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9회 :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4주차)

최종 감상평 및 참여후기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정용준 작가님의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를 3주간에 걸쳐 읽어내었다. 이미 지난주에 완독을 했기에, 작품의 의미를 곱씹어보고자  이번 주차에는 「작가의 말」 이제니 시인의 「추천의 말」을 마지막으로 읽어내려가는 한편 민음사 인스타그램 에서 개최했던 문학대축제 영상을 뒤늦게 나마 찾아 영상을 보았다.

  「작가의 말」은 소설을 쓴 작가 정용준의 메세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여운때문인지 왠지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한 소년이 들려주는 후일담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정용준 작가님의 전작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또한 '언어장애'를 겪는 인물들이 많다고 하는데,  정용준 작가는 왜 이를 '질문'으로 삼았을까. 일전에 마음에 남는 문장으로 남아 필사했듯이 우리모두는 어느정도 말더듬이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단 표면적으로 말을 더듬는 걸 넘어서, 우리는 우리 주변의 타인들에게 얼마나 깊이, 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는 걸까.

 


  더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안 더듬는 건 아니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도 아니야. 다들 어느 정도 말더듬이들이야. 우리는 보기에 조금 튀는 거고. 너도 나중에 더듬지 않게 되면 알게 될 거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75쪽.

 작품의 소년 또한 선택했듯이  '글쓰기'는 '말하기'와 비슷하면서도 직접 언어화하고 발화하기에는 너무 힘겹고 아픈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전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이다. 책을 좋아하고 조금씩이나마 글을 쓰기를 좋아했던 나도 내 안에 품어내고 있는 그 모든 생각을 정연히 언어화하여 전달하기엔 대범치 못해서, 부족한 사람이어서,  글쓰기라는 수단을 더 선호해오지 않았나 싶다.

 


 너 글 잘 쓴다. 글쓰기 글쓰기는 말하기와 닮았어. 문장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쓰는 건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제대로 제대로 제대로 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거든. 알겠지만 말을 더듬는 사람은 말을 말을 말을 입 밖에 꺼내기 전에 이미 그 말을 더듬을 것을 예감하고 있어. 실패할지 몰라, 라는 막연한 예감이 아니라 이미, 이미 실패한 상태로 말이 입속에 들어가 있지. 그러니까 예감이면서 예감이면서 동시에 확신이랄까. 너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겪었기 때문에 갖고 갖고 갖고 있는 예지력이랄까. 아무튼 글쓰기도 마찬가지야. 첫 음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다음 다음 음도 나오지 않잖아. 마찬가지로 첫 문장이 써지지 않으면 다음 문장도 문장도 문장도 없지. 그러니까 첫 문장은 많은 문장들 중 첫 번째가 아니라 앞으로 나오게 될 글들의 생명체의 머리 머리 머리 같은 기능을 담당하지. 글을 고치는 과정도 비슷해. 좋지 않은 문장을 조금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단어를 바꾸고 구조와 순서를 고민하는 과정은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말을 더듬지 않게 노력하는 과정과 거의 흡사하거든. 그래서 말더듬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단어를 단어를 알아야 하고 습득해야 해. 실패한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거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야.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해. 그런데 24번. 네가 쓴 글을 보니까 괜찮아. 재능이 재능이 있어.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15-116쪽

 

  작품 속 열 네살 소년의 모습은 이미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유년기, 청소년기와 많이 닮아있는 그 소년.. 아마 소년을 통해 자기 내면의 소년을 발견한 독자들이 적지 않으리라 여긴다. (심지어는 작가님 본인 조차도) 그런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년을 잃어버린 자신의 아들로 여기며 계피 맛 사탕을 쥐어주는 할머니, 돈까스를 사주는 친절하고 따뜻한 이모, 자신과 닮아있는 친구들, 글을 잘쓴다고 이야기해주는 작가 형 - 이들 같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년에게 상처를 입힌 그 어른들을 용서하는 방식으로든 혹은 복수심을 키워나가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던 어른들의 그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그 순간, 내 안의 아이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폭력적인 아저씨에게 매여있는 엄마의 사정도, 할머니(어머니)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던 스프링 언어교정원 원장님도,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더듬는 이모도.... 그들 모두가 내 마음의 한 자리에서 자연스레 이해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어른이 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성장한 우리에게 이제는 둘리의 고길동이 안쓰럽게 다가오는 것처럼)  

 작품을 완독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 무언가가 남아있는 이 기분은.. 북토크에서 등장한 한 표현을 빌리면 이 작품이 '비판적 독서'의 대상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내야 하는' 작품이기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겪어내며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한 작품으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서평을 갈무리해 본다.

 소년이, 내가, 우리가 겪은 모든 일들과 만나온 사람이 비단 '한 여름밤의 꿈'이나 허구적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 품어야 할 강렬한 무엇인가로 남기를 소망한다.


그는 어른이 됐다.

언제, 어떻게, 왜, 어른이 되는지 궁금했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욕했던 모든 어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랬던 거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막연히 알 것 같았다.

(중략)

감정. 얼굴. 이름. 일기. 날과 달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단어들.

진짜 기억이 되고 감정이 되고 얼굴이 되고 이름이 되어 살아 움직였어.

가짜가 아니었어. 뻥이 아니었다고.

 

- 정용준, 「작가의 말」,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61-163쪽.

 



 

 

by papyros 2020. 8. 19. 09:08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9회 :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3주차)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어느덧 정용준 작가님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은지 3주가 지났고, 작품을 완독했다. 사실 책의 지면이 그리 길지 않아 충분히 하루에 완독할 수 있는 길이였지만,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프로그램을 위해 3주간에 걸쳐 조금씩 끊어 읽으며 더욱 오래 소년과 함께하면서 아이를 바라보고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 유의미했다.

 발표를 '망쳤다'고 생각한 소년이 '스프링 언어교정원'에 나가지 않게 되자 교정원의 사람들은 소년의 부재(不才)로 인해 그를 그리워한다. 그만큼 언어교정원에서 소년이 스스로를 그저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여겼던 것과 달리 교정원의 사람들은 이미 소년을 공동체 안의 '중요한 존재'로 여기고 있으며, 특히 소년의 발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까지 표현한다.

 소년도 스프링(언어교정원)에 나가지 않는 사이, 그에게 영향을 준 스프링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 할머니, 이모, 노트, 하이, 원장에 이르기까지-을 그리워하며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한다. 


 얼음의 나라처럼 지금 이 말을 그대로 얼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할 때마다 더듬지 않은 말을 따뜻한 말에 녹여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술 취하지 않은 엄마의 다정한 말도 얼리고 이모가 내게 해 줬던 모든 말도 얼리고 할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말도 얼리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그 아들을 만나면 다 들려주고 싶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도 얼리고 싶다. 이모에게 하고 싶은 말도 얼리고 싶다. 할머니에게는 할머니의 아들 역할을 한 연극배우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 괜찮아요. 용서해요. 그렇게 말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훌륭한 연극배우니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까지 여유롭게 닦아 주면서. 노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이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스프링 사람들 모두에게 다 할 말이 있다. 그리고 원장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다. 해 줘야 할 말이 있다. 할머니가 준 계피 맛 사탕이 이제 딱 두 개 남았다. 그중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이 사탕은 도대체 어디에서 파는 걸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던 걸까? 한 달 전에 슈퍼에 가서 할머니가 준 계피 맛 사탕을 보여 주고 같은 걸 달라고 했는데 슈퍼 주인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건 팔지 않는다고 했다. 엄청 오래된 사탕 같다고. 먹으면 안 될 것 같다고 걱정도 해 줬다. 백 년쯤 된 사탕일까? 유통기한이 하루 지나 먹으면 병에 걸리는 그런 불량 식품일까? 병에 걸리면 그것도 좋겠다. 병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사탕을 빨았다. 빨 때마다 쓰고 달콤해지는 입안. 줄어들 때마다 조금씩 나는 잠에 빠져든다. 자장자장 재워 주는 맛이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이 내 머리를 만지는 것 같다. 만져 줬으면 좋겠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18-119쪽.

 

 이 지점에서 '관계 속의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혈연으로 엮여진 가족보다도 오히려 깊이있게 내면이 맞닿은, 내면과 감정의 선을 이해하는 타인들과의 관계가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느꼈다. 특히 경찰서에서 진술하는 소년을 보호해주기 위해 스프링의 모든 이들이 합심해 나설 때 그 사랑과 애정의 힘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노트에 쓰는 겁니다. 생각하는 것. 관찰한 것. 느낀 점.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괴로운 것들 모두 쓰게 합니다. 때론 시나 소설처럼 문학적인 상상력 같은 것들까지 쓰게 하죠. 그러니까 그건 일기장이 아니라 마음을 언어로 옮기는 연습장 같은 거예요. 언어를 풍성하게 하고 말을 잘하기 위함이죠. 교정원 사람들은 다 그런 노트를 쓰고 있어요.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38쪽.

 

 용서와 복수. 작품의 초반부터 조금씩 생각나게 하지만 마지막에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이 화두는 과연 양립이 가능한 것일까. 누군가를 용서하고싶으면서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애증)의 마음. 심리학에서는 이를 양가감정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이러한 양가감정을 조금 더 잘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작품속 소년처럼 '신뢰로운', '신뢰할 수 있는' , '좋은' 이들을 만나고,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수단(매개체)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소년과 같이 '글쓰기'가 될 수도, 반 고흐의 '그림이' 될 수도,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이 될 수도, 그리고 헤르만 헤세처럼 글쓰기와 그림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긴다.

 한 생애를 살면서 결코 단순할 수 없는 우리네 마음 자리를, 복잡한 내면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매개물과 더불어 이를 알아 줄 사람들이 주변에 자리한다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자리한다면 - 그것이 바로 내면의 외상을 극복하고 한 차원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음 주차에 작가의 말과 더불어 생각을 좀 더 정제하여 작품을 전반적으로 정리해 내면화하고 싶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있고 싫지만 좋을 수도 있으니까. 복수하고 싶으면서 용서하고 싶은 것도 가능하지. 그런데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50-151쪽.

 

by papyros 2020. 8. 12. 23:21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9회 :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2주차)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63페이지 내외의 짧은 소설인 정용준 작가님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기 시작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말을 더듬는 열네살 소년 '나'는 스프링 언어교정원에서 만난 한 친구의 말 -국어선생님께 복수하라는- 의 개연성이나 타당성도 제대로 검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소외감을 겪고 있다. 열네살 소년이 지닌 그 소외감의 무게가 크면 얼마나 크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기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오는 상처가 가장 무거운 법이다.

 소년처럼, 원장 또한 시계를 제대로 못하는 어린 시절의 그를 답답해하며 모욕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부자(父子)의 모습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어머니가 있었던 가족 환경 속에서 받은 상처를 소년에게 담담히 풀어낸다. 어른이 된 그는 자신이 받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이해하는 모습까지 보이지만, 아직은 열네살 중학생에 불과한 소년이 상처를 가하는 사람의 마음과 상황까지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법이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암튼 부모들이란 그렇단다. 잘해 주다가도 때리고 사랑하는 말로도 상처를 주곤 하지.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 다 그러려니 해. 그리고 미워해.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97쪽.

 

 소년은 말을 더듬는 그를 연민하는 엄마와 더불어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 엄마의 전 애인이 함께하는 상황 그 자체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특히 소년은 엄마의 전 애인으로부터 '나약한' 아이이자 '어머니의 근심(걱정)거리' 정도로만 치부되며 심지어 학교에서는 친구 한 명 없는 외롭고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아이로 여겨지는데, 이 때문에 1999년에서 2000년으로 해가 넘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삶에는 큰 희망이나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라든가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기 어려운데다가 심지어 왕십리역에서 진행한 스피치까지 망치고 만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누구를 죽이려는 게 아니고 누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복수의 마음인가, 도와주려는 마음인가. 판단할 수 없었다. 어떤 날엔 엄마에게 그 약을 주고 싶기도 하고 어떤 날엔 엄마의 애인에게 그 약을 주고 싶기도 하다. 어떤 날엔 선생에게, 어떤 날엔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먹이고 싶기도 하니까. 그리고 어떤 날. 왜 사는지 모르겠는 날. 그냥 살고 있는 것뿐인데 엄청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엔 차라리 내가 먹고 싶기도 하다. 어떤 친구가 물었다.

 넌 왜 사냐? 쓸모없고 말도 못 하고 친구도 없고 늘 괴롭힘만 당하잖아. 왜 살아? 친구의 얼굴은 진지했다. 정말로 궁금한 얼굴이었다. 내 삶이 너무 쓸모없고 괴로워 보여 차라리 죽지 뭐 하러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한 얼굴이었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01쪽.

 


 그만하자. 끝났다. 다 끝났어. 무엇을 기대했을까. 난는 속고 또 속는 바보처럼 이번에도 속았던 것이다.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위해 노력해 줬던 사람들. 진심으로 대해주고 마음 아파해 줬던 사람들. 그들을 배신했다는 생각과 그들이 실망했다는 생각이 마음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니다. 나 외엔 누구도 날 비난할 수 없다. 나를 이해한다고? 아니, 누구도 나처럼 살지 않았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07쪽.

 


 결국 왕십리역에서 스피치 사건을 망친 이후로 좌절감을 겪은 소년은 스프링 언어교정원에까지 나가지 않게 되고야 말지만.. 기실 답은 소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예감하고 있다. 이미 소년 내부에는 그 자신만의 가치가, 그 자신만의 힘이 있다. 아직 그것을 소년 자신이 찾지 못했을 뿐이다.

 때문에 소년이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실현해나갈, 작품의 후반부가  더욱 기대된다.

 


  더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안 더듬는 건 아니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도 아니야. 다들 어느 정도 말더듬이들이야. 우리는 보기에 조금 튀는 거고. 너도 나중에 더듬지 않게 되면 알게 될 거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75쪽.

 


 너 글 잘 쓴다. 글쓰기 글쓰기는 말하기와 닮았어. 문장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쓰는 건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제대로 제대로 제대로 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거든. 알겠지만 말을 더듬는 사람은 말을 말을 말을 입 밖에 꺼내기 전에 이미 그 말을 더듬을 것을 예감하고 있어. 실패할지 몰라, 라는 막연한 예감이 아니라 이미, 이미 실패한 상태로 말이 입속에 들어가 있지. 그러니까 예감이면서 예감이면서 동시에 확신이랄까. 너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겪었기 때문에 갖고 갖고 갖고 있는 예지력이랄까. 아무튼 글쓰기도 마찬가지야. 첫 음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다음 다음 음도 나오지 않잖아. 마찬가지로 첫 문장이 써지지 않으면 다음 문장도 문장도 문장도 없지. 그러니까 첫 문장은 많은 문장들 중 첫 번째가 아니라 앞으로 나오게 될 글들의 생명체의 머리 머리 머리 같은 기능을 담당하지. 글을 고치는 과정도 비슷해. 좋지 않은 문장을 조금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단어를 바꾸고 구조와 순서를 고민하는 과정은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말을 더듬지 않게 노력하는 과정과 거의 흡사하거든. 그래서 말더듬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단어를 단어를 알아야 하고 습득해야 해. 실패한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거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야.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해. 그런데 24번. 네가 쓴 글을 보니까 괜찮아. 재능이 재능이 있어.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15-116쪽.

 

by papyros 2020. 8. 5. 22:01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9회 :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1주차)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지난주, 책을 배송받고서 시일이 조금 지난 후 책을 조심스럽게 펼쳐들었다. 책의 표지부터가 무언가 시선을 끌었는데 아마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표지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푸른 색감의 표지를 넘겨 보았다. 책 소개 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책은 말을 더듬는 소년 '나'가 등장한다. 새로 다니게 된 언어 교정원에서 가장 발음하기 힘든 단어가 '무연'이었다는 이유로 언어 교정원의 집단상담 시간에 '무연'이라는 별칭(가칭)을 부여받은 '나'는 열네살 소년인데, 책의 초반부에 소년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년의 내면묘사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으레 열네살 소년이 그렇듯 사랑 받고 싶어하며 타인(또래집단)과 관계맺고 싶은 욕구가 큰 소년은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그 욕구를 거절/거부당한 경험이 많아 내면의 상처가 깊은 아이였다.

 


 나는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겠다. 나는 잘해 주는 사람을 미워하겠다. 속지 않겠다. 기억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 편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바보 멍청이 이 똥 같은 놈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과거의 난 그랬다. 잘해 주기만 하면 돌맹이도 사랑하는 바보였지. 하지만 열네 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9쪽.

 


내일이면 모른 척 할 거잖아.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작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말뿐이잖아. 결국 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당하면 안 된다. 그땐  진짜 끝나는 거야. 끝 (중략)

아무것도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말고 기대지도 말자.

하지만 어째서인지 눈물이 쏟아지려 해 껍질을 벗기고 사탕을 입에 넣어 쭉쭉 빨았다. 왜 늙은 사람들은 계피를 좋아하는 걸까? 나도 늙으면 이런 맛을 좋아하게 될까?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22쪽.

 나도 유년시절 또래집단에 더욱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싶어하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아이였던으며 유년기부터 청년기인 지금까지 사람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에 그만큼 상처받은 경험이 많아서인지 소년의 내면에 차곡차곡히 쌓아올려진 상처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사람을 함부로 믿거나 신뢰하고 정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에 소년의 내면에 깊이 몰입되었다.

 특히 소년의 학교생활 중 국어교사에 대한 묘사는 나 자신을 매우 성찰하게끔 만든 요소였는데, 국어교사 이기승이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대부분의 어른들과 학교는 소년에게 '읽기'를 강요하는 무리한 환경적 요인에 해당했다.

 난독증을 겪는 학생들이나 학습부진이 있는 학생들은 고려했으면서도 '읽기'가 때로 어떤 학생들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있게 헤아리지 못했고 교사로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 지점이었다.

 

 


읽어.

책을 소리 내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에겐 눈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다.

종이에 적힌 문장은 부끄러움이 많아 종이에 달라붙어 있는 건데 그걸 억지로 뜯어내 말로 하는 건 옷을 벗기는 것처럼 수치를 주는 짓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읽기가 무슨 인간이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도 되는 양 학생들에게 읽기를 시킨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34쪽.

 

 160 페이지 남짓의 짧은 소설 속 주인공... 16년 전 열네살의 내 모습을 한켠에 떠올려보며.. 이 소년을 통해 나는 그 때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앞으로 남은 페이지들에 대한 설렘어린 기대를 가져보면서, 이 책을 다 읽었을 땐 소년도 나도 한층 더 성장해 있기를 진실로 바란다.

덧붙여,  몇일 전 정용준 작가님의 북토크가 온라인으로 진행된 바 있는데..당일 참여하지 못해서 책을 완독하기 전에 정용준 작가님의 북토크 영상을 꼭 한번 보고 책을 이어 읽고싶다.

by papyros 2020. 7. 29. 22:39

제 7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5. 마지막 필사 + 독서후기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5주에 걸쳐 읽은 김세희 작가의 단편소설집 『가만한 나날』 도 어느덧 작품집의 앞표지가 아닌 뒷표지를 보아야 할 때에 이르렀다. 지난 주까지 모든 작품을 완독한 이후 읽은  「작가의 말」과 신샛별 평론가의 작품해설 「우리의 모든 처음들」을 통해 작품해설 없이 소설을 그저 감상할때와는 다른 많은 가치와 생각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낯선 작품들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책의 마지막에서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장으로 가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기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2-30대 청년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김세희 작가님 또한 1987년생으로 나보다 겨우 다섯 살이 많은, 30대 초반의 작가님이시고  『가만한 나날』 이 바로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다.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처음.  작가님에게 첫 소설집이 있고 경진에게 삶을 돌아보게 한 첫 직장이 있고, 선화에게 애증의 대상인 첫 상사가 있는 것처럼 나 또한 비록 임용시험에 아직 합격하지 못했을지라도 내게도 첫 기간제교사로서의 삶이라는 처음이 있었다.

 심지어는 부모님도 부모로서 사는 삶이 처음 이기에 서투르다는 드라마<응답하라 1988>의 한 대목이 기억난다. 특히 나를 포함한 많은 청년세대인 20대-30대는 많은 처음을 겪는다. 처음 대학에 들어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해 나가고 직업을 선택하여 취직하고 연애하고 결혼을 하는..

 흔히 문학치료에서 이야기하는  '자녀서사-남녀서사-부부서사-부모서사'의  서사의 발달단계의 대부분이 2-30대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많은 처음을 겪어내면서 부딪히는 내적, 외적 갈등에 때로는 - 아니 어쩌면 자주 아프고 허탈하고 슬플지라도 그 첫 마음을 기억하고 담백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나가는 삶. 그런 청년들의 단면들을 이 소설집에서 담고 있었기에..격동의 서사나 갈등이 없었을 지라도

 충분히 많은 공감과 울림을 얻을 수 있었다.  작은 이야기를 통해 큰 울림을 이끌어 낸 김세희 작가의 이 소설집이 오래 기억날 듯 하다.

 김세희 작가가 「작가의 말 에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삶을 결코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나도 지금 주어진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삶이 옳은 방향인지를 늘 예민하게 성찰하고자 한다. 첫 직장에서 환멸을 느낀 후 자신의 삶을 위해 그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 을 읽지 않는 경진처럼.

 

 



by papyros 2019. 4. 30. 12:11

제 7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4. 필사 4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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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작품이 마무리되는 4주차에 이르렀다. 이번 주에는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 에 수록된 단편선 中 「감정 연습」과 「말과 키스」두 단편을 일독하면서, 이 단편집의 수록 작품들을 모두 완독했다.

 이번 주에도 작품을 읽고 무언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김세희 작가의 문체가 그렇게 무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그들이 겪는 이야기가 마치 나의, 내 주변의 흔히 볼 수 있는 2-30대 청년들의  이야기와 감정선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감정 연습을 읽으며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인턴동기임에도 불구하고, 태영과 회사에서 살아남아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며 경쟁해야만 하는 회사 분위기 ,  이북 땅을 코앞에 두고 있는 회사를 다니며 그 두려움과 불안에 점차 익숙해져가는, 회사의 경쟁적인 분위기나 그런 회사에 적응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이 무언가 이질적이고 어색한..

과연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불안감.... 상미의 그런 내면들이  내게도 전해졌고 쉬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한편,  「말과 키스」 에서는 현진의 이야기를 통해 성적 정체감에 대한 고민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주위의 누군가도 현진과 같이, 혼자 고민하고 아파하며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자신이 누구이건, 어떤 사람을 만나건, 누구나 한 개인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이 작품을 읽고 더욱 소망한다.

 

 


by papyros 2019. 4. 24. 15:02

제 7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3. 필사 3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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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3주차에는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 에 수록된 단편선 中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얕은 잠」두 단편을 일독했다. 기실 두 단편 중에서도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가 더욱 마음에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아버지를 바라보는 스물 여덟 살 아들의 내면세계와 아버지와 맺고 있는 그 관계가 흥미롭고도 공감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의 약한 모습이 더 쉽게 눈에 들어오고, 부모님의 여러 부분 중 가장 미워하고 닮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일수록 더욱 닮아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에 등장하는 스물 여덟살의 주인공 '나'의 감정에 너무나 잘 이입되었다. 그와 같은 나이라서 더욱 그랬던 것일까. 분명 성인이기도 하지만, 심지어 '나'는 루미와 혼인신고를 했을 정도로 이제는 가장의 역할을 기꺼이 지고 가야 할 나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는 너무도 어린 나이임과 동시에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에 두려워지는 나이이기도 하다. 어쩌면 먼 미래에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자기가 바라지 않았던 모습으로 늙어갈 자신에 대해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나 또한 깊이 공감되었다.

 나는 먼 미래에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 작품은 김승옥의 소설 『서울,1964년 겨울』이나 『무진기행』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특히 『서울,1964년 겨울』의 결말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아직은 어린 것 같은데 너무도 늙어버린 것만 같은 아이러니함이란.......

 


  젊은 김씨와 안씨가 말했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 다섯 살 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 김승옥, 『서울,1964년 겨울』 中에서.

 

 

 한편, 「얕은 잠」 은 앞의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처럼 비슷한 삶의 시기를 겪고 있는 데서 우러나오는 깊은 공감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결을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내면세계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보드를 타던 주인공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약하던 그 장면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 이런 도약이 미려에게 있었기에 작품의 결말부, 단지 메세지만 남기고 정운이 사라진 그 순간에서 오히려 심적인 여유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by papyros 2019. 4. 17. 16:59

제 7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2. 필사 2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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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에는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 에 수록된 단편선 中 가만한 나날」「드림팀」을 일독했다. 두 작품의 결이 참 많이 닮아있다고 여겨졌는데, 두 단편 모두 스물여섯, 스물일곱 남짓한 사회초년생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순수성과 열정, 기대감을 품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으나 결국 사회생활의 단면에 실망하고야 마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담백하고 차분한 어조의 두 단편선에 참으로 소름이 끼쳤던 이유는 두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의 삶이 내 나이또래, 20대 후반 정도의 젊은이들이 겪을 법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만한 나날」 에서 고전소설 채털리 부인을 좋아하던 20대 여성 '나'는 블로그를 통해 제품을 광고하는 광고대행업체에 입사하여 능력을 인정받으며 글을 쓰지만, 자신이 리뷰한 블로그 광고 글 중 한 제품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영,유아들의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되고 그녀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런 회의감, 깊은 고민과 죄의식을 아무것도 아닌 양 말하는 상사로 인해 더욱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드림팀」에서 스물 일곱의 나이로 첫 직장에 입사한 '선화'는 첫 직장에서 처음 만난 팀장으로부터 부조리한 명령과 사회조직, 직장생활의 관습적인 행태에 따를 것을 요구받은 바 있다. 그녀는 이미 서른 셋이 되어 다시 첫 직장에서의 팀장을 마주했지만, 그녀의 퇴사를 좋게 보지 않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한 , 그녀의 전 팀장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으며 바로 그 팀장으로 인해 그녀는 첫 직장생활로부터  상처와 트라우마를 얻었다.

 

 

두 단편선을 연달아 읽은 후 왜인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성적 사고와 자성, 의문 없이 그저 당위성 때문에, 그래야만 하니까 무언가에 복종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결국 크나큰 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조리함을 , 잘못됨을 느끼고 이야기하는 젊은 청년들이 두 작품의 인물들처럼 좌절감과 허탈함, 상처를 느끼는 사회에서 벗어나 성찰과 자성 없는 잘못된 관행과 행동들이 변화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두 작품을 읽은 후 더욱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

 

김세희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일상적인 주제와 어휘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문학의 역할임을 다시금 느낀다.

 

by papyros 2019. 4. 10. 23:56

제 7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1. 배송 인증 + 필사 1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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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밀란 쿤데라)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지된 제 7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선정도서는 한국소설이었다. 특히 한국문학의 기성세대가 아닌, 새로이 주목되는 젊은 작가님들의 책이 이번 7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기실, 한국소설의 젊은 작가들은 내게 있어 특별한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서양 고전을 주로 읽어왔고,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익숙한, 검증된 작가의 작품을 읽어왔던 것 같다. (헤르만 헤세, 김탁환, 엔도 슈사쿠, 에밀 아자르... 등등)

그런 의미에서 금번 7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주제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였고, 더불어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 근래 온라인 서점 이나 도서 카페 등에서 자주 추천되곤 하여서 망설이지 않고 김세희 작가님의 가만한 나날 을 신청했고, 금방 책이 도착해 읽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너무나도 난해한 문장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어서인지 몰라도 김세희 작가의 문체는 읽기에 평이했고 작품의 내용 또한 우리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람 사는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친숙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개별 작품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 친숙하다고 하여 그 주제의식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거야」에서는 진아 를 통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일상 속, 사회인들의 모습과는 다른 가치관이나 태도를 보이는 인물에 대해 은연중 우리 내면의 평가적 잣대를 드러내는가 하면, 「현기증」에서는 원희를 통해  자신이 절대 생각도 하지 못했고 꿈꿔본 적도 없는 모습으로 자신의 삶이 흘러가는 모습에 대한 공허함과 수용의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작중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모습이 우리 자신에게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감추고 싶은 , 숨기고 싶은 모습일 것이다.

앞으로 남은 4주 동안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작품집에 나오는 여러 작중 인물들을 통해 평소 깨닫지 못하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찾아나가는 과정이 되기를 진실로 희망한다.

 

 

 

by papyros 2019. 4. 3. 11:54

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 과제 5.  마지막 필사 + 독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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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제 6회 손끝으로 문장읽기>도 5주가 지났고 마지막 필사에 이르렀다.

아쉬운 점은 약 100페이지 (6부와 7부)만을 남겨둔 채 필사 후기와 독서 후기를 작성하는 것이랄까.

 

기실 밀란 쿤데라의 <불멸>은 서사가 확실하고 인물 간의 관계가 뚜렷한 소설은 결코 아니었다.

아직 쿤데라의 문체가 익숙치 않거나 나와 맞지 않은 것인지,

혹은 이 작품이 특별히 어려운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다른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불멸>의 진정한 매력은

개별적으로 보이면서도 함께 엮여 이어지는 서사 속에서

인간 내면의 핵심을 짚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이번 주차에 5부 마지막까지 읽으며 다시금 그것을 느꼈다.

나를 포함한 많은 현대인들이 삶을 숨가쁘게 질주해야 하는 '도로의 세계'를 살고 있다. 도로의 세계에서 벗어나 길의 세계의 풍경을 둘러볼 수 있을 때,

 

삶 자체보다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둘 때

진정으로 의미있는 삶, 조금이나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2월 말 여러 곳의 학교에 기간제 원서를 넣느라 지쳐있는 내게 조금은 쉬어가도 된다고, 위로를 전하는

조언을 해 주는 중요한 메세지들이 눈에 유독 밟혔다.

 

아직 쿤데라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떠한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늘 존재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했을 그와, 그의 작품 <불멸>의 깊은 가치가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산다는 것, 거기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 산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자아를 나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샘으로, 온 우주가 따뜻한 비처럼 내려와 들어가는 돌 수반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 밀란 쿤데라, 「3부 투쟁, 불멸, 민음사, 2011, 412쪽.


 

 

 

 길들은 풍경에서 사라지기에 앞서, 먼저 인간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 인간은 걸으려는 욕망을 느끼지 않고, 걷는 데서 기쁨을 맛보려 하지 않는다. 자기 인생 역시, 인간은 길처럼 보지 않고 도로처럼 본다.

(중략)

도로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경치란 아름다운 작은 섬 하나, 긴 섬이 다른 아름다운 섬들과 연결하는 그런 섬을 의미한다. 길의 세계에서는 아름다움이 지속적이요, 언제나 변한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걸음을 멈추라'라고 말한다.

 

- 밀란 쿤데라, 「3부 투쟁, 불멸, 민음사, 2011, 359쪽.

 

 

 

 

 

 

by papyros 2019. 2. 2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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