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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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라이프 재킷』 가제본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창작과 비평)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이현 작가님과, 창비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각 개인의 삶에서 성장통을 겪는 모든 아동·청소년과 청년들을 생각하며 이 서평을 남깁니다.

 

 

   ‘라이프 재킷 즉 우리말로 구명보트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요트 탈래?’ 라는 한 남고생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서사가 시작된다.

 고등학생 천우가 전학이 확정된 이후, 부산의 바닷가에 있는 부모님의 요트를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것이 그 발단이었다. 천우는 스토리를 빛삭(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삭제)했지만, 찰나에 그 스토리를 확인한 천우의 친구들이 정말 천우가 태그한 부산 마리나 8번 계류장에 나타난 것이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천우는 돛을 올리는 법을 모른다, 실은.
전혀 모르지는 않지만,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돛만이 아니다.
천우는 요트 모는 법을 모른다, 실은.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렸다.
돈 냄새 풀풀 나는 초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를 배경으로 ‘신조호’는 잘리고
‘천우’만 나오도록 비스듬한 각도로 요트를 찍은 사진이었다.
해시태그도 주르르 달았다.
#우리집요트 #돛을올려버려 #천우신조호 #해운대라이프.
물론 #플렉스_릴랙스도 빠뜨리지 않았다.
평소 가장 애용하는 해시태그였다.

- 이현, 2부 하루 전,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1.

 

 

 스토리를 올린 당사자인 이천우를 비롯해 스토리를 보고 계류장에 나타난 천우의 친구 김노아, 같은 반 급우 서장진, 전학생 정태호, 천우의 옛 여자친구 고은의 절친 류 그리고 얼결에 오빠가 벌인 일에 함께 엮여버리게 된 여동생 신조까지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출항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곁에 계실 때만 출항과 입항을 해본적이 있었던 천우였지만 천우도 간단한 출항 정도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시간을 계획한 그 출항은 천우신조호가 안개의 바다속에 갇히면서 하루를 꼬박 넘기게 되었다. 아이들의 조난과 함께 아이들 개개인의 서사가 하나씩 떠오르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각각 큰아버지와 이모 댁으로 떠나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천우와 신조 남매의 불안감과 외로움, 그리고 스토리를 올린 장본인이자 요트에 붙은 압류장을 떼어버린 천우에 대한 약간의 원망감과 더불어 완벽한 생기부를 만들고 싶고 오점을 남기지 않고 싶다는, 노아의 완벽주의와 부담감이 가장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 그러한 마음이 내 안에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유가 있었다. 마리나로 돌아간다고 끝이 아니었다.
천우를 기다리는 어떤 결과가 있었다.
어쩌면 노아 자신을 포함한 다른 애들에게도 얼마쯤 그럴 터였다.
그 때문에 지난밤에 신고를 말렸다.
노아도 겁이 났다. 압류, 형벌, 법원,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법적으로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에서는 얘기가 다를지 몰랐다.
그건 노아가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단 한 줄의 오점도 허락할 여유가 없었다.
노아에게는 완벽한 생기부가 필요했다.

 

- 이현, 3부 그날의 바다,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57.

 

 ‘천우신조호그 배에 함께 탄 모든 아이들이 각기 다 나름대로의 개인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인해 떠나고 싶지 않은 부산을 떠나야만 하는 천우와 신조, 특히 천우는 그로 인한 불안과 불만을 약간의 허세로 표현한다. 완벽한 생기부를 만들어야만 하는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애써 모든 것을 충실하게 해야만 하고 욕구를 눌러온 노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결정하게 된 류, 초등학생 시절부터 수영선수로 살아왔지만 수영에 회의감을 느끼고 수영부를 그만두게 된 장진, 할머니와 같이 살아왔고 자신의 강아지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는 외로운 전학생 태호.

 

 

노아의 다른 친구들은 노아가 어째서 이천우 같은 애랑 친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천우의 친구들도 어떻게 천우가 김노아 같은 애랑 친할 수 있냐고들 했다.
숨이 막혀서 어떻게 같이 다니냐는 거였다.
그건 정말 멋모르는 소리들이었다.
천우는 노아가 오히려 편했다.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기분이었다.
노아랑 같이 있으면 브레이크가 따로 필요 없었다.
김노아면 충분했다.
노아가 와 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바다로 나오지 못했을 터였다.

 

- 이현, 4부 표류,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21.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반장이었고,
그 직함에 어긋나지 않는 학생으로 마땅히 주어진 대가를 받았을 따름이었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다가오는 날들을 꼬박꼬박 살아 내는 것이 노아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 이현, 5부 섬,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60.

 

 

 그 모두가 나름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데, 배에 달린 구조물인 으로 인해 장진이 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잃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취약성은 더욱 극대화된다. 장진의 죽음 앞에서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 신고를 외면하거나, 친구의 죽음 때문에 너무나 슬프고 충격을 받으면서도 자신은 살아야만 하는, 너무나 취약하고 인간적인 아이들의 모습들.......

 

 

투둑.
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계기판 아래 페달에 묶여 있던 노란 밧줄이 스르르 풀려나는 것을 보았다.
붐에 연결된 밧줄 중 하나였다.
그 또한 그저 기억인지도 몰랐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 들려온 끔찍한 소리였다.
퍽!

 

- 이현, 3부 그날의 바다,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82.

 

 

류는 울음을 터뜨렸다.
장진은 죽었다. 죽어 버렸다.
그 생강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궁금해하지도 않으려 했는데
그만 더없는 모습으로 들이닥쳤다.
장진을 생각하면 당장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줄 알았다.
장진을 그렇게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류는 움직이고 있었다.
장진에게 눈길을 사로잡힌 채 울면서도 몸은 살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 이현, 4부 표류,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45.

 

 

 천우의 여자친구였던 고은이 스토리를 보았기에 아이들의 실종을 신고했고, 아이들은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 해역까지 흘러들어갔던 배의 조난이 끝나고, 아이들이 발견되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6부에서 그러나 아이들의 삶은 출항 이전보다 더 망망대해에 놓였다고 느껴졌다. 그러니 6부의 제목이 여전히 항해인 것이리라.

  여전히 취약하고, 어쩌면 그 취약성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나는 함께 배에 올랐던 그 아이들 모두 충분히 성장했다고 느낀다.

 노아는 생에서 처음으로 부모님을 거슬러 장진의 빈소에 가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드러내며 늘 어른들의 뜻에 따르던 착한 아들의 모습에서 벗어났으며, (262) 태호는 고은을 새로운 존재로 재인식했고(253), 류는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살아 내야만 하는이야기를 마주했다. (250) 그리고 또다른 깊은 아픔을 경험한 신조는 전과 다른 삶을 다짐할 수 있게 되었다. 파도에 삼켜지지 않고 파도를 스스로 헤쳐가는 개인.(270-271)

 

이야기와 삶은 달랐다.
삶은 마음에 드는 설정만 골라 편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다는 천우신조호였고 장진이었고 장진의 엄마였다.
호주의 바다는 부산의 바다였고 그 섬의 바다였다.
이야기와 삶은 달랐다.
삶의 이야기는 만드는 게 아니었다.
살아 내야 하는 거였다.
그러나 편집은 작가의 몫, 그것만은 달랐다.
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원하느냐고, 어떤 이야기를 살아내고 싶으냐고
.

- 이현, 6부 여전히 항해,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50.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삶은 바다처럼 무정한 것이다.
파도의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그 바다가 신조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럼에도 파도에 삼켜지지 않는 일이다.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신조는 그러기로 했다. 단 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이현, 6부 여전히 항해,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70-271.

 

 

 

 책을 완독하던 시점(202482)과 달리 서평을 쓰는 지금(2024811)은 개인의 체험이 바뀌기도 했고, 서평을 쓰기 위해 책에 표시한 문장들을 다시 흝으며 책에 대한 인상이 매우 달라졌음을 느낀다.

 완독 직후에는 아이들의 취약성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 작품을 다시 마주한 현재, 나는 비로소 이 아이들의 성장을 읽었다. 모든 주변인들이 사고를 겪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내야만 하는 존재, 혹은 무모한 행동으로 친구를 잃게 한 비난받아 마땅할 아이들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 한 발짝 성장했다고 여긴다.

 물론 소중한 이를 상실하는 경험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아픔으로 인해 비로소 아이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마주하고, 그 취약성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자기 삶의 방식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창비 청소년문학에서 표방하는 성장은 비단 청소년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된 나 역시 성장하고 있고, 그 취약성을 여실히 마주하고 있다. 자기비난과 자책, 후회의 굴레 속에서 내 안의 취약성을 오롯이 마주하고 안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나한테 내는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아직 그것이 어려운 한 개인이기에, 이미 어른이 된 내게도 이 작품은 성장,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귀한 작품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상실의 고통과 자기비난의 목소리, 관계에서의 상처, 학교(사회)부적응 등 많은 상처를 마주하고 그 취약성과 함께하는 수많은 아동,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해 이 서평을 바치며, 좋은 어른으로서, (전문상담)교사로서 특히 아동,청소년들의 마음과 함께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좋은 책을 마주하고, 이를 넘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이현작가님과 창비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4년 7월 26일 기준, 정식 출간본 링크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907508

 

라이프 재킷 | 이현 - 교보문고

라이프 재킷 | 우리 요트 탈래? 이 모든 이야기는 장난처럼 시작되었다 밀리언셀러 작가 이현이 펼치는 광활한 바다 이야기『푸른 사자 와니니』 『1945, 철원』 『호수의 일』 등 어린이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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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yros 2024. 8. 11. 21:33

백온유, 『경우 없는 세계』, 창비, 2023.

 

#경우없는세계 #백온유 #당신의경우 #창비 #성장소설 #청소년 #창비청소년문학 #서평단 #가제본서평단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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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창비  ‘『경우 없는 세계』’ 가제본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백온유 작가님과, 창비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 게시물의 인용구 페이지는 정식 출간본과 차이가 있음을 밝힙니다.

 

 

 3년 전, 백온유 작가님의 소설 유원사전 서평단에 참여한 적이 있기도 하고, 청소년소설에 늘 관심을 두고 있는지라 금번에 출간 예정인 백온유 작가님의 신간 소설 경우 없는 세계서평단에 지원했다. 유원PTSD를 겪고 있는 개인의 상처 극복과 성장과정을 그린 작품이라면, 경우 없는 세계는 가출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내면과 아픈 성장과정을 청소년들 그 자신의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두 축은 ‘인수’와 ‘이호인데, 이미 성인이 된 인수가 가출청소년 이호를 만나면서 가출 청소년 시절을 겪은 바 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이호와 인수의 서사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이호의 경우 인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깊은 에피소드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청소년인 이호가 가출 이후 을 버는 방법은 스스로 가짜 교통사고를 내는 방식이었다. 다가오는 차량에 슬쩍 몸을 던지고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돈을 뜯어내는 방식. 그의 그런 방식들을 목격한 인수가 이호에게 손을 내밀며 이를 만류한다. 위험한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조처하고 이호를 자신의 집에 거두어 숙식을 제공한다. 덕분에 이호는 다른 친구들까지 인수의 집으로 데려오며 기거하게 된다.

이호에게 있어 인수는 그의 손을 잡고 도움을 주고자 한 유일한 어른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호와 달리 인수에게는 그런 어른이 없었던 것이 그의 청소년기를 아프고 곤란하게 했다.

 전문상담교사로서 소설을 읽으며 인수의 청소년기를 사례개념화해 보게 되었다.

 인수의 가출로 인한 심신의 고통을 주 호소문제로 보자면, 인수의 경우 의 가정폭력이 인수의 가출에 대한 직접적인 촉발요인인데, ‘유발요인으로는 진심어린 사랑이 부재한 가족환경, 의지되지 않는 에 대한 실망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인수가 가출 이후 집에 자신의 옷 여벌과 돈을 가지러 들어갔을 때 부모의 집에는 사랑을 받으며 먹이를 먹는 반려묘가 자리했으며 인수는 자신을 찾지 않는 대신 그 고양이에 투자하는 부모에게 서운함과 실망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수는 내심 늘 부모가 사랑으로 대해주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지니고 있었지만 부모는 늘 인수의 소망과는 대조적인 언행을 보인다.

 

 

강압적이며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몹시 엄격한 아버지가
내게 분노하는 지점은 너무나 다양하고도 변칙적이라
나는 지뢰밭을 걷는 심정으로 조심조심 살았다.


                                                                       -47쪽.

 

 

 ‘위험요인’(유지요인)으로서 인수가 가출생활을 지속하는 데는 가출생활 중 만난 친구들이 있는데, 특히 성연은 주목할 만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무리속에서 대장으로 자리하려고 하는 성연은 인수를 가까이한다. 성연은 그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가족들이 있지만 그 따뜻함 속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반면 인수는 걱정하고 아껴주는 가족들을 갈망하고 내심 부모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는데, 이처럼 대조적인 환경과 상황이지만 그들은 가출 청소년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 집이라는 공간 내에서 함께 가출 생활을 지속한다.

 

 보호요인으로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작품의 제목도 경우의 이름에서 기인하는데, ‘ 경우는 가출 청소년이지만 늘 규범과 규칙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보육원에서 자랐으나 언젠가는 자신을 만나러 와 줄 어머니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선을 넘는 행동을 삼가려는 경우는 인수가 다른 가출팸(‘우리 집이라고 불린다.) 친구들을 따라 선을 넘으려고 할 때 이를 적당히 제어해준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언젠가는 자신을 데리러 오려는 의지가 있다고 믿은 경우는 마치 사랑 받아 본아이처럼 보이며 구김살도 없어 보인다. 인수에게는 그런 경우야 말로 한편으로는 가장 부럽고 질투가 나는 대상이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의지하고 싶은 존재였을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그 자신이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으니 낯선 호의에 다소간 경계한 것도 당연했을지 모른다.

 

 왜 저 아이는 사랑받아본 아이처럼 행동할까. 나는 궁금해했다.
왜 처음에 경우의 존재에 대해 순수하게 감격하거나 감동하는 대신 의아해하고 얼마쯤 수상하게 여겼는지 지금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경우와 가장 친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오래 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우가 집을 구하고, 그애의 소원대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더라도(경우라면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때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두운 마음 한편에는 저렇게 가식적이고 답답한 애는 도무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애에게 과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며 경우에게 정을 떼기 위해 마음속으로 고군분투했다.

-253254.

 

 소설의 후반부, 인수가 성인이 되어서 만난 이호와 같이 그의 어린 시절에 만난 A라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가출팸 아이들은 무너지고 해체된다. A는 이호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해 차에 자기 몸을 던지는 일을 지속해온 아이인데, A가 죽던 그 날 밤 차에 깔리고 짓밟혀 마치 누군가에게 맞은 것 같이 보였던 그 소년은 결국 그 날 새벽 죽음을 맞이한다.

 

 그 죽음을 보고 가출팸 ‘우리 집 아이들은 이성이 마비되어 신고를 말리고 심지어는 사체를 산에 가서 매장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나는 그 아이들이 악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신고 후 따라올지 모르는 온갖 낙인이 두려웠으리라. 불필요한 오해가 두려웠으리라. 다시는 가족들이 자신을 찾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쌓였으리라.(막연한 희망의 좌절).

결국 사건이 드러나고 경찰 수사 및 법적 처분이 드러난 이후 인수와 혜연을 제외한 아이들은 8, 10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송치된다. 그 과정에서 인수는 유일하게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그의 가 자신의 재력을 통해 값비싼 변호사를 선임한 덕분에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으나 그런 아버지에게 질린(사랑과 걱정이 아닌 자신의 명예만 생각하는) 인수는 결국 집을 다시 나가게 된다.

 

 아버지에게 항변하고 싶었다. 저도 보통의 아이들처럼 순하게 살고 싶어요.
깨끗하고 단정하게 차려입고도 불편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싶은데요.
아빠한테 조금 더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거든요. 내 방에서 자고 싶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어요.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대신 분식집의 테이블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갑작스러운 행패에 당황한 분식집 아줌마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옆 테이블의 의자도 쓰러뜨렸다.
학생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분식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테이블 모서리에 발등이 찍힌 아버지가 윽, 하고 신음을 내뱉더니 곧장 몸을 일으켜 내 뺨을 힘껏 내리쳤다. 귀가 먹먹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덕에 재판장을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감동적이기보다는 너무나 견디기가 힘들었다.

 

- 244245.

 

 

보조인과 판사는 내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나만은 알고 있었다.
내가 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좁은 캐리어 안에 웅크린 자세로 굳어가던 A가 화석처럼 내 영혼에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추위에 시달리며 내가 외면한 A를 줄곧 앓고 있는 것이다.

 

-248.

 

 가출팸의 분명 비이성적이었고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정했으나,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싶다. 그들을 그렇게 내몬 것은 사랑과 관심, 따뜻한 손길을 표현하지 않은 어른들과 사회의 잘못이 아닐까. ‘ 경우가 가출팸의 그 어떤 아이보다도 인수에게 가장 큰 의지가 되는 존재였던 것처럼, 인수가 이호에게 기꺼이 집을 내주고 사랑과 걱정을 표현한 것처럼,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손을 잡아주고 사랑과 걱정, 진심을 표현하는(비록 혼을 내더라도 사랑을 담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다.) 존재 한명이 그들의 세계에 전부가 되는 것일지 모른다.

 인수, 이호, 경우, 성연........그들의 세계를 조금쯤 따뜻하고 평온하게 만들 수 있는 한 개인으로, 어른으로 자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린 나이에 그 외로움과 처절한 몸부림을 겪어낸 그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다.

 몰입감있고 가독성있어 편안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들의 서사를 따라가며 종국에는 다소간 무겁고 먹먹해진 이 책을 주변의 많은 어른들-특히 교사(교육자), 상담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한때 청소년이었던 나를 떠올리는 한편 전문상담교사로서 내가 만날 이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는아이들을 어떻게 상담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던 책이고,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작품이었다. 또한 작가님의 의도일지 모르겠으나....... 영상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영화로 제작되기를 소망해 본다.

 

 

 

죽을 때까지 안고 갈 비밀이라면, 아직도 종종 집 근처를 배회한다는 것.

일년에 한번쯤, 대체로 사람이 없는 늦은 밤을 노렸다.아버지는 주로 차를 지하 1층 주차장에 댔다.
술을 한병 먹고 낫 날카로운 자갈이나 열쇠로 몰래 아버지 차를 긁어놓고 재빨리 도망쳤다.
아버지가 홧김에라도 나를 찾아와 눈물이 날 만큼 혼쭐내는 상상을 했다.
옥탑방으로 쳐들어와 멀쩡한 집 놔두고 왜 밖에서 개고생이냐며 거친 손길로 대강의 짐을 챙겨 차에 태우는 상상도 했다.
반강제적으로 집으로 끌려 들어가 불편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서성대고 있으면 어머니는 감격한 표정으로 내 등을 감싸 안으리라.

그들은 내가 꿈속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나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

 

-249250.

 

이호의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느 쭈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뭐가.”
“누가 내 신발 끈 묶어주는 거요.”
나는 멈칫했다.
“어릴 때. 누군가가 묶어줬을 거야. 네가 기억 못할 뿐이지.”
나는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요.”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요.”

- 256257.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심연에서 바람이 휘돌며 서서히 내 몸을 녹였다.
이런 온기를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막상 따스함을 느끼니
내게는 이런 온기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워졌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 258.

 

 

 

 

 
by papyros 2023. 4. 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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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마 월리스, 『새소녀』, 이봄출판사, 2021.




 문학동네북클럽을 통해 가제본 도서를 수령해 먼저 읽게 된, ‘벨마 월리스’의 소설 <새소녀>를 드디어 완독했다. 사실 ‘성장소설’이다보니 아무래도 행복한 결말과 사랑이야기를 예측했었다. 얼마 전 <새소녀> 기대평을 작성할 때만 해도 소년 ‘다구’와 새소녀 ‘주툰바’가 재회하여 전통적인 성 고정관념과는 다른 그들의 성향을 서로 인정하고, 기존의 사회질서와는 달리 새로운 가정을 꾸려 기존 부족들에게서 비판받을지라도 그들의 신념을 믿고 나아가고, 결국 인정을 받게 되는 일반적인 성장소설의 흐름을 따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결말과는 무척이나 달라 사실 다소간의 충격이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잔인하고 마음이 아픈 부분은 새소녀 ‘주툰바’가 원치 않는 혼인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부족인 ‘그위친족’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치콰이’족에게 노예로 사로잡혀 갖은 수모와 모욕을 겪는것도 모자라 적장인투라크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그의 아들인 카누크를 치콰이족에게 빼앗기며 아들에게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생애를 겪어왔던 점이다. 특히, 그녀가 치콰이족에서 벗어난 것도 누군가의 조력을 받은 것도, 혹은 무언가 협상의 자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 새소녀를 구하러 온 그녀의 오빠들의 머리통이 치콰이족의 공놀이에 쓰이는 그 참혹한 형상을 목도한 후 치콰이족을 모두 살해한 후 탈출한 것이라는 사실까지, 그녀의 전 생애가 너무 비극적이고도 애통해서 작품을 읽는 동안 참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왜 누구보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려던 그녀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만 하는 것인가.
 ‘다구’ 역시 자신이 원하던 삶의 방향과는 많은 변곡점을 겪는다. 무리 속에 예속되어 사냥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안히 여행하고 싶던 소년은 그위친 족 남성들이 살해당하고 자신만 운좋게 살아남은 이후 한 부족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는다.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인데, 부족을 안정시킨 이후 ‘해의 땅’을 찾아 여행하는 다구가 다시 비극적인 사건으로 자신이 꾸리고 선택한 가정을 상실하는 과정을 읽어내려가면서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다구의 모습을 보면서 다구가 삶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진정 어른이 되어 돌아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성장’에는 반드시 그에 수반되어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통과제의’라고 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시대, 오늘날의 사회보다는 다구와 새소녀가 살아가던 그 시대에 더욱 많은 희생이 요구되었으니 그들의 통과제의와 ‘어른이 되는 과정’은 더욱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다구와 새소녀의 삶을 통해,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결정’해 올 수 있는 그 많은 삶의 과정에서 어떤것을 ‘기억’하고 삶의 중심에 두는지를 기준으로 삶을 영위할 때 조금씩 어른됨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문득 생각해본다. 
 물론, 그 어른됨을 위해 자신의 소망이나 본성,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을 ‘강요’당하는 것은 다구와 새소녀의 시대나 지금이나 부당하다. 그러나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하고 마주해 온 그 길을, (그 비극성까지도) 모두 감내하다보면 어느 순간 어른됨에 가까워져있을 터이고, 결국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그때의 ‘내’가 해야하는 무언가를 더욱 잘 식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바람과 해와 별이 멀리 있고 가까이 있고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음을 그는 알았다. 그를 고향 땅에서 아득히 먼 곳으로 데려간 것은 바로 그의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다구는 긴 여행으로 어떤 대단한 지혜를 얻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해의 땅’에서 찾아냈다가 잃어버리고 만 귀중한 삶에 대한 생각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수년 전 떠나고 싶다는 자신의 조바심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 즉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을 하는 것 뿐이었다.

- 벨마 월리스, 『새소녀』, 이봄출판사, 2021, 219쪽.

by papyros 2021. 12. 1. 00:19

백온유, 『유원』, 창비, 2020.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사전서평단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유원> 가제본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창비 측에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성장소설.성장이란 내게 어떤것일까. 입사식 소설, 이니에이션 소설, 통과제의 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성장소설에는 흔히 소년/소녀나 청년 초기의 인물들이 통과의례를 거쳐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내면에 중요한 변화가 드러난다.

  성장소설의 대표작이 바로 내가 중학시절부터 애착을 지닌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중 『데미안』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어내려가다가 스쳐지나가듯 데미안이 언급되었을 때, 반갑기도 했으며 또한 유원에게도 데미안은 의미있는 작품이었구나, 아마 작가님에게도 그러했겠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나는 성장과 관련된 작품서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유년시절부터 20대 후반까지 애정을 지니고 있는『해리포터』 외에도,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같은 작품은 내 삶에 진정한 인생작으로 꼽을 수 있다. 백온유 작가님의 『유원』 사전서평단을 신청한 이유도 바로 이 작품이 성장소설이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이미 서른이 된 마당에 20대의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지만, 아직도 성장의 화두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나의 내면이, 내 깊은 곳 어딘가의 아이가 자연스럽게 나를 이 책으로 이끌어 주었다.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같은 작품과 유사하게, 『유원』의 주인공인 유원도 언뜻 평범해 보이나 타인과 구별되는 자기서사를 지니고 있다. 이제 열일곱 살인 유원이 고작 다섯 살의 어린 아이였던 12년 전, 집에 불이났을 때 언니가 유원을 구하기 위해 11층 아래로 던진 덕에 길을 지나던 한 아저씨가 유원을 구한 덕에 유원은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열일곱이던 언니예정은 동생을 구하고서 본인은 결국 불길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어느덧 언니와 같은 나이의 열일곱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유원의 뒤에는 늘 그 사건이 맴돌았다.


 불은 순식간에 거실로 옮겨붙었다. 오래된 소파에, 장판, 벽지에 번져 거실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다. 나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후 함께 낮잠을 자다가 일어난 언니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방에서 나온 언니는 이미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불이 번진 거실을 보고 어쩔 줄 몰랐을 것이고 현관 쪽으로는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언니는 욕실로 들어가 온몸에 물을 뿌리고 이불에 물을 부어 축축하게 적셨다. 그리고 내 방 창문을 열어 베란다 쪽으로 넘어갔다. 거실 베란다와 얇은 합판으로 분리되어 있던 내 방의 베란다까지 불이 번지고 있었다. 그때쯤 먼 곳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지나가던 이웃이 연기를 보고 신고한 것이었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자 아파트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11층을 올려다보는 게 보였을 것이다. 언니는 수건을 흔들며 구조 요청을 했다. 사람들은 검게 치솟는 연기 속에서 고개를 내민 생존자를 보고 탄식했다. 불길이 아주, 아주 가까운 곳까지 덮쳐 오고 있었을 것이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31.

 

 

 특히 집에 불이났던 그 사건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유원이 성장한 이후에도 늘 유원이 12년 전 겪은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유원은 암묵적으로 불쌍한 아이이자,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유원의 삶에 당위성으로 작용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유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책임감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아픔을,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슬퍼해야 한다는 논리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청소년기의 발달 단계에 맞게 또래 관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행복을 느끼고 자신의 소망과 열망을 통해 평생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정체성을 탐색하는 시기인데, 유원에게는 그러한 청소년기의 발달 단계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이 의무책임이라는 단어로 대치된다. 심지어 진로마저도 의사나 사회복지사의 길 등이 제시되는데, 타인을 돕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부과되는 것이다.


“얘. 너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너는.” 나는 얼어붙었다.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깨우친 것처럼. 나는 그 길로 도망쳤다. 할아버지는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그 눈빛과 목소리가 아침에도 저녁에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꿈속에서도 맴돌았다. 할아버지는 그 말 외에 덧붙인 것도 없었다. 그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나를 옭아맸다. 그 눈빛 안에, 네가 다른 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려고 하면 될 것 같냐는 말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83.


중학교 때부터 월화수목금토일 내내 학원에 갔다. 엄마 아빠가 강요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자기 주도 학습이 불가능한 나 같은 애는 엄격한 학원에 가야 성적이 오른다는 것을 좀 일찍 스스로 깨달은 것뿐이었다.

나는 더 나태하게 살아도 됐을 것이다. 사고가 없었다면. 나태하게 살면서도 죄책감을 덜 느꼈을 것이다. 실수를 두세 번 반복해도 초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무언가에 쫓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00.

 

 

  이처럼 친구와의 우정속에서 행복하고 즐거워야 마땅할 청소년기에 유원에게 부과되는 의무와 책임감은 결국 유원을 고립되게 만들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예정의 오랜 친구인 신아언니인데, 기실 유원은 신아가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예정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며 무엇보다 유원에 대한 신아의 지나친 걱정과 과보호가 관계를 지배하다보니, 유원과 신아의 관계가 진정으로 건강한/바람직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심지어 유원은 아직까지도 사고 당시에 대한 반복적인 꿈을 꾸는 등 유년시절의 외상으로 인해 PTSD를 겪고 있기도 하다. 여러모로, 유원에게는 마땅히 필요한 상담이나 치료적 접근과 더불어 진정한 관계가 결여 되어있는 상태에 있었다.

 


이마 위로 불똥이 떨어졌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천장에서 나를 움켜쥐려는 불길이 돋아나고 있었다. 화염 너머로 참을 수 없는 비명이 지펴지고 있었다. 비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내 방에서 엄마 아빠가 잠든 방으로, 혹은 내 꿈에서 십이 년 전 나와 언니가 잠든 거실로 아무렇게나 옮겨붙는 불길을 나는 한 번도 멈춰 세우지 못했다.

아는 꿈이었다. 나만 빼고 모든 것을 재로 만들고서야 꺼지는 꿈.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14.

 

 

  특히 유원의 내면을 지배하는 가장 핵심 감정은 바로 죄책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유원에게는 자신을 구하고 정작 본인은 숨지고 말았던 언니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자신을 구하려다 다리를 다친 신씨 아저씨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당연히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왔다. 그러나 자신을 구해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늘 무언가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신씨 아저씨의 모습이 유원에게는 불편하게 비추어진다.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했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96.

 

  작품 속에서 유원의 삶과 내면을 변화시켜주는 인물이 바로 수현인데, 수현은 학급 친구들에게 신뢰받는 친구이며 동시에 옥상 마스터키를 갖고 있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서글서글한 학생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또한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을 정도로 성실한 면면이 드러나는데, 수현과의 관계속에서 유원은 삶에서 최초로 평범한 우정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유원과 유원의 가족을 포함하여, 외상경험이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가 바로 이 평범성에 있을지 모른다. 너무도 평범치 않은 고통을 맞이했기에, 옆에서 건네주는 말 한 마디, 그저 함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평화로움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했다. 옥상에서 보는 노을은 아름다웠다. 너무 붉어서,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아서 넋을 잃게 만들었다. 만약 상처를 받아 취약해져 있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위로를 받거나, 혹은 이걸 봤으니 이제 그만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될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했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69-70.

 


  내 방에는 정말 별게 없었다. 자랑할 것이라고는 덮자마자 잠이 몰려오는 마법 같은 푹신한 극세사 이불, 정도. 수현은 많은 아이들의 방을 구경했겠지. 내 방은 평균은 될까. 그 이하일까. 다른 애들은 친구 방에서 뭘 하고 놀지. 커다란 앨범에 있는 유치원 졸업 사진 같은 걸 보면서 깔깔 웃나. 너는 이런 책을 읽고 컸구나. 우리 집에도 세계 문학 전집 있어. 너도 『데미안』 읽었니, 그러면서? 아니면 새로 나온 화장품을 꺼내 놓고 세상에 똑같은 색깔의 립은 없어. 이것저것 발라 보고, SNS에 올릴 사진을 찍거나.

  나도 수현의 집을, 수현의 방을 보고 싶었다. 왠지 수현의 방에는 구경할 거리가 많을 것 같았다. 책상 위에는 어릴 때 사진,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이 잔뜩 있고, 서랍에는 반드시 초콜릿이나 사탕이, 책상 위는 조금 어지럽지만 수현의 흔적들이 가득할 것 같았다. 캘린더에는 친구 누구의 생일, 특별한 모임 날짜들이 체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94-95.

 

 

  주목할 만한 점은, 수현의 서사가 드러난 이후부터인데, 수현이 사실 유원을 구한 금정동의 호인이자 용감한 시민으로 평가받는 신의석씨의 딸이라는 점은 유원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수현과 유원이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작품 속에서 주요하게 다가온다.

  전술한 바 있듯 사실 유원과는 대조적으로 학교 내에서 반장을 맡으며 학급 아이들의 신망을 받기도 하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등 그 어떤 구김살이나 그늘이 없어 보이는 인물인 수현에게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이 자리한다는 것은 작품 후반부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기능한다. 가정을 파괴하고, 수년이 넘게 유원의 가정에 기생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 그러나 한 생명을 구하기도 했으니 사실은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 등이 교차하는 수현의 내면은 열일곱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을 것이다. 결코 통합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온 그 과정은 길고 지난했다. 그러나 수현이 결국 아버지가 원래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아버지의 부정적인 면을 수용하면서 자신은 그와는 다른 삶을 살 것이라고 유원에게 공언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인데, 독립적인 한 인격으로서, 아버지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당당한 수현의 모습은 유원의 내면에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Blos(1979)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이차적 개별화 과정 (secondary ndividuation process)’으로서, 유아기 시절 경험한 일차 분리-개별화 과정에서 나아가 부모와의 의존적 동일시에서 벗어나 심리적·정서적 독립을 이루는 데 발달 과제가 있는데, 수현은 이를 충분히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다.

 


 

“아빠가…… 해로운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야.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아빠의 행동에 이유를 찾아주게 되거든. 아빠도 아빠다운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라서 그런 거라고, 혹은 한 번도 여유를 갖고 살아 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살면서 누군가를 도와 본 게 처음이라, 은인이 되어 본 것도 처음이고 그런 식의 대접을 받아 본 것도 처음이라 거기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아빠를 가련한 사람으로 만들거든.”

수현의 노력이 가상했다.

“이제 알아. 아빠는 해로운 사람이야. 아빠는 이 세상에 해로워. 너한테도, 나한테도. 아빠는 변하지 않을 거야. 포기해야 돼. 나는 아빠랑 다르게 살 거야. 너도 내 노력을 우습게 보지 마.”

수현은 아빠의 비겁함, 구질구질함, 위선, 아빠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아빠를 아이 달래듯 달래 가며 격려하고, 다독이는 것, 아빠에게 또다시 실망하는 일련의 일들에 지쳐 있었다.

나는 수현에게 미안했다. 이런 것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는 더욱 더. 문득 수현이 꾸준히 해 온 봉사활동들이 떠올랐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빠 생각은 너보다 내가 더 많이 해 봤어. 궁극적인 질문은 이거지. 그래서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이럴 수 있는 걸까. 나는 왜 아빠의 다른 면은 보지 못한 걸까. 아빠는 왜 남들처럼 정직하게 살지 못하고, 누군가를 착취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 아빠 속이 궁금해 나도. 얼떨결에 널 구하고 영웅이 됐지. 아빠는 그날 널 구하지 않았던 게 아빠 인생을 위해서 더 나은 일이었을 수도 있어.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82-183.

 

 

  아버지와는 다른, 고유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당당히 선언한 수현의 모습을 통해 유원의 내면에도 변화의 씨앗이 자리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구해 준 댓가로 지나치게 부모님께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아저씨에게 아저씨의 언행이 부담스러움을 용기있게 고백하는 한편, 신아언니와의 불건강한 관계를 직접 이야기하고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먼저 이야기하게 된다. 수현으로 인해, 유원은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 자신을 옭아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니 예정과 유원은 다른 인격체이며, 부당한 요구에는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유원의 내부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진솔성과 용기가 유원에게도 전이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그늘이, 그 불행한 사건이 내 탓’, ‘내 잘못이 아님을, 그것은 부당하다고 외칠 수 있게 되는 데는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아주는 신뢰로운 관계 안에서, 나를 위해 나서 주는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할 때 가능한 것임을 새삼 통찰하게 된다.

 


 

나는 나를 살린 우리 언니가 싫어.

나는 나를 구해 준 아저씨를 증오해.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24.

 


 

“그때, 제가 너무 무거웠죠.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다리가 으스러진 거잖아요. 죄송해요. 제가 무거워서, 아저씨를 다치게 해서, 불행하게 해서.”

“너…….”

“그런데 아저씨가 지금 저한테 그래요.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95-196.

 

 


 

 “언니, 나는 율이가 좋아. 왜냐하면 내 지인 중에 우리 언니를 모르는 사람은 율이밖에 없으니까.” (중략)

“그러니까 이건, 내가 지금까지 마음 놓고 언니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뜻도 되는 거야. 나는 맨날 불안했어. 언니가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89.

 

 

  문득 세월호 유가족분들, 4.3 5.18 희생자의 가족분들 및 여타 사고와 국가적 문제의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모든 분들께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이 지점에서 성장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본다. 진정한 성장은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고 이를 직면하여,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데에 있지 않은가 싶다. 자신의 PTSD와 관련해 지나친 죄책감을 직면한 유원은 그 죄책감으로 인한 당위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인식하였으며 이제 불필요한 고통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즉 유원이 실존주의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진실한 개인으로서 거듭나기 시작한 바, 이제는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용기있게 자신이 선택한 삶만을 지향하며, 유원이 그 자체의 빛깔을 드러내기를 진실로 바란다.

 


 

“유원아.”

“네?”

아저씨는 무슨 말인가를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기다렸다.

“너, 별로 안 무거웠다. 그냥…… 사람 몸은 원래 약하다. 다 잊어버려라.”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99.

by papyros 2020. 6. 30. 01:37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눈가리고 책읽는당 활동'(버드 스트라이크 가제본 사전 서평단) 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출간 전 양서를 먼저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구병모 작가님과 창비출판사 측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서평 중 인용문의 쪽수(페이지)는 직접 구입한 <버드 스트라이크> 정식 단행본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다친 동물을 감싸기 위해서는 양어깨의 날개를 앞으로 모두 모아야 한다. 따라서 날개가 큰 자일수록 더 큰 동물을 보살필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새의 보호를 받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새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그들은 때가 되거나 필요한 순간이 오면 모두 일정 크기의 이상은 날개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펼쳐 보아도 비오의 날개는 그 자신의 등을 덮기에도 모자랄 만큼 짧고 작았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6쪽.

 


 

  “우리가 하는 말 …… 대강 알아듣지? 너희는 어릴 때부터 우리 말과 벽안인(碧眼人)들의 말까지 모두 배운다고 들었는데.”

비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비오의 엄마의 엄마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시 사람들에게 유구한 세월 들볶이고 형태가 있는 거라면 뭐든 빼앗기는 과정을 거치며 이제는 고원 지대의 고유어를 제대로 기억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지장을 비롯해서 열 손가락 안에나 들까. 마을 행사 때 단체로 부르는 노랫말 정도를 제외하곤 자신들의 말을 쓸 일이 없었다. 고원 지대에 남은 거라곤 이제 한 뼘의 땅과 흐드러진 꽃과 바람 같은 것들뿐. 애당초 그런 것들조차 소유하려 들지 않고 고원의 품에 되돌려주면서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들은, 도시인의 약탈로 인해 그런 꿈을 꿀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0-21.

 


 

 지금은 이미 구병모 작가님의 신작으로 널리 알려진 『버드 스트라이크』의 정식 출간 전, ‘눈가리고 책읽는당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수령하였다. 백색의 표지에 작품의 단서로 #새인간 #작은날개 #영어덜트소설(*Young Adult(YA)소설은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을 의미한다.)이라는 단 세 개의 해시태그(키워드)만 제시되어 있는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지닌 채 작품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내가 읽는 작품의 작가와 책의 제목도 모른 채 책장을 처음 넘겨가는 와중 벽안인익인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생소한 용어에 공간적 배경이나 시간적 배경이 특수한 SF소설인가? 미래소설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졌던 것도 찰나, 작품을 읽어내려가며 익인과 벽안인들의 관계, 그리고 핵심 주인공 비오(익인)와 루(벽안인)가 그들의 집단에서 자리하는 특수한 위치를 읽어낼 수 있었다.

  과학기술과 문명을 지닌 도시에서 살아가는 벽안인들은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유사한 반면, 날개를 가진 사람들인 익인들은 도시의 벽안인과는 떨어져 그들만의 고원지대에서 살아가며 그들만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익인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벽안인들에게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심지어 벽안인들과는 달리, ‘날개를 지니고 있는특수한 인종(人種)으로 여겨져 연구나 실험의 대상으로 자리하기까지 한다.

 


  여러모로 맘에 들지 않는 생활이었지만 청사에서 지내다 보면 가끔 특별한 기회가 있었다. 청사 바에 사는 또래 아이들은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 책에서 사진으로나 보았던 익인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고원 지대에 모여 사는 익인은 날기에 최적화된 작고 가벼운 몸집에 성질은 순한 편이라 들었는데 어쩌다 오늘처럼 떼를 지어 청사를 공격해온 건지, 지적 수준이 도시인들과 같으며 동작이 빠르고 날기까지 해서 생포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잡혔는지 궁금했다. 낮에 그들이 천장과 벽을 두드려 대고 부수는 동안 진동을 일으키는 책상 밑에서 볼썽사납게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루는 이제 가까이서 포로를 관찰하는 특전 정도는 누리고 싶은, 아직은 천진난만하고 무신경한 나이였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감수성이 익인한테까지 미치지는 못했고 그들이 무언가 진귀한 대상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35.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의 벽안인과 익인들 사이에서, 현 시행의 이복(異腹)동생이며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아버지의 고향에서 평화로이 살다가 갑작스레 어머니 아마라와 전() 시행의 재혼으로 정부청사에 들어오게 된 소외된 아이 벽안인(碧眼人) , 그리고 날개가 있는 익인들 사이에서, 익인 어머니와 벽안인 친부(親父) 사이의 혼혈로 태어나 다른 익인들보다 작고 왜소한 날개를 가지고 태어난 익인(翼人), ‘비오’.

  벽안인들의 청사에 납치되어 취조를 받던 비오가 고원으로 도망치기 위해 루를 납치한 다소 기이한 만남으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결국 인종(人種)간의 경계를 넘어 루와 비오가 갖게 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자연스런 이끌림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집단)에서 누구보다 약하고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타인과 동일시(同一視)한다는 것이 위험요소도 분명히 있겠으나, 비오와 루의 경우 이를 통해 외로운/소외된 이들 간의 연대와 유대로 이어졌고 그 외로움을 이해하고 품어 주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선물과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기실 우리 모두가 누군가로부터 평가받거나 판단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축복이나 선물과 같은 귀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난 걸 후회하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부끄럽지도 않아. 사실 축제 날 나 말고 다른 두 친구는 뜨거운 불 앞에서 이미 다른 이들의 청혼을 받았는데, 나한테만 아무도 청혼해 온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의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 말이야.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07.

 


 

“아주 잠깐이라도, 그 인연을 귀하게 여기세요.”

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기에 루는 엉거주춤 일어서려고 했으나 지장은 그대로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어떤 우여곡절을 거쳤든 간에,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나 연결된 데에는 이치가 있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론 설명되는 연결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살아 있는 이유랍니다. 그러니 이어진 끈을 섣불리 자르려 하지 말고 그리로 마음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지내는 동안 루, 당신에게 평안이 있기를.”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26.


 

  작품 내에서 벽안인들과 익인들 사이의 불평등한, 차별적 관계와 루와 비오의 소외된 위치에 대한 내용과 메시지들이 유독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큰 목소리)로 들려오고 그만큼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오래 전부터 2019년을 살아가는 현재까지 이러한 이슈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하며 읽어 온 우리 세대의 명작, 해리포터(Harry Potter)만 해도 마법세계에서 순수혈통과 혼혈, 머글 간의 차별이 핵심이슈로 등장하며 머글 출신이기에 차별받거나 심각한 욕설을 듣기도 하고, 집요정과 같은 존재는 생명체로서의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 최근 10주년을 맞이한 구병모 작가님의 등단작 위저드 베이커리(2009) 또한 말을 더듬고 집안에서 마음 줄 곳이 없는 소외되고 외로운 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바 있다. 그만큼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다시금 차별의 실체와 소외된/외로운 이들 간의 연대와 유대, 존재의 필요에 대해 역설한 버드 스트라이크의 목소리가 반가우면서도 아직도 이러한 문제가 사회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고 동시에 고맙기까지 했다. 비단 다문화가정이나 난민문제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성별(여성/남성), 장애유무, 성적 등 다양한 방면, 어떠한 상황에서 약자이며 소수자일 수 있고 소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빠, 어떻게 좀 해 봐요. 내 작은 날개로는 이 아이를 덮을 수 없어요.

죽어 가는 다람쥐를 안고 속을 끓였던 그 때, 아버지는 뭐라고 했더라.

사막의 밤바람이 부러진 뼈마디를 속속들이 핥고 지나간 비오는 이제 상반신을 완전히 일으켜서 버티고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날개 따위 신경 끄렴.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던가?

-그냥 그대로, 꼭 안아 주면 돼.

그것이 뭐든 간에 자신이 가진 것을 주면 된다고, 아버지는 그랬던 것 같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56.

 


 

“베푸는 겁니다. 무엇이든 나눠 주는 거지요. 자기가 가진 거라면, 하다 못해 한 줌의 체온이라도 말입니다. 조각 내서 나눠 줄 수 없으니 그 순간 눈앞에 있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마음의 전부를 주는 것, 그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58.


 

한편 작품이 영 어덜트(Young Adult) 소설, 즉 성장소설이자 교양소설(입사식 교양소설)로서 정체성을 지니고 자리할 수 있는 성장에 대한 화두또한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익인들의 사회에서 성인이 되는 열여덟 살을 맞는 이행식은 굉장히 중요한 순간으로 다가오는데 루의 항의로 인한 지장의 내적 갈등과 변화 전까지 비오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작은 날개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열여덟살의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행식에 참석할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였다.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를 통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고 예속된다면 그것을 진정한 성장이라 볼 수 있을까?

2019년 대한민국의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성인들이 20-30대에 이르기까지 심리적,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심리적, 경제적 독립이 되어있지 않으니 완벽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이르기에도 어렵다. 주요 애착대상이었던 가족, 부모에게서 온전히 독립하여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혼자 비행하기 위한 독립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작품은 비오의 일화를 통해 이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비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지장이 지니는 문제의식과 비오의 정체성 확립은 익인들 모두와 비오의 성장에 주요하게 자리한다.

 


 

  우리는 열여덟 살을 맞이하는 해에 날을 정해 놓고 다 같이 모여서 이행식을 한단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일. 아이에서 어른으로 건너가는 날. 그 도약을 모두가 함께 축하하는 날. 그해에 열여덟 살을 맞이하는 사람이 비록 한두 명에 불과하더라도 그 날은 마을 전체의 축제일이란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한 해에 한 명은 꼭 있어. 많을 때는 아홉 명까지도 있었고 나 때는 세 명이었지. (중략) 사실 내게는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니었단다. 내 몸의 달맞이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했고, 그날의 축제는 나이를 한 살 다 먹는다는 의미일 뿐 사람의 인생에 어떤 경계나 구획이 명확히 그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축제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누구도 내가 다음에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지 않는데, 그 시간과 함께 아이의 껍질을 벗고 어른이 되었다고 선포하는 행위가 나한테는 새삼스럽게 여겨졌단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05-106.


“그 애는 아닙니다.”

“예?”

“비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올해 열여덟 살이 되긴 하지만 비오는 우리 안에서 온전한 어른으로 지낼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그런 비난에 가까운 폭언을 고스란히 받아 내면서도 비오의 앉은 자세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중략)

“……우리 비오라면서요.”

(중략)

“그래도 실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 전 제 얘기를 코로 들으셨나 봐요. 웅장하고 경직된 청사 안에서 아무도 저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숨 쉬는 것 말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입 밖에 낼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갈 수 있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없었어요. 제가 원해서 그곳으로 간 게 아닌데도요. 그런 저한테도 축복을 이야기하시고서, 이렇게 가까이 있는 비오에게는 이러실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28-130.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지나치게 잘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규격에 맞도록 어깨를 움츠린다는 게, 좋기만 한 일이었을까? 안 그래도 작은 날개가, 비오의 마음에 영향을 받아 더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더 크게 활짝 펼칠 자격이 없다 하면서.

지장은 비오에게서 어른이 될 권리를 빼앗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일인지에 대한 확신이 옅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초원조는…….”

졸고 있는 줄 알았던 옛사람이 문득 입을 열어 소리를 내자 지장은 고개를 들었다.

“아기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간에…… 생긴 그대로 품어 주었네.”

다른 사람들의 불안과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가, 생각보다 너무 길고 가혹한 대가가 되어 그 애에게 영원한 유목민 내지는 이주자의 낙인을 찍어버린 걸까. (중략)

“그러니 그 작은 날개로 어디까지 날겠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이제는 날 수 없는 몸으로 초원조의 부름을 기다리는 옛사람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나.”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45-147.


  비오는 그 전까지 형식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썼던 이행식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실은 자신이 이 문을 통과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얼룩의 자리를 옅은 기대감이 채워나갔다. 비오는 한 명의 당연한 익인이었다. 도대체 날개가 있는데 익인이 아니라면 뭐란 말일까?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87.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본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잊을 수 없다. 그 드라마의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현실을 비판하면서 결국 자녀의 인생이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핵심 메시지로 강조하고 있었다. 구병모 작가의 <버드 스트라이크> 또한 맥을 같이한다. ‘는 비오를 구하면서 자신이 지닌 힘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며 유영기 조종사의 직업을 선택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였고 비오는 어머니와 가족, 익인 사회의 품을 떠나 완벽한 독립을 위한 비행을 시작했다.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청년들의 가능성을 규정하지 않고 그들이 그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끔, 스스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10년간 오랜 사랑을 받은 구병모 작가의 등단작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선택과 ,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최신작 『버드 스트라이크』에서도 이 주제의 맥이 다른 언어와 서사로 그려진다. 루와 비오의 성장을 통해 다시금 청(소)년들에게 성장에 대한 자각을 촉구한 구병모 작가님에게 진실로 감사드리며 10주년을 축하하고 싶다.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선택하는 삶을 통한 성장에 대한 작품들을 더욱 오래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보며 차기작을 다시금 기다린다.

 

구병모, <버드스트라이크>,작가님 사인


 

엄마와 나를 그 집에 두고 먼저 떠난 비오가 원망스럽기도 해. 하지만 그것이 비오의 선택이라면, 존중해 주려고. 비오는 결코 원해서 그와 같은 몸을 하고 이 세상에 온 게 아니니까.

출발하기 전날까지 지장 어른을 비롯해서 아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오랫동안 인사를 나눴어. 그걸 보니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라는 걸, 일시적이며 기분 전환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완전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꼭 그렇게 우리 옆에서 멀어지고 홀로 되어야만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나아가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날아가고 싶은지……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 수 있는 거냐고, 마지막 날 밤까지도 나는 묻지 않았어.

아이들이란 언젠가는 부모를 떠나는 게 맞는 거라고 엄마가 허락한 걸, 내가 무슨 자격으로 따질 수 있겠어.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339-340.


by papyros 2019. 3. 30. 12:07

 

 

로제 마르탱 뒤 가르, 『회색 노트, 민음사,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민음사' 첫 번째 독자 (7월) : 민음북클럽 서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민음사와 민음북클럽 담당자님께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련링크 : http://minumsa.com/event/30529/)

 

 

 


 

 

 『회색노트』는 민음사 홈페이지에서 7월의 첫 번째 독자서평 프로그램 공고가 올라왔을 때 가장 눈길이 간 제목이었다. 12년 전, 중학 3학년 시절 지금까지도 안부를 여쭙고 종종 뵙곤 하는 국어과목 은사님께서 내게 직접 추천해 주신 책이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소설이긴 하지만 아마 네가 좋아할 만한 책일 것이라고.

 당시의 나는 아마 헤세와 김탁환 작가, 그리고 독서토론 수업에서 읽던 책들이 우선되었는지 언젠가 선생님께서 권해주신 책을 읽어보아야겠다고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고,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특히 도서 정보를 확인하니 두 소년의 우정과 성장, 교육에 대한 화두가 작품 속에 다루어져 있다고 하여 교육자를 목표로 정진하는 이로서, 도서를 접하기 전부터 기대가 매우 컸던 바이다.

 왜인지회색노트라는 도서를 이미 소장중이었던 것 같아, 방을 살펴보니 언젠가 이사를 가시며 장서를 정리한 이웃분의 서가에서, 그리고 헌책방에서 판매하던 책 각기 다른 출판사의 회색노트서적이 총 두 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회색노트라는 책이 뇌리에 남았고 마음 한켠에 항상 읽어야 할 책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을 수령한 뒤 깔끔한 책 표지에 매료되었고, 책 속에 금방 몰입될 수 있었다. 책을 완독한 후에는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크와 다니엘의 우정이 마치 헤르만 헤세의 작품 속에 나오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우정 같기도 하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우정 같기도 하고. 또한 일전에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에 등장한 소년들의 우정도 생각났다.

 헤세의 작품, 프레드 울만의 작품, 그리고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자크와 다니엘의 우정에 공통적인 속성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청소년기(사춘기)를 보내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동경을 기반으로 우정을 가꿔나갔다는 것이다. 그러한 동경이 마치 열망처럼 느껴지다보니 마치 우정을 넘어 사랑과 같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동경.

 기실 그러한 동경은 자신의 내면이나 외적 환경에 부재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일수록 더욱 강렬하기 마련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서로 이성과 감성의 속성을 부러워하듯. 자크와 다니엘 또한 다니엘은 그가 가지지 못한 자크의 열망과 감수성에, 자크는 그가 가지지 못한 다니엘의 모범적이고 이성적인 면에 이끌렸기에, 서로가 친구의 소망을 이해해 주는 존재였기에 그들이 그토록 오랜 기간 교사들의 눈을 피해 회색 노트에 시를 통해 마음을 터놓고 강렬한 우정을 나눈 것이 아니었을까.

 

  자크는 가톨릭 학교의 준기숙생이며, 종교적 생활 형식을 중요시하는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또 한번 뛰어넘어본다는 쾌감 때문에 이 프로테스탄트 소년의 관심을 사려고 했다. 그는 그 소년을 통해 자기의 세계와는 대립되는 세계를 이미 예감했다. 그리고 몇 주일 안 가서 그들의 우정은 불길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변했으며, 각자 자신도 모르게 괴로워하고 있던 정신적인 고독에 대한 위로를 상대방에게서 찾아내게 된 것이다. 청순한 사랑, 신비한 사랑, 그 속에서 그들의 청춘은 미래를 향해 똑같은 설렘으로 융합되었다. 그들 열네 살짜리 소년의 마음을 휩쓸던 격렬하면서도 서로 모순되는 온갖 감정, 누에 키우기나 글자 맞추기 놀이에 대한 열정에서부터 그들 내부의 은근한 비밀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삶에 대한 열광적인 호기심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정이 두 소년에게 공통되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91-92.

 

 

 

 

 그러나 기실 그들이 가출을 하게 된 가장 강력한 배경은 그들의 강렬한 우정보다도 가정, 학교, 사회의 환경이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 여겨진다. 현대에 와서는 이미 고전(古典)으로 널리 읽히는 루소의 참회록을 금기시하는 시대적 분위기(교육환경), 유명 정치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자크를 과도하게 보호하고 통제하려 하는 교사들의 태도, 그리고 시를 짓는 아들의 감수성과 관심사에 무관심한 가족환경(형을 제외하고). 자크가 가장 애정을 지니고 있는 친구와 함께 그러한 학교와 가족환경에서 탈출하고 싶어했던 마음이 충분히 공감될 만큼 자크의 성장에 외부 환경은 매우 억압적이었다. 다니엘의 경우 같은 사회적 환경(교육환경)을 지니고 있었으나 자크와 다니엘의 가족환경이 가출 이후 그들의 삶에 결정적 차이를 빚은 것으로 보인다.

 

 

 

 

 늘 아들 다니엘을 신뢰하고 필요한 순간엔 그녀의 아들과 딸을 보호하고자 강인해지고 단호한 결정을 내리던  퐁타냉 부인. 특히 그녀가 아들의 노트를 증거물이라며 제시하는 비노 신부의 행동에 보인 언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녀가 아들을 마음 깊이 신뢰하고 독립된 인격으로서 아들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부모의 태도라고 느꼈기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로 그러한 어머니가 있기에, 타인을 존중하는 어머니가 있기에 소중한 친구의 제안을 수락하여 함께 가출하긴 하였으나 가출 기간 동안 내내 어머니를 그리며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러분, 저는 단 한 줄의 글도 읽지 않겠어요. 그 애의 비밀이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애 모르게 폭로되고, 그 애에게는 변명할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다니요! 전 그 애에게 이런 대우를 받도록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38-39.

 

 

 

 

 

 다니엘은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었을까? 부인은 늘 하던 버릇대로 뜨거운 차를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차에서 무럭무럭 올라오는 김 속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불빛을 등진 그 얼굴은 확실히 좀 피로해 보이기는 했지만 언제나 보아 온 그 얼굴이었다! , 이 미소, 이 오랜 눈길…….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29.

 

 

 

  주님은 언젠가는 남편이 선의의 길로 가도록 그를 돕게 하려고 방종한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선량한 마음을 가진 이 죄이 곁에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닐까? 아니다. 급선무는 가정과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다. 그녀의 생각이 천천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자신이 더 굳센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제롬이 없는 동안에 기도로써 밝혀진 그녀의 마음속에 내린 판단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38.

 

 

 

 

 

 

 

 

 한편 자크는 비록 젊은 의사인 형, 앙투안이 그나마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좋은 형제이긴 하지만 앙투안을 제외하고서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이가 가족 내에 없었을뿐더러, 아버지 티보씨의 엄격한 통제와 억압에 내몰리고 있었다. 특히 유력가 집안의 후손이고 정치인인 티보씨로서는 그의 아들을 엄격히 교육해 제대로 성장하게 하여 가문의 명예를 지켜나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티보씨가 자크에게 엄한 아버지였으며 아들의 관심사에 무심했을지 모르나, 그 또한 악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속으로는 아들이 달려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아들을 위해 그리스도께 기도를 바치는 신실한 신앙인이자 나약한 한 개인이었다. 티보씨가 조금만 더 그의 아들이 무엇에 흥미를 갖고 관심을 보이는지, 힘든 점은 무엇인지 감정을 잘 헤아리고 보살폈다면, 아니- 자크가 가출 후 귀환했을 때라도 아버지로서 진심을 비추어 그를 어루만져주고 아들을 반기었다면, 자크의 비극적인 선택을 결심하게 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자크를 보는 순간 티보 씨는 마음의 동요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응접실에 그 복사판이 걸려 있는 그뢰즈의 그림처럼 죄지은 이들이 그의 무릎 앞으로 달려와 엎드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은 감히 그러지 못했다. 서재 역시 꼭 잔칫날처럼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그때 마침 부엌 문앞에 두 하녀가 나타났으며, 더구나 티보 씨는 저녁에 입는 가벼운 재킷을 걸치고 있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 모든 예사롭지 않은 광경이 자크를 마비시켜버렸다. 자크는 유모의 품에서 빠져나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자기도 모르는 그 무엇을 기다리면서, 울고 싶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한 심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서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그토록 애정이 복받쳐 있었다!

 그러나 티보 씨의 첫마디는 그를 이미 이 가정에서 쫓아내 버리기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자크가 보인 그 태도가 관대해지려던 티보 씨의 생각을 단번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는 그대로 버티고 서 있는 아들놈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기 위해 철저하게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 너 왔구나.” 그는 앙투안만 보며 말했다.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거기 일은 다 제대로 되었느냐?” 그가 내민 나른한 손을 잡은 앙투안으로부터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나자 이렇게 말했다. “고맙다, 얘야. 나 대신 그런 일을 처리해 줘서……. 그런 창피한 일을!”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때까지도 죄 지은 아들이 달려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하녀들을 흘끗 쳐다보고 나서 다시 자크를 쳐다보았다. 자크는 우울한 표정으로 양탄자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티보 씨는 결정적으로 화난 말투로 말했다.

 “다시는 그런 추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일 당장 방침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51-152.

 

 

  그곳에서 홀로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 이 뚱뚱한 신사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얼굴에서는 피로의 가면이 벗겨져 내리는 것 같았고, 얼굴 윤곽이 소박한 표정으로 변하여 어렸을 때의 사진 속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다. 그는 기도대 앞으로 다가가 몸을 던져 무릎을 꿇었다. 그는 두툼한 두 손을 익숙한 몸짓으로 재빨리 마주 잡았다. 이곳에서의 그의 일거일동에는 무엇인가 편안하고 비밀스러운 자기 혼자만의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생기 없는 얼굴을 들었다. 지금 하느님에게 자신의 실망과 이 새로운 시련을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부터 모든 원한을 풀어 버린 그는 지금 아버지로서 길 잃은 자식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기도대 아래에 있는 종교 서적들 틈에서 묵주를 꺼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민음사, 2018, 153-154.

 

 

 

 

 

 자크의 모습에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한스 기벤라트가 겹쳐보였다. 한스 기벤라트 또한 학업에 내몰린 교육적 환경 속에서 고되고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못하며 힘든 길을 지나가다가 종국에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그에게도 마지막 과수원에서 만난 이의 손길이 있었다면 다른 선택지가 열렸을지도 모른다. 굳이 문학작품에서 찾지 아니하더라도, 사도세자의 비극은 또 어떠한가. 사도세자 또한 지나치게 엄한 부친 영조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을 옹송그리며살다가 병에 걸리지 않았던가.

결국 문학작품 속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성장 중에 내면의 생각과 가치와 사회체계의 가치 사이에서 여러모로 혼란을 겪고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할까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재능과 개성, 관심사와 선호에 반하는 것들을 억압하면서 무언가를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경청으로 그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격려하는 것.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바로잡아야할 인격체가 아니라 고유한 개성을 가진 동등한 인격 으로서 대우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교육(敎育)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기실회색노트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8부작 장편소설 티보 가의 사람들의 서두가 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학교교육의 불합리성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가출을 결행하는 자크와 앙투안의 행동 속에는 그들의 가정환경 뿐 아니라 신교에 대한 가톨릭(구교)의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 또한 배경으로 등장했는데, 회색노트이후 앙투안의 내면과 삶, 티보씨의 행동들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스포가 될지 모르겠으나 검색중에 알게 되었는데, 결국 자크는 비극적인 선택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으나 이를 결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좋은 작가를 마주하고 앞으로 완독하고픈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되어 진실로 기쁘고 이후의 서사가 참으로 기대된다.

 

 회색노트는 나의 내면에 경종을 울리는, 짧고도 굵은 단편이자 장편소설 티보 가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알리는 긴 여정의 출발점과 같은 작품으로 남았다.

 

 

 

 


 

 

 

 

by papyros 2018. 8. 30. 15:06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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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에 신화가 있었다. 위대한 신은 인도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 독일 사람의 영혼 속에서 언어를 창조하고 표현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했듯이 모든 어린이의 영혼 속에서 날마다 언어를 창조한다. 내 고향의 호수와 산, 개울의 이름을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햇빛 아래서 엷은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매끄러운 호수, 호수를 두른 촘촘한 꽃망울들 사이로 우뚝 솟아오른 가파른 산맥, 눈 쌓인 봉우리들 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움푹 팬 골짜기들, 여기저기 흘러내리는 자그마한 폭포들, 과수와 오두막과 잿빛 알프스 젖소들이 들어차 있는 산비탈의 경사진 밝은 목장을 보고 자라왔다.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2017, 17.

 

 헤세가 스물여섯에 지은 첫 장편소설인페터 카멘친트의 첫 단락은 위와 같이 주인공 페터 카멘친트의 고향, ‘니미콘 마을에 대한 정경이 묘사되며 전원적이고도 신비로운 어조로 서술된다. 소설의 첫 서두에서부터,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신화, 전설, 동화의 첫 머리와 같은 신비로운 서술. 그러나 이러한 신비함과는 달리 페터는 자신의 친지들이 자리한 고향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페터에게 리미콘은 강압적인 아버지의 존재가 두드러지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평생 자연만을 관조해야 하는 지루하고 답답한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리미콘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아간 페터는 뢰지와의 사랑을 통해, 대학에 진학 후 리하르트와의 우정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며 성장해나간다. 특히 리하르트와의 교류를 통해 지적 자극을 받고 그에 감응하는 지점은 헤세의 다른 소설 -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와 하일너,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지와 사랑)>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에서도 드러나듯이 성장의 열망을 그리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페터가 바젤에서 경험한 소시민들과의 교류는 그의 삶에 더없는 영향을 미친다. 고독과 우울, 그리고 타인에 대한 예민성으로 사람을 대하던 , 그리고 학문이나 이성을 통해 명예를 이루고 사교계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페터가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깨닫고 귀향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곳에서의 체험은, 어떤 지식이나 명성으로 타인과 교루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페터 카멘친트라는 개인의 실존 그 자체로 수용된다.

 

 

 나는 언젠가 아시시에 오랫동안 머물며 연구를 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바젤로 돌아가 급한 일들을 정리한 뒤, 짐을 몇 개 꾸려서 페루자로 보냈다. 그리고 직접 피렌체까지 기차로 가서는 거기서부터 천천히, 느긋하게 걸어서 남쪽으로 향했다. 여행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데는 어떤 기교도 필요 없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은 항상 표면적인 부분에만 관심을 쏟는, 단순하고 자유로우며 소박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이곳저곳의 작은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사귈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싶었고 고향에 와 있는 기분이라, 장차 바젤에 돌아가면 인간적인 삶이 가져다주는 따뜻한 교감을 사교계에서가 아니라 소박한 민중 사이에서 찾겠다고 결심했다.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2017, 138.

 

 

 전반적으로 페터는 한스나 싱클레어보다는 크눌프와 더욱 닮아 있는 인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크눌프에서와 같이, <페터 카멘친트>에는 페터의 방랑생활과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이 등장하며 전원의 아름다움이 묘사된다. 물론 크눌프에 비해 페터의 성향이 조금 더 진중하다는 점도 고려치 않을 수 없겠지만, 크눌프와 달리, 페터는 결국 긴 방랑생활 끝에 귀향한다. 고향의 단조로움에 답답함을 느끼고 벗어나고자 했던 페터가 결국 다시 고향의 단조로움 속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대학생활, 명예와 명망 그 어느 것보다도 자신의 본질,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끔 하는 고향의 전원과 헌신적 삶이 가장 중요함을 페터가 방랑생활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인 듯 보인다. 결과적으로, 페터의 방랑생활은 그의 성장과 가치관 확립에 분명한 영항을 주게 된다. 이는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에서 성진이 꿈에서 양소유로서의 삶을 통해 욕망의 본질을 깨달으며 성장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페터가 흠모하며 삶의 방향을 따라가고자 했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지닌 가치가 생명에 대한 사랑, 즉 겸애의 가치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귀향한 페터가 처음에는 곱추인 목수의 처남 보피를 꺼려 하지만 점차 그와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외적인 요소 너머의 내면을 바라보며 그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서 겸애의 가치가 재확인 되기 때문이다.

 기실 <페터 카멘친트> 안에는 페터라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는 헤세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다. 헤세의 가정상황, 학교에서의 학업과 진리에 대한 열정, 세심한 내면과 시인으로서의 예술성 등 - 그러나 헤세의 대표작이자 또다른 자전적 소설인 <수레바퀴 아래서><페터 카멘친트>를 구분하는 중요한 지점은 결말부에 있는데, 한스의 귀향은 수레바퀴의 무게에 짓눌린 한스가 좌절을 경험한 후 끝내 사랑 또한 이루지 못한 채 내몰리는 공간이었던 데 반해, <페터 카멘친트>에서의 귀향은 페터 본인의 선택이었으며 귀향 후 자신이 형성한 가치관을 실현하며 그의 소명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실 <수레바퀴 아래서><데미안> 등의 학교이성을 조금 더 중점에 두는 작품에 비해 <페터 카멘친트>는 예술과 자연, 내적인 음미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의 자기서사에는 다소 이질적이었으나, 재독(再讀)하며 헤세가 스물여섯에 추구했던 그 본질을 다시금 따라가고 싶다. 페터 카멘친트를 시작으로 헤세의 작품을 연대기별로 다시 읽어나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 기대한다. 헤세가 스물여섯살에 쓴 작품 <페터 카멘친트>. 2017년 스물여섯(만 스물 다섯)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진정한 가치와 소명은 무엇일까 다시금 숙고하게 된다.

 

 

 이제 와서 나의 여정과 삶의 노력들을 돌아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물고기는 물에서 놀아야 하고 농부는 땅을 파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니미콘 마을의 카멘친트는 도시인 내지 세계의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나 역시 체득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매사를 질서에 따라 처리하는 데 익숙해졌다. 세속의 행복을 찾으려는 무모한 욕망이 내 의지와는 반대로 나를 다시 내가 속해 있는 고향, 호수와 산 사이의 조그만 구석으로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기쁨을 느꼈다.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2017, 197.

 

 

 무엇보다도 나는 인간들에게 자연에 대한 형제애 속에서 기쁨의 원천과 삶의 줄기를 발견하라고 가르치고 싶었다. 눈으로 감상하며 여행하고 즐기는 예술, 눈앞에 보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어낼 수 있는 예술을 가르치고 싶었다. 산맥과 호수, 푸른 섬을 매혹적이고 힘 있는 언어로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었고, 그들의 집과 도시 밖에서 얼마나 엄청나게 다채롭고 활력 있는 삶이 날마다 피어나고 넘쳐흐르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그들이 그들의 도시에서 힘차게 움터 나오는 봄,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 철도가 지나가는 주변 숲과 장엄한 초원보다 이웃나라의 전쟁, 유행, 소문, 문학과 예술에 관해서 더 잘 아는 것을 부끄러워하도록 하고 싶었다. 나는 그들에게 고독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잊지 못할 즐거움의 금빛 사슬을 발견했는지를 이야기해 주고 싶었고, 그들이 어쩌면 더 큰 세계의 기쁨을 발견하여 나보다 더 행복하고 기뻐할 수도 있으리라는 점을 알려 주고 싶었다.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2017, 149-150.

 

 

by papyros 2017. 9. 2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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