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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해당되는 글 54건
- 2017.11.12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 2017.09.11 아무튼문고 리뷰 (위고 X 제철소 X 코난북) With 아그레아블
- 2017.08.26 대니얼 키스, 『앨저넌에게 꽃을』, 황금부엉이, 2017
- 2017.05.25 최강욱, 『정치의 시대 -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창비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더퀘스트 출판사 <내 마음을 읽는 시간>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더퀘스트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당신은 알아야만 한다.
그때 당신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 그리고
왜 더 이상은 그렇게 느낄 필요가 없는지를.
_미치 앨봄
-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88쪽.
심리학 전공자로서 심리학에 관련한 다양한 전문서적(전공서), 교양서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읽는 편이다. 이 책은 심리학 교양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출판시장에 널려있는 흔한 심리학 교양서 - 언뜻 심리학 서적같이 보이지만 자기계발서나 에세이에 그치고 마는 -와는 달리, 저자는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이 타인과의 관계에,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깊이있는 통찰을 할 수 있도록 전문적 언어와 검사도구를 활용해 조력한다. 나아가 현대 심리학에서 주목받는 한 분야인 ‘마음챙김’과 ‘자기자비’, 그리고 ‘조망수용’을 실천적 사례로 제시하여 독자들이 관계와 감정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데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사실 심리학을 전공했음에도 ‘자기분화’와 ‘애착’의 문제는 아직까지 내게 있어서 미해결과제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단적이 사례이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나가야 하며 개별적인 단독자로 , 온전한 성인으로서 성장해 나가야 하는 시기임이 마땅하지만 아직도 내 내면 속 어린아이는 부모님께 의존하고 싶어하는 마음 또한 분명히 지니고 있다. 즉 의존과 독립 사이에서 그 경계점을 아직 완벽히 구축하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자리한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중요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대부분 타인에게 거절 당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타인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하지만 한 번 내세운 강력한 자기주장이 관계에 악영향을 끼친 적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기분화’란 한마디로 자율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로 나에게 중요한 타인과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를 희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자, 내 입장과 다른 사람의 입장은 다르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내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잘 분리되었는지 여부를 뜻합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지만, 직장이나 일반적인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34쪽.
3-4장에 제시된 저자의 조력을 통해 이러한 심리적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를 조금이나마 통찰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감정의 인식/구분’과 ‘과거’가 아닌 ‘현재에의 머무름’(지금-여기)의 중요성에 있었다. 이는 단지 ‘감정’과 ‘정서’, ‘기분’의 사소한 개념 차이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고(알고) 표현하는 데에 그 핵심이 있다. 나는 대인관계에서 당황스럽거나 곤혹스러운 순간에 마주하거나 취약한 상황에 그대로 마주하게 될 경우 제대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게 되어 나의 감정도, 그리고 타인의 감정도 제대로 알고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곤 하는데,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심호흡을 통해 자신을 안정시키고, 지금-여기에서 느끼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대인관계에서의 갈등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중요한 방법임을 재삼 깨달았다.
또한 지나간 ‘과거’에 머무르며 계속 과거를 반추하고 곱씹는 일, 즉 지나간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에 관해 지나치게 깊이 반추하는 것이 결코 현재의 정서를 인지하고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우울이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내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 실제로 청소년상담사 3급 자격연수 당시 집단상담 실습 중 게슈탈트 기법으로 자신이 ‘지각’한 것을 표현할 기회가 있었을 때, 내 발화 화법이 과거에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했다. - 때문에, 과거의 사건이나 자신의 낮은 자존감, 약점, 부족한 부분을 끊임없이 상기하기보다는 ‘현재’, 즉 ‘지금-여기’에서 벌어지는 자신의 감정에 주목하는 연습이 내 자신에게(나의 내면에) 가장 중요한 일임을 통찰할 수 있었다.
자기에 관한 정보에 주의가 쏠려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울하고 불행한 기분을 자주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가치에 대해 판단하는 ‘자존감’에 연연하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해지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겠지요.
-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214쪽.
내 감정을 안다는 것은 그 순간의 ‘내 상태’를 알아차린다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 과거의 의미와 미래의 의도를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96쪽.
이를 위한 대표적 기법으로 마음챙김, 자기자비, 조망수용의 마음도구들이 나오는데 – 물론 세 방법을 적시적소에 조화로이 활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제시된 세 도구 중 ‘자기자비’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도 그것이 현재의 내게 가장 핵심적 주제이기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늘 자신을 부족하다 여기고, 내 부족함 때문에 누군가에게 거절될 것을/내쳐질 것을 두려워하는 내 자신을 판단/비판하지 않고,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고 강점과 약점을 가진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 문득 과거 개인상담 때 예수님조차도 그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인간인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신 상담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살면서 고통이 일어나지 않게 하거나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비는 모든 고통을 향해 친절과 공감, 평정심과 인내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고통을 겪는 현실에 마음을 열어 치유되게끔 하는 역량입니다. 특히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을 먼저 탓하는 사람, 항상 더 노력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하다가 지쳐버리는 사람, 습관적으로 자기비난을 하는 사람에게 자비가 꼭 필요합니다. 삶의 관점을 바꾸어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전환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230쪽.
자기자비는 나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보려고, 장점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도 아닙니다. 살아 있는 존재들 중 하나로 내가 이 광대한 우주에 잠시 머물러 있는데 내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고 못나 봐야 얼마나 못나겠습니까. 그런 담담한 마음으로 내가 좋든 싫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 변지영,『내 마음을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7, 240쪽.
서평이 다소 자기회상/회고 같이 흘러간 감이 다소 있지만, 이 책이 바로 그것을 의도한 게 아니었을까. 책을 통해서 나 자신의 애착유형, 자기분화의 정도, 대상관계에서의 ‘내적작동모델’을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것을 연습해야하는지도 통찰할 수 있었다. 결국 내면의 문제에는 수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함을 다시금 느꼈고, 치유와 변화의 과정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결코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음의 근육을 조절하는 힘을 길러나가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해 나갈 때 천천히 변화되어 나갈 것이라 기대한다.
[과제1] 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1주차 (0) | 2017.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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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배송인증사진 (0) | 2017.11.17 |
이제월,『만일 해리포터가 삶을 바꿀 수 있다면』, 항해출판사, 2017. (0) | 2017.10.30 |
『82년생 김지영』 : 인권감수성이 부재한 시대 (0) | 2017.09.20 |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2017. (0) | 2017.09.20 |
‘아무튼, O O O’ 를 읽고
(가제본도서)
<아무튼 문고> 시리즈 출간 전 리뷰단
위고 X 제철소 X 코난북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독서모임 '아그레아블' 아무튼 문고 출간 전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얼마 전, 아그레아블 독서모임을 통해서 출간 전 도서를 미리 읽고, 독서모임을 가진 후 서평을 작성할 분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접했다. ‘출간 전 도서’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가 되는데, 더욱이『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로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문제, 일상의 단면을 성찰하신 김민섭 작가님의 ‘망원동’이 실릴 예정이라 하여 기대감을 갖고 서평 모임에 신청해, 책을 수령해 읽게 되었다.
김윤관 작가님의 <아무튼, 서재>, 김민섭 작가님의 <아무튼, 망원동>, 류은숙 작가님의 <아무튼, 피트니스>, 장성민 작가님의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조성민 작가님의 <아무튼, 쇼핑> 까지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이 가제본 도서는, 곧 출간될 다섯 편의 도서 중 일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당초 기대를 갖고 있었던 망원동을 포함해 서재와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우선 김민섭 작가님의 <아무튼, 망원동> 이야기에 대한 단상부터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망원동’은 저자의 유년기와 소년기, 청년기가 어려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망원동’과 ‘경리단길’의 합성어로 형성된 ‘망리단길’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진 동네이기도 하다. 얼마 전, ‘알쓸신잡’ 경주편 방송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다룬 바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구도심이 번성함에 따라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인해 저자와 저자의 가족, 친구들에게는 일상을 영위하며 삶을 살아나가는 터전인 그 공간- 망원동이, 점점 해체되어가는 모습은 유명한 카페와 식당이 아닌, 그 공간에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상기하게 한다. 나 또한 서울에서 태어나 신도시에서 계속 살아왔지만, 저자의 삶 곳곳에 깃든 ‘망원동의 골목’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은 아닌지라, 그 골목을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는 저자의 시선을 참으로 따뜻하게 느꼈다. 그런 저자에게, 그리고 망원동에서 삶을 살아 온 그 모두에게 그 공간은 ‘다시 되돌아오고픈 곳’일 터이다. 황석영의『삼포 가는 길』에서 고향을 잃고 갈 길을 잃은 ‘영달’의 모습이 <아무튼, 망원동>의 한 부분을 읽으며 그려졌다. 그 어느 곳이든 현상 너머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동시에 대학의 모순을 경험하고 나와 대리기사 일과 글쓰는 일을 병행하며 삶을 살아나가는 저자의 삶 저변에 어떠한 자기서사가 자리할지 궁금해 작품 전체를 빨리 읽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들었다.
2017년에 다시 걷는 망원동은 눈길 닿는 곳마다 복잡한 감정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나는 망원시장을, 망원우체국 사거리를, 유수지로 가는 좁은 골목을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천천히 유영한다. 그러면서 망리단길이 가린 거리의 추억들을 들춰본다.
- 김민섭,「아무튼, 망원동」,『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59쪽.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 역시 이제 별로 남지 않았다. 내가 아는 많은 또래가 서른 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크고 작은 인생의 변화를 겪으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의 북쪽 끝인 수유나 미아로 간 친구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고 역곡으로, 동탄으로, 원흥으로, 김포로, 저마다 이름도 생소한 도시로 떠났다. 광역버스나 급행전철의 노선을 따라 ‘이주’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조금 더 멀어져야 할지 모른다.
망원동/서울은 더 이상 젊은 세대가 자신의 노동이나 신용으로 거주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나고 자란 곳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뿐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그 무엇이 거기에 있기에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버텨낸다.
- 김민섭,「아무튼, 망원동」,『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67쪽.
도시에는 지도나 대중교통 노선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는 무수한 섬들이 있다. 망리단길은 빠르게 업데이트되어도 난지도길은 제대로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감각은 점차 무디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신도시의 택지라는 이름이 붙은 뒤 마땅히 사람이 살아야 할 도시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다. 높은 아파트와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를 점령하듯 들어서고, 지하철역과 광역버스 정류장이 촘촘히 그 사이를 메운다. 그러고 나면, 거기에 오래 살았던 ‘그들’은 또 다른 섬을 찾아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어느 너머의 타인을 상상하지 않는 우리는 주변을 섬으로 만들며 스스로 섬이 된다. 지도가 닿지 않는 곳에도 여전히 사람이 있고, 그곳 아이들이 ‘동네’라는 감각을 가진 채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김민섭,「아무튼, 망원동」,『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78쪽.
한편, 장성민 작가님의 <아무튼, 게스트하우스>는 존재로서의 자아를 포착함과 동시에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생경한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오는 가치를 독자들에 전하고 있다. 나영석 PD의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게스트하우스를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 나영석 PD가 칸 광고제에서 발표한 대로- ‘실현 가능한 판타지’, 즉 ‘욕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피로사회 속에서 학교, 직장 등 일상의 경쟁에 지친 우리에게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단편에서 저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공간이 <게스트하우스>라는 점을 독자에게 전한다. 여행지를 결정하고 숙박할 게스트하우스를 고민하는 여행의 시작단계에서부터 ‘수많은 선택’을 통해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동시에 진실한 마음을 나누며 ‘인격적 만남’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게스트하우스는 우리가 늘상 쓰고 있는 ‘가면’(페르조나)를 벗기어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이 단편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늘 자신의 내부에서 이러한 ‘여행’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라 여긴다. 너무도 바삐, 쉬지 못하고 달려왔기에 잠시 멈추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고 싶고, 타인에 의한 ‘평가’나 ‘판단’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픈 그 욕망. 독립적 자아와 관계적 자아의 교차점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그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첫걸음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저자를 통해 나 자신의 마음 깊이 있는 소망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고, <아무튼, 게스트하우스>에서 펼쳐질 또 다른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지, 그 과정에서 저자는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는지 기대가 된다.
게스트하우스의 훌륭한 점은 과거의 기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와 맞닿을 때 더 빛난다. 그 공간에서 알게 될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 생각조차 못한 사건들 그리고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내 속에 숨어 있던 여러 가지 모습을 보내는 일.
- 장성민,「아무튼, 게스트하우스」,『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41쪽.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자신’이라는 존재가 더 자주, 더 강하게 드러나게 마련. 그런 드러남은 상처가 되기도 하고 치료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최소한 자신을 볼 수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여행은 거기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장성민,「아무튼, 게스트하우스」,『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44쪽.
이국의 거리를 혼자서 다녀보고 싶은 마음, 그렇지만 길을 잃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었겠지. 어찌보면 그냥 밤에 걸었다는 것뿐인,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들려줄 때의 아버지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자랑스럽게 기억한다. 모든 첫걸음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고 그가 몇 살이건 어떤 인간이건 어디에선가는 우리는 첫걸음을 떼어야 하는 것이다.
- 장성민,「아무튼, 게스트하우스」,『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54쪽.
어쩌면 그 밤 당신은 전혀 다른 가면 속에 숨겨진, 당신과 무척 비슷한 한 인간을 마주치고 깜짝 놀랄지 모른다. 그렇게 기대를 훌쩍 넘긴 즐거운 시간을 한 번이라도 가지게 되면 그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당신 곁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만약, 아직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꼭 해야 할 이야기가 당신 속에서 나와준다면, 그것은 보석처럼 소중한 순간이 될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다 털어놓기 쉬운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당신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도, 그 밤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도. 물론 끝까지 가면을 벗지 못하고 판에 박힌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질 수도 있다. 어떨 때 우리는 스스로가 아주 약한 존재라고 믿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언제나 다른 밤들이 있으니까.
어쨌든 솔직하거나 솔직하지 않은 서로의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맥주는 시원하고 밤공기는 포근할 것이다. 혹시 물고기가 바로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결국 모두들 여기로 모이게 되니까. 그래서 호텔보다 게스트하우스가 좋은 거니까.
- 장성민,「아무튼, 게스트하우스」,『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58-159쪽.
마지막으로, 김윤관 작가님의 <아무튼, 서재>는 서평 모임을 진행하면서도 가장 많은 분들이 인상 깊었던 이야기로 선택한 작품이다. 저자도, 그리고 나도 – 또 책을 좋아하는 그 누구든 자신만의 서재를 꾸미는 꿈을 꾸곤 한다. 예컨대 나는 원목으로 된 엔틱풍이 나는 책상과 책장을 갖춘 서재를 갖는 것이 오랜 꿈이다. 서재에는 빼곡한 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책장’이 아닌 수많은 ‘책’들에 행복해 한다.
그런데 저자는 서재에 있어 ‘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책들을 담아내는 ‘책장’임을 환기시켜주었다. 수많은 책만큼이나, 그 책을 관리하기 위해 선택하는 책장의 재질, 색감 또한 책장 주인의 성향과 세계를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를 통해 새삼 체득할 수 있었다.
책장은 단지 책을 진열해 두는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한가? 식기가 단지 음식을 담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라면 책상 역시 그러할 것이다. 옷이 단지 몸을 가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책장 역시 그러할 것이다. 집이 단지 추위와 외부 시선으로부터의 보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면, 책장 역시 그러할 것이다. 육체가 단지 정신을 담고 정신이 뜻한 바를 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면, 책장 역시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식기는, 옷은, 집은, 육체는 그러한 것인가?
- 김윤관,「아무튼, 서재」,『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26쪽.
책을 사랑한다면, 책에 담긴 내용만큼 책이라는 형식을, 육체를 사랑한다면 깊이 고민해볼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올바른 문화라는 것,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균형이, 책장에 있다.
- 김윤관,「아무튼, 서재」,『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34쪽.
더욱이 ‘목수’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는 공예와 관련된 서적을 비롯해 수많은 책을 읽는다. 특히 ‘조선’, ‘공예’, 그리고 ‘아나키즘’ 분야의 책을 주로 일독하는데 ‘조선’과 ‘공예’는 목수라는 직업에서부터 출발한 관심이라고 한다. 직업이 지닌 역사와 그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론을 공부하고 경험적으로 실천해 온 저자가 그토록 오래 목수 일을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그에게서 진정한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장인정신의 저변에 꾸준한 독서와 배움에 대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음을 짧은 단편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어떤 책상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책을 읽으며 목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직업에 있어 이론과 경험을 융합시키는 저자의 삶을, 그의 삶을 만들어 준 가치관과 사상에 깊은 감응을 받았고, 이 분의 직업적 태도, 소명의식, 배움에 대한 의지에 대한 전체적인 글을 접하고 싶을 따름이다.
공예가 생활로, 원래 있던 그 자리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론이 필요하다. 생활이 자신의 원래 집이고 고향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예가 없는 생활이란 황폐하고 품격이 없다는 것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공예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 깎는 목수가 연장 옆에 책을 두는 이유가 여기 있다.
- 김윤관,「아무튼, 서재」,『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15쪽.
바니시가 없으니 자잘한 생활 스크래치들과 얼룩이 수없이 생기겠지만, 그 역시 사용자의 습관과 시간을 담은 파티네이션으로 남을 것이다. 육 개월에 한 번씩 같은 오일을 발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신상’의 반짝임은 없겠지만, 십 년을 써도, 이십 년이 흘러도 바래고 깊어진 책상으로,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 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책상으로 남을 것이다. 페터 한트케의『느린 귀향』이 쓰인 것처럼 그 책상 위에서는 또 다른 소설이, 시가, 희곡이, 편지가 쓰일 것이고, 다시 페터 한트케의 희곡이, 카프카의 소설이, 이성복의 시가, 누군가의 편지가 읽힐 것이다.
- 김윤관,「아무튼, 서재」,『아무튼, OOO (가제본 도서)』, 42-43쪽.
다섯 편의 작품들은 모두 – 특히 세 편의 작품들이 더욱 – 삶, 일상의 한 단면에서 주제를 포착해 자신의 가치관을 풀어나가고, 이를 통해 그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이 의미는 저자들 본인의 삶뿐만 아니라 책장 너머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에세이(수필)의 힘이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은가 싶다. 책장 너머 저자들의 ‘삶’에 대해 간접경험을 통해 이해함으로써 타인과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혀 나갈 수 있음을. 편안하게 읽은 단편이었지만 다섯 편의 작품들이 나의 내면에 던져준 화두가 결코 적지 않았으며 한 권 한 권 모두 더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고픈 작품들이다. 다섯 편의 작품들이 출간될 날을 고대한다.
『82년생 김지영』 : 인권감수성이 부재한 시대 (0) | 2017.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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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2017. (0) | 2017.09.20 |
대니얼 키스, 『앨저넌에게 꽃을』, 황금부엉이, 2017 (0) | 2017.08.26 |
칼 뉴포트, 『딥 워크』, 민음사, 2017 (0) | 2017.08.13 |
제 4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5. 서평과 필사 소감 (0) | 2017.08.09 |
대니얼 키스, 『앨저넌에게 꽃을』, 황금부엉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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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네이버 카페 '북카페 책과 콩나무' 서평 이벤트 활동의 일환으로, 황금부엉이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내가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저를 빵가게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것처럼 저도 찰리의 자리를 빼앗고 못 들어오게 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찰리 고든이 존재하던 시간은 과거이지만, 그 과거가 현실이라는 거예요. 오래된 건물을 허물어야 그곳에 건물을 새로 지어 올릴 수 있는데, 과거의 찰리는 지울 수가 없어요. 찰리는 지금도 존재해요. 처음에 저는 찰리를 찾고 있었어요. 찰리의 – 나의 – 아버지를 보러 갔죠. 찰리가 과거에 한 인간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저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저 자신의 존재도 정당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니머 교수가 저를 창조했다고 말했을 때, 저는 모욕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찰리가 과거에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제 안에, 제 주위에 말이에요. (후략)”
- 4부 이변,「제발 인격을 존중해줘요」, 299쪽.
우리 모두는 현재를,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여기’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역설하는 것처럼, 무거운 돌을 열심히 굴려 산을 오르던 과거의 ‘나’와 정상에 오른 현재의 ‘나’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분절적인 관념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한 사람을 바라볼 때 과연 그 과거를 논하지 않고 그의 삶 전체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지적장애인이었던 찰리 고든이 똑똑해지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능이 높아지는 수술을 받은 전후 3월부터 11월까지 변화의 과정 속에 자신이 경험하며 느낀 것을 기록한 경과보고서(일기)의 형식을 취하며 독자 자신이 찰리의 경험과 삶, 감정을 통해 이와 같은 질문에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나는 이 작품을 꼭 11년 만에 다시 만났다. 2006년 중학 3학년 시절, 1학년 때부터 존경하며 따르던 은사님(국어 선생님)의 소개로 찰리 고든을 접하게 되었고 그 때 구입한 ‘동서문화사’ 판본을 아직도 소장중이다. 그때와는 다른 출판사, 다른 역자에 표지도 아름답게 디자인되어 작품이 재출간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고, 무엇보다 내 마음 한 가운데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리하고 있던 ‘찰리 고든’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무척 설레며 책장을 넘겼다. 작품 초반부를 읽으며 독자인 나 자신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성장하고 변화했다는 사실을 분병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1년 전 작품을 읽을 때 로샤검사(로흐샤흐 검사)와 주제통각검사(TAT) 검사 등 투사검사가 등장하는 것도 몰랐던 중학생이 ,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국어국문-국어교육과 더불어)한 후 청소년상담사 자격을 취득하여, 소설 속에 다양한 심리 검사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반갑고도 놀라워했으니 말이다. 이와 같은 자그마한 성장과 변화, 10년 사이에 이루어진 지식의 확대와 넓어진 이해에도 놀랍기만 한데 그 모든 것을 단지 9개월 만에 경험한 찰리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싶다. 특히 초반부 경과보고서에서 맞춤법이 맞지 않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수술 후 폭발적으로 변화하여 180이 넘는 지능을 갖추고 몇 개국어를 하며 번역되지 않은 논문을 읽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지능을 따라가지 못하며 혼란을 느끼는 모습들에서 찰리의 혼란이 s 분명히 전해진다.
‘똑똑해지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지녔기에 찰리 고든은 비크맨대학교 심리학 실험실의 실험에 참여하게 되어 지능을 높이는 수술을 받게 된다. 분명 스트라우스 박사님이나 니머 교수님, 그리고 심지어는 찰리가 따르던 ‘지적장애성인센터’에서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는 키니언 선생님까지도 찰리의 이러한 ‘동기’와 열망을 ‘다른 지적장애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좋은 것’이라면서 칭찬한다. 그러나 찰리가 깨달았듯이,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던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로, 빵집의 여러 사람들과 진정한 친구로서 ‘인정’받기 위하여 그러한 강렬한 동기가 자리했기 때문에 그의 그런 강렬한 열망이 참으로 아프게 여겨졌다. 기실 (중요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인정’받고 싶고 기대에 ‘부응’하고픈 욕구는 누구나 어느정도 지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심리 정서적 문제인데 –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결코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그렇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관계에 있어 인정받고 수용되는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감정을 나눌 이들이 주변에 자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찰리는 온전히 인정받고 수용된 경험도, 또 진실되이 자신의 문제를 나눌 수 있는 이도(적어도 수술 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처절히 노력해왔어야만 했으며 그 스스로가 자신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고쳐야만 하는 것’, ‘없어져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한 사람이라도 주위 누군가가 찰리가 장애를 겪고 있어도, 똑똑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면, 내면을 어루만져주는 ‘상담자’의 역할을 하는 이가 주변에 있었다면, 과연 찰리가 그토록 강렬한 열망을 지닌 채 스스로 실험에 자원했을까.
똑똑해지고 싶다는 흔치 않은 욕구를 강하게 지닌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누구든지 무척 놀라워하는데, 그런 욕구가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이제는 나도 알 것 같다. 로즈 고든은 평생을 그것에 매달려 살았다. 찰리가 저능아라는 사실에서 공포와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로즈의 잘못인가? 아니면 매트의 잘못인가? 이런 물음들이 따라다녔다. 노마를 낳은 뒤에야 로즈는 자신도 정상적인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장애아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나를 바꾸려는 노력도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엄마가 바랐던 똑똑한 아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그만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 3부 고독, 「배울수록 이상한 점」, 218-219쪽.
그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게에 앉아서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한 아이구나” 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나는 인정받기를 원했고, 오래전에 내가 신발 끈을 묶고 스웨터의 단추를 채우는 법을 익혔을 때, 만족스러워하던 그의 얼굴에 떠오르던 환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지만, 끝내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 3부 고독, 「혹시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277쪽.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자신이나 가족들보다 겉으로 비친 모습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매트는 몇 번이고,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니라고 말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노마는 옷을 잘 입어야 했고, 집에는 좋은 가구를 두어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점을 알지 못하도록 찰리는 집 안에 있어야 했다.
- 5부 회귀, 「우리는 누군가가 필요했어」, 382쪽.
그러나 그 열망을 이루어 지능이 높아져 천재가 되어 세상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과 인지능력이 생기자, 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역차별’이다. 지능이 높아져 친구들과 대화하고 어울리고 싶었던 찰리에게 과거의 조롱에 비견할 ‘비난’과 ‘소외’가 찾아온다. 왜 그런 수술을 받아 자연을 거스르는지 지적하며 천재가 된 찰리가 자신들에게는 부담스럽다는 것을, 이질적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즉 지능이 매우 뛰어나든, 혹은 지능이 매우 낮든 정규분포표의 양 극단(양 끝)에 있는 ‘특별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면서 ‘소외’하고 ‘배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패니가 말했다. “찰리, 네가 뭔가 아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야. 네가 변한 방식 말이야! 나도 모르겠어. 예전에 넌 착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 아주 똑똑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평범하고 솔직했어. 그런데 갑자기 똑똑해지려고 네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어. 다들 그렇게 얘기해. 그건 옳지 않다고 말이야.”
“하지만 더 똑똑해지고, 지식을 얻고,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를 원하는 게 도대체 뭐가 잘못이야?”
- 2부 혼돈,「어둠속의 소년」, 164쪽.
“그럼 제가 어떤 모습이기를 바랐던 거죠? 제가 여전히 순종하는 강아지처럼 지내면서 꼬리를 흔들고 나를 걷어차는 발을 핥기를 바라는 거예요? 분명히 이 모든 것은 나를 바꿔놓았고 내가 나 자신을 생각하는 방식도 바꿔놓았죠. 더 이상 사람들이 내게 건네준 쓰레기를 받아먹을 필요가 없다고요.”
“사람들이 찰리에게 그렇게 심하게 대하진 않았어요.”
“선생님이 뭘 알아요? 잘 들어요. 그중에서 가장 나은 사람들도 잘난체하면서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생색을 냈죠. 자신들이 우월해 보이면서 부족한 점을 감출 수 있도록 저를 써먹으면서 말이죠. 누구든지 바보 곁에 있으면 자신이 똑똑한 것처럼 느껴지죠.”
-3부 고독, 「나는 왜 벌을 받고 싶었던 걸까?」, 188-189쪽.
더욱이 비크맨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서 찰리의 실험을 주도한 니머 교수는 수술 전의 찰리 고든을 ‘부정’하곤 한다. 수술 후 찰리가 사람이 되었으며 ‘새로 태어났다.’고 표현한다. 그는 ‘지적장애인’ 시절 찰리의 인격, 찰리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즉 지능이 낮은 지적장애인인 찰리 고든은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해할 만한 능력이 부재했기에, 자신과 같은 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으나 지능이 생긴 후 세상에 대한 인지능력이 갖춰졌으니 이제사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니머 교수가 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비록 ‘니머 교수’라는 한 개인이 작품에서 문제가 되었으나 찰리에 대한 니머 교수의 시선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비단 찰리를 포함한 지적장애인 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등 장애인 분들, 이방인(외국인) 등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지니고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는가? 청소년상담사 연수 때 네팔 이주배경 여성 ‘찬드라 꾸마리’씨가 겪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주노동자인 그녀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잠시 인근마을에 외출을 갔는데, 지갑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식사 후 값을 지불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한국인과 너무 닮았다는 점에만 포착해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정신병원에 감금해, 그녀는 그 곳에서 6년을 보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해 단지 그들이 우리와는 다르고(이질적이고), 우리와 같은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미 우리 내부에서 그들에 대한 가치관을 낙인찍은 후 우리가 행동양식이나 가치관 면에서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이 힘겹게 내려는 목소리를 억누른 것이 아닌지,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통제하려고 하며 정작 그들이 필요로 하는, 소망하는 것에는 ‘경청’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과리노 박사에 대한 재미난 사실. 그가 내게 했던 것에 대해. 로즈와 매트를 속인 것에 대해 나는 마땅히 그에게 화를 내야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첫날 이후로 그는 항상 나를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항상 어깨를 토닥여주고, 미소를 지어주고, 용기를 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것이다.
과리노 박사는 그때 나를 한 인간으로 대했던 것이다.
배은망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내가 화가 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나를 실험동물로 취급하는 태도이다. 니머 교수는 자신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계속해서 언급하거나 언젠가 앞으로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진짜 인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니머 교수가 나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그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지적장애인을 보며 웃을 때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들은 인간의 감정이 개입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니머 교수는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내가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3부 고독, 「배울수록 이상한 점」, 219쪽.
그때, 니머 교수가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비크맨 대학교에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우리들은 우리의 신기술로 자연이 낳은 오류를 우수한 인간으로 창조해낸 사실을 알게 되어서 만족스럽습니다. 찰리가 우리에게 왔을 때 그는 사회에서 벗어나 있었고, 돌봐줄 친구나 친척도 없이 대도시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으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정신적 능력도 없었습니다. 과거도 기억하지 못했고, 현재와도 동떨어져 있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습니다. 실험하기 전에는 찰리 고든이라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자기들의 개인금고에 넣어둔 새로운 귀중품처럼 취급할 때 왜 그토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확신하건대, 우리가 시카고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내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맴돌며 메아리치던 바로 그 생가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모든 사람들에게 니머 교수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나도 사람이에요, 사람. 부모도 있고, 지난 일도 기억하고, 과거도 있어요. 그리고 당신들이 저 수술실로 옮기기 전부터 난 존재했다고요!”
- 3부 고독,「나만의 공간」, 241-242쪽.
"자넨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고 있군. 늘 그랬지만, 우리가 항상 잘 대해주었다는 건 자네도 알잖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모든 걸 하셨지만, 저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진 않으셨죠. 제가 실험에 참여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당신은 몇 번이나 큰소리를 쳤죠. 네, 저도 압니다. 그렇게 말하면 당신이 날 만들었다는 뜻이 될 테고, 주인님에 창조주까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매순간마다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시는군요. 교수님이 믿든 안 믿든,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위해 한 일이 – 아무리 근사한 것이더라도 – 저를 실험실 동물처럼 다룰 권리는 없습니다. 지금 제가 한 인간이듯이 실험실에 걸어 들어오기 전부터 찰리도 한 인간이었죠. 충격을 받으셨나 보군요! 네, 제가 사람이 아닌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갑자기 알게 되었군요. 훨씬 전부터 사람이었죠. 그런데 이런 진실을 아이큐가 100을 넘지 않는 사람은 생각할 가치조차 없다는 교수님의 믿음에 이의를 제기하는 겁니다. 니머 교수님, 저를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찔리실 겁니다.”
- 4부, 이변,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364-365쪽.
‘인권감수성’, 개개인이 타인의 감정과 정서에, 타인치 처한 환경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으려면 그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보다도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뒷받침 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이 1959년에 출간된 것을 고려했을 때, 아마 저자는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학문중심 교육과정이 등장하면서 학문과 이성, 지능을 우선시하면서, 심리학 실험에서도 개개인의 인권을 도외시하는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59년의 미국 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은 길을 2017년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학교 성적이 뛰어난 우등생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밝혀지는 상황은 여전히 성적, 결과를 지향하며 ‘인권감수성’, ‘공감능력’에 대한 교육 더욱 진전하지 못하고 답보하고 있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대변한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혐오(비하)하는 단어들이 사용되어 오고 있으며 특정성별이나 소수자, 약자에 대한 혐오발화 등이 인터넷 상에서 수없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도 인권감수성 부재의 심각한 문제라 여겨진다. 특히 세월 호 사건 당시 유족들을 비하했던, 혹은 아직도 그 얘기냐고 하던 사람들과 같이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은 것은 이를 환기하게 한다. 특히 세월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초등생에 대해 같은 반 친구들이 조롱했다는 기사는 정서적, 심리적인 지원과 교육이 가장 강조되어야 할 유년시절 공감교육, 가치관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다시금 확인케 한다.
진정한 공감/가치관 교육은 학교에서 교과서로, 전공서로 이론을 배우며 머릿속을 ‘이론적 지식’이라는 내용물 만으로 채워가는 것이 아니며,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경험적으로 실천’하고, 직접 그들과 만나 대화하며 찾아가는 등 ‘소통과 교류’라는 내용물로 채울 때 가능한 것이라 여긴다.
가장 낮은 곳이라 여겨지는 –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찾아가 위로와 격려, 공감적 한 마디를 건넨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수단의 톤즈 아이들의 교육과 의료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치신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분들이 이러한 분들이시며, 작품의 후반부에 찰리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찾아간 워렌 주립보호소의 윈슬로우와 같은 이를 주목할 만하다.
"돈과 물질적인 것을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시간을 내서 애정을 주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이죠." 그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고, 그는 방을 가로질러 선반 위에 놓인 빈 아기 우윳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병이 보이시죠?"
우리가 사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다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다 자란 남자를 두 팔로 안고, 저 병으로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그리고 환자들이 누는 오줌과 똥을 뒤집어 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말이죠? 제 말에 놀라신 것 같군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저 고상하고 높다란 상아탑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 환자들처럼 모든 인간의 경험에서 차단되어 떨어져있는 것에 대해서 당신이 도대체 뭘 알죠?"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고, 내 웃음을 오해했는지 그는 갑자기 대화를 끝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여기에 돌아와 머물게 되면,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듣게 된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해할 것이다. 그는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 4부 이변,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38-339쪽.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도- 심지어 찰리와 같은 지적장애인 분들 또한 스스로 자신의 지능이 다른 사람들보다 낮음을 인지하신다고 한다. -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관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의 주인공 ‘오웬 서스킨드’ 씨 또한 자폐성 장애를 지니고 있으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를 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계시며 그 가치관과 철학으로 아름다운 삶을 꾸려가며 성장해 나가고 계신 분이다. 나와 다른 이들 – 장애인, 외국인, 성 소수자 등 –의 존엄성과 인격, 고유한 능력과 개성을 존중할 수 있는 ‘공감능력’은 지능과 더불어 가장 고귀한 능력임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자신과 같은 수술을 받아 ‘실험실’에서 인간의 손에 고통 받고 있는 생쥐 앨저넌의 상황과 행동을 이해하고, 그의 무덤에 ‘꽃을’ 놓아달라는 그 아름다운 부탁을 전하는 찰리를, 그 어느 누가 지능이 떨어진다 하여 무시할 수 있을까.
앨저넌은 멋진 쥐이다. 털은 솜처럼 부드럽다. 눈을 깜빡이는대 눈을 뜨면 눈동자는 검정색이고 둘레가 분홍색이다. 앨저넌에게 먹이를 줘도 좃냐고 난 버트에게 물어따. 왜냐하면 그를 이겨서 난 기분이 좋지 아나꼬 상냥하게 대하고 친구가 되고 시퍼끼 때문이다. 버트는 안 된다고 해따. 앨저넌은 나처럼 수술을 바든 무척 특별한 쥐라고 해따. 앨저넌은 노픈 지능을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한 최초의 동물이라고 버트가 말해꼬, 아주 똑똑해서 밥을 먹으러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자물쇠의 비밀번호가 앨저넌이 들어갈 때마다 바뀌기 때문에 앨저넌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워야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해따. 버트의 말을 드꼬 난 슬펐는대 앨저넌이 뭔가를 배우지 모타면 먹을 수 없어서 배고플 거시기 때문이다. 시험을 통과해야만 먹을 수 있는 건 올치 안타고 생가칸다. 버트라면 입장을 바꿔서 뭔가를 머글 때마다 시험을 치고 시플까. 난 앨저넌과 친구가 될 생각이다.
- 1부 꿈, 「의식과 잠재의식」, 54-55쪽.
추신. 혹시 기해가 있으면 뒷마당에 있는 앨저넌의 무덤에 꼿을 좀 놓아주세요
- 5부 회귀, 「혹시 기해가 있으면」, 453쪽.
교육학과 문학, 심리학을 공부하는 내게 다시금 귀한 의미로 10년 만에 다시 만난 이 작품은 내면을 감응시켰다. ‘공감할 수 있는’ 고귀한 마음을 지녔기에 가장 아름다운 청년, 찰리 고든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전공분야인 심리학을 문학에 형상화시킨 저자 대니얼 키스의 다른 작품들 – 특히 『빌리 밀리건』- 또한 기대가 된다.
“하지만 지능 하나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당신들의 대학에서는 지능과 교육과 지식을 모두 숭배하죠. 하지만 당신들이 모두 놓친 한 가지 사실을 이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능과 교육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 4부,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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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욱, 『정치의 시대 -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창비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정치의 시대』 소책자 사전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6-7.제 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중략)
유일하게 주권자인 국민에게만 권력을 딱 한 번 쓴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헌법이 권력이 가지고 있는 속성, 본질에 대해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헌법의 정의대로라면 주권자가 인정하지 않는 권력은 권력이 아닌 셈입니다. 권력은 주권자에게만 있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떻습니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헌법이 그 사실을 보장하고 있다는 게 의외라고 여겨질 정도로 헌법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고, 오남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법에서 규정한 권력에서 크게 벗어나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그들을 옹호하는 구체적인 판결을 예로 들 것도 없습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수능 사회탐구 선택과목 중 하나로 〈법과 정치〉를 공부하고, 대학 신입생 때 법학과 전공기초 과목인 〈법학개론〉을 수강했을 정도로 -심지어 법학과를 부전공하고자 했다. 물론 심리학 복수전공과 교직수업의 방대함으로 인해 취소하고 말았지만- 법학이나 정치 등 사회의 ‘정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다소간의 관심을 가져온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의 대한민국을 지켜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행정부 수반이 주체적으로 자기 몫을 하지 못하고 한 개인에 의존하는 모습, 심각한 정경유착 등이 공개되고 난 후 충격을 금치 못했다. 물론 정치인이나 법조인들의 관행이나 관습,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해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암흑기(독재정치)를 역사책으로 공부한 내게 있어 행정부의 수반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심각성이 피부로 와 닿았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는 유독 정치인들에 – 특히 국정운영의 중심을 이루는 행정부의 수반(대통령)-대한 국민(책에서 인민이라는 단어의 필요성에 대해 더 명확히 나오지만, 편의상 ‘국민’으로 통칭한다.) 들의 기대가 높은 편이다. ‘이게 나라냐’는 자조 섞인 질문 또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헌법 제 1조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듯 보이는 국가. 사리사욕에 앞서 국민들을 우선하지 않는 국가.
많은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며 매우 추운 겨울을 견디어 올해 초 헌재의 탄핵가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이 책의 제목을 질문으로 던져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최강욱 변호사)는 첫 페이지에서부터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단, 이는 ‘한국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 탓이다. 실망스러울지 모르나 생각을 전환시켜 본다면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가 변화된다면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법의 두 축인 ‘검찰’과 ‘법원’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제시한다. 두 조직 모두 위계질서에 따른 서열화가 핵심 문제로 등장한다. 우선 검찰의 경우, 검사들이 지니고 있는 막강한 권력인 ‘기소권’이 이와 관련해 쟁점이 되는데 이 기소권의 행사에 있어 대상에 따라 기준이 바뀌거나 검찰 조직 내부의 윗사람(검사장 등)의 개입이나 압력에 의해 검사 개인의 법적 판단이 침해 될 수 있다. 법원(사법부)의 경우 법관들의 임명에 있어서, 특히 대법관의 임명에 있어서 여당과 야당, 그리고 여야합의에 의해 선출하는 방식이 적용되고 있는 만큼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고려가 이미 선출에 있어 고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두 조직 모두 ‘서열화’ 문제는 심각한데 가령 성적이 좋지 못하거나 윗선의 눈 밖에 나게 되면 서울중앙지검에 다시 돌아오지 못해 검사로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승진의 기회가 막혀버리며 판사(법관)의 경우에도 초기 발령을 성적순에 따라 획일적으로 배치할 뿐 아니라, 고등법원 부장판사라는 요직에 승진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뒤따른다.
이렇듯 저자가 지적한 법조계의 문제는 몇 달 전 읽었던 김두식 선생님의 『불멸의 신성가족』 의 화두와도 정확히 일치했다. 국민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법조인들이 소수의 국민들에게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점, 그리고 정치인 뿐 아니라 판사나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지나치게 신성화 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특히 성적이나 조직 내 순위에 의해 서열화 되어 같은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차별을 두는 것은 그 권력과 권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신성화’ 작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과 일부 판사들은 정의의 여신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눈을 떠서 당사자의 사정을 세세하게 살피고 헤아리며, 그런 후에 저울에 달아서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판단을 해보다가, 그래도 부족하면 책을 펼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정확한 판결을 내린다.
(중략)
대다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당사자의 신분과 지위를 확인해서 봐줄 사람인가 아닌가를 식별한 후에 형식적으로 저울에 다는 척을 하다가, 손에 든 장부를 보고 나에게 뭘 갖다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다음 심판한다.
어떻습니까? 후자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릴 듯한데, 바로 이 점이 대한민국 사법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21-22.
검경 조직이 자신의 법적인 양심에 따라 기소권을 행사하고, 법원이 약자들의 편에서 공정한 재판을 가할 때, 즉 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올 때 비로소 판사로서, 그리고 검사로서 ‘이상적 모범’이 되는 법조인들이 증가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법조계 내부의 자성적 기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기에, 사법 조직 개혁을 단행하려면 행정부나 국회 등 정치권의 문제의식이 자리해야하며, 법조계와 이해관계가 없는 인물이 개혁을 진행해야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조국교수의 민정수석 임명은 첫 단추가 잘 꿰매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절차와 행정절차의 관계를 재정립해 나가고자 하는 데 그 방향을 지니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개혁이 다시금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갈등과 충돌에 있어 국민들의 건전한 법 상식을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과 법조인의 유착과 정경유착 등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교육현실에서 해결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겠다. 법조인들은 학창시절 성적이 뛰어나 ‘모범생’, ‘우등생’으로 불리는 이들이었고,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부의 서열화가 자행되어 있어 ‘우수한 인재’로 상급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즉 학창시절 우등생으로서 급우들을 통제하는 한편 교사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저 당연히 해야 될 것이기에, 명령을 따라야 인정받을 수 있기에 그 어떤 비판의식 없이 상급자(대통령, 검사장, 부장판사 등)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제 2의 아이히만을 양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다. 때문에 법조인들이나 정치인들의 그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고자 할 때 이를 제어하고 비판할 수 있는 국민들의 시선, 그리고 법조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나와는 멀리 있는’ 저 너머의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 법적 도움을 제공하는 ‘조력자’일 뿐이며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신성화의 해체’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서열화’되어 있으며 ‘획일화’된 학벌위주의 교육 현실을 바로잡고 대학진학 및 직업 선택에 있어 특정 직업군의 이들이 지나치게 신성화되지 않고 고유한 직업윤리를 지닐 수 있도록 윤리 및 가치관교육, 직업의식, 그리고 ‘교육 평준화’가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목고나 자사고 등 학습자 간 교육 격차를 확대할 수 있는 학교들의 폐지 또는 전환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단적으로 ‘의사 면허는 합법적 살인 면허’라는 한 의대생의 발언은 특정 직업을 신성화하며 특권화 해 온 우리 사회의 부정적 단면이라 하겠다. 서열화를 통해 학습자들을 줄 세우고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유하고 토론하고 논의하여 나와 다른 의견과 생각, 가치를 지니고 있는 타자의 의견을 조화롭게 반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문화를 변화시켜 나갈 때 법조계와 정치계의 문제도 해결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법이 정치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기보다 정치를 통해 올바른 법이 만들어지고, 법을 집행하거나 법을 통해 판단하는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주권자의 입장에서 가장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올바른 정치는 주권자의 뜻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법은 당연히 정치의 아래에 놓여야 하지요.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법이 올바로 만들어지고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주권자에겐 일종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111.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이샤(一沙), 『마음, 그림에 담다』, 베이직북스 (0) | 2017.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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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 『윤한봉』, 창비 (0) | 2017.05.31 |
김탁환,「제주도에서 온 편지」,『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돌베개, 149-157쪽. (0) | 2017.05.15 |
제3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5주차 – 서평&필사소감 (0) | 2017.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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