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조급함과 불안에 종종 잊어버리곤 하는 그 당연한 가치를 새삼 떠올릴 수 있었다.

한편 2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인어들> 이었다. 거인, 마법사, 난쟁이 중 한 캐릭터를 정해 줄을 서야 하는 놀이에서 자신은 인어인데 인어는 어디에 서야 하느냐는 어린 아이의 물음.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모두 내가 생각하고 그리는 틀 안에 넣고 분류해 이에 맞추고자 하는 획일화된 교육, 이질적인 타인을 수용하기보다는 두려워하고 회피하고자 하는 사회현실. 최근 읽었던 표명희 작가님의 어느 날, 난민이라는 책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 모두가 어떤 부분에서는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고 소외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화된 배경을 존중하기보다는 획일화된 틀 안에서 세상을 운용해 수많은 난민들을 양산시키고 있지 않는가.

 

 

 

 

 

인어는 어디에 서요?

인어는 어디에 서냐고?”

긴 침묵이 흘렀다. 아주 긴 침묵이었다.

(중략)

 여자아이는 거인이나 마법사나 난쟁이 어느 것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인어였다. 놀이에서 빠지려고 하지도 않았고, 게임에서 진 아이들의 줄에 서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인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놀이를 계속하고 싶었다. 자신의 존엄성이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는 당연히 인어가 설 자리가 있으며, 내가 그 자리를 안다고 믿었다.

글쎄……. 인어는 어디에 서야 하나? 인어들, 남과 다른 사람들, 표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 이미 만들어진 상자와 비둘기집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에 서야 하나?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학교와 나라와 세계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26-127.

 

 

 책을 모두 완독하고, 책장을 덮을 무렵 나는 이 책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를 독자들 개개인이 진정성 있는 성찰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 준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저자가 <받은 만큼 돌려주기>라는 챕터에서도 기술하고 있으며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 Pay It Forward>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언뜻 자그마하게 보일 수 있는 누군가의 선행이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순환될 수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나의 일상을 함께하고 있는 동료나 이웃들을 차치하더라도, 나와 그 어떤 관련이 없어 보이는 타인(他人), 심지어 이방인(異邦人)으로 여겨지는 이, 약자(弱者), 심지어 인류를 넘어 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로부터 배울 점이 있고 늘 조금씩 빚을 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타인, 타 생명에 대한 사랑은 성인기에 이르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늘 배워오는 가치이지만, 곱씹어 올라가면 유년 시절부터 강조되어왔고 편견과 선입견 없이 타인과 대상을 대하던 시기가 유년기가 아니었던가.

 

메논은 그 빚을 결코 있지 않았다. 믿음이라는 선물도 15루피도 잊지 않았다. 메논이 죽기 전날에 어떤 거지가 와서 신발이 없어 발이 상처투성이니 샌들 살 돈을 달라고 구걸했다. 메논은 딸에게 지갑에서 15루피를 꺼내어 주라고 했다. 그것이 메논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한테 들었다.

(중략)

 그 사람의 아버지는 메논의 보좌관이었고, 메논에게 자선을 배웠으며, 자신의 배움을 아들에게도 물려주었다. 아들은 낯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전통을 이어나갔다. 이름 모를 어느 시크교도에서 인도 공무원에게로, 그의 보좌관에게로, 보좌관의 아들에게로, 그리고 절망에 빠진 백인 외국인인 나에게로 자비가 베풀어진 것이다. 그 선물은 큰돈이 아니었고, 나 또한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선물은 돈의 가치를 떠나 내게 축복받았다는 느낌을 주고, 나도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81-82.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서로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모퉁이 식품점의 남자, 자동차 정비소의 수리공, 주치의, 선생님, 이웃, 동료들이 그렇다. 항상 거기에있는 좋은 사람들, 작은 일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 매일 우리를 가르쳐주고 축복해주고 용기 내게 해주고 지지해주며,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을 역시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를 의지하고,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에게서 배우고 뭔가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 누가 그러는지 우리는 결코 모른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88.

 

 

 

 

 로버트 폴검의 이 에세이가 3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꾸준히 사랑받아 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추구할 만한 항존(恒存)적인 가치 타인과 생명에 대한 사랑, 늘 누군가로부터 빚지며 사는 존재라는 사실, 공정성, 삶에 대한 경이로움 등 는 거창한 소설이나 동화, 드라마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가까운 곳의 이웃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러한 마음 따뜻하면서도 타성(惰性)을 깨뜨릴 수 있는 깊고도 날카로운 울림은 바로 우리가 직접 발견할 수 있는 주변 인물들로부터 전해져 온다는 사실을.

로버트 풀검이 그리는 그의 할아버지가 그 내면의 추억에 자리하는 조부인 동시에 자신이 바라는 할아버지로서의 이상향(理想鄕)이기도 한 것처럼, 소소하게 보이는 일상 속의 작은 이야기들이 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한편 미래를 그려내게 하고 대를 걸쳐 전해줄 수 있는 가치를 품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다 널리, 오래 전해질 때에 한 개인을,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근원으로 작용하리라 믿으며,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전해 준 저자 로버트 풀검에게 마음 깊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나 또한 세월이 흐를수록 청춘기에서 벗어나 기성세대로 나아갈 지인데, 이 책을 읽어주며 새로운 청춘들과 소통하고 내 경험을 전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할아버지 집에 간다. 할아버지와 나는 밝은 람바 사기타리 별과 겹칠 정도로 가까워진 금성과 목성, 서남쪽 하늘에서 달리는 큰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본다. 머리 바로 위에는 뿌연 안개 가튼 안드로메다 성운이 보인다. 여름이 되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은하수도 보인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할아버지는 1910년에 본 헬리혜성 이야기를 해준다. 그해 5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밤, 할아버지는 인류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체험한 일을 목격했다. 세상은 헬리혜성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과 두려움을 느끼며 공포에 떠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할아버지는 헬리혜성이 다시 올 때 자신을 대신해서 꼭 보겠다는 약속을 하란다. 나는 약속한다.

새벽이 올 때쯤이면 머리 위 하늘을 지배하는 위대한 사냥꾼 오리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베텔게우스와 벨라트릭스, 오리온 허리 부분의 성운,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를 향해 있는 발 부분의 리겔과 사이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오랫동안 똑같은 별들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어서 지구와 마찬가지로 저 하늘 어딘가에도 생명체가 있고, 어떻게 생겼든 간에 우리를 보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서 보면 우리 지구도 빛날까? 우리 지구도 그곳에 사는 존재들이 상상력과 경이로움으로 만들어낸 밤하늘 별자리의 일부분일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어떤 것,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어떤 것의 일부이며 그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잃지 않으려면 가끔씩 나가서 하늘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잠자리에 든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2018, 195-196.

 

 

상상력은 지식보다 강하다.

신화는 역사보다 강력하다.

꿈은 사실보다 힘이 있다.

희망은 늘 경험을 이긴다.

웃음만이 슬픔을 치유한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RHK, 9.

 

 

 

 

 

 

by papyros 2018. 6. 20. 14:21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필로소픽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필로소픽 측에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책과 독서에 대한 나의 애정고백서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2.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읽지 않은 책이 점점 더 늘어난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15.

 

 

  ‘내 마음속의 근원적인 불안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을 때 내 생이 끝장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67.

 

 

 

 

 학창시절, 나는 교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학생이었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도서관 청소를 자원했으면서도 청소는 뒷전이고 도서관에서 줄곧 독서에 매진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는 후문(後聞)은 성인이 된 후에야 모친의 지인이신 분으로부터 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유년시절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진실로 즐겨하던 나는 최근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죽기 직전까지 내 서가(書架)에 꽂혀져 있는 종이책들과 리더기에 다운로드 받아둔 E-book들을 완독(玩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20대 후반이니, 심각한 노안이 오기 전까지 약 25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으며, 그 이후 돋보기를 끼고 안경을 볼 수 있는 시간도 30년밖에 되지 않는데, 아직 읽은책보다 읽고 싶어 구입했으나 읽지 못한책들이 훨씬 많으니……. 그러나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이는 나만의 불안이 아닌 독서가들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자연스런 걱정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해리포터만큼이나 신비롭고 환상적인 표지를 지닌 이 책은 소설 등의 문학작품이 아닌, ‘책에 대한 이야기로서, 소설을 쓰는 일을 업()으로 둔,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한 독서가의 에세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챕터마다 화두를 던진다. 1나쁜 책, 스토커, 그리고 독자에서는 독자로서 지닐 수 있는 독자들의 책에 대한 감정과 독서법에 대해, 2사형수, 도둑, 선원, 알코올중독자 그리고 작가에서는 삶 전체가 바로 곧 작품이었던 작가들의 생()에 대해, 그리고 책의 제목이 되는 마지막 3네 번째 책상 서랍, 타자기, 그리고 회전목마에서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서재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선 저자가 다룬 가장 핵심적인 화두(話頭)는 우리 사회의 독서 문화에서 자성해야 할 부분인 고전주의(古典主義) 독서법이었다. 서울대생, 하버드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읽은 도서 목록들이 신문에 기사화되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처럼 소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고전(古典) 목록에 포함된 작품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과도한 부담감을 부여하는 독서문화에 대해 저자는 강력히 비판한다. 국어교과에서도, 교과서에 문학작품을 수록하는 기준에 있어 정전(正典)’의 자격 여부가 핵심적인데, 교과서에 선정될 만한 정전(定典) 기준이 재검토될 때, 그리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작품이 정전(定典)으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충분히 수용하고 인정할 때 더욱 다양한 양질의 작품들을 학습자들이 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일컨대 최근 사회에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조남주 작가님의 소설82년생 김지영의 경우 그 문제의식과 시대의 반영 면에서 보편적인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받은 바 있다. 때문에 문학사 일컫는 정전(正典)의 자격을 아직 부여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정전(定典)의 자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저자가 소개했듯이, 현대에 와서는 교육 고전(古典)으로 널리 알려진 장 자크 루소의 작품에밀1762년 출간 당시만 해도 금서로 지정되어 루소가 스위스로 망명을 가야만 했던 일화를 통해 고전(古典)이나 정전(正典)의 자격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재조정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문학치료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이로서 저자가 말했듯 독자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관심사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 즉 작품을 통해 작가의 고민과 작품의 고민을 통해 자신의 고민들이 이어지는 작품이야 말로 독자 자신에게 고전(古典)이 되는 작품이라는 저자의 메시지에 매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작품서사와 자기서사가 긴밀히 조응(照應)하거나, 작품서사와 자기서사의 간극이 작품을 통해 조정되고 변화할 수 있을 때 그 작품은 한 개인에게 고전(古典)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가령 그것이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라고 하더라도 독자의 자기서사가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변화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작품서사를 지니고 있다면, 해당 독자에게는 고전(古典)으로 자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의미에서 내게 있어서는 중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감응(感應)을 받고 있는 헤세의 작품들이나 김탁환 작가님의 작품들이 고전(古典)에 속하는데, 나의 자기서사가 문학치료학의 서사이론 영역 중에서도 보살핌의 대상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모감싸기 서사에 가장 공감하며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헤세의 성장소설, 교양소설이나 사람의 내면과 내면이 맞닿아 있는 서사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상상의 서재에서 만난 <세상에서 사라진 책들의 목록> 에 대한 아이디어도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했던지라 역사책을 읽으며 늘 현재까지도 논란중인 당쟁희생설과 사도세자의 역모라는 설 등으로 대립되는(정병설과 이덕일교수의 논란이 대표적.)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해 그 진실과 자신의 심경을 영조가 기록해 둔 책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나, 속편이 없는 작품에 대해 속편이나 후일담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설 해리포터에 대한 팬픽션(2차 창작)에 본편에서 나타나지 않은 독자들의 소망을 투여하는 것이 그러하고, 다음에서 연재중인 웹툰 <, 그리고 황제> 같은 작품이나 시간을 되돌리는 역사드라마 등의 작품들이 만약세상에 없는 책/작품들이 존재했다면, 발견된다면 어땠을까 꿈꾸어 보는 독자들의 소망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보르헤스는 한때 아름다움이 소수 작가의 특권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아름다움이 모두의 것이며 우연히 뒤적이던 책 어느 페이지나 길거리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도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면서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고전은 무슨 대단한 장점을 지닌 책이 아니다. 그것은 각 세대의 사람들이 온갖 이유 때문에 넘치는 열의와 알 수 없는 공경심을 가지고 읽게 되는 그런 책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38.

 

 

 고전 독서는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독자 자신이 지금 현재상황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개인적인 관심과 문제의식, 나아가 당대가 제기하는 문제와 대결하기 위한 사유의 연장에서 자신에게 필요할 때 찾아 읽어야 한다. 취향이 너무나 고전적이라 고전이 자신의 영혼에 딱 맞는 옷이라면 고전만 찾아 읽어도 된다. 그게 아니라면, 결코 고전이라는 권위나 고전 목록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40.

 

  만약 당신이 한 권의 책에서 자신의 실존적인 삶과 관련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책을 해석하는 것보다 그 책에서 당신이 무슨 고민을 발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작가의 고민과 작품의 고민, 그리고 당신이 책 속에서 발견한 고민들을 연결시키며 깊이 생각해보라. 즉 해석하지 말고 고민을 발견하라. 그러면 한 권의 책은 당신에게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올 것이며, 색다른 전율과 기쁨을 만나게 될 것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43.

 

 

 

 

 2부에서 저자가 소개한 작가들은, 작가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경험한 삶의 비극들이나 독특한 삶의 자국들이 그들의 작품에 반영된 일화들이 소개된다. 때문에 2부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다. 유형지에 머물렀던 경험이 있는 사형수 도스토예프스키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한 일화인지라 차치하고서라도, 콜리마 이야기의 저자 바를람 살라모프가 정권의 핍박으로 인해 겪은 고통, 장 주네의 도둑 일기가 당대 사회의 독자들에게 준 영향(부조리에 대한 고발) 등은 매우 놀라웠다. 1970년대 노동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위장취업까지 하면서 그러한 경험을 작품에 녹인 황석영, 방현석 작가님의 삶이나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대학원을 다니며 경험한 대학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결국 청춘을 다 담았던 연구자의 길에서 돌아나와야만 했던 김민섭 작가님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그리고 대학에서 소설이론이나 소설 창작에 대한 수업을 따로 들으신 적이 없음에도, 그저 노동자로서 글을 쓰신 회색 인간의 저자 김동식 작가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작가님들의 삶에, 그리고 작품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작가님들이 경험하신 특수성과 더불어 어쩌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보편성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특히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일화는 이유진 선생님의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유진 선생님께서는 파리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바로 귀국한다면 교수직이 보장되어 있었던 그의 삶에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 참여로 인해 정치권으로부터 탄압, 그리고 그로 인한 망명이 이어졌고, 개인사적으로는 아들이 선천성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비극까지 앉게 되었다. 연이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가 분노와 서러움의 감정으로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겪은 비극을 후손, 후학들이 격지 않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책을 읽고 연구하며, 추구할 만한 올바른 가치와 태도를 지켜나가고자 노력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소크라테스가 일컬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온몸으로 실천한 것이며, 저자가 소개한 또 다른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표현한 지식인의 참된 모습이 바로 이유진 선생님의 삶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표현을 통해 되새기고 이유진 선생님의 삶을 통해 발견한 지식인의 모습. 대학에서 얼마나 전문적인 분야를 전공했는가, 얼마나 많은 학위를 취득했는가보다는 꾸준히 양서(良書)를 읽으며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자신이 배운 바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점임을 다시금 깨닫고 지금의 나는 과연 참된 지식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 자성하게 되었고 이에 부끄러워졌다. 더 많이 세상과, 그리고 타인의 식견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통해 시련과 고통, 서러움과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생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니체적인 순수 긍정, 허무를 극복한 허무,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한국의 선비상을 보았다.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으면서도 끊임없이 조국을 걱정하고, 지식인으로서 조금이라도 후학들에게 힘이 되고자 끝없이 책을 읽고 탐구하며, 서양의 중심에 있으면서 오히려 우리가 외면하는 전통의 정신과 지혜, 사상을 더 깊이 연구하고 불의와 비굴함, 속된 것들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 고고함을 지닌 현대의 선비.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86.

 

 

 한국 사회가 그런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남을 짓밟고 진실마저 짓밟고 올라선 꼭대기 삶이나 60평 고급 아파트의 안락한 삶은 그런 조촐하고 가난한 삶에 감히 비견될 수도 없음을 깨달을 때, 잃어버린 우리의 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88.

 

 

 

 

 진짜 지식인은 겐자부로에 따르면 독서인들이다. 돈벌이와 무관한 지식이나 교양일지라도, 틈틈이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폭넓은 교양을 쌓고, 나아가 사적인 영역뿐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 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행동하기를 저어하지 않는 모든 이들, 불의 앞에서 촛불을 들 줄 아는 모든 이들은 모두 지식인이라고 해야 한다. 사이드의 말처럼, “사회 안에서 사고하고 우려하는 인간들이 지식인이다. 겐자부로는 말한다.

 대학에서 얻은 전문지식을 신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세 도움이 되지는 않을 지식인의 (아마추어로서 개개인이 각각 즐기고 쌓아가는) 독서를 또 하나의 새로운 습관으로 삼아주었으면 좋겠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34-135.

 

 

 

 

 마지막 3부에서는 드디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책상에 달린 열 한 개의 서랍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열 한 개의 서랍 중 세 번째 서랍네 번째 서랍이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세 번재 서랍의 경우 칸트가 일컬은 현상세계’, 즉 우리가 감각을 통해 경험 가능한 인식 세계, 현실을 의미하는 반면, ‘네 번째 서랍은 세 번째 서랍에 시간이라는 환상의 차원이 덧붙여진 세계를 의미하고 있다. 즉 우리가 여러 문학작품에서 만나는 시/공간을 넘은 여러 인물들과 시, 공간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 번째 서랍이 우리의 현실 그 자체라면, 네 번째 서랍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허구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소설의 정의(定義)와 같이, ‘허구적으로 만들어진또 다른 현실 공간이다. 세 번째 서랍과 네 번째 서랍에 대한 부분에 대해 생각하며, 네 번째 서랍에 속하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작품 속 인물들이 기실 세 번째 서랍에 속하는,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들이었듯이, 네 번째 서랍 속의 세계에 속하는 해리 포터라는 소년은 세 번째 서랍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학대 속에 외로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꼬마 아이일 수 있으며, 네 벤째 서랍에 속하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속 한스 기벤라트가 획일화된 학교교육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성장해 온 바로 옆의 한 소년이거나 심지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재발견 할 수 있었다. 구운몽에 등장하는 성진-양소유의 욕망이 기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욕망 그 자체였으며, 홍길동전의 길동과 그의 수하들이 바로 세 번째 서랍에 자리하는 수많은 서얼들과 양민들을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 특히 소설을 허구적인 것이며 현실과는 괴리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현실과 작품을 분리시키고 있을지 모르는 혹자(或者)들에게 바로 이 부분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마술적이고 환상적으로 보이는 네 번째 서랍 속의 수많은 세계들은, 바로 우리가 지금 뿌리내리고 있는 세계를 비유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두 세상은 늘 평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타자기는 스스로 회전하는 회전목마가 둘러싸고 지키고 있다. 누군가 이 타자기를 훔치기 위해 접근하려 하면 회전목마가 빛의 속도로 회전하는데 그 무시무시한 회전속도는 가까이 접근하는 모든 사물들을 모래알처럼 산산조각 내버린다. 목마들은 유니콘의 형상을 하고 있고, 그 목마들은 이 세계의 중심이자 기원인 타자기를 충실하게 지키는 영원한 파수꾼이다. 이 타자기가 존재하는 한, 이 세계는 무한히 새로운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12.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제기한 고전(古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기도 하고, 책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늘 책을 한 권씩 사 오고야 말고 심지어는 좋아하는 책가의 책을 수집하고픈 욕심이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나게 되는 한권의 책이 주는 기쁨에 어쩔 수 없는 애독가로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들을 느꼈다. 또한 이러한 종류의 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책에 대한 책들이 그러하듯이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작가와 작품을 새로이 접한 바, 새로이 만나게 될 작품들에 벌써 기대가 된다. 물론,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이미 깨달았듯이, 무한한 우주 그 자체인 그 도서관에 소장될 수 있는 책의 권수조차 유한한데, 나약한 한 개인일 뿐인 나 또한 내가 읽고 싶은, 읽고자 했던 책들을 모두 읽지 못할 것임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어나가는 이유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책이 선사하는 그 자체의 즐거움 너머 세 번째 서랍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네 번째 서랍속의 새로운 세계,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나와 다르면서도 유사한 인물들을 통해서 내 내면의 깊은 곳과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대화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선물 같은 순간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네 번째 서랍, 다섯 번째 서랍, 여섯 번째 서랍- 수많은 작품들을 진실로 기다린다.

  더불어 이러한 기쁨과 설레임이 넘치는 책상 서랍 속 여정에 동참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가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사랑이건 책이건, 또 다른 무엇이건 간에 예기치 못한 경이로움과 전율을 안겨 줄 어떤 낯선 대상을 어느 미래엔가 반드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다림의 설렘만으로도 삶은 한 번 살아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87-88.

 

든 책은 마법이고 동시에 진짜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없는 세계의 책이라는 한 권의 책이 시간과 공간 모두를 포괄하는 이 세계 자체와 일치하는 책이라면. 그 속에는 가능한 역사와 아직 쓰이지 않은 책도 모두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우주적인 한 권의 책이야말로 실제이며,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와 벤 존슨을 포함한 모든 작가와 그 작가들이 쓴 책들은 그 책의 한 부분이며, 따라서 허구이거나 책의 환영일 수도 있다. 어쩌면 보르헤스가 꿈꾸었던 <바벨의 도서관> 역시 그러한 한 권의 책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책과 세계는 마치 꿈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섞이듯, 서로가 서로를 꿈구면서 한데 뒤섞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04.

 

 

 

 

 

 

 자는 한 권의 책과 함께 그들만의 내밀한 비밀을 영혼 속에 간직한다.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책과 독자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84.

 

 

 

 

 






 

'이 서평은 필로소픽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것임을 밝힙니다'

 

by papyros 2018. 6. 2. 21:49

베아트릭스 포터, 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E-book cafe <피터 래빗 전집>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민음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민음사 측에 감사드립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곳이 맞고, 저 사람에게는 저곳이 맞다. 내 경우에는 티미 윌리처럼 시골에서 사는 것이 더 좋지만.”

 

- 베아트릭스 포터, 도시 쥐 조니 이야기,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575.

 

 

 

 ’피터 래빗. 기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피터 래빗은 그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수많은 귀여운 동물 중 하나일 뿐으로, ‘이나 영화같은 컨텐츠보다도, 오히려 클리어파일, 노트 등 학용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토끼일 뿐이었다.

 그러나 2018년 봄, 성인이 되어 제대로 마주하게 된 피터 래빗 전집덕분에, 베아트릭스 포터로부터 세상에 나오게 된, 피터 래빗을 비롯한 여러 동물 가족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자세히 접하게 되었다. 금색과 빨간색의 고급스런 표지, 양장본, 그리고 척 보기에도 제법 두꺼운 책에 압도되었으나, 책을 펼쳐든 순간 나는 동물가족들의 이야기로 몰입되어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단연 우화라고 할 수 있다. 피터 래빗을 비롯한 토끼가족, 생쥐 가족, 고양이 가족 등 수많은 동물들을 사람처럼 의인화하여 그 속에서 인간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전집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몇 가지 떠올리자면- 피터 래빗 이야기, 피터 래빗 이야기, 플롭시 버니네 아이들 이야기, 토드 씨 이야기(토끼 가족 스토리), 글로스터의 재봉사 이야기, 피글링 블랜드 이야기, 꼬마돼지 로빈슨 이야기정도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플롭시, 몹시, 코튼테일, 그리고 피터까지 4남매의 토끼가족 중 막내로 유독 장난기가 심하고 모험심이 강했던 피터 래빗. 자칫하면 맥그리거씨에게 붙잡혀 토끼파이신세가 될 수 있다는 어머니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맥그리거씨의 밭에 들어갔다가 파란 웃옷을 잃어버리는 등 호된 경험을 하고 돌아온 그의 유년시절에서부터, 그가 성년이 되어 펼쳐지는 플롭시 버니네 아이들 이야기, 토드 씨 이야기에서 그의 사촌 벤저민 버니와 누나 플롭시가 결혼해 얻은 여섯 마리의 아기토끼까지, 그들은 일평생을 농장 주인 맥그리거, 혹은 다른 동물(오소리나 여우 같은)들에게 잡혀갈 수 있다는 위험(불안)을 안고 지낸다. 여우나 오소리 등의 본능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맥그리거씨로 표상되는 인간의 이기심, 욕심 때문에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글링 블랜드 이야기꼬마돼지 로빈슨 이야기에서 피글링과 로빈슨이 결국 자신의 친구를 팔아넘기려는, 그리고 자신을 키워 베이컨으로 만들려고 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도망치는 여정을 그린 모험적인 이야기 이면에 그들이 그런 여정을 겪을 수밖에 없게 만든 인간들의 욕심에 잔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글로스터의 재봉사 이야기는 따뜻한 인간을 도와 실을 잣는 생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유년시절 읽은 동화 <구두장이와 꼬마요정>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앞서 언급한 맥그리거씨나 로빈슨을 잡아 베이컨으로 요리하고자 했던 요리사와 같은 인간의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오히려 인간이 동물들의 도움을 받는 내용이었다.

 일련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동물들을 모두 의인화해 표현하고, 이들이 인간에 의해 희생당할 위기에 처하거나, 혹은 인간을 돕는 내용이 그려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과 생명, 특히 동물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던 저자 베아트릭스 포터가 사람도 동물의 한 종()에 불과하며 사람들과 동물들은 이 세상에서 공생하는 존재라는 점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야기들 대부분에서 ’(맥그리거, 오소리, 여우 토드 등)에 대항할 때 조력자가 등장한다는 사실도 유의미하다고 여겼는데, 위험과 불안에 함께 대응하는 조력자를 통해 개개인의 힘보다는 조력자와의 협력(協力)을 통한 공동체성의 가치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한편 도시 쥐 조니 이야기, 여우와 황새 이야기의 경우 어릴 적 읽었던 이솝우화의 <도시 쥐와 시골쥐>,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와 매우 유사해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솝우화를 소재로 삼아 베아트릭스 포터가 각색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도시 쥐 조니 이야기를 통해, 지나치게 격식화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자성과 더불어,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농촌의 소외현상이라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저자의 가치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 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도, 각자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공존해야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게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전해졌다.

 귀여운 삽화 이면에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이면의 메시지를 대부분의 독자들이 마찬가지로 읽어낸다면, 피터 래빗 전집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이솝우화등의 고전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저자가 영국인이다 보니 영국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어휘나 노래, 비유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책과 더불어 저자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에 대한 이해, 영국 문화권에 대한 이해 등이 배경지식으로서 활성화 될 때 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2006년에 세상에 등장했던 영화 <미스 포터>를 함께 보거나 이와 더불어 책에 대한 큐레이터, 독서모임에서의 나눔 등 전문가나 타인의 해석을 아우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어머니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 <용궁에 간 토끼>이야기를 들으며 꿈나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이런 동화들은 왜인지 모르게 성인이 된 지금에까지 뇌리에 깊이 남는다. 피터 래빗 전집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도 그렇게 한 편씩 잠자리에서 들려줄 이야기로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피터와 벤저민이 아기 토끼들을 데리고 의기양양하게 나타났을 때 바우서 영감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플롭시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기 토끼들은 가벼운 타박상을 입고 몹시 허기진 상태였다. 아기들은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고 곧 회복되었다.

 

- 베아트릭스 포터, 토드 씨 이야기,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484.

 

 

 고양이는 순수한 우정에서, 그리고 요리사와 바나바스 선장에 대한 앙심에서 로빈스이 여러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게 도와주었다.

 

- 베아트릭스 포터, 꼬마 돼지 로빈슨 이야기,피터 래빗 전집, 민음사, 2018, 665.

 

 

 

by papyros 2018. 5. 26. 03:06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E-book cafe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RHK(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RHK측에 감사드립니다.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그러면 반드시 응해 올 거야.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158.

 

레일라는 살아 있는 거야? 죽은 거야? 적어도 그것만이라도 알려줘. 너희들의 깨끗한 마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야. 만약 레일라가 살아 있다면 도와줘.”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159.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이 서정적인 제목을 지니고 있는 미야모토 테루의 이 작품은, 단순한 서사구조 안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환상의 빛>을 먼저 접했는데, 알고보니 그 영화의 원작소설 작가가 바로 미야모토 테루였기에 작품의 서정성이나 서사 구조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서정적인 소설이라는 소개와는 달리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마주하게 되는 것은 기쿠에 올컷이라는 한 여성의 죽음이다. 그녀는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미망인으로, 남편인 이안 올컷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이 남편 대에서 성공을 거두었기에 상당한 재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전국 일주 중 벌어진 '기쿠에 올컷'의 죽음. 그리고 망자의 유산을 그녀의 조카인 오바타 겐야-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원에서 유학하며 MBA과정을 마친 일본인 가 전부 상속하게 되어 오바타 겐야가 로스엔젤레스(LA)의 팔로스버디스반도로 건너가게 되면서 작품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기쿠에 올컷의 집 그 정원에서 겐야가 마주한 진실은, 백혈병으로 여섯 살의 나이에 죽은 줄만 알았던 사촌 레일라가 사실 유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비공식적인 기쿠에 올컷의 유언 마지막 줄에 따라서, 레일라를 찾아 유산의 70%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책임이 겐야에게 부과된다.

 

 

“‘그것과는 아직 떨어질 수 없다……. ‘그것이라고 쓰여 있는 걸로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고. 물건인가. 떨어질 수 없는 물건……. 멜리사는 레일라와 나이가 별로 다르지 않지. 그렇다면 그때는 다섯 살이나 여섯 살. 그 정도의 여자아이가 떨어질 수 없는 그것이란 한정되지 않을까? 부모가 우격다짐하지 않고 느긋하게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그것이라고 하면 인형이나 장난감, 이제 갓난아기가 아닌 유아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겠지.”

 겐야는 니코가 교코 매클라우드의 편지에서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낀 것인지, 딸 멜리사가 떨어질 수 없는 그것에만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이라……. 이 교코 매클라우드의 편지를 보면 원래 몬트리올에 살지는 않았군. 다른 나라에서 이주한 거야. 기쿠에 씨하고는 어디서 알게 되었을까? 일본에선가. 일본에서부터 친구인데 기쿠에 씨는 미국인과, 교코는 캐나다인과 결혼했지만 교우관계는 이어졌다. 하지만 기쿠에 씨는 그것을 남편한테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어떻게든 남편에게 숨기고 싶었다. 그건 왜일까?”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152-153.

 

 

 레일라를 찾기 위해 오바타 겐야가 기쿠에 올컷이 만약을 위해 남겨둔 마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것만 같은 힌트들을 찾아내고, 사립탐정인 니콜라이 벨로셀스키’(니코)가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히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이 협력하여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기쿠에 올컷이 유괴사건에 가담했다는 것. , 딸을 유괴당한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했다는 것. 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독자들은 ? 무엇 때문에 어머니가 딸을?”이라는 질문에 당면하게 된다. 그녀가 유괴라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감수하고서라도 레일라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야 했던 것은, 마트 CCTV안에서 자신에게 타월을 흔드는 딸 레일라의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학생을 만났나요?”

흑인 경비원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 .. 건방진 꼬맹이였어요. 신분증을 보여달라지 뭐예요.”

경비원은 웃으며,

학생의 요구는 정당한 겁니다.”

하고 말했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207.

 

 

언제였더라. 사격 클럽의 이사를 맡고 있다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가,

매년 미국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이 총알이 들어있지 않은 총으로 죽는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위의 어른들도 총알이 들어 있지 않다고 믿는 총으로 놀다가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221.

 

 

 

벽이나 창에 매달린 화분의 숫자 말이네. 거베라 화분이 서른세 개야. 레일라는 서른세 살이지. 우연일까?”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260.

 

 

이후 작품의 후반부에서 겐야가 교코와 케빈 부부를 만나며 밝혀지는 진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왜 어머니가 직접 유괴사건을 조작해 딸을 떠나보내야만 했나하는 물음에 석연치 않았던 부분이 드디어 풀리는 지점. 소설에서만 나타나는 허구라고 치부하기에는, 대부분의 성폭력이 친족 간에 일어난다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최근 읽었던 프레드릭 베크만의 신작소설 베어타운에서도 하키단 단장의 딸 마야가 유소년팀 하키팀 유망주인 청소년 케빈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공동체의 시선과 싸워나가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사건 이후 공동체 안에서 외롭고 처절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족들이 추구하는 가치인 사랑안에서 부모님의 보호 속에 사건을 함께 극복해 나가면서 결국 베어타운에 남게 되다. 그러나 이 작품의 레일라는 결국 어머니를 떠나 다른 가정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니고, (그녀의 친부모를 잊고) 살아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레일라와 마야의 삶은 (본래의 가족들과 함께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마야와 레일라 둘 모두,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한 모성애에 의해 보호받았으므로.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삶은 어떤 어린아이에게나 당연한 환경이어야 하는 것이다.

 

 

기쿠에 씨는 굉장한 정신력의 소유자네. 감탄할 수밖에 없어. 27년이나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불안이나 공포와 싸우며 살아온 거니까. 몬트리올대학의 졸업식 식장에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멜리사 매클라우드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쿠에 씨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401.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부터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손에 맡겨 자신을 잊게 해야만 했던, 그리고 범죄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평생 두려워하며 살아야 했던 기쿠에 올컷의 비극적인 상황. 딸을 보호해야 하는 그녀의 깊은 애정이 아니었다면, 레일라는 지금의 삶처럼 행복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기쿠에 올컷이 진정으로 바라고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야 말로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의 행복이었기에, 작품 말미에 겐야가 그려낸 27년 전 기쿠에 올컷과 레일라의 모습은 따뜻하고도 슬픈 느낌이 묻어난다. 레일라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비극을 기꺼이 감수한 어머니 기쿠에 올컷의 희생이, 마치 자신의 진주알을 기꺼이 내어주는 어미조개 같기에. 그만큼 아름답고도 서린 사랑이기에.

 

 

 

 

 겐야는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오바타가의 능소화보다 색이 짙고 꽃잎도 큰 올컷가의 능소화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중정의 잔디밭 위에 27년 전 서른여섯 살의 기쿠에 고모를 두었다. 겐야에게는 그 모습이 확실히 보였다.

기쿠에 고모는 길이가 긴 주름치마를 입고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겐야가 잠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어디선가 어린 레일라가 달려와 엄마에게 안겼다. 기쿠에 고모는 깔깔 웃음소리를 내며 레일라와 함께 잔디밭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달빛이 두 사람의 몸에 금색으로 선을 둘렀다.

레일라는 엄마에게 안아달라며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나서 꽃밭으로 달려가 꽃들을 가슴에 안을 만큼 안아서는 강아지 같은 걸음걸이로 돌아와 엄마에게 쏟았다.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405.

 

 

 추리적(미스테리적) 서사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이 가치 있었던 이유는, 기쿠에 올컷이 그녀의 조카에게 전해주고자 한 - 마치 퍼즐과도 같은 레일라에 대한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한편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지닌 내면의 깊은 곳에 순수한 사랑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한 개개인의 소망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겐야가 품은 제시카에 대한 사랑, 탐정 니코와 함께하는 터본스테이크와 스프가 마련된 식사자리 등의 소박한 행복이 서사 속에 자리하는 것은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삶의 그러한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중정의 풀꽃이라는 신비스러운 존재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한편 행복소망하며 진실을 찾아나가는 서정성. 양측의 무게 추를 맞추는 사이 기쿠에 올컷의 내면을 독자 자신에게로 내사하는 마법 같은 순간, 작품은 마무리된다.

비극과 행복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중정의 꽃들, 기쿠에 올컷의 결심, 겐야와 니코의 추리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만 같은 작품이었다.

(애초에 영화화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극장 스크린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기쿠에 씨는 이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나서 레일라가 좀처럼 잠을 자지 않는 밤에는 정원의 꽃밭으로 안고 나갔어요. 그리고 반드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아무리 무서운 일이나 슬픈 일이 일어나도 엄마가 반드시 도와줄 테니까, 레일라는 그냥 안심하고 있으면 된다고 말이에요.

 그러고 나서 기쿠에 씨는 레일라가 얼마나 영리하고, 마음씨가 얼마나 고우며, 모두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인지를 몇 번이고 말해주었대요. 어른이 되면 키도 크고 다들 돌아볼 만큼 예뻐질 거야. 그렇게 되도록 이 꽃밭에 부탁해보자, 꽃에게도 풀에게도 나무에게도 마음이 있어.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레일라의 마음과 꽃, , 나무의 마음은 말을 할 수 있어. 꽃도 풀도 나무도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말해줄 거야. 레일라도 언젠가 꽃, , 나무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러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알게 될 거고…….

 

 

 

- 미야모토 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 2018, 393.

 

 

 

 

 

 



 

by papyros 2018. 5. 4. 01:07

리디북스 페이퍼프로(RIDIBOOKS PAPER PRO) 사용후기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진리의 두 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E-book 리더기 애용자일 것이다.

 

 11월의 어느 날, 자주 활동하는 카페인 네이버 E-book cafe에서 우연히 리디북스 페이퍼프로의 출시일을 접하게 되었다.

리디북스 페이퍼라이트와 페이퍼에 이은 새 기계라니. 기실 그 때만 해도 리디북스 페이퍼프로를 내가 구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2016년  7월 9일 구입해 사용하던 리디북스 페이퍼가 멀쩡히 , 그것도 매우 유용히 사용중에 있었고 무엇보다 이북리더기에 7.8인치라니, 너무 무겁거나 휴대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더랬다.

 

그러나 스펙이 공개되고, 카페에 글이 올라오고 ....... 사전예약일이 점점 가까워지고.. 점차.....어? 약간 큰 기기도 나쁘지 않겠는데? 무엇보다 가독성이 너무 뛰어나 보이는데...?에 혹하게 되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손은 이미.... 11월 30일 사전예약을 해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사전예약 뒷 회차도 아니고 얼마나 정각에 클릭했던 건지.......

 

 

 

 

 

 

 

사전예약 1차에 성공하였다...... 즉 리페프로를 제일 빨리받아보는 배송일자에 속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리페프로를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크지는 않았으나 E-book cafe의 글들에 혹해 ,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끔씩 나타나는 페이퍼의 오류? 때문에(이건 소비를 위한 합리화이긴 하지만 ㅎㅎ ) 진리의 두대를 실현해서 리페의 고장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에도 크레마 그랑데와 매우 깊은 고민을 하다가 알라딘 중고매장에 들러 크레마 그랑데의 실물과 반응속도를 살펴본 후 최종적으로 리디북스 페이퍼프로, 줄여서 리페프로를 12월 14일에(결제 가능한 13일 이후에도 다소간 고민을 하다가 결국 다음날인) 결제하고 말았다.......!

(질러버렸고, 돌이킬 수 없었다. 사전예약 플립케이스 3만원 할인 쿠폰은 알뜰히 사용했다 ㅎㅎ)

 

 

 

 

그리고는 택배를 기다리는 즐거운 몇 일이 흘러

금요일 퇴근한 후 저녁에 집에 가보니 나와 간발 차이로 택배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박스조차 고급스러워 보이는 페이퍼프로...... 조심스레......? 아니 허겁지겁......?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박스를 뜯고 드디어 페이퍼프로를 만났다..!! 뭔가 페이퍼 구매 때보다 더 신중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플립커버를 꺼내고, 리페프로를 꺼내기 시작했다.

 

 

 

 

 

 

전원을 켠 후 리디북스 아이디 및 wifi 환경을 설정한 후, 새로 등장한 기능인 색 온도 조절 기능과 함께 프론트라이트 밝기 조절 기능에 대해 사용법을 다시금 익힌 후, 드디어 리디북스 페이퍼프로를 사용할 모든 셋팅이 완료되었다.......!! 

 

 

 

는.....- 어이 책부터 다운 받아야지..!!

기존에 소장중인 책을 다운 받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백업 기능이 있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일순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설정이 완료된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 페이퍼프로를 귀히 여기느라 밖에서 많이 이용하지는 않았고 (휴대용으로는 페이퍼를 주로 이용)

요즘에야 카페나 회사에서 페이퍼프로를 더 애용하기 시작한 지라, 순수 사용 시간이 아주 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약 2주 간의 간단한 사용 소감을 정리해 보자면,

 

장점으로는,

 

- 플립커버케이스를 씌웠음에도 무게가 무겁지 않다. 심지어 나는 손이 매우 작은 편에 속하는 여성인데도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리디북스 페이퍼에 익숙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 활자의 크기가 커지며 가독성이 더 좋아져 책을 읽는 데 페이퍼보다 조금 더 시원시원한 느낌이 있다.

- 반응속도의 경우 가장 걱정한 부분이었는데 페이퍼에 비해 '아주 느리다'고 까지 생각되진 않았다. 페이퍼보다 느리긴 하지만 불편할 정도/신경쓸 정도는 아니며 알라딘 매장에서 만져본 크레마 그랑데보다는 빨리 넘어가는 편. (개인적인 체감이다.)

- 색 온도 기능. 색감이 따뜻한 기능 또한 있어서 좋았다.

- 가로로도 물리키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단점으로는,

 

- 슬립화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동기화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지만, 슬립화면 버튼을 누를 때 오른쪽 상단이 흩뿌려지는?? 현상 같은 것이 있었다. 슬립화면을 바꾸니 이런 현상이 사라지긴했는데 심각한 오류인 줄 알고 놀라기도 한 만큼 리디측에서 슬립화면 디자인?? 등도 신경 써 주시면 감사하겠다.

 

- 동기화 문제. Wifi를 꺼 두면 페이퍼 및 기타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 등에서 읽던 부분 동기화가 되지 않는데, Wifi가 켜져있지 않을 때에도 동기화 되면 좋겠다는 생각. 배터리 때문에 Wifi를 거 두는 때가 생각보다 더욱 많다.

 

- 페이퍼보다는 전체적인 속도가 느린 편인 것 같은데, 책을 좀 빨리 터치하다가 그대로 페이퍼 프로가 멈추어 버려서 어쩔 수 없이 리셋한 적이 한 번 있었다 ㅠㅠ.. 고장난 줄 알고 식겁했다...

 

 

그리고 사용하면서 기타 불편한 사항은 아직 많이 느끼지 못했고, 아직 시스템 자체가 초기상태이기 때문에, 리디측에서 인지하는 부분들에 대해 점차 업데이트 해 주실 것이라 믿고 있다.

 

 

 

언제나 고객의 의견을 듣고 기계의 최적화를 위해 노력해주시는,

그리고 양질의 독서환경을 제공해주시고자 하는 리디북스 측에 늘 감사드리며

 

소비생활의 중심 , 그리고 독서생활의 중심인 E-book cafe에도 많은 애정을 보낸다...!

 

만족스러운 소비였으며, 페이퍼프로(리페프로)와 함께하는 시간을 점차 늘려나가고자 한다:) 

 

 

 

 

 

 

 

 

 

 

 

 

by papyros 2017. 12. 28. 15:58

리즈 부르보, 다섯 가지 상처, Angle Books,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MBTI&Health 심리 카페 <다섯 가지 상처>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Angle Books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마음에 입은 상처는 다친 손가락과 같다. 당신은 제대로 치료도 하지 않고 반창고만 붙인 채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상처를 들여다보기 싫어서다. 가면은 반창고다. 당신은 가면을 쓰면 상처받지 않은 듯 살아갈 수 있다고 믿지만 그러긴 힘들 것이다. 여전히 상처는 아프고, 당신 안에 고스란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 리즈 부르보, 다섯 가지 상처, Angle Books, 2017, 33.

 

 

상처를 치유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게 상처가 있음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똑바로 응시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며 상처받고 고통스러운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 리즈 부르보, 다섯 가지 상처, Angle Books, 2017, 234.

 

 

 

 최근 프랑스에서 최고의 심리 치유서라 불리며 사랑받고 있는 심리학 서적 다섯 가지 상처. 심리학 전공자로서도, 그리고 전공 여부를 떠나 내면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20대로서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고, 마침내 좋은 기회가 닿아 책을 일독할 수 있었다. 저자는 사람들 저마다 생애 초기 동성이나 이성 부모와의 관계에서 입은 다섯 가지 상처가 존재하며, 상처의 유형에 따라 이에 대한 각각의 반응양식으로서 필요한 가면을 쓰고 행동한 다고 말한다. 상처에는 거부’, ‘버림받음’, ‘모욕’, ‘배신’, ‘부당함의 다섯 가지 상처가 있으며, 이는 각각 도피하는 사람의 가면, ‘의존하는 사람의 가면, ‘마조히스트의 가면, ‘지배하는 사람의 가면, ‘완고한 사람의 가면에 대응된다.

 

 

 

 

 각각의 상처에 따라 필요한 가면을 쓰고 반응양식을 보인다는 저자의 주장은 분명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개인의 반응양식 뿐 아니라 가면을 쓴 사람들이 보이는 신체적 특성, 식습관, 빈번하게 사용하는 언어 등을 포함하고 있어 혹 자신에게 나타나는 특징들이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거절에 민감하여, ‘거부의 상처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막상 반응양식을 살펴보니 꼭 거부에 해당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해당 비록 거부의 상처를 입고 의존하는 사람으로 반응하기도 하며, ‘버림받음의 상처를 입고 도피하는 사람으로 반응하기도 하는 등, 저자 또한 상처와 반응이 무조건 대응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온전한 나로서 기능하기 위해 자신의 상처와 반응양식을 점검한다는 이 책의 기본적인 취지는 대상관계에서 말하는 내적 작동 모델을 떠올리게 했다. 모든 개개인은 자기 표상과 대상 표상을 지니고 있는데, 생애 초기의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가 생애 전반을 걸쳐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실제로 나도 갈등 상황- 특히 상대의 거절-에 부딪힐 대 유사한 관계 패턴이 나타나기 때문에 늘 이를 조절하려고 노력 중인데, 이 책을 통해 혹 내가 버림받음의 상처를 거부의 상처로 오인하는 것이 아닌지, 나의 상처를 자아가 오인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책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생애 초기부터 부모님(혹은 중요한 대상)과 맺어 온 관계를 진지하게 탐색해 나가야 할 필요로 느꼈다.

 그러나 다만 아쉬운 것은, 상처의 유형이 동성의 부모나 이성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결정론을 따르고 있으며, 더욱이 그 어느 유형도 딱 들어맞지 않아 내가 지닌 상처와 반응양식에 대해 혼란이 가중되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상처와 가면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상처와 가면(반응 유형)에 대한 지식적인 이해 뿐 아니라 타인의 피드백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개인상담, 집단상담 등이 중요한 방법으로 작용할 것이다. - 저자에게 개인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부에 자리해 있는 상처와 가면을 일독만으로 모두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조급히 생각하지는 않으려 한다. 자신의 상처를 진정으로 마주하는 것에는 오랜 이해와 수용의 과정이 필요하기에. 어쩌면 지금의 혼란도 오롯이 대면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지 않을까.

빠르게 한 번 읽고 흘려 둘 책이 아닌, 평생 곁에 두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내면의 지도와 같이 여겨져 가치 있는 책이었다.

 

 

 사람의 내면에는 실로 다양한 믿음이 존재하는데 그것들이 한데 모여 자아를 이룬다. 그리고 이 자아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 몇 번이고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바로 이 자아를 떨쳐내기 위해서다.

 

- 리즈 부르보, 다섯 가지 상처, Angle Books, 2017, 26-27.

 

 우리는 모두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만이 삶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영원히 자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갈지 아니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지는 오롯이 당신에게 달렸다. 물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거듭된 삶 속에 쌓인 묵은 상처를 헤집어야 할 수도 있다. 또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플 것이다. 특정한 상황과 사람 때문에 받는 고통은 그것이 깊을수록 문제의 뿌리가 아주 먼 과거로부터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리즈 부르보, 다섯 가지 상처, Angle Books, 2017, 29.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리즈 부르보, 다섯 가지 상처, Angle Books, 2017, 258.

 

 

 

by papyros 2017. 12. 19. 17:04

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E-book cafe <네 안에살해된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자책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에프(f)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일을 했고, 인간의 근심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우리는 바람과 별들과 밤과 모래와 바다와 접촉했다. 우리는 자연적인 힘들과 속과 속이며 지혜를 가렸다. 우리는 봄을 기다리는 정원사처럼 새벽을 기다렸다. 우리는 약속의 땅처럼 기항지를 기다렸고, 별들에게서 진실을 찾았다.

 

- 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E-book 164.(페이퍼 프로 기준)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생텍쥐 페리. 기실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이미 너무나 위대한 고전이 되어버린 어린왕자만은 기억할 것이다. 2017년의 마지막 달에 접한 이 책은 짧은 생을 살다 간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 페리의 삶과 영혼이 담긴 그의 자전적인 산문(수필)이다. 프랑스에서는 인간의 대지, Terre deshommes, 미국에서는 바람과 모래와 별들 Wind, Sand and Stars 이라는 제목으로 1939년 출간된 이 책은, 미약하게나마 생텍쥐페리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기실 아직 그의 책을 읽은 것은 어린왕자단 한 편뿐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젠가 남방우편기야간비행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생텍쥐페리가 우편비행사로 일해 왔던 것에 대한 사소한 배경지식과 그의 소설 어린왕자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생텍쥐페리가 살아가던 그 시절, 그가 선택한 우편비행사라는 직업은 현대의 파일럿(비행기 조종사)보다도 더 큰 위험을 담보하고 있는 직업이었다. 비행기가 어떤 고장이 나거나 악천후를 만나 어떤 문제가 생기든, 어디에 불시착하든 생존은 오로지 조종사들 그들에게 달려있었고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그가 카사블랑카에서 출발한 비행을 할 당시, 단지 위험한 순간을 피하기 위해 비행기의 진로를 변경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항로변경에 관해 징계에 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이 이러한 직업적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위험성을 가득 안고 있는 직업이기에 메르모즈나 기요메와 같은 인물에 대해 그가 지니는 동료애, 유대의식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서로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에. 불시착,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비행기를 조종해 우편을 배달하는 그들의 책임의식과 소명은 매우 숭고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위대함은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데 있다. 그건 자기 자신과 우편물 그리고 기다리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들의 고통 혹은 기쁨이 그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건 저기 살아 있는 자들이 날마다 새로이 쌓아 가는 책임이고, 그 자신도 분담해야 하는 책임이다. 자신의 위치라는 한도 내에서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잎사귀로 넓은 지평을 덮어 주는 큰 인물들에 속하다. 그것은 제 탓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돌을 놓으면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 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E-book 48.(페이퍼 프로 기준)

 

 작품에 등장하는 일화(7, 사막 한가운데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생택쥐 페리는 그의 동료 프레보와의 비행 중 사막 지대에 불시착하고 말았다. 물론 위험천만한 사고에도 생존할 수 있었음이 가장 기적적이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생존해 다시 돌아가기 위해 사막의 지독한 갈증과 허기를 견디는 고통스런 나날이 이어진다. 계속해서 신기루를 보기도 하지만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버티는 생텍쥐페리와 동료 프레보의 여정을 보면서 함께 고통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 잔의 물에, 한 개의 오렌지에 행복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극한의 상황에서 아주 작은 것으로도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의 단면을 통해 정신적인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결국 그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리비아의 사막지대에서 한 배두인을 만나 갈증을 해소하고, 구출되는데 구출의 순간을 묘사한 생텍쥐페리의 글을 통해 그의 인간관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성서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떠오르게 하는 이 구절은, 모든 인류에 대한 사랑과 박애를 담아내고 있었다.

 

 

 우리를 구해 준 리비아의 베두인이여, 그럼에도 당신은 내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질 것이다. 나는 당신 얼굴을 결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내게 인간이고 그렇기에 모든 인간의 얼굴을 동시에 하고 나타난다. 당신은 단 한 번도 내 얼굴을 유심히 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형제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당신을 알아보리라. 당신은 고귀함과 자비를 두르고 마실 것을 내려 주는 귀인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당신 안에 있는 내 모든 벗들, 내 모든 적들이 내게로 걸어온다. 그러니, 이제 나는 세상에 적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다.

 

 

 

- 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E-book 172-173.(페이퍼 프로 기준)

 

 

 

 

 특히 그 어느 일화보다도, 그가 무어인들에게 1000프랑을 주는 대가로 흑인 노예 바로크를 인계받고 그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 될 수 있게 도와 준 일화(6, 사막에서)가 가장 마음에 남았는데, 그것은 바로 바로크라는 인물, 바로크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인식 때문이었다. 그가 비록 노예의 신분에 놓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유로운 목자로 살던 과거를 늘 잊지 않고 있었으며 늘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는 그 자신이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인격을 늘 지니고 있었으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삶의 주인으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였다. 그 자신 또한 소유한 바가 많지 않았음에도 가죽신, 장난감, 팔찌 등 귀중품을 기꺼이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준 바르크의 행동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이의 모습이었으며,

생텍쥐 페리는 그런 바로크의 모습으로부터 깊은 감응을 얻었으리라 생각하고 이는 나 또한 그렇다. 그리고 바로크를 통해 얻은 생택쥐페리의 가치관이 그의 작품 어린왕자에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유로웠기에 기본적인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 사랑받을 권리, 남으로든 북으로든 돌아다닐 권리,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권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깟 돈이 무슨 소용이랴……. 우리가 심한 배고픔을 느낄 때처럼, 그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삶들 사이에서 사람이 될 강렬한 필요를 느꼈다.

(중략)

 

 그에게는 발목을 잡는 인간관계의 무게, 눈물, 이별, 비난, 기쁨 등 한 인간이 어떤 몸짓을 할 때마다 어루만지거나 상처를 내는 모든 것, 그를 다른 이들과 이어 주고 그에게 무게를 부여하는 수많은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바르크에게는 수많은 희망의 무게가 생겼다.

 

- 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E-book 114-115.(페이퍼 프로 기준)

 

 

 

 

 

 ‘저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 왕이나 허영심 많은 사람이나 술꾼, 혹은 실업가 같은 사람들에게 멸시받을 테지. 하지만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저 사람뿐이야. 그건 저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일에 전념하기 때문일 거야.

 

- 생텍쥐 페리, 어린왕자, 문예출판사, 1999, 54.

 

어린 왕자가 여러 별들에서 만난 물질, 명예를 추구하는 어른들. 지구에는 그런 어른들이 이미 도처해 있지만 그가 다섯 번째 별에서 만난 가로등을 끄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했던 까닭은 그는 자기 자신의 허영을 채우고자 하는 외면적인 대상에 신경 쓰지 않고 그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본다면 바로크도, ‘생각과 행동의 자유의 가치를 분명히 인지하고 살아가는, 삶에 충실한 인물이었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비행기를 몰았던 생텍쥐페리와 그의 동료들도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부족한 지식과 만연체의 문장에 이해하기에 다소 난해한 작품이었던지라, 작품의 감상에 오독이 있었는지 우려되긴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내면에 깃든 가치라는 것이다. 추구해야 할 그 무엇. 그것이 삶의 가치관이든, 지식(학문에 대한 진리)이든, 내면화된 태도이든. 마치 호그와트의 네 기숙사에서 추구하고 있는 그러한 가치들과 같이. (정의, 진리, 용기, 재능) 그런 의미에서 해석한다면 이 작품의 가장 후반부에 등장한 마지막 문구를 이해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바로 우리 개개인의 내면의 깃들어있는 가치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우리가 장미와 같은 식물들을 정성껏 가꾸듯, 이러한 인간 내면의 가치 또한 중히 여기고 귀히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는 노력들을 할 때, 세속적인 가치에 전도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며 각자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힘쓸 때에 비로소 인간 삶이 진정으로 실존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텍쥐페리가 작품 전반을 통해 계속해서 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리 개개인의 내면에서 모차르트가 살해되는 일이 없기를 바랐던 생텍쥐페리의 소망. 1944731일 마지막 비행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열정과 책임의식이라는 가치를 잃지 않고 살았던, 그 자신의 모차르트를 소중히 대했던 생텍쥐페리와 같이, 내 안에도 과연 아직도 모차르트가 살아있을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 그의 이토록 아름답고 순수한 글에 매우 깊은 감명을 느낀다. 추후 내면의 여유를 지니고 다시 천천히 재독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나는 어떤 부부 앞에 앉았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아이가 겨우 비집고 잠들어 있었다. 아이가 잠결에 뒤척였을 때, 그의 얼굴이 등불에 드러났다. ! 얼마나 사랑스러운 얼굴인가! 저 부부로부터 이런 황금빛 열매 같은 아이가 태어났다니, 저 무거운 누더기 더미에서 이토록 매력적이고 우아한 걸작이 태어났다니. 나는 그 매끈한 이마, 뾰로통하게 내민 부드러운 입술 위로 몸을 숙이며 생각했다. 이건 음악가의 얼굴이야. 여기 어린 모차르트가 있구나. 여기 생명의 아름다운 약속이 있구나. 그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어린 왕자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보호해 주고, 사랑해 주고, 교양을 가르친다면 이 아이가 무엇인들 못 되겠는가! 정원에 돌연변이로 어떤 새로운 장미가 피어나면 모든 정원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 장미를 따로 떼어 내어 가꾸며 특별한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인간을 위한 정원사는 어디에도 없다. 어린 모차르트도 다른 이들처럼 금형 기계에 찍힐 테지. 그리고 모차르트는 악취가 나는 라이브 카페에서 썩어빠진 음악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모차르트도 죽은 것과 다름없다.

(중략)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울퉁불퉁한 저 사람들도, 저 추함도 아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각자의 내면에서 살해당한 모차르트이다.

 

 

 

- 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E-book 199-200.(페이퍼 프로 기준)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되뇌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 때문이란다.”

……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이란다……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걸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지. 너는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는 되뇌었다.

 

 

- 생텍쥐 페리, 어린왕자, 문예출판사, 1999, 76-78.

 

 

 

 사람들은 급행열차에 올라타지만 그들이 찾으러 가는 게 무엇인지 몰라. 그래서 초조해 하며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어……어린 왕자가 말했다.

 

 

- 생텍쥐 페리, 어린왕자, 문예출판사, 1999, 83

 

 나는 이제 더는 통근 열차를 탄 저들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을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인간들. 그렇지만 마치 개미처럼 오직 사용되어지기 위해 자가하지 못하는 어떤 압력 따위에 굴복한 인간들. 저들은 쉴 때마저 그들의 불합리한 짧은 휴일을 무엇으로 보내는가?”

 

- 생텍쥐 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출판사, 2017, E-book 164.(페이퍼 프로 기준)

 

 

 

사람들에 따라 별들은 서로 다른 존재야. 여행하는 사람에겐 별은 길잡이지. 또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조그만 빛일 뿐이고. 학자에게는 연구해야 할 대상이고. 내가 만난 사업가에겐 금이지. 하지만 그런 별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어. 아저씬 어는 누구도 갖지 못한 별들을 가지게 될 거야……

 

- 생텍쥐 페리, 어린왕자, 문예출판사, 1999, 92

 

by papyros 2017. 12. 17. 19:33

[과제5] 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5주차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어느덧 5주차에 이르러, 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의 마지막 주차를 맞았다. 이번 주에는 소설의 결말부인 ‘7-19581114일 런던부분과, ‘옮긴이의 말 고아로서 세상과 대면할 때’(김남주) 까지 읽으며 을 5주간에 걸친 독서를 마무리했다.

 결말부에서는 1958, 크리스토퍼의 나이가 약 50대 후반-60대 초쯤에 이르고, 제니퍼의 나이가 서른한 살에 이른 때를 그리고 있다. 크리스토퍼가 홍콩의 로즈데일 메너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는 이야기가 결말부의 서두에 등장하는데, 어머니 다이애나와 퍼핀(크리스토퍼 뱅크스)의 대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점은 크리스토퍼가 필립 삼촌을 만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당시의 청년시절 직후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세계대전을 겪은 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어머니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크리스토퍼에게 주어진 인생의 과업 - 가능한 빨리 어머니를 구하는 일, 그리고 그 안에 함축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 양 쪽 모두가 적기에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 어린 퍼핀이 어떤 용서를 받아야 할 만큼 그른 길을 가지 않았다고, 그녀의 아들이 자기의 길을 잘 걸어 나갔다고 믿고 있다.

 지난 4주차의 감상과 이번 주차에 읽은 내용을 연결 지어 작품 전반에 대한 감상을 풀어나가 보자면, 크리스토퍼는 청년기, 필립 삼촌으로부터 세계의 진실을 듣기 전까지 성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보호와 사랑, 안정감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유년시절, 그 환상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탐정이 된 것 또한 부모를 찾아 안정적이고 평화롭던 유년시절/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무의식의 욕망에서 기인했다.

 비록 중간부분이 작품 속에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필립 삼촌을 만난 이후 아마도 크리스토퍼의 삶은 이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체적인 성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그가 마침내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도. 어쩌면 그는 의식적으로 자기 내부에 자리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밀어내기 위해 더욱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내면 깊이 기저해 있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심리적 갈등을 이루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크리스토퍼에게는 더욱 무거운 책임의식이 자리하였으리라 여긴다. 그가 요양원에서 어머니의 말을 듣기 전까지 과연 온전히 그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지쳐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퍼핀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크리스토퍼, 제니퍼, 세라 헤밍스. 이들 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고아로서의 정체성. 고아로서 세계와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 깨져버린/깨어나야만 하는 환상을 자각하고 주체적인 존재로서 성장해나가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이 무언가를 잃어왔는가. - 크리스토퍼와 세라의 사랑, 제니퍼의 양육자로서 역할, 제니퍼의 자존감 등 -

 역자후기의 마지막 문구와 같이, 기실 고아라는 의미가 단지 부모님의 상실에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상계/상상계에서 벗어나 주체의 결여를 인정하고, 삶의 모순을 인정하고 실재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 여긴다.

아름답고 도덕적이었던 어머니와 따뜻했던 아버지, 그의 멘토인 필립삼촌, 아키라와의 우정으로 이루어졌던 크리스토퍼의 환상스런 유년시절이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 제국주의, 세계대전 등 세계의 실체와 마주하면서 발생한 모순과 혼란, 여러 간극들 -

비록 수많은 상실과 미처 성취하지 못한 삶에 공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공허함까지도 내 것으로 수용할 때, 자신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어루만지며 인정할 때, 삶을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내적 평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제는 자신의 고향을 상하이 공동조계가 아닌 영국 런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마침내 자아의 갈등을 마친 크리스토퍼의 모습은 독자에게까지 내적 안정감을 전해 준다.

 결국 크리스토퍼의 삶을 통해 주체의 결여된 부분’, 자아와 세계 사이의 모순을 무리해서 제거하기보다는, 그 자연스런 간극, 자기 내면에 잔존해 있는 자아의 부분들을 통합적으로 수용하면서 삶을 영위 해 나갈 때 자아가 비로소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을 마무리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 작품은 개개인의 성장과 실존,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을 작품 속에 함축하고 있으면서도 쉬운 내용으로 뛰어난 성장소설이자 역사소설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와의 첫 만남이 이 작품이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앞으로 마주하게 될 가즈오 이시구로의 다른 작품 - <남아 있는 나날>, <녹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또한 매우 기대된다.

 

 

 

 퍼핀을 용서하라고요? 퍼핀을 용서하라고 하셨나요? 왜죠?” 그러더니 다시 행복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 아이. 그 아이가 잘 하고 있다고들 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에요. , 그 아이가 얼마나 내게 걱정덩어리인지 몰라요. 상상도 하지 못할 거예요.”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30.

 

 

 

 

 

 내 말은 어머니가 나를 줄곧 사랑하셨다는 거야. 그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말이야.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 하나, 내가 좋은 삶을 누리는 거였어. 그 나머지 모든 것, 내가 어머니를 찾으려 노력했든, 이 세상을 파멸로부터 구하려 노력했든 어느 쪽이든 어머니께는 아무 차이가 없었던 거야. 나에 대한 어머니의 감정은 언제나 그저 거기 있는 것으로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어. 그건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나로서는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어.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30-431.

 

 

 

 

 

 사람들이 저의 정신을 본다고 생각하신다고요? 크리스토퍼 삼촌, 그건 삼촌이 저를 볼 때마다 여전히 삼촌이 예전에 알았던 어린 소녀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직 그 소녀가 그대로 남아있는걸. 내 눈에 그게 보여. 아직 그게 그곳에, 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너를 바꿔 놓지 못했단다, 얘야. 그건 네게 충격 비슷한 것을 주었을 뿐이야. 그게 전부야.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이 세상에는 괜찮은 남자들이 몇 있단다. 너에게 알려주마. 너는 단지 있는 힘을 다해 그 사람들을 피하지만 않으면 돼.”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34.

 

 

 

 

 

 이런 필생의 관심사에 속박당하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의 운명은, 사라진 부모의 그림자를 오랜 세월 뒤쫓으면서 고아로서 세상과 대면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그 임무를 완수하려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41.

 

 

 

 

 

 우쭐한 척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곳 런던에서 하루하루를 무심하게 보내면서 나는 진정한 만족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나는 공원을 산책하고, 미술관에 들르는 것을 즐긴다. 최근 들어서는 자주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 들러 내 사건에 관한 기사가 실린 옛 신문을 들추면서 자그마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이 도시는 어느새 내 고향이 되어서,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해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럼에도 때때로 공허감 같은 것이 내 삶에 찾아든다. 제니퍼의 제안을 앞으로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41-442.

 

 

 

 

 

 이 작품은 고아로서의 운명을 품은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을 먹먹하게 담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중에서 어쩌면 가장 사적인 소설이다. 실제로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상하이를 떠난 나이는 이시구로가 나가사키를 떠난 나이와 비슷하다. 책을 덮으면서 어쩌면 고아가 된다는 것이 실제로 부모를 여의는 여부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고, 낙원을 잃은 이후 인간은 모두 고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시구로가 어쩔 수 없이 '문학'적인 이유다.

 

 

-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민음사, 2017, 449.

 

 

 

 

by papyros 2017. 12. 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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