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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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게시물은 창비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전문상담교사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차열음 작가과, 창비 출판사,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전국의 모든 동료 전문상담교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울은 때로 타고난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 내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애초에 우울의 뿌리를 찾았던 것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가족력과 같은 통제 불가 요인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나는 우울을 발현하게 한 또 다른 뿌리를 찾아야 했고, 상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6.

 

 

  차열음 작가의 에세이,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는 저자의 자기고백이 담긴 글이다. 이제는 20대 성인이 된 저자가 중학생 때 거식증과 우울증을 겪어내는 과정을 회상하며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가 경험한 청소년기 거식증과 우울증의 증상과 그 내면을 촘촘하게 서술하고 있어 거식증이 발현된 원인부터 우울과 관련된 가족력, 거식증에 이어 폭식증이 나타나면서 섭식장애의 양상을 지니게 된 촉발요인과 유지요인을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의사인 부모님을 두고 있던 열 네 살의 저자는 학업으로는 동생만큼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경험으로 인해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에 몰두하게 된다. 그 열 네 살 아이의 인정욕구가 다이어트와 외적인 미()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져 거식증이 발현한 것인데, 상담과 병원치료의 여정 중에서 급작스런 환경의 변화와(급작스럽게 결정된 전학) 교사 및 친구들로부터의 낙인 등의 선행사건들이 저자가 자살 시도와 자해 등 위기이슈로까지 나아간 일들이 160페이지 남짓의 짧은 책 속에 상세히 그려진다.

 평생을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독자로 살아왔으며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고 서평을 써 왔지만, 직업적인 이유로 속해있는 연구회 단톡방에서 서평단에 참여하게 된 것은 새로운 일이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왜 출판사에서 그 많은 교사들 중에서도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의 전문상담교사들이 읽고 서평을 쓰기를 가장 바랐는지 그제야 알 듯했다.

 이 책은 저자가 거식증과 우울증을 지나 성장해왔다는 내용의 자기 고백이 담긴 단순한 에세이임을 넘어서, 충분히 사랑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온전히 수용되는 무조건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그 경험을 갈구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짧은 교직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저자의 청소년기와 같이 그런 고통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들을 작년에 가장 많이 만났다.

 작년에 근무한 전임교는 내 전문상담교사 경력 중에서 아니, 교직 경력 중에서 가장 힘들었고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고통스러웠던 학교임이 틀림이 없다.

 위기관리위원회를 1년에 여덟 번 열었고,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돌아가는 학교의 4계절 중 자살시도만 최소 4(학기가 시작된 조금 후), 7(방학 직전), 8(2학기 개학 이후), 10, 12(2학기가 끝나가는 시점) 다섯 번 이상은 있었으니 말이다. 약물 과다복용, 투신 시도 등…….

 가장 많은 아이들이 약물을 과다복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상담교사로 상담을 하고 관련 위원회 업무를 맡아 준비해야 했던 나 역시도 반복되는 자살시도 사안에 많이 힘들었지만, 시도를 해야만 했던 아이들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지나는 와중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거겠지.

 저자의 글을 읽어내려가다보니 작년에 잠시나마 선생님도 힘들어, 제발, 살아만 있어줘, 라는 기도를 반복해서 올리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 대신 아이들이 시도를 결심할 용기를 내기 직전에 나를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야 하나...?

 

‘가방에는 집에서 몰래 훔쳐 온 수면제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어디선가 봤는데,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자는 듯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중략) 거식증이나 우울증 환자가 전보다 활력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은 쉽게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환자에게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정신적인 회복 전에 약과 식이 조절로 몸이 먼저 활력을 찾게 되면서 실제로 이 시기에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으나 마음먹은 것을 실행할 만큼의 몸의 기력은 생겼기 때문이다. ’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89.

 

 

 

‘언니 오빠들과 있다 보면 자유롭게 나는 것 같다가도, 공기가 없는 공중에 표류하는 것같이 숨이 턱 막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때 컴퍼스나 커터 칼 같은 것으로 손목을 그으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예전 학교에서 어울렸던 친구의 말이 맞았다. 그 친구의 팔뚝에는 늘 붉은 별이 그어져 있었다. 컴퍼스로 그은 별이었다. 아빠에게 맞아 화가 날 때마다 이렇게 하면 분이 풀린다던 그 친구의 말처럼 예리한 고통은 순간적인 쾌감이 되었다. (중략)
스트레스를 자해로 푼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우울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나름의 SOS 신호였던 것이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10-113.

 

 

 한편 저자가 거식증으로 인해 상담을 받는 장면을 그려내는 지점에서는 저자보다도 상담자의 발화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자살시도를 하고도 자퇴를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불안했고 아이들이 그들이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것처럼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도(거부하고도) 자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잘 꾸려 나갈 수 있을까, 병원 치료를 더 설득하고 내가 연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걱정하던 내게, 작년 4월 한 내담학생이 해 준 말이 떠오른다. 자살시도 이후 바로 연계와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조력했지만, 끝까지 자퇴를 고집하던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걱정만 하는데 왜 제가 잘 될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사실 지금의 내가 1년 전의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아이들이 학교에 기댔으면 좋겠고 할 수 있는 만큼 제도 안에서 상담과 치료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상담교사로서 상담을 하며 내가 만나는 내담학생에게 불안과 걱정을 티내거나 훈시하지 않고 저자가 만난 상담자처럼 따뜻하고 객관적이면서도 한 걸음을 늦추며 내담자에게 맞추는 상담자로 자리하고 싶다. 적어도, 다른 곳에 찾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Wee클래스에서 온전히 사랑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하러 편히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먹는 걸로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들을 때마다 짜증 나요.”
“그래, 선생님이 이따가 이야기해 둘게. 먹는 걸로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지.”
“사실 할머니는 더 심하긴 해요. 방까지 쫓아와서 먹이려고 하는데 짜증 나서 가출해 버리고 싶어요
.”
선생님과 있을 때는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좋았다.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먼 발걸음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상담실의 체중계와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0-51.

 

 

 

“이번 주 식단 일기는 지난주보다 빠진 부분이 많네. 식사를 거른 거야?”
“…….”
“뭐라고 하는 거 아냐. 그래도 시간은 맞춰서 먹기로 했었지? 먹고 싶은 만큼 조절해서 먹고, 먹은 것만 잘 적어 보자
.”
무리해서 다가오려는 엄마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아빠보다
모든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더 편했다.
사랑해서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가족보다 이성적인 타인이 때로 더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2.

 

 살기 위해 자해를 하고, 고통의 끝에서 조금 더 안전한 방법을 고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많은 아이들이, Wee클래스/Wee센터/병원/사설 상담센터, 그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그들에게 가장 가깝고 편한 곳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선생님도 한 사람이기에 많이 나약하고 부족하지만, 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고통은 당연하다고, 아픔을 느끼는 네 마음이 너무나 옳다고, 함께 길을 찾아보자고 손을 내밀고 곁에 머무르고 싶다.

 

‘너를 응원한다고, 작고 연약해진 너의 이런 모습마저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6.

 

 

‘물론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가 모든 우울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주벼에서도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병행했지만 호전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살아온 시간이, 삶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테니 문제를 벗어나는 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담과 약물을 통해 문제가 나아지는 경우도 있은 병원은 삶의 낭떠러지 앞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주요한 방법 주 하나임은 틀림없다.
정신 병원은 학교와 같다. 환자는 모두 학생이다. 그곳에서 스스로 마음을 진단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다음에 더 강인해질 수 있도록, 다음 우울엔 더 의연히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도움도 받아 본 사람이 청할 줄 안다. 우울도 겪어 본 사람이 이길 줄 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8-149.

 

 

 

 전문상담교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2023년을 잘 버텨 내고(수많은 위기사안들에 소진이 심해, 작년에는 블로그에 서평을 많이 써내지 못했다), 2024년 블로그에 올리게 된 첫 서평이 이 책이었기에 더욱 유의미하다고 여긴다.

 나는 학창시절 외로움을 느끼며 청소년기를 보냈고(당시에는 몰랐지만) Wee클래스가 부재하고 상담교사가 없던 시절 교과 선생님들의 지지와 격려 덕에 자라났기에 평생의 업()으로 교사를 목표로 하게 된 아이였다. 학부 시절 심리학을 복수전공할 때만 해도 내가 전문상담교사로 살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교직에의 첫 동기와 가장 밀접한, 전문상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도 상담을 받으며 나의 비합리적 신념을 수정하고자 노력하고(가령 상담교사로서 상담에서 실수하면 다 망할 것 같다는 비합리적 신념? 지난 주에 상담자분과 찾아봤는데 근거가 1도 없더라~) 자기 이해와 타인 이해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한 개인이지만,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상담을 경험하는 전문상담교사이기에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상담의 의미를 더 잘 전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저자의 학창시절을 넘어,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진실로, 함께 근무하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나누며,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잘 들여다보고 지원하면서 항상 상기하고픈 글이다.

 어렵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어 주신 차열음 작가님과, 창비출판사, Wee클래스와 Wee센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료 전문상담교사/전문상담사 선생님들께 다시금 깊은 감사를 전한다.

 

 

 

 

by papyros 2024. 4. 23. 01:29

백온유, 『경우 없는 세계』, 창비, 2023.

 

#경우없는세계 #백온유 #당신의경우 #창비 #성장소설 #청소년 #창비청소년문학 #서평단 #가제본서평단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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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창비  ‘『경우 없는 세계』’ 가제본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백온유 작가님과, 창비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 게시물의 인용구 페이지는 정식 출간본과 차이가 있음을 밝힙니다.

 

 

 3년 전, 백온유 작가님의 소설 유원사전 서평단에 참여한 적이 있기도 하고, 청소년소설에 늘 관심을 두고 있는지라 금번에 출간 예정인 백온유 작가님의 신간 소설 경우 없는 세계서평단에 지원했다. 유원PTSD를 겪고 있는 개인의 상처 극복과 성장과정을 그린 작품이라면, 경우 없는 세계는 가출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내면과 아픈 성장과정을 청소년들 그 자신의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두 축은 ‘인수’와 ‘이호인데, 이미 성인이 된 인수가 가출청소년 이호를 만나면서 가출 청소년 시절을 겪은 바 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이호와 인수의 서사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이호의 경우 인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깊은 에피소드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청소년인 이호가 가출 이후 을 버는 방법은 스스로 가짜 교통사고를 내는 방식이었다. 다가오는 차량에 슬쩍 몸을 던지고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돈을 뜯어내는 방식. 그의 그런 방식들을 목격한 인수가 이호에게 손을 내밀며 이를 만류한다. 위험한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조처하고 이호를 자신의 집에 거두어 숙식을 제공한다. 덕분에 이호는 다른 친구들까지 인수의 집으로 데려오며 기거하게 된다.

이호에게 있어 인수는 그의 손을 잡고 도움을 주고자 한 유일한 어른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호와 달리 인수에게는 그런 어른이 없었던 것이 그의 청소년기를 아프고 곤란하게 했다.

 전문상담교사로서 소설을 읽으며 인수의 청소년기를 사례개념화해 보게 되었다.

 인수의 가출로 인한 심신의 고통을 주 호소문제로 보자면, 인수의 경우 의 가정폭력이 인수의 가출에 대한 직접적인 촉발요인인데, ‘유발요인으로는 진심어린 사랑이 부재한 가족환경, 의지되지 않는 에 대한 실망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인수가 가출 이후 집에 자신의 옷 여벌과 돈을 가지러 들어갔을 때 부모의 집에는 사랑을 받으며 먹이를 먹는 반려묘가 자리했으며 인수는 자신을 찾지 않는 대신 그 고양이에 투자하는 부모에게 서운함과 실망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수는 내심 늘 부모가 사랑으로 대해주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지니고 있었지만 부모는 늘 인수의 소망과는 대조적인 언행을 보인다.

 

 

강압적이며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몹시 엄격한 아버지가
내게 분노하는 지점은 너무나 다양하고도 변칙적이라
나는 지뢰밭을 걷는 심정으로 조심조심 살았다.


                                                                       -47쪽.

 

 

 ‘위험요인’(유지요인)으로서 인수가 가출생활을 지속하는 데는 가출생활 중 만난 친구들이 있는데, 특히 성연은 주목할 만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무리속에서 대장으로 자리하려고 하는 성연은 인수를 가까이한다. 성연은 그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가족들이 있지만 그 따뜻함 속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반면 인수는 걱정하고 아껴주는 가족들을 갈망하고 내심 부모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는데, 이처럼 대조적인 환경과 상황이지만 그들은 가출 청소년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 집이라는 공간 내에서 함께 가출 생활을 지속한다.

 

 보호요인으로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작품의 제목도 경우의 이름에서 기인하는데, ‘ 경우는 가출 청소년이지만 늘 규범과 규칙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보육원에서 자랐으나 언젠가는 자신을 만나러 와 줄 어머니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선을 넘는 행동을 삼가려는 경우는 인수가 다른 가출팸(‘우리 집이라고 불린다.) 친구들을 따라 선을 넘으려고 할 때 이를 적당히 제어해준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언젠가는 자신을 데리러 오려는 의지가 있다고 믿은 경우는 마치 사랑 받아 본아이처럼 보이며 구김살도 없어 보인다. 인수에게는 그런 경우야 말로 한편으로는 가장 부럽고 질투가 나는 대상이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의지하고 싶은 존재였을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그 자신이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으니 낯선 호의에 다소간 경계한 것도 당연했을지 모른다.

 

 왜 저 아이는 사랑받아본 아이처럼 행동할까. 나는 궁금해했다.
왜 처음에 경우의 존재에 대해 순수하게 감격하거나 감동하는 대신 의아해하고 얼마쯤 수상하게 여겼는지 지금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경우와 가장 친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오래 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우가 집을 구하고, 그애의 소원대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더라도(경우라면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때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두운 마음 한편에는 저렇게 가식적이고 답답한 애는 도무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애에게 과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며 경우에게 정을 떼기 위해 마음속으로 고군분투했다.

-253254.

 

 소설의 후반부, 인수가 성인이 되어서 만난 이호와 같이 그의 어린 시절에 만난 A라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가출팸 아이들은 무너지고 해체된다. A는 이호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해 차에 자기 몸을 던지는 일을 지속해온 아이인데, A가 죽던 그 날 밤 차에 깔리고 짓밟혀 마치 누군가에게 맞은 것 같이 보였던 그 소년은 결국 그 날 새벽 죽음을 맞이한다.

 

 그 죽음을 보고 가출팸 ‘우리 집 아이들은 이성이 마비되어 신고를 말리고 심지어는 사체를 산에 가서 매장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나는 그 아이들이 악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신고 후 따라올지 모르는 온갖 낙인이 두려웠으리라. 불필요한 오해가 두려웠으리라. 다시는 가족들이 자신을 찾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쌓였으리라.(막연한 희망의 좌절).

결국 사건이 드러나고 경찰 수사 및 법적 처분이 드러난 이후 인수와 혜연을 제외한 아이들은 8, 10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송치된다. 그 과정에서 인수는 유일하게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그의 가 자신의 재력을 통해 값비싼 변호사를 선임한 덕분에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으나 그런 아버지에게 질린(사랑과 걱정이 아닌 자신의 명예만 생각하는) 인수는 결국 집을 다시 나가게 된다.

 

 아버지에게 항변하고 싶었다. 저도 보통의 아이들처럼 순하게 살고 싶어요.
깨끗하고 단정하게 차려입고도 불편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싶은데요.
아빠한테 조금 더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거든요. 내 방에서 자고 싶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어요.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대신 분식집의 테이블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갑작스러운 행패에 당황한 분식집 아줌마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옆 테이블의 의자도 쓰러뜨렸다.
학생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분식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테이블 모서리에 발등이 찍힌 아버지가 윽, 하고 신음을 내뱉더니 곧장 몸을 일으켜 내 뺨을 힘껏 내리쳤다. 귀가 먹먹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덕에 재판장을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감동적이기보다는 너무나 견디기가 힘들었다.

 

- 244245.

 

 

보조인과 판사는 내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나만은 알고 있었다.
내가 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좁은 캐리어 안에 웅크린 자세로 굳어가던 A가 화석처럼 내 영혼에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추위에 시달리며 내가 외면한 A를 줄곧 앓고 있는 것이다.

 

-248.

 

 가출팸의 분명 비이성적이었고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정했으나,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싶다. 그들을 그렇게 내몬 것은 사랑과 관심, 따뜻한 손길을 표현하지 않은 어른들과 사회의 잘못이 아닐까. ‘ 경우가 가출팸의 그 어떤 아이보다도 인수에게 가장 큰 의지가 되는 존재였던 것처럼, 인수가 이호에게 기꺼이 집을 내주고 사랑과 걱정을 표현한 것처럼,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손을 잡아주고 사랑과 걱정, 진심을 표현하는(비록 혼을 내더라도 사랑을 담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다.) 존재 한명이 그들의 세계에 전부가 되는 것일지 모른다.

 인수, 이호, 경우, 성연........그들의 세계를 조금쯤 따뜻하고 평온하게 만들 수 있는 한 개인으로, 어른으로 자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린 나이에 그 외로움과 처절한 몸부림을 겪어낸 그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다.

 몰입감있고 가독성있어 편안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들의 서사를 따라가며 종국에는 다소간 무겁고 먹먹해진 이 책을 주변의 많은 어른들-특히 교사(교육자), 상담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한때 청소년이었던 나를 떠올리는 한편 전문상담교사로서 내가 만날 이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는아이들을 어떻게 상담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던 책이고,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작품이었다. 또한 작가님의 의도일지 모르겠으나....... 영상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영화로 제작되기를 소망해 본다.

 

 

 

죽을 때까지 안고 갈 비밀이라면, 아직도 종종 집 근처를 배회한다는 것.

일년에 한번쯤, 대체로 사람이 없는 늦은 밤을 노렸다.아버지는 주로 차를 지하 1층 주차장에 댔다.
술을 한병 먹고 낫 날카로운 자갈이나 열쇠로 몰래 아버지 차를 긁어놓고 재빨리 도망쳤다.
아버지가 홧김에라도 나를 찾아와 눈물이 날 만큼 혼쭐내는 상상을 했다.
옥탑방으로 쳐들어와 멀쩡한 집 놔두고 왜 밖에서 개고생이냐며 거친 손길로 대강의 짐을 챙겨 차에 태우는 상상도 했다.
반강제적으로 집으로 끌려 들어가 불편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서성대고 있으면 어머니는 감격한 표정으로 내 등을 감싸 안으리라.

그들은 내가 꿈속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나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

 

-249250.

 

이호의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느 쭈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뭐가.”
“누가 내 신발 끈 묶어주는 거요.”
나는 멈칫했다.
“어릴 때. 누군가가 묶어줬을 거야. 네가 기억 못할 뿐이지.”
나는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요.”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요.”

- 256257.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심연에서 바람이 휘돌며 서서히 내 몸을 녹였다.
이런 온기를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막상 따스함을 느끼니
내게는 이런 온기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워졌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 258.

 

 

 

 

 
by papyros 2023. 4. 1. 11:43

 

[독립북클러버 16기- 청춘의책탑] 10회차(16기 1회차)-「페인트」 후기

 

이희영, 페인트, 창비, 2019.

 

 

2020.12.27. 日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 10회차 리뷰(16기 1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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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161회차(10회차)를 맞이한 독서모임 <청춘의 책탑>입니다. 리뷰를 업로드하는 시기가 좀 늦었네요. 161회차 모임은 지난해 12월 연말에 진행하였으며, 내용 정리 후 뒤늦게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는 바, 지난 12월 저희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은 ZOOM으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오프라인으로 모임을 진행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가올 포스트코로나시대에 더욱 활성화된 독서모임을 희망해봅니다.

  12월의 도서로 <청춘의 책탑>에서 함께 읽은 책은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입니다. 부모면접이라는 참신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청소년문학인 만큼, 교육 분야를 전공/종사하고 있는 청춘의 책탑 멤버들이 이 책을 매개로 부모-자녀의 관계 및 청소년의 성장에 대해 폭넓게 다룰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며, 비단 청소년문학을 넘어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과 관계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모임 후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

 


 

1. 페인트를 읽고 싶었던 이유와 책의 첫인상을 나누어 주세요.

 

- 구병모작가님, 손원평작가님의 작품 등 창비 청소년문학에는 좋은 작품이 참 많은데, 이희영 작가님의 페인트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년기를 거쳐온 우리가 이제는 어른으로서 해당 작품의 내용과 주제의식을 어떻게 내면화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허구성을 지닌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루어 주어, 깊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 이성으로 이루어진 결혼관계의 가족형태가 등장하는데, 동성혼 등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 우리 사회의 대다수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기에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2. 페인트에서 인상깊었던 내용과 구절을 나누어 주세요.

 


   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 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나는 그냥 나다. 물론 나를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할 테지만,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키워지지 않았다 해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 아닐까? 왜 사람들은 NC 출신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까?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특권 의식을 느낄 만큼 그리 대단한 일일까? 그렇게 소중해서 매일같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 이희영,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페인트, 2019.

 

 


  자신이 갖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꿈이고 목표다. 아무리 하나의 어머니가 최고의 환경과 최고의 교육을 동경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 어머니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는 어머니와 전혀 다른 인격체였고, 전혀 다른 꿈을 가진 한 명의 사람이었다.

 

- 이희영, 기다릴게, 친구, 페인트, 2019, 종이책 178.

 

: 사랑과 애정이 있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도 함께 공존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하나의 이야기 - 하나의 어머니에 대한- 가 마음에 많이 남았는데, 어머니로부터 독립된, 고유한 를 분리하는 시간이 많은 딸들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 상담이론 중 가족상담파트에서도 배우게 되는 부분인데,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적절한 '경계선'을 지켜줄 때 각자의 고유한 내면을 존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와 해오름은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두 사람은 부모 준비가 끝난 사람들이었다. "실은, 제가 좋은 아들이 될 자신이 없더라고요."

  "왜 부모에게만 자격을 따지고 자질을 따지세요? 자식 역시 부모와 잘 지낼 수 있을지 꼼꼼하게 따지셔야죠. 부모라고 모든 걸 알고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은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부모라고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요."

 

- 이희영, 마지막으로 물어봐도 돼요?, 페인트, 2019.

 

: 부모나 자녀 둘 중 어느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맞추는 일방향적인 관계는 그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이 문장을 통해 들었어요. 부모-자녀 관계도 함께 만들어가는 쌍방향적인 관계라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 문장을 통해 다시금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요.

: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고두심이 강하늘한테, 자식은 부모가 뭘 해주든 부족하다 부족하다 얘기한다고 하는 장면이 인상에 남았는데, 부모님들께 무조건적 희생을 바라는 자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에 <페인트>의 저 문장이 다시금 부모와 자녀의 관계, 부모의 일방적인 희생을 곱씹게 했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그래서 우리는 아이 낳지 않기로 한 거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아기를 키우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닐 테고. 어쨌든 한동안 심각하게 고민했어.

- 이희영, 어른이라고 다 어른스러울 필요 있나요, 페인트, 2019, 종이책 117-118.

 

 

: 하나의 이 대사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어요.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그만큼 가장 많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이가 바로 가족관계고, 그만큼 더욱 귀히 여기며 서로를 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만약 좋은 부모님을 만나게 되면 정말 잘해 드릴 거야. 어버이날도 챙겨 드리고,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도 꼭 선물이랑 꽃을 드리고 싶어.”

“…….”

“형, 나는 사랑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

 

- 이희영,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페인트, 2019.

 

: 이 작품에서 가장 순수한 인물이 아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키와 같은 맑은 아이의 마음에 어른인 우리가 응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이 어른인 우리가 해야 할 일 같아요.

 


 

3. 만약 자신에게 부모님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 바라는 부모상이 있나요?

 

-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맞춰줄 수 있는 부모님. 특히 열일곱,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자녀 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고 존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한 어느정도 자녀를 위해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 부모님이어야겠지요.

- 부모님이 자녀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거나 자녀에게 집착하지 않고, 당신들의 삶을 잘 꾸려나가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분들이 건강한 부모님이고 자녀의 행복한 삶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 사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한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실수를 지적하는 자녀들에게 를 내거나 어디서 말대꾸를 하냐는 반응이셔요. 그런 반응보다는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부모님들을 만나고 싶고, 추후 그런 부모가 되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 이희영,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페인트, 2019.

 

 


 

4. 이외 페인트를 통해 논의하고 생각해 봄직한 화두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 사실 NC출신이라는 낙인은 우리 사회에 고아원이나 보육원 등의 형태를 비유한 것 같아 요. ‘낙인차별이란 것이 너무 일상 속에서 만연하고, 그 사회현실을 잘 비유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경계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 사실 이 작품에서는 이성혼을 통해 가정을 이룬 부모를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결혼이나 가족의 형태가 다원화된 것을 고려한다면, ‘좋은 부모혹은 좋은 자녀’, ‘가족의 형태를 꼭 규정지을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와 관련되어 『이상한 정상가족』 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 ‘완벽한’, ‘완벽히 행복한사람이나 가족(가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건 허구적인 것이 아닐까요. 진짜 가족은 ‘갈등’ 속에서 서로 성장해나가는 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 결말부 제누301의 대사처럼 좋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고민해보건대 나는 좋은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결말부 “NC 출신에 대한 차별을 없앨 수 있는 건, 오직 NC 출신들 밖에 없어요.” 라는 대사는 사실 제누301이 앞으로 마주할 미래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을 암시하기에 씁쓸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이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주는 부분이겠지요.

 


 

5. 페인트에 대한 전체적인 총평

 

H.J ★★★★★ 5

- 무해하고 선한 인물들이 등해 읽는 내내 좋았던 작품. 청소년 문학의 강점과 한 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으나 강점이 더욱 눈에 들어온 작품이었다.

 

S.H ★★★★☆ 4.5

- 가독성 있는 문학작품으로, 상담자로서 생각할 부분들이 많았다.

 

S.H ★★★★☆ 4

- 가족이나 부모-자녀관계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들에 대해 성찰적 사유를 가능 하게 하는 작품.

 

S.R ★★★☆☆ 3.5

- 현실에 부딪히는 이야기였으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

 


 

 

청춘의 책탑의 다음 모임 도서는,

 

[호프 자런 , 『랩걸』 , 알마, 2017.]  입니다. 여성 과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삶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에세이로서, 삶에 대한 여러 논의를 거칠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by papyros 2021. 3. 30. 01:08

 

[독립북클러버 16기- 청춘의책탑] 10회차(16기 1회차)-「페인트」 리뷰

 

이희영, 페인트, 창비, 2019.

2020.12.27. 日

'청춘의 책탑’ 독서모임 10회차 리뷰(16기 1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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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국어과 기간제교사로 근무하던 중, 7월 8일에 인천 부평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페인트> 온라인 북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페인트를 1회독한 이후,  청춘의책탑에서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진행하기 위해 5개월 만에 다시 이희영 작가님의 <페인트>를 재독했다. 청소년문학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역시 짧고 후루룩 읽을 수 있긴 하지만 , 작품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고민의 내용들은 참 풍부한 작품이었다.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는 '부모면접'이라는 작품의 주요 소재 자체는 어쩌면 소설을 읽는 어린이/청소년 독자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 효과를 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그 카타르시스를 넘어서 결말부쯤엔 부모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끔 한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바로 그 지점이 이 책이 청소년문학인 이유이기도 하리라.)

 작품에서 주요 장면과 인상적인 부분들을 짚어보자면 센터장 '박'의 서사, 제누301과 하나&해오름의 페인트 과정과 관계설정, 아키와 아키의 부모면접, 그리고 NC에 대한 사회적 차별, 이렇게 네 부분을 들고 싶다.

 우선 박은 '상처 입은 치유자'의 전형이라 여겨진다.  친부모에게서 버려지거나 부모와 이별하게 되어 NC에 들어온 아이들은 모두 부모면접(페인트)을 통해 좋은 부모를 만나 NC출신이라는 낙인을 제거하고 평범한 한 사람으로, 누군가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한 아이의 삶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부모면접과정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페인트를 연결해주는 사람은 센터장 '박'인데, 그는 비록 NC출신은 아니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매우 큰 상처를 지니고 있다. 센터장 '박'이라는 인물은 낳아준 부모와 함께 살고있지만 그 부모들로부터 불행했으며 NC아이들은 부모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인해  불안한 삶을 겪어내고 있다. 결국 한 개인의 삶에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자녀 관계의 유무보다는 그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었는지가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싶다.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수동적인 관계인지 혹은 함께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관계인지에 부모-자녀관계의 방점이 자리한다고 여긴다. 박은 자신이 전자의 관계를 경험했기에, 아이들 각자에게 적합한 '최고의', '완벽한' 부모를 찾아주고자 부단히 애쓴다. (물론 완벽한 부모는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NC센터의 상식 기준에서는 자격미달인 부모가 제누301에게는 이상적인 부모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박'의 모습은 결국 그 본인 자체가 자신의 상처를 발판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감싸려는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기능하기에 , 박이라는 인물이 참으로 많이 마음에 남았다.

 물론 직업에 몰두하는 만큼 가정 안에서의 그는 좋은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NC아이들에게 그는 좋은 부모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여긴다.

 


 "가장 어려운 아이들 곁에 있고 싶었어. 부모를 만난다는 게, 십 년 넘게 센터 생활만 해 온 아이들이 부모를 만난다는 게 마냥 신나고 좋기만 한 일이 아니잖아. 실적이 낮다는 건 부모 만나기를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뜻이지. 그만큼 더 사랑해줘야 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뜻이고."

- 이희영,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페인트』

 


 

  ' 박은 누구보다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범적이고 화목한 가정에서 생활했으리라 믿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박에게서 불우하고 끔찍한 어린시절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가 이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부모를 소개해 주고자 애쓰고, 단 한 명의 아이도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속에는, 채 자라지 못한 아이의 상처를 감싸 안아 보려는 안간힘이 있었다......'

 

- 이희영,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페인트』

 


 '어째서 박이 센터를 찾아오는 프리 포스터들에게 그토록 엄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자신과 같은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부모에게 상처받고 학대받은 기억은 평생을 따라다닐 테니까. 그것은 어쩌면 NC출신이라는 꼬리표보다 더욱 감당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박은 강한 사람이었다. 이토록 올곧은 어른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강철처럼 단단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센터장은 분명 밝은 얼굴로 돌아올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세상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 이희영,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페인트』

 

  작품의 주인공인 제누301과 해오름&하나의 페인트 면접과정은 매우 흥미로운데, 나는 제누301이 하나와 해오름에게 마음을 연 것이 바로 '진솔성'의 힘에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다른 여타의 프리포스터들과는 달리 '완벽한' 부모로 자신들을 포장하지 않았다. 아이를 향한 듣기 좋은 말이나 환심을 사려는 노력 대신 그들이 지닌 상처와 있는그대로의 환경을 그대로 개방했다. '완벽'하기 보다는 '부족한' 사람들임을 전했다. 나는 그 지점이 바로 이들이 바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부모라고 여겼다. 완벽히 착한 자녀가 존재하지 않듯 '완벽히 좋은 부모' 역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보완할 방법을 고민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여겨진다. 하나와 해오름은 그들 의 부족함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숨기지 않음으로서 제누301과 진정한 라포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는 상담장면에서 상담자 또한 내담자에게 이러한 태도, 진솔성 어린 태도와 자기개방이 강조되는 것과 연결된다고 하겠다. (로저스님 찬양합니다..:) )

 


 "더 듣고 싶어요, 저분들의 이야기." 모두들 얼마나 훌륭한 부모 밑에서 성장해는지 자랑하기에 바빴다. 자신들도 뒤늦게나마 그런 부모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니 우리가 따뜻한 가족이 되어 주겠다, 선심 쓰듯이 말했다. 자신이 부모에게 상처받았다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이 두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 이희영, 「어른이라고 다 어른스러울 필요 있나요」, 『페인트』

 

 한편 제누와 친밀한 관계인 귀여운 동생인 아키라는 인물과 아키의 부모면접과정도 마음에 많이 남았다. 제누301이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 어른스러운 아이라면 아키는 아이다운 순수성을 지니고 있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다. 아키가 그에게 맞는 부모를 찾아갈 수 있었던 점이 매우 다행스러웠는데, 한편으로 우리가 아키의 그 어린아이다운 순수성과 그 아이 내면의 사랑과 신뢰를 지켜 줄 수 있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지 한편으로 고민하게되었다. 아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고픈 욕심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소설 속에 묘사되는 NC출신에 대한 차별과 낙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지점들이 여러모로 있었는데, 어쩌면 NC센터는 비단 소설 속 허구의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는 고아원/보육원에 대한 어느정도의 선입견이 있으며, '부모가 없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동정/걱정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과연 부모가 없다는 사실이,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그 사실이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부모와 이별하게 되는데 유년시절 부모와 이별/상실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가엾음/동정의 대상이되고 차별적 요인이 되는 사회현실에 자성하게 된다. '부모의 부재'여부보다는 우리 사회의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으며 어떤 내적 문제를 겪고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심리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깊은 초점을 맞추는 사회로 변모하길 소망한다.

 


 "어른으로서 이런 말,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 있고,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 힘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연약한 존재들을 짓밟지. 특권 의식을 누리려는 거다. 힘 있는 자들만이 아니다. 힘이 약한 사람들도 그런 특권의식을 지니고 있어. 자신도 약하면서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들을 짓밟는 거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 누구나 기피하는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 등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친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은 국가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 너희들에게 묘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너는 영리하고 매력적인 아이다. 누구라도 너를 보면 호감이 생길 거야. 그러나 네가 NC 출신임을 밝히는 즉시 사람들은 너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거다. 그건 제누, 너도 잘 알잖아. 이곳에서 부모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어떤 불이익을 당하고 차별 속에 살아가는지."

- 이희영, 「마지막으로 물어봐도 돼요?」, 『페인트』

 

  책을 2회독한 지금, 초독때 부모면접이라는 소재의 참신성에 대해서 생각했던 반면 지금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얼마나 좋은 자녀인가? 내일로 정말 한국나이 서른이 되는데, 서른이 되는 지금도 여전히 나의 어머니께 '따뜻함'만을 바라고 내가 상정하는 부모에 대한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속상해하는 아이같은 면모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정작 나는 어머니께, 그리고 아버지께 항상 따뜻하지만은 않은 자녀이면서도.

 자녀로서의 내가 불완전하고 부족하듯이, 부모님들도, 그분들도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비록 부모님들의 자녀인 나 앞에서 직접 그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미리 헤아려 생각하는 자녀로서의 마음을 조금 더 넓혀간다면.. 나의 부족함처럼 부모님들도 부족함 많은 한 사람임을 생각하고 그 한계를 받아들인다면, 갈등의 상당한 부분들이 줄어가지 않을까 싶다.  

 좋은 면만 바라고, 좋은면만 보여주기보다는 'Good Enough' - 충분히 좋은 부모 그 자체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부모님의 부족함까지 통합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자녀가 되기를..

그리고 나 자신의 부족함도 통합적으로 수용할 수 건강한 부모자녀관계를 맺어갈 수 있기를..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 이희영,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페인트』

 


 "한 가족이 된 것을 기뻐할 때도 있고, 후회할 때도 있을 거야. 너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야. 얼굴 표정, 목소리만으로 서로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알 정도로 가까워지겠지. 그렇게 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야. 내가 친구들과 그랬듯이. 해오름과 부부가 되었을 때 또 그랬듯이."

 

- 이희영, 「기다릴게, 친구」, 『페인트』

 


"기다릴게, 친구." 

  하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나를 안아 준 프리 포스터는 단 한명도 없었다. 포옹이 가능한 단계까지 페인트를 이어 온 적이 없었으니까. 하나는 나와 단둘이 산책을 하고, 포옹을 해 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아니, 친구였다.

 

- 이희영, 「기다릴게, 친구」, 『페인트』

 


  "이 세상에 처음부터 끝까지 좋기만 한 사람은 없어. 그분들이 너한테 항상 밝고 예쁜 모습만 요구한다면, 너 그럴 수 있어?"

  "네가 할 수 없는 걸 그분들에게 강요하지 마. 나랑 아옹다옹하는 것처럼 그분들과도 마음 안 맞는 일이 분명히 생길 거야. 그분들에게서 좋은 면만 찾지 마. 너도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그러지 않으면 그게 너와 그분들 모두를 힘들게 할 테니까."

- 이희영, 「Parents' Children」, 『페인트』

 


 하나와 해오름은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두 사람은 부모 준비가 끝난 사람들이었다. "실은, 제가 좋은 아들이 될 자신이 없더라고요."

"왜 부모에게만 자격을 따지고 자질을 따지세요? 자식 역시 부모와 잘 지낼 수 있을지 꼼꼼하게 따지셔야죠. 부모라고 모든 걸 알고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은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부모라고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요."

 

- 이희영, 「마지막으로 물어봐도 돼요?」, 『페인트』

by papyros 2020. 12. 31. 16:05

백온유, 『유원』, 창비, 2020.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사전서평단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유원> 가제본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창비 측에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성장소설.성장이란 내게 어떤것일까. 입사식 소설, 이니에이션 소설, 통과제의 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성장소설에는 흔히 소년/소녀나 청년 초기의 인물들이 통과의례를 거쳐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내면에 중요한 변화가 드러난다.

  성장소설의 대표작이 바로 내가 중학시절부터 애착을 지닌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중 『데미안』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어내려가다가 스쳐지나가듯 데미안이 언급되었을 때, 반갑기도 했으며 또한 유원에게도 데미안은 의미있는 작품이었구나, 아마 작가님에게도 그러했겠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나는 성장과 관련된 작품서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유년시절부터 20대 후반까지 애정을 지니고 있는『해리포터』 외에도,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같은 작품은 내 삶에 진정한 인생작으로 꼽을 수 있다. 백온유 작가님의 『유원』 사전서평단을 신청한 이유도 바로 이 작품이 성장소설이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이미 서른이 된 마당에 20대의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지만, 아직도 성장의 화두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나의 내면이, 내 깊은 곳 어딘가의 아이가 자연스럽게 나를 이 책으로 이끌어 주었다.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같은 작품과 유사하게, 『유원』의 주인공인 유원도 언뜻 평범해 보이나 타인과 구별되는 자기서사를 지니고 있다. 이제 열일곱 살인 유원이 고작 다섯 살의 어린 아이였던 12년 전, 집에 불이났을 때 언니가 유원을 구하기 위해 11층 아래로 던진 덕에 길을 지나던 한 아저씨가 유원을 구한 덕에 유원은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열일곱이던 언니예정은 동생을 구하고서 본인은 결국 불길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어느덧 언니와 같은 나이의 열일곱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유원의 뒤에는 늘 그 사건이 맴돌았다.


 불은 순식간에 거실로 옮겨붙었다. 오래된 소파에, 장판, 벽지에 번져 거실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다. 나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후 함께 낮잠을 자다가 일어난 언니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방에서 나온 언니는 이미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불이 번진 거실을 보고 어쩔 줄 몰랐을 것이고 현관 쪽으로는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언니는 욕실로 들어가 온몸에 물을 뿌리고 이불에 물을 부어 축축하게 적셨다. 그리고 내 방 창문을 열어 베란다 쪽으로 넘어갔다. 거실 베란다와 얇은 합판으로 분리되어 있던 내 방의 베란다까지 불이 번지고 있었다. 그때쯤 먼 곳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지나가던 이웃이 연기를 보고 신고한 것이었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자 아파트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11층을 올려다보는 게 보였을 것이다. 언니는 수건을 흔들며 구조 요청을 했다. 사람들은 검게 치솟는 연기 속에서 고개를 내민 생존자를 보고 탄식했다. 불길이 아주, 아주 가까운 곳까지 덮쳐 오고 있었을 것이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31.

 

 

 특히 집에 불이났던 그 사건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유원이 성장한 이후에도 늘 유원이 12년 전 겪은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유원은 암묵적으로 불쌍한 아이이자,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유원의 삶에 당위성으로 작용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유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책임감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아픔을,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슬퍼해야 한다는 논리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청소년기의 발달 단계에 맞게 또래 관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행복을 느끼고 자신의 소망과 열망을 통해 평생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정체성을 탐색하는 시기인데, 유원에게는 그러한 청소년기의 발달 단계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이 의무책임이라는 단어로 대치된다. 심지어 진로마저도 의사나 사회복지사의 길 등이 제시되는데, 타인을 돕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부과되는 것이다.


“얘. 너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너는.” 나는 얼어붙었다.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깨우친 것처럼. 나는 그 길로 도망쳤다. 할아버지는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그 눈빛과 목소리가 아침에도 저녁에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꿈속에서도 맴돌았다. 할아버지는 그 말 외에 덧붙인 것도 없었다. 그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나를 옭아맸다. 그 눈빛 안에, 네가 다른 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려고 하면 될 것 같냐는 말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83.


중학교 때부터 월화수목금토일 내내 학원에 갔다. 엄마 아빠가 강요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자기 주도 학습이 불가능한 나 같은 애는 엄격한 학원에 가야 성적이 오른다는 것을 좀 일찍 스스로 깨달은 것뿐이었다.

나는 더 나태하게 살아도 됐을 것이다. 사고가 없었다면. 나태하게 살면서도 죄책감을 덜 느꼈을 것이다. 실수를 두세 번 반복해도 초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무언가에 쫓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00.

 

 

  이처럼 친구와의 우정속에서 행복하고 즐거워야 마땅할 청소년기에 유원에게 부과되는 의무와 책임감은 결국 유원을 고립되게 만들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예정의 오랜 친구인 신아언니인데, 기실 유원은 신아가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예정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며 무엇보다 유원에 대한 신아의 지나친 걱정과 과보호가 관계를 지배하다보니, 유원과 신아의 관계가 진정으로 건강한/바람직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심지어 유원은 아직까지도 사고 당시에 대한 반복적인 꿈을 꾸는 등 유년시절의 외상으로 인해 PTSD를 겪고 있기도 하다. 여러모로, 유원에게는 마땅히 필요한 상담이나 치료적 접근과 더불어 진정한 관계가 결여 되어있는 상태에 있었다.

 


이마 위로 불똥이 떨어졌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천장에서 나를 움켜쥐려는 불길이 돋아나고 있었다. 화염 너머로 참을 수 없는 비명이 지펴지고 있었다. 비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내 방에서 엄마 아빠가 잠든 방으로, 혹은 내 꿈에서 십이 년 전 나와 언니가 잠든 거실로 아무렇게나 옮겨붙는 불길을 나는 한 번도 멈춰 세우지 못했다.

아는 꿈이었다. 나만 빼고 모든 것을 재로 만들고서야 꺼지는 꿈.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14.

 

 

  특히 유원의 내면을 지배하는 가장 핵심 감정은 바로 죄책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유원에게는 자신을 구하고 정작 본인은 숨지고 말았던 언니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자신을 구하려다 다리를 다친 신씨 아저씨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당연히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왔다. 그러나 자신을 구해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늘 무언가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신씨 아저씨의 모습이 유원에게는 불편하게 비추어진다.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했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96.

 

  작품 속에서 유원의 삶과 내면을 변화시켜주는 인물이 바로 수현인데, 수현은 학급 친구들에게 신뢰받는 친구이며 동시에 옥상 마스터키를 갖고 있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서글서글한 학생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또한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을 정도로 성실한 면면이 드러나는데, 수현과의 관계속에서 유원은 삶에서 최초로 평범한 우정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유원과 유원의 가족을 포함하여, 외상경험이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가 바로 이 평범성에 있을지 모른다. 너무도 평범치 않은 고통을 맞이했기에, 옆에서 건네주는 말 한 마디, 그저 함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평화로움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했다. 옥상에서 보는 노을은 아름다웠다. 너무 붉어서,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아서 넋을 잃게 만들었다. 만약 상처를 받아 취약해져 있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위로를 받거나, 혹은 이걸 봤으니 이제 그만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될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했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69-70.

 


  내 방에는 정말 별게 없었다. 자랑할 것이라고는 덮자마자 잠이 몰려오는 마법 같은 푹신한 극세사 이불, 정도. 수현은 많은 아이들의 방을 구경했겠지. 내 방은 평균은 될까. 그 이하일까. 다른 애들은 친구 방에서 뭘 하고 놀지. 커다란 앨범에 있는 유치원 졸업 사진 같은 걸 보면서 깔깔 웃나. 너는 이런 책을 읽고 컸구나. 우리 집에도 세계 문학 전집 있어. 너도 『데미안』 읽었니, 그러면서? 아니면 새로 나온 화장품을 꺼내 놓고 세상에 똑같은 색깔의 립은 없어. 이것저것 발라 보고, SNS에 올릴 사진을 찍거나.

  나도 수현의 집을, 수현의 방을 보고 싶었다. 왠지 수현의 방에는 구경할 거리가 많을 것 같았다. 책상 위에는 어릴 때 사진,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이 잔뜩 있고, 서랍에는 반드시 초콜릿이나 사탕이, 책상 위는 조금 어지럽지만 수현의 흔적들이 가득할 것 같았다. 캘린더에는 친구 누구의 생일, 특별한 모임 날짜들이 체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94-95.

 

 

  주목할 만한 점은, 수현의 서사가 드러난 이후부터인데, 수현이 사실 유원을 구한 금정동의 호인이자 용감한 시민으로 평가받는 신의석씨의 딸이라는 점은 유원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수현과 유원이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작품 속에서 주요하게 다가온다.

  전술한 바 있듯 사실 유원과는 대조적으로 학교 내에서 반장을 맡으며 학급 아이들의 신망을 받기도 하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등 그 어떤 구김살이나 그늘이 없어 보이는 인물인 수현에게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이 자리한다는 것은 작품 후반부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기능한다. 가정을 파괴하고, 수년이 넘게 유원의 가정에 기생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 그러나 한 생명을 구하기도 했으니 사실은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 등이 교차하는 수현의 내면은 열일곱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을 것이다. 결코 통합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온 그 과정은 길고 지난했다. 그러나 수현이 결국 아버지가 원래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아버지의 부정적인 면을 수용하면서 자신은 그와는 다른 삶을 살 것이라고 유원에게 공언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인데, 독립적인 한 인격으로서, 아버지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당당한 수현의 모습은 유원의 내면에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Blos(1979)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이차적 개별화 과정 (secondary ndividuation process)’으로서, 유아기 시절 경험한 일차 분리-개별화 과정에서 나아가 부모와의 의존적 동일시에서 벗어나 심리적·정서적 독립을 이루는 데 발달 과제가 있는데, 수현은 이를 충분히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다.

 


 

“아빠가…… 해로운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야.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아빠의 행동에 이유를 찾아주게 되거든. 아빠도 아빠다운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라서 그런 거라고, 혹은 한 번도 여유를 갖고 살아 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살면서 누군가를 도와 본 게 처음이라, 은인이 되어 본 것도 처음이고 그런 식의 대접을 받아 본 것도 처음이라 거기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아빠를 가련한 사람으로 만들거든.”

수현의 노력이 가상했다.

“이제 알아. 아빠는 해로운 사람이야. 아빠는 이 세상에 해로워. 너한테도, 나한테도. 아빠는 변하지 않을 거야. 포기해야 돼. 나는 아빠랑 다르게 살 거야. 너도 내 노력을 우습게 보지 마.”

수현은 아빠의 비겁함, 구질구질함, 위선, 아빠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아빠를 아이 달래듯 달래 가며 격려하고, 다독이는 것, 아빠에게 또다시 실망하는 일련의 일들에 지쳐 있었다.

나는 수현에게 미안했다. 이런 것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는 더욱 더. 문득 수현이 꾸준히 해 온 봉사활동들이 떠올랐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빠 생각은 너보다 내가 더 많이 해 봤어. 궁극적인 질문은 이거지. 그래서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이럴 수 있는 걸까. 나는 왜 아빠의 다른 면은 보지 못한 걸까. 아빠는 왜 남들처럼 정직하게 살지 못하고, 누군가를 착취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 아빠 속이 궁금해 나도. 얼떨결에 널 구하고 영웅이 됐지. 아빠는 그날 널 구하지 않았던 게 아빠 인생을 위해서 더 나은 일이었을 수도 있어.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82-183.

 

 

  아버지와는 다른, 고유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당당히 선언한 수현의 모습을 통해 유원의 내면에도 변화의 씨앗이 자리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구해 준 댓가로 지나치게 부모님께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아저씨에게 아저씨의 언행이 부담스러움을 용기있게 고백하는 한편, 신아언니와의 불건강한 관계를 직접 이야기하고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먼저 이야기하게 된다. 수현으로 인해, 유원은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 자신을 옭아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니 예정과 유원은 다른 인격체이며, 부당한 요구에는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유원의 내부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진솔성과 용기가 유원에게도 전이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그늘이, 그 불행한 사건이 내 탓’, ‘내 잘못이 아님을, 그것은 부당하다고 외칠 수 있게 되는 데는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아주는 신뢰로운 관계 안에서, 나를 위해 나서 주는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할 때 가능한 것임을 새삼 통찰하게 된다.

 


 

나는 나를 살린 우리 언니가 싫어.

나는 나를 구해 준 아저씨를 증오해.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24.

 


 

“그때, 제가 너무 무거웠죠.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다리가 으스러진 거잖아요. 죄송해요. 제가 무거워서, 아저씨를 다치게 해서, 불행하게 해서.”

“너…….”

“그런데 아저씨가 지금 저한테 그래요.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95-196.

 

 


 

 “언니, 나는 율이가 좋아. 왜냐하면 내 지인 중에 우리 언니를 모르는 사람은 율이밖에 없으니까.” (중략)

“그러니까 이건, 내가 지금까지 마음 놓고 언니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뜻도 되는 거야. 나는 맨날 불안했어. 언니가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89.

 

 

  문득 세월호 유가족분들, 4.3 5.18 희생자의 가족분들 및 여타 사고와 국가적 문제의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모든 분들께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이 지점에서 성장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본다. 진정한 성장은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고 이를 직면하여,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데에 있지 않은가 싶다. 자신의 PTSD와 관련해 지나친 죄책감을 직면한 유원은 그 죄책감으로 인한 당위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인식하였으며 이제 불필요한 고통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즉 유원이 실존주의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진실한 개인으로서 거듭나기 시작한 바, 이제는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용기있게 자신이 선택한 삶만을 지향하며, 유원이 그 자체의 빛깔을 드러내기를 진실로 바란다.

 


 

“유원아.”

“네?”

아저씨는 무슨 말인가를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기다렸다.

“너, 별로 안 무거웠다. 그냥…… 사람 몸은 원래 약하다. 다 잊어버려라.”

 

- 백온유, 유원가제본, 창비, 2020, 199.

by papyros 2020. 6. 30. 01:37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눈가리고 책읽는당 활동'(버드 스트라이크 가제본 사전 서평단) 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출간 전 양서를 먼저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구병모 작가님과 창비출판사 측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서평 중 인용문의 쪽수(페이지)는 직접 구입한 <버드 스트라이크> 정식 단행본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다친 동물을 감싸기 위해서는 양어깨의 날개를 앞으로 모두 모아야 한다. 따라서 날개가 큰 자일수록 더 큰 동물을 보살필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새의 보호를 받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새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그들은 때가 되거나 필요한 순간이 오면 모두 일정 크기의 이상은 날개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펼쳐 보아도 비오의 날개는 그 자신의 등을 덮기에도 모자랄 만큼 짧고 작았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6쪽.

 


 

  “우리가 하는 말 …… 대강 알아듣지? 너희는 어릴 때부터 우리 말과 벽안인(碧眼人)들의 말까지 모두 배운다고 들었는데.”

비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비오의 엄마의 엄마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시 사람들에게 유구한 세월 들볶이고 형태가 있는 거라면 뭐든 빼앗기는 과정을 거치며 이제는 고원 지대의 고유어를 제대로 기억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지장을 비롯해서 열 손가락 안에나 들까. 마을 행사 때 단체로 부르는 노랫말 정도를 제외하곤 자신들의 말을 쓸 일이 없었다. 고원 지대에 남은 거라곤 이제 한 뼘의 땅과 흐드러진 꽃과 바람 같은 것들뿐. 애당초 그런 것들조차 소유하려 들지 않고 고원의 품에 되돌려주면서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들은, 도시인의 약탈로 인해 그런 꿈을 꿀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0-21.

 


 

 지금은 이미 구병모 작가님의 신작으로 널리 알려진 『버드 스트라이크』의 정식 출간 전, ‘눈가리고 책읽는당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수령하였다. 백색의 표지에 작품의 단서로 #새인간 #작은날개 #영어덜트소설(*Young Adult(YA)소설은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을 의미한다.)이라는 단 세 개의 해시태그(키워드)만 제시되어 있는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지닌 채 작품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내가 읽는 작품의 작가와 책의 제목도 모른 채 책장을 처음 넘겨가는 와중 벽안인익인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생소한 용어에 공간적 배경이나 시간적 배경이 특수한 SF소설인가? 미래소설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졌던 것도 찰나, 작품을 읽어내려가며 익인과 벽안인들의 관계, 그리고 핵심 주인공 비오(익인)와 루(벽안인)가 그들의 집단에서 자리하는 특수한 위치를 읽어낼 수 있었다.

  과학기술과 문명을 지닌 도시에서 살아가는 벽안인들은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유사한 반면, 날개를 가진 사람들인 익인들은 도시의 벽안인과는 떨어져 그들만의 고원지대에서 살아가며 그들만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익인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벽안인들에게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심지어 벽안인들과는 달리, ‘날개를 지니고 있는특수한 인종(人種)으로 여겨져 연구나 실험의 대상으로 자리하기까지 한다.

 


  여러모로 맘에 들지 않는 생활이었지만 청사에서 지내다 보면 가끔 특별한 기회가 있었다. 청사 바에 사는 또래 아이들은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 책에서 사진으로나 보았던 익인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고원 지대에 모여 사는 익인은 날기에 최적화된 작고 가벼운 몸집에 성질은 순한 편이라 들었는데 어쩌다 오늘처럼 떼를 지어 청사를 공격해온 건지, 지적 수준이 도시인들과 같으며 동작이 빠르고 날기까지 해서 생포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잡혔는지 궁금했다. 낮에 그들이 천장과 벽을 두드려 대고 부수는 동안 진동을 일으키는 책상 밑에서 볼썽사납게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루는 이제 가까이서 포로를 관찰하는 특전 정도는 누리고 싶은, 아직은 천진난만하고 무신경한 나이였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감수성이 익인한테까지 미치지는 못했고 그들이 무언가 진귀한 대상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35.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의 벽안인과 익인들 사이에서, 현 시행의 이복(異腹)동생이며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아버지의 고향에서 평화로이 살다가 갑작스레 어머니 아마라와 전() 시행의 재혼으로 정부청사에 들어오게 된 소외된 아이 벽안인(碧眼人) , 그리고 날개가 있는 익인들 사이에서, 익인 어머니와 벽안인 친부(親父) 사이의 혼혈로 태어나 다른 익인들보다 작고 왜소한 날개를 가지고 태어난 익인(翼人), ‘비오’.

  벽안인들의 청사에 납치되어 취조를 받던 비오가 고원으로 도망치기 위해 루를 납치한 다소 기이한 만남으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결국 인종(人種)간의 경계를 넘어 루와 비오가 갖게 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자연스런 이끌림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집단)에서 누구보다 약하고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타인과 동일시(同一視)한다는 것이 위험요소도 분명히 있겠으나, 비오와 루의 경우 이를 통해 외로운/소외된 이들 간의 연대와 유대로 이어졌고 그 외로움을 이해하고 품어 주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선물과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기실 우리 모두가 누군가로부터 평가받거나 판단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축복이나 선물과 같은 귀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난 걸 후회하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부끄럽지도 않아. 사실 축제 날 나 말고 다른 두 친구는 뜨거운 불 앞에서 이미 다른 이들의 청혼을 받았는데, 나한테만 아무도 청혼해 온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의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 말이야.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07.

 


 

“아주 잠깐이라도, 그 인연을 귀하게 여기세요.”

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기에 루는 엉거주춤 일어서려고 했으나 지장은 그대로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어떤 우여곡절을 거쳤든 간에,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나 연결된 데에는 이치가 있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론 설명되는 연결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살아 있는 이유랍니다. 그러니 이어진 끈을 섣불리 자르려 하지 말고 그리로 마음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지내는 동안 루, 당신에게 평안이 있기를.”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26.


 

  작품 내에서 벽안인들과 익인들 사이의 불평등한, 차별적 관계와 루와 비오의 소외된 위치에 대한 내용과 메시지들이 유독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큰 목소리)로 들려오고 그만큼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오래 전부터 2019년을 살아가는 현재까지 이러한 이슈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하며 읽어 온 우리 세대의 명작, 해리포터(Harry Potter)만 해도 마법세계에서 순수혈통과 혼혈, 머글 간의 차별이 핵심이슈로 등장하며 머글 출신이기에 차별받거나 심각한 욕설을 듣기도 하고, 집요정과 같은 존재는 생명체로서의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 최근 10주년을 맞이한 구병모 작가님의 등단작 위저드 베이커리(2009) 또한 말을 더듬고 집안에서 마음 줄 곳이 없는 소외되고 외로운 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바 있다. 그만큼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다시금 차별의 실체와 소외된/외로운 이들 간의 연대와 유대, 존재의 필요에 대해 역설한 버드 스트라이크의 목소리가 반가우면서도 아직도 이러한 문제가 사회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고 동시에 고맙기까지 했다. 비단 다문화가정이나 난민문제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성별(여성/남성), 장애유무, 성적 등 다양한 방면, 어떠한 상황에서 약자이며 소수자일 수 있고 소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빠, 어떻게 좀 해 봐요. 내 작은 날개로는 이 아이를 덮을 수 없어요.

죽어 가는 다람쥐를 안고 속을 끓였던 그 때, 아버지는 뭐라고 했더라.

사막의 밤바람이 부러진 뼈마디를 속속들이 핥고 지나간 비오는 이제 상반신을 완전히 일으켜서 버티고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날개 따위 신경 끄렴.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던가?

-그냥 그대로, 꼭 안아 주면 돼.

그것이 뭐든 간에 자신이 가진 것을 주면 된다고, 아버지는 그랬던 것 같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56.

 


 

“베푸는 겁니다. 무엇이든 나눠 주는 거지요. 자기가 가진 거라면, 하다 못해 한 줌의 체온이라도 말입니다. 조각 내서 나눠 줄 수 없으니 그 순간 눈앞에 있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마음의 전부를 주는 것, 그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58.


 

한편 작품이 영 어덜트(Young Adult) 소설, 즉 성장소설이자 교양소설(입사식 교양소설)로서 정체성을 지니고 자리할 수 있는 성장에 대한 화두또한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익인들의 사회에서 성인이 되는 열여덟 살을 맞는 이행식은 굉장히 중요한 순간으로 다가오는데 루의 항의로 인한 지장의 내적 갈등과 변화 전까지 비오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작은 날개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열여덟살의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행식에 참석할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였다.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를 통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고 예속된다면 그것을 진정한 성장이라 볼 수 있을까?

2019년 대한민국의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성인들이 20-30대에 이르기까지 심리적,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심리적, 경제적 독립이 되어있지 않으니 완벽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이르기에도 어렵다. 주요 애착대상이었던 가족, 부모에게서 온전히 독립하여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혼자 비행하기 위한 독립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작품은 비오의 일화를 통해 이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비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지장이 지니는 문제의식과 비오의 정체성 확립은 익인들 모두와 비오의 성장에 주요하게 자리한다.

 


 

  우리는 열여덟 살을 맞이하는 해에 날을 정해 놓고 다 같이 모여서 이행식을 한단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일. 아이에서 어른으로 건너가는 날. 그 도약을 모두가 함께 축하하는 날. 그해에 열여덟 살을 맞이하는 사람이 비록 한두 명에 불과하더라도 그 날은 마을 전체의 축제일이란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한 해에 한 명은 꼭 있어. 많을 때는 아홉 명까지도 있었고 나 때는 세 명이었지. (중략) 사실 내게는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니었단다. 내 몸의 달맞이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했고, 그날의 축제는 나이를 한 살 다 먹는다는 의미일 뿐 사람의 인생에 어떤 경계나 구획이 명확히 그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축제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누구도 내가 다음에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지 않는데, 그 시간과 함께 아이의 껍질을 벗고 어른이 되었다고 선포하는 행위가 나한테는 새삼스럽게 여겨졌단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05-106.


“그 애는 아닙니다.”

“예?”

“비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올해 열여덟 살이 되긴 하지만 비오는 우리 안에서 온전한 어른으로 지낼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그런 비난에 가까운 폭언을 고스란히 받아 내면서도 비오의 앉은 자세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중략)

“……우리 비오라면서요.”

(중략)

“그래도 실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 전 제 얘기를 코로 들으셨나 봐요. 웅장하고 경직된 청사 안에서 아무도 저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숨 쉬는 것 말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입 밖에 낼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갈 수 있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없었어요. 제가 원해서 그곳으로 간 게 아닌데도요. 그런 저한테도 축복을 이야기하시고서, 이렇게 가까이 있는 비오에게는 이러실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28-130.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지나치게 잘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규격에 맞도록 어깨를 움츠린다는 게, 좋기만 한 일이었을까? 안 그래도 작은 날개가, 비오의 마음에 영향을 받아 더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더 크게 활짝 펼칠 자격이 없다 하면서.

지장은 비오에게서 어른이 될 권리를 빼앗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일인지에 대한 확신이 옅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초원조는…….”

졸고 있는 줄 알았던 옛사람이 문득 입을 열어 소리를 내자 지장은 고개를 들었다.

“아기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간에…… 생긴 그대로 품어 주었네.”

다른 사람들의 불안과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가, 생각보다 너무 길고 가혹한 대가가 되어 그 애에게 영원한 유목민 내지는 이주자의 낙인을 찍어버린 걸까. (중략)

“그러니 그 작은 날개로 어디까지 날겠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이제는 날 수 없는 몸으로 초원조의 부름을 기다리는 옛사람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나.”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45-147.


  비오는 그 전까지 형식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썼던 이행식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실은 자신이 이 문을 통과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얼룩의 자리를 옅은 기대감이 채워나갔다. 비오는 한 명의 당연한 익인이었다. 도대체 날개가 있는데 익인이 아니라면 뭐란 말일까?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87.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본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잊을 수 없다. 그 드라마의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현실을 비판하면서 결국 자녀의 인생이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핵심 메시지로 강조하고 있었다. 구병모 작가의 <버드 스트라이크> 또한 맥을 같이한다. ‘는 비오를 구하면서 자신이 지닌 힘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며 유영기 조종사의 직업을 선택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였고 비오는 어머니와 가족, 익인 사회의 품을 떠나 완벽한 독립을 위한 비행을 시작했다.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청년들의 가능성을 규정하지 않고 그들이 그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끔, 스스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10년간 오랜 사랑을 받은 구병모 작가의 등단작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선택과 ,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최신작 『버드 스트라이크』에서도 이 주제의 맥이 다른 언어와 서사로 그려진다. 루와 비오의 성장을 통해 다시금 청(소)년들에게 성장에 대한 자각을 촉구한 구병모 작가님에게 진실로 감사드리며 10주년을 축하하고 싶다.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선택하는 삶을 통한 성장에 대한 작품들을 더욱 오래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보며 차기작을 다시금 기다린다.

 

구병모, <버드스트라이크>,작가님 사인


 

엄마와 나를 그 집에 두고 먼저 떠난 비오가 원망스럽기도 해. 하지만 그것이 비오의 선택이라면, 존중해 주려고. 비오는 결코 원해서 그와 같은 몸을 하고 이 세상에 온 게 아니니까.

출발하기 전날까지 지장 어른을 비롯해서 아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오랫동안 인사를 나눴어. 그걸 보니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라는 걸, 일시적이며 기분 전환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완전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꼭 그렇게 우리 옆에서 멀어지고 홀로 되어야만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나아가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날아가고 싶은지……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 수 있는 거냐고, 마지막 날 밤까지도 나는 묻지 않았어.

아이들이란 언젠가는 부모를 떠나는 게 맞는 거라고 엄마가 허락한 걸, 내가 무슨 자격으로 따질 수 있겠어.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339-340.


by papyros 2019. 3. 30. 12:07

 

안녕달, 안녕, 창비,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창비출판사 측에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이젠 괜찮아…….”

그의 표정이 미묘해서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고맙소.”라고 말했다. 그날, 소시지 할아버지는 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소시지 할아버지는 이곳에 남게 되었다.

 

- 안녕달, 『안녕』, 창비, 2018, 236-255쪽.

 

 

 수박수영장 이라는 그림책으로 널리 알려지신 안녕달 작가님의 신작 그림책인, <안녕>이라는 그림책을 처음 접했다. 기실 글줄로 된 책에 너무도 익숙해진 터이고, 심지어 종종 즐겨 보는 만화책에조차 적당량의 대사가 담겨있기에, 유년시절 이후 대사가 적은 그림책은 퍽 낯설었다.

적당한 낯설음, 그리고 마치 눈오는 마을을 그린 듯한 표지의 감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적당한 기대를 지니고 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솔직히 당황했다. 그림책에 사람도, 동물도 아닌 웬 소시지? 소시지라는 대상의 의인화는 낯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품으로부터 느껴지는 온기가 마음에 스며들었다. 따뜻하고 사랑 많은 소시지 어머니의 자녀로 태어난 소시지씨가 유년시절을 거치고 늙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소시지씨가 어머니를 여의고 외로워할 때 그에게 한 곰인형과, 흰둥이 강아지가 찾아온 과정... 누군가를 잃고 소외된 소시지씨의 처지와, 다른 강아지들이 모두 분양되어 갈 때 떨이로 전락하고 말고 심지어 그냥 가져가라는 팻말이 붙은 흰둥이에게는 모두 공통적으로 버림 받은 듯한 감정, 외로움, 소외 라는 감정이 관통된다.

 

 무심하게 흰둥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지나가던 소시지씨가 흰둥이를 결국 데려가야만 했던 것도 흰둥이에게서 그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욱 놀라운 건 마지막 4장이었다. 3장에 그려진 소시지씨의 죽음 이후 홀로 남겨진 흰둥이의 행적들을 바로 소시지씨가 사후 지켜보고 있던 것이었다. 지난 겨울 관람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원더풀라이프> 라는 영화에서처럼, 죽음 이후 천국에서 자신의 삶에서 놓고 온 단 한 대상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이 그림책 4장에 그려진다. 소시지씨는 자신의 삶에 놓고 온, 보고 싶은 단 한 대상으로 그의 강아지 흰둥이를 택한다. 홀로 남겨진 흰둥이는 위험천만하게도, 언제 터져버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지 모르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불꽃과 폭탄아이와 함께 다닌다.

 

 

 

 그러나 영상의 말미 불꽃에게 유리모자를 씌워주고 폭탄 아이의 날선 머리(폭탄의 심지부분)을 핥아주는 흰둥이를 보고, 소시지씨가 그제서야 걱정을 내려놓으며 이제 괜찮아를 언급할 수 있었던 데는, 세상에서 아무리 위험하다고 말하는 , 꺼려하는 그 어느 존재일지라도 그들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쓰다듬으며 옆에서 함께 있어줄 때만이 그 아픔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어머니를 잃은 소시지씨가 흰둥이와 곰인형으로부터 위로를 얻고, 모두에게 선택받지 못한 처치 곤란한 존재로 여겨지던 흰둥이가 자신을 거둬 준 소시지씨에게 사랑을 전해주었듯이.

 사랑을 받은 존재만이 또 다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이 그림책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한 권의 그림책이 때로는 300페이지의 여느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보다 더 함축적이고 의미있는 작품일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으며, 어린이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닌, 외로움을 느끼는 많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그림책이라고 여긴다.

 

 

 주변의 아파하는 이들, 소외된 이웃들, 외로움이나 불안을 느끼는 이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꼭 권하고 싶다.

 

 

 

 

 


 

by papyros 2018. 8. 11. 23:01

안재성, 『윤한봉 - 5.18 민주화운동 마지막수배자』, 창비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윤한봉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안재성, 윤한봉

성찬성은 그해 4월 유치장에서 만난 후배 윤한봉의 첫인상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 마주한 그이의 얼굴은 수척했었지만 다부지고 시국과는 무관하게 매우 희망적이었다. 전남대 수괴다운 비범한 풍모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만난 그 짧은 순간에 그이는 초면부지의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이의 진지한 모습은 당시 그이의 처지와 어울리지 않아 나는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좋은 세상이 올 테니 열심히 살자고 했다. 하지만 어디 그럴만한 세상이었던가?”

- 안재성, 윤한봉, 창비, P241.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학창시절 역사 수업시간을 통해, 그리고 여러 대중매체와 자료들을 통해 익히 들 어와 이미 어느 정도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 화려한 휴가를 어머니와 극장에서 보았고, 황석영 작가님의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후 대학에 진학한 이후 도서관 책장 한편에 자리한 그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나 20175, ‘윤한봉이라는 그 이름 석 자를 처음 들었고 내가 아는 역사는 극히 일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으로부터 12년이 지난 후 서울에서 태어난 나에게 그 사건은 역사적으로 무섭고 참담하게 받아들여진다. 도저히 발생해서는 안 될 사건이었고 그 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신 많은 분들의 안타까운, 있어서는 안 될 죽음에 대한 슬픔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에 저항하신 모든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공존한다. 그런데, 기실 그 존경심의 너머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맞서고 싸우고 투쟁해 지켜내고자 하신 광주의 시민 분들에 대한 영웅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자리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마치 일제 강점기 시절 많은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셨듯이.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가 일제 식민치하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이자 영웅으로 여겨지듯이 말이다.

그러나 합수(合水)로 불리는 윤한봉 선생님의 삶을 처음 마주하면서, 윤한봉이라는 한 사람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아가면서 이런 나의 생각이 참으로 일면만을 보는 것이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책을 읽으며 알아가게 된 윤한봉이라는 사람은 결코 영웅이 아니었다. 여기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분들이 영웅이 아니라니 당췌 무슨 이야기인가 의문을 던질 수 있는데, 분명 시대의 의인(義人)임이 분명하지만, 윤한봉을 비롯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당시,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참여적으로 연대한 그 청년들이 우리와는 다른 마치 유충렬이나 조웅과 같은- 고전소설 속 영웅들처럼 신이한 출생과 비범한 풍모를 지니며 적()을 물리쳐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그런  영웅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같이 그저 평범한 한 개인이었을 뿐이라는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독재자의 등장이 없었고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억압되고 짓눌리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윤한봉은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열사/투사가 아니라 그저 평화로이 강호에서 자연을 벗하며 삶의 깨달음을 글로 옮기는 시인이 되어 한국 문단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 독재정치의 그늘이 그저 지금의 나와 같은, 한 청년이 꿈꾸고 미래를 그려나갈 기회를 송두리째 빼앗아 버린 것이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후배 최권행은 윤하농 안에는 시인이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는 윤한봉이 시적 열정으로 가득했고, 막힘없는 묘사와 구수한 달변, 유머, 역사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최권행의 말대로 윤한봉 안에는 시인이 들어 있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지 않았다면 풍요로운 강진 땅에서 목장을 하며 바다와 산을 시로 그렸을 것이다. 개인적 사색에 빠질 마음의 여유가 없던 바쁜 와중에도 그는 고통스럽게 살다 간 이 땅의 민초를 그린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미국에서 쓴 세월의 의미라는 시도 그중 하나다.

- 안재성, 합수,윤한봉, 창비, P272.

 당대 독재정권은 희생된 이들 뿐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이 그저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 또한 앗아버렸다는 점에서 평생을 속죄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윤한봉이 평범한 개인들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윤한봉은 다른 이들이 쉬이 가질 수 없는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순결하여 하얀 별과 같고 따뜻하여 봄 햇살과도 같아 우리는 그를 삶의 나침반이자 소외된 이들의 벗이라 일컬었으나 그는 다만 자신을 합수(合水)라 불리기를 바랐다.’ 그의 별명 합수(合水)란 두 줄기 끈이 합쳐진다는 뜻으로, 호남 지방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의 똥과 오줌이 합쳐진 똥거름을 말한다. 역사와 민중을 위해 인생을 바쳤노라고 말하는 이들은 많지만, 명예도 지위도 돈도 모두 마다하고 스스로 퇴비가 된 이는 드물다. 윤한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 안재성, 책머리에,윤한봉, 창비, P7.

 

 심인보만이 아니라 윤한봉과 오래 활동한 사람일수록 그의 인본주의적 민중운동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한다. 실제 생활에서도 그랬다. 그가 민족학교에서 맡은 직함은 심부름꾼인 소사(小使)였다. 그리고 진실로 소사처럼 살았다.

 비난의 표적이 된 초창기의 민족학교에는 반년이 되도록 찾아오는 이 하나 없었다. 그래도 윤한봉은 손에서 걸레를 놓지 않았다. 문틈이고 창틀이고 닦고 또 닦아 먼지가 앉을 틈이 없었다. 민족학교가 세 든 건물 주위에는 담배꽁초나 종잇조각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바닥에 물걸레질할 때는 꼭 무릎을 끓고 앉아 양손으로 걸레를 밀고 다녔다. 나선 사람이 본다면 생김새며 옷차림이며 하는 짓이 영락없는 청소부요 학교 소사였다.

- 안재성, 고립,윤한봉, 창비, P86-87.

민족학교 창립 반년이 지나면서 청년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일단 윤한봉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청년들은 그에게 빠져들었다. 권력욕도 전혀 없고 궈위적이지도 않은 솔직한 성품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운동권 선배 중에는 좀처럼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빙글빙글 웃으며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만 하면서 실제로는 상대방을 떠보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들이 있었다. 무슨 일에서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상대방을 지도하려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윤한봉은 상대방을 이용해 먹으려는 정치적인 태도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자세라고는 전혀 없었다.

- 안재성, 고립,윤한봉, 창비, P94-95.

 

 윤한봉의 성품, 인격에 대한 서술은 여러 사람들의 입을 거쳐 증언된다.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그 사람을 보아 온 이들보다 윤한봉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이러한 윤한봉의 성품과 인격을 통틀어, 윤한봉이야말로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권위나 지위를 내세우기보다 낮은 자리를 자처해 오로지 희생하고 헌신을 통해 봉사하는 모습, 사실은 민족학교의 교장이라 할 만함에도 불구하고 소사(小使)의 역할을 자처하며 실제로 소사처럼 먼저 나서 낮은 자리에서 겸손된 모습으로 봉사하며 인격적 모범을 보이는 모습, 그리고 특히 소수자와 약자로 향하는 이타주의의 덕목까지 모두 그가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면들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이태석신부님께서 갖추고 있었던 그 성품과 풍모가 윤한봉에게서도 느껴졌다. 자연히 그가 한국의 예수로 불리었다는 이유에 대해서도 짐작이 갔다. 대표적인 서번트 리더가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간관을 가진 사람이 올바른 대중관을 가질 수 있어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올바른 인간관이란 무엇이냐? 인간은 존엄하다. 피부의 색깔이 어떻든, 몸매가 뚱뚱하든, 빼빼하든, 작든 크든, 지체의 부자유자든 아니든, 배웠든 안 배웠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관계없이! 무당이건 똥 푸는 사람이건 시체 화장하는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늙어서 추해진 노인들이건 똥만 내지르는 갓난애건 모든 인간은 위대한 것이고 존엄한 것이다! 만물 중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창조적이고 의식적인 우수한 생명체다! 이런 인간관을 토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 중에서도 서럽고 쓰라린 생활을 하는 민중들, 그들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이 생기는 거죠. 여러 손가락 중에 가장 아픈 손가락에 신경을 더 많이 쓰듯이, 어머니가 제일 못한 자식한테 애정을 쏟듯이! 올바른 인간관에서 올바른 대중관이 나오고 올바른 대중관에서 올바른 대중노선이 관철되고, 올바른 대중노선이 관철될 때만이 올바른 대중운동이 되는 거예요!”

- 안재성, 돌쇠와 곰바우들,윤한봉, 창비, P103-104.

 참담하고 서러운 광주의 한복판에서 시민들의 뜻을 따라 미국으로 도주한 이후 윤한봉은 단 한 번도 그의 가치관과 태도를 저버리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민족학교를 통한 한청련 조직 뿐 아니라 문화운동, 인권에 대한 강조, 나눔에 기초한 대동정신 등....... 특히 당장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곳에서 끊임없이 통일 조국에 대한 이상을 그리며 그에 대한 준비도 지속해 온 바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많은 청년들과 재야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 독재에 맞섰다면 윤한봉은 후방에서 비록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묵묵히 소임을 다하며 독재에 맞서온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귀국한 윤한봉이 본 대한민국 사회 역시 결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귀국 후 나는 변화된 조국 사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엄청나게 돈이 많은 사회, 그러나 정신도 혼도 원칙도 질서도 없고 꿈도 감동도 없는 사회, 악독하고 살벌한 사회, 허세와 과시와 쾌락이 넘치는 사회…… 사람의 생명은 별것이 아닌 사회가 되어버렸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2-343.

 

차별보다는 화평을 추구하고 작은 다름보다는 큰 같음을 추구하는 정신,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정신, 세상 사람을 다 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정신인 대동정신이 대동단결과 도덕적 항쟁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7.

 

특히 시민운동 쪽에서 대동정신을 등한시해요. 삶의 문제, 빈곤의 문제, 실업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 차상위층이라든지 하는 문제들을 등한시해요. () 우리가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 해도 세계 15위 안에 듭니다. 엄청난 부자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서 엄청나게 갈라지기 시작하는 거죠. 비정규직 비율이 호주 스페인 한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높습니다. 이 황당한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으로 대동정신을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대동세상이란 화평한 세상이고, 평화의 핵심은 나눠 먹는 것이며, 모든 부당한 것에 대해 저항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윤한봉의 견해였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8.

 

 윤한봉이 귀국한 것이 1993년이라고 한다. 24년이라는 시간동안 분명 2017년의 대한민국의 경제적 측면은 눈부시게 발전해 IT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이 아닌 사회의 건강성이나 도덕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하지 않았나 싶다. 행정부 수반의 권력 남용, 검찰이나 국회의원의 부정부패 등은 모두 윤한봉이 말한 대동정신의 가치를 따르지 못한 채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찍으며 사회에서 배제하고 자기 자신의 권력욕과 물질에 대한 탐욕을 채워가려는 이기주의, 금권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라 여겨진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데 합수 형님은 통일운동가가가 아니라니까요. 그분은 소수와 약자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우리는 어디를 가더라도 거기에 있는 소수와 약자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만약에 그런 날은 안 오겠지만 만약에 한반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미국에서 코리안이 다수가 되고 백인이 소수가 되면 여기서 백인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된다고 했어요. 우리는 죽어서도 어딜 가든지 소수와 약자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거였거든요.”

- 안재성, 신노선,윤한봉, 창비, P319.

 

 2017년 봄, 행정부의 수반이 새로 선출되어 내각이 다시 구성되면서 우리 사회도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정치인, 법조인, 교육자 등 리더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윤한봉이 지니고 있던 서번트 리더십의 태도를 닮아 모범을 보이며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정의와 배려를 우선에 두는 정책들이 마련된다면, 언론들이, 그리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을 수호하고 부당한 것을 비판하며 끊임없이 사회의 방향을 점검한다면 또 다른 괴물들이 나타나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당한 정권과 비정상적인 사회, 이기적인 개인들에 의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희생된 이들이 꿈꾸던 세상을, 그들 한 명한명이 지니고 개인적인 꿈을 늘 기억하고 그들이 지니고 있던 가치와 태도를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 해 날 때 비정상적인 사회의 4.19, 민청학련 사건, 5.18을 지나 4.16에 이르기까지,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고 그려내며 추모할 때 우리 사회도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그리고 김탁환 작가님의 거짓말이다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4.16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려내는 작업이라면, 이 책이 황석영 작가님의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함께 5.18, 그리고 윤한봉과 더불어 5.18을 겪고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많은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려내는 책으로 오래도록 함께 읽혔으면 한다.

 

가장 무서운 이들이 사람이라고 하지만 결국 김탁환 선생님의 소설 제목처럼, 아름다운 그이 또한 사람이기에, 사람들 안에서 받은 상처는 사람들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

아름다운 그 이, 윤한봉을 만나 의미있는 20175월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걸은 적이 있었기에 이 행성은 아름답다."

진정 윤한봉 같은 사람이 있기에 인간의 바다는 썩지 않고 살아 숨 쉬는 것이리라.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75.

 

 

 

 

by papyros 2017. 5. 31. 11:35

최강욱, 정치의 시대 -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창비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정치의 시대 소책자 사전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중략)

유일하게 주권자인 국민에게만 권력을 딱 한 번 쓴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헌법이 권력이 가지고 있는 속성, 본질에 대해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헌법의 정의대로라면 주권자가 인정하지 않는 권력은 권력이 아닌 셈입니다. 권력은 주권자에게만 있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떻습니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헌법이 그 사실을 보장하고 있다는 게 의외라고 여겨질 정도로 헌법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고, 오남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법에서 규정한 권력에서 크게 벗어나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그들을 옹호하는 구체적인 판결을 예로 들 것도 없습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6-7.

 

나는 고등학생 때 수능 사회탐구 선택과목 중 하나로 법과 정치를 공부하고, 대학 신입생 때 법학과 전공기초 과목인 법학개론을 수강했을 정도로 -심지어 법학과를 부전공하고자 했다. 물론 심리학 복수전공과 교직수업의 방대함으로 인해 취소하고 말았지만- 법학이나 정치 등 사회의 정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다소간의 관심을 가져온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의 대한민국을 지켜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행정부 수반이 주체적으로 자기 몫을 하지 못하고 한 개인에 의존하는 모습, 심각한 정경유착 등이 공개되고 난 후 충격을 금치 못했다. 물론 정치인이나 법조인들의 관행이나 관습,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해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암흑기(독재정치)를 역사책으로 공부한 내게 있어 행정부의 수반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심각성이 피부로 와 닿았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는 유독 정치인들에 특히 국정운영의 중심을 이루는 행정부의 수반(대통령)-대한 국민(책에서 인민이라는 단어의 필요성에 대해 더 명확히 나오지만, 편의상 국민으로 통칭한다.) 들의 기대가 높은 편이다. 이게 나라냐는 자조 섞인 질문 또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헌법 제 1조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듯 보이는 국가. 사리사욕에 앞서 국민들을 우선하지 않는 국가.

많은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며 매우 추운 겨울을 견디어 올해 초 헌재의 탄핵가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이 책의 제목을 질문으로 던져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최강욱 변호사)는 첫 페이지에서부터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 이는 한국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탓이다. 실망스러울지 모르나 생각을 전환시켜 본다면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가 변화된다면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법의 두 축인 검찰법원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제시한다. 두 조직 모두 위계질서에 따른 서열화가 핵심 문제로 등장한다. 우선 검찰의 경우, 검사들이 지니고 있는 막강한 권력인 기소권이 이와 관련해 쟁점이 되는데 이 기소권의 행사에 있어 대상에 따라 기준이 바뀌거나 검찰 조직 내부의 윗사람(검사장 등)의 개입이나 압력에 의해 검사 개인의 법적 판단이 침해 될 수 있다. 법원(사법부)의 경우 법관들의 임명에 있어서, 특히 대법관의 임명에 있어서 여당과 야당, 그리고 여야합의에 의해 선출하는 방식이 적용되고 있는 만큼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고려가 이미 선출에 있어 고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두 조직 모두 서열화문제는 심각한데 가령 성적이 좋지 못하거나 윗선의 눈 밖에 나게 되면 서울중앙지검에 다시 돌아오지 못해 검사로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승진의 기회가 막혀버리며 판사(법관)의 경우에도 초기 발령을 성적순에 따라 획일적으로 배치할 뿐 아니라, 고등법원 부장판사라는 요직에 승진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뒤따른다.

이렇듯 저자가 지적한 법조계의 문제는 몇 달 전 읽었던 김두식 선생님의 불멸의 신성가족의 화두와도 정확히 일치했다. 국민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법조인들이 소수의 국민들에게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점, 그리고 정치인 뿐 아니라 판사나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지나치게 신성화 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특히 성적이나 조직 내 순위에 의해 서열화 되어 같은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차별을 두는 것은 그 권력과 권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신성화작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과 일부 판사들은 정의의 여신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눈을 떠서 당사자의 사정을 세세하게 살피고 헤아리며, 그런 후에 저울에 달아서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판단을 해보다가, 그래도 부족하면 책을 펼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정확한 판결을 내린다.

(중략)

대다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당사자의 신분과 지위를 확인해서 봐줄 사람인가 아닌가를 식별한 후에 형식적으로 저울에 다는 척을 하다가, 손에 든 장부를 보고 나에게 뭘 갖다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다음 심판한다.

어떻습니까? 후자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릴 듯한데, 바로 이 점이 대한민국 사법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21-22.

 

 

 

검경 조직이 자신의 법적인 양심에 따라 기소권을 행사하고, 법원이 약자들의 편에서 공정한 재판을 가할 때, 즉 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올 때 비로소 판사로서, 그리고 검사로서 이상적 모범이 되는 법조인들이 증가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법조계 내부의 자성적 기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기에, 사법 조직 개혁을 단행하려면 행정부나 국회 등 정치권의 문제의식이 자리해야하며, 법조계와 이해관계가 없는 인물이 개혁을 진행해야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조국교수의 민정수석 임명은 첫 단추가 잘 꿰매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절차와 행정절차의 관계를 재정립해 나가고자 하는 데 그 방향을 지니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개혁이 다시금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갈등과 충돌에 있어 국민들의 건전한 법 상식을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과 법조인의 유착과 정경유착 등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교육현실에서 해결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겠다. 법조인들은 학창시절 성적이 뛰어나 모범생’, ‘우등생으로 불리는 이들이었고,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부의 서열화가 자행되어 있어 우수한 인재로 상급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즉 학창시절 우등생으로서 급우들을 통제하는 한편 교사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저 당연히 해야 될 것이기에, 명령을 따라야 인정받을 수 있기에 그 어떤 비판의식 없이 상급자(대통령, 검사장, 부장판사 등)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제 2의 아이히만을 양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다. 때문에 법조인들이나 정치인들의 그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고자 할 때 이를 제어하고 비판할 수 있는 국민들의 시선, 그리고 법조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나와는 멀리 있는저 너머의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 법적 도움을 제공하는 조력자일 뿐이며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신성화의 해체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서열화되어 있으며 획일화된 학벌위주의 교육 현실을 바로잡고 대학진학 및 직업 선택에 있어 특정 직업군의 이들이 지나치게 신성화되지 않고 고유한 직업윤리를 지닐 수 있도록 윤리 및 가치관교육, 직업의식, 그리고 교육 평준화가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목고나 자사고 등 학습자 간 교육 격차를 확대할 수 있는 학교들의 폐지 또는 전환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단적으로 의사 면허는 합법적 살인 면허라는 한 의대생의 발언은 특정 직업을 신성화하며 특권화 해 온 우리 사회의 부정적 단면이라 하겠다. 서열화를 통해 학습자들을 줄 세우고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유하고 토론하고 논의하여 나와 다른 의견과 생각, 가치를 지니고 있는 타자의 의견을 조화롭게 반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문화를 변화시켜 나갈 때 법조계와 정치계의 문제도 해결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법이 정치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기보다 정치를 통해 올바른 법이 만들어지고, 법을 집행하거나 법을 통해 판단하는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주권자의 입장에서 가장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올바른 정치는 주권자의 뜻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법은 당연히 정치의 아래에 놓여야 하지요.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법이 올바로 만들어지고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주권자에겐 일종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111.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by papyros 2017. 5. 25. 13:50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 책읽는당 『아몬드 사전 서평단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출간 전 비매품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손원평, 아몬드』, 창비, 2017.

 

*본문의 인용구 페이지는 출간된 도서를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위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애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아몬드는 어딘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 손원평, 아몬드, 29.

 

이 작품에는 편도체-아미그달라의 이상으로 감정-특히 공포나 불안, 두려움 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조금 특별한 17세 소년 윤재(선윤재)의 성장과정이 그려져 있다. 유년 시절 눈앞에서 한 아이의 죽음을 보고도,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윤재의 열일곱 생일날 한 남자의 무차별 살인으로 인해 갑작스레 닥친 할멈(할머니)의 죽음과 칼에 찔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도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윤재를, 사람들은 마치 이상한 괴물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대한다.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으로 인해 학교에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윤재의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윤재가 정상적인’, ‘평범한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감정과 감정의 반응에 대해 교육시켜왔다.

‘- 복잡한 것까진 몰라도, 기본은 꼭 알아야 해. 그렇게만 해도 조금 메말랐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정상범주에 속할 거야.

사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 손원평, 아몬드, 38.

 

 

- 엄마도 네가 이렇게 지내는 걸 원하시지는 않았을 거다.

- 엄만 제가정상적으로 살길 원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 바꾸어 말하면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 평범…….

내가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같은 것. 굴곡 없이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얻고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 튀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

-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이루기 가장 어려운 가치란다.

- 손원평, 아몬드, 89-90.

 

 한편 곤이(윤이수) 또한 윤재와 같이 사람들에게서 괴물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곤이는 유년 시절 놀이동산에서 부모님과 헤어져 이후 보호시설에서 지내다 입양 후 다시 파양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여러번 사고를 쳐 소년원에 들락거리는 삶을 살아가 부모님을 다시 만난다. 걸핏하면 폭력을 휘드르고, 교사들의 수업 진행을 방해하거나 잦은 욕설을 사용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곤이는 소위 문제아로 불리며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윤재는 비록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할지언정 그 누구보다도 타인과 소통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독서량이 풍부해 지식이 많을뿐더러 성장과정에서 할멈과 엄마로부터 받은 충만한 사랑을 늘 추억하고 있다.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 손원평, 아몬드, 171-172.

 

 

곤이 또한 그가 정말 천성이 나쁜아이라서, 폭력을 행사하고 반항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찾지 못한 후 곤이는 여러 번 거처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파양당하며 버려진 경험이 있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부모님을 찾았지만 친어머니의 임종도 떳떳하게 보지 못했고 , 아버지는 자신과 소통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버려지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내적 자아를 지니고 있는 곤이는 다시 고통 받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강해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만 그 강함을 어른들이 규정해 둔 세계에 반항하고 질서를 위반하는 과시적 욕구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곤이가 신뢰할 만한 어른들에게, 혹은 학교/청소년상담사와 상담을 받으며 유기되는 것에 대한 불안’, ‘이해와 소통의 욕구를 해소한다면 곤이의 문제행동 또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고통이라는 감정에 공감하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나비의 날개를 찢으면서까지 윤재와 소통하고자 하는 장면을 통해 곤이의 진실성과 순수성 또한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윤재의 내면을 이해하며 곤이를 좋은 아이라고 바라보는 것은 윤재뿐이다. 바로 그 때문에 곤이는 윤재와 단 둘이 있을 때만은 다른 누구에게 보이지 않는 속마음을 깊이 터놓을 수 있었다.

 

 

- 그 남자는 말이야…….

곤이가 말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그 사람이 날 만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 강남에 있는 학교에 날 처넣은 거였어. 거기 가면 내가 모범적으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라도 갈 줄 알았나봐. 근데 첫날 가보니까 나 같은 놈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물인거야. 날 보는 눈빛 하나하나에 그렇게 써있더라고. 그래서 깽판을 좀 쳐 줬지. 거긴 얄짤 없더라. 하루 만에 쫓겨났어.

곤이가 콧바람을 불었다.

간신히 전학시킨 게 여기야. 그나마 인문계라 체면은 섰겠지.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 손원평, 아몬드, 166-167.

 

 

불과 몇 달 전의 기억이 아련하게 머릿속을 오갔다. 나비의 날개를 찢던 날, 곤이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다가 실패한 그날, 어스름이 내리던 무렵, 바닥에 짓이겨진 나비의 잔해를 닦아 내며 곤이는 몹시 울었다.

- 아무런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싶어.

눈물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조금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기엔 넌 너무 감정이 풍부하거든. 넌 차라리 화가나 음악가가 되는 편이 더 어울릴걸.

곤이가 웃었다. 물기 어린 웃음을.

- 손원평, 아몬드, 248.

 

 

윤재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과 곤이의 마음 깊은 곳 진실한 내면을 바라보면서, 한 개인이 지닌 외적인 부분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해 그 내면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성급히 낙인찍는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는 중요한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특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음에도 타인의 고통, 타인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나서서 돕기보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범인凡人들과 달리 윤재는 곤이가 위험에 마주했을 때 진심을 전하고 곤이를 구해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 직접 위험과 대면하는 용기를 보인다.

즉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편도체의 크기와 같은 장애나 질환, 혹은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한계로 인해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삶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실천하느냐의 문제에 달려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실직(해고)된 노동자 등 사회 문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한다는 문제도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공감하는 마음을 그저 마음에만 품고 있지 않고 실천적 행동으로 옮기는 것. 나 또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행인 중 한명이 아니었던가 싶은 마음에 부끄러워진다.

 

 

내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처음엔 할멈을 찌른 남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점차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중략)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엄마와 할멈을 뻔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것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당시 성가대원 중 한 사람이 했던 인터뷰가 뇌리에 떠다녔다. 남자의기세가 너무나 격렬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손원평, 아몬드, 244-245.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가 칼에 찔린 그 사건 뒤로 심박사에게 삶의 조언을 얻고, 곤이와 소통하며 진실한 우정을 배우고 고통과 두려움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통찰했으며 도라(이도라)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깨달을 뿐 아니라, 특별한 존재가 된 도라에게는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내밀한 마음을 고백한다.

 

 

불을 끄고 책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겐 풍경처럼 익숙한 냄새였다. 그런데 거기 무언가 다른 게 실려 있었다. 갑자기 마음속에 탁, 하고 작은 불씨가 켜졌다. 행간을 알고 싶었다. 작가들이 써 놓은 글의 의미를 정말 알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깊은 얘기를 나누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왔다. 도라였다.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말하고 싶었다. 마음에 떠오른 불씨가 꺼지기 전에.

- 나 언젠간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 도라의 눈망을이 뺨을 간질였다.

- 나도 이해 못하는 나를,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 이해.

- 손원평, 아몬드, 206-207.

 

 

즉 기존의 세계에서 가족을 상실한 후 새로운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결과적으로 윤재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도 기적적으로 회복되며 마무리된다. 편도체의 문제로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평가하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의사들의 확정적 진단을 넘어서 윤재의 소통하고 이해하며 진심을 다하고자 하는 내면의 노력이 결국 뇌(편도체)의 문제를 극복해낸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야, 사람의 머리란 생각보다 묘한 놈이거든.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사가 웃었다.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나는 곤이와 도라와 함께 보낸 지난 몇 개월을 짧게 회상했다. 그리고 곤이가 후자로 자라고 변하기를 바랐다. 그 전에 좋은 방향이 어떤 것인지부터 고민해야겠지만.

- 손원평, 아몬드, 252-253.

 

책장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너무나 마음을 울리는 문구들이 많았던 이 소설은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 우정, 고통과 두려움, 불안 등 감정들을 다룰 뿐 아니라 진정한 공감이란 실천적 행동의 수반에 있음을, 그리고 삶의 좋은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찾은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을 위해 노력해 나갈 때 변화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좋은 방향을 고민하며 그저 달리는 개개인 모두의 삶이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이 소설을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청소년들, 새로운 관계를 마주하며 청소년기에 마주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변화와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청년들, 외적인 문제행동만으로 학습자(청소년)들을 쉽게 낙인찍으려하는 일부 교사들을 비롯해 선입견을 지니고 타인을 바라보는 어른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이들……. 그들 모두와 함께 읽고 소통하며 성장해나가고 싶다. 삶을 살아가며 그 삶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는 만큼, 자신이 느끼는 것 그대로 행동하는 만큼 어느 새 한 발짝 나아가 있을 것이다.

 

누워있는 동안 같은 꿈을 자주 꿨다. 운동회가 한창인 운동장이다.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태양 아래 나와 곤이가 서 있다. 무척 뜨겁다. 앞에서 달리기 시합이 펼쳐지고 있다. 곤이가 씩 웃으며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준다. 손을 펼치자, 반투명한 구슬이 손바닥 위를 또르르 구른다. 중간에 웃는 표정 같은 둥근 선이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구슬을 굴리자 붉은 선이 방향을 바꾸며 울었다 웃었다 한다. 자두 맛 사탕이다. 사탕을 입안에 넣는다. 달콤하고 새콤하다. 침이 고인다. 혀로 사탕을 굴린다. 이따금씩 사탕이 이빨과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낸다. 갑자기 혀가 저릿하다. 짭짜름하고 시큰하다. 비리기도 하고 쓰기도 하다. 그 사이로 다디단 향이 올라와 나는 정신없이 코를 킁킁댄다.

, 어디선가 출발 신호가 공기를 울린다. 우리는 지면을 밀어내며 달리기 시작한다. 시합이아니라, 그저 달리기다. 우린 그냥 몸이 공기를 가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 손원평, 아몬드, 249-250.

 

 

 

여기서부터는 아주 다른 얘기다. 새롭고, 알 수 없는.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 따윈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일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 손원평, 아몬드, 258-259.

 

 

 

 

 

 

 

 

by papyros 2017. 4. 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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