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일 목요일, 신청이 열리자 마자 신청하여,

담당자님의 말에 의하면 선착순 중 가장 먼저 신청한,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키트가 도착했다. 그만큼 지난 시 필사 모임 때 신청을 못한 것이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신청한 책은 황석영 작가님의 <돼지꿈>인데, 나병철 교수님 수업 때   <몰개월의 새>를 비중있게

다룬 바 있었고 그만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어서, 그리고  시대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는 작가님이라고

생각되어서 작가님의 중단편집을 깊이있게 정독해 보고자 이 책을 신청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책을 정독하고 꾸준히 책의 문장들을 필사해 나가며

감상을 향유하고자 한다.

 

 

by papyros 2016. 10. 26. 10:02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 다행히 졸업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소책자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다행히 졸업

김아정, 환한 밤

 

그 순간, 혀 밑에 숨어 있던 나방 한 마리가 포르르 날갯짓을 하며 뛰쳐나왔다. 나방이 날개를 파닥이며 차 안을 이리저리 헤집어 댔다. 놀란 엄마가 차창을 재빨리 내렸다. 나방이 운전석 창문 너머로 훨훨 날아올랐다. 갓길 옆에 서 있는 가로등에 마침 불이 반짝 들어왔다. 주변이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나방이 가로등 불빛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더없이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그렇게 환한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환한 밤, 29.)

 

 9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연령의 작가들이 모여 자신의 학창시절을 르포문학에 가깝게재구해 낸 단편소설집 다행히 졸업2010년대의 학창시절을 그려낸 김아정 작가의 환한 밤을 먼저 접했다. 2010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로서는 단편집에 실린 아홉 편의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이 나의 학창시절과 가장 가깝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떠한 향수를 지니고 글줄을 읽어 내려갔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서울에서 할머니 댁인 강원도의 시골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고등학생인 주인공 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열일곱 살 여고생들이 으레 그렇듯 이 작품의 또한 청소년기에 갑작스럽게 생긴 가정형편의 변화로, 내면에 여러 생각과 고민을 품고 있으며 자신을 둘러싼 친구관계와 가족관계에 있어 내면을 드러내고 개방하는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난은 숨겨야 하는 대상이다. 제때 요금을 내지 못해 정지된 휴대폰, 물려 입은 교복, 판잣집에 거주하는 것. 주인공에게 이러한 모든 상황은 낯설고 숨겨야만 하는 부끄러운일들로 여겨진다. 주인공에게 이러한 이들이 부끄러이 여겨지는 것은 그러한 처지에 대한 환멸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것은 동급생들에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진다면 공동체에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가정보다도 학교에서 또래집단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학생들에게 있어 어떤 무리에, 친구들과의 관계에 소속/편입되지 못한다는 것은 곧 배제/배척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 재희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왜 자꾸 거짓말하는데?’라는 재희의 말에 재희와 그 친구들을 피해 다니고 급식을 혼자 먹는 것은 의 기저에 자리한 그런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엄마의 급식 혼자 먹니?’라는 엄마의 말에 놀라며 엄마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의문을 지니고 초조해 하는 의 모습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어머니에게까지 자신이 제대로 무리 속에 편입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불안을 전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자신의 있는 그대로가 수용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염려이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 제대로 대화를 해오지 않은 엄마의 모습에 이어 질문을 할 때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에게 있어 엄마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여기는 단서가 된다.

 그러한 복잡한 마음을 품고 가출을 하게 되어 찾아간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야간의 학교이다. 야간의 학교를 기점으로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는 변화된다. 어둠으로 가득 찬 학교에서 영지라는 친구와 함께 매점에서 외상을 하는 등 그 밤을 함께 보내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른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그 무언가를 공유하게 된다. ‘와 영지에게 있어 그 무언가란 나를 이해 할 수 있는 이들이 아무도 없는 어떠한 공간에서 벗어나 나를 이해하고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와의 관계 또한 전환된다. 학교에서 밤을 보내는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라는 어머니의 진심을 들으며 엄마와의 관계의 틈에 잘자리 했던 불안 또한 해소된다. 그 순간 본고의 서두에서 제시한 것처럼, 나방은 더없이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그렇게 환한 밤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작품 초반 무리 속에서 떨어져 나온 나방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며 묻어난 잿빛 비늘가루와는 확연히 대조적이다. 청소도구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나방은 다시 일어날 힘을 결코 내지 못했겠지만, 그 밤 교실의 청소도구함에서 빠져나온 나방은 다시 몸을 일으켜 날개를 퍼덕인다. 그리고 종국에는 더없이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환한 밤을 맞이한다. ‘가 어둠으로 가득 찬 학교에서 영지를 만난 이후 친구관계와 가족관계에 자리했던 불안이 모두 해소된 것처럼. 이와 같이 작품은 나방을 통해 의 좌절과 성장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불꽃 주변으로 커다란 나방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녔다. 자기들끼리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며, 뭐가 그리 신나는지 펄쩍 뛰어오르며 주변을 맴돌았다. 그 순간 무리 중 하나가 튕겨 나와 유리창에 부딪히며 떨어졌다. 창문에 나방의 잿빛 비늘가루가 묻어났다. 나방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날개를 퍼덕였다. (환한 밤, 24.)

 

 

 결국 이 작품은 청소년 성장소설로서 그 의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온전히 청소년 환상소설로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따를지 모르나, 밤의 학교라는 통과제의적 공간을 통해 분리-전이-결합의 과정을 거쳐 가치의 세계를 획득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지와의 만남을 통해 분리되고 영지와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내면을 확장해 전이되며 학교에서의 밤을 보내고 가족관계와 친구관계에서 문제가 해소되는 점이 결합된다고 생각하면 결국 이 작품은 가 어두운 학교에서 통과제의를 거치고 성장하는 서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환한 밤과 같은 환상적 이미지를 통해 청소년기에 필요한 소통과 공감, 사랑의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달빛을 쫓아가다가 가로등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해 머무른다는 점에서 그들의 날갯짓이 무의미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두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만의 달빛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인다는 것 , 그리고 그 날갯짓을 통해 가치와 행복을 획득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9년 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을 거친 학생으로서, 그리고 현재 교직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으로서 청소년기에 자리할 수 있는 여러 어두움(가족 및 학교 내에서 관계로 인한 심리적 정서적 문제, 학습부진, 학교폭력 등 다양한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개별 학습자 한 명 한 명에 필요한 달빛을 제공 해 주는 것이야 말로, 교육의 진정한 역할임을 다시금 느낀다.

 

"길을 찾고 있는 거야. 원래 달빛을 쫓아가고 있었는데 가로등 불빛이 자꾸 밝아지면서 길을 잃고 만 거야. 다시 달빛을 쫓아 헤매다가 결국 가로등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하고 저렇게 되어 버렸지."

"다시 달빛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찾을 수 없지. 가로등 불빛이 꺼질 일도 없겠지만 애초에 달빛이라는 건 찾을 수 없어. 그냥 계속 찾아다니는 거지." (환한 밤, 24.)

by papyros 2016. 10. 23. 12:57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판미동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를 읽고

 

 

루스가 나한테 가르쳐 준 마술의 클라이맥스는, 진실로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탈바꿈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탈바꿈하게 하는 것뿐이라는 궁극의 통찰이었다.

루스는 나에게 기법을 가르쳐 주고 제대로 된 연습을 시켜주었다. 하지만 그보다 기꺼이 시간을 내서 가르쳐 주고 자신의 시간과 관심을 오롯이 내줌으로써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하고 진정한 마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바로 연민의 힘이었다. 연민은 우리 각자 마음의 상처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그것은 가장 큰 선물이자 가장 위대한 마술이다.’ - P274.

 

 신경외과 의사이며 현재 스탠포드 대학 신경외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제임스 도티 -는 만 열두 살 시절의 여름, 그의 마술용 도구가 사라져 이를 구매하고자 그가 거주하는 랭커스터의 한 마술가게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마술가게에서 만난 루스와의 특별한 인연은 짐의 생애 전체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마술가게라고 하니 마치해리 포터의 호그와트나 위저드 베이커리의 제과점에서처럼 마치 환상적인 마법이나 마술이 펼쳐치는 허구적인 소설일 것이라 예상되지만, 저자 제임스 도티가 실제 자신의 생애를 통해 경험하고 배운 바를 풀어낸 진솔한 이야기이다.

 가난한 가정환경, 더욱이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폭력을 행사하는 부친 밑에서 어린 짐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러한 고통에 대해 울분과 분노를 지니고 살아왔다. 루스는 그런 짐의 고통을 발견하고, 아들 집인 마술가게에 머무르는 6주 간 삶을 바꾸는 특별한 마술을 가르쳐 준다.

루스가 짐에게 가르친 마술의 순서는 우선 호흡을 통해 근육을 이완시키며 몸의 긴장을 푼 후, 이어서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부정적 목소리(머릿 속 라디오)를 제거하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이거나 산만한 생각에 감정이 따라가려 할 때 만트라 -계속 반복해서 외우는 단어나 구절-를 활용하거나 촛불 등 하나의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한 연습을 지속해야 한다. 이 연습이 끝나면 마음 열기 단계로 들어가는데, 생각을 비우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결점 많고 불완전한 존재로 바라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내며 마음을 여는 연습을 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신이 성취하고 싶은 목적이나 목표에 대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리며 세부사항을 덧붙여 비전에 대해 그 의도를 선명하게 하는 연습을 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그 비전이나 목표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나쁜 의도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짐(제임스 도티)은 수십 년에 걸쳐 루스가 가르쳐 준 마술들을 연습하고 자신의 비전을 끊임없이 구체화 시킨 덕분에, 어려운 가정형편과 의대에 가기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학점에도 불구하고 유년 시절부터 품어 온 의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자신이 원하던 부와 명예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짐의 뜻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목표를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확고함이 오만함으로까지 이어져, 큰 사고 앞에서 죽음에 임박하게 된 적도 있었고 주식 거래가 잘못되어 전 재산을 모두 날리게 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짐은 그러한 고통을 통해 오히려 수십 년 전 열 두 살의 나이에 루스에게 배운 마술의 핵심에 이르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고통스런 환경을 제공한 이들(부모님)에 대한 용서, 자신의 고통에 대한 연민, 자신의 수많은 결점과 실수들에 대한 겸손의 자세, 그리고 나와 똑같이 실수하고 결점을 지니고 고통 속에 힘들어하는 나와 다르지 않은 타자들에 대한 연민. 결국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핵심은 사랑이었다.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자기만의 배경을 지니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심장과 자신의 심장을 연결해 사랑연민을 통해 나와 다른 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이것이 루스가 짐에게 가르쳐준 마술의 핵심이었다. ‘사랑연민이 자리할 때 자신이 그리는 목표와 비전도 의미를 지니며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기실 짐이 루스로부터 배운 이러한 마술은 열두 살의 어린 아이가 그 본질 자체를 이해하고 실천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다. 어떠한 덕성이나 습관이 의식하지 않으며 숙련되어 완전히 내면화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듯이 이 마술도 수십 년의 시간을 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스가 짐에게 이러한 마술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짐의 내면에 있는 가능성을 보아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어린 짐 뿐만 아니라 내면에 상처를 지니고 있고 이를 치유 하고자,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부단히 애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가능성이 자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의 짐보다 10살 남짓 더 나이를 먹은 20대 중반의 나이이며 대학 시절 심리학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만난 많은 대인관계에서 많은 실수를 하고 관계에서 겪은 갈등에 대해 심한 통증을 앓아 왔다. 미숙하며 결점 많은 부족한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유년시절부터 형성된 대상관계 패턴, 학창시절 경험한 심리 내적인 부분들을 탐색하여 대인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지 알아가려고 무던히 애써왔고 그럼에도 반복되는 갈등 속에 많은 상처를 쌓아 오곤 했다. 그러나 짐 덕분에, 루스의 마술을 접함으로써 내게도 갈등 상황에서 나 자신이 지닌 심신의 긴장을 충분히 이완시키고, 내면의 부정적 목소리를 확산하는 것을 줄이고 오로지 자기 본연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자기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통해 나 자신의 상처와 타인의 상처를 동일시하고 함께 치유해 나갈 수 있도록 연습을 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가능성에 구체적인 가르침과 실천의 기회를 더할 수 있게 된 것이라 여긴다. 나아가 교육자로서의 소명의식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그저 목표를 생각하고 달려가기에만 급급했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리고 목표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회 또한 부여받았음에 진실로 감사하는 바이다. 나아가 내가 그린 이 목표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루스가 짐의 고통에 공감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가르친 마술과 그 안에 느껴진 사랑, 그리고 짐이 루스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마술을 알리기 위해 집필한 책을 통해 전해주는 사랑. 내게 무조건적 신뢰와 공감, 사랑을 전해 준 많은 스승님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며 동시에 내가 추후 교단에서 만날 학생들에게 전해 줄 사랑도 그려 보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는 순간이다.

 짐이 깨달은 -루스의 마술이 지니는 핵심인- 연민과 사랑은, 기실 한국 문학에서도 중요히 다루어지는 부분인데, 특히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와 같은 소설에 이러한 부분이 잘 형상화 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는 타자와의 관계나 교감이 부재하고 자기동일성에 의해 관계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화폐와 상품경제 영역이 인간적 영역에까지 침범했기 때문에 타자에 대한 공감이 많이 약화된 데서 발생하는 사회 내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선물을 통해 존재의 자기증명이 가능함을 소설에서는 보이고 있는데, 예컨대 공감을 통해 타자가 내 내면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자기에 대한 사랑도 생겨나는 법이기에 선물의 진정한 의미는 존재의 자기증명에 그 방점이 있다고 하겠다.

 루스의 마술은 누가, 어떻게 수용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발견하고 치유할 수 있는 연민과 사랑, 그리고 이를 통해 맺는 끈끈한 유대의 힘은 자기를 둘러싼 동일성의 환경이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상을 지닌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며 더불어 이러한 사랑의 연대성이 보편화 될 때 개인의 고통이 치유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도 치유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소중함과 가치를 지닌 존재며 위엄 있고 정중하게 대접받을 가치가 있다. 모든 사람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은 출발선에서 기회를 평등하게 받을 자격이 있으며, 더 나아가 두 번째 기회를 누릴 자격도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이야기 안에서는 아프고 슬픈 장면이 존재한다. 어떤 순간이건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을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루스는 겁 많고 외로운 한 소년을 보았다. 그리고 내안에 상처받은 마음을 보았다. 우리는 저마다 상처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각자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루스는 내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니 당신도 똑같이 할 수 있다.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매번 낯선 사람에게 보내는 미소도 선물이 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매 순간도 선물이다. 당신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위한 용서, 그 순간순간도 선물이다. 연민을 표현하는 저마다의 행동, 남에게 봉사하려는 저마다의 뜻은 이 세상에 보내는 선물이자 당신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연민의 시대, 그 시작점에 서 있다. 사람들은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알게 되기를 소망하며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기꺼이 찾고자 한다. 그래서 변화의 방법을 찾고 있다. 루스는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그 방법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은 루스의 깊은 통찰과 특별한 기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열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지금 당장에 그것은 연민에 힘입은 인간의식 속의 잔물결이지만, 앞으로 언제든 크나큰 파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작은 물결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유대하는 여정을 지나고 있다. 그것은 이 지구상에서 우리 동료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이 우리의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여정이다. 연민과 측은지심으로 시작한 하나의 행동이 또 하나의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동심원이 온 지구를 둘러싸고 있음을 깨닫는 여정이기도 하다. 결국에 가서는 우리가 서로 얼마나 애틋하게 사랑했는지, 그리고 서로 얼마나 정성스레 보살폈는지, 이것이 우리 세상과 인간의 생존을 결정짓는 지점이 될 것이다.  -P316-318.

 

 

 

 

우리 중에 완벽한 삶을 타고 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끔찍한 고통의 현실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서로 간에 아름답게 발휘되는 모습도 피할 수 없습니다.” - P319.

 

 

by papyros 2016. 7. 22. 01:55

김수환

                                                       <김 수 환>

 

                                                                                   고 은

 

 

1969년 한국 천주교의 첫 추기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쓴 빨강 스컬캡은 신앙에 앞서 명예였다.

그러나 가장 겸허한 사람이었다.

70년대 이래

그는 한번도 분노를 터트리지 않아도

향상 강했다

 

그는 행동이기보다 행동의 요소였다.

하늘에 별이 있음을

땅에 꽃이 있음을

아들을 잉태하기 전의

젊은 마리아처럼 노래했다

 

그에게는 잔잔한 밤바다가 있다.

함께 앉아 있는 동안

어느새 훤히 먼동 튼다.

 

 

그러다가 진실로 흙으로 빚어낸 사람

독이나

옹기거나

 

   - <만인보> 제 10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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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yros 2016. 7. 13. 13:50

머슴 대길이

 

                                                     고은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 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르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한테는

주인도 동네 어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 올라가서

홑적삼 처녀 따위에는 눈 요기도 안 하고

지겟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였지요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하였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이란다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긴 불빛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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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yros 2016. 7. 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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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유년시절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독서였다. 독서를 좋아했기에 책을 늘 가까이 했고, 특히 여러 문학작품들을 읽으며 가치관과 생각을 정리해 나가며 자신을 성장해 나가곤 했다.

 

 독서를 즐기다보니 자연스레 성장의 과정만큼, 내 방의 책꽂이에 꽂혀간 책들의 권수도 꾸준히 증가했고, 그만큼 예비 국어교사로서, 그리고 문학을 사랑하고 인문학과 교육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분야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소양 또한 넓어져 갔다.

특히 대학 입학 후에는 대학 연합 독서토론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민음사 북클럽 서비스 지원을 통해 독서모임을 함께하는 등 , 다양한 책을 접할 기회가 더욱 많아졌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기까지 지속적으로 들어 찬 방대한 전공서들, 그리고 인문학, 심리학, 교육학, 문학작품 등 다양한 도서들이 늘어나면서 더 이상 책꽂이에 자리가 남아나지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급적 지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전자책, 소위 E-book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전환하게 되었다. 기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E-book 기기가 등장하고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이 증대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할 때면, 아무리 그래도 전자책이 종이책의 질감과 그 소장가치를 따라올 수는 없지, 전자책으로 얼마나 독서에 집중이 잘 되겠어? 라는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고 넘쳐나 더 이상 자리가 없는 책들을 보며, 그리고 학술논문을 노트북이나 컴퓨터 이외에 평소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E-book 기기에 관심을 찾아보게 되었던 것이 바로 올해 초였다. 가입한 E-book 카페에서 여러 E-book 기기 종류에 대해서도 알아보곤 했다. 그러나 실제 E-book을 접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고민만 하며,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차, 민음사 북클럽 × 리디북스 이벤트를 통해 리디북스 페이퍼 상품을 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30일간의 사용 후 리뷰를 남긴다.

 

 

 

 

1. 구성품

 

            

 

 

° 리디북스 페이퍼(RBP1) 구성품. 페이퍼 기기설명서, 그리고 충전기로 구성되어 있다.

 

 

 

2. 화면

 

               

 

 

° 왼쪽부터 차례로 전원 종료화면, 페이퍼 시작화면, 그리고 Sleeping 모드(절전모드) 화면이다. 제품 상단에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면 페이퍼를 시작하고 종료할 수 있으며, 전원버튼을 짧게(가볍게 한 번 터치) 누르면 Sleeping 모드로 전환이 가능하다.

 

버튼 위치는 동봉된 설명서를 참조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단 설명서 참조)

 

 

                             

 

 

3. 책장 및 서재

 

 

 

  

 

 

° 시작화면(로딩 화면)을 지나면, 가장 먼저 뜨는 화면이 좌측 사진과 같다. 최초 설정 시 입력한 리디북스 아이디와 연동이 되고, Wi-Fi를 연결하면 자신의 책 목록들을 다운받을 수 있다. 우측 사진과 같이 내 서재에서 보유한 책의 모든 목록을 확인 가능하다. 기계를 로그인 하자마자 좌측 화면이 먼저 뜨기 때문에, 최근 읽은 책과 최근 구매한 책들을 확인한 후 바로 이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서에 대한 신속한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다.

 

 

 

 

4. 독서 화면

 

                                    

              

 

                             

° 책 페이지 내용이다. 상단 우측의 사진에서 보이듯 양측 좌우에 있는 버튼을 통해 전/후 페이지로 이동 할 수 있다. 책장을 넘김에 있어 양측 물리 버튼의 존재는 신속성과 편리성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E-book 기기의 특성 상, 주로 독서대에 거치를 하고 보게 되는데 이 때 불편감 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큰 장점이라 여겨진다. 작은 터치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은 경우, 독서 중 화면을 누를 시 뜨게 되는 오른쪽 상단의 기능을 통해 좌우 버튼 전용 모드로 전환하여 물리 키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이 가능하다.

 

 또한 실제 활자가 책과 다르지 않아 종이책과 다름없는 가독성을 확보하고 있어 E-book을 오래 읽음에도 불구하고 눈의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 점은 매우 큰 장점이다. 독서 중 화면을 눌러 우측의 상단 기능 중 두 번째 햇살 무늬를 누르거나, 화면을 위아래로 쓸어서 밝기 또한 조절 가능하다.

 

 

 

 

 

 

 

5. 가독성 향상

 

  

 

                     

     

 

 

 

° 가독성 향상 및 편안한 독서환경 조성을 위해 다양한 기능도 구비되어 있는데, 독서 중 페이퍼 화면을 한 번 누르면 목차, 독서노트, 보기설정, 뷰어설정 탭이 등장한다.

목차 탭에서 현재 읽고 있는 책의 장, 페이지를 확인하여 작품을 어느 정도 읽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보기 설정 탭에서는 사용자 개개인에 맞는 가독성을 위해 글꼴, 글자크기, 여백, 줄 간격 등을 조정할 수 있다. 뷰어 설정 탭에서는 이미지 진하기, 좌우버튼 설정, 챕터 제목과 페이지 번호 보기, 밝기 조절 제스처 사용, 팝업으로 주석 보기 등 다양한 기능의 사용 여부를 설정해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만을 취사선택 할 수 있다.

 

 

 

 

6. 독서 기록

 

      

 

 

 

 

 

 

 

 

 

° 리디북스 페이퍼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독자들의 능동적 독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독서기록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서 중 인상 깊은 구절에 형광펜으로 체크하여 간단한 메모를 남길 수 있고, 독서노트 탭에서 해당 구절과 함께 구절의 장과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메모를 클릭 시 메모한 구절로 이동 가능하다. 또한 독서 중 우측 상단을 터치하면 북마크(책갈피) 또한 활용할 수 있어 독서 상황 파악에도 용이하다.

 

 

 

 

7. PDF, TXT, EPUB 등 다양한 문서파일 지원

 

     

 

 

 

° 리디북스 페이퍼는 E-book 도서 외에도, PDF, TXT, EPUB 등 다양한 형식의 문서파일 열람이 가능하다. 내장메모리 혹은 외장메모리(SD카드)에 파일을 삽입한 후, 리디북스 페이퍼 설정 화면에서 내 파일 추가하기를 누르면 해당 파일을 선택해 열람 가능하다. 특히 대각종 논문들이 PDF 파일이기 때문에, 학술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에게 있어 논문을 쉽게 열람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은 매우 큰 효용성과 편의성을 지닌다.

 

 

 

8. 나오며

 

 

 

 이상으로 리디북스 페이퍼 30일 간의 사용 후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몇가지 있다면, 와이파이 연결 문제와 가끔 기계 종료 시 검은 잔상이 남기도 했다는 점 , 그리고 리디북스 어플 외 타 서점 어플의 경우 루팅을 하지 않고서는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점인데 타 서점 어플 설치가 불가한 문제의 경우 리디북스 측에서 다른 서점과의 상호보완 및 수용을 통한 협력 관계에서 오는 이점을 재고해 보면 어떨까 싶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공간에서는 책을 다운받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점이나, 기계 종료 시 가끔 발생하는 결함의 경우 사용자와의 소통을 통해 기술적, 기능적 부분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간다면 충분히 개선 가능한 문제로 여겨진다.

 

 

 전반적으로 종이책과 다름없이 집중해 독서가 가능할 뿐 아니라 다양한 독서 기능을 지원하고, 논문 등을 열람한다는 점에서 다독多讀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꾸준한 관심과 보완이 이루어진, 향후 버전의 페이퍼 기기 또한 무척 기대가 된다.

 

 

* 특히, 마지막으로 다시금 리디북스 페이퍼 대여 이벤트를 마련하여 E-book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리디북스와 민음사 양측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by papyros 2016. 6. 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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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2권을 읽고

 

우리에게 확신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계시에 따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를 마음이 있다면, 이 세상의 학문을 두려워하거나 배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뚜렷하게 분별하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보다 큰 사랑의 실천을 위해 사용하면 됩니다.’ (336.)

 

 

 1권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2권에서 그 중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이는 바로 신앙과 이성의 조화신앙의 실천적 측면이다.

 

 신앙과 이성의 문제는 곧 신학과 철학의 양립 가능성 여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특히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며 변증론이야말로 진리의 유일한 기준이라 주장하는 변증론자들과, ‘철학은 악마의 발명품이거나 신학의 시녀라고 주장하면서 이성을 경시한 반변증론자들을 중심으로 그 대립이 이어져 왔다. 베렌가리우스와 란프랑쿠스 사이의 논쟁 또한 이 맥락에 서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신학과 철학, 즉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는 노력 또한 끊임없이 지속되었는데, 특히 믿음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다.’(58.)라며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펼친 켄터베리의 안셀무스, 철저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날카로운 이성의 도움을 받고자 한 아벨라르두스(86.)의 노력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 과정에서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교회 내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이성신앙의 문제가 대두되어 왔으며,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는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한다.”고 하면서, 이성을 지닌 인간의 노력이 한계에 부딪힐 때,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은총이 이를 채워주고 완성시켜 주는 것이라 보았다. 즉 이성과 신앙은 하나의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며 철학과 신학은 상호보완관계에 있는 것임을 주지한 바 있다.(213-215.)

 결국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에 대한 교회의 인정 및 수용 문제,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학문적인 토론을 벌이는 자리에서 서로의 권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점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가치들에 대해 이를 일방적으로 배척하기보다는, 수용할 만한 장점을 찾아 기존의 문제(단점)를 보완하며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교회 내의 여러 입장 차이 - 가령 현대사회에서 제기되는 교회 내 보수와 진보 문제의 패러다임 에 대한 편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상대 당의 약점만을 찾으며 배척하고 밀어내려는 여러 정치인들, 다른 종교를 배격하고자 하는 일부 이단이나 극단주의자들, 그리고 나의 가치관이나 입장과 다르다고 하여 누군가를 배척하고 배격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는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조화롭고 균형 잡힌 시각이 전제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의 실천또한 가능하지 않은가 싶다. 세리와 죄인, 과부 등 소외받고 버림받은 이들을 먼저 돌보시며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신앙을 실천하고자 한 이들이 있는데 청빈, 정결, 순명을 강조하며 시토회를 창설한 로베르투스, 그리고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다. 소유를 경계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수도회 규칙으로 청빈정결을 몸소 실천하며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보여주신 그 본보기는 세속의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귀족적인 수도회의 행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즉 신앙을 단지 학문적으로, 그리고 명예를 떨치는 데에 사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배움과 학습을 넘어서 행동과 실천을 추구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현재 사제들의 자발적 참여로 활발히 운영되는 프라도 사제회또한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결국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2권을 통해 우리들 그리스도인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깨우칠 바가 있다면 다름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신앙의 정반합正反合을 확립하고, 확립된 굳건한 신앙을 단지 지식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실천하여 지행합일知行合一에 도달해야 한다는 점이라 여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지녀야 하는 것이 바로 건전한 양심이다. 마땅히 이완된 양심과 완고한 양심, 양심의 두 극단을 모두 피하고 이성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통해 건전한 양심을 만들어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의식을 통감하고 교회 내에서 자성과 실천을 주도하시는 등 가장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분이 바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바로 현 프랑치스코 교황님이 아닐까 싶다. 교황님께서 보이시는 모범은 주교, 사제, 수도자, 심지어 평신도까지도 감화시키고 있다. 특히 626(2016) 교황 주일을 맞아 프란치스코라는 현재 교황명에 담긴 그 의의 교회 내의 과오를 반성하고, 현안을 검토하며 필요하다면 수용하며, 가치를 지향하고 몸소 실천하는 노력-를 상기해 보며 글을 마무리한다.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아시아 주교단과의 만남

by papyros 2016. 6. 27. 10:33

 인격은 인간의 존재 방식 두 가지가 동시에 드러나는 특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인격으로서의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이성의 빛으로 깨닫고 자기를 실현해 나가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주체이다. 개별성과 독자성은 삶의 주체로서 자유로운 결단과 그에 따른 책임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인간은 개별적인 동시에 타자에게도 열려 있고 관계를 맺는 공동체적 특성도 갖고 있다. 공동체성은 인간이 타자, 즉 하느님과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두 번째 특징은 인격은 이성적 본성, 행위 결정, 관계성, 초월성 등의 모든 특성이 통합된 완전한 전체를 의미하고, 인간은 인격으로 인해 존엄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훌륭한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것이 되며, 여기서 인격의 모든 특성을 개발시켜 나가야 할 필요성이 나온다.

 

구본만, 「가톨릭 학교의 전인교육 사명에 대한 고찰」, 『가톨릭철학』 제17집, 한국가톨릭철학회, 2011, 107쪽.

 

by papyros 2016. 1. 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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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조선마술사>

 

마술사는 마술을 통해 관객들을 낯선 세계로 데려가옵니다. 가난이 없는 세계, 아픔이 없는 세계, 전쟁이 없는 세계, 원통함이 없는 세계, 분노가 없는 세계이옵니다.”

그 세계는 거짓이 아니더냐? 환상일 뿐이지 않느냐?”

고통 가득한 현실보다 행복 넘치는 거짓이 때론 삶을 버티게 하옵니다.”

(<조선마술사> 155-156.)

 

부자들은 마술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즐길 기회가 얼마든지 있사옵니다. 가난하고 미천한 백성들에게 물랑루 공연은 정말 큰맘 먹고 오는 자리이옵니다. 빈궁한 이들에게까지 비싼 입장료를 받아 배를 채우고 싶진 않사옵니다. (중략) 마술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옵니다.”

(<조선마술사> 156.)

 

내일이 오늘보다 밝다면, 배성들은 지금의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옵니다. 오늘이 어제보다 어둡고, 내일이 오늘보다 어둡다면 그건 곧 하루하루 죽음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사옵니다. 특히 작년부터는 조운선 침몰에 돌림병에 가뭄이 이어져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사옵니다. 저는 그들이 잃어버린 그 내일을 제 부족한 마술로나마 찾아 주고 싶사옵니다.

(<조선마술사> 157.)

 

현실을 견디기 힘든 사람은 저마다 황당한 꿈을 꾸옵니다. 이뤄지기 힘들지만 그 꿈을 꾸는 동안엔 위로를 받사옵니다. 마술은 그들의 꿈을 판 위에 잠시 옮겨 보여주옵니다. 마술사가 마술을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마술을 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마술을 만드는 것이옵니다.”

(<조선마술사> 158.)

 

 

 작품 속 (정조로 추정되는) 임금과 물랑루의 마술사 환희의 대화 중 일부이다. 위의 인용구절에 볼 수 있듯 환희는 마술사로서 남다른 신념을 지니고 있다. 마술 공연은 부자富者들을 위한 것이 아니며 빈자貧者들을 위한 자리라는 것, 그리고 물랑루 공연에서 마술이 펼쳐지는 그 순간만큼은 반상班常의 구분이 없는 것. 이는 분명 조선이라는 당대 사회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가치관이다. 특히 환희에 따르면 마술의 의미는 마술을 관람하는 관객들, 바로 그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 마술을 보는 이 자신이 마술이라는 환상을 통해 삶의 고통과 시름이 덜어진다고 믿는 순간 마술은 사실이 된다.

 그런데, 이는 마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환희가 이야기한 마술의 의미와 동일한 역할을 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소설이다. 작중 배경인 조선 후기 당대 사회 속에서 민중들, 심지어 규방 여성들의 삶에 시름을 잊게 해주는 것이자 유일한 낙은 바로 소설 읽기였다. 이덕무의 저서를 보면, 전기수가 <임장군전>을 낭독하던 도중 이에 청자가 이에 몰입하고 심취해 담배 써는 칼로 전기수를 살해했을 정도이니 이는 당시 소설이 민중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지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부녀자들은 세책(소설 대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비녀나 팔찌를 팔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빚을 내어 이를 감당하느라고 가산을 기울인 자도 있을 정도였으며, 작품 속에서 청명옹주가 부왕父王을 위로하기 위해 심청전 필사본을 별당에 두고 온 것처럼, 조선 후기 어느 아비도 시집가는 딸을 위해 임경업전을 밤새 필사해 아비 그리울 때 보라며 딸의 손에 넘겨준다.

 이처럼 당대 조선에서 소설은 시름을 잊고 몰입할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따라서 작품 속에서 환희의 마술과 교차되어 청명옹주의 소설쓰기(소설 필사)가 부각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작품 자체도 마술을 소재로 삼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을 쓰는 청명과 마술을 하는 환희의 만남, 이들의 만남과 사랑이 의미가 있는 것은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늘 응달에서 그림자처럼 어둠속에 숨어 살아온 청명옹주는 소설로서 무료함을 달래 왔다. 그리고 환희를 통해 궁궐 담장 밖으로 나와 세상과 마주하며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청나라에서 어머니를 여의고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오래도록 시달리며 성장해 온 환희는 청명이라는 여인을 만나며 혼자 지니고 있던 자신의 서사를 풀어 낼 수 있게 된다.

 결국 청명과 환희의 만남은 소설과 마술이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지 않을까. 분명 우리 삶은 소설이나 마술처럼 모든 것이 환상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내 삶에 소설이나 마술이 들어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사랑이라는 환상또한 실현되리라 믿는다.

지금도 유럽 어딘가를 떠돌며 마술 공연을 펼치고 있을 카타리나와 그녀의 조수 이븐 폴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다.

 

 

    

 

2. 영화 <조선마술사> & 시네마토크


 20151230. 2015년 한 해 동안 많은 영화들을 보았지만 해를 장식하는 마지막 영화가 된 <조선마술사>. 소설을 먼저 읽었고, 그 때문인지 소설이 어떻게 영화로 각색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품고 시사회를 관람했다.

영화에 등장한 물랑루의 화려한 모습. 7억짜리 세트를 지은 만큼 영화로 구현된 마술 공연장, 물랑루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원작과 비교해 삭제되거나 달라진 점이 많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영화 도입부에서 여왕의 대관식 장면을 제거하고, 정조임금의 청명에 대한 부친의 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 등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앞선 배경이나 상황이 제거되고 청나라로 떠날 위기에 처한 부분부터 시작하는 것은 작품의 초반 내용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배경설명이 불친절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환희가 마술이라는 것을 대하는 자세(귀족만을 위한 마술이 아닌, 시름 있는 백성들이 잠시라도 현실을 잊기 위한 그러한 마술)를 보여주지 않은 것은 소설 전체에서 누누이 마술은 그 환상을 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핵심 메시지를 삭제한 것이기에 영화 스스로 추구할 가치를 제거해 버린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특히 사랑이야기의 핵심이 되자, 두 사람 간의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마술 장면인 낙분술과 오작교 신을 왜 삭제했는지 퍽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두 장면이 존재했더라면 영화의 장면구현으로서도 충분히 관객들을 사로잡았으리라 보는데, 이 장면을 삭제한 것은 매우 아쉽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환희와 귀몰의 마술대결을 삭제 해 버린 점, 그리고 환희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마술사적?) 존중을 한 귀몰을 영화에서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지키지 않는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그려냈어야만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부분이 매우 아쉬웠다.

 김탁환 선생님과 이원태 감독님께서 시네마토크에서 말씀하셨듯이, 정말 소설 전체를 제대로 구현해 낸 뮤지컬로 작품이다시금 재개봉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며, 결국 영화로서의 각색에서 가장 큰 패착요인은 마술의 외적인 것에 치중해 마술이 지니는 가치와 내적인 부분에 대해서 모두 제외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스크린 및 여타 자본의 한계가 있기에 소설을 그대로 영화로 구현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의 흥행 요인은 외적인 것 단 하나보다는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가치를 전할 수 있는 무언가가 공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by papyros 2016. 1. 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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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읽고

 

교회 안에서도 때로는 자신의 사욕을 탐하는 사람들이 있고, 국가 안에서도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지에 따라서 두 나라 중에서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가 정해집니다.’ (280.)

 

 

 위 구절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저술한 신국론의 핵심 내용이다.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 나라가 곧 교회이고 땅의 나라가 바빌론, 국가라고 동일시하는 세인들의 편견을 바로잡고 있다. 즉 몸이 하느님 나라에 속해 있어도 땅의 나라에 마음이 가 있는 이들이 있고, 몸이 땅의 나라에 있어도 마음은 하느님 나라에 가 있는 이들이 있는데 물론 전자보다는 후자가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을 만하다.

 기실 그리스도교 역사 전체에서, 그리고 세계사 전체 - 아니, 우리 사회의 단면만 보더라도 세상의 많은 문제는 마음을 땅의 나라, 세속적인 것에만 두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기인한다. 보에티우스를 모함한 이들이 그러했으며 베네딕투스를 독살하고자 하던 이들이 그러했다. 또 굳이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재 일부 대형 교회의 사목자들, 혹은 정치인들이 마땅히 사용해야 할 대상을 향유하려고 하는 바, 그들의 목적,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하느님 나라와는 거리가 있다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완벽하고 분명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나 적어도 박승찬 교수님의 책,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은 이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신격과 인격의 대립과정 속에서 발달해온 철학과 신학의 완성은 그리스도교가 오랜 논리와 고민 끝에 만들어진 종교라는 것을 재확인 할 수 있게 한다. 더욱이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삶을 통해 낡은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의 변화, 회개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으며 향유사용을 통해 가치의 질서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보에티우스 성인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모습은 고난에 쉽게 좌절하고 주저앉았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더욱이 높은 학문적 위치에 올랐음에도 늘 한결같았던 예로니모 성인의 자기성찰, 베네딕투스 성인의 겸손함, 그리고 수도 공동체 안에서 고행을 자처하며 그리스도교적 가치에 헌신하여 세상에 한 줄기 빛이자 소금이 되었던 여러 수도회들의 모습은 진정한 가치가 세속과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결 국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크나큰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 뿐 아니라 신앙의 유산이 이어진다는 점에 있지 않은가 싶다. 이 책은 이러한 신앙의 유산 그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이 유산을 잘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 줄 수 있 을지, 그 실천적 방향을 포함하고 있다.

 전 세계가 그릇된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로 인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유지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신앙, 그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지향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이 하느님 나라에 닿아 있는가에 대해 반추하는 자세라 하겠다. 그 지점에서 바로 절망 한편의 희망이 가능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가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좌절하지 마세요. 신국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최종적으로는 하느님의 나라가 승리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에티우스도 사형수로 갇혀 있으면서도 끝까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그 문을 붙잡으며 매달릴 때, 하느님은 생각지도 못하게 그 문이 아닌 다른 문을 열어 놓고 준비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느 때에 그 문을 발견할 수 있나요? 지금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붙잡은 것들을 놓아 버릴 때만 하느님이 열어 놓으신 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10-311.)

 

 

by papyros 2015. 11. 30. 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