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1. 배송 인증 + 필사 1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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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역시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온라인 필사모임에 참여했다. 좋은 책을 읽고, 필사하고 사유하는 것 만큼 더 의미있는 일이 있을까 싶다.

 

 붓펜이 조금 늦게 오기는 했으나, 멋진 책과 노트, 그리고 붓펜까지... 필사준비 완료! 노트는 좀 아끼고 예전에 민음사에서 받은 다른 노트를 먼저 사용할 생각이지만...!

배송 후 어느덧 <일일공부> 한 챕터를 완독했다. (57페이지까지).

그저 편안히 하루에 한두장씩을 읽으며 필사하다보면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글이 참 많았다.

 

 

 

 

필사한 모든 문장이 마음에 남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부분은 11장, '없어야 할 하나의 감정'이라는 부분이었다.

후회라는 감정이 없는 그것에 대해 필사하면서, '아- 나는 얼마나 칠정을 절도에 맞게 지켜왔는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게 한 문장이었다.

 따로 게시글을 올리고자 하지만 최근에 읽은 유시민 작가님께서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인 스물일곱에 옥중에서 쓰신 <항소이유서>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려 본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유시민,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돌베개, 2017, E-book 38쪽

 

슬픔과 노여움이라는 칠정의 자연스런 감정을 지니고, 인권을, 국가의 윤리와 양심을 되찾고자 투쟁하셨기에, 그 감정에 충실한 절도를 지키셨기에 지금의 2017년이 왔고, 비록 사회적으로는 아직 미비한 부분이 분명 많지만 유시민 작가님 개인적으로는 부당한 것에 비판하고 저항한 데에  후회가 없으시지 않을까.

 

나도 이와 같이.. 끊임없이 사유하고, 이 세계를 사랑하면서 후회없는 삶을 지향하며 성장해 나가고 싶다. 

 

 

'후회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인께서 여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는

 일곱가지 감정이 모두 절도에 맞는다면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감정이 절도에 맞지 않은 다음에야 후회가 생긴다. 그러니 후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감정이 아니다.'

 

- 장유승, 「 011. 없어야 할 하나의 감정」, 『일일공부』, 민음사, 2017, P38-39.

 

 

 

 

 

by papyros 2017. 7. 12. 17:57

이샤(一沙), 마음, 그림에 담다』, 베이직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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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네이버 카페 MBTI&Health 서평 이벤트 활동의 일환으로,  베이직 북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드디어 빛바랜 노트를 폈다. 오래된 탓에 몇몇 부분은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 동안 페이지를 넘기다 마지막 부분에서 내가 찾던 단어를 발견했다. ‘, 나무, 사람.’

- 이샤(一沙), 마음, 그림에 담다, 베이직북스, P21.

 

* 이 자료는 이 서평을 쓰는 필자가 대학, 대학원에서 수강한'심리검사' 강의 수업자료 중 일부입니다.

 

 

 HTP 검사(-나무-사람 그림검사)Rorschach 로르샤흐(로샤) 검사 ·SCT(문장완성검사) · MMPI(다면적인성검사) · BGT(벤더 게스탈트 검사) · TAT(주제통각검사) · K-Wais(성인) K-wisc(청소년) (지능검사)와 함께 심리검사의 Full Battery(풀 배터리’, 종합심리검사심리검사를 시행할 때 개인의 심리적 특성이나 정신건강을 평가하기 위해 심리검사들을 묶어서 사용하는 것을 배터리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지능검사, 임상진단용 다면적 인성검사 MMPI, 투사적 성격검사 Rorschach 검사, 주제통각검사 TAT, 그리고 문장완성검사 등을 포함한다. / 박영숙·박기환 7, 최신 심리평가, 하나의학사, 2010, 172, 각주 4).)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학부 시절 심리학을 복수전공 했기 때문에 나 역시 학부 시절 심리검사수업과 대학원 시절 타전공 자유선택과목으로 수강했던 상담심리검사수업을 통해 HTP 검사의 성격과 기능, 해석 방법 등에 대해 배웠고 강의시간을 통해 직접 그려 보았기 때문에 HTP검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HTP검사가 지닌 투사적 검사(투사적 검사란 수검자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검사로, HTP 검사 ·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ink blot test) · 주제 통각 검사(Thematic Apperception Test, TAT) · 가족화(Kinetic Family Drawing) · 문장 완성 검사(Sentence Completion Test, SCT) 등이 대표적인 투사 검사에 속한다.) 의 속성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MMPISCT 검사 등에 비해 내 무의식 속에서 HTP검사는 다소간 덜 중요하게 생각되어왔다.

 기실 이 책을 읽기 전만해도 과연 HTP 검사만으로 내담자의 내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HTPMMPI-2와 같은 객관적 검사와 함께 실시될 때 효과적인 것이지 단독으로 시행했을 때도 효과적일까?’ 라는 의구심이 자리했는데 이 책은 이러한 나의 의구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최근에 청소년상담사 자격연수를 마무리 한 후, 개인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개인상담 회기 중 HTP 검사를 받은 후에 책을 일독하게 되어 마음에 와 닿는 부분들이 더욱 많았다.

 임상심리, 특히 그림상담분야에 경험이 많은 심리상담사/임상전문가인 저자(著者) 이샤(一沙)는 그 본인의 진로 선택에 대한 갈등에서부터 실업으로 인해 맥도날드에 출근하던 청년에 이르기까지 HTP 검사를 활용해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해 나가고 내담자들 내부에 자리하고 있지만 꺼내어 바라보지 못했던 여러 심리적 문제와 가족환경, 갈등을 바라보고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 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HTP 검사의 해석방법 가령 지평선은 안전감 결여를 보여주고 사과나무를 그린 수검자는 애정과 인정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점, 많은 창문은 개방과 외부환경에의 접촉을 소망한다는 등 그림에 대한 해석은 분명 많은 상담사와 임상 전문가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며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HTP 검사를 실시하고 활용할 때에 있어 시각태도에 있다고 여긴다. HTP 검사의 해석 방법은 이 책 뿐 아니라 심리검사와 관련된 전공 서적들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 지식이지만 이 책에서 수많은 수검자들에게 실시한 HTP 검사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비록 수검자 모두 HTP 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유사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내담자마다 개인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각기 다른 심리적 화두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자발적 내담자들에게 부담 없는 게임이나 놀이와 같이 다가갈 수 있으며 꼭 상담 장면이 아니더라도 간단히 활용할 수 있는 HTP 검사를 통해 상담 초기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 라포를 보다 쉽게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성과 효용성이 높을 수 있다는 강점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학교현장, 혹은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곳에서 교육자이자 상담자로서 자리하고자 하는 만큼, 비자발적 청소년 내담자들을 마주할 일이 많을 것인데 이 책을 통해 얻은 HTP 검사의 강점과 본질을 기억하며 상담 장면에서 적절히 활용한다면 내담자와의 라포 형성, 그리고 내담자 내면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데 영향을 주어 상담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HTP 검사의 가치와 본질을 이해하고 발견할 수 있는 이 책을 주변의 수많은 교육자, 상담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상담사의 일방적인 설명과 해결방안의 제시가 HTP 검사의 목적이 아니다. 내담자의 마음 속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내담자 스스로가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 두었던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것이 바로 HTP 검사의 목적인 것이다.

 

- 이샤(一沙), 마음, 그림에 담다, 베이직북스, P161.

 

 

 

이 사례를 이해하면 왜 이렇게 그렸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앞으로 HTP 검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야. 가장 핵심적으로 봐야 할 부분은 피검사자의 자기 이야기야. 안전감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사람마다 원인은 다르니 그에 따른 결과도 다를 수밖에.”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HTP 검사를 해보니 그림이 내포하는 의미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파악해야 해요.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 이샤(一沙), 마음, 그림에 담다, 베이직북스, P200.

 

 

 

 

 

by papyros 2017. 6. 23. 21:51

안재성, 『윤한봉 - 5.18 민주화운동 마지막수배자』,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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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윤한봉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안재성, 윤한봉

성찬성은 그해 4월 유치장에서 만난 후배 윤한봉의 첫인상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 마주한 그이의 얼굴은 수척했었지만 다부지고 시국과는 무관하게 매우 희망적이었다. 전남대 수괴다운 비범한 풍모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만난 그 짧은 순간에 그이는 초면부지의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이의 진지한 모습은 당시 그이의 처지와 어울리지 않아 나는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좋은 세상이 올 테니 열심히 살자고 했다. 하지만 어디 그럴만한 세상이었던가?”

- 안재성, 윤한봉, 창비, P241.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학창시절 역사 수업시간을 통해, 그리고 여러 대중매체와 자료들을 통해 익히 들 어와 이미 어느 정도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 화려한 휴가를 어머니와 극장에서 보았고, 황석영 작가님의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후 대학에 진학한 이후 도서관 책장 한편에 자리한 그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나 20175, ‘윤한봉이라는 그 이름 석 자를 처음 들었고 내가 아는 역사는 극히 일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으로부터 12년이 지난 후 서울에서 태어난 나에게 그 사건은 역사적으로 무섭고 참담하게 받아들여진다. 도저히 발생해서는 안 될 사건이었고 그 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신 많은 분들의 안타까운, 있어서는 안 될 죽음에 대한 슬픔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에 저항하신 모든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공존한다. 그런데, 기실 그 존경심의 너머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맞서고 싸우고 투쟁해 지켜내고자 하신 광주의 시민 분들에 대한 영웅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자리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마치 일제 강점기 시절 많은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셨듯이.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가 일제 식민치하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이자 영웅으로 여겨지듯이 말이다.

그러나 합수(合水)로 불리는 윤한봉 선생님의 삶을 처음 마주하면서, 윤한봉이라는 한 사람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아가면서 이런 나의 생각이 참으로 일면만을 보는 것이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책을 읽으며 알아가게 된 윤한봉이라는 사람은 결코 영웅이 아니었다. 여기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분들이 영웅이 아니라니 당췌 무슨 이야기인가 의문을 던질 수 있는데, 분명 시대의 의인(義人)임이 분명하지만, 윤한봉을 비롯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당시,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참여적으로 연대한 그 청년들이 우리와는 다른 마치 유충렬이나 조웅과 같은- 고전소설 속 영웅들처럼 신이한 출생과 비범한 풍모를 지니며 적()을 물리쳐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그런  영웅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같이 그저 평범한 한 개인이었을 뿐이라는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독재자의 등장이 없었고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억압되고 짓눌리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윤한봉은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열사/투사가 아니라 그저 평화로이 강호에서 자연을 벗하며 삶의 깨달음을 글로 옮기는 시인이 되어 한국 문단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 독재정치의 그늘이 그저 지금의 나와 같은, 한 청년이 꿈꾸고 미래를 그려나갈 기회를 송두리째 빼앗아 버린 것이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후배 최권행은 윤하농 안에는 시인이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는 윤한봉이 시적 열정으로 가득했고, 막힘없는 묘사와 구수한 달변, 유머, 역사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최권행의 말대로 윤한봉 안에는 시인이 들어 있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지 않았다면 풍요로운 강진 땅에서 목장을 하며 바다와 산을 시로 그렸을 것이다. 개인적 사색에 빠질 마음의 여유가 없던 바쁜 와중에도 그는 고통스럽게 살다 간 이 땅의 민초를 그린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미국에서 쓴 세월의 의미라는 시도 그중 하나다.

- 안재성, 합수,윤한봉, 창비, P272.

 당대 독재정권은 희생된 이들 뿐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이 그저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 또한 앗아버렸다는 점에서 평생을 속죄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윤한봉이 평범한 개인들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윤한봉은 다른 이들이 쉬이 가질 수 없는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순결하여 하얀 별과 같고 따뜻하여 봄 햇살과도 같아 우리는 그를 삶의 나침반이자 소외된 이들의 벗이라 일컬었으나 그는 다만 자신을 합수(合水)라 불리기를 바랐다.’ 그의 별명 합수(合水)란 두 줄기 끈이 합쳐진다는 뜻으로, 호남 지방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의 똥과 오줌이 합쳐진 똥거름을 말한다. 역사와 민중을 위해 인생을 바쳤노라고 말하는 이들은 많지만, 명예도 지위도 돈도 모두 마다하고 스스로 퇴비가 된 이는 드물다. 윤한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 안재성, 책머리에,윤한봉, 창비, P7.

 

 심인보만이 아니라 윤한봉과 오래 활동한 사람일수록 그의 인본주의적 민중운동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한다. 실제 생활에서도 그랬다. 그가 민족학교에서 맡은 직함은 심부름꾼인 소사(小使)였다. 그리고 진실로 소사처럼 살았다.

 비난의 표적이 된 초창기의 민족학교에는 반년이 되도록 찾아오는 이 하나 없었다. 그래도 윤한봉은 손에서 걸레를 놓지 않았다. 문틈이고 창틀이고 닦고 또 닦아 먼지가 앉을 틈이 없었다. 민족학교가 세 든 건물 주위에는 담배꽁초나 종잇조각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바닥에 물걸레질할 때는 꼭 무릎을 끓고 앉아 양손으로 걸레를 밀고 다녔다. 나선 사람이 본다면 생김새며 옷차림이며 하는 짓이 영락없는 청소부요 학교 소사였다.

- 안재성, 고립,윤한봉, 창비, P86-87.

민족학교 창립 반년이 지나면서 청년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일단 윤한봉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청년들은 그에게 빠져들었다. 권력욕도 전혀 없고 궈위적이지도 않은 솔직한 성품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운동권 선배 중에는 좀처럼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빙글빙글 웃으며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만 하면서 실제로는 상대방을 떠보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들이 있었다. 무슨 일에서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상대방을 지도하려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윤한봉은 상대방을 이용해 먹으려는 정치적인 태도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자세라고는 전혀 없었다.

- 안재성, 고립,윤한봉, 창비, P94-95.

 

 윤한봉의 성품, 인격에 대한 서술은 여러 사람들의 입을 거쳐 증언된다.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그 사람을 보아 온 이들보다 윤한봉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이러한 윤한봉의 성품과 인격을 통틀어, 윤한봉이야말로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권위나 지위를 내세우기보다 낮은 자리를 자처해 오로지 희생하고 헌신을 통해 봉사하는 모습, 사실은 민족학교의 교장이라 할 만함에도 불구하고 소사(小使)의 역할을 자처하며 실제로 소사처럼 먼저 나서 낮은 자리에서 겸손된 모습으로 봉사하며 인격적 모범을 보이는 모습, 그리고 특히 소수자와 약자로 향하는 이타주의의 덕목까지 모두 그가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면들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이태석신부님께서 갖추고 있었던 그 성품과 풍모가 윤한봉에게서도 느껴졌다. 자연히 그가 한국의 예수로 불리었다는 이유에 대해서도 짐작이 갔다. 대표적인 서번트 리더가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간관을 가진 사람이 올바른 대중관을 가질 수 있어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올바른 인간관이란 무엇이냐? 인간은 존엄하다. 피부의 색깔이 어떻든, 몸매가 뚱뚱하든, 빼빼하든, 작든 크든, 지체의 부자유자든 아니든, 배웠든 안 배웠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관계없이! 무당이건 똥 푸는 사람이건 시체 화장하는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늙어서 추해진 노인들이건 똥만 내지르는 갓난애건 모든 인간은 위대한 것이고 존엄한 것이다! 만물 중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창조적이고 의식적인 우수한 생명체다! 이런 인간관을 토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 중에서도 서럽고 쓰라린 생활을 하는 민중들, 그들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이 생기는 거죠. 여러 손가락 중에 가장 아픈 손가락에 신경을 더 많이 쓰듯이, 어머니가 제일 못한 자식한테 애정을 쏟듯이! 올바른 인간관에서 올바른 대중관이 나오고 올바른 대중관에서 올바른 대중노선이 관철되고, 올바른 대중노선이 관철될 때만이 올바른 대중운동이 되는 거예요!”

- 안재성, 돌쇠와 곰바우들,윤한봉, 창비, P103-104.

 참담하고 서러운 광주의 한복판에서 시민들의 뜻을 따라 미국으로 도주한 이후 윤한봉은 단 한 번도 그의 가치관과 태도를 저버리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민족학교를 통한 한청련 조직 뿐 아니라 문화운동, 인권에 대한 강조, 나눔에 기초한 대동정신 등....... 특히 당장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곳에서 끊임없이 통일 조국에 대한 이상을 그리며 그에 대한 준비도 지속해 온 바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많은 청년들과 재야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 독재에 맞섰다면 윤한봉은 후방에서 비록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묵묵히 소임을 다하며 독재에 맞서온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귀국한 윤한봉이 본 대한민국 사회 역시 결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귀국 후 나는 변화된 조국 사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엄청나게 돈이 많은 사회, 그러나 정신도 혼도 원칙도 질서도 없고 꿈도 감동도 없는 사회, 악독하고 살벌한 사회, 허세와 과시와 쾌락이 넘치는 사회…… 사람의 생명은 별것이 아닌 사회가 되어버렸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2-343.

 

차별보다는 화평을 추구하고 작은 다름보다는 큰 같음을 추구하는 정신,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정신, 세상 사람을 다 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정신인 대동정신이 대동단결과 도덕적 항쟁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7.

 

특히 시민운동 쪽에서 대동정신을 등한시해요. 삶의 문제, 빈곤의 문제, 실업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 차상위층이라든지 하는 문제들을 등한시해요. () 우리가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 해도 세계 15위 안에 듭니다. 엄청난 부자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서 엄청나게 갈라지기 시작하는 거죠. 비정규직 비율이 호주 스페인 한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높습니다. 이 황당한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으로 대동정신을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대동세상이란 화평한 세상이고, 평화의 핵심은 나눠 먹는 것이며, 모든 부당한 것에 대해 저항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윤한봉의 견해였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8.

 

 윤한봉이 귀국한 것이 1993년이라고 한다. 24년이라는 시간동안 분명 2017년의 대한민국의 경제적 측면은 눈부시게 발전해 IT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이 아닌 사회의 건강성이나 도덕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하지 않았나 싶다. 행정부 수반의 권력 남용, 검찰이나 국회의원의 부정부패 등은 모두 윤한봉이 말한 대동정신의 가치를 따르지 못한 채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찍으며 사회에서 배제하고 자기 자신의 권력욕과 물질에 대한 탐욕을 채워가려는 이기주의, 금권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라 여겨진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데 합수 형님은 통일운동가가가 아니라니까요. 그분은 소수와 약자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우리는 어디를 가더라도 거기에 있는 소수와 약자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만약에 그런 날은 안 오겠지만 만약에 한반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미국에서 코리안이 다수가 되고 백인이 소수가 되면 여기서 백인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된다고 했어요. 우리는 죽어서도 어딜 가든지 소수와 약자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거였거든요.”

- 안재성, 신노선,윤한봉, 창비, P319.

 

 2017년 봄, 행정부의 수반이 새로 선출되어 내각이 다시 구성되면서 우리 사회도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정치인, 법조인, 교육자 등 리더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윤한봉이 지니고 있던 서번트 리더십의 태도를 닮아 모범을 보이며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정의와 배려를 우선에 두는 정책들이 마련된다면, 언론들이, 그리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을 수호하고 부당한 것을 비판하며 끊임없이 사회의 방향을 점검한다면 또 다른 괴물들이 나타나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당한 정권과 비정상적인 사회, 이기적인 개인들에 의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희생된 이들이 꿈꾸던 세상을, 그들 한 명한명이 지니고 개인적인 꿈을 늘 기억하고 그들이 지니고 있던 가치와 태도를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 해 날 때 비정상적인 사회의 4.19, 민청학련 사건, 5.18을 지나 4.16에 이르기까지,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고 그려내며 추모할 때 우리 사회도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그리고 김탁환 작가님의 거짓말이다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4.16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려내는 작업이라면, 이 책이 황석영 작가님의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함께 5.18, 그리고 윤한봉과 더불어 5.18을 겪고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많은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려내는 책으로 오래도록 함께 읽혔으면 한다.

 

가장 무서운 이들이 사람이라고 하지만 결국 김탁환 선생님의 소설 제목처럼, 아름다운 그이 또한 사람이기에, 사람들 안에서 받은 상처는 사람들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

아름다운 그 이, 윤한봉을 만나 의미있는 20175월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걸은 적이 있었기에 이 행성은 아름답다."

진정 윤한봉 같은 사람이 있기에 인간의 바다는 썩지 않고 살아 숨 쉬는 것이리라.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75.

 

 

 

 

by papyros 2017. 5. 31.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