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4주차 필사 3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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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유수같이 흘러 어느덧 제 3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4주차- 필사 3회차-를 맞았다. 지난 3주차 때 여행 중이어서 미처 다 필사하지 못한 「상상의 인도」 부분 중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필사했으며, 「사라져버린 날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인 「보르메의 섬들」까지 모두 완독 후 필사를 마무리했다.

 특히 지난 주차에 읽고, 이번주에 필사한「상상의 인도」 부분을 읽으며 그르니에의 충격이 유독 많이 느껴졌다. 물론 일면 그르니에가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문화 상대주의를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으로서 비판될 수 있겠으나, 그르니에가 전하고자 했던 핵심적 가치가 마음에 남았다. 특히 오늘이 4.19혁명 57주년 당일이기도 하고, 세월호 3주기가 지난 지 불과 몇 일 되지 않아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비인간적.〉 이것이야말로 완전히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태에 대한 엄청난 표현이다. 인도는 비인간적인 고장이다. 이 고장에서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만한 값이 못 된다. 어떤 인간은 짓밟히고 짐승과 같은 상태로 천대받는다. 폭군들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군림한다. 부당 정세는 드문 일이 아니다. 힌두교도들 서로간의 형편은 이렇다. 그들이 핍박받아 왔다고 해서 그들의 인간 됨됨이를 인정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비인간적 백성이다. 인간성의《밖에》있는 백성이다.
사회 구조 그 자체, 카스트의 구분, 복잡한 의식들, 사회에 의하여 개인을, 종교에 의하여 인간을 짓누르는 모든 것.‘

                                                         - 장 그르니에, 「상상의 인도」,『섬』, 민음사, 2008, 141쪽.

 

 또한「사라져버린 날들」에서 그가 이야기하는 ‘공백’의 삶 또한 매혹적이었다.
늘 무언가를 채워 넣기에 바쁜 현대인.....우리들에게, 장 그르니에는 그저 무상으로 주어진 삶을 윤택하게 살아가는 ‘여유’의 미학을, ‘공백’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그런 면면에 부러움을 느꼈다.

 

 ‘오늘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일기 수첩 agenda(어원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이라는 뜻)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공백의 페이지다. 완전히 공백 상태인 오늘만이 아니다. 내 일생 속에는 거의 공백인 수많은 페이지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국부적인 이해 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놓지 않는 일이다.’

                                                   - 장 그르니에, 「사라져버린 날들」, 『섬』, 민음사, 2008, 167쪽.

 

by papyros 2017. 4. 26. 23:53

제 3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3주차 필사 2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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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전, 이 책을 읽었고 귀국전날인 지금, 일본여행 마지막날 밤, 필사를 마무리했다. '여행'에 대해, 인간의 자연에 대한 경탄의 감정에 대한 그르니에의 <행운의 섬들>, <부활의 섬> 그리고 <상상의 인도>. 여행을 통해 자기자신을 되찾는다는 것, 자기 내면의 깊은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 감각에 집중하고 느낀다는 것.. 어쩌면 그것을 수많은 비탈(우여곡절)을 넘어야할지도 모르나, 그 길에는 분명 자신의 이성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첫 자유여행 도중 길을 헤메어 아침에 나가 밤늦게 도착했으나 여러모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교토에서 본 그 아름다운 벚꽃들도, 고베 기타노이진칸을 찾아가기까지도... 심지어는 식당 하나를 찾는데도 매우 많이 헤메이고 굴곡이 있었으나 자연이 준 선물..교토 벚꽃의 아름다움이나 고베의 야경은...그 절경에 경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를 줄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위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가슴속의 저 내면저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 <행운의 섬들>, P95.

 

 우리가 삶에 그토록이나 집착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 마련하곤 하는 그 예기치 않은 놀라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병이 낫지 않을 거라고 절망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문득 자리에서 일어서게 된다. 우리가 잔뜩 믿고 있었는데
돌연 그 믿음이 무너진다. 끝장은 항상 똑같은 것이면서도 거기에 이르는 우여곡절은 러시아 산맥의 비탈만큼이나 다양하다.
                                                                                                         -<부활의 섬>, P122.

by papyros 2017. 4. 26. 23:49

 

제 3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2주차 필사 1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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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카뮈의  에 대한 찬사 마지막에 드러난 카뮈의 심경을 이제사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20대의 어느 날, 장 그르니에의  을 마주한다는 것은 진실로 선물과 같이 신비로운 만남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장 그르니에, , 민음사, 2008, 14.

 

 장 그르니에는 공의 매혹에서 비어있는, 허공의 어떤 곳 속에 다가오는 충만함에 대해 초연히 성찰했으며, 고양이 물루에서 고양이를 바라보는 그 따뜻한 애정어린 시선과 함께 결국 그를 안락사시킬 수 밖에 없었던 그 아픔에 대해... 역설적이게도 아름답고 슬픈 그 마음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의 매혹이 뜀박질로 인도하게 되고, 우리가 한 발을 딛고 뛰듯 껑충껑충 이것저것에로 뛰어가게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없다. 공포심과 매혹이 함께 섞인다 앞으로 다가가면서도 (동시에 도망쳐)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그칠 사이 없는 움직임의 대가를 받는 날이 찾아오는 것이니,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다. 문득 공()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은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내 어린 시절, 반듯이 누워서 그리고 오래도록 나뭇가지 사이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하늘, 그리고 어느 날 싹 지워져 버리던 그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 장 그르니에, 공의 매혹, , 민음사, 2008, 33.

 

 

물루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나는 그의 몸 위에 내 시선을 가만히 기대어본다. 그러면 그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믿음직스러워졌다.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그의 현전(現前)).

- 장 그르니에, 고양이 물루, , 민음, 2008, 42.

 

 

물루가 자신이 고양이인 것에 만족해하듯이 인간들은 자신이 인간인 것에 만족해한다. 그러나 물루의 생각은 옳지만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왜냐하면 물루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지만 인간들의 입장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들에게 그 점을 설득시켰으면 싶다. 우리들에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없으며 우리들의 입장이란 성립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 장 그르니에, 공의 매혹, , 민음사, 2008, 45.

 

 

그리고 케레겔렌 군도를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든 지니고 있는 - 공적인 생활 뒤의 '감추어진 이면', 즉 공적인 자리에서 쓴 가면 뒤의 또다른 모습에 대해, 그 외로움에 대해 차분히 논하고 있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저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 장 그르니에, 케르겔렌 군도, , 민음사, 2008, 90.

 

장 그르니에라는 작가를 처음 접해 읽었다. 장 그르니에의 , 그 젊은 시절 어머니께서 읽으셨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마 그 시절의 어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겠지.......

 깔끔한 문장 속에 결코 단조롭지 않은 수많은 사색이, 그리고 수많은 사색과 고뇌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유려한 문체로 서술되어있으며 잔잔한 호숫가와 같은 한 청년의 마음을 '감동' 으로 출렁이게 한다.



by papyros 2017. 4. 5. 23:52

 

제 3회 손끝으로 문장읽기 1주차 배송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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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는 지난주에 올렸는데, 블로그에 업로드한다는 것을 깜빡해서 한주가 지난 이제사 올린다.

 

 

서문에서 알베르 카뮈가 이 책과 저자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존재의 근원, 문화의 뿌리를 뒤엎을정도로 매력적인 이책을 앞으로 4주간 열심히 읽고 느끼며 필사하고자한다. + 만년필 너무 필기감도 좋고 죄와벌 페이크노트 이미 한권소장중이지만 역시 죄와벌 디자인이 멋지다!!

by papyros 2017. 4. 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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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게시물은  창비 책읽는당 『아몬드 사전 서평단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출간 전 비매품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손원평, 아몬드』, 창비, 2017.

 

*본문의 인용구 페이지는 출간된 도서를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위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애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아몬드는 어딘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 손원평, 아몬드, 29.

 

이 작품에는 편도체-아미그달라의 이상으로 감정-특히 공포나 불안, 두려움 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조금 특별한 17세 소년 윤재(선윤재)의 성장과정이 그려져 있다. 유년 시절 눈앞에서 한 아이의 죽음을 보고도,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윤재의 열일곱 생일날 한 남자의 무차별 살인으로 인해 갑작스레 닥친 할멈(할머니)의 죽음과 칼에 찔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도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윤재를, 사람들은 마치 이상한 괴물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대한다.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으로 인해 학교에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윤재의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윤재가 정상적인’, ‘평범한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감정과 감정의 반응에 대해 교육시켜왔다.

‘- 복잡한 것까진 몰라도, 기본은 꼭 알아야 해. 그렇게만 해도 조금 메말랐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정상범주에 속할 거야.

사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 손원평, 아몬드, 38.

 

 

- 엄마도 네가 이렇게 지내는 걸 원하시지는 않았을 거다.

- 엄만 제가정상적으로 살길 원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 바꾸어 말하면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 평범…….

내가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같은 것. 굴곡 없이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얻고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 튀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

-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이루기 가장 어려운 가치란다.

- 손원평, 아몬드, 89-90.

 

 한편 곤이(윤이수) 또한 윤재와 같이 사람들에게서 괴물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곤이는 유년 시절 놀이동산에서 부모님과 헤어져 이후 보호시설에서 지내다 입양 후 다시 파양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여러번 사고를 쳐 소년원에 들락거리는 삶을 살아가 부모님을 다시 만난다. 걸핏하면 폭력을 휘드르고, 교사들의 수업 진행을 방해하거나 잦은 욕설을 사용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곤이는 소위 문제아로 불리며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윤재는 비록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할지언정 그 누구보다도 타인과 소통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독서량이 풍부해 지식이 많을뿐더러 성장과정에서 할멈과 엄마로부터 받은 충만한 사랑을 늘 추억하고 있다.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 손원평, 아몬드, 171-172.

 

 

곤이 또한 그가 정말 천성이 나쁜아이라서, 폭력을 행사하고 반항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찾지 못한 후 곤이는 여러 번 거처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파양당하며 버려진 경험이 있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부모님을 찾았지만 친어머니의 임종도 떳떳하게 보지 못했고 , 아버지는 자신과 소통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버려지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내적 자아를 지니고 있는 곤이는 다시 고통 받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강해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만 그 강함을 어른들이 규정해 둔 세계에 반항하고 질서를 위반하는 과시적 욕구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곤이가 신뢰할 만한 어른들에게, 혹은 학교/청소년상담사와 상담을 받으며 유기되는 것에 대한 불안’, ‘이해와 소통의 욕구를 해소한다면 곤이의 문제행동 또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고통이라는 감정에 공감하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나비의 날개를 찢으면서까지 윤재와 소통하고자 하는 장면을 통해 곤이의 진실성과 순수성 또한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윤재의 내면을 이해하며 곤이를 좋은 아이라고 바라보는 것은 윤재뿐이다. 바로 그 때문에 곤이는 윤재와 단 둘이 있을 때만은 다른 누구에게 보이지 않는 속마음을 깊이 터놓을 수 있었다.

 

 

- 그 남자는 말이야…….

곤이가 말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그 사람이 날 만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 강남에 있는 학교에 날 처넣은 거였어. 거기 가면 내가 모범적으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라도 갈 줄 알았나봐. 근데 첫날 가보니까 나 같은 놈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물인거야. 날 보는 눈빛 하나하나에 그렇게 써있더라고. 그래서 깽판을 좀 쳐 줬지. 거긴 얄짤 없더라. 하루 만에 쫓겨났어.

곤이가 콧바람을 불었다.

간신히 전학시킨 게 여기야. 그나마 인문계라 체면은 섰겠지.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 손원평, 아몬드, 166-167.

 

 

불과 몇 달 전의 기억이 아련하게 머릿속을 오갔다. 나비의 날개를 찢던 날, 곤이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다가 실패한 그날, 어스름이 내리던 무렵, 바닥에 짓이겨진 나비의 잔해를 닦아 내며 곤이는 몹시 울었다.

- 아무런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싶어.

눈물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조금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기엔 넌 너무 감정이 풍부하거든. 넌 차라리 화가나 음악가가 되는 편이 더 어울릴걸.

곤이가 웃었다. 물기 어린 웃음을.

- 손원평, 아몬드, 248.

 

 

윤재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과 곤이의 마음 깊은 곳 진실한 내면을 바라보면서, 한 개인이 지닌 외적인 부분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해 그 내면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성급히 낙인찍는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는 중요한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특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음에도 타인의 고통, 타인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나서서 돕기보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범인凡人들과 달리 윤재는 곤이가 위험에 마주했을 때 진심을 전하고 곤이를 구해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 직접 위험과 대면하는 용기를 보인다.

즉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편도체의 크기와 같은 장애나 질환, 혹은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한계로 인해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삶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실천하느냐의 문제에 달려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실직(해고)된 노동자 등 사회 문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한다는 문제도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공감하는 마음을 그저 마음에만 품고 있지 않고 실천적 행동으로 옮기는 것. 나 또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행인 중 한명이 아니었던가 싶은 마음에 부끄러워진다.

 

 

내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처음엔 할멈을 찌른 남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점차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중략)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엄마와 할멈을 뻔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것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당시 성가대원 중 한 사람이 했던 인터뷰가 뇌리에 떠다녔다. 남자의기세가 너무나 격렬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손원평, 아몬드, 244-245.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가 칼에 찔린 그 사건 뒤로 심박사에게 삶의 조언을 얻고, 곤이와 소통하며 진실한 우정을 배우고 고통과 두려움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통찰했으며 도라(이도라)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깨달을 뿐 아니라, 특별한 존재가 된 도라에게는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내밀한 마음을 고백한다.

 

 

불을 끄고 책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겐 풍경처럼 익숙한 냄새였다. 그런데 거기 무언가 다른 게 실려 있었다. 갑자기 마음속에 탁, 하고 작은 불씨가 켜졌다. 행간을 알고 싶었다. 작가들이 써 놓은 글의 의미를 정말 알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깊은 얘기를 나누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왔다. 도라였다.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말하고 싶었다. 마음에 떠오른 불씨가 꺼지기 전에.

- 나 언젠간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 도라의 눈망을이 뺨을 간질였다.

- 나도 이해 못하는 나를,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 이해.

- 손원평, 아몬드, 206-207.

 

 

즉 기존의 세계에서 가족을 상실한 후 새로운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결과적으로 윤재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도 기적적으로 회복되며 마무리된다. 편도체의 문제로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평가하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의사들의 확정적 진단을 넘어서 윤재의 소통하고 이해하며 진심을 다하고자 하는 내면의 노력이 결국 뇌(편도체)의 문제를 극복해낸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야, 사람의 머리란 생각보다 묘한 놈이거든.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사가 웃었다.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나는 곤이와 도라와 함께 보낸 지난 몇 개월을 짧게 회상했다. 그리고 곤이가 후자로 자라고 변하기를 바랐다. 그 전에 좋은 방향이 어떤 것인지부터 고민해야겠지만.

- 손원평, 아몬드, 252-253.

 

책장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너무나 마음을 울리는 문구들이 많았던 이 소설은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 우정, 고통과 두려움, 불안 등 감정들을 다룰 뿐 아니라 진정한 공감이란 실천적 행동의 수반에 있음을, 그리고 삶의 좋은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찾은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을 위해 노력해 나갈 때 변화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좋은 방향을 고민하며 그저 달리는 개개인 모두의 삶이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이 소설을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청소년들, 새로운 관계를 마주하며 청소년기에 마주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변화와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청년들, 외적인 문제행동만으로 학습자(청소년)들을 쉽게 낙인찍으려하는 일부 교사들을 비롯해 선입견을 지니고 타인을 바라보는 어른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이들……. 그들 모두와 함께 읽고 소통하며 성장해나가고 싶다. 삶을 살아가며 그 삶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는 만큼, 자신이 느끼는 것 그대로 행동하는 만큼 어느 새 한 발짝 나아가 있을 것이다.

 

누워있는 동안 같은 꿈을 자주 꿨다. 운동회가 한창인 운동장이다.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태양 아래 나와 곤이가 서 있다. 무척 뜨겁다. 앞에서 달리기 시합이 펼쳐지고 있다. 곤이가 씩 웃으며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준다. 손을 펼치자, 반투명한 구슬이 손바닥 위를 또르르 구른다. 중간에 웃는 표정 같은 둥근 선이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구슬을 굴리자 붉은 선이 방향을 바꾸며 울었다 웃었다 한다. 자두 맛 사탕이다. 사탕을 입안에 넣는다. 달콤하고 새콤하다. 침이 고인다. 혀로 사탕을 굴린다. 이따금씩 사탕이 이빨과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낸다. 갑자기 혀가 저릿하다. 짭짜름하고 시큰하다. 비리기도 하고 쓰기도 하다. 그 사이로 다디단 향이 올라와 나는 정신없이 코를 킁킁댄다.

, 어디선가 출발 신호가 공기를 울린다. 우리는 지면을 밀어내며 달리기 시작한다. 시합이아니라, 그저 달리기다. 우린 그냥 몸이 공기를 가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 손원평, 아몬드, 249-250.

 

 

 

여기서부터는 아주 다른 얘기다. 새롭고, 알 수 없는.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 따윈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일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 손원평, 아몬드, 258-259.

 

 

 

 

 

 

 

 

by papyros 2017. 4. 4. 00:32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국내 유일의 전자책(E-book) 서점, 리디북스가 창립 9주년을 맞았습니다!

알라딘,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또한 전자책(E-book)을 판매하고 있기는 하나,

 리디북스는 여타 종이책이아닌 오직 전자책(E-book)만을 판매하는 전자책 전문서점입니다.

 

 

https://ridibooks.com/  리디북스 홈페이지

 

 

이 글에서는 리디북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그 장점들, 주요 기능이나 단말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1. 각 출판사와의 연계

 

제가 리디북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4년 가을, 민음 북클럽 독서모임 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활동 사은품으로 리디북스 쿠폰을 받아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처음 전자책을 접하게 되었고

핸드폰으로 전자책을 구입하고 다운 받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이와 같은 쿠폰을 두번이나 받았음에도,당시엔 잘 사용하지 않았기에

한 권은 제대로 등록을 했으나,

<더블린 사람들>의 경우 후일 등록하려 하니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다시 리디북스를 만나게 된 것은,

 

2016년 여름

민음 북클럽X리디북스의 콜라보 리디북스의 전자책 리더기, 페이퍼PAPER를 대여해 주는 이벤트 덕분이었습니다.

워낙 독서를 좋아하는데 책장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종이책 수요가 부담스러워질 그 즈음 전자책에 대해 알아보고 있던 차라 전자책 리더기를 접해보고 싶던 제게는 무척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후 창비X리디북스 연계로 창비 책읽는당에도 리디북스 PAPER를 대여해 주기도 했는데

 

이렇듯 각종 출판사와의 연계가 더욱 지속적으로 모색된다면

각 출판사들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리디북스를 더욱 알리고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9년이 아닌 10년, 20년......더욱 멋지게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2. 최고의 전자책 리더기, 리디북스 페이퍼 PAPER

 앞서 밝혔듯 2016년 여름 페이퍼를 통한 리디북스와 두번째 만남으로 인해 저는 리디북스의 애용자가 되었습니다. 대여기간이 끝나고 저는 리디북스 페이퍼를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많은 책들을 소장하고 읽고 싶으나, 공간이 부족해진 독서가들에게 이러한 전자책은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리디북스 페이퍼 로딩화면

 

 

 

  PAPER 책장 화면

 

 

 

처음 전자책 리더기를 사용하기 전 무엇보다 가장 우려했던 사실이 가독성 부분이었으나, E-ink 패널 로 이루어져있으며 300PPI라는 고해상도를 보유하고 있는 리디북스 페이퍼는 휴대폰이나 그 어떤 태블릿보다도 눈의 피로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종이책만큼 눈이 편하고 읽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또한 이동성, 휴대성이 좋아 버스나 지하철 등 교통수단에서도 책을 편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장점입니다. 

 

 

또한 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기능은 독서노트 부분입니다.

책을 읽으며 형광펜을 치거나 북마크(책갈피) 표시를 해 두면 독서노트 탭에서 모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필사를 하거나 책의 핵심 문장들을 다시 을 때에도 매우 유용한 기능니다. 터치하면 해당 페이지로 바로 이동할 수 있어 생각나는 문장을 찾아 이리저리 헤메지 않아도 좋다는 점에서 매우 편한 기능입니다.

 

 

특히 휴대폰에서는 이 독서노트 기능에 한층 더해져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사진을 선택해 좋아하는 문장을 멋지게 소장할 수 있습니다. 페이퍼에서도 이 이미지 기능이 지원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기능입니다.

페이스북이나 카톡 프로필 사진 으로 저장해 두어도 좋더군요:)

 

 

대기화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으로 대기화면을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페이퍼에 자신이 소장중인 PDF나 E-pub 도서 파일을 내장메모리나 SD카드에 저장하여 책을 볼 수도 있고  물리키가 있어 페이지 넘김이 편리하다는 것도 좋은 장점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기능은

페이퍼를 직접 사용하며 확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3. 다양한 이벤트

 

 

이외 리디북스 홈페이지에서는

문화가있는 날 이벤트.

매달 15일 즈음이면 쿠폰을 증정하는 십오야 이벤트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리디북스가 있는 선릉역에 눈이오거나 비가 오면 그 날 저녁 6시에 눈쿠폰/비쿠폰이 나오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가끔 눈이나 비를 기다린다는 것은 안비밀 ㅎㅎ)

각종 이벤트를 수시로 확인해 할인혜택을 받으면 더욱 행복한 독서생활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4. 나오며

 

리디북스를 작년 여름부터 애용해 1년이 조금 안 되어 온 시간동안

전반적으로 리디북스는 고객들의 편의를 많이 생각하고 '소통'하려 한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페이퍼 기능에 대한 건의를 넣으니 바로 형광펜 문장 이어 선택하기 기능을 펌웨어 업데이트로 해결 해 주시는 모습 등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 주시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리디북스 페이퍼의 '폐쇄성'을 들 수 있겠습니다.

다른 전자책 리더기(대표적으로 크레마 진영)의 경우 '열린서재'기능을 통해 알라딘, 교보문고 등 여러 서점 어플 설치를 지원해주는 기능을 지니고 있는데 리디북스의 경우 루팅을 하지 않는 한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충분한 이벤트와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서비스에 대한 고민, 노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열린서재 기능을 지원하는 부분에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리디북스 페이퍼가 단종되고 페이퍼 라이트만이 공식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지금, 후속기에서는 이를 추가해 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알라딘은 '굿즈'로 소비자들을 매혹시키고, 교보문고의 경우 오랜 브랜드 이미지로 홍보하는 측면이 있다면

 

전자책계의 Reader, 선구자 리디북스 RIDIBOOKS가 9살을 맞은 지금, 브랜드 이미지를 어떻게 알려 나갈 지 그 방향성을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소비자(독자)와 출판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배려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각 출판사와의 E-book  이벤트 콜라보에 주력하는 것에 건의를 드립니다.

 

9년이 아니라 10년,20년 오래도록 함께하는 리디북스가 되기를 고대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리디북스의 9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by papyros 2017. 3. 31. 23:58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민음북클럽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서평 이벤트 활동의 일환으로,

  민음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질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문지방이며,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게 해 주는 안내자다. 우리는 매순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선다. 질문은 지금껏 매달려 온 신념이나 편견을 넘어 낯선 시간과 장소서 마주하는 진실한 자신을 찾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문이다. 이 질문은 외부에서 오기도 하고, 자기자신을 관찰하는 데서 오기도 한다.’

-배철현,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37-38.

 

2015 Grand Master Class 생각수업 당시 광운대에서 김대식 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강연에서 삶은 의미있어야 하는가?’는 화두를 제시하시며, 삶의 의미-즉 삶의기능과 목표를 생각하면서 지금 이 순간, 현재에만 치우쳐 근시안적으로 살아가지 말고 미래의 ’ - 2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거시안적 안목에 대해 이야기 하신 바 있다.

바로 이 거시안적 안목을 확대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를 김대식 선생님께서는 이 책에서도 제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최재천 선생님께서 지식의 융합, ‘통섭統攝을 강조하신 바 있고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문이과가 통합되는 등 인문사회학과 과학의 경계지우기가 강조돠고 있다. 이 책 뇌과학자의 저서는 딱딱하거나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무색할만큼 다양한 인문사회 서적과 문학을 통해 품은 질문과 생각의 단상들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오랜 세월에 걸쳐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항존적인 가치를 담은 고전들이 다수 제시되어 있다.

 

 

 

 

저에게는 다음 밀레니엄까지 전해주고 싶은 가치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적인 질서, 정확성, 시적 사고력, 그러나 동시에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력에 대한 경험이 내표되어 있는 문학입니다.”

-이탈로 칼비노, 하버드대학교 강연(1985)에서.

-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77.

 

성서, 일리아스, 미메시스, SF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독자 개개인의 삶의 경험과 자기서사’(*자기서사란 문학치료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로 문학작품이 각각 다른 작품서사를 지니고 있듯, 개개인도 자신만의 서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서사의 유형과 수준이 나뉘어져 있어 자기서사를 진단하는 도구도 있는데 문학치료와 자기서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다면 정운채 교수님의 연구를 위주로 건국대 서사와 문학치료연구소에서 출판/발행된 책이나 논문을 보는 것이 좋다.)에 따라 특히 마음에 남는 대목이나 인상깊은 작품은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기에 한 발짝 성장할 수 있었던 모세의 이야기’, 알렉산드로스 황제와 다리우스 대왕을 통해 승자의 관점에서 쓰인 역사에서 좋은 사람을 고정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반문, ‘비극이 아닌 희극을 통해 삶과 진리에 다가가는 경로를 모색한 움베르토 에코, 로마의 멸망으로부터 비롯된 삶의 혼란에 대한 해답을 진정한 신국, 예루살렘으로부터 찾았던 아우구스티누스, 중세에 대한 이해를 통해 바라보는 현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용서의 문제, 그리고 호메로스의일리아스에서 세부적이고 고정된 사실을 표현하는 것과 달리 사람들의 고민과 깊은 내면을 표현해 진실을 그려내는 미메시스 계열의 작품들의 차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차별과 폭력의 이야기들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모세는 신의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었을까?

40년 동안의 사막 생활은 모세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모세가 본 가시떨기나무는 실제로 불에 연소되지 않는 나무를 본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시선이란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가시떨기나무에서 들려온 소리는 신의 소리이자 모세 내면의 목소리다.

-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42.

 

 

 

 

우리는 왜 중세를 이해해야 하는가? 문명이 다시 야만으로 쇠퇴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억눌리는 세상. 2017년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중세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203.

 

어리석은 소립니다. 구더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오래된 상처들이 나을 수 있겠습니까? 학살과 마법사의 술수 위에 세워진 평화가 영원히 유지될 수 있을까요?”

-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215.

 

 

호메로스는 수많은 디테일을 통해 존재하는 사실만을 표현하지만 창세기에서의 미메시스는 깊은 해석을 통해 진실을 느끼게 한다. 현실과 진실의 차이.

 

아브라함의 영혼은 절망적인 번역과 희망에 찬 기대 사이에서 찢기고 있다. 그의 말없는 복종은 중층적이며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문제가 많은 심리적 상황은 호메로스의 주인공들에게는 있을 수 없다. 호메로스 주인공들의 운명은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그들은 매일 아침 그것이 마치 그들의 삶의 첫날인것처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의 감정은 강렬하나 단순하며 즉각 표현된다.

- 에리히 아우어바흐, 미메시스에서

-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244-245.

 

유대인카프카가 숨진 지 십년 후, 옆 집 의사, 친구, 스승이던 독일 유대인들은 단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직장과 집에서 쫓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십 년 후.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역겨운 벌레가 되어버린 그것들은 살충제에 의해 학살당한다.

(중략)

우리 모두의 영원한 변신. 그리고 언제라도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살과 폭행과 차별을 저지르는 또 하나의 우리 모습을, 카프카의 변신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282.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기에,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숙고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비극들이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다. 박승찬 교수님을 비롯한 중세 전문가들이 중세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바라보는 이유도 어쩌면 우리 사회가 정말로 중세의 그 찬란하고도 한편으로 어두운 모습을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야욕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에서 인권을 유린당했던 위안부 피해자분들과 군함도......,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 이 모두가 질문성찰이 부재했기에, 폭력과 차별에 대한 경계가 없었기에 이루어진 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배워왔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세계의 흐름을 바라보면 자칫 이 역사가 반복되는 상황이 생길까 우려스럽다.

아베 정권의 극우적 성향과 반성없는 태도, 마치 유대인들을 배척했듯 이민자 배척 정책을 벌이는 트럼프, 그리고 바로 얼마 전까지 진실과 정의가 너무나도 멀어보였던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과 폐단.

같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개개인 모두가 자기 내부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의문을 품고 있는 일에 계속해 질문을 던지며 숙고해야한다. 이러한 숙고와 성찰의 과정이 따를 때에만 사회, 나아가 지구 공동체가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자 권력을 쌓고 부를 축적하거나, 자국의 이익 -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에만 매몰된다면, 질문이 없는 반복적이며 기계식 훈련과 같은 교육환경이 지속된다면 인간 내면의 항존적인 가치들 - 사랑, 평화, 정의, 자유 등 -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개인이 끊임없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고 사회의 오류를 비판할 때 삶이, 인류가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성찰과 깨달음이 가능하려면 을 읽은 후 자기 나름의(자기 내면에 깊이 지니고 있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김대식 선생님의 질문을 읽고 던져버리는 수동적 독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능동적 독서가 요구되는 것이다. 능동적 독서, 질문하기를 잊어버린 많은 이들에게 그 모범과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의가 있는 책이다.

 

 

세상과 자신의 미래를 제어할 수 있는 전능한 호모데우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모른다.

우주 최고의 힘을 가졌지만 어디에 써야 하는지 모르는 신.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는 신.

그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 김대식,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321.

 

 

 

 

by papyros 2017. 3. 30. 00:32

밑줄긋고 생각잇기 5주차 - 거대한 뿌리, 행복의 형이상학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어느덧 민음북클럽 밑줄긋고 생각잇기모임도 마지막 주에 접어들었다. 마지막주인 이번 5주차에는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 사랑의 변주곡, 꽃잎1, 이렇게 세 편의 시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사랑의 변주곡은 그 서두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언뜻 제목을 보면 강렬한, 뜨거운 사랑에 관한 시로 오인할지 모르나 그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4 · 19혁명을 지나며 화자가 겪은 내면의 깨달음이 제시되어 있다. 1연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의 끝에서 사랑을 발견하고자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2연에서 제시되는 도시- ‘서울의 등불’-는 도야지 우리의 밥찌끼에 지나지 않는다. 즉 도시는 돼지우리의 밥찌꺼기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공간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사랑이 발견되는 공간으로서 자리한다. 김수영 자신이 겪은 4 · 19혁명도, 불란서혁명도, 결국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혁명안에는 이데올로기권력을 우선하는 것이 아닌,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음을, 그리고 간악한 폭풍과 같은 고된 역경을 이겨내고 열매 맺는 복사씨살구씨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인간애)과 정의正意에 대한 신념이 지니는 힘이, 그 어떤 도시의 크기보다도 더욱 크다는 것을 시인은 4 · 19를 통해 배웠을지 모른다. 즉 이 시는 혁명을 통해 시인이 깨닫고 내면화한 깨달음을 강렬하면서도 담담한 시어로 묘사하는 시로서, 유의미하다. (임홍배 해설 참조. 출처 : http://blog.daum.net/lespaul6/228758)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 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넝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중략)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 · 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중략)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거다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에서, P126-128.

 

 

 

세편의 꽃잎 연작시 중에서는꽃잎1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으나, 3연에서 보듯 화자는 떨어져 내리는 꽃잎을 보고 임종의 생명같기도 하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다고도 하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다고도 한다. ‘임종이 아닌 생명에 방점을 찍은 것에, 그리고 한 장의 얇은 꽃잎이 바위를 뭉갠다고 표현한 것을 통해 시를 이해해본다면 시인은 이 시에서 꽃잎을 통해 생명력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거대한 바위를 뭉갤만한 힘을 지닌 꽃잎혁명의 힘과 같이 어두움과 죽음, 소멸보다는 더 큰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이다.

(이광호 평론가 해설 참조. / 출처: http://cafe.daum.net/ryhn1616/IP7w/216)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혁명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김수영, 꽃잎1, P132.

 

 

 1968년 발표된은 김수영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정전正典이다. 이 시를 짓고 불과 보름 만에 시인이 타계한 바, 이 시가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이 시에서 시인이 전하고자 했던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이 바로 그가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소망어린 메시지처럼 들린다. 거센 비와 바람에 절망하며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풀의 강한 생명력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꺼지지 않는 촛불의 의미, 올바른 삶에 대한 희망/소망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 P142.

 

 

 

5주간 읽어온 김수영 시인의 시선 거대한 뿌리를 마무리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번 독서는 제대로 독서하지 못한 것이라 여겨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그저 1960년대 모더니즘 시인으로 현실참여적 시를 많이 써온 시인으로만,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시인 김수영을 알고 있었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지닌 실존에 대한 철학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더욱 자세히 이해하려면 먼저 김수영의 삶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평전 등을 읽어야 하며, 김수영 시세계에 영향을 준 철학자-특히 하이데거의 철학-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최하림 시인이 저술한 김수영 평전,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이해를 선행한 후 거대한 뿌리의 시 한 편 한편을 이해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그만큼, 오래 두고 고심하며 읽어야 그 빛을 발하는 시집이라 생각한다.

 

 

 

 

 

 

알랭 바디우의행복의 형이상학의 경우, ‘저자 인터뷰글과 옮긴이의 말’(행복은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다)를 읽고 나름대로 5주간 읽어온 내용을 회상하며 정리해 보았다.

결국 행복은 소극적 의미의 만족과 다른, 보다 능동적이며 실존적 차원의 가치인데, 지난 주차의 4장에서 분명히 보았듯, 이 행복이 주체의 차원에서 실현되려면 행복이 지니는 가능성영향력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하며, 공동체 내의 행복이란 지속적인 토론을 통해 정언명령으로 삼을 만한 규율을 실천적으로/실존적으로 선택하며 새로운 규율을 통해 공동체를 변화시킬 때 가능한 것이다. ‘만족이 아닌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 철학 안에서 행복의 의미를 되짚어야 하는 이유의 답은 바로 현 사회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싶다. 특정 개인만이 누리는 행복이 아닌,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다수에 의해 합의된정언명령,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도덕적 질서가 실천되는 자리일 때 비로소 당면한 여러 과제들을 해결하고 사회/공동체의 성장과 성숙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앞서 거대한 뿌리에서 살펴보았던 김수영 시인의 메시지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행복은 단순히 불행의 부정일 수 없으며, 삶의 선물이나 증여는 만족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삶의 선물을 받으려면 반드시 상당한 각오를 해야만 하며,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실존적 선택입니다.

                                                                                                 -행복의 형이상학, P173.

 

 

 

 

 개인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에서 오는 만족은 오직 자신의 생존을 추구하는 동물적 차원에 머무른다. 반면 행복은 진리를 구성하는 주체를 위한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행복은 분명히 만족과 구별된다. 인간의 벌거벗은 생명 자체에서 오는 개별적 욕구와 달리, 어떤 공유된 차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치인 것이다.

-행복의 형이상학, P182.

 

 

 

 

 

  분석가 담론에서 바디우 철학의 주체는 진리를 만들어 내는 행위자가 아니라 사건과 그 이후 나타나는 진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상의 자리에 선다. 심지어 철학마저도 그 자체의 진리를 보유하는 무엇이 아니며, 오히려 다수의 진리가 철학의 성립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주인 기표의 사라짐, 해방, 즉 모두가 모두와 평등해지며 결코 누군가에게 독점되지 않는 철학의 전달과 토론이다. 이런 여정을 거쳐 수정된 철학에서, 행복은 플라톤에게 그랬던 것과는 달리 철학자만이 독점하는 정동이 아니다. 바디우의 뒤집힌 플라톤주의에서 행복은 주체들 간에 평등하게 분유될 수 있는 정동이자 민주주의적으로 토론되어야 할 가치이며, 바디우가 말하는 그대로 주체가 될 가능성은 인간 동물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행복의 형이상학, P195-196.

 

 

 

 

  행복이란 변화를 받아들여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기존의 방향과 다른 삶이 있음을 확신할 때 얻을 수 있는 정동임을 가리킨다. 행복은 언제나 새롭게 발명되어야 하며, 이 발명을 통해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집단과 그 집단에서 작동하는 규율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집단 속에서 규율이란 또한 자유이며 자신의 규율을 지탱하기 위한 의지이기도 하다.

-행복의 형이상학, P198.

 

 

 

  5주간 행복의 형이상학독서를 하며 문장의 면면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철학자나 철학도가 아닌 이상, 어쩌면 이를 완벽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처음 책을 접할 때는 정말 너무 난해 하여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책이었는데, 어느 순간-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만 목표를 두자 생각했더니 전체적인 메시지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체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끊임없이 실존적 사유와 선택을 해나간다면 행복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단지 개인적 차원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행복을 실현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더욱 깊이 고민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by papyros 2017. 2. 15. 23:10

밑줄긋고 생각잇기 4주차 - 거대한 뿌리, 행복의 형이상학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4주차에는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이 한국문학사까지 세 편의 시가 인상적이었다. 세 편의 시를 통해, 시인 김수영이 지니고 있었던 시대의식과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1964년 발표된 시이다. 생소한 시이며 일전에 접한 적이 없는 시이지만, 6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첫 연은 60년대의 암울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무뿌리가 가라앉고 이 가슴의 동계도, 기침도, 한기도, 가족들도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 심지어 생명마저 이미 맡기어진 죽음의 가치가 지배하는 질서의 세상 속에서 화자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하며 투쟁하는 방법으로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한 마디 을 내뱉기 조심스럽고 두렵기까지 한 시대상황에서, 화자는 자유로이 발언할 수 없다. 때문에, 화자는 무언의 말을 택한다. 4연을 보면 이 무언의 말하늘의 빛이자 물의 빛’, ‘우연의 빛’, ‘우연의 말로 표현된다. 이에는 긍정적인 속성이 내포되어 있는데 한편으로는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말이며 죽음에 섬기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겨울의 말이자 의 말이기도 하다. 역설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무언의 말은 곧 시로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소신있는 말을 직접적으로 내뱉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시를 지어 자신의 가치와 생각, 신념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가 발표되면 이는 세상이 함께 공유하는 작품이기에 더 이상 내 말이 아니게 된다. 결국 이 시는 김수영의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시인의 이러한 소명은 미시권력은 전짓불 뒤에 숨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진술을 요구하는 감시장치의 요소가 사회 곳곳에 편재해 있었던 60년대 시대상황과 연결된다. 이청준이 이러한 시대상황에 대해 메타픽션으로 대응했다면, 김수영은 권력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언어를 통해 시대에 대응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 시는 김수영 시의 의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시인으로서의 자기희생을 내포하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가 연상되기도 한다.

 

 

 

나무뿌리가 좀더 깊이 겨울을 향해 가라앉았다

이제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이 가슴의 動悸도 기침도 한기도 내것이 아니다

이 집도 아내도 아들도 어머니도 다시 내것이 아니다

오늘도 여전히 일을 하고 걱정하고

돈을 벌고 싸우고 오늘부터의 할일을 하지만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

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

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버렸다

 

익살스러울만치 모든 거리가 단축되고

익살스러울만치 모든 질문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고해야 할 너무나 많은 말을 갖고 있지만

세상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무언의 말

이 때문에 아내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자식을 다루기 어려워지고 친구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이 너무나 큰 어려움에 나는 입을 봉하고 있는 셈이고

무서운 무성의를 자행하고 있다

 

이 무언의 말

하늘의 빛이요 물의 빛이요 우연의 빛이요 우연의 말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

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

이 만능의 말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

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김수영, , P103-104.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교과서에 수록되어 중등교육에서 이미 오랜 시간 교수-학습 되어 온 정전[正典에 속한다. 시대현실에는 강력히 비판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개하고 증오하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자기고백적인 시로 잘 알려져 있는데, 금번에 재독하면서 눈에 띄었던 점은 학창시절 배우고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연에서 당대 문제시되었던 사회문제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2연에서 볼 수 있듯 시인은 소설가들이 붙잡혀 옥고를 치르는그릇된 현실에 대해, ‘언론의 자유수호와 월남파병 반대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시대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부끄러운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시인으로서의 슬픈 천명을 자각했던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여진 시와도 같은 가치를 향유하고 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

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중에서, P111-113.

 

 

이 한국문학사에서 시적 화자는 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겪으며 이어 내려오는 한국문학사韓國文學史에 대해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 비록 오늘날 이 시대에는 김동인이나 박승희 같은 작가들과 같이 헌신적인 작가도, 또 김유정 같이 직접 낮은 자리에서 체험하고 골몰하며 작품을 집필하는- 자기를 희생하며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찾기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을 감수하며 자기만의 글을 써내려가는 충실한 글쟁이들이 모여 이 한국문학사가 이루어졌으므로 비웃을 대상이 아님을, 화자는 강조하고 있다. 즉 오늘날 이 한국문학사또한 거대한 뿌리의 전통 안에서 그 잠재성과 가능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이경수 공저, 2016년 젊은평론가상 수상 작품집, 지만지, 2016. 참조)

 

 

 

우리는 여지껏 희생하지 않는 오늘의 문학자들에 관해서

너무나 많이 고민해왔다

김동인, 박승희같은 이들처럼 사재를 털어놓고

문화에 헌신하지 않았다

김유정처럼 그밖의 위대한 선배들처럼 거지짓을 하면서

소설에 골몰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덤핑 출판사의 20원짜리나 20원 이하의 고료를 받고 일하는

불쌍한 나나 내 부근의 친구들을 생각할 때

이 죽은 순교자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우리의 주위에 너무나 많은 순교자들의 이 발견을

지금 나는 하고 있다

 

나는 광휘에 찬 신현대문학사의 시를 깨알같은 글씨로

쓰고 있다

될 수만 있다면 독자들에게 이 깨알만한 글씨보다 더

작게 써야 할 이 고초의 시기의

보다 더 작은 나의 즐거움을 피력하고 싶다

 

덤핑 출판사의 일을 하는 이 무의식 대중을 웃지 마라

지극히 시시한 이 발견을 웃지 마라

비로소 충만한 이 한국문학사를 웃지 마라

저들의 고요한 숨길을 웃지 마라

저들의 무서운 방탕을 웃지 마라

이 무서운 낭비의 아들들을 웃지 마라

 

-김수영, 이 한국문학사중에서, P114-115.

 

 

 알랭 바디우의행복의 형이상학의 경우, 마지막 장인 행복의 정동에 관해 읽어 내려갔다. 전반적인 내용이 난해해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핵심적인 부분을 생각한다면, 결국 철학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즉 실존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진리를 전제하고 있어야 한다. 진리의 실존은 원칙, 규범, 경험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가치있는 것을 끊임없이 탐색해 나가야 한다. 즉 칸트가 말한 정언명령처럼 철학에도 일종의 정언명령이 기대되는 것이다. 즉 철학적 질문을 통해 시대를 진단하고, 이에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진리를 탐색 및 구축하고, 이렇게 구축한 진리를 통해 참된 삶의 가능성을 확보하며 실존적 경험이 자리할 때, 철학을 통한 행복이 완성되는 것이다. 즉 진리를 발견하고 자신의 정연명령(이념)을 구축하여 자신의 실존적 경험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이가 비로소 철학(적 사유)을 통해 행복해 질 수 있다. 예비교사로서 나는 교과교육만큼이나 학습자들이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관에 대해 고민한 후 가치관의 질서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주체적으로 확립하고 자신이 확립한 올바른 가치관에 걸맞게 인격을 갖출 수 있도록 인격교육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러한 역할을 철학이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철학을 통해 자기 나름의 진리를 발견해 자발적으로 자신이 평생을 지니고 살아갈 만한 정동을 삼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때문에 학교현장에서는 개별 교과안에 철학적 질문과 고민을 녹여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김수영 시선과, 알랭 바디우의 행복의 형이상학을 잠시 연관 지어 본다면......., 아마도 김수영 시인의 정동은 자유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시대의 문제를 비판하고 그 본질을 회복해 한 국가의 개개인 모두가, 그 사회가 비로소 자유로워지기를 소망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김수영 시인은 바로 를 통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그 선의 이데아, 진리를 대중들에게 공유한 것이다.

 

 

 

참된 삶은 이념의 표지 아래 살아가는 것, 이를테면 결과적인 통합의 표지 아래 살아가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완전한 삶을 향한 최초의 열망을 되찾게 되며, 완전한 삶의 열망은 단지 이념과 진리로 표명될 뿐 아니라, 완성된 삶, 곧 진리에 관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거친 삶이라는 개념으로도 표명된다.

-행복의 형이상학, P112-113.

 

플라톤은 이데아의 철학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그에게 이 경험을 전달할 필요성은 대체로 경험 자체의 내용 바깥에 있다. 이는 플라톤이 철학자는 정치가나 교육자가 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단언하는 이유이다. 선의 이데아로 이끌릴 때, 철학자에게는 오직 하나의 이데아만이 있을 뿐이며, 바로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진리의 경험 바깥에서 오는 이러한 전달의 필요성은 플라톤에게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요청이다. 진리의 경험은 사회의 일반적인 조직이라는 층위에서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진리의 경험을 전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지배적 의견의 영향 아래 놓인다.

-행복의 형이상학, P127-128.

 

내게 철학은 진리들이 있다는 확신에서 시작하는 사유의 교과(discipline, 훈육), 곧 단독적인 교과이다. 그로 인해 철학은 명령과 삶의 통찰로 향하게 된다. 통찰이란 어떤 것인가? 개별 인간에게 가치가 있으며 진정한 삶을 전달하고 그의 실존을 방향 짓는 것은 이러한 진리들로부터 시작된다.

(중략)

철학은 진리들의 실존을 제시하는 삶에서 진리들의 실존을 하나의 원칙으로, 규범으로, 경험으로 삼는 삶에 이른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무엇을 부여하는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 가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철학은 경험의 혼란에 정리를 제시하며, 따라서 방향을 이끌어 낸다. 혼란에서 정향(定向)으로 옮겨 가는 이 상승은 전형적인 철학의 활동이며 철학의 고유한 교육이다.

-행복의 형이상학, P144-145.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존엄하면서도 강렬한 삶, 엄격하게 동물적인 특질들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정동을, 실제적 행복의 정동을 나타내는 삶이란? 나는 철학이 참된 삶을 내재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그 구상과명제에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는 철학 자체의 내부에 있는 참된 삶을 알려야 한다. 그저 외부적인 명령이 아니라 칸트적 명령으로서 말이다. 이것은 삶에 겪을 가치가 있다는 점을 내재적으로 나타내고 보여 주는 정동의 관할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내가 매우 선호하며 기꺼이 받아들이는 불멸의 삶을 살라.”는 정식이 있다. 이런 정동에는 다른 이름들도 있다. 스피노자에게는 지복”, 파스칼에게는 기쁨”, 니체에게는 초인”,베르그송에게는 신성함”, 칸트에게는 존경…… 나는 참된 삶의 정동이 있다고 믿으며, 이에 가장 단순한 이름인 행복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행복의 형이상학, P145-146.

 

철학자는 자신이 철학자보다 행복하다고 믿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부자보다, 향락을 즐기는 사람보다, 참주보다, 그 누구보다 더. 플라톤은 그치지 않고 이 문제를 재론하며 우리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증명을 제시한다. 오직 이념의 표지 아래 사는 자만이 진정으로 행복하며, 바로 그가 모든 사람들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 철학자는 삶의 내부에서 무엇이 참된 삶인지 알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리라는 것이다.

-행복의 형이상학, P147.

 

by papyros 2017. 2. 8. 23:21

밑줄긋고 생각잇기 3주차 - 거대한 뿌리, 행복의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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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밑줄긋고 생각잇기 모임도 중반부인 3주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3주차에 독서를 진행하면서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에서는 세 편의 시 -플란넬 저고리, 우리들의 웃음, 거대한 뿌리- 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

 

 

 

 본디 플란넬은 양복의 원료로 사용되는 옷감이라 한다. 노동자에게는 이질적인 것임에도 화자는 플란넬 저고리라는 대상이 노동의 상징이라고 표현한다. 연필쪽을 호주머니에 넣고 글을 쓰는 노동을 하며 업을 삼고 있는 화자에게는 필연적으로 빈곤이 함께 자리한다.

 김수영은 실제로 자신의 플란넬 저고리에 대해, ‘부끄러운 노동복이라 고백한 바 있다고 한다. (박대현,1960년대 참여시와 경제 균등의 사상 4월혁명 직후 경제민주주의 담론을 중심으로-, 한국민족문화61,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6, 273-275. 참조)

이를 고려한다면 시인은 연필쪽을 호주머니에 넣고, 노동복을 입고 글을 쓰는 자, 어쩌면 지식인이라는 한계를 과감히 벗어던지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안고 이 시를 써내려갔을 수 있다고 여긴다. 김수영이 늘 자신을 성찰하고, 자아를 부끄러이 여긴 것은 어쩌면 그가 시인이기에, 가장 양심적인 삶을 살며 이를 노래하려는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것일지 모르겠다.

 

저놈은 나의 노동의 상징

호주머니 속의 소눈깔만한 호주머니에 든

물뿌리와 담배 부스러기의 오랜 친근

윗호주머니나 혹은 속호주머니에 든

치부책 노릇을 하는 종이쪽

그러나 돈은 없다

-돈이 없다는 것도 오랜 친근이다

-그리고 그 무게는 돈이 없는 무게이기도 하다

또 무엇이 있나 나의 호주머니에는?

연필쪽!

(중략)

아무 것도 집어넣어 본 일이 없는 왼쪽 안호주머니

-여기에는 혹시 휴식의 갈망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휴식의 갈망도 나의 오랜 친근한 친구이다...

-플란넬 저고리중에서, P88-89.

 

 

 

 김수영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고 한다. 바로 첫째 준과 둘째 우인데, 김수영은 장남 김준을 1960년대 당대의 명문학교인 덕수국민학교에 전학시켰으나, 준은 그의 기대만큼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준은 요리를 잘 했고 종교처럼 아들을 사랑하는 열성아버지가 바로 김수영이었다고 한다. 시에서는 유독 종교’, ‘종교국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종교==아이들/ 비종교=비시=아이 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어쩌면 시인(화자)는 이 시를 통해, 지나치게 획일화되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종교를 지니고 그릇된 신앙을 열성적으로 따르는 사회현실과 같이 교육의 문제도 그저 아이들을 획일화 시키는 데 있다고 본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 개별적 존재 자체로 고유한 개성과 가능성을 지닌 한 명의 아이를 길러내는 것임을 , 화자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교육자를 목표로 하는 내게 있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했던 시이다.

(김응교, 문학 속의 숨은 신, 한국문학연구48, 동국대학교 한구문학연구소, 2015, 239-249. 참조)

1960년대에서 벌써 50년이 지났음에도 여저히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교육현실에 대해 냉소적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웃음을 희망과 행복이 가득한 진실된 웃음으로 변화시키는 데 더욱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여긴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가 종교국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을 갖는다

마당에 서리가 내린 것은 나에게 상상을 그치라는 신호다

그 대신 새벽의 꿈은 구체적이고 선명하다

꿈은 상상이 아니지만 꿈을 그리는 것은 상상이다

술이 상상이 아니지만 술에 취하는 것이 상상인 것처럼

오늘부터는 상상이 나를 상상한다

 

이제는 선생이 무섭지 않다

모두가 거꾸로다

선생과 나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 비종교, 非詩의 차이가 아이들과 아이의 차이이다

그러니까 종교도 종교 이전에 있다 우리나라가

종교국인 것처럼

새의 울음소리가 그 이전의 정적이 없이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모두가 거꾸로다

---태연할 수밖에 없다 웃지 않을 수밖에 없다

조용히 우리들의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의 웃음중에서, P95-96.

 

 

 

 

 19645월 발표된 거대한 뿌리는 김수영 시 세계의 극적인 변화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시가 시선집의 표제가 된 것을 고려한다면 김수영의 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시를 읽을 때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껴졌으나 연구논문을 통해 시대적 배경과 상황, 시인의 창작동기, 인물관계 등을 인지하고 나니 난해하던 시의 내용이 다소간 이해되기 시작했는데, 결국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안에서 한 개인, 인간 존재는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 이분법적 사고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가 아닌 실생활을 살아갈 따름이며, 이 땅은 이데올로기로 인한 정치적 이념적 의미가 아닌, 과거부터 이 땅에 발붙이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름 없는 이들의 생생한 과거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거는 광화문 네거리라는 지금-여기의 자리에서, 현재의 땅으로 뿌리내려가는 것이다. (오연경, 김수영의 사랑과 도래할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인권13,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13. 참조)

결국 이 질퍽한 현실 속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개개인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 하에 개인의 생활을 억압하는 과거의 잘못된 전통을 비판하는 시로, 이 시는 현 시대에도 유의미한 시라 하겠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거대한 뿌리중에서, P98-100.

 

 

 

 

 알랭 바디우의행복의 형이상학중 이번 주에는 제 3장을 읽었는데, 결국 주체의 행복한 삶이 이루어지려면 특정한 정체성에 갇히지 않으며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여 가능성을 발견하고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창조할 때 가능하다. 주체의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실존적 선택과 더불어 변화와 창조의 노력이 수반된다면, 이것이 바로 행복이라 말할 수 있다. 앞서 김수영의 시들에서 살펴보았듯 뿌리의 근원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이 아닌 아이한 명을 교육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것은 결국 특정 이데올로기나 이념에서 규정짓고 획일화 하는 데에서 벗어나 선택과 창조를 통해 변화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 여긴다.

 

 

 

 

 

 

 

사건에 충실함으로써, 자유와 규율의 등가성을 만들어냄으로써, 만족의 독재와 죽음 충동의 힘에 대한 승리가 될 새로운 형식의 행복을 발명함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행복이 변화의 과정에 예정된 대상성[객관성]이 아니라 이 과정 자체의 창조겆 주체화라는 사실을 경험할 때 무언가가가 세계 속에서 변화하는 중이라는 것을 안다.

-행복의 형이상학, P92.

 

 

 

 

 

행복은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주체성이다. 시간의 귀결과 화해하고, 세계 속 우리의 무미건조하고 침울한 실존 속에서, 단정적인 실재로부터 주어진, 빛나는 가능성들을 찾아내는 과제이자, 이 세계의 법칙이 은밀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행복, 그것은 세계의 관점에서 불가능했던 무언가의 강력하고 창조적인 실존을 향유하는 것이다.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킬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진실로 유쾌한 것이다. 행복해짐으로써,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며, 이는 때로 정말 불만족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하나의 서택, 우리 삶의 참된 선택. 그것은 진정한 삶에 관한 진정한 선택이다.

-행복의 형이상학, P94.

 

by papyros 2017. 2. 1. 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