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문장읽기 1주차 - 「돼지꿈」, 「몰개월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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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의 끝과 11월의 시작에 황석영 작가님의 돼지꿈단편집에 실린돼지꿈몰개월의 새를 읽었다. 돼지꿈에서는 70년대를 살아가는 서민들 특히 노동자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특히 손을 다쳤음에도 3만원을 받고 노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좋아하는 근호의 모습, 그에 더해 가족들은 손을 다쳤다는 사실보다는 누이 미순의 혼사에 보탤 수 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모순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마음이 아렸다. 이외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며 멀지 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슬픈 것 마음은 미래의 살고,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운 것’ (돼지꿈, P41.)이라는 글귀를 붙이곤 공장일을 하며 자취방 대금을 마련하는 여공의 모습도 참으로 아련하게 다가왔다. 70년대 근대화가 진행되던 그 시절 노동자 계급의 죽음정치적 속성이 이 소설에 여실히 드러나고 싶다. 포장마차를 하는 이도, 공장의 노동자도 모두 돈을 버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들이 탐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너무 절실하기 때문인 것이다.

 

몹쓸 짓이지.”

돈 벌자는 게 뭐가 나쁩니까?”

살아보면……. 알게 되네. 자넨 손 다쳐 목돈을 만지니 기분이 좋은가?”

근호는 그제야 붕대 감은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그렇다. 운이 약간 나빴을 뿐이다. 그리고 돈이 안 생긴 것보다는 낫다.

기분이 안 좋으면 어쩝니까. 내 실순걸.”

얼마 받았는데……

한 개에 만 원씩, 삼만 원요.”

삼만 원에다, 공장 병원의 치료비 무료, 한 달 동안의 노임도 공짜로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친다면 높은 사람쪽도 성의가 없는 건 아니라고 근호는 생각하고 있었다.

                                                                                   -돼지꿈, P46-47.

 

 「몰개월의 새20152학기, 나병철 교수님의 <한국현대소설론> 수업에서 낙타누깔과 함께 비중있게 다룬 적이 있는 작품이며 깊이있게 배운 바 있지만 전문을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미자와 사이의 미묘한 심리적 교류를 보여주는데, 몰개월이라는 공간은 베트남 전쟁 출병 이전 불안한 마음을 지니고 체류하는 군인들과 막판까지 이리로 끌려와 밤새 병사들의 시달림을 받는 이들이 몰개월이라는 공간에 함께 자리하며 애착을 느끼는 것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는 그들과 소통·교류함에 더해 동일시를 느끼기까지 이르러,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망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식구를 먹어주는 놈이 어디있겠는가.’라는 문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몰개월의새, P73)

 

나병철 교수님의 수업에서는 군인들과 몰개월 여성들... 이들 사이의 공통점인 죽음정치적 노동에 주목한 바 있다. 즉 군인들의 군사노동과 기지촌 여성들의 성 노동이 공통적으로 죽음정치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유대를 느끼고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다.

 

 베트남 파병 병사는 본디 미군들이 수행해야 할 전장을 대신하는 것이고, 미자 역시 병사들을 위로해야 할 누군가를 대신하는 대리노동자이다. 이들은 너무나도 먼 데 까지 흘러들어온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며, 군인이나 창녀라는 직업 모두 산업노동과 달리 생명의 훼손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

즉 계급적 위치와 군사화된 환경의 유사성과 함께 친연성의 근거로서, 군사노동과 성 노동이 공유하는 지점은 노동하는 신체 자기 신체의 순수한 대리성에 보상을 받는, 타인의 신체를 대신하는 신체 가 절대적으로 피수불가결한 동시에 명백히 처분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몰개월의 새에서 월남 파병을 앞두고 목숨을 내맡긴 채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의 처지나 밑바닥 인생을 살아 온 미자의 처지는 사회현실의 구조적 모순에서 형성된 굴절의 삶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의미 있는 것은, 미자가 보이는 병사들에 대한 헌신과 자기희생을 통한 무조건적 사랑나의 인식변화’(성적대상에서 가족애로 변모)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1970년대 신체와 성, 그리고 생명까지도 교환가치로 상품화되어 죽음정치적 노동으로 훼손되는 그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소외되고 희생된 민중들의 선물(타자와의 인간적 교류)은 폭력의 근대화 속 존재의 자기증명이자 인간애의 과정을 보여준 점에 있다.

 

 (나병철 , 이진경 서비스 이코노미, 소명출판, 2015, 118-137쪽 참조.)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뚝이 한 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 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들에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 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 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 몰개월의 새, P76

 

by papyros 2016. 11. 2. 23:38

 

 

지난 10월 13일 목요일, 신청이 열리자 마자 신청하여,

담당자님의 말에 의하면 선착순 중 가장 먼저 신청한,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키트가 도착했다. 그만큼 지난 시 필사 모임 때 신청을 못한 것이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신청한 책은 황석영 작가님의 <돼지꿈>인데, 나병철 교수님 수업 때   <몰개월의 새>를 비중있게

다룬 바 있었고 그만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어서, 그리고  시대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는 작가님이라고

생각되어서 작가님의 중단편집을 깊이있게 정독해 보고자 이 책을 신청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책을 정독하고 꾸준히 책의 문장들을 필사해 나가며

감상을 향유하고자 한다.

 

 

by papyros 2016. 10. 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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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창비 다행히 졸업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소책자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다행히 졸업

김아정, 환한 밤

 

그 순간, 혀 밑에 숨어 있던 나방 한 마리가 포르르 날갯짓을 하며 뛰쳐나왔다. 나방이 날개를 파닥이며 차 안을 이리저리 헤집어 댔다. 놀란 엄마가 차창을 재빨리 내렸다. 나방이 운전석 창문 너머로 훨훨 날아올랐다. 갓길 옆에 서 있는 가로등에 마침 불이 반짝 들어왔다. 주변이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나방이 가로등 불빛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더없이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그렇게 환한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환한 밤, 29.)

 

 9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연령의 작가들이 모여 자신의 학창시절을 르포문학에 가깝게재구해 낸 단편소설집 다행히 졸업2010년대의 학창시절을 그려낸 김아정 작가의 환한 밤을 먼저 접했다. 2010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로서는 단편집에 실린 아홉 편의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이 나의 학창시절과 가장 가깝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떠한 향수를 지니고 글줄을 읽어 내려갔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서울에서 할머니 댁인 강원도의 시골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고등학생인 주인공 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열일곱 살 여고생들이 으레 그렇듯 이 작품의 또한 청소년기에 갑작스럽게 생긴 가정형편의 변화로, 내면에 여러 생각과 고민을 품고 있으며 자신을 둘러싼 친구관계와 가족관계에 있어 내면을 드러내고 개방하는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난은 숨겨야 하는 대상이다. 제때 요금을 내지 못해 정지된 휴대폰, 물려 입은 교복, 판잣집에 거주하는 것. 주인공에게 이러한 모든 상황은 낯설고 숨겨야만 하는 부끄러운일들로 여겨진다. 주인공에게 이러한 이들이 부끄러이 여겨지는 것은 그러한 처지에 대한 환멸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것은 동급생들에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진다면 공동체에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가정보다도 학교에서 또래집단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학생들에게 있어 어떤 무리에, 친구들과의 관계에 소속/편입되지 못한다는 것은 곧 배제/배척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 재희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왜 자꾸 거짓말하는데?’라는 재희의 말에 재희와 그 친구들을 피해 다니고 급식을 혼자 먹는 것은 의 기저에 자리한 그런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엄마의 급식 혼자 먹니?’라는 엄마의 말에 놀라며 엄마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의문을 지니고 초조해 하는 의 모습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어머니에게까지 자신이 제대로 무리 속에 편입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불안을 전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자신의 있는 그대로가 수용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염려이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 제대로 대화를 해오지 않은 엄마의 모습에 이어 질문을 할 때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에게 있어 엄마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여기는 단서가 된다.

 그러한 복잡한 마음을 품고 가출을 하게 되어 찾아간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야간의 학교이다. 야간의 학교를 기점으로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는 변화된다. 어둠으로 가득 찬 학교에서 영지라는 친구와 함께 매점에서 외상을 하는 등 그 밤을 함께 보내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른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그 무언가를 공유하게 된다. ‘와 영지에게 있어 그 무언가란 나를 이해 할 수 있는 이들이 아무도 없는 어떠한 공간에서 벗어나 나를 이해하고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와의 관계 또한 전환된다. 학교에서 밤을 보내는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라는 어머니의 진심을 들으며 엄마와의 관계의 틈에 잘자리 했던 불안 또한 해소된다. 그 순간 본고의 서두에서 제시한 것처럼, 나방은 더없이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그렇게 환한 밤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작품 초반 무리 속에서 떨어져 나온 나방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며 묻어난 잿빛 비늘가루와는 확연히 대조적이다. 청소도구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나방은 다시 일어날 힘을 결코 내지 못했겠지만, 그 밤 교실의 청소도구함에서 빠져나온 나방은 다시 몸을 일으켜 날개를 퍼덕인다. 그리고 종국에는 더없이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환한 밤을 맞이한다. ‘가 어둠으로 가득 찬 학교에서 영지를 만난 이후 친구관계와 가족관계에 자리했던 불안이 모두 해소된 것처럼. 이와 같이 작품은 나방을 통해 의 좌절과 성장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불꽃 주변으로 커다란 나방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녔다. 자기들끼리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며, 뭐가 그리 신나는지 펄쩍 뛰어오르며 주변을 맴돌았다. 그 순간 무리 중 하나가 튕겨 나와 유리창에 부딪히며 떨어졌다. 창문에 나방의 잿빛 비늘가루가 묻어났다. 나방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날개를 퍼덕였다. (환한 밤, 24.)

 

 

 결국 이 작품은 청소년 성장소설로서 그 의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온전히 청소년 환상소설로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따를지 모르나, 밤의 학교라는 통과제의적 공간을 통해 분리-전이-결합의 과정을 거쳐 가치의 세계를 획득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지와의 만남을 통해 분리되고 영지와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내면을 확장해 전이되며 학교에서의 밤을 보내고 가족관계와 친구관계에서 문제가 해소되는 점이 결합된다고 생각하면 결국 이 작품은 가 어두운 학교에서 통과제의를 거치고 성장하는 서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환한 밤과 같은 환상적 이미지를 통해 청소년기에 필요한 소통과 공감, 사랑의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달빛을 쫓아가다가 가로등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해 머무른다는 점에서 그들의 날갯짓이 무의미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두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만의 달빛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인다는 것 , 그리고 그 날갯짓을 통해 가치와 행복을 획득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9년 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을 거친 학생으로서, 그리고 현재 교직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으로서 청소년기에 자리할 수 있는 여러 어두움(가족 및 학교 내에서 관계로 인한 심리적 정서적 문제, 학습부진, 학교폭력 등 다양한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개별 학습자 한 명 한 명에 필요한 달빛을 제공 해 주는 것이야 말로, 교육의 진정한 역할임을 다시금 느낀다.

 

"길을 찾고 있는 거야. 원래 달빛을 쫓아가고 있었는데 가로등 불빛이 자꾸 밝아지면서 길을 잃고 만 거야. 다시 달빛을 쫓아 헤매다가 결국 가로등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하고 저렇게 되어 버렸지."

"다시 달빛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찾을 수 없지. 가로등 불빛이 꺼질 일도 없겠지만 애초에 달빛이라는 건 찾을 수 없어. 그냥 계속 찾아다니는 거지." (환한 밤, 24.)

by papyros 2016. 10. 23. 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