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책을 배송받고서 시일이 조금 지난 후 책을 조심스럽게 펼쳐들었다. 책의 표지부터가 무언가 시선을 끌었는데 아마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표지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푸른 색감의 표지를 넘겨 보았다. 책 소개 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책은 말을 더듬는 소년 '나'가 등장한다. 새로 다니게 된 언어 교정원에서 가장 발음하기 힘든 단어가 '무연'이었다는 이유로 언어 교정원의 집단상담 시간에 '무연'이라는 별칭(가칭)을 부여받은 '나'는 열네살 소년인데, 책의 초반부에 소년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년의 내면묘사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으레 열네살 소년이 그렇듯 사랑 받고 싶어하며 타인(또래집단)과 관계맺고 싶은 욕구가 큰 소년은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그 욕구를 거절/거부당한 경험이 많아 내면의 상처가 깊은 아이였다.
나는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겠다. 나는 잘해 주는 사람을 미워하겠다. 속지 않겠다. 기억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 편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바보 멍청이 이 똥 같은 놈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과거의 난 그랬다. 잘해 주기만 하면 돌맹이도 사랑하는 바보였지. 하지만 열네 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9쪽.
내일이면 모른 척 할 거잖아.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작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말뿐이잖아. 결국 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당하면 안 된다. 그땐 진짜 끝나는 거야. 끝 (중략)
아무것도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말고 기대지도 말자.
하지만 어째서인지 눈물이 쏟아지려 해 껍질을 벗기고 사탕을 입에 넣어 쭉쭉 빨았다. 왜 늙은 사람들은 계피를 좋아하는 걸까? 나도 늙으면 이런 맛을 좋아하게 될까?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22쪽.
나도 유년시절 또래집단에 더욱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싶어하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아이였던으며 유년기부터 청년기인 지금까지 사람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에 그만큼 상처받은 경험이 많아서인지 소년의 내면에 차곡차곡히 쌓아올려진 상처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사람을 함부로 믿거나 신뢰하고 정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에 소년의 내면에 깊이 몰입되었다.
특히 소년의 학교생활 중 국어교사에 대한 묘사는 나 자신을 매우 성찰하게끔 만든 요소였는데, 국어교사 이기승이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대부분의 어른들과 학교는 소년에게 '읽기'를 강요하는 무리한 환경적 요인에 해당했다.
난독증을 겪는 학생들이나 학습부진이 있는 학생들은 고려했으면서도 '읽기'가 때로 어떤 학생들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있게 헤아리지 못했고 교사로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 지점이었다.
읽어.
책을 소리 내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에겐 눈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다.
종이에 적힌 문장은 부끄러움이 많아 종이에 달라붙어 있는 건데 그걸 억지로 뜯어내 말로 하는 건 옷을 벗기는 것처럼 수치를 주는 짓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읽기가 무슨 인간이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도 되는 양 학생들에게 읽기를 시킨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34쪽.
160 페이지 남짓의 짧은 소설 속 주인공... 16년 전 열네살의 내 모습을 한켠에 떠올려보며.. 이 소년을 통해 나는 그 때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앞으로 남은 페이지들에 대한 설렘어린 기대를 가져보면서, 이 책을 다 읽었을 땐 소년도 나도 한층 더 성장해 있기를 진실로 바란다.
덧붙여, 몇일 전 정용준 작가님의 북토크가 온라인으로 진행된 바 있는데..당일 참여하지 못해서 책을 완독하기 전에 정용준 작가님의 북토크 영상을 꼭 한번 보고 책을 이어 읽고싶다.
- 본 게시물은 2020년 6월, 영화 개봉 기념 다산북스 출판사 <브릿마리 여기있다>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다산북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다산북스측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르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브릿마리는 어둠 속 의자에 앉아서 맨 처음 그 지도와 사랑에 빠진 계기가 된 빨간 점을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그 점이 바로 그녀가 지도를 사랑하는 이유다. 해져서 반만 남았고 빨간색은 빛이 바랬다. 그래도 하단의 좌측과 중앙의 중간쯤에 붙어 있고, 그 옆엔 이렇게 적혀 있다. '현재 위치.'
가끔은 내 현재 위치가 어딘지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더라도 훨씬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다.
2016년 출간된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그의 첫번째와 두번째 소설인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 이후,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 연작, <일생일대의 거래>와 같은 작품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2020년 6월, 2016년에 출간된 책이 국내에서 영화로 개봉했다. (해외에서는 2019년에 이미 개봉되었다.)
기실 <오베라는 남자> 이후 <베어타운> 사전 서평단을 먼저 참여했으며 최근 함께하고 있는 독서모임 '청춘의 책탑'에서 <우리와 당신들>을 읽어온 만큼, <오베라는 남자>의 출간 후 <베어타운>에 이르러 상당부분 문체가 정돈되고 인물서사와 시의성 면에서 다양한 메세지를 함의한 프레드릭 베크만의 최근작을 먼저 읽어온 바 있다. <브릿마리 여기있다>의 경우 이미 전자책으로 도서를 소장해 온바 있으나, 이번 사전 서평단을 통해 종이책과 전자책을 교대로 읽어오면서 완독하게 되었다.
역자 후기에서 역자가 느낀 바로 그 감정처럼, 나 또한 책의 도입부를 일독할 때만 해도 브릿마리라는 인물에 대해 결코 좋지 못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수동공격성이나 '해야 할 일 리스트'를 꼼꼼히 작성할 정도의 강박적 성격, 결벽증을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고용센터 문이 열리자마자 직원을 힘들게 하거나 퇴근조차 시키지 않는 모습들에서 , 브릿마리를 '꼰대'와 같은 인물로 바라보고 젊은 고용센터 직원에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릿마리라는 인물의 서사가 소개되고 작품이 전개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은 점차 변모되어갔다. 도입부에 너무 쉽게 낙인을 찍어버린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그녀가 새삼스럽게 꼭두새벽부터 고용센터에 찾아가고 그토록 직원을 귀찮게 하며 간절히 구직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그녀가 '가치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었다.
유년시절 , 그녀와는 달리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으며 사람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았던 언니 잉그리드의 사후 부모님의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에 대해 인정받으려 부단히 애썼던 브릿마리는 어머니의 장례 이후 사무친 슬픔과 외로움으로 인해 켄트에게 기대며, 처음에는 켄트의 형인 알프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알프와 이별하고 이후 아내와 이혼하고 브릿마리를 선택한 켄트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포기하며 집안에서 켄트의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독립시킨 이후 그녀 나이 60대 -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목도한 것은 '켄트의 불륜'이며, 그녀는 결국 크나큰 무망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집을 나서고자 했던 것이다.
즉 브릿마리는 일평생을 자신의 욕구나 꿈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성장시켰으며 또한 남편 '켄트'로부터 수많은 무시 (가령 브릿마리가 일을 하고자 하면 그만한 급여에 해당하는 자금을 자신이 준다며 가사일에 충실하라고 하는 등)를 감내해오며 그녀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해왔는데, 켄트의 불륜은 그러한 그녀의 노력과 책임을 '허무한 것'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브릿마리 씨, 40년 동안 일을 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거기에 그렇게 목숨을 거는 이유가 뭐예요?"
"나도 40년 동안 일을 했어요. 살림을 했다고요. 그래서 이제와서 거기에 목숨을 거는 거예요."
한 때는 신경 썼다는 건 안다. 그가 그녀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랑이 언제 꽃을 피우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눈을 떠보면 꽃이 만개해 있으니까. 시들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보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발코니 식물과 상당히 비슷하다. 가끔은 과탄산소다로도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켄트의 아이들은 그녀를 좋아했던 것 같지만 아이들은 성인으로 자라고, 성인들은 브릿마리 같은 여자들을 가리켜 '잔소리꾼'이라고 한다. 가끔 같은 블록에 아이들이 있는 집이 이사 올 때가 있었다. 그 아이들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으면 브릿마리가 어쩌다 한 번씩 저녁을 차려주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엄마나 할머니가 등장하기 마련이었고, 그 아이들이 자라면 브릿마리는 '잔소리꾼'이 되었다. 켄트에게 계속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어오니 그게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그녀는 그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여겼다. 그의 인생이 그녀의 인생이 되었다. 그녀는 그런 데 재주가 있었고 사람들은 자기가 잘 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누구라도 자기 존재를 알아주길 바라는 법이다.
이 지점에서 최근 읽은《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수상작인 강화길 작가님의 <음복(飮福)>이나 조남주 작가님의 <82년생 김지영> 과 같은 작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브릿마리 역시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보다 '남편'이나 '자녀'들을 더 우선시하며 자신의 진정한 삶을 희생하며 살아온 한 개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보르그'라는 -거의 폐허와도 같은- 작은 도시의 레크레이션센터 관리직에 취직되는 순간 , 그녀의 삶에 많은 부분이 변화되는데, 그녀가 켄트와 함께 살며 느꼈던 무망감이나 좌절, 허무함과는 달리 보르그에서는 그녀를 필요로하는 어린아이들이 존재했으며, 그곳에서 브릿마리는 오롯한 '존재 가치'를 느끼게 된다. 자기 내면의 고유한 원리원칙과 도덕관념에 의해 행동하는 브릿마리를 혹자는 '강박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보르그 사람들은 그녀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녀를 사랑한다.
특히 브릿마리가 '새미, 베가, 오마르' 3남매에 대한 애정을 가꾸어 나가는 부분은 작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서사였는데, '사이코'와 같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반사회적인 청소년으로 인식되는 새미를 주변의 평가에 의해 바라보지 않고, 커트러리(테이블에 쓰이는 은기류의 총칭, 식사용 기구로서 나이프 세트(Knife Set), 포크(Fork), 스푼(Spoon)을 이름.) 를 바르게 정리하는 면모나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고 있는 새미의 사연을 듣고 그의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바로 브릿마리였다. 그녀가 비록 자신의 기준에 의해 완고하고 우회적인 표현을 잘 할 줄 모르는, 직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을지언정 그녀의 내면에는 진정성이 자리해 있었다.
도입부 고용센터 직원에게 연필을 건네는 장면에서도, 표현과 전달에 서툴지언정 그녀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진정어린 마음과 따뜻한 시선이 드러난다.
"이거 받아요." 브릿마리는 연필을 건넨다. 아가씨가 당황스러워하며 연필을 받자 연필깎이 한 쌍도 마저 건넨다. 하나는 파란색이고 하나는 분홍색이다. 그녀는 연필깎이를 턱으로 가리킨 다음 전혀 편견이 없는 태도로 아가씨의 사내 같은 헤어스타일을 턱으로 가리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두 색 다 샀어요."
"당신은 편견이 없잖아요. 날 인간으로 대하잖아요. 어쩌다보니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인간. 어쩌다보니 인간을 태우게 된 휠체어로 대하지 않고." 그녀는 브릿마리의 팔을 토닥이며 덧붙인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거예요, 브릿. 같은 인간이라서."
"그 사람들한테 커트러리 서랍을 보여주면 되잖아! 너도 신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면 되잖아!"
"고맙습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이러한 브릿마리의 진정성에 대해 아이들은 편견 없는 순수한 시선으로 그녀를 수용하는 것으로 답하는데, 아이들은 그녀의 부족한 면모를 채워주며 브릿마리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파이어릿의 동성애에 대해 염려하며 배려하려는 브릿마리에 대해 그것이 왜 문제냐고 반문하는 파이어릿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의 편견없고 순수한 시각이 브릿마리의 닫혀있고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씩 열여주지 않았나 싶다.
한편 아이들과의 관계와 더불어 '켄트'의 귀환에 따라 , 남편 켄트를 따라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지, 혹은 따뜻하고 진정어린 사랑을 전해주는 경찰관 '스벤'과 새로운 사랑을 함께 키워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브릿마리의 심리묘사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스벤과의 사랑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나, 결국 브릿마리가 그 어느집 문도 두드리지 않는 결말(켄트와도, 스벤과도 함께하지 않는 결말)이 그려진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브릿마리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유년시절에는 친언니 잉그리드의 그늘 밑에서, 잉그리드의 사후에는 부모님의 기대를 위해, 결혼 이후에는 켄트와 그의 아이들을 위해, 보르그에서는 축구팀 아이들을 위해 늘 누군가를 위하는 삶만을 살아온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욕구는 뒤로해 온 삶이 바로 그녀의 삶이었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강렬히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혼신을 다한 적이 없는 것이다. '아줌마는 그런 식으로 사랑해 본 게 하나도 없어요?'라는 반문은 작중 브릿마리에게도, 그리고 이를 읽는 그 너머의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축구를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며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온몸으로 체험한 브릿마리는, 이제 작품 도입부 무망감과 허무함에 휘감겨있는 그녀도 아니고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왔던 어린아이도 아니다. 직접 그녀가 나아갈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보르그의 아이들로부터 받은 진정한 '선물'이라 여겨진다.
"그런 식으로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면서까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브릿마리는 운동복에 과탄산소다를 뿌리고 맹렬하게 문지르며 나지막이 쏘아붙인다.
베가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머뭇거린다.
"아줌마는 그런 식으로 사랑해본 게 하나도 없어요?"
어느 나이쯤 되면 인간의 자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브릿마리가 운전석에 오르는 동안 아이들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든다. 어른들과 달리 온몸으로 손을 흔든다. 아침이 보르그에 찾아오지만 태양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선택할 시간, 난생 처음으로 그녀를 위한 길을 선택할 시간을 주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자제하며 지평선 위에서 공손하게 기다린다. 마침내 햇살이 지붕 위로 쏟아지자 파란 문이 달린 하얀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녀는 멈출지 모른다. 어쩌면 다른 문을 한 번 더두드릴지 모른다.
아니면 그냥 달릴지 모른다. 알다시피 브릿마리에게는 연료가 넉넉하지 않은가.
칼 구스타프 융(Carl J. Jung)의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자기(self)'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의미이자 방향성이며 최종 목적지라고 한다. 이러한 '자기실현과정' , '개성화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데, 특히 중년기에 '자기'의 변화 국면을 맞이하며, 자기 내부의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작품은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추구하는 개성화과정과도 맞닿아 있다고 여겨지는데, 브릿마리의 자기실현(개성화)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여긴다.
한편 '축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통한 지역공동체의 형성이나, 끈끈한 가족애의 경우는 <브릿마리 여기있다>를 발판으로 하여 <베어타운>, <우리와 당신들>에서 더욱 확대된다고 생각하는데, 때문에 이 작품은 프레드릭 베크만의 작품세계를 더욱 확대하는 과도기적 작품으로 의의가 있다고 여긴다.
<오베라는 남자>부터 <베어타운>, <우리와 당신들>, <일생일대의 거래>에 이르기까지 프레드릭 베크만의 작품을 출간 순으로 읽고 다시금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브릿마리의 이후 행보는 어떠할지, 프레드릭 베크만은 다음 작품에서 또 어떤 인물을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게 된다.
특히 영화가 개봉된 만큼, 흥미로운 서사구조를 영화로는 어떻게 구현했는가를 비교하며 작품의 여운을 오래 지니고 싶다.
약 470 페이지에 걸친 브릿마리의 서사를 통해 그녀의 내면에 더욱 깊이 다가가 브릿마리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프레드릭 베크만의 작품 속에서 만나게 될 인물들 역시, 그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서사와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독립북클러버 9기- 청춘의책탑] 8회차(9기 2회차)-「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모임 후기
권인걸, 『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우리의 대화, 2020.
2020.06.20. 土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 8회차 리뷰(9기 2회차)
with yes24 독립 북클러버
안녕하세요. 어느덧 9기 2회차(8회차)를 맞이한 독서모임 ‘청춘의 책탑’입니다. 어느덧 무덥고 습한 여름이며 한 해도 어느새 중반부를 맞이하게 되었네요. 6월, 청춘의 책탑에서 함께 읽은 9차 두 번째 도서이자, 8회차 도서는 권인걸 작가님의 『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입니다. 어느새 적지 않은 모임을 함께해 온 저희 ‘청춘의 책탑’이 앞으로 어떤 책들을 읽어나갈지, 또한 더 좋은 독서모임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자는 마음에서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답니다.
특히 이번 모임은 분당 미금역의 카페 <임팩트 온>에서 진행되었는데요, 맛난 빵과 차를 곁들여 독서모임을 하며 행복하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럼 본격적인 모임 후기로 넘어가겠습니다:)
1. 『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를 읽고 싶었던 이유와 책의 첫인상을 나누어 주세요.
- 몇 년 전, 권인걸 작가님께서 민음사와 함께 진행하시는 독서모임 운영자(리더)를 강연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북엔터테이너를 업으로 삼아 ‘우리의 대화’ 독서모임 및 독서모임 리더를 위한 강연, 학교 독서모임 운영 등등 여러 곳에서 독서모임을 진행하시는데, 인걸님과 같은 독서모임 리더로 성장하고 싶은바..롤모델인 인걸님이 쓰신 책을 통해 더욱 좋은 책들을 접하고 더 좋은 독서모임 운영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답니다.
- 책이 양장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들었던 느낌은, 굉장히 고급스러운 종이를 썼다는 것이었어요. 표지도 빳빳하고 질이 좋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만큼 책에 신경을 많이 쓰셨다는 인상을 받아 독자로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 이 책은 평소 독서모임을 운영하며 정리한 생각을 기록해 둔 것에서 바탕이 되었다고 하는데, 원래 가지고 있는 자기의 기록을 가지고 글을 쓰다니, 역시 준비된 사람이 무언가를 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책을 읽으며 전체적으로 작가님의 어려운 논제를 섬세하게 풀어내시는 한편 미묘한 점을 잘 포착하신다는 점이 들었습니다.
2. 『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를 읽으며 ‘청춘의 책탑’에서 함께 읽고싶은 책은 무엇이었나요?
- 에밀 아자르의 <자기앞의 생>을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자기앞의 생>은 어린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존재 안에서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인간의 실존과 삶의 의미에 가장 필요한 가치인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 책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최은영 작가님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세상엔 왜 이렇게 상처와 고통이 많을까’(55쪽)라는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 책을 통해 누구든 언제나 타인에게 유해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수를 덜할 수 있지 않나..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빌려 나는 살아 있는 한 끝까지 읽고, 질문하고, 듣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하여 타인의 상처를 느끼는 감각을 더 예민하게 길러내고 싶다.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상처 입히게 된다면 그 즉시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그리고 나의 삶을 사랑하는 방식 중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유해한 사람은 자신이 유해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다. 무해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대신, 언제든 유해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하기로 한다.’
- 권인걸, 『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우리의 대화, 2020, 57쪽.
- 저는 <순이 삼촌>이요. 이미 청춘의 책탑을 통해 함께 읽은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재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어요. 단지 지나가버린 역사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전해지고 이어져오고 있는 역사인데 슬픔과 고통의 역사를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가 고향인 독자분이, 생일 때마다 상이차려져있었다고 회자하는 부분에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 저는 <페인트>를 함께 읽어보고 싶네요. 성장소설을 참 좋아하는데, ‘부모 면접’이라는 소재가 등장한다는 점도 신선했고, 과연 가족이란 어떤 의미이며 우리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을 어떻게 양육, 교육할 수 있을 것인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이외에도 <벌새>, <아픔이 길이 되려면>,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19호실로 가다> 등 도서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
3. 『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를 읽으며, 떠올린 <좋은 책의 기준> / <모임에서 선정할 책의 기준>이 있다면 어떤것일까요?
- 사실 좋아하는 책도 선정하기 힘든 편이라 생각을 깊이 해야만 하네요. 기실 본인의 주장을 다룬 건 좋은데 근거가 허무맹랑한 책들은 지양하게 되고.. 독서모임에서 읽을 만한 책은 권인걸 작가님이 제시하셨듯, 인지도/시의성/화제성/가독성/분량 이라는 해당 기준이 모두 적절히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책이 진정으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여 논의할만한 ‘화두’를 이끌면서도, 더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작품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책은 간접경험의 주요 매체이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책인가’의 여부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 작가의 윤리성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하지 않는 기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이야기한 '페터 한트케'의 사례처럼, 고은이나 신경숙 등 표절문제를 일으키거나 미투현상에서 논란이 된 작가..들의 책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술성과 윤리성은 따로 떼어둘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전하는 메세지와 작가의 삶이 괴리될 때 독자들은 온전히 그 작품에 공감하지 못할 겁니다.
4. 『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를 읽으며 생각한, 독서모임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나 가치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해 보아요:)
- 책에도 언급된 바 있듯, 독서모임은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다른 모임에서는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데, 독서모임은 아무리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이야기해도 완충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 ‘논쟁적 사안’에 대해 편향되어 있고, 다른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책을 혼자 읽을 때 오독할 우려가 있기에 함께 읽음으로써 자신의 해석과 타인의 해석을 비교하는 기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를 읽으며 생각한 좋은 독서모임의 기준이나 판단근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목적과 바라는 바에 따라 모두 다르게 느낄 것 같아요. 배움이나 즐거움 등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는 중요한 바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 체계화된 모임에서는, 그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이 자기의 특색을 살려서, -출판사와 연계 – 심리쪽을 하신 분이고, 그렇기에 심리랑 연결한 부분이라든가 작가에 대한 소개 등 PPT를 준비하는데, 간단한 PPT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실 성인들이 함께 하는 독서모임의 경우엔 비자발적 참여자가 없는데, 독서모임의 특수성에 따라(학교 등 청소년 대상) 비자발적인 참여자가 존재하는 만큼 비자발적 참여자의 흥미를 어떻게 유발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책을 꼭 다 읽고 오지 않아도,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으며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모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을만한 책에 대해 이야기한 후, 좋은 책의 기준과 독서모임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독서모임이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풍요롭고 다채로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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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책탑 7월 모임 도서는,
[한성희 ,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 메이븐, 2020. ] 입니다.
정신분석 전문의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담겨있는 심리학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경로와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사전서평단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유원> 가제본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창비 측에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성장소설. ‘성장’이란 내게 어떤것일까. 입사식 소설, 이니에이션 소설, 통과제의 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성장소설’에는 흔히 소년/소녀나 청년 초기의 인물들이 ‘통과의례’를 거쳐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내면에 중요한 변화가 드러난다.
성장소설의 대표작이 바로 내가 중학시절부터 애착을 지닌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중 『데미안』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어내려가다가 스쳐지나가듯 『데미안』이 언급되었을 때, 반갑기도 했으며 또한 유원에게도 『데미안』은 의미있는 작품이었구나, 아마 작가님에게도 그러했겠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나는 ‘성장’과 관련된 작품서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유년시절부터 20대 후반까지 애정을 지니고 있는『해리포터』 외에도,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같은 작품은 내 삶에 진정한 인생작으로 꼽을 수 있다. 백온유 작가님의 『유원』 사전서평단을 신청한 이유도 바로 이 작품이 성장소설이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이미 서른이 된 마당에 20대의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지만, 아직도 ‘성장’의 화두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나의 내면이, 내 깊은 곳 어딘가의 아이가 자연스럽게 나를 이 책으로 이끌어 주었다.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 같은 작품과 유사하게, 『유원』의 주인공인 유원도 언뜻 평범해 보이나 타인과 구별되는 자기서사를 지니고 있다. 이제 열일곱 살인 유원이 고작 다섯 살의 어린 아이였던 12년 전, 집에 불이났을 때 언니가 유원을 구하기 위해 11층 아래로 던진 덕에 길을 지나던 한 아저씨가 유원을 구한 덕에 유원은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열일곱이던 언니‘예정’은 동생을 구하고서 본인은 결국 불길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어느덧 언니와 같은 나이의 열일곱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유원의 뒤에는 늘 그 사건이 맴돌았다.
불은 순식간에 거실로 옮겨붙었다. 오래된 소파에, 장판, 벽지에 번져 거실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다. 나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후 함께 낮잠을 자다가 일어난 언니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방에서 나온 언니는 이미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불이 번진 거실을 보고 어쩔 줄 몰랐을 것이고 현관 쪽으로는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언니는 욕실로 들어가 온몸에 물을 뿌리고 이불에 물을 부어 축축하게 적셨다. 그리고 내 방 창문을 열어 베란다 쪽으로 넘어갔다. 거실 베란다와 얇은 합판으로 분리되어 있던 내 방의 베란다까지 불이 번지고 있었다. 그때쯤 먼 곳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지나가던 이웃이 연기를 보고 신고한 것이었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자 아파트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11층을 올려다보는 게 보였을 것이다. 언니는 수건을 흔들며 구조 요청을 했다. 사람들은 검게 치솟는 연기 속에서 고개를 내민 생존자를 보고 탄식했다. 불길이 아주, 아주 가까운 곳까지 덮쳐 오고 있었을 것이다.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31쪽.
특히 집에 불이났던 그 사건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유원이 성장한 이후에도 늘 유원이 12년 전 겪은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유원은 암묵적으로 ‘불쌍한 아이’이자,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유원의 삶에 ‘당위성’으로 작용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유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책임감’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아픔을,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슬퍼해야 한다는 논리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청소년기의 발달 단계에 맞게 또래 관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행복을 느끼고 자신의 소망과 열망을 통해 평생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정체성을 탐색하는 시기인데, 유원에게는 그러한 청소년기의 발달 단계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이 ‘의무’와 ‘책임’이라는 단어로 대치된다. 심지어 진로마저도 의사나 사회복지사의 길 등이 제시되는데, 타인을 돕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부과되는 것이다.
“얘. 너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너는.” 나는 얼어붙었다.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깨우친 것처럼. 나는 그 길로 도망쳤다. 할아버지는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그 눈빛과 목소리가 아침에도 저녁에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꿈속에서도 맴돌았다. 할아버지는 그 말 외에 덧붙인 것도 없었다. 그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나를 옭아맸다. 그 눈빛 안에, 네가 다른 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려고 하면 될 것 같냐는 말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83쪽.
중학교 때부터 월화수목금토일 내내 학원에 갔다. 엄마 아빠가 강요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자기 주도 학습이 불가능한 나 같은 애는 엄격한 학원에 가야 성적이 오른다는 것을 좀 일찍 스스로 깨달은 것뿐이었다.
나는 더 나태하게 살아도 됐을 것이다. 사고가 없었다면. 나태하게 살면서도 죄책감을 덜 느꼈을 것이다. 실수를 두세 번 반복해도 초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무언가에 쫓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100쪽.
이처럼 친구와의 우정속에서 행복하고 즐거워야 마땅할 청소년기에 유원에게 부과되는 의무와 책임감은 결국 유원을 고립되게 만들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예정의 오랜 친구인 ‘신아언니’인데, 기실 유원은 신아가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예정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며 무엇보다 유원에 대한 신아의 지나친 걱정과 과보호가 관계를 지배하다보니, 유원과 신아의 관계가 진정으로 건강한/바람직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심지어 유원은 아직까지도 사고 당시에 대한 반복적인 꿈을 꾸는 등 유년시절의 외상으로 인해 PTSD를 겪고 있기도 하다. 여러모로, 유원에게는 마땅히 필요한 상담이나 치료적 접근과 더불어 진정한 관계가 결여 되어있는 상태에 있었다.
이마 위로 불똥이 떨어졌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천장에서 나를 움켜쥐려는 불길이 돋아나고 있었다. 화염 너머로 참을 수 없는 비명이 지펴지고 있었다. 비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내 방에서 엄마 아빠가 잠든 방으로, 혹은 내 꿈에서 십이 년 전 나와 언니가 잠든 거실로 아무렇게나 옮겨붙는 불길을 나는 한 번도 멈춰 세우지 못했다.
아는 꿈이었다. 나만 빼고 모든 것을 재로 만들고서야 꺼지는 꿈.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114쪽.
특히 유원의 내면을 지배하는 가장 핵심 감정은 바로 ‘죄책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유원에게는 자신을 구하고 정작 본인은 숨지고 말았던 언니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자신을 구하려다 다리를 다친 ‘신씨 아저씨’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당연히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왔다. 그러나 자신을 구해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늘 무언가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신씨 아저씨의 모습이 유원에게는 불편하게 비추어진다.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했다.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196쪽.
작품 속에서 유원의 삶과 내면을 변화시켜주는 인물이 바로 ‘수현’인데, 수현은 학급 친구들에게 신뢰받는 친구이며 동시에 옥상 마스터키를 갖고 있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서글서글한 학생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또한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을 정도로 성실한 면면이 드러나는데, 수현과의 관계속에서 유원은 삶에서 최초로 ‘평범한 우정’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유원과 유원의 가족을 포함하여, 외상경험이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가 바로 이 ‘평범성’에 있을지 모른다. 너무도 평범치 않은 고통을 맞이했기에, 옆에서 건네주는 말 한 마디, 그저 함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평화로움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했다. 옥상에서 보는 노을은 아름다웠다. 너무 붉어서,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아서 넋을 잃게 만들었다. 만약 상처를 받아 취약해져 있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위로를 받거나, 혹은 이걸 봤으니 이제 그만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될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했다.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69-70쪽.
내 방에는 정말 별게 없었다. 자랑할 것이라고는 덮자마자 잠이 몰려오는 마법 같은 푹신한 극세사 이불, 정도. 수현은 많은 아이들의 방을 구경했겠지. 내 방은 평균은 될까. 그 이하일까. 다른 애들은 친구 방에서 뭘 하고 놀지. 커다란 앨범에 있는 유치원 졸업 사진 같은 걸 보면서 깔깔 웃나. 너는 이런 책을 읽고 컸구나. 우리 집에도 세계 문학 전집 있어. 너도 『데미안』 읽었니, 그러면서? 아니면 새로 나온 화장품을 꺼내 놓고 세상에 똑같은 색깔의 립은 없어. 이것저것 발라 보고, SNS에 올릴 사진을 찍거나.
나도 수현의 집을, 수현의 방을 보고 싶었다. 왠지 수현의 방에는 구경할 거리가 많을 것 같았다. 책상 위에는 어릴 때 사진,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이 잔뜩 있고, 서랍에는 반드시 초콜릿이나 사탕이, 책상 위는 조금 어지럽지만 수현의 흔적들이 가득할 것 같았다. 캘린더에는 친구 누구의 생일, 특별한 모임 날짜들이 체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94-95쪽.
주목할 만한 점은, 수현의 서사가 드러난 이후부터인데, 수현이 사실 유원을 구한 금정동의 호인이자 용감한 시민으로 평가받는 신의석씨의 딸이라는 점은 유원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수현과 유원이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작품 속에서 주요하게 다가온다.
전술한 바 있듯 사실 유원과는 대조적으로 학교 내에서 반장을 맡으며 학급 아이들의 신망을 받기도 하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등 그 어떤 구김살이나 그늘이 없어 보이는 인물인 수현에게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이 자리한다는 것은 작품 후반부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기능한다. 가정을 파괴하고, 수년이 넘게 유원의 가정에 기생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 그러나 한 생명을 구하기도 했으니 사실은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 등이 교차하는 수현의 내면은 열일곱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을 것이다. 결코 통합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온 그 과정은 길고 지난했다. 그러나 수현이 결국 아버지가 ‘원래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아버지의 부정적인 면을 수용하면서 자신은 그와는 ‘다른 삶’을 살 것이라고 유원에게 공언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인데, 독립적인 한 인격으로서, 아버지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당당한 수현의 모습은 유원의 내면에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Blos(1979)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이차적 개별화 과정 (secondary ndividuation process)’으로서, 유아기 시절 경험한 일차 분리-개별화 과정에서 나아가 부모와의 의존적 동일시에서 벗어나 심리적·정서적 독립을 이루는 데 발달 과제가 있는데, 수현은 이를 충분히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다.
“아빠가…… 해로운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야.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아빠의 행동에 이유를 찾아주게 되거든. 아빠도 아빠다운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라서 그런 거라고, 혹은 한 번도 여유를 갖고 살아 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살면서 누군가를 도와 본 게 처음이라, 은인이 되어 본 것도 처음이고 그런 식의 대접을 받아 본 것도 처음이라 거기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아빠를 가련한 사람으로 만들거든.”
수현의 노력이 가상했다.
“이제 알아. 아빠는 해로운 사람이야. 아빠는 이 세상에 해로워. 너한테도, 나한테도. 아빠는 변하지 않을 거야. 포기해야 돼. 나는 아빠랑 다르게 살 거야. 너도 내 노력을 우습게 보지 마.”
수현은 아빠의 비겁함, 구질구질함, 위선, 아빠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아빠를 아이 달래듯 달래 가며 격려하고, 다독이는 것, 아빠에게 또다시 실망하는 일련의 일들에 지쳐 있었다.
나는 수현에게 미안했다. 이런 것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는 더욱 더. 문득 수현이 꾸준히 해 온 봉사활동들이 떠올랐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빠 생각은 너보다 내가 더 많이 해 봤어. 궁극적인 질문은 이거지. 그래서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이럴 수 있는 걸까. 나는 왜 아빠의 다른 면은 보지 못한 걸까. 아빠는 왜 남들처럼 정직하게 살지 못하고, 누군가를 착취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 아빠 속이 궁금해 나도. 얼떨결에 널 구하고 영웅이 됐지. 아빠는 그날 널 구하지 않았던 게 아빠 인생을 위해서 더 나은 일이었을 수도 있어.”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182-183쪽.
아버지와는 다른, 고유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당당히 선언한 수현의 모습을 통해 유원의 내면에도 변화의 씨앗이 자리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구해 준 댓가로 지나치게 부모님께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아저씨에게 아저씨의 언행이 부담스러움을 용기있게 고백하는 한편, 신아언니와의 불건강한 관계를 직접 이야기하고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먼저 이야기하게 된다. 수현으로 인해, 유원은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 자신을 옭아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니 예정과 유원은 다른 인격체이며, 부당한 요구에는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유원의 내부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진솔성과 용기가 유원에게도 전이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그늘이, 그 불행한 사건이 ‘내 탓’, ‘내 잘못’이 아님을, 그것은 부당하다고 외칠 수 있게 되는 데는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아주는 신뢰로운 관계 안에서, 나를 위해 나서 주는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할 때 가능한 것임을 새삼 통찰하게 된다.
나는 나를 살린 우리 언니가 싫어.
나는 나를 구해 준 아저씨를 증오해.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124쪽.
“그때, 제가 너무 무거웠죠.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다리가 으스러진 거잖아요. 죄송해요. 제가 무거워서, 아저씨를 다치게 해서, 불행하게 해서.”
“너…….”
“그런데 아저씨가 지금 저한테 그래요.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195-196쪽.
“언니, 나는 율이가 좋아. 왜냐하면 내 지인 중에 우리 언니를 모르는 사람은 율이밖에 없으니까.” (중략)
“그러니까 이건, 내가 지금까지 마음 놓고 언니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뜻도 되는 거야. 나는 맨날 불안했어. 언니가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
- 백온유, 『유원』 가제본, 창비, 2020, 189쪽.
문득 세월호 유가족분들, 4.3 및 5.18 희생자의 가족분들 및 여타 사고와 국가적 문제의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모든 분들께‘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이 지점에서 ‘성장’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본다. 진정한 성장은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고 이를 직면하여,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데에 있지 않은가 싶다. 자신의 PTSD와 관련해 지나친 죄책감을 직면한 유원은 그 죄책감으로 인한 당위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인식하였으며 이제 불필요한 고통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즉 유원이 실존주의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진실한 개인’으로서 거듭나기 시작한 바, 이제는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용기있게 자신이 선택한 삶만을 지향하며, 유원이 그 자체의 빛깔을 드러내기를 진실로 바란다.
안녕하세요. 독립 북클러버 1기와 4기에 이어, 9기에도 함께하게 된 독서모임<청춘의 책탑>입니다어느덧 5월 31일인데, 우선 이번 리뷰를 쓰기 앞서 너무나 과분하겓 채널예스 5월호에 저희 모임의 인터뷰가 실리는 영광스런 기회를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려 펭수가 표지사진!! 이라 기뻤습니다.)
참, 이번 9기에는 멤버가 한 명 추가되었는데요, 본래 교육대학원에서 만난 친구들 셋이 함께 모임을 결성하고 참여해 왔는데, 다른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나 우정을 쌓아 온 모임장의 친한 친구가 새로 합류하면서, 91~94년생이 다 모여 완전한 90년대 초반생의 독서모임이 되기도 했고 모임에도 새로운 활력이 생겼답니다. 인원이 한명 추가된 것 만으로도 더욱 다채로운 의견들이 쏟아졌으며, '책'을 통한 관계의 이어짐의 의미를 재발견하였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매년 문학동네에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되고는 있지만 특히 올해 작품집은 SNS를 통해 여성서사로 더욱 많은 주목을 받은 만큼, 사회문제를 작품에 반영해낸 최근 문학의 서사가 어떻게 전개되나 궁금함과 흥미로움을 지니고 도서를 선정하게 되었답니다.
특히 이번 모임은 죽전역 인근에 소재한<제이플라워 카페>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여타의 작품들과는 달리, 단편선이라는 특징점이 있기도 했으나 모든 작품이 그 나름대로 의미있고 생각해 볼만한 게 많아서 , 여유를 지니고 모든 작품에 대해 천천히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이야기꽃을 피웠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모임 후기로 넘어가겠습니다!
1.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싶었던 이유와 책의 첫인상을 나누어 주세요.
- 사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매년 나오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어야겠다고 생각지도 못하다가 '여성서사'를 다루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쇼코의 미소>로 알려진 최은영 작가님과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알려진 장류진 작가님의 각각의 작품들을 이미 읽어왔기에 더더욱 해당 작가님들의 글이 궁금해졌습니다.
- 저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정말 좋아해서, 매년 읽어왔고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예년에 비해 여성서사가 더욱 넓은 지평과 인식으로 확대된 점이 눈에 띄었답니다. 사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는 대상의 의미가 딱히 크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길 작가님이 대상을 받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습니다. 장류진 작가님의 <연수>의 경우 창비에서 사전서평단으로 먼저 접하고 낭독회까지 다녀왔기 때문에 반가움이 들었고 다시 읽어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 집에 몇권의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이 있지만 미처 다 완독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아무래도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따로 있다보니 신진작가들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편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소수자의 서사를, 특히 현존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옮긴 좋은 문학이 있다는 데 대해 매우 기뻤고 동시에 신진 작가들의 작품에도 더욱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2.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의 각 단편에 대한 단평 (인상깊은 내용과 구절 중심으로)
1) 강화길, 음복(飮福)
- 작품을 다 읽고, 처음드는 느낌은 이건 '스릴러'라는 생각이 들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평소 스릴러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이건 정말 - 주인공을 따라 상황을 이해해야 이 작품이 진정한 스릴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인공이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한마디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사랑이란 뭘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씁니다.작가의 서사구성능력이 정말 탁월한 작품이었습니다.
- 뭐랄까, 생각을 많이하게 된 작품이고..... 많이 신박했어요. 계급을 깨부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오히려 현실적인데 그 때문에 더욱 소름돋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 다른 먼 곳이 아닌, 우리 집안의 바로 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어서 너무도 깊게 몰입되었어요. 사실 책 속에서 제일 답답한 건 고모도 , 할머니도 아니고 무심하기 그지없는 남성인데, 현실도 그렇거든요. 여성들에게만 너무나 많은 부담을 지우고 이걸 문제시하지 않는 현실이 답답했습니다.
- '네가 날 이해해야지.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줘'라는 구절이 가장 마음에 깊게 와 닿았어요. 사실 장녀라서 어머니에게 가장 유대되어 있고 그렇기에 어머니의 심리적 고충을 듣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기에 남동생이 몰라도 되는, 몰라서 편할 수 있는 그런 사실을 저는 많이 알고있고 심리적으로 결코 편할 수 없다는 사실.... 저뿐 아니라 많은 여성, 맏딸들이 겪는 고충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그때였을 거다. 처음으로 나는 고모가 짜증나지 않았다. 그 대화, 한 명은 계속 말을 빙빙 돌려가며 공격하고 다른 한 명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쾌활하게 웃는 그 기괴한 대화가 이들 사이에 아주 여러 번 반복되어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알아차렸던 것이다.
- 글쓰기에 대한 부분이 인상깊었어요. 사실 저는 인터넷에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쓰는데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SNS에도 회의적인 부분이 분명 있는데,글쓰는 행위를 통해 사유하고 표현하는 의미에 대해 이 작품을 통해 많이 곱씹어보게 되었습니다.
- 이 작품은 '용산 참사'의 주인공이 에둘러 쓴 글이잖아요. 트라우마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의 =용산참사에 대한 트라우마와 부채의식이 공존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용산참사 시절 고등학생이었기에 이 사건에 대해 깊게 알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예로 세월호를 생각해보면 , 우리 모두 '세월호 사건'을 언론을 통해 보고 들은 사람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공동의 아픔과 PTSD를 겪었잖아요. 주인공을 통해 그런 부분이 형상화되어있어서 감정적으로 많이 슬펐던 작품입니다.
- 무엇보다 여성들 간의 연대성을 단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이 인상깊었어요. 이미 여성으로서 어려운 길을 걸어보았기에 더욱 더 그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을 치르게 될 학생과 강사가 동일시되는 느낌이었달까요. 사실 TVN 드라마<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채송화 같은 인물이 특별해 보이며 이상향이 되는 것도 송화는 송화 그자체로 빛나는데, 여성으로서의 한계 따위 없는데 -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직도 많은 곳에서는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이 남아있지요.
- 앞으로의 현실에 대해 이 작품 속 강사님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고 회피하는 모습이 엿보였는데 그 점에서 무언가 씁쓸했어요.
3) 김봉곤, 그런 생활
- 퀴어문학을 너무 많이 접해서인가, 또 퀴어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 작가의 일기장을 읽은 느낌이었어요. 수필 같은 소설이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실 이 작품은 일상성과 특수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여겨지는데, 퀴어의 정체성-아웃팅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퀴어문학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어머니나 연인과의 관계는 우리 모두의 삶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다름이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 퀴어문학에 대해 그동안 선입견이나 편견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사람인데 퀴어라고 해서 그 관계까지 특별/특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저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4)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 가장 충격적인 동시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풍부한 자료를 통해 시각을 확대해 준 작품이었어요.
- 동생과의 대화가 인상에 많이 남아요. "내는 그냥 행복하고 싶더라. 언니야도 안 그렇나?" 어떤 선택을 하든 여성 혼자 부담감이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당연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 희진이 이야기한 '도덕적 우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뜻 어렵기도 하고... 많은 곱씹음이 필요하지만 마치 마이클 센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물었듯, 더 큰 선이 무엇인지 - 딜레마 상황은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 임신중지를 겪은 모든 여성이 동일하게 경험하리라 가정되는 비감은 그들에게 생명을 폐기시켰다는 자기 인식을 갖게 해 스스로를 비윤리적인 존재로 획일화하도록 만든다." (중략) "…… 임신중지가 언제나 예외없이 한 여성의 절실한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라는 고정관념은 그것이 항상 절박한 상황에서 절박하게 취해져야만 하는 조치처럼 여겨지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써내려갔습니다. "…… 이러한 논리 끝에 임신 중지가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로만 가정된다면 우리의 주체성은 지워질 것이며, 타인의 선의에 의해 구조받는 나약한 존재로만 재현될지도 모른다.
영화 <작은아씨들>이 개봉한 덕분에,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을 통해 함께 읽기로 했던, 『메이블 이야기』를 후순위로 잠시 미루고, 영화를 관람한 뒤 『작은 아씨들』을 읽고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특히 감사하게도 RHK 출판사에서 받은 종이책은 원작의 표지를 그대로 구현해 정말 1860년대 출간된 작은아씨들을 읽는 느낌이었고, 흡입력있는 서사 덕분에 금방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기실, 베스와 로런스 할아버지의 신뢰관계, 에이미의 스케이트 사건, 메그의 무도회, 브룩선생님의 장갑 이야기 , 베스의 성홍열 등 주요서사는 유년시절부터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던 능인출판사의 세계고전 만화책 덕분에(박종관 화백 作) 온전히 기억하고 있었으나, 어린이를 위한 만화책이나 동화책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베스의 죽음과 에이미와 로리의 결혼은 이번 영화와 책을 통해 새로이 접해 매우 놀랍고 마치 새로운 작품을 보는 것만 같았다.
기실 나는 유년시절부터 베스를 가장 좋아했다. 그러나 원작소설을 제대로 읽으며, 베스에 대한 애정에 더해 '조'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베스는 작품 곳곳에서 네 자매 중, 아니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선한 인물로 묘사된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부상 소식에 아버지를 돌보러 떠났을 때, 유일하게 훔멜 씨 가족을 돌보다 성홍열에 걸리기까지 한 정도로 이타적이었으며 로런스 할아버지의 선물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아마도 유년시절의 내가 베스와 동일시 했던 것은 '인정욕구'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베스처럼 내향적인 아이였으며 선생님들께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나는 당연히 베스가 지닌 선(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었던 것 같다. 아마도 교사를 꿈꾸게 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특히 베스와 로런스 할아버지의 신뢰로운 관계는 참으로 애틋하고 다정한데, 가족 외의 타인을 대하기를 어려워하는 베스가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로런스 씨의 애정어린 시선과 배려 덕분이었다. 나 또한 은사님들의 애정 속에 성장해 온 만큼 베스와 로런스 씨의 관계에 많은 이입이 되었다.
"난 매일 갔어. 하지만 아이가 아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훔멜 부인은 일하러 나가고 로트첸이 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있어. 내 생각엔 언니나 해나 아주머니가 가봐야 할 것 같아." 베스가 진지하게 말하자, 메그는 내일 가보겠다고 약속했다.
(중략)
메그와 조는 각자의 일에 다시 파묻혀 훔멜 씨네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에이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베스는 할 수 없이 조용히 일어나 두건을 두르고 불쌍한 아이들에게 가져다줄 여러 가지 물건을 바구니에 담은 뒤 참을성 있는 눈동자에 슬픔을 가득 담고서 차디찬 밖으로 나갔다.
"엄마, 로런스 할아버지께 실내화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제게 그토록 잘 대해 주시는데 저도 감사를 드려야겠어요. 달리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고요. 그래도 돼요?" (중략) 베스는 메그와 조와 여러 차례 진지한 논의를 거쳐 모양을 정하고 재료를 산 다음 실내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진한 보라색 바탕에 점잖으면서도 화사한 분위기의 삼색제비꽃 무늬를 보고 다들 아주 예쁘다며 한마디했다.
(중략)
"지금까지 많은 실내화를 신어보았지만, 이처럼 나에게 꼭 맞는 실내화는 이번이 처음이오." 조는 잠시 뜸을 들인 뒤 계속해서 읽었다. "삼색제비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오. 이 꽃들을 볼 때마다 이걸 준 친절한 사람이 생각날 거요. 신세를 갚고 싶어 그러니 '이 늙은이'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손녀딸의 물건을 아가씨께 보내는 걸 허락해 주구려. 진심 어린 감사와 축복을 보내며. 당신의 좋은 친구이자 충실한 하인, 제임스 로런스."
그러나 로런스씨가 너무나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는 바람에 할 말을 잊어버려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베스는 노인이 사랑하는 손녀딸을 잃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노인의 목에 팔을 두르고 키스를 했다. 자기 집 지붕이 날아가버렸다 해도 이보다 더 놀라진 않았겠지만, 노인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정말 그랬다! 노인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는 신뢰가 담뿍 담긴 키스에 감동한 나머지 체면을 모두 벗어던지고 베스를 번쩍 들어 자기 무릎에 앚혔다. 그러고는 주름살투성이 뺨을 베스의 분홍빛 뺨에 대고 비비며 손녀딸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그 순간 이후로 베스는 노인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노인의 무릎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처럼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감사하는 마음은 자존심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베스가 집으로 돌아갈 때 노인은 그녀의 집 앞까지 함께 걸어가 따스한 마음이 담긴 악수를 건넸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1부 내용에 이어 2부가 포함된 원작소설을 정독하면서, 마치가문의 둘째, '조'에게 깊은 애정이 더해졌다. 조에게는 다른 자매들과는 다른 '강인함'이 분명히 존재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스케이트 사건은 조의 원고를 불태운 에이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했음에도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화를 낸 자신을 자책하는가하면, 자신의 슬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위급한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머리칼을 자를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가족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특히 2부 결말부에서는 마치 대고모로부터 물려받은 저택을 소년들을 위한 학교로 활용하며 보살핌과 애정이 필요한 소년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은 만큼 '조'는 다른 어떤 자매들보다 가장 강인했으며 자신의 신념을 믿고 옳은 선택을 하면서, '성장하는 인물'이었다. 조가 완벽한 인물이 아닌 '성장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내게는 더욱 와 닿았다. 해리 포터가 처음부터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성장하는 인물'이었던 것처럼, '조' 역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자신이 걸어갈 길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인물이었다. 기실 성인기의 주요과제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믿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것인데, 이 점을 조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유년시절의 내가 베스와 같았다면, 이제는 조와 같이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다 내 고약한 성질 때문이에요!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돼요. 이제 됐다 싶으면 전보다 더 악화돼 있어요. 엄마! 어쩌면 좋아요, 난?"
불쌍한 조가 자포자기한 채 외쳤다.
"늘 주의하면서 기도하렴. 그리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거야. 혹시라도 네 결점을 극복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라."
마치 부인은 헝클어진 머리를 끌어당겨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한 뒤 축축한 뺨에 다정하게 키스를 했다.
"어디서 났니? 25달러나 되잖아! 조, 난 네가 경솔한 짓을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런 돈 아니에요. 이건 내가 정직하게 번 돈이에요. 구걸하거나 빌리거나 훔친 게 아니라고요. 내가 번 거예요. 내 걸 팔았을 뿐이니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조가 보닛을 벗자 다들 놀라서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풍성한 머리털이 짧게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글쎄, 난 정말 아빠를 위해 뭔가 해드리고 싶었어." 자매들은 조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탁 주위로 모여들었다. 한창 때의 젊은이들은 고통의 한가운데에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만큼이나 돈을 빌리는 게 싫었어. 그리고 마치 대고모님이 잔소리를 해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 9펜스를 빌려도 잔소리를 하실 분이니까. 게다가 메그 언니는 석 달 치 봉급을 집세로 내놓았는데 난 내 옷만 사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거든. 돈을 구할 수 있다면 코라도 베어 팔았을 거야."
"초 좀 치지 마, 테디. 물론 부자 학생도 받을 거야. 처음엔 그렇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일단 시작하고 나면 시험 삼아 사정이 딱한 아이 한두 명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야. 사실 부잣집 아이들도 가난한 집 아이들만큼 보살핌과 위로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하인들의 손에 내맡겨지거나 타고난 성향과 정반대의 길로 내몰리는 불행한 꼬마들이 한둘이 아니야. 정말 잔인한 일이지. 잘못된 교육을 받거나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해 비뚤어진 아이들도 있고, 엄마를 잃은 아이들도 있어. 게다가 아무 문제 없는 아이들도 사춘기 시절은 겪고 넘어가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인내와 배려가 가장 많이 필요할 때가 바로 이 시기거든. 사람들은 이 시기 아이들을 비웃고, 다그치고,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려고 하면서 예쁜 아이에서 하루아침에 훌륭한 청년으로 바뀌질 바라지. 자존심이 있어서 불평은 잘 안 하지만 애들도 다 느껴. (후략)"
한편 전체적인 서사 면에서, 영화만으로는 로리와 에이미의 결혼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에이미가 그저 얄미워보였고 타이밍을 놓친 조가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원작소설을 읽으며 로리와 에이미, 그리고 조와 프리드리히가 이어진 것에 대한 감정선이나 상황이 영화에 비해 더욱 이해되었는데, 조에게 로리는 그저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함께 보내 온 '친구',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반면, 에이미에게 로리는 '동경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조가 프리드리히를 대하는 감정도 그가 지닌 '지식'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출발했던 것으로 여겨졌다.
메그와 브룩, 조와 프리드리히, 에이미와 로리의 애정과 결혼관계를 통해 작품에 드러나는 당시 여성에 대한 관점이나 결혼에 대한 인식은 일반적으로 여성이 '부유한 남성'과 결혼해야 출세한다는 인식들이 작품 곳곳에 깔려 있다. 그러나 세 자매 모두 '돈'이나 여타 물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인격, 지식, 신뢰로운 관계 등을 더욱 중시했으며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이 네 자매의 선택을 통해 더욱 중요한 가치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외에도 천로역정 놀이 (순례자 놀이) 등의 챕터에서 드러나듯이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경에 따라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며 네 자매 모두가 각자의 짐이 있고 그 짐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묘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바로 이 점이 작은아씨들이 진정한 '고전'이라고 불리는 이유라 여겨진다. 자매들의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 그 나이대 청소년/청년이라면 한번쯤 지녔을 고민을 다루고, 각자 짊어진 짐을 자신의 방식대로 극복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메그는 당대 사회상에서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지는 않았지만 책임감을 지니고 여 가정교사로 일했으며, 조는 마치 대고모를 보살피는 등 그저 삶을 충실히 살아냈기 때문이다.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과 선택들 안에서 깊은 가치와 깨달음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소소하지만 거대한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작은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 자신이 실제로 네 자매 중 장녀였고, 둘째였던 동생 리지를 떠내보내는 상실을 겪어낸 바 있으며 실제로 '조'와 같이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젊은 시절 신문과 잡지에 단편소설을 싣기도 했고, 간호사로 종군한 경험이 있는 등 작가의 삶이 작품 곳곳에 여러모로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자신의 삶을 풀어낸 여러 자전적 소설(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 루시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 등)들과 마찬가지로 <작은아씨들> 또한 독자들에게 있어 작가의 자기고백을 통한 강렬한 몰입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160년의 세월을 넘은 고전소설 <작은아씨들>의 강렬한 힘은 작가의 경험을 통한 '진정성'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확신한다. 최근에 인상깊게 관람하여 인생작이 된 뮤지컬 <Story Of My Life>에서도 이 점이 드러나는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한 갈래들이 하나하나 모두 소중히 들여댜보아야 할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며, 이 점이 바로 어느 시대의 어느 누가 읽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는 중요한 단초라고 여긴다.
유년시절에는 네 자매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행복과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고 성인이 된 지금에는 실제적인 '선택'과 '책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금 정리하게 해 준 책 <작은아씨들>에 깊은 감사함과 애정을 느끼며, 평생 옆에 두고 삶의 순간순간마다 함께하고 싶은 이야기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안녕하세요. 독립 북클러버 1기에 이어 4기에 참여중인 독서모임 <청춘의 책탑>입니다. 이번 4기 3회차 모임은 2월 19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예정되어 있던 도서 <메이블 이야기>를 잠시 미루고.... 최근 개봉한 <작은아씨들> 영화를 본 뒤 , 루이자 메이 올콧의 명저인 고전소설 <작은아씨들, Little Women>원작을 읽게 되었습니다. 영화관람 후 원작을 읽으니 작품 내용과 더불어 소설의 영화화에 대해서 독서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yes 북클럽에도 등재되어 있는 윌북출판사의 작품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특별히 이번 모임은 삼성역 인근 카페 <도라도>에서 진행되었는데요, 독서 모임 후 모임원 셋이 함께 올해로 10주년이 된 공연을 함께 보기로 하여 공연장 백암아트홀 인근 카페에서 모임을 진행하였답니다. 독서모임을 통해 함께 읽게 된 원작소설 <작은아씨들>과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사이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여 소설과 뮤지컬 사이 서사적 공통성을 발견하기도 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모임 후기로 넘어가겠습니다!
1. 『작은아씨들』을 읽고 싶었던 이유와 책의 첫인상을 나누어 주세요.
- 유년시절부터 줄곧 동화책과 만화책으로 반복해서 읽어 온 작품인데다 영화로 개봉하는 만큼 고전작품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었어요. 네 자매 각각의 개성있는 모습과 자매들 간의 사랑, 가족 간의 따뜻함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는데 특별히 영화에서 어린 시절 읽은 작품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던 - 베스의 죽음과 결말부 에이미의와 로리의 사랑이 등장하는 만큼 원작 소설을 읽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출판사를 막론하고 새로 출간 및 번역된 <작은아씨들> 책의 표지가 너무 아름다웠답니다.
- 전부터 걸클래식 세트로 출간된 윌북 출판사의 고전 명저들이 너무도 궁금했는데, 무엇보다 읽어내려가며 번역이 부드러웠고, 표지의 아름다움에 놀랐습니다. 책을 읽으며 추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 자매들이 있는 만큼 공감되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답니다.
- 책 표지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어린 시절 읽었던 작품이들이다보니 원작의 내용들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서 영화 개봉과 맞물려 기대감을 지니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2. 『작은아씨들』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과 구절을 소개해 주세요.
- 조가 로리를 거절하는 것을 후회하는 장면이 마음에 남았어요. 조가 너무나 외롭고도 쓸쓸해 보였고 옆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해보였는데, 유사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어 더욱 공감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조가 진즉에 자신에게 조금만 더 솔직했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까웠어요.
- 베스와 로런스 씨의 따뜻하고 애정어린 관계가 유년시절에도, 그리고 지금도 참 마음에 남는 서사인 것 같아요. 쑥스럼 많지만 선하디 선한 베스를 위해 피아노를 선물한 로런스 할아버지의 마음은 죽은 손녀를 그리워하는 따뜻한 부성으로 느껴져 애틋했고 그래서인지 계단에 앉아서 베스가 피아노치는 선율을 조용히 감상하던 로런스 할아버지의 모습이 잔상에 많이 남네요. 피아노를 칠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한 보답으로 직접 보랏빛 실내화를 만들어 로런스 할아버지께 선물하는 베스의 모습에서도 선한 마음과, 신뢰로운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생 수많은 실내화를 신어봤지만 네가 준 실내화만큼 발에 꼭 맞는 건 없었단다. 조는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마음의 평화'라고도 부르는 팬지는 내가 좋아하는 꽃이다. 실내화를 볼 때마다 이걸 만들어 준 사람이 생각나겠어. 이 빚을 갚고 싶구나. 네가 '노신사'의 호의를 받아주리라 믿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어린 손녀 것이었던 피아노를 너에게 보낸다. 많이 고맙고, 행운을 빈다.
네게 고마워하는, 충성스러운 벗 제임스 로런스
-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아씨들』, 윌북, 2019, 134-135쪽.
-메그가 파티장에서 자기를 속이고 데이지라는 가명을 쓰면서 허영을 채우지만 로리를 통해 과오를 후회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메기가 현실에 대해 답답해하는 모습이 충분히 공감되었거든요. 가난에 답답해하며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메그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청소년들과, 아니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분별없이 굴었어. 그냥 내 옷을 입을걸. 그랬으면 다른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하지도 않았을 테고, 나도 이렇게 불편하고 창피하지는 않았을 텐데."
(중략)
"무례했다면 용서해줘. 춤출래?"
"춤추고 싶지도 않으면서 이러지 않아도 돼." 메그는 계속 토라진 모습을 지으려 했지만, 이미 화는 풀린 뒤였다. "아니, 춤추고 싶어 죽겠어. 이리 나와. 내가 잘 맞춰줄게. 누나 옷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누나는 여전히 멋진 사람이니까." 로리는 말로는 숭배하는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아씨들』, 윌북, 2019,190-191쪽.
- 조가 머리를 자르고 우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강인해 보이는 조가 그 나이대 - 15세 소녀의 감성을 지니고 귀엽고도 대견해 보였답니다. 사실 10대 소녀에게는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그 힘들고 슬픈 마음을 가족한테 내비치지 않다가 끝내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에..조의 따뜻함과 강인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답니다.
"처음부터 머리카락을 팔려고 한 건 아니에요. 뭐든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걸었어요. 잘나가는 가게에 드어가 뭐라도 훔쳐서 팔까 싶은 마음이었죠. 그런데 어느 이발소 앞을 지나가면서 진열장을 봤더니, 머리카락들이 놓여있고 가격표가 붙어 있더라고요. 제 머리보다 길지만 숱은 적은 검은 머리카락이 40달러나 하는 거예요. 나도 머리카락을 팔아서 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래서 이발소 안으로 들어가 머리카락을 사시겠냐고, 얼마 쳐줄 수 있냐고 물었어요." 언니는 어쩌면 그렇게 용감할까. 베스는 놀라워하며 중얼거렸다.
(중략)
꼼짝 않고 누워 있기에 잠든 줄 알았던 조가 소리 죽여 흐느껴 울자, 메그는 손을 뻗어 눈물에 젖은 조의 뺨을 쓰다듬었다. "조, 왜 그래? 아버지가 걱정돼서 그래?" "아니, 지금은 아니야." "그럼 무슨 일이야?" "내…… 내 머리카락!" 가여운 조는 더 참지 못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전혀 우습게 여겨지는 상황이 아니라서 메그는 괴로워하는 조를 부드럽게 달래며 입을 맞췄다. "후회하는 건 아니야." 조는 끅끅 울며 말했다. "언제든 이런 상황에 처하면 난 똑같이 행동할 거야. 이렇게 바보처럼 우는 건, 내 안에 허영심과 이기적 마음이 남아 있어서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이제 다 울었어. 언니가 잠든 줄 알고, 아름다웠던 내 머리카락을 잠깐 애도한 것뿐이야. 언니는 왜 아직 안 자?"
-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아씨들』, 윌북, 2019, 328-332쪽.
3. 『작은아씨들』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호감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 맏이인 메그가 욕심이 많은 부분이 저와 닮았다고 생각해 가장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메그는 이상과 현실을 오가는 인물인데, 맏이로서 동생들을 챙기고 가정교사 일을 하며 독립적으로 검소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지만,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는 인간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흔들리는 메그의 모습에 많은 공감이 되었답니다.
- 저는 유년시절에는 선한 베스에게 가장 많이 공감했어요. 다른 그 어느 가치보다, 선함과 성실함을 유년시절부터 가장 중시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베스의 선함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이미 이야기했고 책에도 충분히 묘사되어 있는데, 저는 베스처럼...학창시절부터 줄곧 '모범생' 같은 삶을 지향해왔고 그래서 선생님들께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 교사를 꿈꾸기 시작한 것도 이런 요인인 듯 하고요. 다만 이번에 영화의 영향으로,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인 조에게 참으로 많은 눈길과 마음이 갔어요. 마치대고모의 수발을 다 들고서도 막내동생 에이미에게 유럽행을 양보해야만 했고, 사랑하는 동생 베스의 죽음을 아프게 겪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자기 삶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던 조의 모습이..둘째로서 막내와 첫째사이에서 분명히 아쉽고 불만스러운 점도 있었을텐데.. 이를 내색하지 않은 조의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저는 베스와 조를 네 자매 중 사랑하는 아이로 생각하고 있어요. 과거의 제가, 지금까지의 제가 베스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조로 살아가고 싶네요.
4. 『작은아씨들』이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고전인 이유,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 <작은 아씨들> 은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자전적 소설이에요. 작가 본인이 네 자매였고, 실제로 바로 아래 동생을 떠내보낸 적이 있어요. 작가 본인의 삶과 경험에서 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인데, 작가 헤르만 헤세도 자전적 소설인 <수레바퀴 아래서>를 집필했고, 황석영 작가의 <몰개월의 새>도 작가의 전쟁 체험을 통해 나온 작품이었고...저는 <작은 아씨들>의 힘 또한 이러한 자전적 성격에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고백의 서사는 독자들에게 '공감'이라는 강력한 힘을 주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도 이러한 부분이 분명히 드러나지요.
이야길 적어 아는 걸 써 둘러봐 우리의 평생의 이야기 이젠 숨 불어넣어줘 우리 이야기 ‘ 우리 이야기 살아나게 살아나게 우리의 수많은 기억과 추억에 새 생명을 주는 거야 수천의 순간
- 뮤지컬 <Story of My Life> OST 'Angle in the snow (눈속의 천사들)' 中
- 고전은 고전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거창하지 않은 소소함이 매력인 작품인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그 모습이 네 자매들한테 그대로 닮겨 있고, 사랑의 감정과 자매들의 희노애락을 함께 겪을 수 있어요. 시대를 넘어 관통하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작품이에요.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함께 관람한 뮤지컬 <스토리 오브마이 라이프>에 드러나지요.
천 팔백 칠십육년 자동차도 없고 라디오나 티비 영화 다 없던 때였죠 또 지금은 없는 병들도 많은 때였는데 그 때 누가 쓴 이야기를 우린 아직까지 읽어요
천 팔백 칠십육년 화장실도 없었고 또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랐었대요 매일매일 새로운 과학 기술이 나와도 그 옛날에 쓰여진 글이 살아 있어요 난 책은 그저 글씨뿐이라고 생각했죠 근데 이 책을 읽을 땐 톰 소여가 보여 한번 나타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아 긴 세월을 넘어 영원토록 남아있어 언젠간 이런 얘길 쓰는 게 내 꿈이죠
- 뮤지컬 <Story Of My Life> OST '1876' 中
-여성 인권에 대한 시각이 작품 곳곳에 드러나 있었습니다. 특히 에이미의 프레드 본과의 결혼을 고민하는 모습이나, 마치 대고모의 결혼에 대한 시각, 메그의 허영심의 원인 등에 여성의 결혼에 대한시각이 잘 그려져 있었는데,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이슈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있었습니다.
『작은아씨들』이 그저 그런 소녀 소설에 그치지 않고 미국 여성 문학의 원류로 대접받는 것도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이러한 성숙의 힘 때문이리라. 메그, 조, 베스, 에이미……, 네 자매 중 누구를 모델로 삼아도 읽는 이들은 타인의 시선보다 내 안의 힘을 더 소중히 여기는 강인한 어른으로 무르익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150여년 간 이 책이 변함없이 우리들의 사랑을 받는 까닭이리라.
- 루이자 메이 올콧, 추천의 글, 『작은아씨들』, 윌북, 2019,13쪽.
이번 <청춘의 책탑> 6회차 모임은 Yes24 독립 북클러버 4기의 마지막 모임이었습니다. 물론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은 지속될 것이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yes24 독립 북클러버 활동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늘 많은 도움 주시는 yes24 서점과 북클럽 관리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 기수를 통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사람들을 챙긴다는 건 힘든 일이다. 사실 감정이입이란 게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피곤할 수밖에 없다. 감정이입을 하려면 모든 사람의 삶도 끊임없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모든 걸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워지더라도 정지 버튼을 누를 방법이 없지만 생각해보면 남들도 마찬가지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245쪽.
지난 2018년 4월, 나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신간 <배어타운>을 그 누구보다 먼저 접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다산북스의 <베어타운> 신간 서평단에 참여해 먼저 가제본 도서를 접하고 서평을 남겼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베어타운>이라는 작품이 내게 너무나 완벽한 명작이었으니까. 마치 완벽하고 깔끔한 결말이었던 토이스토리3에 이어 2019년에 토이스토리4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와 당신들>은 서평단에 참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다가 출간일이 조금 지난 후에야 소식을 접하고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상에 치여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베어타운>의 뒷야이가를 담고있는 이 책의 서사가 너무나 기대되어 언제 읽을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다가 이번 독서모임을 통해 읽게 되었다.
<우리와 당신들> 책을 완독한 후, 베어타운을 읽었던 당시의 서평을 조금 살펴보았다. <베어타운>에서도 그러했듯 나는 <우리와 당신들>의 강점 또한 인물들의 서사가 충분히 제시된 점이라 여긴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둘러싼 문제가 복잡해지는 이유도 우리가 대부분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407쪽.
작품 속 위 문장에 정말 많은 공감이 되었던 것이, 나는 처음 우리와 당신들을 읽으며 '그 일당'을 악인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티무 리니우스를 둘러싼 그 일당, 그리고 그의 동생 비다르. 그들이 더욱 자세히 소개되기 전만해도 베어타운의 분위기를 흐리는 악역이겠거니, 페테르의 구단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겠거니 생각했지만 이러한 나의 오해가 부끄럽게도, 티무와 비다르를 포함한 '그 일당'이라고 불리는 인물들 모두 그저 베어타운을, 그리고 베어타운의 하키구단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일 뿐이었다. 특히 비다르에 대해선 폭력적인 아이를 어떻게 골키퍼로 영입할 수 있는지, 사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경악했는데 뒷부분에 등장한 티무와 비다르 - 리니우스 형제-의 서사를 보면서 나의 짧은 생각에 많은 반성을 하기도 했다. 동전에도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것처럼 완벽히 좋은 사람도, 완벽히 나쁜 사람도 없고 사람은 누구나 좋은 모습과 나쁜 모습 - '선과 악'이 그 내면에 공존하고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악한 모습만으로 쉽게 낙인을 찍고 있었다. 프레드릭 베크만은 작품 내내 계속 이 지점을 경계하게 한다. 리니우스 형제가 '그 일당'에 속해있고 폭력을 쉽게 행사할지언정 그들은 지켜야 할 어머니가 있으며 나보다도 더 아껴야만 하는 형제가 있다.
티무 리니우스는 지금도 어머니와 함께 산다. 경찰에서는 그가 불법적인 수입으로 자기 소유의 집을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추측하고 그는 다들 그렇게 믿도록 내버려둔다. 진짜 이유는 어머니를 두고 혼자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숫자를 셀 사람이 필요하다. (중략) 리니우스 형제를 두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이 학교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과목은 수학이었다. 그들은 평생 숫자를 세며 지내왔다. 화장실에 있는 벽에 약이 몇 알 남았나, 엄마가 몇 시간째 자고 있나. 비다르가 체포되어 끌려갔을 때 그 임무를 티무 혼자 떠맡게 됐다. 막내아들이 교화 시설에 수감되자 그들의 어머니는 더 오래, 더 깊게 잠만 자고 싶어 했기 때문에 숫자를 세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비다르가 어떤 짓을 저지르더라도 그녀에게는 항상 어린 꼬맹이였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30-331쪽.
질투심에 눈이 멀어보였던 헤드의 선수 빌리암 뤼트도, 심지어는 정말이지 가장 옹호하기 힘든 인물로서 마야에게 성폭행을 저지르는 범죄를 저지른 케빈 에르달도, 모두 악해보이는 모습 이면에 자기 내면에 고통을 겪고 있었고 각각 고유한 서사가 존재했다. 겉으로는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인물들 각기 나름의 서사가 하나하나 등장하면서 <우리와 당신들>이라는 이 소설은 갈수록 더욱 풍부해졌다고 여긴다.
특히 모든 아이들의 공통점이, 그들이 아무리 폭력을 저지르고 악한 행동을 할 지언정 그들이 최악의 극단으로 빠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사랑하는 '누군가'가 자리했다는 점이다. 심리학적 용어로 이를 '인적 자원'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 모두에게는 각기 나름의 인적자원이 존재했다.
벤이가 폭력적 성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큰 누나인 아드리를 포함해 누나들과 어머니의 영향이었고, 벤이는 그들의 사랑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내가 이겨. 왜냐하면 불공평한 싸움이거든. 벤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니까.”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141쪽.
마야와 레오가 그들의 고통과 성장통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좌절하지 않은 것은 늘 그들을 사랑하고 바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페테르와 미라'라는 부모님에 더해 그들이 나쁜 방향으로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수네, 라모나, 예아네테, 사켈 같은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제 열여섯 살이다. 그녀의 아빠는 그녀의 방문 앞에 서 있지만 너무 소심해서 문을 두드리지도 못한다. 그는 어렸을 때 그녀를 말랭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하키를 절대 좋아한 적이 없었기에 그녀가 기타와 사랑에 빠지자 차고에서 같이 연주를 할 수 있게 그가 드럼을 배웠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27쪽.
티무, 비다르, 스니칸, 스핀델이 소속된 '그 일당'은 각기 검은 재킷을 입은 그 일당에 소속된 그들의 사랑하는 형제들을 지켜내야 할 책임과 의무, 신뢰와 의리가 존재했고 그들이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인 스탠딩석을 함께 지켜내야만 했다.
아나에게는 비록 음주에 쉽게 빠지고 폭력적 행동을 보일때가 많은 - 나쁜 면을 보일 때가 많은 - 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그 내면에 선한 면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지켜야 할 아버지가 있었다.
"너하고 나는 남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잖니."
(중략)
그녀는 항상 아빠를 사랑했다. 아빠가 우울해할 때도 그랬다. 어쩌면 그는 속으로는 항상 우울했을지 모른다. 엄마가 떠나서 그가 우울해진 건지 아니면 그가 우울해해서 엄마가 떠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가슴 한가운데 우울을 담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부엌에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며 눈물을 흘렸고 아나는 그런 그가 안쓰러웠다. 술에 취했을 때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녀는 자신에게 좋은 아빠와 나쁜 아빠, 이렇게 두 명의 아빠가 있다고 여기고, 나쁜 아빠가 외출하면 다음날 아침에 좋은 아빠가 그 몸을 온전하게 쓸 수 있도록 다치지 않게 관리하는 걸 그녀의 임무로 삼았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75-376쪽.
보보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고, 아맛에게는 어머니와 그의 친구들이 있었다. 특히 아맛은 정말 세상 그 어디와도 바꿀 수 없는 친구들을 두었다는 점에서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할로출신이라는 열등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친구들..
페테르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과 멘토 수네와 라모나, 그리고 절친한 친구 프락이 있었다.
심지어는 성폭행을 저지른 케빈에게도 범죄자가 된 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마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라모나는 이곳을 들락거린 상처받기 쉬운 영혼들을 보았다. 새로 출발한 사람도 있고 주저앉은 사람도 이다. 일이 잘 풀린 사람도 있고 알란 오비크처럼 숲속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다. 라모나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기에 일이 잘 풀리더라도 뛸 듯이 기뻐하지 않고 일이 안 풀리더라도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금 같은 가을에 하키단을 두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기가 얼마나 쉬운지도 안다. 스포츠는 현실이 아니고 현실이 지옥 같으면 동화 같은 이야기가 필요해진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모든 게 좋은 쪽으로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30-331쪽.
그들의 하키팀에서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라고, 혹은 너무나 폭력적인 미친 아이라고 다양한 이유로 학교나 스포츠팀에서 낙인찍어지고 배제된 아이들이언정 그들에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던져서라도 지켜내야 할 만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그들은 쉽게 삶을 내던지거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벤이가 아나로 인해 그의 성 정체성이 액팅아웃 되는 끔찍한 사건을 겪고서도 끝까지 A팀 주장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켜야 할 가족들과 베어타운 하키팀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 때문이었다.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유롭지 않지, 벤이. 네가 두려워하는 이유가 그거야."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289쪽.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겠어?"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206쪽.
결국 이 작품의 중요한 두 키워드가 있다면 '책임감'과 '사랑'(우정, 신뢰, 믿음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랑.) 이라고 여긴다. 케빈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인 마야에 대한 성폭행은 벤이와 마야 모두에게 절대 용서받을 수 행위인 반면, 벤이의 성 정체성을 액팅 아웃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아나가 용서받을 수 있었던 점은 바로 케빈은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도, 주변인들에 대한 사랑도 보여주지 않았던 반면(실제로 그는 그의 친구라고 여겼던 벤이에게는 용서를 구했을지언정, 성폭행 피해 당사자인 마야에게는 용서를 구하지 않앗다.) 아나는 벤이와 마야에 대한 죄책감을 온몸과 마음으로 표현했고, 그들에게 전달했다. 그 누구보다 아나 스스로가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맞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다했기에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티무에게도 '그 일당' 형제들을 반드시 지켜내야한다는 책임감과 사랑이 있었기에 폭력을 불사했던 것이고, 벤이가 소설의 결말부에 이를 때 시합에서 그 일당들이 헤드 응원단에게 행하고자 했던 폭력을 막아서며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 것도 벤이의 팀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과 사랑 때문이었다.
작중에서 보보가 동생들에게 읽어주는 책으로 '해리포터'가 계속 언급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해리포터와 볼드모트(톰 마볼로 리들)의 삶이 매우 유사하면서도(고아로 유년기를 보낸 후, 뒤늦게 마법세계를 알게 된 점 등) 그들의 인격과 가치는 매우 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해리 포터는 부모님의 희생(사랑)이 뒷받침 되었으며 친구들과의 우정을 통해 '사랑할 줄 아는 마법사'였으나, 볼드모트는 그 태생 자체가 사랑의 묘약(인위적인 사랑)에 의해 태어났으며 끝까지 그 누구도 사랑할 줄 모르는 점에서 두 인물의 삶이 극과 극으로 달랐던 것을 고려한다면 왜 이 작품에 그토록 해리포터가 언급되는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다음번에 어떤 아이가 자기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렇게 반문해야지. '그래서 뭐?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지 않나?' 그러면 어느 날 동성애 하키 선수와 여자 코치가 없어질지 몰라. 그냥 하키 선수와 코치만 남을지 몰라."
"이 사회가 그렇게 간단치 않으니까 그렇죠." 페테르가 얘기한다.
"이 사회? 우리가 바로 사회잖아!" 수네가 대꾸한다.
(중략)
"나는 한심한 늙은이다, 페테르. 나는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잘 몰라. 하지만 벤야민은 오래전부터 아이스링크 밖에서 수많은 사고를 쳤지. 싸움을 벌이고 약에 취하고 또 뭐가 있을지 아무도 몰라. 하지만 워낙 훌륭한 선수라 너도 그렇고 다들 매번 이렇게 얘기했잖아. '그건 하키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그런데 왜 이건 하키하고 상관이 있어야 하니? 그 아이 마음대로 살게 내버려둬. 간판이 되도록 강요하지 말고. 우리가 그 아이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불편하다면 문제가 있는 쪽은 그 아이가 아니라 우리야!"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410-411쪽.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사랑할 줄 모르는, 그 무엇도 사랑할 줄 모르며 사랑받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지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차별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그의 성 정체성이 어떻건, 사회적 배경이나 출신지역이 어떻건 (할로 출신이든, 베어타운 출신이든, 헤드 출신이든 실력만 있으면 그만 아닌가!) , 여자 코치이건, 남자 코치이건, 일부 요소들이 결코 그들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마치 수학을 좀 못 한다고 해서 공부를 전혀 못하는 게 아닌 것처럼.
(학부 시절 존경하는 심리학 교수님께 들은 내용이었던 것 같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단점이나 결핍은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니지만 나의 일부인 거라고.)
여러 사회적 이슈와 인간 내면과 본성에 대한 문제,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어색하지 않게, 아니 심지어 문학작품 - 소설이라는 매체에 너무나 잘 녹여 인간 내면과 감정, 사회, 개개인의 역할까지 다룬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 이 두 작품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하지만, 프레드릭 베크만은 그의 작품을 오래, 많이 보고싶은 작가 중 한명으로 남는다.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되는 바이며 '차별'이라는 이슈나 '인권감수성'에 관심있는 분들(독자들), '청소년', 청소년과 관련있는 어른들' , 정치인 등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안녕하세요. 독립 북클러버 1기에 이어 4기에 참여중인 독서모임 <청춘의 책탑>입니다. 이번 4기 2회차 모임은 어제, 1월 30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함께 해외연수를 다녀왔는데 - 여행 중에 함께 독서모임을 하려했으나 빡빡한 패키지 일정에 실패하고 ㅠㅠ - 한국에 돌아와 여독을 푼 후 다시한 번책의 내용을 정리한 뒤, 독서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번 책은 yes24 북클럽에도 포함되어 있는 도서로,
프레드릭 베크만의 책 『베어타운』과 베어타운의 후속작 『우리와 당신들』을 읽고 독서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한 마을을 둘러싼 사건들과 그 사건 이면에 자리하는 여러 인물들의 내면, 그리고 그 상황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과 문제의 해결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이슈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광교엘리웨이에 있는 오상진 아나운서의 책방 , <책 발전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지난해 독서모임에서도 방문했던 곳이지만 당시 호수공원의 야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 했고 책 내음 가득한 서점에서 다시한 번 독서모임을 하고싶어 모임장소를 정했답니다. 달달한 음료를 마시며 좋은 친구들과 좋은 책을 주제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이번 모임도 여느때와 같이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독서모임을 마친 후 함께 식사를 하고 호수공원을 야경을 보며 한 산책을 통해 우정이 한결 더 깊어진 하루였답니다.
그럼 사설은 생략하고 이제 본격적인 독서모임 후기로 들어가보겠습니다.
1. 『베어타운』& 『우리와 당신들』을 읽고 싶었던 이유와 책의 첫인상을 나누어 주세요.
- 2018년, <베어타운>이 공식 출간되기 전, 따끈따끈한 가제본 도서를 먼저 받아 읽고 서평을 작성한 서평단 중 한 명이었답니다. 그 때 베어타운을 너무 즐겁고 의미있게 읽어 인생책이었는데 그 뒤 작년 초에 나왔던 후속작 <우리와 당신들>을 출간 뒤 뒤늦게 출간소식을 접하고 구매했는데 ...... 너무 읽고 싶은 책이었음에도 삶이 바빠 사놓고 읽지 못하는 책 중에 한권이었어요. 뒤편 내용이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논의할 내용이 많을 것 같아 함께 읽을 도서로 추천했는데, 이번에 <우리와 당신들>을 읽으면서 <베어타운> 때보다 더 다양한 인물들의 면면을 그려주어 좋았어요. 누구하나 사연 없는 인물이 없고,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없다는 점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잘 그려낸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사실 프레드릭 베크만의 <오베라는 남자>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먼저 읽었고 앞에 책들을 읽었기 때문에 전작과 유사하겠다는 생각에 사실 작품에 큰 기대가 없었어요. 널리 알려진 <오베라는 남자>도 삶에 크게 남은 책은 아니었는데, 사실 이 책 -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 -을 읽으면서 작가가 몇 년 사이에 깊이가 생겼고 트렌드–시류-에 맞춰서 많이 변해가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소수자(동성애자나 성폭행 피해자)들에 대한 인터넷 커뮤니티, 최근 악플로 인한 연예인들의 자살 문제 등 여러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에요.
- 일단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 모두 분량이 꽤 되는 작품이다보니 처음에는 너무 압도되어, 언제 다 읽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도 베어타운은 술술 읽혔으나 ‘우리와 당신들’은 좀 걸리는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복선들이 사실 큰 사건이 아닌데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어요. 작가가 블로그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들어 작가의 원래 문체인 것도같고 다음 편을 읽게 하기 위한 장치인 것 같지만 문장들이 읽기에는 불편했던 것 같아요.
2. 『베어타운』&『우리와 당신들』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과 구절을 소개해 주세요.
사람들은 성폭행을 이야기할 때 항상 과거시제를 쓴다. 그녀가 피해자 ‘였다’고 한다. 그녀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일을 겪은 게 아니라 지금도 겪고 있다. 그녀는 성폭행을 당한 게 아니라 지금도 당하고 있다. 케빈에게는 몇분 만에 끝난 일이었겠지만 그녀에게는 끝나지 않는 일이다. 매일 밤마다 그 조깅 트랙이 꿈속에 등장할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매번 가서 그를 죽인다. 그러나 눈을 뜨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쥐고 입속에 비명을 머금고 있다.
불안. 그것은 보이지 않는 지배자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64쪽.
- 마야나 벤이와 같은 피해자들에게는 그들이 받은 충격과 아픔이 늘 현재진행형인데, 우리 사회를 포함한 많은 사회에서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늘 과거로 처리한다. 과거의 고통이 아니며 여전히 그 고통은 진행중이고 결코 완전히 제거될 수 없다는 점이 소설에서 너무나 잘 묘사되어 이 문장에 공감이 되었다. 어느 사회든 성폭행 피해자를 비롯해 다양한 소수자들의 문제는 비슷하게 겪고 있는데 그들이 삶에서 진통을 겪는 부분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 프레드릭 베크만이 그만큼 사회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이를 알리고 나누고자 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장이 나올 수 있었다고 여긴다. 기실 성폭행 피해자의 이야기나 동성애 이슈, 페미니즘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소설로 다루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는데 사회문제를 가볍지 않게 다루면서도 문학적으로 잘 승화시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벤이의 면전에 대고 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없기에 그들은 이럴 때 사람들이 늘 하는 대로 한다. 그를 놓고 입방아를 찧을 뿐 그와 말을 섞지는 않는다. 그는 인간이 아닌 사물이 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수천 가지가 있지만 대개 동원되는 이 방법보다 더 간단한 방법은 없다. 그에게서 이름을 빼앗는 것이다. ’진실‘이 유포되자 어느 누구도 전화기나 컴퓨터로 ’벤야민‘이나 ’벤이‘라고 쓰지 않는다. ’그 하키 선수‘라고 한다. 아니면 ’그 학생‘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남자애‘라고 한다. 아니면 ’그 호모‘라고 한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392-393쪽.
- <베어타운>에도 마야에 대한 폭력이 같은 방법으로 묘사되었는데, 면대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사자의 인격을 제거하고 대상화시키는 모습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나중에 그는 남들과 다른 그 느낌을 표현할 만한 단어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게 얼마나 몸으로 느껴지는지를 말이다. 겉도는 것은 뼛속까지 소진되는 느낌이다. 남들과 같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다수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407쪽.
-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 철저히 소외되거나 배제될 때의 느낌을 잘 묘사한 것 같다. ’뼛속까지 소진되는 느낌‘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너무나 가슴 깊이 이해되어서 더욱 사무치는 구절이었다.
우리는 승자를 사랑한다.
딱히 호감이 가는 부류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승자들은 대개 강박적이고 이기적이며 배려심이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한다.
이기기만 하면 그들을 좋아한다.
- 프레드릭 베크만, 『베어타운』, 다산북스, 2018, 66쪽.
- 사실 우리가 학교나 사회에서 교육을 통해 늘 배우고 익히는 것은 사랑이나 배려등 선(善)한 가치인데, 정작 추구하는 것은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점에서 마음아픈 구절이었다. 베어타운에서 페테르가 끝까지 케빈을 고발하기 주저했던 점이 바로 케빈이 그들의 주력 선수였기 때문이었듯, 그 무엇보다 하키 시합에서의 승리가 우선시되는 가치라는 점은 여러 좋은 면에도 불구하고 베어타운이 지니고 있는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켈은 눈썹을 추켜세운다.
“나한테 골키퍼를 주겠다고요?”
다비드는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그쪽이 골키퍼를 키우는 데 소질이 있다고 그러기에요. 그쪽이라면 이 녀석을 환상적인 선수로 키울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중략) 그는 헤드 출신이지만 거의 이십 년 동안 베어타운팀에서만 활약할 테고 어느 날부턴가는 응원단이 보기에 어느 누구보다 훌륭한 곰이 되어 있을 것이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600-601쪽.
- 작품 곳곳에서 ’베어타운 대 나머지 전부‘ 라는 표현들이 나온다. 그만큼 그들 안에서 강하게 단결된 베어타운과 헤드의 지역감정을 잘 다루면서도 종국에는 베어타운도, 헤드도 모두 악인이 아니며 지역을 넘어 서로 간의 열정을 존중하고 조금이나마 서로 표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모색되고 있어 의미있었다. 그 상징적인 부분이 결말부에 드러나는데, 다비드가 사켈에게 골키퍼로 쓸 만한 선수를 추천하면서 헤드 출신 베어타운 골키퍼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단짝 친구의 허물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 무슨 수로 남들보다 먼저 알 수 있을까? 그 해 봄의 어느 날 밤에 케빈이 여기서 멀지 않은 숲속에 서서 벌벌 떨며 벤이에게 용서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벤이는 몸을 돌려서 떠나버렸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64쪽.
“내가 왜 걔를 용서해야 해요? 선배에게 그렇게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녀는 쏘아붙인다. “하지만 너희는 자매나 다름없잖아. 자매들은 서로 용서하는 거야.” 벤이는 우물쭈물 이렇게 얘기한다. 그에게도 누나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야는 고개를 모로 꼬고 묻는다.
“선배는 아나를 용서했어요?”
“응?”
“왜요?”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니까.”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543쪽.
- ‘용서’라는 화두도 이 작품에서 생각해 볼만한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케빈은 마야와 벤이 모두에게 용서받지 못했고 아나는 마야와 벤이 모두에게 용서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문득 고민해 보았다. 어쩌면 케빈과 아나라는 인물의 결이 달라서이지 않았을까.. 물론 케빈도 초반에 나름대로 후회하는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그는 그의 잘못에 대해 그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용서를 구하지 않았지만 아나는 피해자에 대한 깊은 미안함을 지니고 있었다. 벤이에게도, 마야에게도 깊은 미안함을 지녔다. 두 인물이 지닌 피해자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령 아나는 자기 잘못에 대해 스스로 뼈저리게 느끼고 마야에게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 ‘용서’라는 가치가 케빈에게는 허용되지 않았고 아나에게는 허용되었던 점은 이 차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3. 『베어타운』&『우리와 당신들』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호감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내가 이겨. 왜냐하면 불공평한 싸움이거든. 벤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니까.”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141쪽.
- 벤이의 인생 자체가 굴곡져 있는 데다가 겉으로는 강인해보이지만 내면은 섬세하고 여린 벤야민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왔기에시리즈 내내 벤야민에 가장 많은 애착이 갔고 그에 대해 공감하며 읽었다.
이 일대에서는 하키가 곰들의 스포츠지만 아맛은 사자처럼 플레이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는 이 스포츠를 통해 이 마을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이것이 거기서 탈출하는 티켓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는 겨울에는 아이스링크에서, 여름에는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하지만 아맛에게는 나중에 프로 선수가 돼서 어머니를 탈출시키고 싶은 바람이 있다. 지난 봄에 청소년팀에 합류했을 때 기회가 생겼다. 그는 그 기회를 잡았다. 이 마을의 모든 사람에게 그가 승자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의 꿈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100쪽.
-아맛. 사실 아맛의 어머니가 아맛에게 전해 준 삶의 가치 부터가 공감이 되었다 ‘정직’을 강조하는 모습 덕분에 아맛도 자신이 지닌 한계를 넘어 진실을 마주하고 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작아보이는 아맛이었지만, 할로 출신이라는 지역적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여러 한계에도 극복하고 노력을 통해 자신의 성취를 이루어가는 모습이 멋있다고 여긴다.
동료는 준엄한 눈빛으로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너는 네 명이야, 미라.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게 되어주려고 해.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직원.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살 거야?”
미라는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놓은 중요한 서류를 보는 척했지만 결국에는 포기하고 중얼거렸다. “네 명이라며. 아내, 엄마, 직원....... 나머지 하나는 뭐야?” 동료는 책상 위로 허리를 숙여서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슬픈 표정으로 유리를 두드리며 얘기했다. “이 여자. 언제면 이 여자의 차례가 돌아올까?” 미라는 앉아서 시커먼 모니터에 비친 그녀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177-178쪽.
- 사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미라였다. 좋은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업에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임하는 인물. 모든 일을 잘해내고 싶은 미라의 모습에 공감이 갔고 어쩌면 내게도 그런 욕심이 있기에 닮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강인해 보이는 미라가, 소진될까봐 – 아니 소진되고 있는 부분도 있어서 안쓰럽기도 했다. 미라가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너무 모든 것을 다 완벽히 해내려고 애쓸 필요 없다고 왠지 계속 옆에서 토닥여 주고 싶은 캐릭터다. 마야만큼이나 힘들지만 엄마이기에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인물이 미라라고 생각했다.
“나는 언론을 상대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단장님이 하세요. 그리고 나는 리사르드 테오의 홍보단이니 뭐니 하는 거에 눈곱만콤도 관심이 없고 여자 하키 코치가 되려고 여길 찾아온 게 아니예요.”
페테르와 수네는 서로 쳐다본다.
“그럼 뭐가 되고 싶은데?” 수네가 묻는다.
“하키 코치요.” 사켈이 대답한다.
- 프레드릭 베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북스, 2019, 180쪽.
- 사켈도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늘 남자 하키코치들에 비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원하는 팀만을 맡아오지 못하는 등 유리천장이 있었을텐데 그 한계를 뛰어넘고자 부단히 노력해 온 인물이었다. 그녀에게는 매 순간이 시험대인 것만 같을 듯 하다.
4. 작품 속에 등장한 여러 내용 중 우리 사회에서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만한 화두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 우리 사회 속에서 ‘성폭행 피해자’와 관련된 뉴스나 기사를 많이 접해 왔지만, 그 후의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다루어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한 공감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는 피해자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상황을 잘 다루어주고 있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모습이 비정상적으로 보였고 내가 과연 베어타운의 주민들이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며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를 성찰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 여긴다.
- 내부 고발자에 대한 이야기(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를 테면 케빈의 행동을 증언한 아맛에 대한 시선도, 또 케빈의 시합 직전 그를 고발한 페테르에 대한 시선도 베어타운 안에서는 그리 좋게 보여지지 않았는데 그들이 ‘내부 고발자’가 아닌 다른 언어로 불렸으면 좋겠다. 그들은 양심에따라 행동했을 뿐인데 이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긴다.
- 하키에만 너무 매몰된 베어타운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힘만으로는 변화할 수 없기에 자신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키라는 스포츠에 에너지를 투자하는 모습이 마치 현대 사회에서 공무원 시험에 몰입하는 우리 청년들의 모습 같아 안타까웠다.
- 베어타운에서는 하키장의 빙판와 같은 공간이 바로 불합리한 사회 속에서 공정성/평등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우리 사회속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위해 바로 장학금 지원, 중소기업 지원(대출지원) , 농어촌전형 등의 장치가 더욱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푸른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소, 우리 한구석에서 낮잠을 자는 돼지, 마당을 돌아다니며 모이를 쪼는 닭, 밀짚모자를 쓴 농부. 우리가 어릴 적봤던 그림책들을 앙들에게도 보여주며 여전히 소와 돼지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제 이런 농장은 거의 없다. 우리가 먹는 99.9%의 돼지고기는 농장이 아닌 공장에서 생산된다.
(중략)
농장을 보여주고자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공장식 축산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키우는 대안을 찾고 싶었고, 돼지가 돼지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돼지가 실제로 어떤 동물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황윤, 『사랑할까 먹을까』, 휴출판사, 2018, 24-25쪽.
돼지들이 ‘편안하게’ 잘 있다는 그의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딱딱한 콘크리트, 햇빛 한 점, 바람 한 점 안 들어오는 축사, 몸 크기와 똑같은 철제 스톤 속에 갇힌 어미 돼지들이 어떻게 편안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어미 돼지들이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태로 멍하니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었다. 편안해서가 아니라 아무런 할 일이 업었기 때문으로 보였다. 반쯤 뜬 그들의 눈에서 어떤 생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익숙한 눈동자였다. 그렇다. 바로 동물원에서 이런 눈동자를 보았다. 철창에 갇힌 호랑이, 침팬지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절망적인 눈동자를 갖고 있었는데, 돼지들이 똑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 황윤, 『사랑할까 먹을까』, 휴출판사, 2018, 87쪽.
무언가 서정적인 제목의 표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자고 이야기한 친구의 추천에 이 책이 어떤 책인지도 자세히 알지도 못한 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서 별 기대없이, 책장을 넘겼다.
가독성 좋은 문장이 술술 읽혔다.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한 달음에 다 읽은 책이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책이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책의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불편하고도 충격적인 진실에 대해 깊이 공감과 몰입이 더해져갔다.
저자가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진실을 함께 마주하고 있었다.
특히 마음에 시리게 남는 장면은 스톨에 갇힌 어미돼지에 대한 부분과 도살장과 살처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년시절부터 돼지들은 농장에서 한가로이 풀 뜯고 뒹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저 동화같은 상상일 뿐이었다. 내가 침대에서 편하게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 어미 돼지들은 감옥같은 스톨에 갇혀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가혹한 학대를 받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새끼들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분리되어 젖을 내주는 참담한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람이건 돼지건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는 매한가지인데, 모성애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아무 죄도 없는 돼지가 그처럼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심지어 도살장에서 동물들을 전기충격으로 기절시킴에도 불구하고 고기의 질을 위해 약한 전기충격을 가해서 의식이 회복된 상태에서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이 최소 10프로 이상이라는 사실은 경악스럽기까지했다. 또한 도살장 근무자나 국가적 명령에 의해 동물들을 살처분해야만 하는 공무원이나 군인들의 이야기...
결국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제는 우리의 육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과 동물 모두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공존하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그리고 나는 동물들을 위해 최소한의 무엇을 할 수 있나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책을 읽기 전 육류(고기) 음식이라면 무조건 환영이던 나는 책을 읽은 후, 육류를 가능한 한 줄여보자는 최소한의 다짐을 한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82년생 김지영이 있는 것처럼 , 사람에게 각각 고유한 자기서사가 존재하듯이 동물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빛과 색이 있고 스토리를 지니는 법이다.
책 한권을 통해 나 한사람부터 생각과 태도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최소한의 실천이라도 행해간다면 조금 더, 아주 한 발짝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칠흙 같은 어둠이 깔린 축사 한쪽에 따뜻한 노란 전등이 하나 켜 있고, 볏짚 위에 어미 돼지 십순이가 누워 갓 태어난 새끼 돼지들에게 젖을 먹였다.
아기를 낳은 사람 엄마, 갓난아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아름답다, 평화롭다는 느낌을 넘어서 신비롭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가톨릭 신자들의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의 모습도 떠올랐다. 어찌 감히 돼지를 성모마리아에 비하느냐고 하겠지만, 성녀와 인간 엄마와 돼지 엄마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생명의 힘, 사랑의 힘이다. 모든 탄생의 순간은 경이롭다. 온 우주가 도와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순간.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귀하며, 동등하다.
누구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점에서. 고통이 아닌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