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9회 :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4주차)

최종 감상평 및 참여후기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정용준 작가님의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를 3주간에 걸쳐 읽어내었다. 이미 지난주에 완독을 했기에, 작품의 의미를 곱씹어보고자  이번 주차에는 「작가의 말」 이제니 시인의 「추천의 말」을 마지막으로 읽어내려가는 한편 민음사 인스타그램 에서 개최했던 문학대축제 영상을 뒤늦게 나마 찾아 영상을 보았다.

  「작가의 말」은 소설을 쓴 작가 정용준의 메세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여운때문인지 왠지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한 소년이 들려주는 후일담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정용준 작가님의 전작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또한 '언어장애'를 겪는 인물들이 많다고 하는데,  정용준 작가는 왜 이를 '질문'으로 삼았을까. 일전에 마음에 남는 문장으로 남아 필사했듯이 우리모두는 어느정도 말더듬이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단 표면적으로 말을 더듬는 걸 넘어서, 우리는 우리 주변의 타인들에게 얼마나 깊이, 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는 걸까.

 


  더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안 더듬는 건 아니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도 아니야. 다들 어느 정도 말더듬이들이야. 우리는 보기에 조금 튀는 거고. 너도 나중에 더듬지 않게 되면 알게 될 거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75쪽.

 작품의 소년 또한 선택했듯이  '글쓰기'는 '말하기'와 비슷하면서도 직접 언어화하고 발화하기에는 너무 힘겹고 아픈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전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이다. 책을 좋아하고 조금씩이나마 글을 쓰기를 좋아했던 나도 내 안에 품어내고 있는 그 모든 생각을 정연히 언어화하여 전달하기엔 대범치 못해서, 부족한 사람이어서,  글쓰기라는 수단을 더 선호해오지 않았나 싶다.

 


 너 글 잘 쓴다. 글쓰기 글쓰기는 말하기와 닮았어. 문장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쓰는 건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제대로 제대로 제대로 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거든. 알겠지만 말을 더듬는 사람은 말을 말을 말을 입 밖에 꺼내기 전에 이미 그 말을 더듬을 것을 예감하고 있어. 실패할지 몰라, 라는 막연한 예감이 아니라 이미, 이미 실패한 상태로 말이 입속에 들어가 있지. 그러니까 예감이면서 예감이면서 동시에 확신이랄까. 너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겪었기 때문에 갖고 갖고 갖고 있는 예지력이랄까. 아무튼 글쓰기도 마찬가지야. 첫 음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다음 다음 음도 나오지 않잖아. 마찬가지로 첫 문장이 써지지 않으면 다음 문장도 문장도 문장도 없지. 그러니까 첫 문장은 많은 문장들 중 첫 번째가 아니라 앞으로 나오게 될 글들의 생명체의 머리 머리 머리 같은 기능을 담당하지. 글을 고치는 과정도 비슷해. 좋지 않은 문장을 조금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단어를 바꾸고 구조와 순서를 고민하는 과정은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말을 더듬지 않게 노력하는 과정과 거의 흡사하거든. 그래서 말더듬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단어를 단어를 알아야 하고 습득해야 해. 실패한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거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야.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해. 그런데 24번. 네가 쓴 글을 보니까 괜찮아. 재능이 재능이 있어.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15-116쪽

 

  작품 속 열 네살 소년의 모습은 이미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유년기, 청소년기와 많이 닮아있는 그 소년.. 아마 소년을 통해 자기 내면의 소년을 발견한 독자들이 적지 않으리라 여긴다. (심지어는 작가님 본인 조차도) 그런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년을 잃어버린 자신의 아들로 여기며 계피 맛 사탕을 쥐어주는 할머니, 돈까스를 사주는 친절하고 따뜻한 이모, 자신과 닮아있는 친구들, 글을 잘쓴다고 이야기해주는 작가 형 - 이들 같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년에게 상처를 입힌 그 어른들을 용서하는 방식으로든 혹은 복수심을 키워나가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던 어른들의 그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그 순간, 내 안의 아이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폭력적인 아저씨에게 매여있는 엄마의 사정도, 할머니(어머니)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던 스프링 언어교정원 원장님도,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더듬는 이모도.... 그들 모두가 내 마음의 한 자리에서 자연스레 이해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어른이 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성장한 우리에게 이제는 둘리의 고길동이 안쓰럽게 다가오는 것처럼)  

 작품을 완독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 무언가가 남아있는 이 기분은.. 북토크에서 등장한 한 표현을 빌리면 이 작품이 '비판적 독서'의 대상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내야 하는' 작품이기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겪어내며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한 작품으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서평을 갈무리해 본다.

 소년이, 내가, 우리가 겪은 모든 일들과 만나온 사람이 비단 '한 여름밤의 꿈'이나 허구적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 품어야 할 강렬한 무엇인가로 남기를 소망한다.


그는 어른이 됐다.

언제, 어떻게, 왜, 어른이 되는지 궁금했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욕했던 모든 어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랬던 거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막연히 알 것 같았다.

(중략)

감정. 얼굴. 이름. 일기. 날과 달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단어들.

진짜 기억이 되고 감정이 되고 얼굴이 되고 이름이 되어 살아 움직였어.

가짜가 아니었어. 뻥이 아니었다고.

 

- 정용준, 「작가의 말」,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61-163쪽.

 



 

 

by papyros 2020. 8. 19. 09:08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9회 :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3주차)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어느덧 정용준 작가님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은지 3주가 지났고, 작품을 완독했다. 사실 책의 지면이 그리 길지 않아 충분히 하루에 완독할 수 있는 길이였지만,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프로그램을 위해 3주간에 걸쳐 조금씩 끊어 읽으며 더욱 오래 소년과 함께하면서 아이를 바라보고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 유의미했다.

 발표를 '망쳤다'고 생각한 소년이 '스프링 언어교정원'에 나가지 않게 되자 교정원의 사람들은 소년의 부재(不才)로 인해 그를 그리워한다. 그만큼 언어교정원에서 소년이 스스로를 그저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여겼던 것과 달리 교정원의 사람들은 이미 소년을 공동체 안의 '중요한 존재'로 여기고 있으며, 특히 소년의 발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까지 표현한다.

 소년도 스프링(언어교정원)에 나가지 않는 사이, 그에게 영향을 준 스프링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 할머니, 이모, 노트, 하이, 원장에 이르기까지-을 그리워하며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한다. 


 얼음의 나라처럼 지금 이 말을 그대로 얼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할 때마다 더듬지 않은 말을 따뜻한 말에 녹여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술 취하지 않은 엄마의 다정한 말도 얼리고 이모가 내게 해 줬던 모든 말도 얼리고 할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말도 얼리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그 아들을 만나면 다 들려주고 싶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도 얼리고 싶다. 이모에게 하고 싶은 말도 얼리고 싶다. 할머니에게는 할머니의 아들 역할을 한 연극배우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 괜찮아요. 용서해요. 그렇게 말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훌륭한 연극배우니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까지 여유롭게 닦아 주면서. 노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이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스프링 사람들 모두에게 다 할 말이 있다. 그리고 원장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다. 해 줘야 할 말이 있다. 할머니가 준 계피 맛 사탕이 이제 딱 두 개 남았다. 그중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이 사탕은 도대체 어디에서 파는 걸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던 걸까? 한 달 전에 슈퍼에 가서 할머니가 준 계피 맛 사탕을 보여 주고 같은 걸 달라고 했는데 슈퍼 주인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건 팔지 않는다고 했다. 엄청 오래된 사탕 같다고. 먹으면 안 될 것 같다고 걱정도 해 줬다. 백 년쯤 된 사탕일까? 유통기한이 하루 지나 먹으면 병에 걸리는 그런 불량 식품일까? 병에 걸리면 그것도 좋겠다. 병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사탕을 빨았다. 빨 때마다 쓰고 달콤해지는 입안. 줄어들 때마다 조금씩 나는 잠에 빠져든다. 자장자장 재워 주는 맛이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이 내 머리를 만지는 것 같다. 만져 줬으면 좋겠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18-119쪽.

 

 이 지점에서 '관계 속의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혈연으로 엮여진 가족보다도 오히려 깊이있게 내면이 맞닿은, 내면과 감정의 선을 이해하는 타인들과의 관계가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느꼈다. 특히 경찰서에서 진술하는 소년을 보호해주기 위해 스프링의 모든 이들이 합심해 나설 때 그 사랑과 애정의 힘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노트에 쓰는 겁니다. 생각하는 것. 관찰한 것. 느낀 점.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괴로운 것들 모두 쓰게 합니다. 때론 시나 소설처럼 문학적인 상상력 같은 것들까지 쓰게 하죠. 그러니까 그건 일기장이 아니라 마음을 언어로 옮기는 연습장 같은 거예요. 언어를 풍성하게 하고 말을 잘하기 위함이죠. 교정원 사람들은 다 그런 노트를 쓰고 있어요.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38쪽.

 

 용서와 복수. 작품의 초반부터 조금씩 생각나게 하지만 마지막에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이 화두는 과연 양립이 가능한 것일까. 누군가를 용서하고싶으면서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애증)의 마음. 심리학에서는 이를 양가감정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이러한 양가감정을 조금 더 잘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작품속 소년처럼 '신뢰로운', '신뢰할 수 있는' , '좋은' 이들을 만나고,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수단(매개체)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소년과 같이 '글쓰기'가 될 수도, 반 고흐의 '그림이' 될 수도,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이 될 수도, 그리고 헤르만 헤세처럼 글쓰기와 그림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긴다.

 한 생애를 살면서 결코 단순할 수 없는 우리네 마음 자리를, 복잡한 내면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매개물과 더불어 이를 알아 줄 사람들이 주변에 자리한다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자리한다면 - 그것이 바로 내면의 외상을 극복하고 한 차원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음 주차에 작가의 말과 더불어 생각을 좀 더 정제하여 작품을 전반적으로 정리해 내면화하고 싶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있고 싫지만 좋을 수도 있으니까. 복수하고 싶으면서 용서하고 싶은 것도 가능하지. 그런데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50-151쪽.

 

by papyros 2020. 8. 12. 23:21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9회 :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2주차)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63페이지 내외의 짧은 소설인 정용준 작가님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기 시작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말을 더듬는 열네살 소년 '나'는 스프링 언어교정원에서 만난 한 친구의 말 -국어선생님께 복수하라는- 의 개연성이나 타당성도 제대로 검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소외감을 겪고 있다. 열네살 소년이 지닌 그 소외감의 무게가 크면 얼마나 크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기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오는 상처가 가장 무거운 법이다.

 소년처럼, 원장 또한 시계를 제대로 못하는 어린 시절의 그를 답답해하며 모욕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부자(父子)의 모습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어머니가 있었던 가족 환경 속에서 받은 상처를 소년에게 담담히 풀어낸다. 어른이 된 그는 자신이 받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이해하는 모습까지 보이지만, 아직은 열네살 중학생에 불과한 소년이 상처를 가하는 사람의 마음과 상황까지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법이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암튼 부모들이란 그렇단다. 잘해 주다가도 때리고 사랑하는 말로도 상처를 주곤 하지.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 다 그러려니 해. 그리고 미워해.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97쪽.

 

 소년은 말을 더듬는 그를 연민하는 엄마와 더불어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 엄마의 전 애인이 함께하는 상황 그 자체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특히 소년은 엄마의 전 애인으로부터 '나약한' 아이이자 '어머니의 근심(걱정)거리' 정도로만 치부되며 심지어 학교에서는 친구 한 명 없는 외롭고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아이로 여겨지는데, 이 때문에 1999년에서 2000년으로 해가 넘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삶에는 큰 희망이나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라든가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기 어려운데다가 심지어 왕십리역에서 진행한 스피치까지 망치고 만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누구를 죽이려는 게 아니고 누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복수의 마음인가, 도와주려는 마음인가. 판단할 수 없었다. 어떤 날엔 엄마에게 그 약을 주고 싶기도 하고 어떤 날엔 엄마의 애인에게 그 약을 주고 싶기도 하다. 어떤 날엔 선생에게, 어떤 날엔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먹이고 싶기도 하니까. 그리고 어떤 날. 왜 사는지 모르겠는 날. 그냥 살고 있는 것뿐인데 엄청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엔 차라리 내가 먹고 싶기도 하다. 어떤 친구가 물었다.

 넌 왜 사냐? 쓸모없고 말도 못 하고 친구도 없고 늘 괴롭힘만 당하잖아. 왜 살아? 친구의 얼굴은 진지했다. 정말로 궁금한 얼굴이었다. 내 삶이 너무 쓸모없고 괴로워 보여 차라리 죽지 뭐 하러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한 얼굴이었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01쪽.

 


 그만하자. 끝났다. 다 끝났어. 무엇을 기대했을까. 난는 속고 또 속는 바보처럼 이번에도 속았던 것이다.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위해 노력해 줬던 사람들. 진심으로 대해주고 마음 아파해 줬던 사람들. 그들을 배신했다는 생각과 그들이 실망했다는 생각이 마음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니다. 나 외엔 누구도 날 비난할 수 없다. 나를 이해한다고? 아니, 누구도 나처럼 살지 않았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07쪽.

 


 결국 왕십리역에서 스피치 사건을 망친 이후로 좌절감을 겪은 소년은 스프링 언어교정원에까지 나가지 않게 되고야 말지만.. 기실 답은 소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예감하고 있다. 이미 소년 내부에는 그 자신만의 가치가, 그 자신만의 힘이 있다. 아직 그것을 소년 자신이 찾지 못했을 뿐이다.

 때문에 소년이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실현해나갈, 작품의 후반부가  더욱 기대된다.

 


  더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안 더듬는 건 아니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도 아니야. 다들 어느 정도 말더듬이들이야. 우리는 보기에 조금 튀는 거고. 너도 나중에 더듬지 않게 되면 알게 될 거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75쪽.

 


 너 글 잘 쓴다. 글쓰기 글쓰기는 말하기와 닮았어. 문장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쓰는 건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제대로 제대로 제대로 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거든. 알겠지만 말을 더듬는 사람은 말을 말을 말을 입 밖에 꺼내기 전에 이미 그 말을 더듬을 것을 예감하고 있어. 실패할지 몰라, 라는 막연한 예감이 아니라 이미, 이미 실패한 상태로 말이 입속에 들어가 있지. 그러니까 예감이면서 예감이면서 동시에 확신이랄까. 너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겪었기 때문에 갖고 갖고 갖고 있는 예지력이랄까. 아무튼 글쓰기도 마찬가지야. 첫 음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다음 다음 음도 나오지 않잖아. 마찬가지로 첫 문장이 써지지 않으면 다음 문장도 문장도 문장도 없지. 그러니까 첫 문장은 많은 문장들 중 첫 번째가 아니라 앞으로 나오게 될 글들의 생명체의 머리 머리 머리 같은 기능을 담당하지. 글을 고치는 과정도 비슷해. 좋지 않은 문장을 조금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단어를 바꾸고 구조와 순서를 고민하는 과정은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말을 더듬지 않게 노력하는 과정과 거의 흡사하거든. 그래서 말더듬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단어를 단어를 알아야 하고 습득해야 해. 실패한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거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야.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해. 그런데 24번. 네가 쓴 글을 보니까 괜찮아. 재능이 재능이 있어.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115-116쪽.

 

by papyros 2020. 8. 5. 22:01

민음북클럽 손끝으로 문장읽기 9회 :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1주차)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지난주, 책을 배송받고서 시일이 조금 지난 후 책을 조심스럽게 펼쳐들었다. 책의 표지부터가 무언가 시선을 끌었는데 아마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표지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푸른 색감의 표지를 넘겨 보았다. 책 소개 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책은 말을 더듬는 소년 '나'가 등장한다. 새로 다니게 된 언어 교정원에서 가장 발음하기 힘든 단어가 '무연'이었다는 이유로 언어 교정원의 집단상담 시간에 '무연'이라는 별칭(가칭)을 부여받은 '나'는 열네살 소년인데, 책의 초반부에 소년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년의 내면묘사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으레 열네살 소년이 그렇듯 사랑 받고 싶어하며 타인(또래집단)과 관계맺고 싶은 욕구가 큰 소년은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그 욕구를 거절/거부당한 경험이 많아 내면의 상처가 깊은 아이였다.

 


 나는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겠다. 나는 잘해 주는 사람을 미워하겠다. 속지 않겠다. 기억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 편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바보 멍청이 이 똥 같은 놈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과거의 난 그랬다. 잘해 주기만 하면 돌맹이도 사랑하는 바보였지. 하지만 열네 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9쪽.

 


내일이면 모른 척 할 거잖아.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작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말뿐이잖아. 결국 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당하면 안 된다. 그땐  진짜 끝나는 거야. 끝 (중략)

아무것도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말고 기대지도 말자.

하지만 어째서인지 눈물이 쏟아지려 해 껍질을 벗기고 사탕을 입에 넣어 쭉쭉 빨았다. 왜 늙은 사람들은 계피를 좋아하는 걸까? 나도 늙으면 이런 맛을 좋아하게 될까?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22쪽.

 나도 유년시절 또래집단에 더욱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싶어하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아이였던으며 유년기부터 청년기인 지금까지 사람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에 그만큼 상처받은 경험이 많아서인지 소년의 내면에 차곡차곡히 쌓아올려진 상처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사람을 함부로 믿거나 신뢰하고 정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에 소년의 내면에 깊이 몰입되었다.

 특히 소년의 학교생활 중 국어교사에 대한 묘사는 나 자신을 매우 성찰하게끔 만든 요소였는데, 국어교사 이기승이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대부분의 어른들과 학교는 소년에게 '읽기'를 강요하는 무리한 환경적 요인에 해당했다.

 난독증을 겪는 학생들이나 학습부진이 있는 학생들은 고려했으면서도 '읽기'가 때로 어떤 학생들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있게 헤아리지 못했고 교사로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 지점이었다.

 

 


읽어.

책을 소리 내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에겐 눈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다.

종이에 적힌 문장은 부끄러움이 많아 종이에 달라붙어 있는 건데 그걸 억지로 뜯어내 말로 하는 건 옷을 벗기는 것처럼 수치를 주는 짓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읽기가 무슨 인간이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도 되는 양 학생들에게 읽기를 시킨다.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020, 34쪽.

 

 160 페이지 남짓의 짧은 소설 속 주인공... 16년 전 열네살의 내 모습을 한켠에 떠올려보며.. 이 소년을 통해 나는 그 때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앞으로 남은 페이지들에 대한 설렘어린 기대를 가져보면서, 이 책을 다 읽었을 땐 소년도 나도 한층 더 성장해 있기를 진실로 바란다.

덧붙여,  몇일 전 정용준 작가님의 북토크가 온라인으로 진행된 바 있는데..당일 참여하지 못해서 책을 완독하기 전에 정용준 작가님의 북토크 영상을 꼭 한번 보고 책을 이어 읽고싶다.

by papyros 2020. 7. 29. 22:39

제 7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마지막 밑줄 + 독서 후기

 조남주, 『사하맨션』, 민음사, 2019.

 

모든 글은 인용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지난 주차에 책 내용을 모두 완독했으므로 이번 주차는 ‘추천의 말’ 을 읽으며 조남주 작가님의 소설   『사하맨션』 에 대해 다시한 번 정리하고 작품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2주차 쯤 영화 <기생충>과의  비교를 통해 확인한 바 있듯이, 조남주 작가님의   『사하맨션』 은 분명히 ‘자본’에 의한 계급 차별과 갈등이 주가 되는 소설이다. 신샛별 평론가님이 ‘추천의 말’에서 표현하신 것 처럼, 주거와 의료,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하’의 삶은 그 자체로 차별이 될 수 밖에 없다. 

  타운 주민/L2/사하 라는 뿌리깊은 계급차별을 공고화한 것도 결국 실체없는 권력, 자본의 흐름 때문이었다.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당연히’,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문을 품고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세계에는 균열이 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균열, 건강한 균열을 바탕에 둔 사하와 L2의 연대와 저항은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낼 것이다. 마치 담쟁이 넝굴이 하나되어 함께 넘어갈 때 강하듯이, 지금까지의 역사가 보여주었듯 약자들 간의 연대를 통한 한 목소리의 외침이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들을 이루는, 보이지 않는 선을 비로소 허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산학협력 회사 현장에서 희생당하는 학생이 없기를, 한 개인이 자본과 맞바꿀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지 않길, 그리고...... 자본의 유무로 여러 혜택들이 더 주어지지 않는 공정한 사회이기를 .. 이 책을 읽고 진실로 바란다.

  여러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는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유를 추구했던 우미,

 총리관에 들어가 권력의 실체를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을 겨눈 진경,

 사하인 도경의 신분이 아닌 내면을 보고 관계를 맺었던 의사 ,

  진경의 총리관 출입을 은근히 도왔던, 조용한 방식으로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던 사하맨션의 관리실 영감과 소개소 소장,

 

 맹목적으로 요구되는 기존 사회의 질서가 아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향하던 사하맨션의 수많은 개인들이 우리 사회에
더욱 늘어나기를 진실로 소망해본다.

 한 동안 사하맨션의 주민들이 많이 그리울 듯 하다.





 사상의 논리로 운영되는 국가에서 인간은 셋 중 하나가 된다. 핵심 부품, 소모품, 폐기물.  『사하맨션』 은 소모품 또는 폐기물로 전락한 절대 다수의 인간이 경험하게 될 총체적 박탈의 상황을, 주거,노동,교육,보건,의료 시스템의 바깥에서 지옥을 견디는 난민들의 공동체를 상상한다. 아니, 그들이 단지 견디고 있다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차별과 배제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에는 단호히 맞서고, 상처 입은 방문자들에게는 절대적 환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저항과 돌봄의 공동체이기도 한 것이다.

 

- 신샛별(문학평론가), 「추천의 말」 중에서

 


 

미스터리한 죽음으로 시작한 소설이 장르적 쾌감 대신 서늘한 응축의 힘을 밀고 나가 마침내 ‘우리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라고 선언할 때 나도 모르게 그 다음을 기다렸다. 이 소설은 미래를 바꾸게 될 한 여성 전사의 탄생에 관한 긴 쿠키영상이다. 설레지 않는가.

 

- 김현(시인), 「추천의 말」 중에서

 

 

 

 

 

 

 

 

 

by papyros 2019. 7. 15. 17:45

[과제4] 제 7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네 번째 밑줄

조남주, 『사하맨션』, 민음사, 2019.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4주차에는 지난 3주차에 이어 「311호, 꽃님이 할머니, 30년 전」, 「311호, 우미」 , 「701호, 진경」, 그리고 마지막 「총리관」까지 모두 읽으며 작품의 결말을 보고 말았다. 원 래 마지막 한, 두장을 남겨두고 일독을 마무리하려 했는데 인물 각각의,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의 서사에 몰입되어 후반부를 달렸다.

  『사하맨션』 이라는 작품 전체를 읽고 난 후 전체적인 느낌은 무언가 짧고도 굵은 울림을 주는 듯 하다.  지난 주 영화 <기생충>과 더불어 이 소설의 서사에 대해 다룬 바 있는데,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있다고 믿는 어떤 '운명', '굴레'라는 것을 당연하게,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수용해야만 한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 할 수 있었다.

 


 나비 폭동이 희미해질 즈음이 되자 원주민이던 L2보다 그 2세와 3세들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 애초에 L2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의문도 저항도 없었다. 당위나 의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고 운명이라기에는 너무 거창하다. 원래 그런 삶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함께 자란 아이들의 진로를 궁금해하지 않고, 2년마다 체류권을 갱신하며 살다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아기를 남기고 나오는 삶.

 

- 조남주, 「311호, 꽃님이 할머니, 30년 전」, 『사하맨션』, 245쪽.

 

 


원래 그렇다고 믿고 있던 사람이 '원래'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 조남주, 「311호, 우미」, 『사하맨션』, 273쪽.

 

 


 "할머니, 나는 중요해. 나는 우리 아기가 아래층 아기보다 늦는 게 속상해. 아래층 아저씨가 쟤는 왜 저렇게 누워만 있냐고 그러는 것도 싫어. 우리 아기 걱정해 주는 척 자기 애 자랑하는 거잖아. 싫고 좋고, 속상하고 기쁘고, 그런 마음들이 어떻게 안 중요해."

 

- 조남주, 「311호, 꽃님이 할머니, 30년 전」, 『사하맨션』, 249쪽.

 

 

 그런 점에서 우미가 유년시절부터 30세에 이르기까지 아무 의문없이ㅡ 그냥 당연히 그래야만 해서 정기적으로 출석하던 연구소의 조직검사에 불응하고 도망치고자 했던 시도, 그리고 그런 우미의 도망을 도왔던 연구소의 몇몇 구성원들, 아랫집 아이와 다른 '우연'의 성장에 속상해하고 슬퍼했던 우미, 그리고 총리관에 들어가 그곳의 실체를 목격한 진경과 진경 이전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모두들 죽지 않기 위해, 사장되지 않기 위해,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곳곳에서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라 여긴다.

  비록 수십년 전 타운에서 벌어진 '나비폭동'이 물대포를 통해 비극적으로 진압되었을지언정,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싶었던 모든 개인들이 곳곳에 자리했다. 그러한 작은 개인들 ,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여긴다.

 죽었으리라 여겼던 한 여인의 사하맨션에서 소개소 소장으로 살아있으며, 연구원에서 연구소의 기밀을 지니고 도망나간 한 연구원이 사하맨션의 관리실 영감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진경이 총리실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진정한 삶'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작은 불씨를 가진 개개인의 행동이 결국은 변화를 만들어내리라 여긴다.

 부당입학(비리)에 대한 예민성이 결국 사회 변화로 이어졌듯이, 그리고 지금도 정치, 경제 등 수많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이 존재듯이...

 조남주 작가님의 신작, 『사하맨션』 은 그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우리 사회를 알레고리 기법을 통해 묘사하여 독자들의 타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죠. 신념은, 그 자체로는 힘이 없더라고요.

 

 - 조남주, 「311호, 우미」, 『사하맨션』, 283-284쪽.

 


"당신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

바람이 불었다. 총리관을 지키듯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무섭게 흔들렸다. 미처 노랗게 물들지도 못한 초록빛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떨어진 잎사귀에 날개를 펴고 앉았다.

 

- 조남주, 「총리관」, 『사하맨션』, 368쪽.

 

 

   

 


 

 

by papyros 2019. 7. 8. 23:26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2019년 '민음사' 첫 번째 독자 (5월) : 민음북클럽 서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민음사와 민음북클럽 담당자님께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련링크 : http://minumsa.com/event/31735/)



 

 『보라색 히비스커스』. 2019년 5월 민음북클럽 첫 번째 독자 프로그램으로 올라온 선정 도서들 중 가장 아름다운 제목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억압적인 가부장제 속에서 침묵하던 고등학생 캄빌리가 드넓은 세계와 분명한 자아를 찾아 나서는 정신적 성장기' 라는 이벤트 페이지 소개문구에 이끌렸다. 청소년들을 가르치려는 교사가 되기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성장'이란 화두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유독 청소년을 다룬 성장소설, 교양소설, 입사소설 등의 서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라색 히비스커스』 라는 책을 '첫번째 독자' 프로그램에서 읽고 싶은 도서로 지망해 신청링크를 제출한 다음, 별다른 안내문자나 연락이 없어 잊고 있던 찰나 ...... 한 달이 넘게 흐른 6월 말, 집으로 책 한 권이 배송왔다.

 그제서야 '첫번째 독자' 프로그램에 당첨된 사실을 확인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치 숨가삐 2019년의 반년을 보낸 ㄴ내게 주어진 민음사의 선물 같아서 책을 펴며 행복했다. 이 아름다운 책의 제목에는 과연 어떤 내용과 의미가 담겨있을 까.

 프로그램 신청 당시 이벤트 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던 문구처럼, 작품의 내용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교육 하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자녀들에 정서에 주목한다.  주인공 캄빌리와 그녀의 오빠 자자는 나이지리아 지역 사회에서 굉장한 부를 갖추고 독재정부에 대항하며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유진'의 자녀이다.  유진은 유년 시절 선교사들을 따라가 신학교의 교육을 통해 성장한 가톨릭 신자인데, 그의 종교에 대한 집착과 과도한 신봉은 모태신앙으로 가톨릭 신앙을 갖고 태어나 성당에 다니고 있는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불편할 정도였다. 작품을 읽으며 '유진'의 언행이 등장할 때마다 '이건 아니다'라는 불편한 감정이 마음 속 깊이 올라왔다.  가톨릭 신앙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사랑과 자비, 자애를 중점에 두는 신앙인 데 반해 캄빌리와 자자의 아버지 '유진'은 가톨릭 종교를 마치 집안에서 자신의 가부장적 권력을 더욱 공고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종교의 교리를 지키고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진은 목적과 수단을 전도시키고 있었다. 식전기도를 지나치게 길게 해 가족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생리통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해 불가피하게 씨리얼을 먹은 캄빌리가 미사 전 공복재를 지키지 않았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 (* 실제로 공복재는 미사 1시간 전이 아닌, 영성체를 하기 전으로부터 1시간 전 음식을먹지 않는 규정인데 작품 속 유진은 그것을 미사 1시간 전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오인인지, 지나친 신앙이 나은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 이교도인 아버지(할아버지)를 모시지 않고 심지어 함께하는 것도 꺼려하며 억지로 개종시키려는 모습, 할아버지의 그림을 지니고 있던 딸에 대한 한 폭력,  아들 자자의 유년시절 첫영성체 교리문답에 1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망가뜨린  일화 등..... 유진 자신의 입장에서는 신앙을 지키려는 자랑스러운 행동일지 몰라도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비롯한 가족들에게는  신앙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곧 폭력일 뿐이었다. 심지어 가톨릭 신자로서 종교적 관점에서도 사랑이신 주님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지시키는 폭력을 저질렀을 뿐더러   (사랑의 하느님이 아닌 처벌자로서의 하느님만을 알아야만 했던 가족들.) 선한 사마리아인을 떠올리지 않고 그의 부친이 가톨릭 신앙을 믿지 않고 나이지리아 전통을 따른다고 하여 이교도로 간주하여 냉소적으로 대하며 효의 예를 다하지 않기까지 했다.

 가톨릭 신학교를 뛰쳐나갔던  헤르만 헤세가 받은 교육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유진의 자녀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매우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우리가 앞으로 열여섯 가지 구 일 기도를 암송할 거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용서를 빌기 위해서. 그리고 일요일, 첫 번째 기도일이었던 삼위일체 주일에 우리는 미사 후에 남아서 구일 기도를 시작했다. 베네딕트 신부가 우리에게 성수를 뿌려 줬다. 일부가 내 입술에 떨어져서 기도할 때 텁텁한 짠맛을 느꼈다. 아버지는 오빠나 내가 성 다대오를 향한 열세번째 간구에서 졸기 시작한다고 느낄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무엇 때문에 용서받아야 하는지를.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50-51쪽.

 

 


 "오빠가 왜 이페디오라랑 사이가 안 좋았는 줄 알아요?" 또다시 들리는 이페오마 고모의 속삭임은 아까보다 더 사납고 시끄러웠다. "이페디오라가 오빠 면전에 대고 자기 생각을 말하기 때문이에요. 이페디오라는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죠. 하지만 오빠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진실에 대해서는 꼭 싸우려 들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죽어 가고 있어요, 알겠어요? 죽어 간다고요. 노인네가 사실 날이 얼마나 남았겠어요, 그보? 그런데 오빠는 아버지를 이 집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드리러 가지도 않죠, 오조카! 오빠는 하느님 행세를 그만둬야 해요. 하느님은 다 큰 어른이니까 당신 일은 당신이 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가 조상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하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 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124쪽.

 

 


 아버지는 우리가 모두 자리에 앉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기도를 시작했다. 평소보다 조금 길게, 이십 분을 넘긴 후에 마침내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해."로 마무리 짓자 이페오마 고모가 혼자 튀도록 목소리를 높여서 "아멘."이라고 말했다. "밥 식으라고 일부러 그런 거야, 오빠?" 고모가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못 들은 척 냅킨 펴는 동작을 계속했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125쪽.

 

 

 종교적인 내용 뿐 아니라 학업 면에서도 유진은 그의 자녀들에게 엄격했다. 집서는 물론이고 이페오마 고모가 거하는 은수카에 처음 놀러갈 때 조차도 빽빽한 일과표가 주어졌을 뿐 아니라 자녀들은 '1등'이 아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가 자녀들에게 학업 등 모든 면에서의 완벽을 강요하는 모습은 올해 초 방영되었던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이나 영조의 '사도세자' 에 대한 양육을 쉽게 연상시킨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해야만 했던 나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는데 너는 왜 모든 환경이 주어져 있는데 하지 못하냐는 자신과의 비교, 자신의 과거환경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유진이 지닌 출생과 가족환경에 대한 콤플렉스가 느껴졌으며 강박적 집착 또한 드러났다. 사랑과 칭찬, 존중 없는  채찍질, 과도하고 비뚤린 부모의 욕망과 열등감이 자녀를 힘들게 할 뿐이라는 것을,  유진의 언행과 캄빌리의 표현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오빠와 내게, 다른 애들이 1등하는 걸 볼고 성심여학교와 성 니콜라오 학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자주 말하곤 햇다. 아버지의 학업에 돈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도 - 특히 그의 불신자 아버지, 우리 파파은누쿠는 말할 것도 없고 - 아버지는 늘 1등을 했다. 나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었고, 아버지만큼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나를 꼭 끌어안고, 많은 것을 받은 자에게는 많은 기대가 따르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내 안의 뭔가를 따뜻하게 만드는 표정으로 내게 미소 짓는 것을 봐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2등을 했다. 실패로 더럽혀졌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54쪽.

 

 


"거울을 봐." 나는 아버지를 빤히 쳐다봤다. "거울을 보라니까." 거울을 받아서 들여다봤다. "네 머리가 몇 개냐, 그보?" 아버지가 처음으로 이보어를 섞어서 물었다. "하나요." "저 애도 머리가 하나지 두 개가 아니잖니. 그런데 왜 쟤가 1등을 하도록 놔뒀지?"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아버지." 가벼운 먼지 이쿠쿠가 스프링이 풀리듯 갈색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불어왔다. 입술에 앉은 모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내가 왜 그렇게 너랑 오빠한테 최고만 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고 생각하니? 너는 이 모든 특권을 누리는 만큼 뭔가를 해야만 해. 하느님이 너에게 많은 것을 주셨으니 기대하시는 것 또한 많단 말이다. 하느님은 완벽을 기대하셔. 나한테는 제일 좋은 학교에 보내주는 아버지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나무와 돌을 신으로 섬기며 세월을 보냈지. 선교단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야. 나는 이 년 동안 교구 사제의 심부름꾼이었다. 그래 심부름꾼. 학교에 데려다주는 사람은 없었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13킬로를 걸어서 니모에 갔지. 성 그레고리오 중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여러 사제들의 정원사였고 말이야."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63-64쪽.

 

 

 그러나 캄빌리와 오빠 자자가 함께 이페오마 고모 댁인 은수카에 머무르는 경험을 한 이후 그들은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일방적인 폭력 하에서 성장해 온 세계가 이상하며 비정상적인 세계라는 것을 느끼고 변화, 성장하게 된다. 단적으로 주어진 일과표 대로 기도하고 공부해오는 행위 외에는 음식을 준비하는 등의 집안 일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캄빌리가 처음으로 아마카를 통해 집안일을 배워나가는 모습, 감정표현이 없는 자신이 비정상적이라는 아마카의 말을 곱씹는 모습, 파파은누쿠(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나누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싶다는 욕망.... 집에서 그들이 아버지의 폭력과 억압 하에 '죽어있었다'면, 은수카에서는 그들은 '살아있는 존재'였고 더욱이 그 나이대 청소년들이 충분히 지닐 수 있는 욕망(아마카의 음악을 함께 듣는 것, 신부님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을 지니는 '청소년 다운 청소년'일 수 있었다. 특히 이페오마 고모의 가정이 얼마나 자녀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개성을 인정하는지가 아마카의 직설적인 표현들에서 잘 드러났다. 처음 사촌인 캄빌리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며 경계하는 모습들도 그러했고 견진성사 직전 자신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비판할 수 있는 아마카의 용기가 캄빌리와 자자의 성장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작품의 서두 자자의 언행이 매우 의미있는 지점이라고 여긴다. 기실 작품의 서두를 읽을 때만 해도 가톨릭 신자인 나는 성체를 모독하는 자자의 언행에 충격을 받았다. 굉장히 버릇없는 사춘기 청소년이네! 라며 혀를 휘두를 정도로.

 그러나 작품을 읽어내려가면서 그들의 성장과정과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서두에 등장했던 - 그 일이 일어나기 며칠 전 자자의 행동이 너무도 당연히, 해야만 했던 행동이고 진정으로 용기있는 변화의 시도였다고 여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그 폭력의 굴레에서 자자와 캄빌리, 그리고 어머니 모두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부장적인, 구습적인, 폭력적인 , 잘못된 권위에 의문을 던지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어야, 비판적 사고와 표현이 용인되어야 진정으로 건강한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다. 은수카에서 그들이 비로소 접한 이페오마 고모의 가정처럼.

 

  유진은 분명 나이지리아 정부에 대해서는 <써라운드>라는 신문을 간행하면서 지하운동을 펼쳐갈 정도로 독재정부의 부정함과 부당함을 비판하는 용기있는 자이다. 작품에도 , 등장했을 정도로 아버지의 장례식에 어쨌든 비용을 부담했으며 싫은 소리를 조금 했을지언정 여동생 이페오마의 생활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그의 가정에서는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독재자였으니 이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신앙을 실천하는 방법을 잘못 배웠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그의 열등감이 가족들에게 군림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을까..

  어느 쪽이든 그가 자신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는, 부당한 폭력임을 자인하는 순간,  그는  그의 삶 전체를 잃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 작품 후반부 그가 파파은누쿠(할아버지) 그림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웅크리는 그의 딸 캄빌리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벨트를 휘두르며 엄청난 폭력을 저지른 것 이후, 그리고 그가 자자의 행동에 크게 화내지 못한 것이 바로 그 또한 그 점을 무의식 중에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아내도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으리라 여긴다.

 


 

"자자, 너 영성체 안 했지." 아버지가 조용히, 질문에 가까운 투로 말했다. 그러자 오빠가 식탁 위의 미사 경본에게 말하듯 그것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그 웨이퍼 먹으면 입내 나서요."

 나는 오빠를 빤히 쳐다봤다. 어디 나사라도 빠졌나? 아버지는 평소에 그것을 꼭 성체라 부르라고 했다. '성체'라는 표현이, 그리스도의 몸이 가진 본질과 성스러움에 근접하기 때문이었다. '웨이퍼'는 너무 세속적이었다. 웨이퍼는 아버지의 공장들 중 하나에서 생산하는 것 - 초콜릿 웨이퍼, 바나나 웨이퍼 - 이자 사람들이 비스킷보다 좋은 걸 자식에게 주고 싶을 때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부님이 자꾸 제 입을 만져서 구역질 나요." 오빠가 말했다. 내가 자길 쳐다보고 있음을, 충격받은 내 눈이 입 다물라고 애원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내 쪽은 보지 않았다.

 "그건 주님의 몸이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았다. 아주 낮았다. 하얀 고름이 찬 두드러기가 구석구석 퍼진 아버지의 어굴은 아까부터 부어 보였지만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주님의 몸을 어느 날부터 갑자기 받지 않을 순 없다. 그건 곧 죽음이야, 너도 알잖니."

 "그럼 죽을게요." 오빠는 두려움 때문에 눈동자가 콜타르색으로 변했으면서도 이제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럼 죽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높은 천장에서 뭔가가 떨어졌다는 증거, 절대로 떨어지리라 생각지 않았던 뭔가가 떨어졌다는 증거를 찾듯 식당을 휙 둘러봤다. 그러고는 미사 경본을 집어 그것이 식당을 가로지르게끔 오빠를 향해 던졌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15-16쪽.

 


"그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아마카가 엄마 말을 못 들은 양 아마디 신부에게 말했다.

"교회의 주장은 서양식 이름이 있어야만 견진 성사가 유효하다는 거잖아요. '치아마카'는 하느님이 아름다우시다는 뜻이에요. '치마'는 하느님이 제일 잘 아신다는 뜻이고요. '치에부카'는 하느님이 가장 훌륭하시다는 뜻이죠. 이 이름들이 '바오로'나 '베드로'나 '시몬'만큼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나요?"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326쪽.

 

  한편  3년 전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출간한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는 이번 작품에서  사회속에 만연히 자리하고 있는 성 불평등(차별적 요소)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비록 나는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 이슈에 대해 깊이있게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저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으며 더욱이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해당 내용들은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많이 사라진 내용이긴 하지만 작품 속에 드러난, 그리고 우리도 수십년 전까지는 분명 존재했던 여성에 대한 성 불평등의 내용이 군데군데 엿보였다. 여성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식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모습들, '여성은 치마를 입고 남성은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편견, 그리고 성당 안에서 여성 만이 미사보를 필수로 써야 한다는 인식들... 이런 사회 속 만연히 자리잡고 있는 잘못된 인식을, 일상 속의 의문을 해결해 나갈 때 성 차별의 문제가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세상을 바꾼 변호인> 이라는 실화 바탕의 영화를 관람한 바 있다.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한 얼마 안되는 여성 변호인 긴즈버그가 성에 대한 불평등한 법률에 의문을 지니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그려진다.

  여러 진통들이 많긴 하지만, 한국사회도 남녀를 막론하고 불평등한 것들에 모든 합리적인 개인들이 비합리적인 사소한 것들에 대해 자그마한 의문을 가지는 데서 시작하기를 바란다.

이미 변화되기 시작했지만 소소한 예시들로는, '왜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의 것들인가?' '왜 결혼 시에 남성이 집을 장만해 와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가?' 등을 들 수 있겠다.

 페미니즘이라는 거창한 이론을 내세우고 싶지 않다. (나도 아직 많이 부족하고...) 다만 우리가 모두 어느 순간에는 약자, 소수자에 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권감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다.

 

 


 "누가 누굴 돌보게 될지는 모르죠. 1학년 토론 수업의 여학생 여섯 명이 결혼했는데 주말마다 남편들이 벤츠나 렉서스를 타고 와서 오디오랑 교과서랑 냉장고를 사 줘요. 학생들이 졸업하면 걔들도, 걔들 학위도 남편 소유가 되죠. 모르겠어요?"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99쪽.

 


"은나, 아니." 이페오마 고모가 말했다. "선교사들 탓이 아니에요. 저는 미션스쿨 안 나왔나요?"

"너는 여자잖아. 여자는 자식이 아니야."

"에? 자식이 아니라고요? 오빠가 언제 아버지 다리 아프시냐고 물어본 적 있어요? 제가 자식이 아니면 앞으로는 아침에 잘 일어나셨냐고 안 물어볼게요."

파파은누쿠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 내가 조상님 곁에 있게 됐을 때 내 영혼이 너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힐 거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109쪽.


 성 베드로 예배당에는 성 아녜스 성당에 있는 것 같은 커다란 촛대나 화려하게 장식된 대리석 제단도 없었고, 여자들이 머리카락을 가능한 한 많이 묶게끔 두건을 묶지도 않았다. 봉헌 행렬을 위해 나올 때 보니 어떤 여자들은 속이 비치는 검은 베일을 머리에 쓰기만 했고 어떤 여자들은 바지를, 심지어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봤다면 노발대발했을 것이다. 여자가 하느님의 집에서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 되지. 여자가 남자 옷을 입으면 안 되지, 특히 하느님의 집에서는! 아버지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291쪽.

 

 서평을 마무리하며 ...  왜 이 작품의 제목이 '보라색 히비스커스' 인지를 다시금 고찰해본다. 이페오마 고모의 집 마당에서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보기 전까지, 캄빌리와 자자에게 '히비스커스'라는 꽃은 '빨강색'이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162쪽) 그러나 '보라색 히비스커스'의 존재는 새로운 관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전에는 보도 듣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아이들은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자자가 히비스커스 꽃을 그들의 집 앞마당에 심으며 이를 소중히 가꾸는 것은 결국 그들이 인식하고 수용하게 된 새로운 세계를 그들의 집에서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아니었을까. 은수카에서 비로소 살아있을 수 있었던 그들의 세계를, 그들의 집에서도 지니고 싶다는 그 소망...   

 그런 점에서 자자의 저항과 어머니의 결단은 그들이 진정으로 희귀하고 향기로운 히비스커스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변화와 성장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선물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여긴다.

많이 아픈 만큼 희귀하고 향기로운 책이라 여러 번 재독하고 음미하고 싶은, 다채로운 색의 소설이었다.

(책 후반의 번역가 해설을 통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아님을 알게 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27쪽.

 

 

 "일단 오빠를 은수카에 데려갔다가 이페오마 고모를 만나러 미국에 가는 거예요." 내가 마한다. "아바에 돌아가면 오렌지나무도 새로 심고, 오빠가 보라색 히비스커스도 심고, 저는 익소라꽃을 심어서 나중에 꿀을 빨아 먹을 거예요." 나는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내가 팔을 뻗어 어머니 어깨에 두르자 어머니도 내게 몸을 기대며 미소 짓는다.

머리 위에 염색한 목화솜 같은 구름이 낮게 떠 있다. 너무 낮아서 손을 뻗으면 물기를 짜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곧 새로운 비가 내릴 것이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364-365쪽.

 

by papyros 2019. 7. 5. 16:24

[과제3] 제 7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세 번째 밑줄

조남주, 『사하맨션』, 민음사, 2019.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도서 사하맨션과 영화 기생충을 함께 다루고 있으니 영화 스포에 주의 바랍니다. (스포 多)

 

 

 

 이번 3주차에는 조남주 작가님의 『사하맨션』 중에서 「201호, 이아」, 「714호, 수와 도경」 그리고 「305호, 은진, 30년 전」 총 세 장을 읽고 해당 장의 내용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작품 전체 내용 중에서도 특히 이번 주에 읽은 세 챕터에서 시사하고 있는 내용이 최근 상영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많이 유사하다고 느꼈다. 특히 「714호, 수와 도경」 에서 수와 도경은 의사의 신분과 사하의 신분을 뛰어넘어 서로간의 애정, 사랑을 키워나가고 함께 의지하며 사하맨션에 살게 되는데, 신분에 관계없는 그들의 진정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수가 죽자 일방적으로 도경이 수의 살인범으로 몰리며 급기야 도망을 쳐야 하고 머리에 총구가 겨눠지는 도경의 처지는 그가 사하이기에 겪어야만 하는 부당하고 불평등한 운명이다. 그가 사하가 아닌 주민, 아니 적어도 L2였다면 도경이 그 자신을 변호하고 보호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그렇게 남의 집 냉장고에 숨어 있다가 몰래 도망가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했을까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L2도 나은 신분이 아닌 것이 「305호, 은진, 30년 전」 이야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보육원에서 자란 L2 계급의 은진은 유년 시절 "너는 커서 보육사 해야 되겠다" 라고 말한 주임 보육사의 한 마디에 꿈을 지니게 되지만 L2가 보육사의 자격을 지닌다는 것은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여러 심사에 의해 계약직 보육사의 자리를 따내지만 감염병이 돌자 다른 L1(타운의 진정한 주민) 계급 보육사들이 모두 출근하지 않을 때 유일하게 보육원에 출근했다가 결국 그 젊은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은진은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난 비극을 떠올리게 만든다. 특성화고에 입학해 산학협력 기관에 취업해 일하다가 안전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무리하게 업무를 맡아야만 했던 ,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등진 고등학생 청춘들.

 

 누군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대학에 가고 너무도 당연하게 의식주를 누릴 때 사하맨션의 거주자들은 전기 하나, 수도하나 쓰는것도 열악한 상황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도 기택(송강호)과 동익(이선균)의 두 가정형편을 통해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기택보다도 더 낮은,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운 지하실에 문광(이정은) 내외가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차등을 심각히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조선시대까지 신분차별의 기준이 양반(귀족)과 상민, 노예 등 '태생적 출신'에 따라 분류되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신분차별의 기준이 경제적 문제로 변화되어 계승된 것에 다름없는 것이다. 혹자는 경제력의 경우 노력에 의해 변화시킬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조남주 작가의 『사하맨션』 에서도 ,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도 경제력의 차이가 개인의 노력을 통해 극복되는 것이 아니며 이미 형성된 사회적 차별 속에서 학업(교육)의 기회, 양육의 기회, 그리고 선택의 기회 면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더욱 공고화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사하맨션』 에서 은주의 계급으로 인해 보육사라는 직업에 취직하는 일에 애초에 제한이 걸리는 일이나,  수가 타운의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사하맨션에 거주하는 의사라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당하며 결국 병원에서 짤리는 일이 그러하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공고화된 경제적 차이에 따른 취업문제와 의식주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2019년을 다루고 있는 책과 영화에서 모두 빈부격차에 따른 차별, 사회적 문제를 꼬집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은주가 사하맨션에 면접을 보러간 후 은주에게 전해진 201호 왕할머니의 한 마디 대사가 깊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시험 보는 게 아니야. 너를 점수 매기겠다는 것도 아니야. 네가 뭘 할 줄 아는지 무슨 자격증이 있는지 그런 거 잘 모르겠고 중요하지도 않아. 그냥, 같이 살아도 탈은 없을까, 이미 살던 사람들이랑 잘 맞춰 갈 수 있을까 서로 인사나 하자는 거야."

 

- 조남주, 「305호, 은진, 30년 전」, 『사하맨션』, 209쪽.


 진정한 경계의 허뭄은  바로 이렇듯 우리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평가'와 '판단'을 제거해 나가는 데에 있다고 여긴다.  너는 몇 점 짜리 사람인가, 너는 몇 평에 사는가, 너는 무슨 향수를 쓰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아닌 '당신은 무슨 꿈이 있나요', '당신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나요',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를 물어보고 더 큰 의미를 두는 사회로 변화되기를 소망해 본다.

 다음 장에서는 메르스 이야기를 비유하는 듯 한데, 남은 서사들도 깊이 고대되며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해져 빨리 독파하고 싶다.

 

 

 

by papyros 2019. 7. 1. 23:08

[과제2] 제 7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두 번째 밑줄

조남주, 『사하맨션』, 민음사, 2019.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어느덧 조남주 작가님의 신작소설 『사하맨션』 의 ‘밑줄긋고 생각잇기’ 2주차가 되었다. 1주일 사이, 지난 6월 22일(토요일)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조남주 작가님께 직접 책에 사인을 받았고 사인본이 된 책 덕분일까, 책을 더 깊이있게, 즐겁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올라왔다.

 

지난 주차이 이어 「701호, 진경」 과 「214호, 사라」, 「201호,  만, 30년 전」까지 세 챕터를 읽으며 진경과 사라의 성장기와 가족사 등 주요 인물들의 서사에 대해 읽어내려갔다. 진경과 도경, 그리고 사라와 그녀의 어머니 연화, 30년 전 201호에 머무르며 어른이  된 ‘만’까지  사하맨션에 입주해 있는 이들은 그 누구 하나 쉽거나 편한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그들을 둘러싼 세계 안에서 그들을 둘러싼 차별(구직활동에서의 차별, 의료혜택에서의 차별)과 불합리함은 그들에게 있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들의 서사를 읽어내려가며 그저 타운 소속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L2로서, 사하로서 차별받는 삶을 당연하게 내재해 온 그 수많은 이들의 아픔에 , 그들의 고통에 깊은 연민과 아픔이 내 마음속에도 자리했다.

그래서였을까, 사라가 그 전까지 자신의 운명을 너무도 당연히 여기며 ,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짐으로 여기며 감내해왔던 것에 비해 이제는 저 너머 세상이 보이며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불합리한 것에, 부당한 것에, 목소리를 내고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는 것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시작되는 것이기에.


 

 예전의 사라였다면 여기서 끝나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괜찮고 고맙다고 말했을 것이다. 왼쪽 눈이 없는 채로 태어났고 열두 살에 엄마가 죽었고 열일곱 살부터 술을 파는 바에서 일했다. 사라는 그 고단한 삶을 이상할 정도로 쉽게 받아들였다. 원망도 후회도 없이 심지어 때로는 감사하며 살았다. 사하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라에게 세상은 딱 그 크기, 그 만큼의 빛과 질감, 그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런데 요즘 사라에게 너머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많은 일들에 화가 나고 억울했다.

(중략)

”괜찮아?”
”난 이제 지렁이나 나방이나 선인장이나 그런 것처럼 그냥 살아만 있는 거 말고 제대로 살고 싶어. 미안하지만 언니, 오늘은 나 괜찮지 않아.”

- 조남주, 「214호, 사라」, 『사하맨션』, 111-112쪽. 

 그런데 이 사하맨션에서도 30년 전, 소위 ‘나비폭동’이라고 하는 - 목소리를 내고 부당함에 저항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분명 있었다. 한국 사회의 7-80년대 민주화운동과 무서울 정도로 닮아있는 나비 폭동의 과정. 30년 전 벌어진 이 시위가 타운 권력자들(총리단)에 의해 처참하게 진압되었기 때문에 지금 사하맨션에 사는 이들이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부당함을 자각하고 억울함을 느끼기 시작한 사라는, 사라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진경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 답답함과 한을 지니고 삶을 살아가는 수위영감은, 어떤 일을 계기로 , 어떤 방식을 통해 타운의 부당함과 불합리함, 차별에 저항할지 앞으로의 서사가 궁금해진다.

 그들의 연대는 아마 사하맨션의 주민들에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사하맨션의 주민들 뿐 아니라 L2와 L1까지 모두, 타운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자각하는 수많은 이들의 연대와 해결 방식이 매우 기대되는 작품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지난 과오와 연대의 과정을 소설 속에서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어, 이 전 과정을 통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지 매우 기대가 된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사하맨션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통해 다시금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by papyros 2019. 6. 24. 17:34

[과제1] 제 7회 밑줄긋고 생각잇기

배송인증 + 첫번째 밑줄

 

조남주, 『사하맨션』, 민음사, 2019.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이번 제 7회 밑줄긋고 생각잇기의 테마주제는 다름 아닌,  '디스토피아 소설 ' (* 디스토피아 소설이란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나타내고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을 가리킨다.이었다.  선정된 여러 소설들 중 조남주 작가의 화제작 『82년생, 김지영』 을 이미 일전에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기도 했고, 이번에는 어떻게 사회를 묘사하고 그것을 통해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있을까 궁금해 오래 고민하지 않고 조남주 작가님의 『사하맨션』을 이번 도서로 택했다. 검은 배경에 다소 차가워보이는 회색빛 맨션이 그려져 있는 표지 디자인이 깔끔하면서도 정돈되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주까지 워낙 일이 바빴던지라  많은 분량을 읽지는 못했으나 「남매」 「사하맨션」 까지 읽으며 그 짧은 두 개의 장에서도 많은 메세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 비슷한 주제여서인지- 작년에 독서모임 멤버들과 함께 읽은 최인석 작가님의 『강철 무지개』 가 언뜻 떠오르기도 했다.

 기업이 부지를 구입해 총리를 설정하고 심지어 회장조차도 총리단에 소속된 인물을 알지 못한다는 내용을 통해 흔히 S 공화국으로 대표되는 - 자본이, 기업이 운영하고 지배하는 국가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고 7-80년대의 독재정권을 묘사하는 장면, 주민들의 계급화를 통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등 사하맨션의 초반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부터 벌써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묘사하는 듯한 암시를 풍기고 있었다. 서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도 전인데 이렇듯 수많은 한국사회의 묘사가 떠오르고 있으니, 다음 장부터 본격적으로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고 어떤 서사가 펼쳐질지 기대가 크다.

 특히 역시 『82년생, 김지영』 을 쓰신,  작가답게 깔끔하고 흡입력있는 문장에... 이제 바쁜 일들이 지나갔으니 단숨에 책을 읽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책 속에 깊이 몰입하며 책 속에 담긴 작가님의 문제의식을 함께 생각하고 나누고 싶다.

 

 


 특히,  주민 자격을 얻지 못한 L2계급보다도 더욱 못한, 양육자들에 의해 포기되고 버려진 '사하'라는 계층의 거주자들이 사는 '사하맨션'에 사는 '우미' 에 대한 한 대목이 마음에 참 많이 남았고 경종을 울렸다.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스펙을 쌓아 안정적인 , 아니 사실 우리 사회의 다른 누군가보다 조금 더 잘 살기를 소망하며 아둥바둥대는 우리의 삶..

 그렇게 쌓아나가는 제도권 교육에서의 '지식'보다, 우미가 지닌 사랑과 관심을 통한 '지혜'가 더욱 의미있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기에.. 제도권에 속한 것 자체가 바로 곧 그 사람의 가치를 보증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문학적 표현을 통해 되새기개 해 준 좋은 문장이었다고 여긴다. 


           노란 나비, 혹은 나방은 다시 색종이 조각처럼 팔락이며 날아가 버렸다. 사하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미는 제도권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머릿속에 온갖 지식들이 가득했다. 병적으로 책을 읽었다. 역사와 철학에 특히 해박했고 유명한 소설이나 시구들도 줄줄 외웠다.

 

 

- 조남주, 「사하맨션」, 『사하맨션』, 37쪽. 


 



by papyros 2019. 6. 17. 23:59
| 1 2 3 4 ··· 6 |